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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경 가행(歌行)의 형식미 연구

        이남면 ( Nam Myon Lee ) 민족어문학회 2011 어문논집 Vol.- No.63

        이 논문은 정두경 歌行의 형식미 구명을 목적으로 하였다. 정두경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시인 중 가장 古學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다량의 가행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본고에서는 바로 이 우수성이 사상과 주제의식의 훌륭함 때문만이 아니라, 사상과 주제를 도출해내는 방식에서 기인한 바 역시 크다는 인식에 따라 정두경 가행 창작의 실제를 ``변화``와 ``연결``의 측면에서 분석해보았다. ``변화``와 ``연결``은 바로 가행 창작의 성공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두경 가행에 나타나는 변화를 이덕무의 평가를 빌어 ``伸縮의 변화``로 규정하고, 이를 편의상 압운·구식·억양의 변화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정두경의 가행은 압운 방면에서 換韻과 함께 압운 거리의 변화를 통해 기세의 완급을 조절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두경은 정형의 법칙을 사용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변화는 시의 내용 및 분위기와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 변화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구식 방면에서는 우선 개두에 5언구를 사용하여 간략히 시작을 알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거나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정두경은 인물이나 지역, 사물, 깨달음 등 특정 내용에 한정하여 강조하고 싶을 때 시 중반에 9언구를 돌출시키기도 하고, 역시 시 중반에 갑작스레 5언구를 돌출시켜 환운을 대신하여 시상 전환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정두경은 결미에 의문형의 長句를 사용하여 자신의 격앙된 목소리를 강렬하게 표출시킴으로써 주제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편 억양 방면에서는 ``억→양``, ``양→억``, ``억→양→억``, ``양→억→양``으로 구분하여 살폈는데, ``긴장과 해소``, ``형세의 역전``, ``칭송과 비판``, ``감정의 기복`` 등 다양한 억양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중에는 ``억``과 ``양``의 편폭 차에 따라 후반부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편폭을 동일하게 하여 ``억``과 ``양`` 모두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정두경은 시상의 연결도 중시하여 過段을 설정하기도 하고, 이미지나 속성의 유사성을 가지고 두 사물이나 현상을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용어를 중복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거나, ``此``자를 사용하여 앞의 내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조응의 방식을 활용하거나 선련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연결방식은 개별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해보았다. Jeong Du-Gyeong(鄭斗卿) was a poet representing the 17th century and prominent person in the study of Chinese classics in Korea. He had left plenty of Ga-Haeng(歌行) works, writers in the late Chosun acknowledged the excellence of his Ga-Haeng. This paper analysis on real of Ga-Haeng creation of Jeong Du-Gyeong in the sides of ``change`` and ``connection``. This is why the excellence of his works came from not only distinction in thoughts and the subject but also the methods As a result, in the use of rhyme he delivered the subject effectively through changes of rhyme and rhyming interval. In the process he made constant changes in poem`s rhyme rather than followed set patterns. These changes make readers feel the beauty of change in harmony with contents and atmosphere. In the use of verse form he used verse forms with five words in the beginning frequently. It plays a role that triggers curiosity or gives hints on what is going to happen. He also used verse form with nine words in the middle when he wants to emphasize specific contents such as features, region, things and understanding. He exserted verse forms with five words in the middle abruptly for the changes of poetic concept. In addition, he emphasized subjects by using long verses of question in the end. On the other hand, there are many variations on intonation in his Ga-Haeng such as tension and relaxation, the reversal of situations, praise and criticism, emotional ups and downs. there are both to emphasize latter half of poem, and the whole of poem. On the other hand, he considered the connections of poetic concept. Thus he made various instruments for connection. He made a paragraph of connection, and combined image of similarity between two things, used same word in same position, connected preceding paragraph through use of ``Cha(此)`` word, and made use of correspondence(照應) or SeonRyeonChe(蟬聯體). This various connecting methods tend to be used compositely rather than individu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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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민주화와 ‘정의’ 담론

