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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의 조지훈과 민족문화 프로젝트

        고지혜 ( Ko Ji-hye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21 民族文化硏究 Vol.90 No.-

        이 논문은 1960년대 조지훈의 학술 활동을 조감하고 당대의 담론 지형 안에서 그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학인 조지훈’을 역사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1964년에 조지훈은 단독저서 1권과 공동저서 2권을 출간하고 잡지 및 학술지에 3편의 논고를 발표 했으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학술지 『민족문화연구』를 창간하고,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 및 출간했다. 이러한 조지훈의 학술 활동은 민족이라는 주체의 삶을 이루는 ‘거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는 작업, 이른바 ‘학(學)으로서의 민족문화’를 수립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즉, 조지훈은 ‘민족지 구축’과 ‘민족문화사 다시 쓰기’라는 방법론을 통해 민족문화학을 세우고자 했는데, 이러한 작업의 배면에는 면면히 이어 왔어야 할 단일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1920년대생 조지훈의 학술 활동은 언제나 ‘일본’ 혹은 ‘식민의 경험’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기에, 결국 조지훈이 몰두했던 것은 식민사학이 그토록 부정했던 ‘단일한 실체로서의 국가/민족’이 상정되고 작용될 수 있는 지식체계를 만드는 일이었으며, 이러한 ‘탈식민을 위한 욕망’이야말로 학인 조지훈을 추동하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지훈의 탈식민 민족문화학에 대한 구상은 식민지 조선학운동의 연구 성과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특히 최남선의 학술적 작업을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는 조지훈의 작업은 우리 민족문화(사)에 내재해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현시키는 학술 활동이야 말로 민족의 독자성과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을 전제한다. 이는 19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는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인식이기도 했다. 즉, 조지훈은 민족을 주체로 하는 ‘계보의 서사’를 상상하고 창출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작업에는 보편에의 충동, 달리 말하면 한국문화사/문학사에도 형이상(사상)이 있음을 증명해내고픈 욕망이 잠재해 있다. 이는 식민과 탈식민이 교차하고, 분단과 냉전체제 안에서 치열한 담론 투쟁이 일어나던 1960년대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며,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고 찾아내야 했던 (한)국학 연구자로서의 자기정립을 향한 의지이기도 했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scholar Cho Ji-hoon in terms of historical context by seeing the entire view of his academic activities in the 1960s and estimating the position within the discourse arena of that time. In 1964, Cho Ji-hoon published one single-authored book, two co-authored books, and three research papers in periodical and academic journal, issued the academic journal Korean Culture Studies as the Research Director of the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and planned and published An Outline of the Korean Civilization. His academic activities are converged into establishing the project of systemizing ‘almost all knowledge’ that comprise the life of ethnic group, so-called ‘national culture as academic studies’. In other words, he tried to establish national culture studies by ‘establishing ethnography’ and ‘rewriting national culture studies’. There underlain the problem consciousness that tradition and culture of a single race, which should have been passed on continuously, were not properly succeeded. Since the academic activities of Cho Ji-hoon who was born in the 1920s had no other choice but to rely on either ‘Japan’ or ‘colonial experience’, he focused on making a knowledge system that can introduce and apply ‘country and race as a single substance’, which was totally denied by the colonial academia. Such a desire for decolonization was an impetus for him. When it came to study contents and methodology, he substantially succeeded the academic projects of the 1920s colonial era Joseonhak movement, especially Choi Nam-seon. Here underlain the thinking that academic activities succeeding and manifesting mankind’s universal value inherent in the Korean ethnic culture history is the project of identifying race’s identity and existence value. This was the historical awareness of the intrinsic development which began to be discussed from the late 1960s. In other words, Cho Ji-hoon aimed to conduct the work of imagining and creating ‘description of genealogy’ which became the root of nation. Here underlain universality orientation―desire to prove that metaphysics exist in Korean culture and literature history. This is the spirit of the 1960s when colonization and decolonization combined and fierce discourse struggle took place in division and the Cold War and the will toward establishing oneself by researchers of Korean Studies who had to explore and discover ‘Korean things’.

