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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1910년대 최남선의 『자조론』 번역과 "청년"의 "자조"

        최희정 ( Hee Jung Choi ) 한국사상사학회 2011 韓國思想史學 Vol.0 No.39

        이 연구는 한말과 1920년대 ``자조론`` 번역 사이에서 육당의 『자조론』(1918)번역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조론』 번역을 계기로 한말에서 1920년대로 ``자조``의 사회적 의미가 변화되는 것을 ``청년``의 인식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육당은 근대 지식인 ``청년``으로서 『자조론』 번역의 주체인 동시에 독자 대상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자조론』 번역은 육당으로 대표되는 1910년대 ``청년``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자조론``은 한말 언론에서 대한제국의 ``자강``과 ``독립``을 말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서 번역되거나 소개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 ``자조론``이 번역되었을 때, 그것의 키워드 ``자조``는 ``청년`` 개인의 ``입신성공``을 의미하였다. 한말에서 1920년대로 ``자조``의 기능과 의미가 전환되는 시발점이 육당의 『자조론』 번역이었다. 『자조론』 번역에서 ``자조``는 한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여 개인윤리 덕목으로 범주화되었던 것이다. 육당의 ``자조론`` 이해는 한말에서 식민지 국가로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달라졌다. 한말에는 육당 또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조론``을 이해하였지만, 『자조론』 번역에서 ``청년`` 개인의 식민지 진출을 조장하는 ``자조진명주의``를 주장하였다. ``자조진명주의``는 ``청년``이 인내와 근면 곧 ``자조``로서 ``문명진보``를 추구하는 정신자세로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1910년대 급선무는 식민지 해방이 아니라 개인의 인내와 근면을 통한 문명의 진보였다. 『자조론』의 독자 ``청년``은 과거 선배가 없는 단절적인 존재로 상정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의 과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육당의 역사인식이 반영된 것이었다. 따라서 ``문명진보``를 논리로 하고 있는 ``자조진명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과거 조선의 근간이 되었던 양반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결국 자조진명주의는 1910년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불행한 조선의 현실을 과거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과거 상층 지배층이었던 양반에 비하여 열등한 신분적 배경을 가진 중인 출신 육당의 입장이 투영되어 있었다. 식민지는 중인 출신 육당에게 과거의 신분적 배경이 원활히 작동되지 않는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였다. 서구 근대 지식 ``자조``를 활용한 ``자조진명주의``를 통하여 청년의 식민지 사회 진출은 객관적으로 정당화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조진명주의``가 1910년대 주장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3.1운동 이후 한국 지식인들이 분열된 근본적 요인을 일본의 식민정책 보다는 식민지를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였던 육당과 같은 ``청년``들이 존재하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meaning of Self-help translated into Korean(自助論) by Choi Nam-Sun(崔南善) in 1918. It is a turning point in changing of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the keyword of Self-help translated into Korean in the late of Great Han. The concept of ``self-help`` was the same meaning as ``Self-Strengthening``(自强) in the late of Great Han. In 1920``s, it changed one`s attention personal success(立身成功). Specifically, I try to relate thought of ``Youth(靑年)`` to change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Youth`` had been regarded as readers of Self-help even before the publication of this book. Choi Nam-Sun is the subject to translate Self-help and the object to read this book at the same time, because he was a young man educated in modern schools. Therefore I have a point of view to examine Self-help as represented thought of youth in 1910s such as Choi Nam-Sun. When Self-help was first introduced in newspapers and journals in the late of Great Han,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was conceptualized into national ideology. But in 1920`s, as Japanese colonial rule changed the military into enlightened administration,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was changed to personal success. It was Choi Nam-Sun who led this transform. The interpretation of Choi Nam-Sun was the occasion which ``self-help`` was related to personal affairs. In the late Great Han, Choi Nam-Sun understood Self-Help was different from to become a Japanese colony, the first phase of Japanese rule, 1910-1919. He understood Self-Help conceptualized in national ideology such as newspapers and journals. But he insisted on the concept of Self-Improvement(自助進明主義) when Self-Help was translated by himself in 1918. Choi Nam-Sun tried to encourage youth to go forth into colonial society. This point of view reflects that the most urgent necessity for Korean is to advance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rather than to gain independence from Japanese imperialism. Youth, the readers of Self-Help, were assumed to be discontinuation of previous ages, because Choi Nam-Sun had been negative thoughts about the dynasty of Choson. He was of the intermediary class(中人) extraction. The content of Self-Improvement, claimed by Choi Nam-Sun, was used to criticize the system of yanban(兩班). Self-Improvement implies the spirit of youth has to pursue the advance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with diligence and endurance. In short, yanban, the ruling class of Chosen dynasty was blamed for the main culprit of Japanese colonization. His criticism veiled his social position in the dynasty of Choson. The colonial period allowed Choi Nam-Sun to achieve his full potential which hadn`t been materialized in the Choson dynasty due to his birth background. Youth to go forth into colonial society could be justified by the concept of Self-Improvement, which is a word derived from ``self-help`` of western modern knowledges. In conclusion, Self-Improvement claimed by Choi Nam-Sun in 1910s, demonstrates the division among intellectuals in Korea since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not because of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but because of youths in Korea society such as Choi Nam-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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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30년대 출판경영인 최연택(崔演澤)의 야담집 기획과 출간

