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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초기 ‘예술의 자율성'과 임노월의 예술지상주의 선언

          김명훈(Kim, Myong-hoo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한국문학과 예술 Vol.23 No.-

          1920년대는 조선에서 예술(문학)의 자율성이 본격적으로 개진된 시기로 문예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예술(문학)의 자율성이란 현실(인생)의 개조라는 역사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부문운동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이광수, 카프), 근대의 합리성 체계를 거부하고 예술을 특권화하기 위한 미학적 신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동인지 문인). 1920년대 조선에서 ‘예술지상주의'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해 전자의 입장을 가진 문인들이 후자를 비판하기 위해 활용한 용어이다. 본고는 형식논리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공백을 임노월의 예술지상주의론을 통해 미흡하게나마 채워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임노월은 오스카 와일드 번역을 바탕으로 예술지상주의의 3단계 테제를 정식화한다. 첫째, 임노월은 ‘현실=실재'를 거부하고 ‘감각-지각'을 초월할 수 있는 인식론적 전회를 요청한다. 둘째, 인식론적 전회를 위해 임노월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때 상상력은 단지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는 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초감각적인 정신의 능력으로 재규정되며, 이능력을 통해 예술은 ‘현실=인생'과 분리된다. 셋째, 초감각적인 정신의 능력을 통해 구성된 예술의 세계는 ‘현실=인생'으로 하여금 자신을 모방하도록 만든다. 임노월은 이 3단계 테제를 단지 비평 수준에서만 개진한 것이 아니라 창작과 삶의 지향을 결정하는 ‘사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사상' 때문에 자신의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임노월의 ‘삶=예술'이 예술지상주의라는 이름으로 잠시 도달했던 위치는 훗날 임화가 예술과 혁명을 인간의 유적 보편성 속에서 종합하고자 시도했을 때, 그리고 이상과 구인회 일부 문인들이 ‘미적 근대성'의 최대치에 도달하고자 분투할때, 그들이 보았을 환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던 어떤 경지였을지도 모른다. The 1920s was recorded in History of Literary, a time when the autonomy of art in Joseon was presented in earnest. It also means that the autonomy of the arts (Literature) is meant to as a section movement to practice the historical mission of reality(life), and also to demonstrate that it is an aesthetic belief to deny the modern legitimacy of the past, and to privileged the art. In the 1920s's Joseon, ‘Art for Art's Sake' was coined by writers with the former opinions about the autonomy of art to criticized the latter. This article written to fill this blank, which seems to exist only in formal format, with Lim No-wol's argument about Art for Art's Sake. Lim No-wol embodies Three-stage these of Art for Art's Sake based on Oscar Wilde's translation. First, Lim No-wol rejected the ‘reality=real' and asked Epistemological turn that could transcend ‘Sensation-Perception'. Second, He argued that we needed imagination for an Epistemological turn, then, Imagination is not merely limited to the ability to transform images, but rather to the ability of a super-sensitive psychic. Through this ability, art separates from ‘reality=life'. Third, the world of art, which consists of the ability of a super-sensitive psychic, force the ‘reality=life' to mimic art. Lim No-wol did not only state this Three-stage at critical levels but also made to Thought decide on direction of the creation and the life. And because of this Thought, it had to be a conflict with his own age. However, the position that Lim No-wol's ‘life=art' arrived briefly, it might have been a rebirth in the fantasy era when Im Hwa attempted to merge art and revolution into the universality of mankind, and when Lee Sang and some of the Guinhoe's writers and poets struggled to reach the maximum value of aesthetic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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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교육의 맥락에서 인문정신문화와 무용교육의 융합적 접근 모색

          김은혜,윤정옥,이지영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20 한국문학과 예술 Vol.35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suggest the direction of the future dance humanities education of the humanities and culture and dance education in the the context of culture and arts education. The concept of dance humanities was considered to develop dance-oriented culture and arts education programs in the field of culture and arts education where the importance of humanities and arts is emphasized, and the education program of humanities and culture and arts convergence that has been carried out in the meantime was analyzed.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ly, it is suggested that many dance humanities can acquire humanistic knowledge of dance so that many people can enjoy dance as a culture and arts, and that a culture and arts education program considering it is necessary. Secondly, the necessity of dance humanities education program was suggested for adults. Thirdly, it proposed the development of educational programs based on academic concepts and models, not simply providing dance activities and the contents of humanities. 이 연구의 목적은 문화예술교육의 맥락에서 인문정신문화와 무용교육의 융합적 접근을 모색하고 앞으로 무용인문학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인문학과 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무용인문학의 개념을 고찰하고 그동안 수행되었던 인문학과 문화예술 융합 교육프로그램을 분석하였다. 무용인문학은 사람들이 문화예술로서 무용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나아가 다른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에 무용의 인문학적 지식 습득을 고려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무용과 인문학을 융합한 프로그램은 무용교육과 인문정신문화의 상호성이 고려되어야 하며, 사회문화예술교육 맥락에서의 전 생애를 위한 무용인문학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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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한국 음악의 감성과 채동선 음악예술의 문화사적 가치