      • KCI등재후보

        조선시대 문화 분류를 위한 <주제·양태 결합 분류체계> 연구

        김문용,이정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문학연구소 2003 民族文化硏究 Vol.38 No.-

        본 논문은 조선시대의 문화 현상을 논리적으로 범주화하고 그 개념적 거리와 계층을 정의함으로써, 원하는 정보에 대해 정확하고 빠른 접근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의 산물이다. 기존의 문화분류체계들은 문화의 주제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식과 문화 요소의 양태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식, 그리고 이 두 방식을 혼용하는 방식의 세 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문화의 주제에 따른 분류는 그동안의 학문적인 관용에 기초하는 바가 많아 연구자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양태 분류는 항목의 논리적인 분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시대적, 범세계적 보편성에로의 가능성을 많이 함축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본 연구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설계하면서, 이 두 방식의 장점을 모두 수용하였다. 그러면서 종래와 같은 무원칙, 무규칙적인 혼용을 피하기 위하여 주제 영역별 분류와 문화요소의 양태별 분류를 병행하고, 이를 각각 분류체계의 XY축에 매치하였다. 즉 하나의 문화현상을 영역과 양태에 따라 각각 분류하고, 이 두 분류값을 결합하여 최종 분류값으로 정하는 방식의 분류체계인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조선시대의 문화현상을 12개의 양태 항목과 75개의 주제 항목으로 구분하여, 종합 899개의 분류항으로 구성된 분류체계를 설계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분류체계는 앞으로 여러 차례의 시험 운용 과정을 거쳐 계속 확대, 보완해 갈 예정이다. This proposal aims at creating of a new classification system, which logically classifics cultural phenomena of Chosun Dynasty and defines the conceptual distances among and the stratum of the phenomena. This new system will help scholars to access to the necessary informations casily and swiftly. There have been existed three styles of classification systems: the stile based on the difference of the cultural subject, the style based on the ontological mode of cultural elements, and the mixture of the two. The first one has strength in convenience. Therefore many scholars, relying on the academic habit, used this system. The second, however, has other strengths. Since it is based on the logical classification among the items, it has potentials to be utilized synchronically and in the end world widely. The new system suggested in this proposal utilized the strengths from both systems explained above. Nevertheless, this system separates the result from the two systems and allocated each of them to the axis X and Y respectively in order to avoid the disorder caused by the lacks of principle and regulation in combining the two systems. As it were, certain cultural phenomena are classified base on their values in their subjects as well as modes, and combined into the final values. In this way the cultural phenomena of Chosun dynasty have been classified into the 12 mode items and 75 subject items, and 899 items are created in this system. This new system will be expanded and amended through the experimental 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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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0년대 문일평의 민족사와 문화사의 서술

