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무안(務安) 박씨(朴氏) 무의공파(武毅公派)의 형성(形成)

          장준호 ( Jang Jun-ho ) 한국계보연구회 2020 한국계보연구 Vol.10 No.-

          본고는 영남의 명문가 중 하나인 무안 박씨 영해파가 재지적·사회적 기반을 확립해 가는 과정과 무의공파라는 문중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가는가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무안 박씨는 朴之蒙의 혼인과 이거를 계기로 영해에 정착하였다. 영해의 무안 박씨들은 박지몽의 입향 후 分家의 반복을 통해 지연에 기초한 동족조직을 형성하였다. 입향 초기 무안 박씨 문중은 재지적·사회적 기반이 취약하였다. 이후 4대에 걸쳐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면서 儒風을 진작시켰고, 퇴계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학문적 기반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재지적·학문적 기반을 확대해 가던 무안 박씨 문중은 朴毅長 이후 家格이 보다 신장되었다. 그는 임란 기간 동안의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시 경주판관으로 자신의 임지인 경주성을 탈환하는 전공을 올렸고, 이후 일본군의 재북상을 차단하고 경주 府民을 구휼하는 등 목민관으로서의 역할도 차질 없이 수행하였다. 공신 책봉은 가격의 신장과 문중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박의장에게 호조판서의 증직이 내려지면서 무안 박씨 문중은 판서의 후예라는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박의장의 사남 朴瑄은 爲先 사업을 주도하면서 문중 후손들의 결속을 강화했고, 府君의 전적을 수습·정리하였다. 그는 여헌의 문인으로 동문수학했던 知友들에게 박의 장의 墓誌銘과 神道碑銘의 찬술을 부탁하면서 祠宇 건립을 위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박선의 위선을 위한 노력은 후손에게 이어졌다. 朴師周는 존주의리를 강조하는 正祖대의 분위기 속에서 贈諡上言을 올려 武毅라는 시호를 받아냈다. 박의장은 시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시호의 사여는 박의장 후손들에게 의미가 매우 컸다. 즉 시호의 사여는 경주성 탈환 전투의 공로를 조정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주성 탈환 전투에 대한 박의장의 공로를 인정받는 것은 무안 박씨 문중의 宿願이기도 했다. 따라서 延諡는 박의장의 임란 공적을 조정으로부터 확인받은 것임과 동시에 박의장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보다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무안박씨 문중은 武毅公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회적 기반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forming a social identity of Muan Bakssi(務安 朴氏), a member of a prestigious family in Yeongnam. the Muan Bakssi of Yeonghae(寧海). After Bak Ji-mong(朴之蒙) had moved to London, a group of the same surname was formed when his children got married. Their social base was weak right after they moved to Yeonghae. They expanded their social base in Yeonghae by producing bureaucrats and learning from Yi Hwang(李滉). The Munjung of Muan Bakssi 's status was higher than before because of Bak Ui-jang(朴毅長). It was because Bak Ui-jang established his major in Imjinwaeran(壬辰倭亂) and was appointed to a gongsin(功臣). This further strengthened the Munjung's solidarity and took strong pride in being a descendant of Bak Ui-jang. After Bak Ui-jang 's death, the government raised the ranks, and his descendants prided themselves as descendants of the Hojo panseo(戶曹判書). Bak Ui-jang's son Bak Sun(朴璿) did many things to honor his father's achievements. He took the lead in explaining and organizing his father's achievements. Bak Sun's efforts paid off by his descendants. Bak Sa-Ju(朴師周), a descendant of Bak Ui-jang, asked King Jeongjo(正祖) to gived him a posthumous title. King Jeongjo gaved Bak Ui-jang the a posthumous title "MuUi(武毅)". Bak Sa-Ju's efforts made Bak Ui-jang's contributions during Imjinwaeran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and Bak Ui-jang's descendants became the descendants of war heroes.