        문지영(Moon Jiyoung) 한국정치사상학회 2007 정치사상연구 Vol.13 No.2

        이 연구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늠할 하나의 지표로서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관한 논의의 터를 닦기 위한 시도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문제 영역에서 폭넓게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민주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한국 정치사가 정의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평가될수 있는지, 나아가 한국 정치사에서 정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왔으며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천착한 연구는 극히 드물다. 플라톤 이래 서양에서 ‘정의’가 중요한 정치철학적 주제였고 또한 정치의 최고 목적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서의 ‘정의’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논의의 빈곤은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민주화 과정에서 제기된 ‘정의’에 대한 인식과 ‘정의’를 위한 문제제기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어왔는지 탐색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배담론과 저항담론에서 정의는 당연한 정세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상이하게 규정되며, 역대 헌법의 정의 규정은 ‘균등’에 대한 전통적 가치와 함께 지배담론 대 저항담론의 역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과정에서는 정의’가 대체로 ‘민주주의의 회복’과 동일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의 현실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개념적, 실천적 차이 혹은 구별을 목격하게 하고 있으며, 정의와 불의의 전선 역시 좀 더 복잡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로써 필지는 이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 한국적 정의론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This study tries to understand Korean democratization process in connection with the idea of justice. Up to now the studies of democratization and of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thereafter have been widely performed in various areas. But we can hardly find the studies exploring the questions how Korean political history as a developmental process of democratization can be estimated in terms of the idea of justice, and how justice has been, and can be, understood in Korea. The poverty of academic discussions on justice in Korean society is very interesting and significant in comparison with the West in which since Plato justice has been one of the most important topics in political philosophy, being, at the same time, acknowledged as a primary political aim. In this article I consider various aspects of the conception of justice by concentrating upon discourses on justice, and further examine how justice has been related to democracy in Korean democratization process. This study reveals that the definition of justice in the dominant discourse was different from, and conflicting With, that in the resistant discourse, according as political situations. And the conceptions of justice embedded in successive Constitutions respect traditional value of 'equality', while reflecting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the dominant and resistant discourses. But we can observe that justice has been largely identified with (the recovery of) democracy in the democratization process. In Korean society after democratization, however, justice seems to be conceptually and practically different from democracy, and the border-line between justice and injustice is likely to be drawn in a more complicated way than before. Therefore through this article I suggest that Korean society needs develop its own discourse on justice which can guide the development of Korean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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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 정부광고의 크리에이티브 비교연구

        정성환 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 2013 브랜드디자인학연구 Vol.11 No.5

        정부광고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항상 논란이 되고 있으며,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또한 비용 대 효과라는 측면에서 지적과 비난이 있어 왔으나 이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TV정부광고를 비교하여 크리에이티브를 연구하였다. 연구결과는 첫째, 정부광고의 개념을 선행연구를 종합하여 다시 정의하였다. 둘째,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가치를 CV=E/C 즉, 크리에이티브 가치는(creative value)광고효과(effectiveness), 비용(cost)수식으로 정리하였다. 셋째, 한국과 일본의 정부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략, 광고소구, 정보내용, 창의력의 연구결과 한국과 일본의 정부광고의 주제와 소구방법에서 유의한 차이를 나타냈고 크리에이티브 전략은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광고의 창의력에서 한국의 정부광고가 우월하다는 조사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종합적인 연구결과 정부광고의 주제는 국가적 문제를 반영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적 차이와 소구방법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는 선행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광고주제에 따라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he proper function, disfunction and advertising creativity of government advertising were instigated arguments. Nevertheless it's not easy to find advanced researches concerned with it. S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about differentiation of advertising creativity between Korea and Japan TV government advertising through comparative study. First result of this study is to redefine about government advertising through advanced researches. Second result is to organize the value of creativity by CV=E/C, the value of creativity is to get maximum effectiveness through the minimum advertising by the formula. Creative strategy, advertising appeals, information, content, creativity were selected as elements of creativity. Focusing on the four elements to the four research questions were itemized in order to demonstrate the frequency were studied. Research Question 1 - The significant differentiation between themes of Korea and the Japan government advertising were found. Research Question 2 - The significant differentiation between types of advertising appeal of Korea and the Japan government advertising were found. Research Question 3 - The significant differentiation between advertising strategy of Korea and the Japan government advertising were not found. Research Question 4 - The significant differentiation between creativity of Korea and the Japan government advertising were found. Comprehensive study of Korea and Japan government advertising creativity as a result of previous research, cultural heterogeneity were reflected. Except advertising strategy, significant differentiation were found in other three elements of cre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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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담 정시한의 「사칠변증(四七辨證)」에 관한 연구

