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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린 선생(1925~2006)의 삶과 학문

          최기영(Choi Ki Young)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서강인문논총 Vol.0 No.46

          이 글은 이광린 선생(1925~2006)의 생애와 학문을 살펴본 것이다. 선생의 생애는 수학기(1925~1954), 연희 · 연세대학교 재직기(1954~1964), 서강대학교 재직기(1964~1989), 정년 이후(1989~2006)로 나눌 수 있다. 이광린 선생은 스승인 이인영 선생의 영향으로 조선사 연구로 학문적 출발을 하였으나, 4 · 19 혁명 이후 개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을 천착하였다. 개화사상과 개화운동, 그리고 인물이 10여 권의 저서와 100편이 넘는 논문의 주제였다. 선생은 개화기를 개화사상이 나타나는 1860년대부터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는 1910년까지의 시기로 규정하고, 1896년 독립협회의 창립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였다. 따라서 개화전기에는 정부 주도로, 개화 후기에는 민간 주도의 개화운동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광린 선생은 연구에서나 생활에서나 항상 부지런하고 꼼꼼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자료와 사실을 찾는데 노력하였다. 선생의 인품과 격조는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자신과 관련된 일에 매우 엄격하였다. 선생의 학문은 자신 뿐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었다. This paper analyzed life and academic activities of Professor Lee Kwang-rin(1925-2006). Life of Professor Lee could be divided by several periods: apprentice period(1925-1954), tenure in Yonhi·Yonsei University (1954-1964), tenure in Sogang University(1964-1989), and after retirement (1989-2006). Professor Lee Kwang-rin had started his academic career with Chosŏn Dynasty History Inquiry under influence of Professor Lee In-young, but after April 19 Revolution, he focused on the Enlightenment History for entire life. His inquiry on the Enlightenment Thought, the Enlightenment Movement and their peoples covered subjects in about 10 books and 100 articles. Professor Lee defined the Enlightenment Period as ages from 1860s, apparence of the Enlightenment Thought, to 1910s, ages to deprived of national sovereignty by Japanese Empire. Also, he classified the Enlightenment Period as the early and the latter period based on foundation of Independence Club in 1896. Therefore, Professor Lee understood that the Enlightenment movement was led by the Government in the early period and by private organization in the latter period. Professor Lee Kwang-rin was always diligent and precise both in studying and personnel life. Also, he was dedicated in finding new references and facts. His students admired Professor Lee's personality and nobility, and Professor Lee was very strict with his work. His inquiry was not just for himself, but for the others as well.

        • KCI등재

          인문과학과 토플러를 넘어서

          이득재(Lee Deuk-Jae)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8 서강인문논총 Vol.23 No.-

          〈Abstract〉 현대는 제 2 물결 시대에서 제 3 물결 시대로 이행 중이다. 지식기반사회라는 말이 무성하지만 아직 그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니다. 제 2 물결의 산업시대에 인문과학은 그 비경제적 가치 탓에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가 도래할 준비를 하면서 인문과학은 무형 자산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위임받으려 하고 있다. 제 2 물결의 산업시대를 지배하는 화폐 경제와 그 안에 존재하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생겨난 각종 사회정치적인 문제는 인문과학의 정신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 사회과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과 자연과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생물학의 발전은 화폐 경제 안의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국내적 국외적으로 사회정치적인 모순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화폐 경제의 반쪽인 비화폐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프로슈머의 역할에 의해 완화될 수 있다. 화폐 경제를 전제하는 한 인문과학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지만 비화폐 경제를 전제로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인문과학은 비화폐 경제 안에서 공교육과 시민사회라는 두 장치를 통해 프로슈머를 생산해내는 인문교육의 토대 구실을 해야 한다. The human science are in crisis on the ground of a monetary economy. With non-monetary economy in mind, the case is different. The human science can play its role in non-monetary economy system. Especially it can play a important role in a knowledge-based society. It can recover the negative results driven by the development of economics and biology in a monetary economic system. The human science must bring up prosumers to do it in education and civil society.

        • KCI등재

          인문과학과 토플러를 넘어서

          이득재 (lee deuk jae) 西江大學敎 人文科學硏究所 2008 서강인문논총 Vol.23 No.-

          현대는 제 2 물결 시대에서 제 3 물결 시대로 이행 중이다. 지식기반사회라는 말이 무성하지만 아직 그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니다. 제 2 물결의 산업시대에 인문과학은 그 비경제적 가치 탓에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가 도래할 준비를 하면서 인문과학은 무형 자산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위임받으려 하고 있다. 제 2 물결의 산업시대를 지배하는 화폐 경제와 그 안에 존재하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생겨난 각종 사회정치적인 문제는 인문과학의 정신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 사회과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과 자연과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생물학의 발전은 화폐 경제 안의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국내적 국외적으로 사회정치적인 모순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화폐 경제의 반쪽인 비화폐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프로슈머의 역할에 의해 완화될 수 있다. 화폐 경제를 전제하는 한 인문과학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지만 비화폐경제를 전제로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인문과학은 비화폐경제 안에서 공교육과 시민사회라는 두 장치를 통해 프로슈머를 생산해내는 인문교육의 토대 구실을 해야 한다. The human science are in crisis on the ground of a monetary economy. With non-monetary economy in mind, the case is different. The human science can play its role in non-monetary economy system. Especially it can play a important role in a knowledge-based society. It can recover the negative results driven by the development of economics and biology in a monetary economic system. The human science must bring up prosumers to do it in education and civil society.

