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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현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2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33
조직 내에서 실제 업무 수행 실적보다 더 높게 인사 고과 평가를 하는 것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상관없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과대 실적 평가는 조직 내 인사 평가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인사 평가는 업무 외적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며, 그에 반해 이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정확한 업무 평가를 하기 보다는 상호간의 긍정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실제 업무 수행보다 상대적으로 더 관대한 평가를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대 평가 현상이 조직 생산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밝히기 위해, 구체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부적 업무 결과와 긍정적 평가로 인한 모순된 정보가 반복적으로 제공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목표 설정, 헌신도, 자기 효능감과 같은 조직원들의 업무 동기에 부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을 검증하고자 하였다. 한편, 문화의 다양성과 관련하여 이러한 부적 영향은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반면, 동북아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 애착이 중요하므로 실제 업무 수행 결과에 대한 평가의 정확성보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조직 내의 업무 동기를 유지 할 수 있을 것임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조직원들에게 업무 수행 결과와 불일치하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한 주의를 요하는 이론적인 기반을 마련하며, 동시에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적인 동북아 문화권에서 조직원의 동기를 유지하는데 활용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허정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0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23
This study analyzed ‘East Asian Discourse’. And this study tried to make the result as Methodology of Canon Study. Since 1990 years, ‘East Asian Discourse’ had been spread vigorously in the South Korea and China and Japan. Various attempts that was discussed in ‘East Asian Discourse’ are related with problem about ‘Center and Margin’. And, Various attempts that was discussed in ‘East Asian Discourse’ are related with problem that do ‘How will we think margin department’. And, Various attempts that was discussed in ‘East Asian Discourse’ are related with problem that do ‘How will we dissolve Eurocentrism’. Important thing is that this attempts are not different from viewpoint of Canon Study. That is, ‘a Study of Canon’ must study (centrism of canon) it critically. And ‘a Study of Canon’ must dig margin department's works newly. And ‘a Study of Canon’ must dissolve Eurocentrism of canon. So, ‘East Asian Discourse’ and ‘a Study of Canon' are sharing same viewpoint. Specially, ‘East Asian Discourse’ gives much reference standpoints about part that was unexhausted in ‘a Study of Canon’. In ‘a Study of Canon’ field, discussion that ‘How will we change system of power failure?’ is lacking. By the way, discussion that ‘How will we change system of power failure?' consisted vigorously in ‘East Asian Discourse’. So, if we expropriate ‘East Asian Discourse’ as methodology of Canon Study, discussion of canon's study may become rich so much. At this point justly, ‘East Asian Discourse’ and ‘a Study of Canon' may combine creatively. This study analyzed ‘East Asian Discourse’ variously in these intention. And, this study wished to accommodate the result, as methodology of Canon Study.
姜海守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3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Vol.- No.-
본 연구는 ‘帝國日本’과의 ‘思想連鎖’, 혹은 ‘知의 回路’와의 연계 속에서 성립된 「植民地 朝鮮에 있어서의 ‘國學的 學知’의 形成」이라는 필자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연구이다. 여기서 ‘學知’라 함은 여러 학문으로 구성된 言說(談論)공간을 가리킨다. 특히 ‘國學的 學知’는 ‘民族’과 ‘傳統’, 그리고 ‘自己’를 表象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近代 朝鮮의 ‘國學的 學知’는, 1920,30년대에 성립된 ‘日本版 오리엔탈리즘’과의 대항관계에서 형성되었음이 주목된다. 植民地 時期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崔南善이 1927년에 간행한 『不咸文化論』은 이러한 과제를 해명하는 데 적절한 소재 중의 하나이다. 이 텍스트의 서술을 계기로 그가 ‘親日派’로 전향하였다는 현재까지의 평가와는 달리, 崔南善의 ‘不咸文化’論 구상 자체는 1922년에 출판된 『朝鮮歷史通俗講話 開題』에 이미 나타나 있다. 여기서 그는 일본인에 의한 古蹟調査事業에 충격을 받고, 朝鮮人에 의한 ‘朝鮮學’의 구축을 강조하였다. 즉 白鳥庫吉와 內藤湖南 등이 주도하는 ‘東洋學’의 일환으로서의 朝鮮 연구에 대항하기 위해 ‘朝鮮學’의 필요성을 주창한 것이다. 