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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귀희 가야금병창 연구 : 심청가 중 <심황후 이 말 듣고>, <얼씨구나 절씨구>를 중심으로

        이선,위희경 한국전통공연예술학회 2012 한국전통공연예술학 Vol.1 No.-

        본고는 오태석·박귀희의 가야금병창 중 <심황후 이 말 듣고>와 <얼씨구 절씨구> 대 하여 사설과 음악적 특징을 중심으로 연구한 글이다. 남도 가야금병창은 김창조에게 오수관·박덕기·송만갑·강태홍이 가야금 및 소리를 배우고, 오태석이 오수관·박덕기·송만갑의 소리를 이었으며, 박귀희는 오태석과 유성 준, 강태홍에게 소리와 가야금을 배워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박귀희와 관련된 학위논문은 총 24편 중 박귀희 가야금병창의 음악적 특징을 다룬 논 문이 18편에 이를 정도로 가장 많은 수의 연구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현재 박귀희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가야금병창의 총 곡목은 78곡으로, 이중 학위논문 으로 연구된 곡목은 총 36곡뿐이다. 또한 박귀희가 즐겨 불렀던 화사한 평조 느낌의 곡들 과 달리 계면성음을 가진 곡 중, 음반으로는 녹음되어 있지 않으나 현재 박귀희류를 계승 하고 있는 제자들에 의해 널리 불려지고 있는 <심황후 이 말 듣고>와 <얼씨구나 절씨구> 대목을 그의 스승인 오태석의 소리와 함께 사설 및 음악적 특징을 통해 비교분석 하였다. 사설분석에서 이채로운 점은 <심황후 이 말 듣고>는 심봉사와 심청이가 해후하면 장 면을 묘사하였는데, ‘먼 눈을 휘번쩍 휘번쩍 거리며', ‘아이고 이놈들아', ‘어느 제기럴 붙 들 놈이 나를 이리 속이느냐', ‘우루루루 달려들어 심청의 치마폭을 이리저리 이끌어 잡 고' 등 오태석의 <심황후 이 말 듣고>는 박귀희의 <심황후 이 말 듣고>에 비해 심봉사의 태도가 좀 더 격정적이고 능동적인 것에 비해, 박귀희의 소리에 나오는 심봉사의 태도는 ‘허허 이게 왠 말이냐', ‘살아오다니 왠 말이냐', ‘우리 딸 같으면 어디 좀 보자' 등 오태석 의 심봉사에 비해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큰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중중모리 부분인 <얼씨구나 절씨구>도 앞의 2장단 사설은 같은 사설로 시작 하다가 각각 다른 붙임새와 사설로 달라진다. 중중모리인 <얼씨구나 절씨구>에서 마찬가지로 오 태석의 사설과 박귀희의 사설에서 심봉사의 태도가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오태 석의 사설에서는 심청이가 황후가 되고 본인이 눈 뜬것에 대해 스스로 뽐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비해, 박귀희의 사설은 본인 스스로가 뽐내기 보다는 이와 같은 일들이 본인에게 벌어지는 모양들이 믿어지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같은 내용의 사설이지만 오태석 곡의 심봉사와 박귀희 곡의 심봉사의 성격과 태도가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태석의 심청가 중 <심황후 이 말 듣고>는 모두 63장단으로 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 으며 계면조로 남도계면조 음계로 되어 있다. 오태석의 <심황후 이 말 듣고>는 크게 A, B, C 세 가지의 종지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B에 해당하는 ‘하행종지형'을 비교적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귀희의 <심황후 이 말 듣고>는 총 47장단이며 자진모리로 구성되어있으며, 남도계 면조 음계로 되어있다. 박귀희는 B에 해당하는 ‘하행종지형'을 오태석에 비해 월등히 많 이 사용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태석의 <얼씨구나 절씨구>는 모두 15장단으로 중중모리의 장단으로 짜여져 있다. 음계는 남도계면조 음계이다. 오태석의 <얼씨구나 절씨구>는 크게 B, C 두 가지의 종지 형태가 나타난다. B는 ‘g-d'와 같이 하행하여 종지하는 ‘하행종지형', C는‘d-d'와 같이 같은 음으로 종지하는 ‘동음종지형'이다. 박귀희의 <얼씨구나 절씨구>는 총 20 장단이며 자진모리로 짜여져 있다. 음계구조는 남도계면조음계이다. 박귀희의 <얼씨구나 절씨구>는 C에 해당하는 ‘동음종지형'이 여섯 번으로 제일 많이 나타난다. 오태석·박귀희의 가야금병창 중 <심황후 이 말 듣고>와 <얼씨구 절씨구> 대하여 사 설과 음악적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본 본고는 박귀희의 가야금병창의 모든 음악적 특징을 이해하기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아직까지 연구되지 않고 있는 박귀희 음악을 중심으로 사설부분이나 가야금병창에서 소리와 가야금선율과의 음악적 분석이 더 욱 심도 있게 연구 되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19세기 초 개신교 선교사들의 중국 관련 지식 생산에 대한 인식 비판 -『차이니즈 레포지터리The Chinese Repository』의 중국 경전, 학문 체제를 해석하는 시선에 대하여