        • KCI등재

          柳成龍의 『亂後雜錄』 저술과 史學史的 의의

          장준호(JANG, Jun-Ho) 한국사학사학회 2018 韓國史學史學報 Vol.0 No.3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조선사편수회는 『朝鮮史』를 간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료임에도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모아 『朝鮮史料叢刊』으로 간행하였다. 「난후잡록」 은 『조선사료총간』 권9에 수록되어 영인·간행되었다. 「난후잡록」은 2책의 필록본으로 유성룡이 가장 먼저 기술한 임진왜란 관련 자료이면서, 『懲毖錄』의 서명이 처음 확인되는 書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난후잡록』은 임진왜 란과 『징비록』을 연구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난후잡록』이 갖는 사료적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이 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필자는 『난후잡록』이 『징비록』의 저술과 『西厓集』의 간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라 확신하고, 『난후잡록』에 대한 판본 조사와 판본 간의 비교·분석을 시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성룡가 소장 『난 후잡록』의 원본이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료총간』의 간행 과정에서 변형되었 음을 확인하였다.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사료총간』을 간행하는 과정에서 편오 책의 지배에 필록한 자료는 앞부분에 배치하고, 중서된 자료는 뒤로 배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조선사편수회가 『난후잡록』의 판본을 변형한 이유는 서술 내용의 통일성과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즉 수록 기사의 순서를 재조정하여, 『난후잡록』의 정본화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유성룡이 『난후잡록』을 기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서에서 참혹한 전란이 일어난 원인을 파악하여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책의 저술 목적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자서와 기술 내용의 분석을 통해 유성룡의 『난후잡록』의 저술 의도와 이 책이 갖는 사학사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결론적으로 『난후잡록』은 다음과 같은 사학사적 의의가 있다. 첫째, 이 책은 유성룡이 가장 먼저 기술한 임진왜란 관련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둘째, 『징비록』의 서명이 처음 확인되는 자료로, 『징비록』의 저술과 간행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셋째, 『난후잡록』은 저술 당시의 유성룡이 처한 정치적·사회적 환경이 그대로 반영된 자료로, 그의 후손들에 의해 윤색되지 않은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넷째, 이 책은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유성룡의 군정·정치사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따라서 『난후잡록』에 대한 이해는 임진왜란과 유성룡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The Nanhujabrok(亂後雜錄) is a book that describes the various facts before and after the Imjinwaeran without a special format. This book was known by Association of the Compilation of Korean History(朝鮮史編修會). Association of the Compilation of Korean History published a book called Joseon Saryo Chonggan(朝鮮史料叢刊) and the Nanhujabrok was recorded in it. The Nanhujabrok is a book related to the Imjinwaeran that Yu Seong-ryong wrote first about. Therefore, this book is an important material to understand the activities of Yu Seong-ryong and his perception of war during Imjinwaeran. Despite the Nanhujabrok is a very important material to study Imjinwaeran, there is no full-scale study. I am confident that this book is an important resource for the Jingbirok(懲毖錄) and the Seoaejip(西厓集). First of all, I investigated versions of the Nanhujabrok. In the course of the investigation, I found out that Association of the Compilation of Korean History changed the original source from Yu Seong-ryong jongsonga(柳成龍宗家). In other words, Association of the Compilation of Korean History rearranged articles of the Nanhujabrok according to the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articles. This is meaningful in that it attempted to the original copy. Then why did Yu Seong-ryong write the Nanhujabrok? In his preface, he said that he had written this book in order to identify the cause of the war and again to warn that this war would not happen. He intended to remind readers of the reasons for Imjinwaeran through his book. This book is freely written, but I examined the historiographic meaning of it by analysing the preface and contents.In conclusion, the Nanhujabrok has the following historiographical meaning. First, Yu Seong-ryong was the first to write about Imjinwaeran. Secondly, Through this book, it is possible to reveal the formation and publication of the Jingbirok. Third, This book was not embellished by his descendants. So it is an important material to grasp the intention of his writing, his politics, and military thought. Fourth, The analysis of this book is meaningful because it grasp the process of publication of other books. In the future, I will conduct an in-depth study on Yu Seong-ryong's other books.

