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野坂昭如「アメリカひじき」論

          趙正民(조정민) 동아시아일본학회 2008 일본문화연구 Vol.26 No.-

          본고는 노사카 아키유키의「아메리카 히지키」에 관해 고찰한 논문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6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 부부의 미국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반미(反米)의식은 1960년 안보투쟁을 계기로 하여 사라지고, 보수와 혁신이 대립하는 이항 대립적 이데올로기 구도도 점점 옅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가 이야기하는 미 점령은,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한 후에도 대미관계에 있어서는 불균형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반미(反米)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작가는 미국에 대해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콤플렉스를 지적함으로서, 일본인 스스로가 불균형한 대미관계를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반미(反米)라고 하는 시대를 그린 작품들 중 대부분은, 그 시대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미국과 전후일본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라고 하는 대비적인 구도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묘사는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사카 아키유키의「아메리카 히지키」는 미 점령의 문제를 자성(自省)적인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서, ‘피해자'로서의 일본이라고 하는 점령관을 상대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정치의 신체화, 신체의 정치화 - 미 점령기 일본의 스포츠 담론과 민주화 -

          조정민(趙正民) 한국일본문화학회 2020 日本文化學報 Vol.0 No.85

          This study was conducted to examine the meaning of ‘democracy' which GHQ intended to propagate to Japan after its defeat in war through the sports discourse. Although GHQ tried to internalize democracy through the physical education and institution, which is, however, exactly the same as the Japanese strategy to implant the idea of militarism during war. In addition, the Japanese Athletic Association which supported the government during war was disguised as a private organization and used as a media for consolidating the position of the contemporary Japanese emperor and facilitating the American occupation. As such, GHQ dominated Japan by pacifying the old regime including the Japanese emperor, rather than revamping the Japanese society. In other words, there was structural continuity between the Japanese emperor-centered political regime and the American occupation regime, consequently leading to a contradictory ideology, the ‘Japanese emperor democracy'. This is a clue allowing us to structurally understand where such irony of ‘democracy' in the modern Japanese society originates from.