          이혜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한국문학과 예술 Vol.24 No.-

          This paper aims to review the cultural-historical value of music art by Chae Dong-Seon who led the import/settlement of Western classical music in the colonized Joseon of the 1930s. The music art by Chae Dong-Seon in the same way of doing activities for the first generation of Western classical music like Ahn Eak-Tai and Hyeon Jae-Myeong has been evaluated as establishing the basis of Korean modern music of nationalism by concentrating on the transcription/preservation of gukak(Korean classical music) and folk songs, on top of the characteristic like composing songs by borrowing poems by Jeong Ji-Yong. However, his whole works could not be revealed in public, so that the accurate activity contents were partially transmitted. Moreover, under the political chaos filled with the left-winger and right-winger right after the liberation, Chae Dong-Seon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basis of Joseon's art policies as a representative of the right nationalism camp, which was halted by the Korean War. Thus, this paper newly reviewed his music art by concentrating on the re-examination of his work activities and contents partially known so far, and also the modification of errors. For example, an accurate chronological list was written based on the scattered data by reviewing the contents/number of his composition that has been wrongly informed, and the process of modifying lyrics after Jeong Ji-Yong defected to North Korea. Just like Bach, Beethoven, and Brahms, the transmission of memories about an artist who pursued the high artistic ideals and lived a fierce life in the previous century is directly connected to people's love and respect, and finally, it gets the vitality. In this aspect, all the works to remember Chae Dong-Seon including the completion of an accurate chronological list and the restoration of the first data related to his work activities should be considered as joint tasks for our generation. 이 글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서양 고전음악을 수입하고 정착하는 데 선도했던 채동선 음악예술의 문화사적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안익태, 현재명과 같은 서양 고전음악 1세대의 활동과 궤를 같이 하는 채동선의 음악예술은 정지용의 시를 차용하여 가곡을 작곡했다는 특성과 함께 국악과 민요를 채보하고 보전하는 데 전념한 한편 해방 이후 한국 근대 민족주의 음악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그의 작품이 완전히 공개되지 못한 탓에 정확한 활동상이 부분적으로만 전해져왔다. 더욱이 해방 직후 좌우익이 정치적으로 난립하는 가운데 채동선은 우익 민족주의 진영을 대표하여 한국 예술정책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 역시 중단되고 말았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에 따라 이 글은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의 작품 활동을 재검토하고 오류를 수정함으로써 그의 음악예술을 재조명했다. 가령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있던 그의 작곡 내용과 작품 편수, 그리고 정지용의 월북 이후 가사를 수정해갔던 과정을 재검토하고 산재된 자료를 기초로 하여 정확한 연보를 작성했다.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철저히 발을 딛고 높은 예술적 이상을 추구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전 세기 예술가에 대한 기억의 전승은 곧 대중의 사랑과 존경으로 직결되면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런 점에서 채동선의 정확한 연표 작성은 물론 그의 작품 활동과 관련된 1차 자료에 대한 복원을 비롯하여 그를 기억해가기 위한 작업들은 우리 세대의 몫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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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잡지 『희망』에 수록된 시 연구 ― 전쟁 중에 발표된 시 중 발굴작을 중심으로