        서근식 ( Seo Geun-sik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8 한국 철학논집 Vol.0 No.59

        정시한은 72세에 「사칠변증」을 완성하고 이후에 제자 이식과 인물성동이논변을 벌인다. 정시한의 입장은 인물성이론의 입장이었고 이식은 인물 성동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물성동이논변은 잊혀지고 「사칠변증」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에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대립점에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비판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칠변증」을 완성하게 되는 데에는 이현일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이의 사단과 칠정에 대한 생각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라는 ‘혼륜(渾淪)의 입장’이었고, 이황은 사단과 칠정은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분개(分開)의 입장’이었다. 정시한은 분개의 입장에서 혼륜의 입장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사칠변증」을 통해 정시한은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였는가?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정시한이 제자 이식과 벌였던 인물성동이논변을 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현재 정시한의 「사칠변증」에서 이이를 비판한 사실은 알지만 정시한이 인물성동이논변을 벌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논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칠변증」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시한이 희망했던 희망하지 않았던 것과 상관없이 정시한 이후에 사단칠정논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익과 신후담, 정약용에게까지 「사칠변증」이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Jeong Si-Han(丁時翰) completed “Siqibianzheng”(「四七辨證」) at the age of 72, and later had the argument over Runwuxingtongyilunzheng(人物性同異論爭) with his disciple, Lee Sik(李栻). Jeong Si-Han(丁時翰) had the position of Runwuxingyilun(人物性異論) and Lee Sik(李栻) Runwuxingtonglun(人物性同論). Yet, the argument over Runwuxingtongyilunzheng(人物性同異論爭) had been forgotten and “Siqibianzheng”(「四七辨證」) could be acknowledged because Toegye school(退溪學派) and Yulgok school(栗谷學派) were conflicting and criticizing each other's stance at that time. It seems like Lee Hyeon-Il(李玄逸)'s “Liqulishilunsiduanqiqingshubian”(「栗谷李 氏論四端七情書辨」)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completion of “Siqibianzheng” (「四七辨證」). Lee Yi(李珥)'s thought of Siduan(四端) and Qiqing(七情) was ‘the position of Hunlun(渾淪)’ that ‘Qiqing(七情) includes Siduan(四端)’, and Lee Hwang(李滉) had the ‘position of Fenkai(分開)’ that Siduan(四端) and Qiqing(七 情) should be interpreted differently. Jeong Si-Han(丁時翰) criticized the stance of Hunlun(渾淪) from the position of Fenkai(分開). What did Jeong Si-Han(丁時翰) try to pursue through “Siqibianzheng”(「四七 辨證」)? This fact tends to make us forget the controversy over Runwuxingtongyilunzheng(人物性同異論爭) between Jeong Si-Han(丁時翰) and disciple Lee Sik(李栻). Now we know the fact that Jeong Si-Han(丁時翰) criticized Lee Yi(李珥) in “Siqibianzheng”(「四七辨證」), but don't care much about the fact that Jeong Si-Han(丁時翰) caused the controversy over Runwuxingtongyilun(人物性同異論). Why “Siqibianzheng”(「四七辨證」) has remained in our memory even though it was an important one? It might be because “Siqibianzheng”(「四七辨證」) had an impact on Lee Sik(李栻), Shin Hu-Dam(愼後聃), and even Jeong Yak-Yong(丁若鏞) in the process of summarizing the arguments over Siduanqiqinglunzheng(四端七情論爭) since Jeong Si-Han(丁時翰) regardless of whether Jeong Si-Han(丁時翰) had hoped it o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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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 악장 정재의 가무악 요소에 담긴 상징과 비유: 몽금척․수보록․문덕곡을 중심으로

