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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당 정재환선생의 건학이념과 동아대 구덕캠퍼스 계획 - 구덕캠퍼스 건축물의 근대문화유산 가치 -

          김기수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7 石堂論叢 Vol.0 No.69

          The Dong-A University is one of private comprehensive educational institutions in South Korea with rich history and tradition, and we celebrated the 70th year of the establishment of the Academy in 2016. The history of Dong-A University dates back to 1946 when JaeHwan Chung an eminent statesman of modern South Korea, founded “Dong-A” as a private academy on the site of the Busan. In 1951, he started established Guduck Campus in Busan, South Korea. The plan of Guduck Campus was applied to the School Spirit and Educational Philosophy, justice and truth and freedom, pursued by Jae-Hwan Jeong. This thesis is results summarizing the factors that JaeHwan Chung's School Spirit and Educational Philosophy have influenced the Guduck Campus plan. Also, I wanted to research the historical and Modern Cultural Heritage value of the building in Guduck Campus. Through the facility and building of Guduck Campus Founded in November 1946, I could have the opportunity to check the transition process of educational institutions in modern times. In particular, I was able to identify various materials to understand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and the construction process in the central library(1957.12), the second student council(1957.12), and the museum(1957.2). In addition, it is confirmed that the School Spirit and Educational Philosophy are implemented in various ways. In particular, the Central Library building has historical value of the Modern Cultural Heritage. 1946년 11월 1일 개교한 동아대학교는 1951년 10월 5일 교사를 현재의 구덕캠퍼스 위치인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3가 1번지로 이전하였다. 이에 따라 제2관(1953년 9월)을 시작으로 본관(1954년 11월), 제3관(1955년 9월), 제5관(1955.10), 제2학생회관(1956.8), 과학관(1957년 12월), 중앙도서관(1957년 12월)을 차례로 준공하여 1959년 2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였다. 1985년 승학캠퍼스 준공으로 대학본부를 이전하였으며, 1990년 구덕캠퍼스에 부속병원을 준공, 인문학 중심의 부민캠퍼스가 건립하였다. 본 논고는 동아대학교 설립자인 정재환 선생의 철학과 건학이념이 담겨있는 대신동 캠퍼스를 대상으로 캠퍼스 구상계획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을 정리하였으며, 나아가 주요 건축물이 갖는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여 이들 건축물이 갖는 근대문화유산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해방직후인 1946년 11월 자주적 근대교육과 함께 시작된 동아대학교의 교사시설과 구덕캠퍼스는 근대기 부산지역 교육시설의 변천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으며, 특히 중앙도서관(현 석당기념관 1957.12), 제 2학생회관(구 과학관 1957.12), 박물관(구 소강당, 특수교실 1957.2)에서는 근대기 건축이 갖는 조형적 특성과 함께 지역건축의 건설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사학교육기관으로서 설립자의 건학이념에 따른 건축적 영향이 구덕캠퍼스 계획과 구상에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중앙도서관 건물은 근대문화유산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 KCI등재