        이보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2020 국제지역연구 Vol.24 No.2

        1832년 5월부터 광둥에서 발간되기 시작한 『차이니즈 레포지터리The Chinese Repository』의 주요 필진은 선교사 혹은 외교관, 무업 관계 종사자들이 주류였다. 본 논문은 바로 『차이니즈 레포지터리』가 처음 발간되었던 시기인 1830년대 초반 선교사들의 글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지식 생산자로서 갖게 된 위상과 함께 그들의 내면에 감춰진 균열과 자기 정립 과정을 읽어 내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차이니즈 레포지터리』의 텍스트에서 이들이 읽고 있는 중국의 ‘경전', 중국의 ‘학문 체제'에 대한 내용을 분석, 이들이 파악하고 있던 당시 중국 문명에 대한 인식을 살폈고, 전근대 중국의 문명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제도들이 갖는 특징 속에서 근대에 대한 이들 필진들의 시선을 거꾸로 재구성해 보았다. 본 논문은 이 지점이 바로 우리가 신교 선교사들을 평가할 때, 제국주의의 전구(前驅)로 보든 아니면 기독교적 양심의 실천가로 보든, 이전의 1800년대 초반과는 달라진 서양인의 모습이며, 이들의 서사는 근대성의 우월감과 자신감을 상대방에게 처음으로 과시하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한편으로 유럽에서 자신들이 생산한 지식이 유통되고 확산되어 그들의 선교 사업이 후원을 받고 궁극적으로 지적 권위와 위상을 획득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들의 중국 혹은 아시아에 대한 지적 권위는 지역의 현장성을 강조함으로써 확립되었다. 그리고 반면 근대의 과학·윤리·가치관을 동아시아로 가져와 변화의 동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즉 ‘동아시아에서의 계몽의 완성'이라는 목표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 스스로가 존재하고 또 근거하고 있는 현장으로서의 중국과 아시아를 단순히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지식을 재확립하면서 산발적 지식에서 지식 체계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Missionary, diplomats and trade-related people constituted the main contributors to 『The Chinese Repository』, which was first published in May 1832 in Guangdong. This research aims to address missionary's new roles as the knowledge producers about the region and discuss the internal conflicts and self identity formation they went through in the early 1830s. This paper analyzed these individuals' perspectives regarding Chinese civilization reflected in their interpretation of Chinese classics and academic system. This research shows that whether we see protestant missionary as precursors of imperialism or doer of Christian conscience, these Westerners demonstrated differences from the early 1800s in that their narratives began to demonstrate their modernity's supremacy and confidence. On the one hand, they aimed to obtain intellectual authority and status as the knowledge they produced were consumed and disseminated in Europe and as their missionary work were supported. On the other hand, these individuals also aimed to accomplish the mission of enlightening East Asia by transferring science·ethics·values of modern times to East Asia, provoking the region's transformation. They not just turned China and Asia into objects as regions they lived in but also constructed a knowledge system based on the sporadic knowledge they reestablished about China.

      • KCI등재

        《东方杂誌》“近代文學批评”概念的建構 ― 兼論沈雁冰跟“文學研究會”相遇與其影响

        이보고 중국어문학연구회 2011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1

        . 오사 이후, <동방잡지(东方杂誌)>의 “근대문학비평”과 “모방과 창조의 조화” 개념의 전개는 <동방잡지> 자체의 개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동방잡지>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 내부에 있는 기타 잡지들의 개혁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 중, 션옌삥(沈雁冰)에 의한 <소설월보(小说月报)>의 개혁은 <동방잡지>의 적극적인 변화를 촉발하였다. 구체적으로1921년을 전후해서, 션옌삥과 문학연구회(文學研究會)의 조우는 오히려 <동방잡지>에게 자신 내부에 대한 반성을 촉발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들로 하여금 상무인서관 내부에서 성장한 근대적 지식인들을 개혁의 전면에 배치하도록 하게 하였다. 본 논문은 근대 문학의 제도화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의 개혁과 <동방잡지>의 근대 문학 이론 전개 사이에 존재했던 연동성을 먼저 확인하고, 이로 인해 확립된 문학관이 <동방잡지>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와 <동방잡지>의 개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본 논문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구문학의 와해와 신문학의 건립 과정 속에서 션옌삥과 후위즈(胡愈之)라는 구시대 영역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어떻게 전통의 속박을 돌파하여, 근대 문학의 개념을 설정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자연히, 이들이 설정하는 근대문학의 개념적 상상은 바로 인습적인 문학 표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써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문학 주장은 비록 이 당시 반(反)-전통을 주장했던 신문학 진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들이 상대주의적 시간관을 기초로, 호조론과 조화론적 관점을 문예 진화론적 시각과 결합하면서, 절대적 문학 판단 기준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절대적 문학 기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고전의 문학 법칙과 그 체계의 질서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대의 주류가 된 급진적 문학 주장, 특히 서구 가치에 대한 맹목적 추종들까지도 포함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에 대해 철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절대성과 상대성의 경계에 서 있었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회의의 근원에는 1차 세계 대전과 민국 혁명의 실패라는 역사적 사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구에 비해 동양의 상대적 가치를 옹호해온 <동방잡지>의 기존 입장에 새로운 주류 이데올로기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결합한 문예 이론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이를 대표하는 논리로서 귀납적 비평을 강조한 후위즈는 문학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과 판단을 중시하고, 기존의 권위적 문학 기준들을 부정하면서 근대 독자의 비평적 독서에 의해 텍스트를 재구성하는 것이 근대 문학 비평의 시작이라 보고 있다. 후위즈의 소위 “근대 문학 비평” 개념이나 미우펑린(缪凤林)의 “창작과 모방의 조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속박을 파괴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국 지식계의 보수적 경향성 내부에서 성장한 개혁 주체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었고, 이러한 개념들은 개혁의 기원 및 그 원동력과 관련해서도 오사의 급진적 문화주의자들과 차별되는, 또 다른 복선(複线)적 역사 인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 논문이 오사 시기 경쟁 진화론과 대비되는 호조 진화론의 맥 ...

