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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기 김활란의 여권의식과 여성교육론

        김성은(Kim Sung-Eun) 부산경남사학회 2011 역사와 경계 Vol.79 No.-

        김활란은 여권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교육권과 재산권 부재에서 그원인을 찾았다. 여권향상을 위해 김활란이 할 수 있는 일은 여성교육이었다. 김활란의 남녀관은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반자이자 동업자, 동등한 협력관계라고 보았다. 김활란은 가정에서 남녀동등은 주부의 역할과 기여를 인정하고 여성이 직업과 경제력을 가지고 결혼비용을 분담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직업은 남녀동등한 가정을 준비하는 단계였다. 나아가 김활란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얽매이지 말고 사회에 진출하여 이제까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직업들에 과감히 도전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사회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줌으로써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활란은 특히 가정부인이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가사, 직업, 부업을 하는 생산자로서 여성의 위상 정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주부가 사회의식을 가지고 가사의 합리화를 통해 확보한 시간과 노력을 활용하여 사회봉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활란은 여권운동의 첫걸음이 문맹퇴치운동이며 여성일반의 지위향상을 위해서는 여성의 고등교육뿐 아니라 보통교육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의 문맹타파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신여성 주부가 사회봉사로써 농촌계봉과 문맹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맹퇴치는 단순히 한글보급뿐 아니라 상식과 지식계발, 사회의식의 고취를 포함한 것이었다. 김활란은 신여성들이 지도자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문맹퇴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교육담당자로서 김활란은 여성고등교육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 현모양처 교육 논란, 실생활과 괴리된 교육내용 학생풍기문제와 사치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에 대응하며 여성교육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미국유학에도 불구하고 김활란은 한국인으로서 조선적인 실생활교육을 지향하며 조선화된 이화, 조선의 이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국인의 힘으로 재단법인 설립, 재정 자립, 학교 경영을 하길 원했다. 또한 여자종합대학교 설립을 목표로 기존의 문과, 음악과, 가사과, 보육과 이외에 상과, 농촌사업과, 사회사업과, 의과, 체육과의 학과 증설을 계획했다. 이 학과들은 당시 우리 민족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분야인 동시에 여성의 직업과 사회활동, 봉사활동에 도움이 되는 분야였다. 김활란은 여성고등교육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문맹퇴치와 농촌계몽, 보통교육의 대중화 역시 강조했다. 여성고등교육에 있어서도 조선의 사회현실과 실생활을 고려하여 실제 가정생활과 사회운동에 필요한 교육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This is about Hellen Kim's consciousness of women's rights and view of Korean women's education. Hellen Kim was one of the greatest educator in modern Korea. She had dedicated herself to Korean women's education and elevation. She had maintained equal rights for both sexes and equality of both sexes. So She had thought Korean women of being have rights for education and profession. She had encouraged Korean women to have profession and had revaluated housewives' housework. She had thought elementary education need to spread and higher education need to grow for elevating Korean women's status. So she maintained educated Korean women have to sense of duty to serve her sisterhood to teach Korean literacy and common sense. She had tried to solve probloms of women's education like good wife and wise mother education or Korean practical lif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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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0년대 김활란의 민족문화 인식

        김성은 ( Kim Sung-eun ) 한국여성사학회 2017 여성과 역사 Vol.0 No.26

        김활란은 민족의식에 입각해 국제교류와 근대화를 도모하며, 한글과 민족문화를 활용하여 문맹퇴치, 농촌계몽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당대 서구화 물결 속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천하고자 했다. 이에는 당시 국내외의 민족주의적 신문화론 또는 문화운동론의 분위기와 영향도 있었다. 일제식민지시기 여성 지식인 가운데 문화운동론과 전통문화의식, 민족정신에 대한 강조는 특별히 김활란에게서 보다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며, 김활란의 현실인식과 시대인식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일제식민지시기 김활란의 의식세계의 중심축은 민족의 근대화였고, 그것은 민족의 독립을 위한 준비단계였다. 김활란이 지향했던 근대화는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방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와 장점을 적극 활용한 전통과 근대의 조화를 의미했다. Helen Kim (Kim Hwallan) pursued international exchange and Korean modernization on the basis of national consciousness. She proposed to utilize Hangeul (Korean alphabet) and national cultural heritage for Korean rural enlightenment and campaign against illiteracy. Amid the wave of westernization, she believed that what was most Korean was also what was most global, and tried to put this thought into practice.. She was influenced by the rise of nationalist new cultural movements. Among Korean women intellectual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he is distinct in her emphasis on cultural movements,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culture, and nationalist consciousness. The central axis of her consciousness was national modernization as preparation for Korean independence. The modernization she sought was not an unconditional imitation of the West, but the practical use of national cultural heritage and harmony between tradition and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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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초의 추출조건에 따른 Linarin 함량과 In Vitro 생리활성 변화