        • KCI등재

          금기에 대한 반기, 전후 오키나와와 천황의 조우

          조정민(趙正民)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7 일본비평 Vol.9 No.1

          이 글은 일종의 표현의 금기인 ‘천황'에 대해 전후 일본문학과 전후 오키나와문학이 각각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고찰한 것이다. 전후민주주의와 초국가주의가 혼재하는 본토의 양상과 그와는 또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오키나와를 대비적으로 살펴 전후 일본과 오키나와 그리고 천황의 표상 문제를 분석하고자 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둘러싸고 좌우 정치권이 크게 대립한다. 그 가운데 우익 청년들이 일으킨 아사누마 사건(浅沼事件, 1960. 10. 12)과 시마나카 사건(嶋中事件, 1961. 2. 1)은 전후민주주의와 초국가주의가 혼재하는 전후 일본의 이중적인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으로, 이 두 사건은 천황이 일본인의 몸과 마음을 강력하게 포획하는 장치임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천황(제)이라는 심상적 철책을 뛰어넘고자 했던 두 문학자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는 우익 청년들의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전후일본문학 공간에 더는 천황을 등장시킬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고 말았다. 이후 전후일본문학에 천황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86년에 이르러서다. 오키나와의 작가 메도루마 슌(目取眞俊)이 쓴 「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는 패전 후 오키나와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에게 한 치매 노인이 자신의 대변을 투척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언어와 기억을 반쯤 잃어버린 치매 노인의 비정상적인 신체는 정상적인 규율과 규제가 적용되기 힘든 예외적인 신체에 다름 아니다. 이 예외적 신체가 일으킨 테러는 ‘일본'이라는 국민국가 안에 포섭될 수 없는 오키나와의 예외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1980년대 ‘전후 이후'를 살며, 일장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과 같은 국가의례를 더욱 강화하여 보수화되던 본토, 그리고 본토 복귀로 ‘일본'에 빠르게 편입되어가는 오키나와를 목도한 메도루마 슌은 이미 20여 년 전에 패배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금기와 다시 마주 보고자 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postwar Japanese literature and postwar Okinawa literature responded to “the Japanese emperor,” a sort of taboo of expression. In addition, this study attempts to analyze postwar Japan, Okinawa, and the symbol of the Japanese emperor by comparing the mainland, where postwar democracy and super-nationalism co-existed, with Okinawa, which stood on another layer. In Japan of 1960s, the right and left parties confronted with each other on the issue of the revision of 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In the meantime, young right-wing people executed Asanuma Assassination (10.12.1960) and Shimanaka Incident (2.1.1961), representing the ambivalent reality of postwar Japan where postwar democracy and super-nationalism co-existed. Such incidents, in the end, more clearly showed the fact that the Japanese emperor is still a tool to strongly capture the minds and bodies of Japanese people. As Hukazawa Shiciro and Oe Kenzaburo, writers who desired to overcome the imagery fence, the Japanese emperor, became the target of terrorism by young right-wing people. They eventually proved that the Japanese emperor could no longer appear in the space of postwar Japanese literature. In 1986, the Japanese emperor reappeared in postwar Japanese literature. Heiwa-dōri to nazukerareta machi o aruite written by Medoruma Shun from Okinawa described the incident that an elderly with Dimentia threw his excrement to the Royals visiting Okinawa after the defeated war. The elderly who had lost his linguistic ability and memory was an exceptional body, which normal rules or regulations could be hardly applied. The terror committed by this exceptional body also implied the exceptional situation of Okinawa that it could not become an integral part of the nation-state, Japan. Living in “prewar days” of 1980s, watching the mainland become conservative with intensified national rituals, such as raising the Japanese flag and singing Kimigayo, and experiencing the quick incorporation of Okinawa to “Japan,” Medoruma Shun desired to face the taboo once again that had been lost and remained silent for nearly twenty years.

        • 츠보이 사카에 “스물두개의 눈동자”론

          조정민(趙正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5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Vol.- No.-

          Tsuboisakae"s "Nijyusinohitomi" is work that is serialized to "New age" from February 1951 to November. Mr.Oisi does incoming in branch school of a country of Setonaikai. 1928 spring, she takes charge of first year student of branch school. Mr.Oisi went by bicycle to school, one day, she falls on hole and suffers a fracture shank. So, students visit to a teacher. Teacher is delight and buy students noodles, and takes souvenir picture. But teacher leaves school. Four years later, teacher does incoming replacement in this school which drop to four kilometer at branch school. First year students become fifth year students and attended this school. And Oisi got married this time. On the other hand, state of affairs was continued the war. People fired through crime that taught students Anti-war Ideology among teacher were. Oisi was fired also. She lost mother and husband, child in the middle of war. Two people among her disciple die in battle and one person went blind. After war, Oisi teaches again at branch school. She met disciple there. Disciple guides teacher and convokes classmates and holds teacher"s welcome party. This work"s theme is Oisi"s charity life and students experience. I want to consider about worth that is democracy of postwar in this work.