        류시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0 民族文化硏究 Vol.52 No.-

        문일평(1888~1939)은 평북 의주 출신으로, 언론인, 교육가, 역사가로 활동했다. 본고에서는 그의 생애 가운데 국외 민족운동 및 삼일운동 참가시기(1913~1924)와 교사 및 기고활동 시기(1925~1932)를 중심으로 역사가로서의 문일평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시기는 중국 언론 매체에서 활동했고 삼일운동에 참가한 시기이며, 셋째 시기는 역사관련 기고 활동과 역사 교사로 재직한 시기이다. 이 기간동안 문일평이 교사, 언론인, 역사로 활동한 점은 연속되나, 일본유학(동경제대 문학부 사학과 동양사부 청강생)을 기준으로 삼았다. 역사가로서의 문일평에 관해 1) 신채호의 사학을 계승한 민족주의 사학자이며 2) 역사 대중화에 중점을 두었고 3) 역사 연구를 넘어서 조선 문화 연구에 대한 학문적 체계를 만든 '조선학 연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강행된 그의 개인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문일평은 '후기 문화사학자' 외에도 이병도, 최남선, 안확 등 다양한 역사·문화 연구자와 교륙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사학사 분류 기준의 높은 '장벽'을 거두면 당대 사학자의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문일평에 관해 신채호 사학의 영향을 받은 민족주의 사학자란 전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그의 텍스트를 당대 다른 문화사학자, 민족사학자의 연구 성과와의 비교 속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역사와 문화 연구가 그에게 지닌 의미가 무엇이며, 둘째, 민족사의 서술을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셋째, 문화사 연구의 검토를 통해 그의 '조선학' 연구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볼 때, 문헌고증을 강조한 문일평의 역사 방법론은 기존의 사학사의 분류 기준에 근거한 '실증사학'과 다르지 않았으며, 국수주의를 극복했다는 '조선심'의 논의에서도 과학적 연구 방법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일정한 '비약'이 존재했다. Mun Il-pung(1888~1939) was a famous Korean historian during the colonial period. He also worked at both a teacher and a journalist. He was regarded as a national historian on Korean history based on preceding researches. And he also evaluated as a pioneer of Korean Studies in 1930s. For the purpose of approaching his writing on Korean national and cultural history, this paper focuses on notions which indicated Korean culture through his articles and dissertations. In particular, I will examine the notion of Korean identity and thought which was called Chosun Sim(朝鮮心). This paper begins with several questions regarding colonial modernity, nationalism and the studies on the Korean culture and history in colonial Korea. Why do some Korean historians, especially not scholars but popular writers, emphasized the father of Korean history(DanKun), the lineage of Korean Nation? In oder to answer these sequential questions, I will focus on the case of Mun Il-pung' writings. He stressed the historical positivism and poplar historical books such as the textbook for students. It is need to examine of the competing and comparative texts during those time, Mun strove to established both rational writings and esthetics of nation mind through the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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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문화연구의 비판적 성찰; 한국 고전문학 연구에 수용된 탈근대, 탈민족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고미숙과 강명관의 논의를 중심으로

        강상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0 民族文化硏究 Vol.53 No.-

        본고는 2000년대를 전후로 한국 고전문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수용된 탈근대·탈민족 담론의 이론적 가능성과 한계, 정치적 효과 등을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특히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하고 비판적 고찰의 거점으로 삼은 것은 고미숙과 강명관이 제출한 탈근대·탈민족 담론이다. 이를 위해 2절에서는 탈근대·탈민족적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기존의 한국 고전문학 연구를 비판하는 고미숙과 강명관의 핵심적인 입장 혹은 논리를 탈근대주의, 탈민족주의, 탈문학주의라는 세 가지 논점들을 중심으로 검토해보았다. 이어서 3절에서는 고미숙과 강명관의 탈근대·탈민족 담론에서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거나 간과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필자가 제시하고자 한 논점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탈역사화된 근대 개념에 기반한 탈근대주의는 낭만적인 반근대주의·반문명주의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대=서구적 근대=자본주의적 근대'라는 등식이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한 '복수의 근대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고미숙에 의해 재구성된 연암은 표상체제의 동요를 통해 사회 현실을 내파하고자 하는 문화적 급진주의자의 형상에 가깝다. 민족/민족주의 담론 자체는 근대적인 발명품이지만, 중세에도 대외적인 종족의식과 대내적인 정치적 통합에 대한 관념은 존재했다. 탈근대적 문화 연구는 근대적 문학 연구에 의해 불구적으로 재단된 중세문학을 새롭게 재구성할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텍스트를 문화나 풍속의 한 풍경처럼 취급함으로써 텍스트에서 그 '깊이'를 제거해버리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ritically review the postmodernism/post-nationalism discourses that are in fashion within the study of Korean classical literature. This critique is targeted toward Go Mi-suk and Gang Myeong-gwan's discussions in particular, since they are the typical post-modernism/postnationalism theorists in the fields of classical Korean literature. Their logic and position can be summarized into three theses: post-modernism, post-nationalism, and post-literarism. These theses had a strong impact on both the academic society and popular readers, but they presented certain problems and issues. The absence of objective review about historical modern/modernity led to the romanticized notion of anti-modernti-civilization. Also, the equation of "modern=western modern=capitalist modern" is not always a valid one and the notion of "multiple modernities" should be considered. Surely, nationalist discourse is a modern construct, but medieval notion of ethnic and political integration that set people apart from what they have defined as the outside existed even before the modern. Post-modern cultural studies provide possibilities to reconstruct and rethink medieval literature that has been obscured and crippled by modern cultural studies, however, it also has a downside of depriving 'depth' of the textual interpretation by treating texts as mere part of some cultur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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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Dataset 구현 방안