        조경아 무용역사기록학회 2014 무용역사기록학 Vol.33 No.-

        이 글은 정재가 지닌 융합적 성격을 고려하면서, 정재의 의미에 접근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며 시작되었다. 특히 정도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그가 지은 악장은 조선시대에 표본적 역할 을 했으며, 이후 정재의 형태로 공연되어 대한제국까지 지속되었기에 그의 악장 정재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정도전은 1393년(태조 2) 7월에 태조에게 악장을 지어 올렸는데 그 중 <몽금척>․<수보록>․<문덕곡>이 나중에 정재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정도전 악장의 정재인 <몽금척>․<수보록>․<문 덕곡>의 가무악 요소에 담긴 상징과 비유는 무엇가? 그 상징이 어떻게 조선시대에 지속되었으며, 현재적 의미 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연구의 시기적 범위는 조선시대로 한정하며, 대한제국기를 포함한다. 연구방법은 정재가 기록된 사료와 도상자료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문헌연구방법을 택했다. <몽금척> 정재는 태조가 즉위 이전에 꿈에 신인이 내려와 천명을 상징하는 ‘금척’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금척’은 곧 ‘금으로 만든 자’인데, 신화에서 자[尺]는 왕권과 함께 생명력과 규범을 상징한다. 치어의 내용에 서 금척을 받을 인물의 조건은 문무를 겸하고, 덕이 있으며,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고, 백성들이 바라는 사람 이었다. 1인이 읊는 치어가 하늘 뜻을 대표한 것이라면, 12명의 함께 노래하는 창사는 많은 백성들의 뜻이라 는 것을 시각화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금척사에서는 ‘유덕’과, ‘백성들의 마음’을 강조했다. 창사를 부르면 서 점진적으로 춤도 확대되는데, 천 억대를 이어가라는 금척사의 메시지의 확대와도 상응하였다. 마지막 퇴구 호에서는 경계의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수보록> 정재는 태조가 즉위 이전에 이상한 글이 쓰여 있는 ‘이서’를 지리산의 석벽에서 사람이 얻었는데, 이후에 태조가 즉위하여 이 글이 실현되었다는 내용이다. <수보록>의 춤에서 핵심적인 상징은 ‘보록’이라는 무구이다. ‘금척’이 하늘에서 천명으로 신인이 내린 것이라면, ‘보록’은 살아있는 사람이 전해준 것이나, 왕업 이라는 상징은 상통한다. 춤에서 상징적인 인물은 지선(地仙)인데, <수보록> 악장에 없던 새로운 역할로 등장 했다. 보록사를 창한 뒤에 전체 6대의 18인의 무원이 이중으로 줄지어 세 차례 도는 춤동작은 창사의 내용이 모두 이루어지라는 온 백성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듯하다. <문덕곡> 정재에서는 백성들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문덕곡> 악장은 태조 이성계가 언로(言路) 를 열고, 공신(功臣)을 보전하고,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예악을 정리한 것을 치적으로 찬양한 내용이다. 표면 적으로는 공덕을 기리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정도전이 건의하여 진행 중인 네 가지 사안이 앞으로 조선왕 실에서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원이었다. 태조대에 만들어진 세 악장은 늦어도 태종대에 정재로 만들어져서 각종 의례에 쓰였다. 태종대에는 <몽금 척>과 <수보록>의 내용이 꿈에 일어난 일과 도참설일 뿐 태조의 실제 덕이 아니라고 비판받았으나 세종대는 다시 <몽금척>과 <수보록>을 활발히 공연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몽금척>만이 연향에서 자주 공연되었 으며, 대한제국 때까지 지속되었다. 정도전 악장의 정재는 신하로서 임금에게 하는 발언이자 제언이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부르는 악장을 단순 히 임금의 공덕이나 치적을 받들어 올리는 송덕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으로만 이해하면 평면적인 이해에 그치는 것이다. 오히려 정도전이 악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위정자로서 칭송받을 만한 공덕을 지니고 있어야 한 다는 ‘경계’의 시각과, 천명과 민심에 의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낮고 무겁게 깔려 있다. 정도전의 민 본사상이 그의 세 악장 정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정도전의 악장에서는 민심을 반영하는 좋은 국가 를 만들기 위해 군주로서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했다. 천심, 즉 민심을 떠난 왕과 왕실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고국정자의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 는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오늘날에도 정도전의 악장 정재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여전하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eaning and historicity included in the songs, dances, and music of performing court dance called as Jeongjae(呈才), especially songs written by JeonDojeon. Monggeumcheok(夢金尺), Suborok(受寶籙), Mundeokgok(文德曲) were produced by Jeondojeon during the reign of Taejo. His songs had a contained in the request as a puisne. The scope of time period for this research is from Joseon to Imperial Daehan(大韓帝國). The research objective is Joseon wangjo sillok(朝鮮王朝實錄), Akhakgwebeom(樂學軌範), all of source materials from official record of court event called Uigwe(儀軌), Jeongjae Mudo Holgi(呈才舞圖笏記) and many literary works. First, Geumcheok in Monggeumcheok Jeongjae symbolizes the command of the skies. Geumcheok to take upon command to convey the role of the god of the sky symbolizes. Yiseonggye was a metaphor for a man of virtue, in the song of Geumcheok. Depending on the song, the dance moves gradually expanded. Thaejo was a metaphor for a complete human, in the song. Depending on the song, turned into a big circle all the dancers, symbolizing hope was to receive all the blessings. Watch out for the end and leave a message. Second, Suborok can show the symbolic message of the land. Dancing tool called Borok is a key symbol. There are written prophecy, Yi Seonggye would become the king. These commands are passed to the land of the gods appeared in dance. Borok singing finished, all dancers turns into a circle. The circle is a metaphor, the content of the song want done. Third, Mundeokok can show the symbolic message of the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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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鄭宗榮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연구