        • KCI등재후보

          일본적 미의 지층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조정민(趙正民)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5 일본비평 Vol.7 No.2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68년의 일이다. 당시 가와바타는 스톡홀름의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아름다운 일본의 나: 그 서설>(美しい日本の私: その序說)이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을 했는데, 이는 ‘아름다운 일본'이 국내외적으로 승인받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가와바타가 그토록 강조하던 ‘아름다운 일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패전 후의 가와바타는 여러 기회를 통해 ‘일본 미의 전통'이나 ‘옛 산하', ‘고래(古來)의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한 바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패전 후의 상황을 봉합하고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대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직결시키기만 하면 전쟁에 관한 상처와 아픔을 봉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에는 패전에 관한 어떠한 역사적 경험도 각인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간'인 ‘고대 일본'을 패전 후의 상황에서 새롭게 전유할 수 있다면, 전쟁 기간은 공백으로 처리한 채 ‘일본' 혹은 ‘일본 민족', ‘일본의 전통'이라는 관념을 균열 없이 매끈하게 환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와바타는 서구 근대문학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전 문학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고, 여기에 일본적 미의 근원이 잠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가와바타가 전후에 ‘일본적 미'에 관해 집착한 것은 전쟁, 혹은 패전에 대한 능동적인 망각과 재건의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후 일본사회의 보수화라는 토양 위에 노벨 문학상이라는 상징적인 권위와 가와바타의 화법이 더해져,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가상의 현실과 허구적 진실이 점차 뿌리를 내리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가와바타의 미적 세계관이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정치적 수사 내지 통치 전략으로 폭넓게 원용되고 있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국가라는 자장이나 세계화 국면 안에서 호출되었던 ‘아름다운 일본'은 여전히 감성적 공동체 구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Kawabata Yasunari, the first Japanese to be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received the award in 1969. On the occasion, he delivered a commemorative speech Japan, the Beautiful and Myself: An Introduction (美しい日本の私-その序說) at the Swedish Academy, which was a groundbreaking event that achieved the recognition of “beautiful Japan” worldwide. What is the “beautiful Japan” that Kawabata underlined to such a great extent? After Japan's defeat in the World War II, he proclaimed to return to the “tradition of Japanese beauty,” “old mountains and streams,” and “ancient Japan” at every occasion. It was a kind of measure available to stitch up and settle the situation after the defeat, in that postwar scars and pains could be patched up as far as a direct link could be built between the “ancient Japan” and “present Japan.” The experience of losing wars was not imprinted on the “ancient Japan.” Accordingly, if the “ancient Japan” that remained a “pure and beautiful time” could be wholly and newly obtained in such a postwar situation, the concept including “Japan,” “Japanese race,” and “Japanese tradition” could be seamlessly resurrected, leaving the war period vacant. On this account, Kawabata highly appreciated the classical literature that is distant from the modern Western literature and emphasized the classical literature's inherent essence of Japanese beauty. In this context, it may be that Kawabata's adherence to the “Japanese beauty” after the defeat was an act of active forgetting and reconstructing in relation to the war or defeat. Meanwhile, it is an undeniable truth that the virtual reality and fictional truth in the “beautiful Japan” were gradually pervading the postwar conversation, as Kawabata's symbolic authority and narrative were introduced. In addition, it is notable that Kawabata's aesthetic worldview is widely cited in today's Japanese society as a political rhetoric or ruling strategy. Once invoked in the contexts of globalization or nation-state, the “beautiful Japan” still actively constitutes an emotional community.

        • KCI등재
        • KCI등재

          安岡章太郎「ガラスの靴」論

          趙正民(조정민) 일본어문학회 2006 일본어문학 Vol.33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 KCI등재

          「肉体文学」をめぐる問題 - 田村泰次郎の評価を中心に -

          趙正民(조정민) 일본어문학회 2005 일본어문학 Vol.31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 KCI등재

          두 개의 미국

          조정민 중앙대학교 일본연구소 2015 日本 硏究 Vol.0 No.39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surrounding American Village in Tyatan, Okinawa. American Village is an urban resort constructed on the reclaimed land around the American airfield and shooting range on the seashore in 1981. This facility was built by modeling Seaport Village in San Diego, America, and is often considered as a successful case in the aspect of utilizing American military base. However, American Village and the American military base Camp Lester, which is on the opposite side, are suggesting conflicting America and keeping a tense relationship. This scenery shows the repeated negative/positive views of America and the existence of both temptation of and objection to the American culture. In other words, American Village and Camp Lester having Japan National Route 58 in the middle represent the space of imitation and acceptance of America, conflict and connection, and agreement and denial. What matters is that the space of ‘Two Americas', American Village and Camp Lester, is being forced to follow the order of the hierarchy by military power and capital strength. In addition, how to imagine and practice the force to disrupt and break that order would be a huge task. This study tried to examine the formation process of American Village and analyze the aspects of American reproduction and expression of the identity of Okinawa. It will provide the possibility to look at the phenomenon of post-colonialism working complexly in Okinawa from a new angle.