          石堂 鄭在煥선생의 문화유산․기록유산에 대한 계승 노력과 인식

          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7 石堂論叢 Vol.0 No.69

          This paper attempts to newly analyze into the Succession—efforts and perception of Dr. Jeong Jae—Hwan's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he has served as the first president of Dong-A(東亞) University from the 1950s to the 1970s, has called himself—name to the SeokDang(石堂). The SeokDang has been defined as a law professional & educator in the encyclopedias. However, he has already been evaluated as a lover of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by professional experts who has acted in the local community since the 1970s. because of, he had made the various efforts to preserve the cultural heritage & recorded heritage of the Korean nation that had been built from prehistoric times to modern times. he had continuously collected this heritage from the 1950s to the 1970s, had systematically preserved this heritage. in addition, he had creatively developed this heritage. his collections are currently included in the national treasures & treasures of Korea. The SeokDang has established the Department of History & Department of Korean Literature that can systematically learn about this heritage, has also established the GoJeon(古典) Research—Institute & the Korean culture Research—Institute that can research in depth. the two Research—Institute are the forerunner of the Seokdang—Academy. he has established the Museum(Seokdang Museum) & Library(Hamjinjae : 函珍齋) of Dong-A University that can systematically preserve this heritage, has invited a prominent expert to our university. as a result, the cultural & recorded heritage of Dong-A University's Library & Museum had become the prime scale in the 1960s. especially, he has supported the translation & annotation project of the Koryo-Dynasty's History (『高麗史』) that the nation should carry out. This effort of the SeokDang has grown from considerable insight & interest & perception about the Korean History & Culture. his cultural perception was in the creative success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History & Culture. because of this, he has already been evaluated as a lover of cultural & recorded heritage by professional experts of posterity. 이 글에서는 동아대학교 초대총장 石堂 鄭在煥의 우리민족 문화․기록유산에 대한 계승․발전노력과 인식․위상을 새롭게 진단하였다. 석당은 백과사전류에 법조인․교육자로 정의되고 있지만, 1970년대부터 전문연구자들에게 대표적인 文化愛護家로 평가받았다. 민족 문화․기록유산의 보존과 창조적인 계승․발전에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의 발굴과 함께 유물의 기증․구입, 방치 유물의 수습, 해외 유출의 저지 및 입수 등과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선사시대 이래 근현대에 이르는 문화․기록유산 등을 수집하였다. 수집․지원한 유물․유적 가운데는 국보․보물 및 국가 사적 등으로 지정된 국가문화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동궐도」 및 「土器隆起紋鉢」 등의 경우에는 제3국으로 유출될 위기에 있던 문화유산이었다. 석당은 1955년부터 문화․기록유산을 발굴․수집․보존 및 교육․연구하고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적 기반으로 국문학과․사학과도 설립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고고학․고대사․중세사․근세사와 한문학․향가․민속학․한글․서지학 등에서 풍부한 연구․교육역량을 갖춘 저명 인력들도 영입하였다. 학생들의 고적순례․발굴․유물전시회 등과 같은 현장역량강화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석당은 문화․기록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연구할 수 있는 도서관․박물관을 개관하고 1950․60년대에는 독립건물도 확보하였다. 이에 1966년에는 우리대학 박물관이 전국에서 으뜸되는 위상을 확보하였으며, 도서관 소장의 古書도 국내에서 손꼽힐 규모였다. 고서 가운데는 『고려사』, 해인사대장경판 및 諸경판의 인출본 완질 등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원천기록유산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박물관에는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도 상당수 소장하고 있었다. 석당은 석당학술원의 전신인 古典硏究所․韓國文化硏究所와 같은 전문연구기관도 1958․59년 각각 설립․운영하였다. 고전연구소에서는 1958년부터 남북한 최초로 『고려사』 역주사업을 착수하여 1973년까지 『譯註高麗史』 11책을 완간하였다. 이에 우리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석당이 이런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수준 및 관심과 함께 문화․기록유산에 대한 객관적인 식견과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漢學․서예와 함께 한국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민족문화의 창달을 우리대학의 건학이념으로 채택․실천하는 등 문화․기록유산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태도와 실천노력은 1959년 부산시문화상의 수상으로 객관적인 위상을 확보하였다. 특히 1970년대 鶴山 金廷鶴은 석당의 이러한 공적을 文化愛護家로 평가하였으며, 그 위상과 공적도 전국적인 인지도와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 KCI등재