        최희정 ( Choi Hee-jung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0

        이 연구는 1920∼30년대 야담 출판물을 기획·출간한 출판경영인으로서 최연택의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최연택은 1920년대 초 식민지사회에 성공주의를 유포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으로 야담 관련 출판물 출간은 이러한 그의 지적 계보와 상관성이 있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 야담관련 서적에 수록된 일본과 서구의 근대 이야기들이 자조론 계열 지식인 최연택의 성공주의 유포 행위와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 연구는 최연택이 발행한 『(진담기화) 동서고금』의 야담집과 『야담대회록』 1집의 야담전문 잡지 그리고 「송재담총」의 『매일신보』야담 연재물 등 야담 관련 출판물에 대해 1920년대 문창사에서 1930년대 삼공사로의 출판사 경영체제의 변화와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1938년 『야담대회록』 잡지를 출간한 삼공사는 문창사를 계승한 출판사이며 창건자가 최연택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점부터 공동경영자였던 최연택의 동생 영택은 분리 독립하여 동성당서점을 경영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기존에 1920년대 초로만 알려진 문창사의 창건 연혁이 1921년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이렇듯 최연택은 근대 서구와 일본의 이야기들을 대중적 친밀성을 가진 ‘야담'의 영역에 편입시켰고, 새롭게 야담의 영역에 편제된 서구와 일본의 이야기들 일부분은 최연택의 성공주의 전파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focuses on the study of, choi yeon-tak (崔演澤), a yadam(野談) publisher during the 1920s∼1930s. I examined that he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The contents of yadam published by Choi yeon-tak, was related to his intellectual background. As you already know, he was a member of munchangsa(文昌社), the family-owned publisher which had been founded in the early 1920s. I found that munchangsa had been founded by choi yeon-tak in 1921. munchangsa divided into two new publishers. samgonsa(三共社) and doungsoyngdansojeom(東盛堂書店) was founded by two publishers choi yeon-tak and choi young-tak(崔永澤) in 1938. It is important that samgongsa succeeded munchangsa. I examined that the contents of a yadam book, “east and west, past and present(『東西古今』)” published by choi yeon-tak in 1922 and a magazine yadam, “record of yadam campaign(『野談大會錄』)” in 1938. I found that there are stories originated in the moder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As I said before, Choi yeon-tak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The contents of that originated in the modern western countries and Japan related to his intellectual background. I focus on that modern yadam materials published by choi yeon-tak were written in the stories of western countries and Japan during the age of modern. In conclusion, It was used by Choi yeon-taek, a colonial intellectual to propagate a discourse of one's personal success using a value of Self-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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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출판경영인 崔永澤과 『立身冒險談』번역