        김양지(Yang-Ji Kim), 김성은(Seong-Eun Kim), 이학성(Hak Sung Lee), 홍수영(Su-Young Hong), 김성은(Sung-Eun Kim), 김영준(Young Jun Kim), 이진협(Jin Hyup Lee), 박성진(Sung Jin Park), 김준호(Jun Ho Kim), 박윤제(Youn-Je Park), 김현규(Hyun-Kyu Kim) 한국식품영양과학회 2016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Vol.45 No.10

        본 연구에서는 구절초를 대상으로 물과 에탄올을 이용하여 확보한 각각의 추출물에 대하여 추출 수율, 폴리페놀 함량, 플라보노이드 함량, linarin 함량, ABTS 라디칼 소거능과 DPPH 라디칼 소거능, α-glucosidase 저해 활성, lipase 저해 활성을 측정하였다. 구절초는 70°C, 50% 주정 추출조건에서 추출 수율과 총플라보노이드 함량, linarin 함량, ABTS 라디칼 소거능과 DPPH 라디칼 소거능, α-glucosidase 저해 활성, lipase 저해 활성이 가장 높았다. 또한, linarin 함량이 구절초 추출물의 생리활성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구절초 추출물은 linarin 함량이 증가함에 따라 항산화, 탄수화물 및 지방 흡수 지연 활성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구절초의 추출조건에 따른 생리활성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구절초를 이용한 건강기능식품의 소재 등으로 이용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This study was designed to determine optimal extraction conditions of Chrysanthemum zawadskii (CZ) with high yield of bioactive compounds (linarin, polyphenols, and flavonoids) and improved in vitro activities. Ethanol extracts were examined at different concentrations (0, 30, 50, 70, and 95%) and temperatures (50 and 70°C). The recommended extraction conditions were 50% ethanol at 70°C for 4 h, which gave the highest yield of linarin, polyphenols, and flavonoids. This extract appeared to have the greatest ABTS and DPPH radical scavenging activities (87.81% and 51.42% at 500 μg/mL, respectively) and α-glucosidase (74.59%) and pancreatic lipase inhibitory activities (90.44%). As contents of linarin increased, antioxidative activity, inhibitory effects of carbohydrates and lipid absorption of CZ extracts increased as well. From these results, CZ extracts can be used in functional food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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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ellent and Insecticidal Activity of Sequential Extracting Fractions Obtained from BPH-Resistant Rice Varieties against Brown Planthopper (Nilaparvata lugens)

        Sung Eun Kim(김성은), Young Doo Kim(김영두), Bo Kyoung Kim(김보경), Jae Kwon Ko(고재권), Jae Chul Chun(전재철) 한국농약과학회 2006 농약과학회지 Vol.10 No.2