        권순회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문학연구소 2003 民族文化硏究 Vol.38 No.-

        본 논문은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Dataset의 Data Scheme 설계 및 구현 방안을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데이터 세트는 다양한 주제와 형태로 구축된 데이터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초적인 틀이라 할 수 있다. DB의 소통성과 재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표준에 근거한 Data Scheme이 반드시 정의되어야 한다. 또한 설정한 목표에 맞게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조화하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통일된 지침과 설계를 기술한 Data Scheme이 매우 중요하다. II장에서는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DB 구성에 대해 소개하였다.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데이터베이스는 크게 1)GIS DB, 2)주제별 DB, 3)참조 DB로 구성된다. GIS DB는 Base-map과 주제별 DB의 내용을 Base map에 표현한 주제도로 구성된다. III장에서는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Data Scheme을 정의하였다. 주제별 DB의 Data Scheme은 ‘Header(ID, Index), Data, Link, Comment’의 이 4개 영역으로 구성된다. 참조DB에 주제별 DB에서 원전이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할 목적으로 구축되는데, 원전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사운드 인명DB, 지명DB (Gazeteer)로 구성된다. 본 논문에서 실제 전자문화지도 구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세밀한 표준적 지침을 제시하였다. IV장에서는 메타데이터(Metadata) 작성 방안을 제시하였다. 메타데이터는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 혹은 ‘전자 자원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요소’로서 자원의 위치 파악과 획득에 필요한 데이터 요소의 집합이다. 정보의 공유체계를 확보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메타데이터 작성이 필요하다. 먼저 ECAI(Eletronic Culture Altras Initiative)가 메타데이터의 표준적 방안으로 채택한 Doublin Core에 대해 검토하고, ECAI 메타데이터 표준안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들만으로는 조선시대 문화적 특성을 포괄할 수 없다고 보고 조선시대 문화의 다양한 주제 영역과 존재 양태를 포괄하면서 네트워크 환경에 적합한 호환성과 국제적 소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에서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메타데이터 표준안을 설계하였다.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메타데이터 표준안은 더블린코어와 ECAI 표준안을 근간으로, ‘조선시대 문화 분류 체계’, 사부분류법(四部分類法)’, ‘조선시대 행정구역의 군현 코드표’ 등을 반영함으로써 조선시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도록 하였다. In this paper, I proposed plan to materialize the dataset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I also presented a design for the data scheme and its materialization plan. The dataset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would be the most fundamental frame to organically combine and utilize diverse electric data, which are differently arranged by diverse subjects and forms. To circulate and utilize a DB actively, there must be a standard data scheme. A data scheme having unified principle and design is required to meet this need. In chapter II, I introduced the DB’s structure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The atlas is composed of three parts of the DB: the GIS DB, the cultural subject parts’ DB and the reference DB. The GIS DB is again composed of two parts: the Base-map and the several maps of subjects which are drawing the contents of the cultural subject parts’ DB on the Base-map. In chapter III, I made a definition for the data scheme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The data scheme of cultural subject parts’ DB is composed of four parts: the header including ID and index, data, links, and the comments. This scheme is made for the use of finding more concrete facts or original sources in the reference DB beside the cultural subject parts’ DB, thus it includes the original texts, Image, moving pictures, sounds, and the DB of personal names and the gazetter. I presented detailed standards to utilize the electric culture altras practically. Chapter IV is about making metadata. Metadata means the data about data. It is the data needed for describing electric sources, thus metadata is the collection of data necessary to find the location of the sources. Making metadata is necessary to confirm the information communizing system and to actively utilize the system. In chapter Ⅳ, I examined the Doublin Core which ECAI, the Electronic Culture Altras Initiative, takes as its standard program of metadata, and I investigated the standard devices of metadata of ECAI. As a result, I found out that the characteristics of Chosun Dynasty Culture cannot be comprehensively captured only by the standard devices of metadata of ECAI, thus I designed a new device of metadata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This new devise can interact throughout the network effectively and accomplish international interaction. The new devise also can comprehensively capture diverse facts and various subject parts of Chosun Dynasty Culture. The standard devise of metadata of the Electric Cultural Atlas of Chosun Dynasty is based on the Doublin Core and the standard devise of ECAI. On the basis of it. The new devise includes classification system of Chosun Dynasty Culture, four-parts-assorting-methods(四部分類法), and the code list of the administrative regions Chosun Dynasty(조선시대 행정구역 코드표), thus the devise is expected to fit better for the characteristics of Chosun Dynasty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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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의 한국사 연구 ―민족 정신사 수립의 길―