        한성주(Han, Seong-Joo)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인문과학연구 Vol.0 No.67

        정종영(1513∼1589)은 47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중종, 인종, 명종, 선조의 네 임금을 섬겼고, 벼슬이 우찬성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그는 명종대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중에 ‘廉謹’으로 선발되었다. 염근은 청렴한 현직 관리를 일컫는 것으로 1551년(명종 6)에 처음으로 33명을 선발하였다. 1552년(명종 7)에 10명을 추가하여 최종적으로 44명의 염근이 선발될 때도 정종영이 포함되었다. 당시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고, 윤원형의 첩 정난정과 정종영이 숙질간이었지만, 정종영이 윤원형에게 붙지 않아 높게 평가받았다. 정종영은 선조대 동서붕당이 시작되면서 어느 쪽의 편을 들지 않고 신중하게 스스로를 지키면서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다. 특히 1575년(선조 8) 서인에서도 이조판서가 된 그를 동인에게 붙었다며 탄핵하였다. 우찬성이 되었을 때도 정종영에 대한 탄핵이 있었지만, 선조는 그가 삼정승에도 합당한 인물이며, 다른 사람처럼 굳세고 과격하지 않다고 두둔하였다. 이후 정종영은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77세였던 1589년(선조 22)에 나이가 많아 관직을 그만두는 치사를 청하여 허락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였다. 정종영이 치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치사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많은 관료들이 나이 70세를 넘으면 정종영의 예를 들면서 자신들도 치사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Jeong Jong-yeong(鄭宗榮, 1513∼1589) served the four kings of Joongjong(中宗), Injong(仁宗), Myeongjong(明宗), Seonjo(宣祖). He was selected as "Yeomgeun"(廉謹) during the period of regency by Queen Munjeong(文定王后) in Myeongjong. Yeomgeun means clean incumbent civil officer. Jeong Jong-yeong was criticized from both parties of Easterners(東人) and Westerners(西人) because he did not take part with each party and kept himself carefully_ parties of Easterners(東人) and Westerners(西人) appeared in King Seonjo. In 1575, he became Personnel minister(吏曹判書) but was impeached by Westerners in the reason that he was close to Easterners. When he became Woochanseong(右贊成), he was impeached again. Jeong Jong-yeong became a member of Giroso(耆老所) when he was over 70 years old. In his age 77, he returned to his home town, asking for Chisa(致仕) that means to quit job due to old age. There he passed away. After using Chisa(致仕) by Jeong Jong-yeon, Chisa began to be used again. After the case of Jeong Jong-yeong, many officials applied for Chisa, mentioning Jeong Jong-yeong, when they reached over 70 years old.