          석당 정재환선생이 수집한 기록유산과 그 가치 - 특히『고려사』 판본과 『고려대장경』 인경본의 가치를 중심으로 -

          김광철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7 石堂論叢 Vol.0 No.69

          There are many ancient books in the Hamjinjae(函珍齋) of Dong-A University. The volume of books is 22,170 books of 5,750 kinds. These ancient books have collected by Jeong Jae-Hwan, the founder of Dong-A University. These books are classified in the form of Siku Quanshu(四庫全書). The volume of Gyung-Bu(經部) is 2,312 books of 556 kinds, Sa-Bu(史部) is 7,331 books of 1,175 kinds, Ja-Bu(子部) is 8,118 books of 2,014 kinds, Jip-Bu(集部) is 4,409 books of 2,005 kinds. 『Goryosa(高麗史)』 is essential data for the study of the Goryeo period and is a precious cultural heritage of ours. There are 80 editions of 『Goryosa』 home and abroad these days. But most of them are missing volumes and only 5 complete sets of works exist including one owned by Dong-A University (hereinafter the DAU 『Goryosa』). The DAU 『Goryosa』 printed from woodblocks is compiled into 75 volumes, combining some of Ji(志) and Yeoljeon(列傳) into a book in one volume or a book in three volumes. The DAU 『Goryosa』 is the same book as one in 85 volumes owned by Gyujangkak(奎章閣), Seoul National University. It is confirmed that quite a few misprints and omitted words are found in 『Goryosa』 printed from woodblocks. This resulted from the fact that missing and omitted words had been increased in the process of publication from the first edition to Eulhae letter edition and to final carving edition in woodblocks. However quite a few misprints and omitted words there are found in 『Goryosa』 printed from woodblocks, they limit to only a small number among 800 thousand words in all. The 『Tripitaka Koreana(高麗大臧經)』 wooden printing blocks have been recognized as a priceless Korean cultural heritage since the 13th century. They represent the advanced level of Buddhist studies at that time and its printing technology. The 『Tripitaka Koreana』 also reflect the universal cultural values of 13th century East Asia. This study analyzed into the source-value of the 『Tripitaka Koreana』 in the Hamjinjae(函珍齋) of Dong-A University. This Tripitaka Koreana was printed from 1963 to 1968. This Tripitaka Koreana has been printed in a circular pattern, providing a rich source of data. 동아대학교 고서 도서관 석당함진재에는 동아대학교 설립자 석당 정재환 총장이 수집한 고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 고서는 한국본, 중국본 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주제별로는 경서를 비롯하여『고려사』 등 사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책판 등 불경, 법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서 그리고 문집 등 다양한 주제의 고서들이다. 그 수량은 經部 556종 2,312책, 史部 1,175종 7,331책, 子部 2,014종 8,118책, 集部 2,005종 4,409책 등 모두 5,750종 22,170책에 달한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는 동아대학교의 고전에 대한 연구와 역주사업의 전개는 대학이 수집한 고서가 상당 수준에 올라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고서의 수집과 정리작업을 활성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당선생의 수집한 기록유산의 가치를 『고려사』 판본과 『고려대장경』 인경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고려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나라 2대 정사의 하나이다. 동아대학교 소장 목판본 『고려사』는 보기드믄 완질의 판본으로, 『고려사』 139권을 75책으로 분책하여 15개 함으로 분류하고 있다. 책은 그 권 수를 일정량씩 묶은 것이기 때문에 책 수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량과 내용을 고려하면서 요령있게 묶을 때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동아대본 『고려사』는 규장각 소장의 85책 태백산사고본과 대조해 본 결과, 그 광곽과 판심의 형태, 자형이 같은 모습이며, 오탈자가 동일하게 추출되고 있는 점도 동일한 판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함진재 소장 고려대장경 인경본은 1963년 4월부터 1968년 9월까지 인출한 13질 가운데 1질이다. 동아대학교 소장 고려대장경 인경본의 가치는 고려대장경판이 갖는 본래의 가치와 인경과정과 방식에서 비롯된 가치 두 측면에서 엿볼 수 있다.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최고의 정확한 대장경이다. 함진재 소장의 고려대장경 인경본에는 인경 당시의 각수 자료가 상당 부분 원형대로 인경되어 있어 원천자료를 보다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들 각수 자료 가운데는 그들의 출신성분이나 발원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 고려대장경의 역사․문화적 실체와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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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지석(誌石) 연구

          오임숙 ( Oh Im-suk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1 石堂論叢 Vol.- No.79

          지석은 피장자에 대한 인적사항이나 묘에 대한 기록을 판석이나 도판 등에 새겨 장례절차 마지막에 무덤 속이나 그 언저리에 매납하는 장례용구를 말한다. 출생을 비롯하여 계보, 혼인, 사망, 매장 등 피장자에 대한 생생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는 지석이야말로 한 개인의 기록이자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를 잘 분석하면 당대의 사회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지석이 등장을 한다. 이후 고려시대는 지석의 형태와 재질이 다양하지 못하며, 지석 수요층 또한 귀족 등에 한정적이다. 지석은 조선시대에 비로소 재질 및 형태가 다양해지며 전국적으로 엄청난 수량의 지석이 등장을 한다. 특히 유교식 상장례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장례용구인 지석 제작에 일반인들까지 대거 참여하면서 지석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본 연구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지석 13건 45점에 대한 자료 소개 및 분석이다. 먼저 종류별로 분류한 후, 시기별로 나타나는 지석의 형태ㆍ재질ㆍ시문기법을 분석해 보았다. 지석의 형태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에 걸쳐 가장 유행했던 장방형을 비롯하여 말각방형, 정방형, 연상형, 대접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질에서는 석제, 자기제(白磁), 토제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시문기법은 음각, 음각+목탄분, 청화, 철화, 묵서 등으로 표현한 것을 확인하였다. 지석의 내용을 토대로 내용구성, 편수표기, 제작시기, 그리고 유사한 지석들도 비교ㆍ분석하였다. 제작시기는 15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지석의 수요자 또한 고위 관직자가 많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이들 지석 중 몇 건은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고, 그 기초적인 조사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하루빨리 이루어져 관련 분야 학자들의 연구자료로 제공되길 바라며, 본 연구가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A memorial stone is a kind of funeral equipment buried in a grave or near it at the last stage of funeral rites and displays personal information or a record of the grave of the buried person carved in a flagstone or plate. The reason why a memorial stone is buried in the ground this way is it is possible to preserve achievements and records of the buried person long. Besides, probably, it is much safer than a tombstone on the ground. A memorial stone showing vivid information of the buried person(the dead), such as birth, pedigree, marriage, passing and burial is a person's record and history. Elaborate analysis of these records can be highly helpful in figuring out the social circumstances of the time. In Korea, memorial stones appeared starting the era of Three States. During the following Goryeo Dynasty, the consumption of memorial stones was limited to the aristocracy, because there was an absence of various forms and materials of memorial stones. The forms and materials of memorial stones began to diversify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a vast number of memorial stones appeared across the country. Especially, with the universalization of Confucian funeral rites, a lot of normal people were engaged in the manufacture of memorial stones used as funeral equipment, and they started to come to fruition of the memorial stone culture. This study aims to introduce and simply analyze the data regarding 45 forms of 13 memorial stones, which were manufactur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are owned by the Seokdang Museum of Dong-A University. Firstly, after introduction of the data, the forms and materials of memorial stones from different times were classified. The analysis result revealed that there were diverse forms of memorial stones, such as a rectangular form, which prevailed the most over the whol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a square form, a Yeonsang form, a Malgakbang form and a Daejeop form. With regard to materials, stone, porcelain and soil were all found. Based on the contents of memorial stones, the ways of recording, composition of contents, numbering methods, production periods and similar memorial stones were briefly analyzed as well. It was found that memorial stones were manufactured from the 15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and it is also interesting that many of memorial stone consumers were high-ranking officials. In particular, some of these memorial stones have not been reported to the academic world yet, and even there has been no basic research on them. It is anticipated that this study can be the starting point of relevant basic studies to provide research data for scholars in the field.