        • KCI등재

          인문학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인식과 중등학교에서 인문학 프로그램 모델 제안 -서강대 CORE 사업단과 숭문고등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상훈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9 서강인문논총 Vol.0 No.56

          Creative talents who will lead the future are built on the humanistic imagination. Therefore, we need more humanities education for students who are tired of the competition for entrance exams. In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 we should be able to understand the nature of humanities, not just knowledge transfer. And humanities education should be established to explore the nature of human beings. This paper introduces the humanities program operated by Sogang University CORE Project and Soongmoon High School for two years. And the results of the survey of 755 students who participated in the program were analyzed. The survey found that students also needed humanities, and they hoped to open a humanities class at school. Above all, students thought that they could understand human beings, think creatively and convergently, and enrich their lives through humanities. However, there are not enough specialists in the secondary school field to provide humanities education. There is also no accumulated experience in humanities education. That is why there is a need for a concrete humanities program model that can be run immediately in secondary schools. In this paper, a humanities program model was created based on the experience of operating a humanities program in collaboration with universities and high schools. Based on this, it is hoped that universities and secondary schools will form a local education community to actively implement humanities education for secondary students. 미래를 이끌어갈 창의적 인재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입시 경쟁에 내몰려 지친 학생들에게 인문학 교육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대학 입학전 초・중등학교에서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인문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본고에서는 서강대학교CORE 사업단과 숭문고등학교가 2년간 함께 운영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이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학생 중 755명의 설문 조사 결과를 분석하였다. 설문조사 결과를보면 학생들도 인문학이 필요한 학문이라고 여기고 있고, 학교에서 인문학 수업이 개설되기를 희망했다. 무엇보다 학생들도 인문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창의적・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등학교 현장에는 인문학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인문학 교육을 운영한 경험도 축적되어 않다. 그래서 중등학교 현장에서는 곧바로 운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문학 프로그램 모델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협력하여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 프로그램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교와 중등학교가 지역교육공동체를 형성하여 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이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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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의 회전 : 소설, 영화, 음악의 테크놀로지

          서희원(Suh Hee Won)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서강인문논총 Vol.0 No.44

          채만식이 개작에 가까운 퇴고를 거쳐 쓴『탁류』의 결말에는 유행가〈글루미 선데이〉가 삽입되어 있다.〈글루미 선데이〉는 계봉의 입에서 발화되어 초봉의 귓가로 흘러들어가며『탁류』의 끔찍한 결말을 환기시키는 배경음악처럼 장면에 흐른다. 채만식이 자살을 암시하는 노래로 당대에 유명했던〈글루미 선데이〉를 사용한 이유는 그 곡이 지닌 화제성과 함께 영화의 기법을 소설에 활용하려는 창작자의 전략이 담겨 있다. 채만식은 문학의 물려받은 유산뿐만 아니라 경쟁하고 있는 다른 장르에서도 소설을 혁신시킬 기교를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채만식의 대표 장편인『탁류』와『태평천하』에는 영화에서 고무되었음이 분명한 장면의 구성, 편집, 음악의 활용, 실제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동감을 강조한 대화의 사용 등이 담겨 있다. 소설이 다른 장르의 기법을 흡수하며, 이를 장르적 생명력으로 사용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기법의 측면에서도 근대 한국소설을 논할 때 채만식을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점도 여기에 있다. A popular song〈Gloomy Sunday〉was included at the end of The Muddy Stream (Tak-Ryu)which was elaborately polished to the proportion of adaption by Chae, Man Sik. The song conveyed from Gye-Bong's mouth to Cho-Bong's ear sounds like background music to call the attention to the dreadful ending of the work. He uses 〈Gloomy Sunday〉s the music foreshadowing suicide because of the popular issue of the song and his purpose to utilize cinematic style for writing novel He made a constant effort to develop the technique to reform novel in not traditional literary legacy but also other competitive genres. In his major novel The Muddy Stream and Peace Under Heaven(Tae-Pyong-Chon-Ha ), there are many remarkable styles which are clearly driven by film such as the scene construction and editing, the use of music and the use of realistic dialogue that make us feel as if it is real voice. It is widely accepted that novel takes the style of different genres and makes use of it as own life force. I think that here is the important point that we must explore and mention Chae Man Sik in discussing Korean modern novel on both thematic and stylistic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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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사건의 재구성