      • 단순 고환조직 이식방법을 통한 생쥐 성체 내 존재하는 정원줄기세포의 과밀화 및 체외배양

        임정진,김형준,조윤정,허영선,송승훈,이동률 한국발생생물학회 2011 한국발생생물학회 학술발표대회 Vol.30 No.-

        포유동물 생식세포를 생산하는 정자형성과정은 정원줄기세포 (spermatogonial stem cells, SSCs)가 일생 동안 정소 내 기저부에 존재하면서 계속적인 증식을 통해 그 수를 유지하고, 그 중 일부가 감수분열에 진입하여 남성생식세포인 정자를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신생 및 성체의 정원줄기세포는 의학과 접목하여 불임 및 저출산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사료되어, 이미 많은 연구자에 의하여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중 성체 정소 유래의 정원줄기세포는 신생 정소에 비하여 체세포당 비율이 매우 낮아 이를 분리하여 배양하기 위해서는 효율 높은 정원줄기세포의 분리 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인간에 적용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조직이식 방법을 통하여 성체 생쥐의 정원줄기세포를 과밀화하고, 이렇게 얻어진 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하고자 하였다. 6~8주령의 정상적인 정자형성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성체 생쥐 (BDF1)의 정소를 분리하였고, 정소 내 존재하는 분화된 생식세포를 줄여주기 위하여 면역이 결핍된 누드마우스의 등쪽에 이식하였다. 이때 생착효율을 알아보기 위하여 실험군은 3개 (whole testis under dorsal skin, slice testis under dorsal skin and whole testis in the abdominal cavity)의 그룹으로 나누어 이식하였다. 이식 2~4주 후 이식한 정소 조직을 채취하여 일부는 기존의 방법 (정소 조직의 이식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해서 조직이식을 시행 후 세정관내 존재하는 정원줄기세포의 비율을 조직화학적 방법으로 비교 분석하였다. 나머지 조직은 개개의 세포로 분리하여 정원줄기세포의 증식 및 유지에 필요한 성장인자 (GDNF, bFGF, LIF, EGF, IGF-1)를 첨가한 후 배양하였으며, 7~10일마다 계대배양하였다. 배양된 세포는 RT-PCR, AP staining, TUNEL staining, Immunocytochemistry 및 FACS analysis를 통하여 정원줄기세포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식 2주 후 3그룹 내 정원줄기세포가 포함되어 있는 비율은 각각 93% (13/14), 92% (12/13), 57% (4/7)로 나타났으며, 이식된 조직의 seminiferous tubules내에는 분화된 생식세포가 사라지거나 퇴화된 것을 확인하였다. TUNEL assays를 통하여 Whole과 Sliced testis 그룹에서는 7.3±3.3%과 8.3±3.9% 만이 세포사가 진행되는 세포를 관찰한대 반하여 Abdominal cavity에 이식한 군에서는 70.9±16.2%로 매우 높은 세포사율을 관찰하였다. 체외배양 기간 동안 정원줄기세포의 colonization 효율은 이식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하여 높게 관찰하였다. 조직 이식 후 배양한 성체 유래 정원줄기세포는 위 성장인자가 포함된 배양액에서 2.5달 (8계대) 동안 성공적으로 유지 배양되었다. 배양된 세포는 정원줄기세포의 특징인 AP activity를 강하게 나타냈으며, 표지인자인 Thy-1와 GFRα-1 또한 강하게 발현되는 것을 FACS와 Immunocytochemistry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또한 RT-PCR를 통하여 정원줄기세포 표지유전자 마커인 integrin β1, mvh, ngn3 mRNA는 강하게 발현되는데 비하여 생식세포 분화유전자 마커인 piwil2, stra8, c-kit, TH2B and TP-1 mRNA는 발현되지 않거나 약하게 발현되었다. 조직이식을 통하여 성체 내 존재하는 극소수의 성체 정원줄기세포의 분리 및 배양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생쥐 모델 시스템을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autologous한 조직이식을 통해 단순화된 방법으로 정원줄기세포 분리 및 배양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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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예악 정재(呈才)의 현대용어 재고

        이종숙(Lee, Jong Sook),김영희(토론자)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08 한국문학과 예술 Vol.1 No.-