        최희정(Choi, hee-jung) 부산경남사학회 2017 역사와 경계 Vol.103 No.-

        이 연구의 목적은 3.1운동 전후 『태서문예신보』에서 『매일신보』에 이르기까지 최영택의 행적과 활동을 성공주의를 유포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으로서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최영택이 『매일신보』에 번역·연재한 『자조론』아류 서적인 『입신모험담』과 메이지 후기 일본에서 생산된 원전 『입신모험담』을 비교하여 그 첨삭된 항목과 내용을 중심으로 양자를 분석하였다. 또 메이지 후기 일본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이라는 양자의 다른 사회적 상황과 조건 아래 성공주의 전파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효과의 차이도 논의하였다. 최영택은 『태서문예신보』를 통해 등단한 ‘무명시인'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연구를 통해 그가 이 잡지의 사생첩 기자로도 활동한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이에 더하여 1920년대 초 『여자시론』창간과 경영에 참여한 최영택과 동일 인물이라는 점 또한 밝혔다. 무엇보다 최영택을 비롯한 『태서문예신보』의 주요 집필진들이 성공담론 유포에 적극적이었으며, 이 잡지가 육당의 『자조론』이 출간된 1910년대 말 식민지 지성계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잡지로서의 성격을 가졌음을 제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 최영택이 여성전문잡지 『여자시론』 『부인계』의 창간을 주도하면서, 가족경영의 출판사 문창사에서 잡지경영인으로서 활동한 것을 식민지 사회에서 출판업으로 입신성공하려는 그의 지향성 및 『입신모험담』번역의 배경으로 파악하였다. 최영택이 번역한 『입신모험담』은 1920년대 초 조선총독부 식민정책의 충실한 전파 매체였던 『매일신보』의 번역·연재물로서 기획된 것이었다. 원전 『입신모험담』은 러일전쟁 시기 일본 국내 입신출세의 길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년들의 해외 식민지 진출을 종용하는 『자조론』아류 서적류에 속했는데, 이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하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 한편 1920년대 초 『매일신보』의 번역·연재물로서 기획된 『입신모험담』을 통한 성공주의 전파는 일본의 식민정책에 협력하는 사회적 효과를 가졌음을 시사하였다. 이 연구는 3.1운동 이후 1960∼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장기간 생명력을 유지한 세속적 성공주의와 그것의 전파에 기여한 지식인의 계보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연구에서 제시한 세속적 성공주의 전파에 기여한 이른바 자조론 계열 지식인과 이들에 대한 고찰은 우파 식민지 지식인 연구에 새로운 轉機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focuses on the study of, Choi young-taek, a translator and magazine editor who was trying to succeed in the colonial Korea in the 1920's. I examined that he had belonged to a right-wing intellectual who accepted Self–Help in colonial Korea. He was influenced by Self–Help or something similar and then began to serialize a translated book,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立身冒險談』) that tells stories about successfully challenged people in The Daily Newspaper. I compared differences in social function between a original book had affected youths in the late Meiji Japan and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 series in The Daily Newspaper in 1920's Korea. I think that his conduct of translation expressed a drive to succeed. He wrote poems in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泰西文藝新報』) in the late 1910's and had been known to be not a famous poet. I found that h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 as an editor and reporter. It wasn't simply to introduce western literature and the arts but reflected the point of view of Choi nam-sun in the late 1910's. Choi nam-sun translated Self-help into Korean in 1918. As you know, It was a turning point in change of the social meaning of ‘self-help', the keyword of Self-help to be used national ideology that was translated into Korean in the late of Great Han empire. Choi young-taek was an editor and reporter in the women's discourse(『女子詩論』), a public magazine of Chosen women's education center, and he published Women's world(『婦人界』) his own company in the early 1920s. His experience of the journal of literature and the arts at the time of the late 1910's probably had affected him to be a magazine publisher in the early 1920s. He was a member of munchangsa(文昌社), the family-owned publisher which had been founded in the early 1920s and published magazines. I think that his conduct to have a job as a publisher was related to the will to succeed. As I said before, He serialized a translated book, Adversity leads to one's success. The source of translation, stories of people who successfully challenged by adversity, was a type of Self-help in Japan. As we know, Self-help was a kind of books which have to be read for a purpose of the success of an individual. In conclusion, Choi's translation of stories about successfully challenged people realized a value of Self-Help, it would have helped Japanese imperialism to rule colonial Korea. I believe that it is need to study right-wing Korean intellectuals like Choi young-taek who accepted Self-help in moder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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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최영택의 여성해방론과 여성잡지 출판 활동 - 자조론 계열 지식인의 여성해방 문제에 대한 인식과 실천 -