      • KCI등재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 영화와 정치

        이광일(Lee, Kwang Il)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통일인문학 Vol.56 No.-

        이 글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를 이른바 ‘21세기 프롤레타리아트인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에 주목하면서 영화 <화차>와 <피에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이 <화차>와 <피에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신구중산층의 삶과 몰락을 배경으로 하면서 ‘형성중인 계급(a class-in the making)으로서의 프레카리아트'를 잘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정치의 빈곤 혹은 부재를 보여 주는 뛰어난 작품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글은 이 영화들의 결말과 관련하여 과연 이들의 구원, 즉 해방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시기에 이 작품들을 만든 감독들의 현실 정치적 발언을 환기시키며 고민해 보고자 한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politics in neo-liberal era through the Korean cinemas, <Helpless> and <Pieta>, the precariat narration. This article takes note of these films because on the one hand they excellently represent precariat's life and downgrade, on the other the lack or absence of politics in this era. This article also rethinks the issue of precariat's emancipation, evoking the words that the producers of these cinemas endorsed the liberal political party's candidate, who is responsible for the precariatization of peoples, in the 18th presidential election, 2012.

      • KCI등재후보

        아토피 질환의 ‘한국적' 탄생과 부상

        이정(Jung Lee) 한국과학기술학회 2010 과학기술학연구 Vol.10 No.1

        이 논문은 아토피 질환에 대한 ‘한국적'인 이해와 대응을 낳은 역사적 과정을 살펴본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특이면역성 질환 아토피는 외국의 경우에 ‘환경병'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토피는 ‘환경호르몬' 등의 위험요소들과 결부되며 대표적 환경병의 지위를 갖고 있다. 아토피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사전예방원칙과, 매체중심이 아닌 수용자중심의 환경오염 관리라는 전향적 원칙을 내세운 2008년의 환경보건법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논문은 이 규제과정에 있어서 대중의 지식적ㆍ정치적 활동의 역할을 살펴본다. ‘아토피 = 환경병'으로 아토피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토피 아이들을 둔 아토피 엄마들이다. 이들은 의학과 독성학 등 과학계의 성과는 물론 일본의 ‘아토피 아이, 지구의 아이'와 같은 환자조직의 활동경험과 성과를 이용, 대중적 호소력을 발휘한 ‘아토피 이론'을 제시했다. 이들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전용하는 한편, 한의학계, 생협, 민노당 등과도 지식ㆍ정치적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환경보건법이라는 성과를 내게 된다. 이 논문은 이 과정을 검토함에 있어 ‘대중'이라는 주체가 형성되어가는 역사성과 사회적 이슈 형성의 문화적 맥락에 관심을 돌린다. 이러한 연구는 위험규제나 정책연구 등에 역사적 역동성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 This paper explores the historical process that created a specific understanding of and responses to atopic dermatitis(AD) in Korea. AD hardly has a status of an environmental disease in other societies but it is a representative environmental disease in South Korea in connection with various environmental pollutants, most notably with endocrine disrupting chemicals. This understanding of AD as an environmental disease led to an unprecedented legislation of the Environmental Health Act of 2008, a broad environmental health law with the precautionary principle and the focus on human aspect of environmental problems. In line with the growing body of works that articulate the roles of the public and culture in regulatory process, this paper argues that both the understanding of and the regulatory responses to AD owe greatly to the knowledge and political practice of the public, especially that of the ‘Atopy moms'. Their knowledge practice that creatively appropriated scientific uncertainty regarding AD brought unexpected epistemological and political alliances, respectively with alternative medicine and with organic coop movement and an emergent political party and generated enough dynamics for the legislation of the EHA.

      • KCI등재

        《東方雜誌》“近代文學批評”槪念的建構

        李保高(Lee, Bo-go) 중국어문학연구회 2011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71