          염철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한국문학과 예술 Vol.24 No.-

          “Hope” is a magazine published during the Korean War, and is one of the critical magazines to study Korean war poem. 39 poems were confirmed to be published, in the magazine “Hope” from July 1951 to August 1953. Among them, there are 12 works that are not included in individual poems, selections, and collected works. The work of the twelve poems helped revive the Korean War poem. The result of this paper is four. First, Gong Zoong-in exerted a great influence on the magazine as a cultural manager and as a poet, and his poems mostly sang patriotic attitudes and romantic emotions in a very passionate manner. Second, Seo Jeong-ju tried to escape the tragic reality of the war by means of ‘race'. Third, Park Du-jin tried to fight the tragic situation of the war. Thus, the ‘sea' in his works represents the space of the ‘happiness of the people and races', not the space of escape. Fourth, Jeong Woon-sam wanted a peaceful world that represented the sea. However, he chose to suicide in front of the violence of poverty and war. It is known that he committed suicide in a coffee shop in Busan in 1953. But it is not true. On March 5, 1954, he hanged himself at his sister's house. In addition, we can check the history of the Korean War through a poem written by Jang Ho-gang, Han Seung-gwon and Kim Young-il. I think these results may contribute to research the overall aspect of korean poetry during the Korean War. 한국전쟁 중에 창간된 『희망』은 한국전쟁기 시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잡지 중 하나이다. 1951년 7월 창간호부터 1953년 8월 25호까지 『희망』에 발표된 시 중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39편이나 된다. 또한 이 중에 지금까지 개별시집이나 선집, 전집 등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12편에 이른다. 이 글에서는 이 12편의 시를 정리함으로써 한국전쟁기 시문학을 되살리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얻은 결론은 크게 네 가지이다. 우선 공중인은 『희망』의 문화부장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이 잡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의 시 작품은 대체로 애국주의적 태도와 낭만적 정서를 매우 격정적인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서정주는 ‘민족'을 매개로 전쟁이라는 참담한 현실을 벗어나려 했다는 점이다. 셋째, 박두진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과 적극적으로 대결하려 하였으며, 이 때문에 그의 시에 드러나는 ‘바다'는 단순히 현실도피적인 공간이 아니라 ‘민족과 인류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성격이 강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넷째, 정운삼은 ‘바다'로 상징되는 평화로운 세계를 갈망했지만 전쟁과 가난이라는 폭력 앞에서 자살을 선택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부산의 한 다방에서 음독자살한 것이 아니라 누나의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장호강, 한승권, 김영일의 시를 통해 한국전쟁기 시대상을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한국전쟁기 시문학의 전모를 밝히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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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을 활용한 한국어 읽기 교육 방안 연구 -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중심으로 -

          이정현(Lee, Junghyu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21 한국문학과 예술 Vol.37 No.-

          현진건의『운수 좋은 날』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고, 그 내용도 낯설지 않은 1920년대 사실주의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본고는 중등교육과정에 국어 교과서와 8종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지컬, 개그콘서트 코너 등 다양한 장르로 회자되고 있는 본 작품을 그 동안 한국어 교육용 교재에 제시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운수 좋은 날』을 한국어 교육 차원에서 교육적 효용성과 가치가 있음을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문학작품의 필요성과 『운수 좋은 날』이 교육적으로 어떤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가를 밝혔고, 이 소설을 고급 수준의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읽기 교육을 할 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읽기 전, 읽기, 읽기 후 단계로 나누어 교수-학습활동을 구체적으로 제안하였다. 『운수 좋은 날』은 유난히 ‘운수'가 좋은 날에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으로 작품 전체가 상황의 아이러니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반어법 사용을 통해 한국어 학습자가 표면상 의미 뒤에 숨어 이와는 대조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주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숨은 의미를 유추하며 읽기 교수-학습 활동하는데 적합한 작품이다. 이러한 활동은 한국어 학습자에게 보다 지적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소설 속 당대의 배경에 나타나는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문제에 대해 시공간과 인종을 넘어서 다양한 국적의 한국어 학습자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 학습자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여러 병페에 대해 말하기, 쓰기, 듣기 등의 다른 언어 기능들과 통합하여 교수-학습활동을 함으로써 동시대 현실적 문제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해결하며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본고에서 제안한 교수-학습 활동이 실제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고급 수준의 학문 목적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 적절히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Hyun Jin-gun"s 『A Lucky Day』 is one of the realistic short stories of the 1920s that Koreans have heard at least once, and it is pointed out that the middle school curriculum contains Korean language textbooks and eight literary textbooks, and has not been published in various genres such as animation, drama, musical and gag concert sections. To this end, based on existing discussions, we discussed the necessity of literary works and what educational value 『A Lucky day』 has, and proposed teaching-learning activities in pre-read and post-read stages on how the novel can be taught to high-level academic Korean learners. 『A Lucky day』 is an unusually good luck day to meet the death of his wife, and the entire work is made up of the ironic structure of the situation. Through the use of such irony, we will think about the effect of the way Korean learners hide behind the apparent meaning and express it in contrast. It is a work suitable for teaching-learning activities by inferring hidden meanings. These activities can arouse intellectual curiosity and interest in Korean learners and Korean learners of various nationalities will be able to contemplate and discuss the problem of economic and social polarization in the contemporary background in the novel. Korean learners will be able to discover, solve and grow new contemporary real problems by integrating various language functions such as speaking, writing, and listening to various diseases caused by capitalism in this era. In addition, it is hoped that the professor-learning activities proposed by the main school will be properly reflected in classes targeting high-level academic purpose learners at the actual Korean language education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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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삼 시에 나타난 미학적 죽음에 관한 연구