崔南善은 『不咸文化論』의 서두에서도 朝鮮을 중심으로 한 “東洋學의 참된 건립”을 저술의 주요 동기라고 밝혔다. ‘支那’라는 용어의 사용이 “日本이 주체가 되는 東洋學을 기술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스테판 다나카(Stefan Tanaka)의 지적처럼, 崔南善은 朝鮮을 중심으로 하는 ‘東洋學’을 구축하기 위해 『不咸文化論』에서 朝鮮, 日本 등과는 문화적 원류를 달리하는 他者로서의 中國, 즉 ‘支那(文化)’觀을 克明하게 드러내었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崔南善은, 日本人 學者들의 ‘檀君否認(抹殺)論’에 대항하여, ‘東方 = 不咸文化圈’에서 차지하는 檀君의 表象化 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고, 이 지역에서의 朝鮮의 君臨을 의미하는 ‘觀念的 帝國’ 또는 ‘文化的 아시아主義’를 설계하였다. 『不咸文化論』과 그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朝鮮神道’, ‘固有信仰’論이 日本의 ‘天皇制’ 및 ‘國家神道’에 대한 이해와의 쌍곡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점도 이러한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朝鮮’ 혹은 ‘民族’이라는 메터 내러티브의 구성에는 ‘比較言語學’, ‘比較人種, 人類學’, ‘比較神話, 宗敎學’, ‘民族心理學’, ‘民俗學’ 등 ‘比較’를 중심으로 하는 ‘近代的 學知’가 수용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필자는 여기서 崔南善의 『不咸文化論』이 ‘日鮮同祖論’에 同調한 텍스트라거나 그 사회적 영향력이 미약했다는 지금까지의 평가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텍스트가 1920년대 植民地 時期에 ‘自己’를 表象하는 ‘近代的 境界’ 혹은 ‘自己淵源’의 거점으로서의 ‘東方’을 구성한 것으로 보고자 하며, 아울러 그것이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어떻게 民族的인 ‘自己言及’的 言說의 무대로 기능해 왔는가를 함께 살피고자 한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구체적으로는 韓國과 日本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의 침투를, ‘近代的 學知’의 도입과 전개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오늘날까지 通用되고 있는 ‘韓國思想史’, ‘日本思想史’라는 一國思想史的인 記述을 뛰어넘는 인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鄭大華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1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Vol.- No.-
이 논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동아시아 사상계(주로 중국)에 미친 영향을 다루었다. 전쟁의 결과 서양 문화에 대한 위기 의식이 일어나고, 동방 문화가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하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전쟁 후 중국 사상계에는 동서양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문화보수주의 사조가 홍성 하였다. 이런 중국 사회 문화 사조의 변동 연구는 기존 학계가 제1차 세계대전과 중국 자본주의의 발전 혹은 제1차 세계대전과 중국 정치 구조의 변화의 문제에 주력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동시에 중국 현대 사상사의 태동에 관한 이 연구는 동서 문화 교류사 분야에서도 일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발표는 (1)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중국인의 서양 문화에 대한 태도, (2) “서양의 몰락”과 “동방 문화 救世論”의 등장, (3) “서양의 몰락”의 중국 사상계에 대한 영향, (4) 문화보수주의 사조의 발전, (5) 서양 인본주의 사상의 수용과 영향, (6) 전후 중국 사회 문화 사조의 변동이란 순서로 진행할 것이다. 발표의 전반부에서는 근대 중국인들이 西化를 중국 문화의 출구로 생각할 즈음 돌연 유럽에서 발생한 제1차 세계 대전이 중국에 미친 영향을 다루었다. 전쟁이 인류에게 미친 엄청난 재난은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런 분위기는 중국인들도 서양을 배워야겠다는 기존의 생각에 의문과 회의를 자아냈다 그리고 서양 사회에서 유행한 “동방 문화 구세론”은 중국 사상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서양 문화를 비판하는 문화보수주의자들을 등장시켰다.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梁啓超 梁漱溟 張君? 章土釗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서양 인본주의 사상이 대규모로 체계적으로 수용되면서 문화보수주의자들은 신문화 운동을 비판하는 이론적 무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발표의 후반부에서는 전후 중국 사회 문화 사조의 변동에 대해 주로 다루었다. 그 특징을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진화론이 비평을 받고, 互助論이 환영을 받았다; 둘째, 각종 사회주의 사상들이 대두하였다; 셋째, ‘科學萬能論’이 비판을 받았다; 넷째, 이른바 ‘文化取代論’이 냉대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 동서문화 조화론과 보완론이 등장하고 유행하면서 중국 사상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비록 胡適이나 陳序經 등의 비판도 있었지만 이미 문화보수주의 사조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오늘날 문화 문제에 관련 토론 가운데서 여전히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К основам межкультурной коммуникации В России
Ли Чже Хёк(이재혁)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8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Vol.- No.-
문화간 소통은 보통의 경우 '다양한 문화권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교제'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학문적 정의는 '상이한 민족 문화권에 속하는 두 소통 행위 당사자들의 적절한 상호 이해'라고 내려진다. 여기서 소통 행위가 실행되는 조건으로 문화적으로 귀결된 차이를 소통 능력 속에서 지적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기호적 성격 흑은 상징적 성격을 갖는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해석, 문맥, 상호 협동의 문제를 야기하며, 소통 행위 요소의 비의식성을 말해준다.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의 문화간 소통 이론 또한 소통의 원칙과 종류, 문화의 기능, 소통행위에의 문화의 영향, 문화적 영향을 서술하기 위한 여러 준거들의 규명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포함한다. 러시아에서의 이 이론의 주된 연구 방향에 대해선 심리적, 사회적, 언어적 방향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나타나는 가치 체계와 스테레오 타입의 규명을, 심리학자들은 해석 과정과 범주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문화적 차이의 영향력 정도에 가장 흥미를 갖는다. 언어학자들은 침묵의 기능, 소통 행위의 중심을 이루는 텍스트가 어떻게 구성되고 전개되는지를 포함하여 문화간 상호 작용의 신호가 언어 소통에 어떻게 구현되는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비즈비츠카야의 의미 원형의 메타 언어 이론도 이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최근까지 사회 언어학의 일부로서 간주되었던 러시아에서의 문화간 소통 이론이 독자성을 확보하고, 현대 러시아에서 많은 응용적 측면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김인규(Kim In-Gyu)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1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27