        벼멸구 저항성벼 품종인 장성벼와 화청벼로부터 생육시기(유묘기, 분얼기, 출수기, 등숙기)별로 추출 용액 극성에 따라 얻은 추출분획물(hexane, ethyl ether, ethyl acetate, butanol 및 water)에 대하여 벼멸구 살충 및 기피 활성을 벼멸구 감수성벼 품종인 동진벼를 검정 대상식물로서 조사하였다. 장성벼와 화청벼로부터 얻은 추출분획물 대부분은 12시간 처리 기간 중 벼멸구 살충 활성을 보이지 않았으나, ethyl ether 및 hexane 추출분획물은 24시간 및 48시간 처리에서 약 10~30%의 벼멸구 살충 활성을 나타내었다. 한편 장성벼의 ethyl ether 추출분획물은 효과적인 벼멸구 기피 활성을 보였지만, 화청벼로부터 얻은 추출분획물은 이러한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장성벼 또는 화청벼의 여러 생육 단계별로 얻은 추출분획물 사이에는 벼멸구에 대한 기피 활성 효과에 있어 뚜렷한 관련성을 찾을 수 없었다. Ethyl ether 분획의 벼멸구에 대한 기피 활성은 처리 후 30시간까지 증가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감소되는 경향이었다. 더욱이 장성벼 ethyl ether 추출분획물에 대한 flash column chromatography의 chloroform:methanol (9:1, v/v) 용출에 의한 8개의 2차 분획물(sF1~sF8) 중 최초의 분획물(sF1)은 벼멸구에 대해서 비교적 높은 기피 활성을 나타내었다. 이상의 결과는 장성벼 ethyl ether 추출분획물은 벼멸구에 대한 살충 활성 보다는 오히려 기피 활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ethyl ether 추출분획물의 2차 분획물들에 대한 검정 결과 최초의 2차 분획물(sF1) 중에는 기피 활성에 관여하는 물질의 존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Rice plant extracts of brown planthopper (BPH) resistant rice varieties, Jangseongbyeo (JSB) and Hwacheongbyeo (HCB) at different growth stages (seedling, tillering, heading and ripening) were sequentially fractioned using hexane, ethyl ether, ethyl acetate, butanol, and distilled water. The extracts were applied to BPH susceptible rice variety, Dongjinbyeo (DJB), to investigate the insecticidal and repellent effects against BPH. BPH insecticidal effects were not clearly observed with almost all of the extract fractions obtained from both JSB and HCB varieties for 12 h, whereas the ethyl ether and hexane extract fractions showed about 10 to 30% of BPH mortality in 24 to 48 h of application periods. An effective BPH repellent activity was found with the applications of ethyl ether extract fractions obtained from JSB variety. The extract fractions obtained from HCB variety did not show any different repellence among the various fractions. The BPH repellent effects of the extract fractions obtained at different growth stages of either JSB or HCB varieties did not show any correlations. The effect of ethyl ether fraction on BPH repellent was continually increased by 30 h after treatment and thereafter decreased. In addition, the first sub-fraction separated by a flash column chromatography eluted with chloroform:methanol (9:1, v/v) from the BPH effective ethyl ether fraction in JSB variety might be meaningful to repel BPH from BPH susceptible target rice plants. The results indicated that the ethyl ether fraction obtained from JSB was higher in repellent activity than in insecticidal activity, and suggesting that there might be specific substance(s) in the first sub-fraction (sF1) of the ethyl ether fraction in JSB that could provide repellent activity against B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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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역BRT시설의 재원분담기준 개발

        김성은(Kim Sung-Eun), 김시곤(Kim Si-Gon) 대한토목학회 2012 대한토목학회논문집 D Vol.32 No.1D

        수도권의 기능 및 범위 확대로 인하여 광역교통수요가 급증하였고, 이러한 광역교통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광역대중교통 보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재원을 필요로 히는 광역교통시설의 설치 및 운영·관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제도의 부족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수도권 광역 BRT, 광역 환승시설 등의 효율적인 설치 및 운영·관리를 위한 재원분담 모델을 개발하여 재원분담기준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이에 국내외 사례를 기반으로 광역 BRT 시설의 주요 구성요소인 광역 BRT 노선, 광역 환승시설 그리고 공영차고지의 재원분담 모형을 정립하고 정립된 재원분담모형을 적용하여 대안별 비교분석을 수행하였다. Metropolitan transport demand has increased in Seoul Metropolitan Area (SMA) due to the expansion of its role and land use. Various public transport modes have to be supplied to relieve road congestions for the convenience of users. During the constructions of theses infrastructures some conflicts between the central government and local governments arise for sharing financial resources. In this study finance sharing criteria is developed for the metropolitan BRT, transfer facility, and public garages. Finally, a case study has been done for the metropolitan BRT between Cheongra and Hwagok area in S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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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제타 홀의 조선여의사 양성