        오사 이후, 〈동방잡지(?方?誌)〉의 “근대문학비평”과 “모방과 창조의 조화” 개념의 전개는 〈동방잡지〉 자체의 개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은 〈동방잡지〉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무인서관(商?印??) 내부에 있는 기타 잡지들의 개혁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 중, 션옌삥(沈雁?)에 의한 〈소설월보(小?月?)〉의 개혁은 〈동방잡지〉의 적극적인 변화를 촉발하였다. 구체적으로1921년을 전후해서, 션옌삥과 문학연구회(文??究?)의 조우는 오히려 〈동방잡지〉에게 자신 내부에 대한 반성을 촉발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들로 하여금 상무인서관 내부에서 성장한 근대적 지식인들을 개혁의 전면에 배치하도록 하게 하였다. 본 논문은 근대 문학의 제도화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의 개혁과 〈동방잡지〉의 근대문학 이론 전개 사이에 존재했던 연동성을 먼저 확인하고, 이로 인해 확립된 문학관이 〈동방잡지〉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소설월보〉와 〈동방잡지〉의 개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본 논문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구문학의 와해와 신문학의 건립 과정 속에서 션옌삥과 후위즈(胡愈之)라는 구시대 영역 내부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어떻게 전통의 속박을 돌파하여, 근대 문학의 개념을 설정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자연히, 이들이 설정하는 근대문학의 개념적 상상은 바로 인습적인 문학 표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써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문학 주장은 비록 이 당시 반(反)-전통을 주장했던 신문학 진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들이 상대주의적 시간관을 기초로, 호조론과 조화론적 관점을 문예 진화론적 시각과 결합하면서, 절대적 문학 판단 기준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절대적 문학 기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고전의 문학 법칙과 그 체계의 질서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대의 주류가 된 급진적 문학 주장, 특히 서구 가치에 대한 맹목적 추종들까지도 포함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에 대해 철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들이 바로 절대성과 상대성의 경계에 서 있었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회의의 근원에는 1차 세계 대전과 민국혁명의 실패라는 역사적 사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구에 비해 동양의 상대적 가치를 옹호해온 〈동방잡지〉의 기존 입장에 새로운 주류 이데올로기인 진화론적 세계관을 결합한 문예 이론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이를 대표하는 논리로서 귀납적 비평을 강조한 후위즈는 문학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과 판단을 중시하고, 기존의 권위적 문학 기준들을 부정하면서 근대 독자의 비평적 독서에 의해 텍스트를 재구성하는 것이 근대 문학 비평의 시작이라 보고 있다. 후위즈의 소위 “근대 문학 비평” 개념이나 미우펑린(??林)의 “창작과 모방의 조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속박을 파괴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국 지식계의 보수적 경향성 내부에서 성장한 개혁 주체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었고, 이러한 개념들은 개혁의 기원 및 그 원동력과 관련해서도 오사의 급진적 문화주의자들과 차별되는, 또 다른 복선(??)적 역사 인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 논문이 오사 시기 경쟁 진화론과 대비되는 호조 진화론의 맥락을 추적하여, 그 안에서 형성되는 근대 문학 개념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오사 신문화의 극단적 반(反)전통 담론이 빠지기 쉬운 역사 서사에 대한 독점적 경향에 대해 새로운 대안적 인식 공간을 발굴해 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 KCI등재

        匈奴·鮮卑 銅鍑의 특징과 변천

        李 海 蓮(Lee, Haeryeon) 부산고고학회 2014 고고광장 Vol.14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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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銅鍑은 북방 유라시아 일대에 보이는 고대 북방 민족의 취사도구이다. 중국 연구자들에 의하면 중국의 북부에서 유목민이 중국의 청동 제작 기술을 도입하여 만든 특수한 용기가 동복이며, 흉노· 선비 등 유목민족의 취사도구로 중국 북방 지역에서 출현해서 서방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 글은 서한 시기 이후 몽골과 중국 지역에서 출토된 흉노와 선비 동복에 대하여 검토한 글이다. 동복은 대각의 유무, 귀의 형태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고, 동체 부의 문양 유무에 따라 세분할 수 있다. Ⅰ형은 대각이 있고 구연에 方形耳가 붙은 것, Ⅱ형은 대각이 있고 구연에 半圜耳가 붙은 것, Ⅲ 형은 대각이 없고 方形耳가 붙은 것, Ⅳ형은 대각이 없고 半圜耳가 붙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한 특징으로 나누어 보면 흉노 동복은 대각이 있고,「 山」자 모양의 方形耳 옆에 작은 장식이 있고, 구형에 가까운 심복에 弧弦紋이 장식되어 있고, 대각의 투창은 작은 삼각형인 것이 특징이다. 대각이 있고 구연에 半圜耳가 붙은 것은 예가 극히 드물지만 반구형의 동체에 두 줄의 돌대가 돌아간다. 대각이 없고 半圜耳가 붙은 것은 장동의 심복형 동체에 호선문이 장식되어 있는 것, 무문일 경우는 구연에 붙은 귀에 작은 장식이 붙는 특징이 있다. 선비 동복은 대각이 있고「 山」자 모양의 方形耳 옆에 작은 장식이 없거나 흔적이 있고, 장동의 심복에 무문이 특징이다. 대각의 투창은 삼각형 혹은 방형이다. 대각이 있고 구연에 半圜耳가 붙은 것은 內蒙古 扎賚諾爾古墓 출토품을 제외하면 모두 심복에 무문이다. 대각이 없고 半圜耳가 붙은 것은 심복에 동체 상부에 선문 장식이 있다. 즉 ⅠA, ⅡA, ⅢA, ⅣA는 흉노 동복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ⅠB, ⅡB, ⅢB, ⅣB, ⅣC는 선비 동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ronze caldron is the cooking utensil of ancient northern races shown in the whole area of the Northern Eurasia. According to Chinese researchers, bronze caldron is an utensil made in the northern part of China as the special container manufactured by nomads in the northeastern region of China by introducing bronze manufacturing technologies of China, and it is said that it had been spread to the West after its emergence in the northern region of China as the cooking utensil of nomads such as the Huns and Xianbei, etc. This paper is the writing reviewed on bronze caldrons of the Huns and Xianbei with bronze caldrons excavated after the era of the Western Han in the Mongolian and Chinese regions as its target. Bronze caldron can be divided into four types in accordance with the fact whether there is any leg-type mount or not and the form of ear, and it can be subdivided as per whether any pattern is existed in the main body part. It can be classified as follows: Type Ⅰis the bronze caldron which has its leg-type mount and whose square ears are attached to its mouth, type Ⅱ is the one which has its leg-type mount and whose hemispherical ears are attached to the mouth, type Ⅲ is the one which has no leg-type mount and has square ears attached, and type Ⅳ is the one which has no leg-type mount and has hemispherical ears attached. Therefore, if it is divided on the basis of these features, the bronze caldron of the Hun is characterized with its leg-type mount, small ornaments located near square ears in the shape of threepronged fork(山), and round linear pattern ornaments at its deep middle part similar to the globular shape, and through holes of leg-type mount which are shaped as small triangles. Although example of the bronze caldron which has leg-type mounts and hemispherical ears attached to its mouth is extremely rare, two slightly protruded lines on the surface of caldron are surrounded around hemispherically shaped main body. The bronze caldron which has no leg-type mount and to which hemispherical ears are attached is featured with round linear pattern ornaments in the long main body of caldron with deep middle part type, or small ornaments attached to the ear that was attached to its mouth in case of the bronze caldron with no pattern. Bronze caldron of the Xianbei is characterized with its leg-type mount, no small ornament at the side of square ear in the shape of three-pronged fork(山) or vestige of the ornament, and no pattern at the deep middle part of the long main body of caldron. There are triangle or square through holes at the through hole location of leg-type mount. Except for the article excavated at the old tomb in Zhalainuo er(Jalainur), Inner Mongolia that has leg-type mounts and hemispherical ears attached to the mouth, all of them have no pattern at the deep middle part. The bronze caldron which has no leg-type mount and hemispherical ears attached has linear pattern ornaments at the top of deep middle part. That is, it may be said that types ⅠA, ⅡA, ⅢA and ⅣA have the features of the Huns bronze caldron, and types ⅠB, ⅡB, ⅢB, ⅣB and ⅣC have the features of Xianbei bronze caldron.