        조형열 ( Cho Hyong-yerl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21 民族文化硏究 Vol.90 No.-

        자신의 학문을 민족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했던 조지훈은 신칸트학파의 영향 아래 한국학과 한국사 연구에 들어섰다. 한국사는 한국학을 구성하는 핵심이었으며 그의 실천의 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조지훈은 전통을 계승의 대상이자 가치 창조의 주체로 삼아 민족주체성을 바로 잡고자 했고, 한국사의 체계화를 모색했다. 또한 한국사의 독자성을 찾고 세계사와 견주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자연적·외적 조건에 인한 영향을 조화·융합하면서 한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원효의 철학과 동학사상을 이와 같은 전범으로 내세웠으며 한국사를 보는 주체적·개성적 시선을 갖는 것이 ‘한국적’ 방법이라고 집약했다. 조지훈의 한국사 연구 영역은 문화사, 그 가운데 정신사(精神史)에 해당했다. 그는 민족이 조선 세종대에, 민족의식은 왜란·호란을 거치며 형성된다는 것을 시작으로, 실학운동-홍경래의 난-삼정 소요-갑신정변-동학혁명-갑오경장을 통한 민족의식 발달사를 체계화했다. 또한 독립운동도 정신사의 범위로 끌어들여 3·1운동-6·10만세운동-광주학생운동 등 민중의 독립투쟁을 높게 평가했고, 사회주의도 민족의식의 범위 안에서 수용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조지훈의 한국사 서술은 민족의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규범적·윤리적 성격이 강했으며, 이는 사회 모순으로 인한 역사발전을 강조한 당시 소장 연구자의 내재적 발전론과 차이가 있었다. 조지훈은 한국학이 처음으로 공론화되던 1960년대 초에 한국사 연구를 통해 한국학의 역사적 흐름을 확인하고, 정신사 연구의 경험을 통해 한국학의 방향을 모색했다. 따라서 조지훈의 한국사 연구는 민족 중심 한국학과 민족문화운동의 설계도로서 의미가 있었다. Cho Ji-hoon, who understood his scholarship as part of the national cultural movement, began to study Korean history under the influence of neo-Kantians. Korean history was the core of Korean studies, and an important means of revealing his practical consciousness. Cho Ji-hoon wanted to make tradition the target of succession and the subject of value creation, and rectify the national identity, and sought to systematize Korean history. He also attempted to find the identity of Korean history and compare it with the world history, and believed that Korean history would develop through harmonization and convergence with natural and external conditions. He thought of Wonhyo’s philosophy and the thought of Donghak as examples thereof, and said in summary that having the subjective and individualistic viewpoint of Korean history is the ‘Korean’ method. The research area of Cho Ji-hoon’s Korean history corresponded to cultural history, and particularly, intellectual history. Having started with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ity under the reign of King Sejong and the formation of national consciousness during the Japanese and Manchu invasion, he systematized the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national consciousness through the Silhak Movement, Hong Gyeong-rae’s Rebellion, the Samjeong Riot, the Gapsin Coup, the Donghak Revolution, and the Gabo Reformation. He also include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range of the intellectual history, and thought highly of people’s struggle for independence, e.g. the March 1st Movement, the June 10th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and tried to accommodate socialism within the scope of national consciousness. Cho Ji-hoon’s description of national consciousness had a strong normative and ethical personality that gives absoluteness to national consciousness,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internal development theory of the young researchers of those days who emphasized the development of history due to the contradictions in our society. Cho Ji-hoon verified the historical genealogy of Korean studies through the research of Korean history in the early 1960’s when Korean studies came under the spotlight for the first time, and sought for the direction of Korean studies through the experience of studying intellectual history. As a result, Cho Ji-hoon’s study of Korean history became the blueprint of the nation-centric Korean studies and national cultur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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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중반 임화와 홍기문의 사회주의 민족어 구상