        김성은(Kim Sung-Eun)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27 No.-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90년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 선교사 의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녀는 보구여관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여성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 인력의 부족을 느끼고 몇 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의학훈련반을 시작했다. 이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이 김점동(박에스더)으로 의사가 되고자 결심하고 홀의 미국 귀국시 동행하여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0년 조선여성 최초의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M.D.)가 되었다. 조선여의사의 탄생은 박에스더 개인의 의지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박에스더의 뜻을 적극 지지ㆍ후원하고 길을 인도해준 로제타 홀과 박유산(박에스더의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제타 홀은 선교지 조선에서 의사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의료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여성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장로회 병원 의료 인력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에서 새로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는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이 남대문 장로회 병원 근처에 세워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선교회의 결정으로 결국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은 동대문 볼드윈진료소 자리에 건설되었다. 이후 로제타 홀은 1913년 메타 하워드와 함께 평양 광혜여원에 여성의학반을 설치하고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소녀들에게 기초교육과 실습기간을 가지도록 하는 한편, 미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사회에 여자의학교 설립을 타진했다. 당시 여성의학반에 교수진이 부족해 학생들에 대한 의학강의가 일본인 의사들의 자원봉사에 의해 진행되었고, 여성해외선교사회에서 여성의학반 운영을 위한 예산이 아직 배정이 되지 않아 여성의학반을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재정과 인력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로제타 홀은 여성의학반의 원활한운영을 위해 장로회측에 재정적 지원과 여의사 파견을 요청하며 협조를 구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조선여의사 양성이 여의치 않게 되자, 로제타 홀은 조선총독부의원의 일본인 원장을 찾아가 부속의학강습소를 남녀공학으로 해 줄 것을 건의하는 동시에 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조선여학생의 청강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로제타 홀의 남녀공학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됨)에서 조선여학생들의 청강이 가능하게 되었다. 1918년 이 여학생들 가운데 3명이 공부를 마치고 의사 면허를 획득함으로써 국내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의사가 된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 1910년 박에스더 사후 19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선여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6년까지 경성의학전문학교 청강생으로 여러 명의 조선여의사가 배출되었으나 1925년부터는 청강생 입학이 금지되면서 국내 조선여의사 양성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로제타 홀은 선교회와 총독부를 대상으로 조선여의사 양성을 위해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조선여학생과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의학교 진학과 의사되기를 권하며 설득작업을 벌였고 재정적인 지원(장학금)까지도 약속하며 조선여의사 양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여의사 양성을 주장하고 설득했던 로제타 홀의 논리는 첫째 의사가 모성과 여성에 부합되는 직업임을 강조하고, 둘째 조선민족과 조선여성을 위한 사명감에 호소하고, 셋째 산과가 세계사적으로도 고대로부터 여성 본연의 일이었고 의사는 신이 여성에게 주신 일이며 조선 최초의 서양의학전공 의사 역시 여성인 박에스더였다고 강조하면서 의학의 역사를 들어 여의사 양성을 옹호했다. 1925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조선여학생의 청강이 금지됨으로써 국내 조선여의사 양성이 벽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로제타 홀은 이미 1923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길정희를 찾아가 조선여자의학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던 때부터 조선여자의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구체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제타 홀의 여성의학교육기관 설립 의지는 조선 여의사들과 조선 유지들, 미북감리회 선교회의 지지에 힘입어 1928년 조선여자의 학강습소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Rosetta Sherwood Hall was sent as a missionary doctor of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Episcopal Church in Korea in 1890. She worked at Po Ku Nyo Koan(or Salvation for All Women Hospital or Caring for and Saving Women's Hospital) and practiced medical service. At that time, she felt lack of medical member and started medical training class composed of a few girls. One of them was Kim Jum dong(Esther Pak). She made up her mind to be a doctor and went to America to study medical science with Hall when Hall returned America after her husband's death. I think Hall was contributed to First Medical Doctor, Esther Pak in Korea. Rosetta Sherwood Hall her colleague Mary Cutler thought it is necessary to unite with Presbyterian Church's Hospital and its medical member. So new hospital of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Episcopal Church should build near Presbyterian Church's Hospital at Namdaemoon. But her proposal was denied. In 1913, Rosetta Sherwood Hall started woman's medical class in Woman's Dispensary of Extended Grace with Mary Cutler. But woman's medical class could not manage well because of shortage of finance and doctor. She asked support to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Episcopal Church and Presbyterian Church's mission board. But it did not work. So she met president of Government Hospital. She emphasized necessity of Korea woman physician and proposed coeducation of Medical Institute of Government Hospital. He denied her proposal but permitted entrance of Korean girls as special(irregular) students at Medical Institute of Government Hospital(It became Gyungsung Medical College in 1916.) At last, first three qualified women physicians educated in Korea were born in 1918. They got medical licenses from Government. After that a few women graduated Gyungsung Medical College as special(irregular) students and became physicians. But girls was not permitted as special(irregular) students from 1925. Korean woman physician training in Korea, Rosetta Sherwood Hall's vision seemed to be faced with crisis of stop. Rosetta Sherwood Hall went to Japan to meet Gil Jung Hee, a student of Tokyo Woman's Medical College in 1923 and proposed working together for woman physician training and establishment of Woman's Medical College in Korea. Finally Woman's Medial Institute, first medical school for woman in Korea was established by Rosetta Sherwood Hall with support of Korean women physicians and Korean influentia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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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일본 식자층과 신문 미디어의 계층성 연구