        • KCI등재
        • KCI등재

          관광기업 간 통합 정보시스템의 평가

          장준호(Jun Ho Jang), 추승우(Seung Woo Choo), 황영현(Yeong Hyeon Hwang) 한국관광연구학회 2010 관광연구저널 Vol.24 No.4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test an integrated information system evaluation model that incorporates the effects of strategic alliance among tourism industries. An expanded IS evaluation model that was founded on D&M IS Success Model and integrated the effects of strategic alliance was proposed based on literature review. A survey of tourism industry employees (n=208) was conducted in order to empirically test the proposed model. To achieve the objective, this research analyzed covariance structural models among the concepts, and vouched the results of the existing researches by clarifying the effectual relations among ERP system integration, quality, user satisfaction, ERP system performance, and strategic Alliance performance. Model fit indices obtained from the results of structural equation analysis suggest that the proposed model can be used to evaluate the success of an integrated information system which is developed and use for the purpose of strategic alliance among tourism industries. It is observed that causational relation affects ERP system integration, quality affects user satisfaction, user satisfaction positively affects ERP system performance, and ERP system performance affects strategic Alliance performance, and such results support the structural model of this research. Consequently, it was shown that the model of this research on integrated ERP system evaluation and strategic Alliance performance is suitable.

        • 懲毖錄 저술 배경과 李舜臣 · 元均에 대한 서술

          장준호(Jang, Jun Ho)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1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6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맞아 국정의 최고 관료로서 전란를 극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 다. 그는 임란기 역할과 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정응태 무고사건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류성룡이 이 무고사건을 변무하기 위한 진주사에 자원하지 않은 것은 탄핵의 빌미가 되었고, 대간들은 그의 임란 책임론을 거론하며 류성룡을 집요하게 탄핵하였다. 이와 같은 대간들의 류성룡에 대한 탄핵은 임란기 그의 책임론을 넘어서, 그를 문묘종사와 조종조에 해악을 끼친 간인으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류성룡이 실각한 후에도 조정에서는 그의 임란기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일어 나면서 그 책임론은 가열되었다. 이와 더불어 북인들은 류성룡이 일본과 화의를 주장했다고 하는 혐의를 제기하면서, 이에 동조한 인사들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갔다. 따라서 류성룡에게 북인들이 제기했던 전란의 책임론과 화의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는 풀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위기의 순간에 류성룡은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그 저술 의도는 임란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전란의 책임론에 대한 자기변호와 남인들의 정치적 위상을 재고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상황적 근거를 들어 자신에게 제기된 문제들을 철저하게 반박하였다. 첫째,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것은 일본과의 失和가 그 근본 원인이 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이순신을 징비록 서술의 중심에 세우고 원균과 상호 비교하여 서술하였다. 이러한 의도는 임란 전공을 둘러싼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공신책봉 논리를 전면 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류성룡은 정치적 위기의 상황에서 징비록의 저술을 통해서 자신에게 제기된 책임론을 철저하게 비판하여 그 혐의를 벗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이순신을 징비록 서술의 중심으로 내세움으로써, 임란기 자신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고자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류성룡은 자신과 남인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Ryu Seongryong, as the highest ranking bureaucrat of national administrat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in the late 16th century, played the most important role in overcoming the invasions. However, without receiving just assessment of his role and activities during the invasions, he faced a political crisis when false accusations were leveled against him due to the unexpected outbreak of the Jeong Eungtae case. He did not volunteer for the Jin Jusa post for self-justification against the false charges, became a target of impeachment and the censorate tenaciously impeached Ryu Seongryong for his responsibility for the invasions. These accusations by the censorate against Ryu went beyond responsibility for the invasions and he came to be portrayed as a villainous retainer who had done harm to the royal ancestral shrine and forefathers. Even after his fall from power, a full scale criticism of his activities during the invasions arose in the royal court, and the question of his responsibility for the invasions was taken up even further. In addition, the Northerner faction raised the accusation that Ryu Seongryong had advocated peace talks with the Japanese and impeachment was expanded to include those who had cooperated with him. The charges against him raised by the Northerner faction of his responsibility and peace talk attempts with the Japanese became an obstacle Ryu had to overcome using whichever means. In this moment of political crisis, Ryu Seongryong compiled the Jingbirok. The intent of compilation was to reflect on the invasions, self-justification for the charges raised against him and to raise the political standing of the Southerner faction. For this purpose, Ryu Seongryong cited circumstantial evidence and thoroughly refuted the charges leveled against him. First, he pointed out that the fundamental cause of the invasions was the breach of peace with the Japanese. Second, at the center of compilation was placed Yi Sun Sin, with mutual comparisons made with Won Gyun in the compilation. The intent was to thoroughly criticize King Seonjo and his ministers regarding the rewarding of meritorious retainers for their services during the war. Therefore in a situation of political crisis, Ryu Seongryong wished to thoroughly refute the charges against him and clear himself of accusations through the compilation of the Jingbirok. Also, by placing Yi Sun Sin at the center of the Jingbirok, he wished to receive a just assessment of his own political activities during the war. In so doing, he wished to secure political legitimacy for himself and the Southerner faction.