      • KCI등재

        김준오 시론의 페르소나(persona) 문제 연구- 『詩論』을 중심으로

        이석 ( Seok Yi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4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2 No.3

        김준오는 자신의 시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동일성"이라는 이념적 가치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유들을 포함하는 일련의 변화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동일성"이 갖는 의미의 핵심 그 자체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문제는 "그의 "동일성의 시론"이 갖는 이 변화와 일관되게 유지된 관점(``동일성``)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이 문제에 적절하게 답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론의 중심에 있는 "동일성" 개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며, 더불어 김준오 시론의 핵심을 이루는 저작인 『시론』에 관한 읽기를 통해서 실제로 "동일성"이라는 개념이 그의 이론적 체계 전체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김준오가 『시론』 속에서 "동일성"이 하나의 "가치개념"으로 정의 내릴 때, 그의 의도는 "동일성"이 『시론』의 체계 속에서 일관된 이념적 성격으로 작동하기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론』속에서 "동일성"의 작동 방식은 그 개념의 토대가 부재한 채 작동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드러낸다. 시론의 체계를 위협하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의미하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력한 방식은 동일성의 시론을 비논리적 체계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의 시론을 추동시키면서 그 중핵에서 구성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비동일성"의 측면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비동일성이 지닌 적극적인 의미를 동시에 해명하는 것이다. 김준오의 "동일성" 시론이 지니는 핵심에 놓이는 하이데거적 의미의 존재론적 관점은 시에 관한 인식의 핵심에 그가 어떻게 시인이라는 "존재"를 위치시키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시론』 제1장 2절) 시인이라는 존재의 근원에서 그가 발견하는 의미의 중핵은 "목소리"가 지니는 근원성에 있다.(『시론』 제3장) 시를 담화의 한 양식으로 보는 저자의 입장은 "어조"를 화자의 목소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때의 "목소리"는 탈(persona)과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화자와 화자의 목소리, 그리고 탈 사이의 관계가 바로 그가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시론, 즉 "시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답을 이루는 것이다. 각각의 개념들이 서로 얽혀있는 가운데, 김준오의 시론이 구축하고자 했던 체계는 "동일성"의 일관성을 따르는, "차이"를 지양하는 운동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존재론적 물음에서 시작된 그의 시론의 근원적 토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탈"이 지니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적 성격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김준오의 『시론』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정확히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구분을 불명확하게 만드는 아포리아로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서, 탈의 개념을 해명하는 김준오의 비동일적 관점은 실패한 동일화의 흔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론의 체계를 구획하고자 했던 김준오의 관점이 "말하고 있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엄밀히 말해서 김준오의 시론이 내포하는(필자 강조)**** 이하 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근본적인 "비동일성"의 차원이 놓이는 자리도 그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김준오의 시론은 사유 체계가 작동하는 과정의 한 지점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율배반적인 "의미의 과잉"을 드러내며, 그의 시론이 지닌 현재적 가치는 거기에 있다. "동일성의 시론"이 갖는 실제적 의미는 "동일화의 시론"이며, 그것은 실패한 "동일화"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시론』의 내부에서 "페르소나"의 장(章)이 차지하는 의의는 오직 그 텍스트의 내적 의미 맥락에 대한 논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김준오의 "동일성에 대한 열망"이 지니는 현재적 가치는 "주체의 죽음"이나 "저자의 죽음"이 운위되는 담론 구조 속에서 그가 일관되게 유지시킨 대응방식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론』과는 별개로 현재적 맥락에서 쓰인 「轉移의 시론」이 도달한 지점이 갖는 의미는 ("동일성"의 또 다른 층위로서) "전이"라는 개념의 발견에 있다. 이 개념은 "은유적 차원"과 "환유적 차원"을 아우르며 현대시의 지배적 기법에 대한 설명 기제로서 등장한다. 요컨대 김준오는 자신의 인식적 변화와 함께 현대시의 개념적 변화로서, 동일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비동일성이라는 개념으로의 변이를 "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포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종적으로 그의 시론 전개가 갖는 전체적 의미가 "동일성 자체의 동일화 과정"이 아닌, "동일성의 무한한 차이화"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Kim Joon-oh undergoes a process of change that has made a series of reasons focusing on the ideological value concept of “identity” in the process of forming his own poetics. However, the point itself of the meaning “identity” remains continuously without a fundamental change. The problem is ““what does the organic relationship between the change in his “poetics of identity” and the consistently maintained point of view mean indeed?” “To answer these questions adequately, an explanation for the concept of “identity” in the center of his poetics is needed. In addition, through reading about the book Poetics, the process to determine how the concept of “identity” actually works in his entire theoretical framework is needed, too. When the “identity” is defined as a “value concept” in his Poetics, it is possible to see that Kim Joon-oh”s intention was to explore the nature of work in a coherent ideological system of the “identity.” But in fact, the works of the “identity” in Poetics reveals antinomic situation in which the basis of the concept is absent. The potent way to reach what it means to take this seemingly contradictory situation that threatens the system of his poetics is not to reduce the poetics of identity as an illogical system, but to discover the aspects of “non-identity” that are fundamentally working in its core through the poetics of identity, and to explain the positive meaning the “non-identity” at the same time. Ontological perspective of Heideggerian meaning that is situated in the core of Kim Joon-oh”s poetics of “identity” will allow you to determine how he positions the being of the poet in the core of the recognition about the poetry.(Poetics, Chapter 1 v. 2) And the core of the meaning which he found in the ground of the being of the poet is found in the origin of the “voice.”(Poetics, Chapter 3) The author”s position as a form of discourse is that a tone is the speaker”s voice. And “voice” in this case is interpreted to be the same as persona. The relationship among the speaker, the voice of the speaker, and persona forms the poetics that he wants to materialize, that is, an answer to the question of “What is poetry?” Each of the concepts are related to each other and the systems that the poetics of Kim Joon-oh want to build seem to be comprised of exercises that avoid the “difference” following the consistency of “identity.” However, in order to access the underlying foundation of his poetics which is begun from the ontological question, the original antinomic nature of “persona” has to be researched. The way it actually works in Poetics of Kim Joon-oh is represented as aporia that indefinitely makes the distinction between “identity” and “non-identity.” Kim Joon-oh”s non-identical perspectives to explain the concept of persona is a trace of failed identification. At this point, the point of view of Kim Joon-oh who just wanted to partition the system of poetics causes a gap between “what he is saying” and “what he wants to say.” Strictly speaking, the fundamental dimension of the “non-identity” which the poetics of Kim Joon-oh implies may also be referred as that place. The poetics of Kim Joon-oh means the course that the system of thinking works. It reveals the excess of the antinomic meaning and allows you to know the current value his poetics have. The practical implications of this “poetics of identity” are “poetics of identification” and it implies a trace of failed “identification.”In short, the significance of the “persona” in Poetics can only be found from the discussion in the context of the inner meaning of the text. The current value of Kim Joon-oh”s “desire for identity” is in the response he consistently maintained in the discourse structure which was described as “the death of the subject” and “the death of author.”