        최희정 ( Choi Hee-jung ) 한국여성사학회 2020 여성과 역사 Vol.0 No.33

        이 연구는 1920년대 자조론 계열 지식인의 여성해방 문제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해 최영택을 사례로 하여 그의 여성해방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검토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밝힌 사항은 다음4가지이다. 첫째, 1920년대 초 최영택을 비롯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들은 ‘신여자'의 여성해방론에 비판적이었던 일군의 남성 지식인이었다. 둘째, 최영택은 ‘신여자'의 여성해방론에 비판적인 남성 지식인이었지만, 여성해방을 달성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셋째, 최영택이 차미리사와 연대하여 여성해방운동을 실천한 의지의 결과물이 조선여자교육회 기관지로 전환된 『여자시론』이었다. 넷째, 『여자시론』 『부인계』와 같은 최영택의 여성잡지 출판 활동은 ‘신여자'의 ‘여자도 사람이다'는 주장에 공명하는 데에서 나아가,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이라는 그의 여성해방 목표를 실천하려는 행위였다. 요컨대 이 연구는 복잡다단한 기원을 가진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 담론의 한 계보를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responses of intellectuals who embrace Self-help to the women's liberation problem in the 1920s, and for this purpose, Choi Young-taek was reviewed in his perception and practice of women's liberation. This study revealed the following facts. First, intellectuals like Choi Young-taek in the early 1920s were male intellectuals who were critical theory of women's liberation of new women's. Second, Choi Young-taek was a male intellectual who was critical of new women's theory of women's liberation. However, it was recognized that cooperation and solidarity between men and women was necessary to achieve women's liberation. Third, as a result of the solidarity between Choi Young-taek and Cha Mi-risa(차미리사), The women's discourse(『여자시론』) was born as an institutional magazine for the Korean women's education association. Finally, Choi Young-taek argued that women's economic independence was the goal of women's liberation. His goal was realized through the publication of women's magazines such as The women's world(『부인계』). In short,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reveals a genealogy of the discourse of women's economic independence with multi-line ori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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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心畝 金彰桓의 역관 가계 배경과 문인예술가 활동 -한말 식민지기 牛峯金氏 金指南 중인 가계의 행보-

        최희정(Choi Hee Jung)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서강인문논총 Vol.0 No.57

        이 연구는 한말 식민지기 화가·언론인·문인의 다중적 활동을 한 문인예술가 김창환을 주목하여, 그가 문인예술가로 성장・활동하게 된 배경을 그의 가계와 일본의 식민통치 체제와 관련하여 검토한 것이다. 그리하여 김창환이 화가에서 언론인 그리고 문인으로 그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 우봉김씨 역관 중인이라는 그의 가문적 배경과 식민지 체제에서 쌓은 경력과 기회가 주요했음을 살펴보았다. 김창환의 가계에 대해서는 호적과 족보 기록을 활용한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여, 그가 서울의 대표적인 중인 가문인 우봉김씨 계동공파 김지남 가계의 후예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중인 가문의 출신 배경 덕분에, 한말 김창환이 한성부 훈도방과 장통방에 거주한 중인들이 연대하여 창건한 장훈학교에 진학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내었다. 나아가 김창환이 문인예술가로 활동하는 데에 장훈학교 발기인과 그들 간의 혼망관계, 사회단체 활동 등으로 복잡다단하게 얽힌 ‘중인'들 간의 사회적 연망이 작동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문인예술가로서 김창환의 경력 축적과 활동 영역의 확장이 일본의 식민통치 체제에 조응하여 구축된 것임을 드러내었다. 김창환이 1915년 조선총독부 수산과에서 근무한 이력을 새롭게 찾았고, 이것을 근거로 조선물산공진회에 참여하여 화가로서 경력을 쌓은 것을 식민통치 체제가 부여한 기회를 활용하려는 김창환의 적극적 의지로 파악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의 미술사적 접근에서 벗어나서 1920년대 김창환의 지성사적 위치도 확인하였는데, 그가 『신천지』에 동인으로 참여한 자조론 계열 지식인과 친화성이 있는 우파 지식인임을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문인 지식인으로서 김창환의 식민지 사회에 대한 인식과 주장이 자조론 계열 지식인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 체제 유지에 우회적 도움을 주는 논리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연구는 그동안 화가 김창환에 초점을 맞춘 미술사의 성과와 우봉김씨 역관 중인 김지남 가계의 조선후기 외교 활동에 집중된 연구를 넘어서, 김창환을 사례로 하여 한말 식민지기 우봉김씨 역관 가계의 행보를 통시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자조론 계열 지식인 및 그들과 친화성을 가진 김창환이 참여한 『신천지』 동인에 대한 개별 사례 연구로서도 의미가 있으며, 3.1운동 이후 형성된 우파 지식인의 유형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This s tudy focused on Kim Chang-whan, a literary artist who performed multiple activities of a Korean colonial painter, journalist, and literary person, and examined the background of his growth and activity as a literary artist in relation to his family and Japanese colonial rule. Kim Chang-whan attempted a historical approach using family registers and genealogy records about his family, and revealed that he was a descendant of Kim Ji-nam's(金指南) lineage, the Keodonggong(繼仝公派), the representative family of Seoul. Under this family background, it was also revealed that Kim Chang-whan, went to The Janghoon School(長熏學校), founded by the solidarity of Official Interpreters(譯官) who lived in Hungdobang(薰陶防) and Jangtongbang(長通坊) in Hanseongbu(漢城府) in the late of Great Han Empire. Furthermore, it was found that the social network of Chungin(中人), such as Official Interpreters were working in order for Kim Chang-whan to act as a literary artist. In addition, the position of Kim Chang-whan in the colonial intellectual group of the 1 920s was also confirmed, away f rom the existing art history approach. Thus, it was found that Kim Chang-whan was a right-wing intellectual with affinity with Korean intellectuals who accepted Self-Help, participated in the publication of the magazine 『The new world(新天地)』. In short, it was presumed that as a literary intellectual, Kim's awareness of colonial society served as a logic to help the colonial rule. This study was based on the achievements of art history focused on painter Kim Chang-whan and research achievements focused on diplomatic activiti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 Kim Ji-nam's lineage, who is in charge of Ubong Kim's clan. This is significant in that it examines the history of Ubong Kim's clan as a case study. In particular, it is also meaningful as a case study for members of the 『The new world』 magazine. In the end, I think this study will also help to know the types of right-wing intellectuals who emerged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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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단피에 의한 임신 저해의 분자적 기전에 대한 연구