        • KCI등재

          석당뮤지엄 소장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䟽)』 권88의 역사·문화적인 가치

          崔永好 ( Choy Young-ho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1 石堂論叢 Vol.- No.79

          이 글에서는 동아대학교 석당뮤지엄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의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진단하였다. 이 불교기록유산은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주문·제작하여 선종 4년(1087) 3월 고려사회로 수입된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의 목판 가운데 해당 경판을 찍은 인출본이다. 우선, 석당뮤지엄 소장 권88의 인출본에 새겨진 외형적 형태·서체와 전체적인 구성체계·내용 및 종이종류·규격·표지제목 등 다양한 기준지표를 분석·정리한 다음, 선종 4년 3월 송나라에서 수입한 불교기록유산의 동일 여부를 확인하였다. 현존 다른 권차의 동일 판본과 기준지표를 세밀하게 대조하여 동일한 원천텍스트로 인출한 판본으로 확정하였다. 그리고 석당뮤지엄 소장의 권88은 종이 종류와 표지문양 및 표지제목 형태·서체·배열형태 등도 분석하여 보물 제1106호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등의 판본과 같은 시기나 근접한 시기에 찍은 판본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권88의 판본에는 政和丙臣五月敬造이라는 정보가 권미제 다음에 표기되어 있으며, 이 정보는 예종 11년(1116) 음력 5월 인출정보를 추가로 새겨 매목한 인경목활자로 진단할 수 있다. 석당뮤지엄 소장 권88의 판본에는 경판의 보존상태·보각현상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인 실체를 담고 있다. 우선, 고려 사람들이 권88 등 일부 목판에 인출 정보 등의 내용을 추가·보완하였으며, 보완된 내용은 이후에도 매목 상태로 지속되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보완 내용에서는 예종 11년 당시 고려사회가 송나라 중심의 대외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해당 판본에는 개법장진언부호 등 불교 경전의 존엄적 가치를 반영한 사실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권88의 판본은 현재 확인되는 동일 판본과의 연계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원천자료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권차로서의 희소적인 가치도 확보하고 있다. This paper attempt to analyze into the historical & cultural character of the the Avatamsaka-Sutra's annotation-book(88th volume) that it's currently owned by the Seokdang―Museum. this Buddhist―memory―heritage is the printing Buddhist―scriptures of the 88th volume among the woodblocks of the 120 volumes that the Uicheon(義天) of the Taegak―national teacher(大覺國師) commissioned to produce in the Song(宋)―Dynasty. these woodblocks were imported into Goryeo(高麗)―Dynasty in March 1087, the 88th volume of the Seokdang―Museum was printed after May 1116. In the process of this study, the existed studies have been critically reviewed. and the original information has been analyzed the outward form of bibliography & letter, the overall configuration―system, the kind of paper, the style of cover, the written letter―form of the cover―title and so on. As a result, the 88th volume of the Seokdang―Museum has various historical & cultural values. first of all, the 88th volume is the only existing edition. next, this 88th volume newly engraved with the printing information that the Buddhist―work of printer was carried out. this printing information was supplemented with the wooden―type in May 1116. and this printing information was reflected the external perception that the Song―Dynasty was at the center. in addition to, the style―cover of this 88th volume signed the Gaebeopjang―Mantra-mark(開法藏眞言符號), was reflected the dignity of the Buddhist scriptures.