      • 덕유산국립공원 설치류의 개체군 밀도 비교 연구1

        이화진,양두하,정승준,정대호,김선두,김정진,권진만,이정일 한국환경생태학회 2011 한국환경생태학회 학술대회지 Vol.21 No.2

        서 론 산림생태계 내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그들이 위치한 먹이 사슬 내에서 각각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Patton, 1992). 하지만 그러한 생태계는 인간에 의해 줄어 들고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서식지의 파괴는 생 물 다양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Wilcove et al., 1986; Webb and Shine, 1997). 또한 야생동물들의 지속적인 서식을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유동물 중 저차소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설치류의 지속적인 존 재의 필요성과 더불어 서식에 관한 기초자료의 수집이 불가 피하다(정과 이, 2004). 소형설치류는 산림생태계 내에서 저차소비자와 고차소 비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종으로서, 생활 사가 매우 짧고 서식환경에 따라 쉽게 증가하거나 감소하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먹이사슬에서 상위에 위치한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며 또한 다양한 식물의 종자를 산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Marser et al., 1978; Forget and Milleron, 1991). 지금까지 설치류는 다양한 서식환경과의 관계를 알아보 기 위한 연구대상으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원, 1967; Kawamichi, 1996). 특히 수계주변 소형 포유류의 서식지 선호도 비교(정과 이, 2004), 국립공원에서의 설치류의 서식 밀도(조, 2008), 설치류와 하층식생에 관한 연구(임과 이, 2001), 산림내에서 설치류의 서식지 분석(Menzel et al., 1999), 서식환경에 따른 개체군의 분산(Saitoh and Nakatsu, 1993) 등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본 연구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각 조사구에 서식하고 있는 설치류의 서식밀도를 조사하고, 유형별 개체군의 군집특성, 설치류를 먹이자원으로 하는 상위 포식자에 대한 먹이원 적정지수를 산출하여 중·대형 포유동물의 서식 및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먹이 공급원인 소형설치류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실시하였다. 연구내용 및 방법 1. 조사지 선정 본 연구대상지인 덕유산국립공원은 전형적인 내륙산악 지형으로서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과 함양군의 2도 4군에 걸쳐 나누어져 있으며, 총 면적이 231.650㎢에 달한다. 조사지 선정은 덕유산을 대상으로 ArcGIS 분석기법을 사용하여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환경요건이 높은지역 내에 야생동물의 먹이원으로 잠재성이 있는 소형포유류를 다루 는 최소한의 조사면적인 1개의 조사구 10ha를 설정하고, 면적대비 10%인 0.5ha의 고정조사구 2곳을 설치하였다. 2. 조사 기간 및 포획방법 조사기간은 2010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덕유산국 립공원 일원 3개 지역 6개 방형구에서 채집하였다. 각 조사 지역 내 10m 간격으로 생포트랩(Sherman's trap, Sherman Co. US)을 설치하였으며, 지형 여건상 조사구를 설치하기 힘든 경우는 조사구 크기를 지형 여건에 맞게 조정하여 실 시하였다. 포획은 개체의 특성을 고려하여 야간에 활동성이 높은 설치류의 생태를 고려하여 일몰 전에 생포트랩을 설치하고 일출 전 트랩을 회수하였다. 3. 분석항목 분석방법에는 서식밀도분석과 Petersen 방법으로 개체군 크기를 산정하였다. 또한 신남식 등(2009)의 지수산출방법 에 의거하여 서식밀도를 추가하여 일반적인 산술평균법 (arithmetic mean)을 사용하여 먹이원적정지수를 산출하였다. 결과 및 고찰 1. 조사지별 포획결과 덕유산국립공원 3개 지역 6개 방형구에서 포획한 설치류 는 총 360개체로 그중 비단털들쥐가 242개체(67.22%)가 포획되었으며, 흰넓적다리붉은쥐 70개체(19.44%) , 등줄쥐 48개체(13.33%)순으로 포획되었다. 가장 많은 개체수가 포 획된 지역은 구천 site2로 98개체, 가장 작은 개체수가 포획 된 지역은 상조 site2로 16개체가 포획되었다(Table 1). 다른 지역에 비해 구천동 지역에서 비단털들쥐가 많이 포획되었다. 구천동지역은 낙엽활엽수림이 우점한 혼효림 의 환경과 더불어 인위적인 간섭이 비교적 적은 곳으로 보 이며, 이러한 결과는 설치류의 번식과 먹이공급에 좋은 서 식환경을 제공하는 요소(나뭇가지, 돌무더기, 굵은 나무 잔 해)(Wang et al., 2002)와 비단털쥐아과가 최근 새롭게 재조 성된 산림에서의 서식을 선호하지 않는 것(Mills, 1995)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와 반대로 가장 작은 개체수가 포획된 상조 지역은 과 거 민가가 있었으며, 개간한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조 사지역은 해발 550m의 계단식 묵정논과 계곡 등이 형성된 사면부가 있고, 잎갈나무 조림지가 우점하고 있다. 침엽수 인 잎갈나무 군락과 농로를 따라 사람의 왕래가 잦은 농경 지역에서는 하층식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낙엽층의 발 달이 아주 빈약하기 때문에 이는 설치류의 서식제한요인(신 등, 2009)으로 작용되었다고 판단된다. 2. 월별에 따른 조사지별 개체수 분석 덕유산국립공원 3개 조사지역에서 5월에서 12월까지의 월별 개체수를 보면 5월부터 월별로 증가를 보이다 7월에 가장 높은 개체수를 나타내었고, 8월부터 12월까지 점차 개체수의 감소를 보였다(Fig. 2). 