          최호빈(Choi, Ho-Bi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 한국문학과 예술 Vol.19 No.-

          김종삼 시에는 전쟁의 비극성, 종교적 가치관, 문학적 영향으로 해명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한 특별한 성격의 갈등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갈등은 예술과 죽음이 맺고 있는 강한 결속력에 대한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예술가 대부분은 자신이 이룬 높은 예술적 성취와 대조적으로 삶 또는 죽음이 비참했던 자들이다. 김종삼은 예술가의 삶을 살피면서 예술/예술가와 죽음의 관계, 즉 미학적 죽음에 천착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종삼의 죽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전봉래이다. 그는 1950년 전후에 활동하며 문단의 신진시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자신의 시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1951년 부산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전봉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김종삼은 그의 죽음을 시인이자 예술가의 죽음으로 받아들였고, 이 때문에 ‘시인의 자살'이 지닌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게 된다. 예술가의 자살은 일종의 예술적 행위로 간주되는데, 김종삼은 전봉래의 자살을 “유작”, “죽음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자살의 미학적인 특성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김종삼은 시작 활동 전반에 걸쳐 전봉래와 그의 죽음을 다룬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초기의 「G 마이나」(54년)와 「하나의죽음」(56년)에서김종삼은 친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관련지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地」(69년)와 「올페」(75년)에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최종적 동의를 전봉래에게 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인학교」(73년)에서 그는 전봉래의 자살을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직접적으로 내비친다. 한국시사詩史에서 시작활동 전반에 걸쳐 죽음을 미학적으로 접근한 시인은 김종삼이 유일하다. 이런 김종삼에게 전봉래는 ‘심우心友'이자 ‘시우詩友' 그리고 미학적 죽음에 대한 성찰적 의식을 구성하게 한 구체적인 계기였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며 김종삼 시를 살펴보는 일은 그간 논의되지 못했던 미학적 죽음과 관련된 사항들을 해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esthetic death in Kim Jong-Sam's poems. About the image of death appeared to Kim Jong-Sam's poems, previous studies had discussed in relation to the experience of the Korean war, the original sin, Rilke's poetry. However, there is a conflict unusual for death in his poems. It is for the strong unity between art and death. As is generally known, Kim Jong-Sam wrote the names of many artists in his poems. In contrast to the wonderful artistic achievements, most of them lived or died miserably. What he had an interest in the late style of artist, it means that he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death or between artist and death, aesthetic death. Jeon Bong-Rae, who is the elder brother of Jeon Bong-Geon, was a poet and translator who work at around 1950. He was in the spotlight as the rising young poets, but he committed suicide in Busan during the war. Kim Jong-Sam knew that Jeon Bong-Rae had a great literary, especially in french literature, and poetic talent. For that reason, he thought about Jeon Bong-Rae's death as an artist's death, not his friend's death. On the one hand, suicide is considered as an act of artistic form. Because death is the last object that artist want to complete aesthetically. Kim Jong-Sam wrote about Jeon Bong-Rae's suicide that it was the work of ‘death', which was the noblest and latest posthumous work. Also Kim Jong-Sam convinced himself to understand a aesthetics of ‘artist's suicide', and he actually had tried to commit suicide. Although the overall explanation of death consciousness is not available, it is certain that Kim Jong-Sam inspired in Jeon Bong-rae's suicide. It is confirmed in his poems. Above all things, he has described his own image to wait for die, in school of poets (1973), reenacting the process Jeon Bong-Rae committing suicide. Therefore, to review the work associated with Jeon Bong-Rae provide a new foundation to clarify an aesthetic death in Kim Jong-Sam'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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