        임동현 ( Lim Dong Hyun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7 民族文化硏究 Vol.77 No.-

        임화와 홍기문은 조선어학회의 언어규범화운동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민족어를 주장했다. 임화와 홍기문은 민족을 하나의 형식으로 이해했고, 그 안에 프롤레타리아적 문화요소를 채우는 것을 사회주의 민족문화라고 보았다. 민족어도 언어가 사회경제적 조건에 규정된다는 유물론적인 인식과 언어의 발전은 언어 간의 상호접촉으로 진행된다는 언어관을 기반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임화와 홍기문은 사회주의 언어관을 바탕으로 다수 인민이 사용하는 일상어를 표준어로 제시했다. 조선어학회의 표준어가 노동계급의 언어를 간과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언어를 강제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조선의 부르주아 계급은 사회경제적 한계로 인해서 독자적인 문화수립의 역량이 없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언어규범화운동을 사회주의자들이 대신 진행해야 했다. 임화와 홍기문이 말하는 다수 인민은 노동자·농민이었다. 이들은 언어 인구의 다수를 차지했고, 고유한 조선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표준어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임화와 홍기문은 사회주의 민족어를 만드는 방법론에 있어서 입장이 달랐다. 언어 학자였던 홍기문은 민족어 규범의 통일화와 표준화에 필요한 근대적 시스템이 식민권력에 장악되어있기 때문에 언어규범화운동은 해방 이후의 사업이고, 식민지 상황에서는 조선어 정리만 해야 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반면에 임화는 사회주의 문학가들을 통한 민족어 형성을 구상했다. 문학을 통해서 노동계급의 일상어를 표준화하고 문학작품을 통해서 전국적인 통일화를 이루려고 했다. Lim-hwa and Hong Gi-mun asserted the Socialism National Language during criticized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language movement by the Korean Language Society. Lim-hwa and Hong Gi-mun understood the Korean nationalism in a single format, and asserted the Society National culture with proletarian cultural constituent. They also asserted that The native Korean base on the perception with materialism, what is provided with social-economic condition, and view of language in the development of the mutual linguistic contact. Lim-hwa and Hong Gi-mun suggested ordinary Korean, what was used by most of the proletarian on the Social linguistic, as standard native Korean. They criticized to standard Korean without ordinary Korean of the proletarian by the Korean Language Society. In addition, Korean bourgeois do not have any capability. for separate cultural establishment cause of lack of the social-economic condition. So they want to lead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language movement by the socialist. Proletarian and farmer were set as 'the people' by Lim-hwa and Hong Gi-mun. These people positioned most of using indigenous and ordinary Korean. So it was the main reason for the standard Korean. However there are different stance to makes the socialism standard Korean between Lim-hwa and Hong Gi-mun. Hong Gi-mun, who was a linguist, asserted that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language movement is a work after independent, because modern system, which for the harmonization and standardization, was dominat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Also he asserted linguistic arrangement of the Korean first at that time. Meanwhile Lim-hwa formulated native Korean by socialism literary people. He formulated proletarian ordinary lan-guage and nationwide by literary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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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종교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종교문화