        • KCI등재

          『고려사』의 간행 유통과 동아대 소장 『고려사』 판본의 특징

          김광철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2 石堂論叢 Vol.0 No.54

          조선 문종 1년에 편찬이 완료된 『고려사』는 단종 1년 4월 경에 처음으로 인출되었다. 그러나 그 인출 규모가 소량인데다 궁궐에만 보관돰으로써, 이후 추가 인쇄와 반포 요구가 이어졌다. 『고려사』의 반포는 상당 기간 유보되다가 성종 초에 을해자본 『고려사』가 간행되면서 비로소 반포되었다. 조선 성종대 이후 『고려사』는 관료와 지식인 사회에 널리 유통되었다. 성종 5년부터 『고려사』는 경연 자료로 채택되었으며,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데에도 자주 활용되었다. 지식인 사회에서 ‘『고려사』 읽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고려사』를 소장하는 등 민간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광해군 4년 경에는 목판본 『고려사』가 간행되어 지속적으로 인출됨으로써 민간 유통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었으며, 17세기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 『고려사』를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저작에 활용하는 등 그 이해의 폭이 넓혀지고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고려사』를 텍스트로 하여 수정, 보완하거나 개편하는 작업도 시도되어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같은 역작이 나타날 수 있었다.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고려사』 판본의 유통 확대와 그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고려사』 판본을 현재까지 남겨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확인되는 『고려사』 판본은 80여 종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 결본이고 완질의 『고려사』 판본은 동아대학교 소장본을 포함하여 5종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목판본 『고려사』는 75책의 규모인데, 2권 1책을 기준으로 하여 지와 열전의 경우 그 일부를 1권 1책이나 3권 1책으로 묶은 결과이다. 동아대본 『고려사』는 서울대 규장각 소장의 목판본 『고려사』 85책과 동일한 판본이다. 다만 규장각 소장본에 비해 자면이나 계선에서 나뭇결의 터짐 현상 혹은 탈락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출 시기가 늦은 후쇄본이거나 보관과 유통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목판본 『고려사』에서는 오탈자가 확인된다. 오탈자가 많게 된 것은 편찬 당시 초고에서부터 초간본을 저본으로 한 을해자본의 출현, 그리고 을해자본을 저본으로 복각 목판본을 간행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목판본 『고려사』에 오탈자가 많다 하더라도 그 수량은 『고려사』 전체 80여만 자 가운데 극히 일부일 것이고, 이것이 『고려사』 판본의 갖는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Koryo History(『高麗史』) whose compilation had been finished in the first year of King Moonjong was firstly introduced around April in the first year of King Danjong in the Chosun Dynasty. However, a small quantity was publicized inside palace only, which caused a request of its additional printing and publicizing. It was not until the earlier years of King Seongjong that the circulation of Koryo History was distributed with its publication in type of Eulhae(乙亥) letter after reserving its distribution for a long time. Koryo History had been a wide circulation in the society and bureaucrats and intellectuals since the time of King Seongjong. It had been adopted as a reference text for contests since the fifth year of King Seongjong and frequently used in the discussion of current issues. Reading Koryo History spread in the intellectual society and quite a few people owned it individually. Ultimately it began to be distributed in the reading public at large. In the fourth year of King Gwanghae its wood block books were printed in quantity continuously and this made their gradual public distribution possible. Since the 17th century intellectuals had conducted their research concerning Koryo History and used many quotations from it in their writing. Many began to understand it in this way. In this environment the attempt was commenced to revise or supplement it adopting Koryo History as text and as a result a masterpiece like Jeongbok Ahn's Dongsagangmok(『東史綱目』) could be published. Therefore, it is believed that expanding the distribution of Koryo History and the broad understanding of it up to the end of Chosun Dynasty period served as momentum for inheriting it to this day. There are 80 editions of Koryo History home and abroad these days. But most of them are missing volumes and only 5 complete sets of works exist including one owned by Dong-A University (hereinafter the DAU Book of Koryo History). The DAU Book of Koryo History printed from woodblocks is compiled into 75 volumes, combining some of Ji(志) and Yeoljeon(列傳) into a book in one volume or a book in three volumes. The DAU Book of Koryo History is the same book as one in 85 volumes owned by Gyujangkak(奎章閣), Seoul National University, but it has more cracking and falling off grains in typefaces and lines compared with one owned by Gyujangkak. They were caused by carelessness in the process of distribution and it proves that the DAU Book of Koryo History was printed later than one owned by Gyujangkak. It is confirmed that quite a few misprints and omitted words are found in Koryo History printed from woodblocks. This resulted from the fact that missing and omitted words had been increased in the process of publication from the first edition to Eulhae letter edition and to final carving edition in woodblocks. However quite a few misprints and omitted words there are found in Koryo History printed from woodblocks, they limit to only a small number among 800 thousand words in all. In conclusion, it is firmly believed that this never diminishes Koryo History printed from woodblocks in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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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대학교 함진재 소장 강화경판(江華京板)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인경본의 자료적 가치와 활용방안