8월의 급격한 개체수의 감소는 7~8월의 강수량 증가로 굴과 보금자리가 유실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9월 이후 보여주는 꾸준한 감소는 이 등 (2009)의 설치류의 행동패턴 연 구자료에서 보여지는 겨울철의 낮은 행동권 결과와 먹이부 족 및 외부기온 저하에 대비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일중휴면 시간을 증가시키기 때문인(윤과 한, 2006)것으로 판단된다. 3. 개체군 밀도 분석 1)지역별 소형포유류 서식밀도 각 지역별 설치류의 0.5ha당 서식밀도를 보면 구천 site2, site1이 14, 13.6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고, 벌한마 을 site2, site1이 각각 8.7, 7.7, 상조마을 site1, site2에서 5.1, 2.3 순으로 나타났다. 구천동 지역은 산림의 수계주변 과 인접해 있고 낙엽활엽수가 우점하여 있으며, 인위적인 간섭의 영향이 가장 미치지 않은 지역으로 다른 지역보다 샘플면적에 비례하여 많은 개체수가 포획되었다(Table 2). 2)개체군 크기 포획 재포획법은 개체군을 평가하는 모델로 학술연구에 많이 쓰인다. Petersen의 방법에 따라 밀도 산출방법을 사용 한 지역별 개체군의 크기를 보면 벌한 site1에서 16개체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으며, 그 다음으로 구천 site1에 서 12개체, site2에서 8.8개체, 벌한마을 site2에서 6.4개체 로 확인되었고, 상조마을 site1에서 1.5개체, site2에서 1개 체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Table 3). 중·대형 포유류의 먹이 원이 되는 풍부한 설치류 밀도와 분포는 중·대형 포유류를 위한 서식지 결정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서 반영될 것이다(신 등, 2009) 4. 먹이원 적정지수(FSI) 덕유산국립공원의 먹이자원 비교를 위하여 구천, 상조, 벌한의 소형포유류의 군집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분류하였 고 각각에 대한 적정지수(SI)를 작성하였으며, 작성방법에 있어 가장 높은 다양도, 균등도, 풍부도, 서식밀도에 대한 수치를 1로 정하고 나머지 지역은 상대치로서 계산하였다 (Table 4). 각 지역별로 먹이원 적정지수를 산출한 결과, 벌한 site2 가 0.81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저차소비자가 되 는 설치류의 풍부함으로 인하여 이를 먹이자원으로 활용하 는 중·대형 포유류의 서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쉽게 먹이자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설치류의 높은 다양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식지 다양성의 유지와 더불어 인공으로 조림되지 않은 산림의 식생을 유지하면 야생동물의 풍부도와 다양도는 증가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설치류의 서식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이들 설치류에 의존하여 서식하게 하는 다른 야생동물 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Cockle and Richardson, 2003). 나아가 계절별로 설치류의 개체군 변이를 분석하고, 강수 량, 기온, 지온, 토양수분, 증발량 등 기상학적인 요인과 병 행해서 조사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 한 장기적으로 이를 포식하는 피식자의 복원연구에도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합리적인 복원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용문헌 신남식, 윤희정, 유병호, 양병국, 권수완, 주승진, 용환율, 어경연. 2009. 토종여우(Vulpes vulpes)의 인공증식 및 자연생태계 복 원기술 개발. 환경부 원병휘. 1967. 한국동식물도감 제 7권(포유류). 문교부. 서울. 659 윤명희, 한창욱. 2006. 등줄쥐(Apodemus agrarius)의 일중휴면에 관한 연구. Journal of Life Science. 16(4): 618-625 이은재, 손승훈, 박성진, 이우신, 임신재. 2009. 국내 산림생태계에서 우점하고 있는 설치류 3종의 서식환경에 따른 행동 패턴 비교. 한국환경생태학회. 19(1) : 59-61 임신재, 이우신. 2001. 지리산 지역에서 산림하층의 서식환경과 소 형포유류와의 관계. 한국임학회지. 90: 236-241 정철운, 이정일. 2004. 형산강 수계 주변 소형 포유류의 서식지 선호 도 비교. 한국생태학회지. 27 : 133-139 조재운. 2008. 속리산 국립공원에서의 설치류 서식밀도. 충북대학 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Caryl L. E., Daniel W. S., John W. W., James P. G. 2001. Monitoring plant and animal populations. Blackwell Science. 233-234. Cockle, K.L., Richardson, J.S., 2003. Do riparian buffer strips mitigate the impacts of clearcutting on small mammals?. Biological Conservation 113: 133-140. Menzel M. A., Ford W. M., Laerm J., Krishon D. 1999. Forest to wildlife opening : habitat gradient analysis among small mammals in the southern Appalachians. Forest Ecology and Management. 114: 227-232 Mills L. S. 1995. Edge effect and isolation: Red-backed voles on forest remnants. Conserv. Biol. 9: 395-403 Patton D. R. 1992, Wildlife habitat relationships in forested eco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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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巴蜀文人之縱橫風格考察