        박종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9 民族文化硏究 Vol.85 No.-

        In order to fully explore the cultural identity of Korean religions, it is necessary to compare internal perceptions and external perspectives on them, and to note how the individuality of religious culture is continuously reconstructed in various historical developments and complex cultural contexts.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confirm the trends that apply to various categories of Korean culture beyond the category of religious culture. This article presupposes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religious amalgam, which is reflected in the eyes of foreign Protestant missionaries, as the intercultural action of the 'family of religions’ that many religious traditions in Korea have constituted. I reviewed some patterns of ‘family religion’ in which various individual religious traditions were complex and stratified at specific historical moments and cultural contexts. This study discusses the appropriation of filial piety and family values in a different context. ‘Family religion’ was developed as an aspect of family culture emphasizing kinship based on blood ties. In modern Korea, the symbolism, rituals, doctrines, and cultural aspects of religious culture are already changing from father- centered family religion to mother-centered family religion, moving from one-centered to dual/pluralist centers, and shifting from the vertical to the horizontal. In this article, I have examined the continuing and transformation of family religion in Korean religious culture by examining these cases. 한국종교의 문화정체성을 온전하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내부의 인식과 외부의 시선을 비교 검토하고 종교문화의 개성이 다양한 역사적 전개와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양상을 주목하면서, 그러한 흐름이 종교문화의 범주를 넘어서서 한국문화의 다양한 범주에서도 적용되는 양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외국 개신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타자의 눈에 비친 혼성적 한국종교문화의 특징을 한국의 종교가 구성해온 ‘종교가족’의 상호문화적 작용으로서 전제하고, 다양한 개별적 종교전통들이 특정한 역사적 계기와 문화적 맥락에서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구성해온 ‘가족종교’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특히 의례문화와 공동체문화 뿐만아니라 개별종교의 교리 전개에도 일정하게 끼친 영향과 더불어 각 종교들의 차별화된 맥락에서 효와 가족의 가치들을 재전유하는 양상을 논의하였다. 또한 ‘가족종교’의개성이 혈연적 유대관계를 강조한 가족문화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로 와서 종교문화의 상징과 의례, 교리와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아버지 중심의 가족종교에서 어머니 중심의 가족종교로, 일원적 중심에서 이원적/다원적 중심으로, 수직적 측면에서 수평적 측면으로 이행하는 흐름을 통해 한국종교문화에서 가족종교의 지속과 변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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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연구>의 인문학적 의미와 전망

        김흥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문학연구소 2003 民族文化硏究 Vol.38 No.-

        우리의 과제는 시간-공간-주제의 다차원 구조를 가지는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Electronic Cultural Atlas)를 개발하고, 이를 응용하여 조선시대 문화에 관한 대규모의 입체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는 문화 표현의 근본적인 조건을 좌표축으로 하는 입체적 구성을 가지도록 설계된다. 주제 축은 유형별 분류체계 속에서 문화의 내용을, 시간축은 그 문화가 생성, 변이, 소멸되는 역동적인 과정의 전체를, 공간축은 실제적인 존재의 영역들을 표시하여, 이 다면적 연관 속에서 문화 현상을 총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선시대의 전자문화지도뿐만 아니라, 향후에 구축될 인문학 분야 전자 자원의 국제적 소통을 위한 자료 처리의 표준적 방법을 확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우리는 조선시대의 문화를 종합적이고도 연관된 틀로 체계화하려는 대규모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서 과제 참여자들이 지닌 전문 분야의 지식을 최대한 수합하고, 나아가 전공 영역을 넘어서서 조선시대 문화 전반을 투시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확보하고자 한다. 인접 전공과 소동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전문영역에 거점을 두면서도 거시적인 연관을 동시에 탐사하여 시간·공간·주제를 인식의 기본 틀로 삼는 새로운 방법론의 체계를 개척하고자 한다. 분야별 문화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이를 응용할 개별 연구의 성과를 집약하여 본 과제는 궁극적으로 조선시대 문화에 대한 인식의 기본구도와 통합적 이해 체계를 공동연구의 성과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로써 조선시대의 문화 현상이 근거하고 있는 미시적인 지반에서 인접한 事象들과의 거시적 연관이, 시공간의 조건에 따른 동일성과 차이점 또는 지속과 변화라는 역동적인 측면들이 해명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조선 문화 전체의 특징적구조 내지 문화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Our project team’s main task is to develope the electronic cultural atlas of Chosun Korea which is constituted by multi-dimensional structure such as time-space-theme axises, and to apply this atlas to the cubical study of the Chosun Korea’s culture. The Electronic Cultural Atlas of Chosun Korea will be constructed to have cubical structure which is intended to place cultural features in the coordinate axis. Theme axis will treat cultural contents in typological classification system, Time axis will manage total culture process - formation, mutation, extinction, and the space axis will show the territory of actual features subsistence. By knowing cultural phenomena multi-dimensionally, We will reconstruct existing system to understand cultural phenomena totally. Performing this project, we will establish humanistic data processing standard which facilitate international communication, and construct the electronic cultural atlas of Chosun Korea. To construct large scale database which systemize the culture of Chosun Korea totally and consistently, we collect all the participating researcher’s knowledge. Furthermore, we intend to make each researcher get macroscopic perspective that can overview the whole feature of Chosun Korea’s culture. In doing this interdisciplinary research, our team researchers concentrate on their own major field and explore macroscopic connections, and finally develop new methodological System which adopt time-space-theme axises as a recognizing frame. By Constructing cultural database in each sphere, and integrating applied individual research output, our project team intends to present a basic planning of recognition and a synthesized understanding system as output of our joint research. I believe that our project team will make clear adjacent feature’s macroscopic connection in the microscopic basis which is the base of cultural phenomena in Chosun Korea, and elucidate dynamic features such as ‘identity and difference’ or ‘continuance and change’. Also I wish our project contribute to understanding unique structure or cultural paradigm of total Chosu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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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적 가치의 대중적 수용과 통제의 메커니즘 : 1950년대 대중서사의 부부/가족 표상을 중심으로