          신태갑,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3 石堂論叢 Vol.0 No.57

          This case study analyzed into the source-value and utilization-plan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s printing-material in the Hamjinjae of Dong-A University. this printing-date was printed from 1963 to 1968, was systematically investigated since the 1990s. hereby, this printing-date was utilized the source-material that researched on the historical and cultural reality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 Nevertheless, this printing-date was some cases that the source- material was missing or unclear. therefore, the missing source- material can be compensated from these sources. the complementary-data is the digital material of Tripitaka-Koreana- institute(八萬大藏經硏究院) in the Haein(海印)-Temple, the printing- material of the Otani(大谷) University, the printing-material of the Woljeong(月精)-Temple. the supplemented source-material can be used as follows. it is the systematic study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 the restoration of the Goryeo- Dynasty's Annals(高麗王朝實錄), the source material of the cultural content-development, the restoration of the damaged original woodblock. 이 글은 동아대학교 함진재 소장 강화경판 『고려대장경』 인경본에 대한 자료적 가치와 보완방법 및 보완자료의 활용방안을 진단하였다. 1960년대 확보된 함진재 소장의 강화경판 인경본은 1990년대부터 원천자료의 체계적인 조사․정리작업을 수행하면서 자료적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어 주목되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해인사 소장 강화경판의 원천자료를 열람할 수 없었으므로, 함진재 소장의 인경본은 원천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1970년대 동국대학교에서 간행한 『고려대장경』 영인본 총48책에 비해, 보다 풍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좌․우 변란과 그 외곽에 새겨진 각수, 발원문 자료와 함께 ‘외장(外藏)' 자료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부터 2013년 현재까지 함진재 소장 인경본 자료가 연구자료로 활용되면서 상당한 연구성과를 축적하도 하였다. 우선, 강화경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밝히는 원천자료로 활용되었다. 일제식민주의 학자들이 강화경판을 소위 초조대장경판의 복각판(復刻板)으로 파악한 문화적 정체성(停滯性) 등을 극복하는 원천자료로 활용하여 역사․문화적 객관성을 바로잡았다. 다음으로, 조성사업의 주체와 목적에 대한 역사 실체를 객관적으로 정립하는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일제식민주의 역사학자와 해방 이후 한국 연구자들이 강화경판의 조성주체․목적과 조성공간의 위치 및 참여자의 범위를 최씨무인정권과 연계시켜 축소․평가한 이해방식을 객관적으로 바로잡는 데 함진재 소장의 원천자료를 적극 활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내용을 새롭게 밝히는 원천자료로도 활용되었다. 그 결과, 대장․분사도감의 운영조직체계와 역할, 그 산하의 판각공간, 분사도감의 위치 등이 구체적으로 탐색되었고, 조성사업 참여자들의 다양한 출신성분과 그들의 현실인식 등도 새롭게 밝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함진재 소장의 인경본은 1960년대 인출 당시 인경 전문가의 제한적 인식, 개별 경판의 마모나 훼손 등으로 원천자료가 누락되거나 불명확하게 인경된 경우도 있다. 특히 좌․우 변란의 밖이나 그 외곽 부분에 새겨진 각수, 발원문, 공방(工房) 자료의 상당수도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누락된 원천자료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 소장의 디지털자료를 원천텍스트로 삼고, 우왕 7년(1381) 인출된 일본 오오타니(大谷)대학 소장본의 자료집, 조선 고종 2년(1865)에 인출된 월정사 소장 인경본의 사진자료 등을 교차적으로 활용하여 보완할 수 있다. 보완된 자료는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고려왕조실록의 복원, 문화․관광콘텐츠 개발의 원천소스, 마모․훼손된 원판의 복원, 원판과 후대 보각판의 진위여부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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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판본(版本) 양상(樣相)과 문화재적(文化財的) 가치(價値)

          朴文烈 ( Park Moon-year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1 石堂論叢 Vol.- No.79