        김성은(金成恩),(Kim, Sung-Eun) 일본어문학회 2011 일본어문학 Vol.5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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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稿は近代日本の識字普及による読書環境の変化とキリスト教の受容階層を分析し、キリスト教新聞の読者層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る。その結果、新聞という文字メディアは非識字層に直接届くことができず、識字層や準識字層を媒介にして音声でしか伝わらないという限界を持ってい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特に『七一雑報』は漢字カタカナ交じり文で書かれ、準識字層を読者として取り込むに至らず、その読者層は識字層に限られたものであった。さらに、明治初期キリスト教を受け入れた階層が士族、青年、男性、中産階層であることに伴い、キリスト教新聞である『七一雑報』の読者層は創刊号の意図とは離れ、識字層が読者の多数を占める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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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조선의 선교의료와 번역 -일본어『실용해부학(實用解剖學)』에서 한국어 『해부학』으로-

        김성은 ( Kim Sung Eun ) 한국일본어교육학회 2017 日本語敎育 Vol.0 No.79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process of modern knowledge of Western medicine being accepted in Joseon through the translation of anatomy textbooks. The study first analyzed the text of 『實用解剖學』by Imada Tsukanu and found the two following characteristics: the table of contents and composition based on the German anatomical knowledge and practicality through anatomical charts. The study then examined how the orientation toward the acceptance of German medicine and practical medical knowledge found in Imada`s 『實用解剖學』were embraced in Joseon after its translation into Korean. The translation of 『해부학』in the line of missionary medicine had the specific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the table of contents in『해부학』 translated by Kim Pil Soon matched that of Imada`s 『實用解剖學』. The agreement of between the two books in the table of contents means that the nature of German anatomy, which offers grounds for the anthropological distinction of different races with a focus on osteology, was accepted in Joseon, as well. Secondly, Kim Pil Soon started as an assistant to a foreign doctor, became a medical student, and translated anatomy textbooks for beginner students like him and doctors in the field, thus sharing common features in career and publication purpose of anatomy textbooks with Imada Tsukanu. It is noteworthy, for instance, that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book actively accepted the characteristic of 『實用解剖學』 that promoted the readers` understanding with detailed anatomical charts to prevent misjudgments with diagnosis and operation. Finally, the copy editor Oliver R. Avison was a doctor that had belief in the modernity, science and positivism of Western medicine. His attitude opened a door for collaboration between missionary medicine and imperial medicine in moder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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