        • KCI등재

          연구논문 : 관광개발영향에 대한 지역주민태도 차이 연구 -인근,비인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장준호 ( Jun Ho Jang ) 대한관광경영학회 2012 觀光硏究 Vol.27 No.3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지역의 관광개발에 있어 긍정적·부정적 관광개발영향이 지역주민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규명하고자 관광개발영향과 지역주민태도간의 구조적 관계를 검증하고 인근·비인근 지역주민 집단별 관광개발영향과 지역주민태도의 차이를 측정동일성검정 과정을 통해 평가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2011년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설문조사가 실시되었고 실증분석은 총 237명의 표본을 통해 진행되었다. 관광개발영향과 지역주민태도간의 관계를 공분산구조분석을 통해 분석한 결과 관광개발의 긍정적 영향은 관광개발지지에 양(+)의 영향을, 부정적 영향은 관광개발 지지에 부(-)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선행연구결과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주민태도의 관광개발지지는 지역의 미래에 양(+)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관련 선행연구결과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역주민의 거주지 집단별(인근지역·비인근지역) 관광개발영향과 지역주민태도간의 차이를 측정동일성검증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인근·비인근 지역주민 집단별 관광개발지지에 대한 관광개발영향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역의 미래에 대한 관광개발지지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test relationships between tourism development impacts and residents` attitudes. Particularly, it focused on the differences between residential groups(nearby and far-off residents). To achieve the purpose of this study, after tourism development impacts and residents` attitudes have been conceptualized, tested relationship between tourism development impacts and residents` attitudes through covariance structural models and metric invariance test. A survey (n=237) was conducted in order to empirically test the proposed model. Model fit indices obtained from the results of structural equation analysis. Results of structural equation analysis showed that positive and negative tourism development impacts had a significant effect on tourism development support of residents` attitudes. In addition, community future was found to be a positive function of tourism development support. Subsequent test of metric invariance demonstrated the differences between residential groups(nearby and far-off residents). Specifically, the strength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ourism development support and community future was higher for nearby residents group than far-off residents group.

        • KCI등재

          『懲毖錄』이 후대에 미친 影響

          장준호(Jang Jun Ho)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서강인문논총 Vol.0 No.52

