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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beX-2009 집중관측자료를 활용한 울릉도 지역의 강수특성 조사

        김기훈,김연희,전은희,이용희,장동언,이성대,김현수,김나리,김현성,박지업 한국기상학회 2010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0 No.4

        본 연구에서는 울릉도 지역 내에서 지역에 따라 강수량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 지형적 원인에 의한 강수가 종관적인 영향에 의한 강수와 함께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장마시종을 기준으로 강수특성을 살펴본 결과, 장마이전에는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영향으로 열적안정 상태에서 역학적 불안정이 강수의 주요원인으로 나타났고, 이후 장마시작과 함께 온난기단의 유입으로 열적 불안정이 두드러졌으며, 장마 이후에는 열적불안정과 역학적불안정이 혼재하여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향후에는 울릉도에 종관적 및 지형성 특성에 따른 강수유발요인을 찾고자 강수 사례별 상세분석을 실시하고자 한다.

      • KCI등재

        고대 로마의 연설가와 수사학-모의연설 교육의 의의-

        김기훈 역사교육연구회 2022 역사교육 Vol.162 No.-

        This paper focuses on examining a certain general opinion that the status of rhetoric and the orator declined with the fall of the Roman Republic. Ancient Greeks and Romans were not excluded from the political procedure by speech and debate, while they had relatively liberal polity to other nations. As long as the ἀγορά or forum was an open space, its place functioned as the political center where the community members could participate rather freely. So the forum was a living place from which the democracy and the republic developed, and the forum itself, figuratively speaking, was a parent of the historical figures who had led their community with the eloquence, who had been role models and teachers for their posterity. The situation of Roman Republic is a typical example. In fact, the history of rhetoric entered upon a new phase, after the room for the free speech had become narrow in the postwar period of the late of 1st century BCE. As briefly discussed in this paper, the mainstream of rhetoric found its way into the school rhetoric in 1st century CE. Criticisms on the school rhetoric have a point that it taught only figure technique or it was far away from the real world. However the sophists in Athens of Classical Age already had been condemned harshly on that fault. On the other hand, the rhetoric of the period of Roman Empire since 1st century CE, provided abundantly chances to students for learning by declamationes which contained typical and historical exemplars to deliberate and deliver in training. The declamationes substituted partly for the forum. The students in the Roman rhetoric school were able to experience virtually res and persona which would be or would be encountered in the great Empire. Then they could grow up to manhood as civis Romanus. Rhetoric, even after the fall of Roman Republic, still had a significant role of education by making very Romans with speech and debate teachings. 이 글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몰락 이후 수사학과 연설가의 몰락이 지배적이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재론하고자 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정치 체제를 유지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민들은 말과 연설을 통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었다. 광장(ἀγορά; forum)은 공간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던 만큼, 정치적으로도 공동체 구성원이 일정 정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정치 현장으로 기능했다. 그런 점에서 광장은 민주정과 공화정이 태동하고 작동한 터전이었고, 이곳에서 언변을 통해 활약한 유능한 인물들은 정치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이자 모범, 그리고 선생 역할을 했다. 후속 세대는 광장의 집회와 재판, 설전을 몸소 지켜보면서 성장했고, 다양한 계기와 다채로운 인물 군상을 겪으면서 시민이 되어 갔다. 고대 로마 공화정기의 사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기원전 146년 이래 공동체 전체를 단일하게 결속시킬 만한 “외부의 적에 대한 두려움(metus hostilis)”이 사라지자 공화국에는 내부의 위기와 재난 그리고 내전이 잇따랐다. 기원전 1세기말, 더 이상은 말과 연설이 온전한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시대에 피로 얼룩진 제국과 광장에 아우구스투스가 가져다준 평화가 찾아왔다. 혹자는 이 무렵부터가 로마 연설가-정치가의 위상은 실추되고 연설술/수사학은 쇠퇴 일로를 치닫게 되었다고 평한다. 자유로운 연설 공간이 줄어들거나 사라진 이래 세기가 바뀌어 수사학의 역사는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본고에서 간략히 논의한 것처럼 기원후 수사학은 학교 수사학 중심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학교 수사학에 대한 비판도 문채나 기교만 수련하려 한다든가, 현실 적용성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식에 초점을 맞추면 일리 있는 논의이지만, 이는 비단 학교 수사학에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고전기 아테네 소피스트들의 활동이 그 선례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제정기 로마의 학교 수사학은, 문학과 역사에서 추출해낸 전형적인 사례를 찬반 양쪽의 입장에서 숙려하고 대변하는 식의 모의연설에 중점을 둠으로써 이제는 광장이 다하지 못한 체험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풍요롭게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체제 내에서 통용될 법한, 거대한 제국 내에서 있을 법한 일(res)들과 겪을 법한 인물(persona)들을 추체험함으로써 로마 시민(civis Romanus)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거치게 되었다. 공화정 몰락 이후에도 수사학은 여전히 말하기와 토론을 통해 로마인을 로마인답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 KCI등재

        아리스토텔레스 문헌 전승과 《명리탐(名理探)》

        김기훈 수원교회사연구소 2020 교회사학 Vol.0 No.17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 문헌 중 논리학 저작이 번역을 통해 어떻게 동 아시아 한자 문명권에 소개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스트라본의 《지리서》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문헌의 소실 과 재발굴은 극적인 사건으로 오늘날에도 회자된다. 이 고대 기록에서 출 발해 아리스토텔레스 문헌 전승의 역사는 서양 중세철학의 수용사와 주석 연구사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최근 국내 학계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범주》 와 포르퓌리오스의 《이사고게》가 한문으로 번역된 《명리탐(名理探)》 연구 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한역본의 대본으로 사용된 17세기 초 《코임 브라 대학 주해서》의 문헌 성격과 구성, 그중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저작의 번역 출처 및 책임 저자 등에 대해서 규명하고자 한 본고는 《명리탐》 번역과 연구의 일환이다. Main focus of this study is on researching and interpreting how the Corpus Aristotelicum, especially the works concerning on the logic, the Organon, was introduced by Chinese translation into the East Asian civilization. It is still widely known that Aristotle’s works had been lost and afterwards were recovered dramatically as Strabo wrote in his Geography. From this ancient testimony now on, the history of the Corpus Aristotelicum has been studied mainly on the reception of the Aristotelian philosophy and its commentaries in the Middle Age. Recently in Korea, the Minglitan (名 理探), which contains the Chinese translation of Aristotle’s Categories and Porphyry’s Isagoge, has been brought to the fore by researchers. This study, in accordance with preceding studies, aims at giving the entire picture of the significance and structure of the Commentarii Collegii Conimbricensis, particularly its part on the logic, which was the original Latin text of the Minglitan, and its author and the source of translation.

      • SCOPUSKCI등재
      • 참어머님의 말씀에 감동한 미국지도자들

        김기훈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2002 統一世界 Vol.- No.1

        어머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참희생·참사랑으로 남을 위하는 생활이 평화의 첫 단계라고 강조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은 인종·국가·종교를 초월케 해 영원한 평화세계구현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셨다. 어머님께서는 말씀을 약 49분 정도 하셨는데, 박수갈채가 42번이나 터져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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