          본 硏究는 朝鮮朝 王室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와 公州 岬寺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대비를 통하여 東亞大學校 石堂뮤지엄 소장 岬寺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版本 樣相과 文化財的 價値를 考察한 것으로 그 結果는 다음과 같다. (1) 水陸齋는 水陸의 떠도는 孤魂과 餓鬼를 위로할 목적으로 佛法의 講說과 음식의 供養을 통하여 저들을 救濟하는 密敎의 성격을 지닌 法會이며, 水陸齋의 起緣을 비롯한 제반 儀式과 節次를 기록한 것이 水陸文이고 이를 정리하여 版本化한 것이 水陸書이다. (2) 중국의 水陸齋는 梁朝의 武帝로부터 시작되어 宋朝에 이르러 水陸文이 정비되면서 楊諤의 『天地冥陽水陸儀文』과 志磐의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가 編纂ㆍ刊行되었다. (3) 우리나라는 高麗朝를 시작으로 朝鮮朝에 이르기까지 國行의 水陸齋가 常設되기도 하였으나 燕山朝 이후로는 國行의 水陸齋는 중지되고 점차 寺刹과 民間을 중심으로 傳承되기에 이르렀다. (4) 중국의 水陸書가 우리나라로 傳來된 이후로 國內에서도 다양한 水陸書가 編纂ㆍ刊行되었으나 그중에서도 編者 不明의 『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와 竹菴의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및 志磐의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5) 成宗 원(1470)년 7월 무렵에 간행된 王室版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는 王室의 主導 아래 [貞熹]大王大妃가 世祖와 睿宗 및 懿敬王(德宗)의 冥福을 기원하고 침체된 水陸齋의 復興을 위하여 朴耕의 板下本으로 開板된 版本이며, 朝鮮朝의 崇儒抑佛의 政策 아래서도 王室에서 開板된 王室版의 嚆矢이다. (6) 東亞大學校 石堂뮤지엄 소장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는 明宗 13(1558)년에 公州의 岬寺에서 王室版을 底本으로 惠仁과 祖榮이 翻刻함과 아울러 守玄이 書寫한 刊行秩만은 새로이 板刻하여 간행된 寺刹版의 最初이며, 이 판본은 岬寺(1558)에서 開板된 후로 廣興寺(1563)ㆍ普院寺(1565)ㆍ空林寺(1573)ㆍ淸溪寺(1622)ㆍ龍腹寺(1632)ㆍ釋王寺(1634)ㆍ通度寺(1649)ㆍ松廣寺(1786) 등의 寺刹에 이르기까지 각 사찰에서 開板된 版本에 영향을 미친 根源的 版本이라 할 수 있다. (7) 朝鮮朝 각 寺刹에서 開板된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木板 중 비록 完帙이 아닌 일부나마 현재까지 開心寺ㆍ淸溪寺ㆍ通度寺ㆍ松廣寺 등에 殘存되어 우리나라 寺刹 木板文化財의 우수성이 증명되고 있다. This study analyzes on the editorial characteristics and the cultural values of the Gapsa Temple edition of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 owned by the Seokdang Museum of Dong-A University. The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1) Suryukjae(水陸齋, roughly translated as the ceremony of the waters and the lands), is a Buddhist ceremony aimed at consoling the souls and spirits wandering the waters and the lands by providing them with Buddhist sermons and foods. Suryukmun(水陸文) is a written record of the rituals and procedures performed at Suryukjae, and Suryukseo(水陸書) is a published collection of Suryukmun records. (2) In China, Suryukjae began under the reign of Emperor Wu(武帝) of the Liang Dynasty. With the development of the Suryukmun format, Tian di ming yang shui lu yi wen(天地冥陽水陸儀文) by Yangak and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by Jiban were published in the Song Dynasty. (3) In Korea, Suryukjae was performed on a regular basis as a national ceremony in the Goryeo Period and the early Joseon Period, until it was discontinued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sangun, after which it was passed down at Buddhist temples and local communities. (4) The import of Suryukseo publications from China led to the creation and publication of various Suryukseo in Korea. Well-known examples include Suryuk mucha pyeongdeung jaeui chwaryo(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author unknown), Jugam's Cheonji myeongyang suryuk jaeui chanyo(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and Jiban's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 (5) The royal court edition of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 was published in 1470 (1st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of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original script written by Park Gyeong for woodblock printing. The edition was published by the Queen Dowager (Queen Jeonghui) to commemorate King Sejo, King Yejong, and King Uigyeong(Deokjong) and revitalize the Suryukjae ceremony. This publication holds significance as a Buddhist book published by the royal court despite Joseon's oppression of Buddhism. (6) The edition of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 housed at Seokdang Museum of Dong-A University is the book's Buddhist temple edition. It is a collection of two parts: the printed version of the woodblock texts carved by Hyein and Joyeong at the Gapsa Temple in Gongju in 1558(13th year of King Myeongjong's reign) based on the royal court edition, and the printed version of the new woodblock texts carved based on the calligraphy written by Suhyeon. This edition is the source edition that influenced the revised editions published by the Gwangheungsa Temple(1563), the Bowonsa Temple(1565), the Gongnimsa Temple(1573), the Cheonggyesa Temple(1622), the Yongboksa Temple (1632), the Seokwangsa Temple(1634), the Tongdosa Temple(1649), and the Songgwangsa Temple(1786). (7) Some of the revised woodblock editions of Beopgyeseongbeom suryukseunghoe sujaeuigwe created by these temples are still in existence today, although not in their complete forms. The surviving editions can be found at the Gaesimsa Temple, the Cheonggyesa Temple, the Tongdosa Temple, and the Songgwangsa Temple, which testify to the excellence of Korea's woodblock printing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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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운동으로서 ‘한 책, 한 도시' 연구 - ‘원북원부산' 운동을 중심으로 -