        정재(呈才)란 “궁중무의 딴이름”이라고 정의된 것에서 비롯하여 무용학의 춤 분류에 혼란이 있었다. 본 연구는 궁중의 진연 등에서 사용된 ‘정재’라는 용어가 조선 당시 지방의 춤에 대해서도 통용된 개념인지 알아보고, 그 용어가 적절하게 쓰여야할 시간과 공간은 언제 어떤 곳이었는지를 역사와 문헌을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정재’는 춤의 기능성을 강조한 단어이고, 그 능력을 헌정(獻呈)하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한 상행구조의 용어라는 점을 사전 의미와 역사적 용례로서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정재’는 진상(進上)하는 잔치 때에 가장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계층상의 비교 하위적 단어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재’는 ‘어전 정재(御前呈才)’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하며, ‘어전 정재’는 다시 ‘궁중 정재’라는 말과도 의미상 통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정재’가 곧 “궁중무의 딴 이름”이라고 이해된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궁중 밖 지방 각 곳에서 연행된 동일 종목의 춤을 ‘교방정재’, ‘지방정재’라고 한 것은 궁중에 비교되는 타지역에 대한 장소적 관념이 강하게 개입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또 정재는 단순히 춤만을 지칭한 단어가 아니고 노래와 연주는 물론 곡예, 환술류도 포함한 광의의 통칭이며, 무(舞)에 대한 비교 하위적 관념의 기술(記述) 용어이므로 오늘날의 춤 종목을 일컫는데, 구태여 “궁중정재”라고 함은 궁중이라는 장소 제한성과 기능에 대한 계급적 편견을 현대의 공연문화에 수용한 꼴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재’라는 단어는 현대 문화에 적절하도록 춤 혹은 ‘무(舞)’, 무용(舞踊) 등 오늘 날의 용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Jungjae(呈才) was defined as "Another name of Court dance". That gave rise to confusion in classifying dances of Danceology. This research was done to find out whether the term, "Jeongjae" that was used for the court banquet was also used for the local dances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ill be examined when and where the term should be used through the history and written materials. According to the study of the literary meaning and historical usages of the term, "Jeongjae". it was the word that emphasizes the function of dance. "Jeongjae" was the term of going up structure that low-class people offered their talents to those of high-class. Therefore, "Jeongjae" is the most appropriate term when it is used for the banquet that is offered up to (the king or other member of royal family) "Jeongjae"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Eojeon Jeongjae"(御前呈才, Jeongjae offered to the king) and "Court Jeonjae(宮中呈才)" could also be used instead of "Eojeon Jeongjae" This is the background that they have understood "Jeongjae" is "another name of court dance". The same dances performed out of the court were called "Gyobang Jeongjae(敎坊呈才)", "Jibang(local) Jeonjae(地方呈才)". These are terms made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the concept of other place than the court. The term, "Jeongjae" is the common designation that indicates not only dance but also singing, playing instruments, acrobatics and magic arts. It is same as we accept the status prejudice of function and limitation of the place, "court" in modern performing culture. Therefore, the term "Jeongjae" should be converted to modern terminology such as "Chum(춤)", "Mu(舞)", or "Muyong(舞踊)",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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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문학론과 근대 문학 개념의 미분화 양상 고찰