        • KCI등재

          금기에 대한 반기, 전후 오키나와와 천황의 조우 메도루마 슌의 「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를 중심으로

          조정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2017 일본비평 Vol.9 No.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postwar Japanese literature and postwar Okinawa literature responded to “the Japanese emperor,” a sort of taboo of expression. In addition, this study attempts to analyze postwar Japan, Okinawa, and the symbol of the Japanese emperor by comparing the mainland, where postwar democracy and super-nationalism co-existed, with Okinawa, which stood on another layer. In Japan of 1960s, the right and left parties confronted with each other on the issue of the revision of 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In the meantime, young right-wing people executed Asanuma Assassination (10.12.1960) and Shimanaka Incident (2.1.1961), representing the ambivalent reality of postwar Japan where postwar democracy and super-nationalism co-existed. Such incidents, in the end, more clearly showed the fact that the Japanese emperor is still a tool to strongly capture the minds and bodies of Japanese people. As Hukazawa Shiciro and Oe Kenzaburo, writers who desired to overcome the imagery fence, the Japanese emperor, became the target of terrorism by young right-wing people. They eventually proved that the Japanese emperor could no longer appear in the space of postwar Japanese literature. In 1986, the Japanese emperor reappeared in postwar Japanese literature. Heiwa-dōri to nazukerareta machi o aruite written by Medoruma Shun from Okinawa described the incident that an elderly with Dimentia threw his excrement to the Royals visiting Okinawa after the defeated war. The elderly who had lost his linguistic ability and memory was an exceptional body, which normal rules or regulations could be hardly applied. The terror committed by this exceptional body also implied the exceptional situation of Okinawa that it could not become an integral part of the nation-state, Japan. Living in “prewar days” of 1980s, watching the mainland become conservative with intensified national rituals, such as raising the Japanese flag and singing Kimigayo, and experiencing the quick incorporation of Okinawa to “Japan,” Medoruma Shun desired to face the taboo once again that had been lost and remained silent for nearly twenty years. 이 글은 일종의 표현의 금기인 ‘천황'에 대해 전후 일본문학과 전후 오키나와문학이 각각 어떻게대응해왔는지 고찰한 것이다. 전후민주주의와 초국가주의가 혼재하는 본토의 양상과 그와는 또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오키나와를 대비적으로 살펴 전후 일본과 오키나와 그리고 천황의 표상 문제를 분석하고자 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둘러싸고 좌우 정치권이 크게 대립한다. 그 가운데 우익 청년들이 일으킨 아사누마 사건(浅沼事件, 1960. 10. 12)과 시마나카 사건(嶋中事件, 1961. 2. 1)은 전후민주주의와 초국가주의가 혼재하는 전후 일본의 이중적인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으로, 이 두 사건은 천황이 일본인의 몸과 마음을 강력하게 포획하는 장치임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천황(제)이라는 심상적 철책을 뛰어넘고자 했던 두 문학자 후카자와 시치로(深沢七郎)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는 우익 청년들의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전후일본문학 공간에 더는 천황을 등장시킬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고 말았다. 이후 전후일본문학에 천황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86년에 이르러서다. 오키나와의 작가 메도루마 슌(目取眞俊)이 쓴 「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는 패전 후 오키나와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에게 한 치매 노인이 자신의 대변을 투척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언어와 기억을 반쯤 잃어버린 치매 노인의 비정상적인 신체는 정상적인 규율과 규제가 적용되기 힘든 예외적인 신체에 다름 아니다. 이 예외적 신체가 일으킨 테러는 ‘일본'이라는 국민국가 안에 포섭될 수 없는 오키나와의 예외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1980년대 ‘전후 이후'를 살며, 일장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과 같은 국가의례를 더욱 강화하여보수화되던 본토, 그리고 본토 복귀로 ‘일본'에 빠르게 편입되어가는 오키나와를 목도한 메도루마 슌은 이미 20여 년 전에 패배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금기와 다시 마주 보고자 했던 것이다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