          김숙영(Kim Sookyoung)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서강인문논총 Vol.0 No.34

          빛바랜 사진은 오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사진들은 집단기억을 유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미디어에서 보았던 사진들과 관련된 사건은 사회적 기억으로 남게 된다. 독일 동시대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는 1989년에 15점의 회화작품 〈1977년 10월 18일〉을 전시한다. 이 시리즈 작품은 독일의 극좌 테러 집단인 적군파의 생장과 파멸을 파편적으로 다룬 사진회화이다. 독일은 이 작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심각한 테러범을 둘러싼 사회 각계의 정치적 논란과 더불어, 이 미술의 정당성에 대한 미술 비평가들의 공방이 치열하게 지속됐다. 더군다나 작품이 공개된 시기와 맞물려 적군파가 단식투쟁과 저명인사의 암살 등으로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특히 이 작품이 테러의 희생자들을 다루지 않고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그렸기 때문에 테러집단을 신비화하고 미화시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은 흑백 사진 같은 15점의 그림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 흐릿한 화법, 극히 일반적인 제재, 상호관련을 알 수 없는 연작의 순서 등을 통해 화가는 작품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있다. 화가는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으며 그림 내용에 대해 중립적으로 머무르고자 한다. 그는 스스로 정치적이지 않으며 어떤 이념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작가는 목표, 체제, 강령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른다는 반전통적이고 반미학적인 관점을 표명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관을 대변하였다. 그러나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작품이 무언가 유도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심지어 가장 충격적이고 효과적으로 동시대인의 사회적 관심을 유발하였다. 목을 맨 여인이나 권총으로 자결한 남자의 시신은 독일인에게 한 사건을 회고하게 했고 독일의 현대 역사와 마주 서도록 유도했다. 폭력의 이데올로기를 테마로 한 미술이 어떠한 정치적 노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1977년 10월 18일〉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러나 역사적 정치적 의식의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예술 형태로 그것을 넘어섰다. 리히터가 사진을 세심하게 모사한 후 흐릿하게 뭉개는, 일종의 파괴 형식을 취하는 것은 추한 이념의 현실에 아름다운 가상으로서의 예술의 한 축을 덧대는 것이다. 리히터에게 아름다움은 삶을 가능하게 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모든 권위와 제도,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는 듯한 리히터의 태도는 현실의 회피나 무정부적인 반항이 아니라 실상은 삶을 가장 긍정하는 예술의 실천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KCI등재후보

          中唐文人의 先秦兩漢文評論 - 韓愈·柳宗元·劉禹錫을 중심으로

          임춘영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서강인문논총 Vol.0 No.27

          이 연구는 中唐文人이 논평한 先秦兩漢文의 윤곽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韓愈·柳宗元·劉禹錫의 평론문을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중당문인이 활동하였던 시기의 학술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韓愈·柳宗元·劉禹錫은 秦漢이래의 경학사상을 계승하고 창신을 발휘하여 중당유학 부흥을 추동하였다. 다음으로, 역대 문장에 대한 중당문인의 논평을 살펴보았다. 첫째, 韓愈·柳宗元·劉禹錫은 三代兩漢의 문장을 주로 논평하며, 특히 三代문장을 숭상하였다. 둘째, 先秦의 經書를 전범적 문장으로 고평가하고 백가학설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비평하였다. 셋째, 兩漢文章을 總評式으로 비평하면서, 특히『史記』를 선호하였다. 先秦兩漢文에 대한 중당문인의 평론은 중당의 유학 부흥사조와 밀접하게 연동하고 있다.

        • KCI등재

          실용적 글쓰기의 교육과정 연구

          김장원(KIM JANG-WON)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서강인문논총 Vol.0 No.29

          This article is Research of curriculum for practical writing. There are no sufficient study and discussion of practical writing. But, society ask for practical writing repeatedly.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is due to the prejudice of practical writing This article gets out of the prejudice of practical writing and sets its sight on building scientific curriculum. The practical writing seeks not only practical effect but also self-examination and providing a blueprint for the future. Seeking practical effect is communication. Then, the first thing we have to do is know who you are to write is to a letter of self-introduction which is a typical example of practical writing. Hence, within limits, we can express ourself to others effectively. This process confirm the meaning of being inherent self-examination in a letter of self-introduction. Furthermore, when we keep up our curriculum build on this, the road map of campus life is means a great deal. This is means a great deal not only campus life but also constructing life plan. Organized letter of self-introduction centers about this process. Especially, this process improves the capability of writing paper and the ability to express for selection key words and structured capacity. In future, we need to develop various curriculum through progressing study for the practical writing.