        李?勳(Lee Ki-hoon) 중국어문학연구회 2007 중국어문학논집 Vol.0 No.47

        巴蜀지역은 예부터 “하늘의 창고(天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또한 수많은 영재와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예를 들면 漢代에는 저명한 辭賦家 司馬相如와 揚雄이 있고, 唐代에는 시인 陳子昻과 李白, 宋代에는 문장가 蘇洵, 蘇軾 부자 등 중국문학사상 높이 평가되는 문인들이 모두 파촉지역 출신이다. 이렇게 심원한 문화풍조에 대해 당연히 학자들은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그에 대한 연구 또한 적지 않다. 필자 역시 “蘇軾散文”이라는 대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파촉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소식의 문장 풍격을 파악하기 위해 역대 문인들의 평론 내용을 살펴보던 중 적지 않은 문인들이 소씨 부자의 문장이 “戰國縱橫風”을 갖고 있다거나 “《戰國策》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 과정에서 “전국종횡풍”이라는 특징이 파촉의 문학풍토 및 출신문인들과 연관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였는데, 마침 종횡가 연구학자인 熊憲光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즉 파촉의 문학종사인 사마상여를 비롯하여 위에 거론한 역대 문인들이 각기 다른 정도로 종횡사상을 가지고 작품 속에서 종횡문풍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공통점인 파촉이라는 지역과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먼저 파촉지역의 지리, 지형상의 외부조건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편벽된 지형특징이 결국 현지인들의 실리를 추구하고(嗜利), 호탕하며(好蕩), 풍자와 비방하기를 좋아하고 권세를 흠모하는(好文刺譏, 貴慕權勢) 등의 특수한 인성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종횡기질과 잘 부합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폐쇄적인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사상의 수용에 있어 중원에 비해 더욱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특징이 바로 유가에서 극력 배척하는 종횡문풍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파촉지역의 문화풍토라는 내부조건을 살펴본 결과 한대에 사마상여라는 문학종사가 나온 이후 파촉문인의 심리에는 하나의 문학적 전범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사마상여의 종횡문풍을 후대 문인들이 자연스럽게 섭취하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3장에서는 역대 파촉출신 문인들의 각기 다른 종횡문풍을 살펴보았다. 시대에 따라 문체에 따라 각기 받아들인 경위와 내용은 다르지만 파촉이라는 지역을 매개로 하여 종횡풍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속담에 지방의 풍토가 지방의 사람을 기른다(一方水土養一方人)라는 말이 있다. 파촉의 독특한 지역환경은 파촉인들에게 종횡가의 성격과 문풍을 부여하였다. 사마상여, 양웅, 진자앙, 이백, 소순, 소식 등 문인들은 파촉문화의 집체적인 무의식 속에서 종횡이라는 문화요소를 직접 체득하였고 자연히 그 작품 속에 파촉인의 기세호탕하고 종횡으로 넘나드는 듯한 문화적 개성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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