        최희정(Hee Jung Choi), 김은영(Eun Young Kim), 최희진(Hee Jin Choi), 박미주(Mi Ju Park), 정태욱(Tae Wook Chung), 박성하(Seong Ha Park), 김소연(So Yeon Kim), 하기태(Ki Tae Ha) 한의병리학회 2014 동의생리병리학회지 Vol.28 No.5

        Root barks of Paeonia suffruticosa Andrews (PS) was reported as contraindicated drugs of pregnancy by many Korean medical classics. Recently, a major ingredient component of PS, paeonol was reported that has contraceptive effect on early pregnancy in rats. However, the accurate molecular mechanism is not clear. In this study, we showed that PS decreased the expression of receptor for leukemia inhibitory factor (LIFR) in human endometrial Ishikawa cells at non-toxic dose, although the expression of leukemia inhibitory factor (LIF) was increased by PS. In addition, PS inhibited the adhesion of human trophoblastic JAR cells onto Ishikawa cells. Given importance of LIF-LIFR signaling pathway in the process of embryo implantation, the decreased LIFR expression by PS will be a good explanation on the PS- or its ingredient compounds-induced contra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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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난파 가문의 기독교 수용과 ‘靑年' 홍난파

        최희정(Choi hee jung)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서강인문논총 Vol.0 No.29

        이 연구는 홍난파 가문의 기독교 수용을 통하여,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청년'의 탄생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년대 이후 홍난파와 같은 ‘청년'이 입신출세를 추구하게 된 것을 ‘청년'의 탄생배경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 기독교 ‘청년' 홍난파를 그의 가족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검토하였다. 한말 식민지 시기 ‘靑年'은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젊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담당할 지식인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청년'이 구시대 지식인과 다른 점은 근대교육을 이수 받았다는 점이다. 한말 식민지기 근대교육을 통해 ‘청년'이 되었던 집단을 유형화하면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전통시대 전문기술직 후손과, 둘째 기독교의 교육선교 세례를 받았던 초창기 기독교 신자이다. 洪蘭坡는 그의 가문이 초창기 기독교를 수용함에 따라서 교육선교의 대상자가 되었다. 홍난파 가문의 기독교 수용은 홍난파의 부친 洪?을 중심으로 검토되었다. 홍난파 집안이 기독교를 수용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새문안교회 신자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 홍준이었음을 확인하였다. 홍준은 새문안교회 초창기 신자였으며,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한글성서 번역에 참여한 성경번역가였다. 기독교 수용 이후 식민지 시기 홍난파 가문의 사회적 위상은 현저히 높아졌다. 홍난파 집안에서 음악가와 의사 직업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다수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홍난파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이 음악가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새문안교회 신자였던 데에 주요한 이유가 있었다. 홍난파와 그의 가족 구성원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교회음악을 접하면서 서양음악에 처음 입문하였고, 서북지역의 교회에서 이거해온 양악 선구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직업적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한편 기독교가 간접선교 방침으로 의료교육을 실시함에 따라서, 초창기 기독교 신자였던 홍난파의 가족 구성원들 대다수는 이것의 대상자가 되었다. 요컨대 기독교를 수용함에 따라 홍난파와 그의 가족 구성원들은 음악과 의학이라는 서구 근대 지식을 습득한 ‘청년'으로 탄생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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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tivity-guided Screening of Anti-inflammatory Compounds from the Hexane Extracts of Schisandra chinensis Fruit