        백지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民族文化硏究 Vol.56 No.-

        "정"은 근대 초기 문학 개념의 핵심어로서 전통적 가치 구도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계상을 형성하기 위한 기획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당시의 담론들이 근거했던, 지정의 삼분법에서 진선미 삼분법으로의 이행 경로는 "정-미"의 부각을 위한 분리와 배제의 논리였고 이로써 문학의 예술적 "심미화"가 점차 확립되어 근대 문학의 자율적 개념 또한 정착되었다고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미"를 문학의 중심에 두는 와중에 문학을 둘러싼 다른 맥락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거나 해소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의 문학"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근대 계몽기 이래의 "삼분주의"-"지덕체"의 교육론과 "지정의"의 심성론, "진선미"의 가치론 등-의 구도를 의식한 채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삼분법들이 표면적으로는 "분립적 병행론"의 성격을 띠고 각각의 가치들이 상호 대립하는 배타적 범주화를 초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 모순적 논리들의 혼매(昏昧)를 감안하고 본다면 실제적 혹은 심층적으로는 이미 삼분법의 제약을 위반하고 있었거나 애초에 분화 자체가 명확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복잡한 양상의 초기적 일면을, 특히 "정"이라는 용어의 특수한 용례들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정"을 개념화하기 이전 시기에 가령 "상무정신" 등이 담당했던 "계몽"의 역할을 마음의 자율로 떠안은 "정"의 영역은 지정의 삼분 구도에서 지와 의에 대등해지기보다 지와 의보다 월등한 위상으로 초월하였다(본론의 1절). 감정, 성정, 동정, 인정 등을 다소간 무차별하게 포함해버린 "정"의 거대한 범주는 진선미 삼분법에 의해 분화되는 가치라기보다 진선미를 모두 포섭해버리는 의의로 이어졌다(본론의 2절). 대략 이러한 전개를 통해 "정"의 다채로운 용법들을 살펴 정의 가치가 진선미 중 어느 한 쪽으로만 수렴되지 않았음을 입증하였고, 이 과정에서 전근대 시기의 문학 개량론들과 1910년대인들의 의식 사이의 유사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보기도 하였다. 이 시기 문학론들은 스스로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이론적 필요성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을 창안하려는 기획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예술적 자율성"은 언제나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미라는 형상의 개념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근대 문학의 예술적 자율성의 기원으로 여겨져 온 "정"의 개념이 정신력이나 가치관을 분화하기보다는 통합하는 "초월적" 위상에 놓여 있었음을 그 초기적 용법을 통해 고찰하였다. 이는, 이 시기 정의 개념에서 근대 문학의 예술적 자율성의 단초를 엿보았던 기존의 연구들이 "정-예술-미"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던 것을 보정(補正)하면서, 근대 문학의 "미적 자율체"로서의 위상은 진선미 삼분법에 의해 분할된 영역의 한 지점에서 결정되기보다 삼분법이라는 표면적 구도가 합체되거나 무화되는 지점에서 말해졌음을 보인 것이다. Generally Speaking, the concept of "Literature of Emotion" has been recognized as one part of "the Trichotomy"-ji·deok·che[智德體, Intelligence· Virtue·Physique] or ji·jeong·eui[知情意, Intelligence·Emotion· Volition] or jin·seon·mi[眞善美, Truth·Good· Beauty]- since the modern enlightenment period. However, it contained a lot of self-contradiction logically. The concept of "Literature of Emotion" has originated from the integrated point of three fields. It was already the violation of the classification. This article was investigated by a special usage of the term, "Jeong[Emotion]". The area of "Jeong" went beyond complex phase of three parts, rather than stayed at the comparable phase. (Section 1 of Ⅱ) Broad area of that term, including multiple meanings, subsumed all three parts and became to be the overall status. (Section 2 of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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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광고 제도개선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 : 계층적분석방법(AHP)을 중심 으로

        이희복,홍문기 한국광고학회 2020 광고학연구 Vol.31 No.4

        The implementation of the Government Advertising Law has given the legal basis for not only the concept, operation method, business consignment agency, and regulation method, but also specific penalties for related regulations. As a result, the fairness and transparency of government advertising were improved to efficiency and public interest of government advertising. However, it was required to find a way to improve the government advertising system, focusing on the problems with the government advertising agency. In order to suggest a system improvement plan, the opinions were collected by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method for experts(n = 17). The improvement plan was derived. According to the importance of the improvement of the government advertising trust agency, the experts found that the merits of unification were efficiency, fairness, effectiveness, and public interest. On the other hand, the merits of the pluralization were transparency, fairness, consistency, and ease, and the disadvantages were efficiency, economy, effectiveness, and public interest. The advantages of private opening are efficiency, ease, economics and transparency, and the disadvantages are public interest, fairness, effectiveness and consistency. As the role of the fiduciary as required by law becomes more important, organizational capacity should be strengthened, and new public utilities should be developed to meet the expansion of government advertising sales. In this process, a system should be prepared to educate the government's advertising-related experts. 정부광고법의 시행으로 정부광고의 개념, 운영방식, 업무수탁기관, 규제방식 등은 물론 관련규정에 대한 구체적 처벌조항 등이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정부광고의 효율성과 공익성 향상을 위한 정부광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제고되었다. 다만 정부광고 수탁기관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정부광고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의제시를 위해 전문가(n=17)를 대상으로 계층적분석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하였고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다. 전문가의 정부광고 수탁기관에 대한 개선방안에 대한 중요도에 따른 인식은 단일화의장점으로는 효율성, 공정성, 효과성, 공익성을 단점으로는 경제성, 용이성, 투명성, 일관성인 것을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복수화에 따른 장점으로는 투명성, 공정성, 일관성, 용이성으로, 단점으로는 효율성, 경제성, 효과성, 공익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개방의 장점은 효율성, 용이성, 경제성, 투명성으로, 단점은 공익성, 공정성, 효과성, 일관성으로 나타났다. 법에서 정한 수탁기관의역할이 더 중요해짐에 따라 조직역량을 강화해야하고, 정부광고 매출규모의 확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공익사업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광고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도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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