        • KCI등재후보

          中唐文人의 先秦兩漢文 評論

          林春英(임춘영)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서강인문논총 Vol.0 No.27

          이 연구는 中唐文人이 논평한 先秦兩漢文의 윤곽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韓愈ㆍ柳宗元ㆍ劉禹錫의 평론문을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중당문인이 활동하였던 시기의 학술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韓愈ㆍ柳宗元ㆍ劉禹錫은 秦漢이래의 경학사상을 계승하고 창신을 발휘하여 중당유학 부흥을 추동하였다. 다음으로, 역대 문장에 대한 중당문인의 논평을 살펴보았다. 첫째, 韓愈ㆍ柳宗元ㆍ劉禹錫은 三代兩漢의 문장을 주로 논평하며, 특히 三代문장을 숭상하였다. 둘째, 先秦의 經書를 전범적 문장으로 고평가하고 백가학설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비평하였다. 셋째, 兩漢文章을 總評式으로 비평하면서, 특히『史記』를 선호하였다. 先秦兩漢文에 대한 중당문인의 평론은 중당의 유학 부흥사조와 밀접하게 연동하고 있다.

        • KCI등재

          동서양 비교수사학의 출발점의 대한 제안

          김헌(KIM Heon)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9 서강인문논총 Vol.0 No.26

          “수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사학이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해야만 한다. “수사학이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사학이 탄생한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만나게 되며, 그리스와 로마의 수사학이 구술의 전통과 민주주의의 공적인 영역에서 발전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이 쇠퇴함에 따라, 수사학은 본래의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의미를 잃어갔고, 점점 더 작문과 문학적 장식으로 축소되었다. 이른바 “줄어든 수사학”이 된 것이다. 서구 수사학을 한자문화권이 받아들였을 때, 그것은 문학적 작문으로 축소된 수사학이었으며, “수사”라는 말을 가지고 서구의 수사학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도 역시 본래의 의미를 잃고 축소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수사”란 문학적 장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줄어든 수사학은 “수사학”으로 번역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사학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를 한다면 우리는 줄어든 수사학으로부터 수사학의 원래 형태를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자는 수사를 문(文)이라는 용어로 개념화하였는데, 문이란 좁은 의미에서는 문학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도적인 품성과 인격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역사적인 검토를 통해 문학의 영역 안으로 축소된 서구의 수사학을 회복한다면, 우리는 구어적이고 정치적인 전통 속에서 기능하는 연설가의 기술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가 공자의 수사 개념을 한자 문화권 안에서 본래의 의미를 회복한다면, 우리는 품성과 인격을 수양하는 지도원리로서의 문의 전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동서양 사이의 비교수사학의 출발점을 위해 이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더 적절하다. 실제로 이소크라테스의 수사학 교육은 그 자체로 철학의 하나로 규정되며,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유창함이나 설득력이 높은 수사학적인 능력이 아니라, 정직함, 절제와 정의감 동과 같은 품성의 도덕적 자질을 기르는 것이었다. 말을 수단으로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이 철학은 결국 품성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로 인도한다. "what is rhetoric?" should be answered by answering the question "what was rhetoric?" To answer the question "what was rhetoric?" , we should go to the point at which the term rhetoric was born. Then we could encounter the Aristotelian tradition and recognize that the Greek and Roman rhetoric was developed in the oral tradition and in democratic public spheres. But with the collapse of the public spheres, rhetoric was losing the political (and democratic) meaning. It was gradually reduced to the skill of composition and literary decoration: so-called the reduced rhetoric. The western rhetoric that we received was the rhetoric reduced to literary composition whereas the Xiuci with which we received the western rhetoric had a changed meaning from its own original significance into a reduced connotation. Since Xiuci was very closely related to the literary decoration, the reduced rhetoric could be translated as Xiucixue. But the historical consideration of rhetoric allows us to recover rhetoric's original form from the reduced rhetoric. For example, Confucius conceptualized the Xiuci in terms of Wen(文). On the narrow scale, this term was related to literacy, but on the larger scale, to moral character and personality. If we restore, by historical considerations, the rhetoric reduced to the domain of literature, we could see the art of orator that functioned in the oral and political tradition, whereas we could see the tradition of Wen (文), i.e. of literacy as a guiding principle of cultivating the character and the personality, if the Confucian concept of Xiuci were restored to its original significance in the Sinosphere. Therefore, Isocrates seems to be more appropriate than Aristotle for the starting point of the comparative rhetoric between the Eastern and Western World. In fact, Isocrates' rhetorical education is itself qualified as one of philosophy, the ultimate aim of which is not simple eloquence or persuasive rhetorical ability, but moral qualities of character, such as honesty, sobriety, and justice. This philosophy, labeled as fostering the ability to persuade by means of discourse, leads to cultivation of the character and pers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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