        Hee Jung Choi(최희정), Young-Whan Choi(최영환), Sun-Yong Baek(백선용), Bong-Seon Kim(김봉선), Soon Cheol Ahn(안순철), Moon-Soo Rhee(이문수), Sik Yoon(윤식) 한국생명과학회 2013 생명과학회지 Vol.23 No.2

        예로부터 한방이나 민간요법에서 다양한 약리효능을 가진 약제로 알려져 있는 오미자 열매로부터 항염증 활성을 갖는 유용한 물질을 동정하고자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먼저 오미자의 hexane 추출물로부터 38개의 분획물을 분리한 다음 각 분획의 항염증 활성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오미자 분획물 중 생리활성이 높은 SCKH1을 선택하여 활성분획 추적방법을 통해 SCKH1PAIBPB을 분리하였다. SCKH1PAIBPB는 VCAM-1, MCP-1, IL-6 및 IL-8의 발현을 감소시키며, 혈관내피세포와 단핵구 사이의 부착능을 억제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규명된 오미자 분획물 및 SCKH1PAIBPB의 항염증효과 뿐만 아니라 혈관내피세포 증식 및 생존능 촉진작용을 응용하여, 다양한 허혈성질환 뿐만 아니라 염중성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Schisandra chinensis containing a variety of pharmacologically active lignans has been traditionally used in oriental medicine. In this study, anti-inflammatory compounds were screened from the hexane extracts of S. chinensis by activity-guided fractionation. First, we investigated the regulatory effects on the expression of E-selectin, intercellular adhesion molecule-1 (ICAM-1) and vascular cell adhesion molecule-1 (VCAM-1) with 38 fractions from the hexane extracts of S. chinensis in human umbilical vein endothelial cells (HUVECs). As a result, SCKH1 among the 38 fractions from the hexane extract of S. chinensis was selected for further analysis based on its unique regulatory effect on cell adhesion molecules, especially on VCAM-1, in LPS-stimulated HUVECs. The subsequent activity-guided fractionation of SCKH1 resulted in the purification of SCKH1PAIBPB, which was found to suppress the expression of VCAM-1, MCP-1, IL-6 and IL-8 in HUVECs stimulated with LPS, and to inhibit the adhesive capacity between HUVECs and monocytes. Taken together, our data indicate that SCKH1PAIBPB can be proposed as an effective anti-inflammatory compound that may have a potential therapeutic use for the prevention and treatment of various inflammatory diseases as well as ischemic vascular diseases.

      • KCI등재후보

        대학생의 자아존중감, 사회적 지지, 인터넷 게임 의존성과 스마트폰 의존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

        최희정 ( Hee Jung Choi ), 유장학 ( Jang Hak Yoo ) 경희대학교 동서의학연구소 2015 동서간호학연구지 Vol.21 No.1

        Purpos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self-esteem, social support, smartphone dependency and internet game dependency of college students. Methods: This was a descriptive study. The survey participants were 299 college students in M city and I city. The data were collected from June 2 to June 20, 2014 and self-report questionnaires including Self-Esteem Scale, Multidimensional Scale of Perceived Social Support, Smartphone Dependency Sale, Internet Game Dependency Scale. Data were analyzed by descriptive statistics, independent-sample t-test, ANOVA, stepwise multiple regression. Results: Social support & smartphone dependency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s according to gender. Smartphone dependency was found to have a statistically negative correlation with selfesteem, social support and positive correlation with internet game dependency. Internet game dependency was found to have a statistically negative correlation with self-esteem, social support. Social support was found to have a statistically negative correlation with self-esteem. Stepwise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revealed that the significant predictors of smartphone dependency were internet game dependency, gender, self-esteem, accounted for 16.6% of the variance. Conclusion: It is necessary for reduction program of college students' smartphone dependency that consider their internet game dependency, gender, self-esteem.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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