The Bronze Drum of Southeast Asia which is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was made from BC 5c to AD 20c. The earlyest Bronze Drum of Southeast Asia was discovered on Dong Son Province in the Northern area of Vietnam and its Form and Design is similar to those of the Northern Area of China such as Yunnan Province. So We know that the Origin of the Bronze Drum of Southeast Asia is started in the Northern Area of China. The Bronze Drum of Heger Ⅰ Type was made in the BC 5c and was excavated in the all area of the Southeast Asia except the Philippines. and The Bronze Drum of Heger Ⅱ Type was discovered in the middle Area of Vietnam, in the North Area and in the eastern Area of Thailand. The tympanum of the Bronze Drum of Heger Ⅱ Type was decorated with Frog. The Karen Bronze Drums of Burma were manufactured from 11c to 20c. they belong to the type of Heger Ⅲ. The Form of the Karen Bronze Drums is silmer than the drum of Heger Ⅰ and Ⅱ. Their Design have traditional elements such as flying Bird and Human Beings having a wings of Bird and New elements such as Decoration of elephant and Lothus on tympanum of Drum. and New elements are related to Buddhism of Southeast Asia. In result, the Drums of the Southeast Asia have a important meanings to study on the Origin of Metal Culture of Southeast Asia and the reception and variation of Chinese Culture and Civilization in Korea.
Richard W. Shannon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2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32
전 세계의 주도적인 국제개발기구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지배한다. 서구의 방식으로 훈련 받은 개발 전문가들은 선호되는 경제 모델에만 주목을 하고,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발경험이 주목 받지 못하는 주요 지역은 동아시아와 일본이다. 일본은 비서구국가로서 아시아 첫번째로 국제개발에 참여한 국가이다. 1900년대 후반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였고, 이는 종종 “일본의 기적”으로 불리곤 하였다. 현재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일본과 다른 동북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의 개발에 대해서 서구 국가들의 상당한 수준의 무지가 존재한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또한 대외 원조 공동체에서 잠재적으로 강력한 새로운 기부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부분 그것들은 전통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 그리고 그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의 기부프레임 워크(OECD/DAC donor framework)의 범주 밖의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심각한 상태의 무지를 야기하였는가? 그 이유 중의 많은 부분이 문화적인 것들이다. 이 논문은 국제개발의 분야가 아시아의 개발과 원조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논문에서는 일본의 개발 원조 역사, 최근의 국제 원조 분야에서의 큰 흐름, 그리고 그 큰 흐름의 일본 국제개발원조에 대한 영향, 아시아 개발과 원조 모형에 대한 서구국가들의 무지의 이유, 그리고 전 세계적 국제 개발 분야와 일본은 서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한다. Powerful Western nations dominate the world’s leading international development organizations. Western‐trained development specialists pay close attention to preferred economic models and ignore others. The main regions whose development experiences are ignored are East Asia and Japan. Japan was the first non-Western and Asian nation to develop. In the late 1900s, Japan had the world’s fastest rate of growth, and was often called the “Japanese miracle.” Despite its current recession, Japan remains one of the world’s wealthiest nations. Yet there is a high level of Western ignorance about development in Japan and in other Northeast and Southeast Asian nations. Many countries in East Asia are also rising as potentially powerful new donors in the foreign aid community, mostly outside the traditional OECD/DAC donor framework. What has caused this profound state of ignorance? Many of the reasons are cultural. This paper argues that the development industry must recognize that Asian development and aid are different. It surveys the history of Japanese aid, recent international aid trends and their impacts on Japanese aid, reasons for Western ignorance about Asian development and aid models, and what the global development industry and Japan can learn from each 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