        이선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1 民族文化硏究 Vol.54 No.-

        1950년대 전후 한국사회에서 미국문화는 전쟁의 고통과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새로운 문화적 출구로 인식되었다. 미국문화는 미국영화를 비롯하여 미군부대의 미제물건 등을 통해 실감적인 것으로 체험되면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이에 상응하여 이런 문화적 영향을 통제하고 조율하려는 담론도 공존한다.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성적 자유를 주제로 한 여성문화의 변화를 통제하려는 문화적 상징들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논문은 1950년대 중 후반의 미국문화 수용의 양상과 미국문화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문화적 상징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950년대 미국문화는 일상문화로서 전면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대중표상으로는 조율/통제의 메카니즘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이 문화적 영향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편한다. 이 과정을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문화가 유입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자기발견의 문제나 성적 자유가 가장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연애와 결혼, 가족문화 영역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가족문화의 변화는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윤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거부감이 심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다. 새로운 문화현상으로서 자유를 통제하는 서사적 충동은 "왈순아지매"를 거쳐 "로맨스 빠빠"에 이르러 강력한 통제의 메카니즘으로 자리잡는다. 가부장의 권위를 중심으로 통합된 행복한 가족의 표상은 자유를 찾아 단독자가 된 개인 서사를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의심하게 하는 규범으로 역할한다. 가족의 복원을 지향하면서도 개개인의 서사에서 출발하고 있는 『자유부인』과 같은 작품은 더 이상 대중문화적 상징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1956년과 1959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시기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American Culture in the 1950s' was regarded as the exit. Koreans falled into despairs after the war, and they were interested in American Culture for gaining their feets. Koreans regarded American Culture as American Film, American fancy goods (comming from PX), and micellanious things for American life style. But most Koreans thought that American Culture was connected to American democray, for example, gender equality. Therefore, American Culture influenced the social reration and social consciousness. And then, the regulating mechanism for American Culture was formed in the same time. "Madame freedom"(novel), "Walsoon Ma"am"(cartoon), and "Romance Papa" (film) were the symbols of regulating.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acceptance of Amenrican Culture and the meaning of regulating. First of all American Culture changed the female culture and life style. Women hoped to emulate American movie star, because they had lived not a person but a moral standard. Women hoped to love and marry according to their favor. Then love affairs, an idea of marriage, and family life changed in the city(Seoul). It could be evaluated that Korean female life style and family life changed to American democratic life style. But Korean morality became into conflict this American Culture. Korean morality, for example, paternalism began to regulate the new trend. "Madame freedom"(novel), "Walsoon Ma'am"(cartoon), and "Romance Papa"(film) were the representations of regulating. Especially Romance Papa became the symbol of democracy as the considerate and attentive "Father". The development of regulating American Culture was like the process exchanging American democracy to Korean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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