          『懲毖錄』은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역임한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사적을 기록한 當代史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 사신의 왕래와 통신사 파견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선조실록』에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징비록』은 관찬 사서의 사료적 미비점을 보완해주는 자료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징비록』은 간행 직후부터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인조반정 후 집권한 서인들이 『선조수정실록』을 간행할 때 『징비록』은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었다. 특히 『선조수정실록』에 『징비록』의 대일관계와 조선 조정의 전란 대비책과 관련된 기사가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것은 『징비록』의 기사가 『선조수정실록』에 다수 인용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유성룡이 서인으로부터 전란기의 공적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익과 이긍익 그리고 한치윤은 그들의 저서에서 임진왜란 관련 기사들을 기술하는 데 『징비록』을 중요한 자료로 인용・활용하였다. 특히 이익은 『징비록』을 통해 자신의 성곽론을 완성하였고, 한치윤은 유성룡의 병기관을 계승・발전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징비록』은 조선 후기의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편 조선 후기 대일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통신사가 참고했던 서적도 『징비록』이었다.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인물들이 남긴 사행록에 『징비록』을 언급한 것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즉 통신사 파견의 전례라고 할 수 있는 경인통신사의 사행과 관련된 내용이 『징비록』에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 사행과 교린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범서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징비록』이 조선 후기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징비록』은 조정으로부터 그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 유출이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징비록』은 일본에 유출되어 일본의 학계와 출판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18세기초 징비록은 姜沆의 『看羊錄』 등과 함께 오사카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의 유학자인 가이바라 엣켄[貝原益軒]은 구로다[黑田] 가문의 家譜를 정리하는데 징비록은 인용하였고, 마쓰시타 겐린[松下見林]도 자신의 이칭일본전에 『징비록』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계기로 『징비록』은 일본의 독서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듯 『징비록』은 일본 학술계에 임진왜란 관련 사적을 정리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인용되었고, 그 내용과 상관없이 상업 소설의 제목으로 『懲毖錄』이 차용되기도 했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일본의 근세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도 전해지기도 했다. Jingbirok(懲毖錄) is a contemporary history in which Yu Seong-ryong (柳成龍), who served as a Yeonguijeong(領議政) and Dochechalsa(都體察使), recorded the facts of Imjin war. It is a very important material for studying Imjin war. Jingbirok contains information regarding the arrival of Waesa(倭使) before Imjin war and the dispatch of Joseon tongsinsa(朝鮮通信使). Jingbirok is very important material because it contains contents not in the Seonjosillok(宣祖實錄). Jingbirok has been an important subject since its publication. In other words, when the Seoin(西人), which took power as the Injobanjeong(仁祖反正), revised and published Seonjosillok, the book was used as an important source. Jingbirok was quoted as much in Seonjo-sujeongsillok(宣祖修正實錄). Jingbirok influenced many history books that explained about Imjin war. As relations with Japan became normal after the Imjin war, the Joseon tongsinsa had to read Jingbirok. Because Jingbirok contains precedents about Joseon tongsinsa. Jingbirok also had an important influence on Joseon"s diplomatic relations with Japan. Jingbirok was introduced to Japan, which greatly influenced academia and the public. Japanese scholars cited Jingbirok as a study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Regardles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any books were published titled Jingbirok. As such, Yu Seong-ryong"s Jingbirok influenced the modern culture of Japan as well as introduced to the Qing Dynasty.

        • KCI등재

          윤리적 리더십의 효과성에 관한 연구

          장준호(Jang, Jun-ho) 호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7 人文社會科學硏究 Vol.56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윤리적 리더십의 효과성을 규명하기 위해 윤리적 리더십과 동일시 간의 관계, 동일시와 부하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더불어 윤리적 리더십과 동일시 간의 관계에서 팀 결속력의 조절효과, 윤리적 리더십과 부하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 간의 관계에서 동일시의 매개효과를 실증하였다. 국내 지방 소재 12개 기업 439명의 종업원을 대상으로 수집한 설문을 분석한 결과, 윤리적 리더십은 상사동일시와 조직동일시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사동일시와 조직동일시 역시 부하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팀 결속력은 윤리적 리더십과 상사동일시 및 조직동일시 간의 관계를 조절하였고, 상사동일시와 조직동일시는 윤리적 리더십과 부하의 직무만족과 조직몰입 간의 관계에서 매개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윤리적 리더십이 상사동일시 및 조직동일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이며 부하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상사동일시와 부하동일시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윤리적 리더십과 상사동일시 및 조직동일시 간의 관계에서 팀 결속력은 이들 간의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상황요인임이 규명되었고, 윤리적리더십은 직접적으로 부하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상사동일시와 조직동일시를 통해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증하였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시사점 및 향후 연구방향과 한계점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effects of ethical leadership on identification and identification on subordinates' job satisfaction and organizational commitment. Additionally this study examines the moderating effect of team solidarit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ethical leadership and identification, and the mediating effect of identificat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ethical leadership and subordinates' job satisfaction and organizational commitment. Data from 439 employees in 12 different companies show that ethical leadership positively relates to identification, and identification positively relates to subordinates' job satisfaction and organizational commitment. Also result shows that team solidarity moder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ethical leadership and identification, and identification medi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ethical leadership and subordinates' job satisfaction and organizational commitment. Implications of the research findings are discussed, and recommendations for future research are provided.

        • SCOPUSKCI등재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