          이국환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2

          This paper studied ‘One Book, One Busan' movement to study case studies after understanding ‘One Book, One City' movement, which is evaluated as a representative reading movement in Korea. In 1998, Seattle, USA, the “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 movement began. The Seattle Public Library selected a book of fiction and encouraged all citizens to read it together. The people who read the book talked about the book in a public place, the discussion about the book, and the use of the book in the classroom. By sharing a book, citizens naturally became community conscious. Starting with Chicago's ‘One Book, One Chicago', the reading movement spread throughout the United States and moved to Canada, Australia, and South Korea. In Korea, following the pilot case of Seosan in 2003, the Suncheon City and Busan Metropolitan Office of Education independently spread the ‘One Book, One City' movement in 2004, centering on public libraries. This study understanding the ‘One Book, One City' reading movement and based on this, I studied 15 years ‘One Book, One Busan' movement. After summarizing the present situation, I proposed improvement points. This study is a research study on four books which summarized the ‘One Book, One Busan' movement, reviewing the previous research, as well as an empirical study I participated and observed in the ‘One Book, One City' movement. The nature of the case study included interviews with practitioners, steering committee members, and book selection committee members of the ‘One Book, One Busan' movement. I hope that this case study will contribute to the implementation of the ‘One Book, One City' Movement in Korea by complementing previous research on the theme ‘One Book, One City. 이 연구는 국내 대표적인 독서운동으로 평가받는 ‘한 책, 한 도시' 운동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실천 사례를 분석하고자 ‘원북원부산(One Book, One Busan)' 운동을 고찰하였다. 1998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애틀 시민이 책 한 권을 같이 읽는다면'이라는 생각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소설책 한 권을 선정하고 모든 시민이 함께 읽도록 권장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동질감에 공공장소에서 책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책으로 토론회를 열고 학교 수업에 활용하면서 시민들은 독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을 공유하며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시카고 시의 ‘한 책, 한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를 시작으로 이 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캐나다, 호주, 한국 등으로 옮겨갔다. 국내에서는 2003년 서산의 시범 사례에 이어, 2004년 순천시와 부산시교육청이 독자적으로 ‘한 책, 한 도시' 운동을 추진하면서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 연구는 독서운동으로서 ‘한 책, 한 도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15년째를 맞은 부산의 ‘한 책, 한 도시' 운동인 ‘원북원부산' 운동을 개관하여, 그 현황을 정리한 후, 개선점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는 연구자가 ‘한 책, 한 도시' 운동에 참여하고 관찰한 경험 연구이면서, 선행 연구와 ‘원북원부산' 운동을 정리한 네 권의 자료집을 대상으로 한 문헌 연구이다. 사례 연구의 특성상, 원북원부산 운동의 실무자, 운영위원, 선정위원 대상의 인터뷰를 반영하였다. 이러한 사례 연구가 ‘한 책, 한 도시' 운동과 관련한 선행 연구를 보완하여 국내 ‘한 책, 한 도시' 운동을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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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문화콘텐츠원천 자료의 개발과 활용

          최연주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2

          The value of the cultural prototype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and 'Printing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and miscellaneous Buddhist scriptures' held at Haeinsa Temple(海印寺), and the status as cultural contents were examined. And I examined various aspects of development and utilization as cultural contents. UNESCO World Heritage should be used as a source of cultural contents. To do this, Haeinsa Temple should be the center and have the functions of the study of the Tripitaka Koreana. UNESCO World Heritage is an invaluable asset that is actively used in the development of storytelling, educational contents, and cultural contents. It is necessary to actively utilize the types and intangible assets related to UNESCO World Heritage. Although the UNESCO World Heritage is highly recognized, there is a lack of application content that can lead to image friendliness and public support. In order to actively develop and utilize various contents, source data should be excavated. The types and intangible assets that have been inherited for a long time become the source data of cultural contents. These assets should also be systematically researched and organized so that they can be secured as source data. 해인사 유네스코 등재유산인 ‘해인사장경판전'과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갖고 있는 문화원형의 가치와 문화콘텐츠로서 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문화콘텐츠 개발의 源泉資料인 등재유산이 어떻게 활용되어야하는가 등 기본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문화콘텐츠의 원천 자료로서 등재유산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개발 등도 중요하지만,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대장경 연구 및 조사 기능은 법보종찰 해인사가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등재유산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으므로 앞으로 스토리텔링, 교육 및 문화콘텐츠 개발에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각종 콘텐츠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다양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천 자료의 발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인사에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대장경판 印經術, 매년 4월에 개최되는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날 기념행사』 등과 같은 유·무형 자산에 주목해야 한다. 해인사가 독자적으로 보유한 유·무형 자산은 문화콘텐츠 개발의 소중한 원천 자료이지만, 그 동안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다. 앞으로 체계적인 조사와 정리는 물론 다양한 원천 자료의 발굴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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