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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거주 일본인의 패전 직후 단체 활동

        최영호 동의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2010 인간과 문화 연구 Vol.17 No.-

        본 논문은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단체활동으로서 패전 직후에 한반도에서 결성된 ‘세화회’와 그 후속으로 일본에서 결성된 ‘조선인양동포세화회’의 존재와 활동을 소개하는 것이다. 특히 세화회의 기관지《인양동포(引揚同胞)》의 내용에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때 1946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에 한하여 기관지 내용을 조사했다. 이것은 그 시기가 귀환 직후 시기이기도 하고 귀환자의 다양한 관심사가 단체에 제기되는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다른 지역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단체와 연계하여 일반적인 권익 추구 활동에 전념해 나갔다. 1946년 11월 ‘귀환자 단체 전국연합회’가 출범하자 세화회는 그 단체의 산하에 들어갔고 세화회 회장 호즈미 신로쿠로(穂積真六郎)는 이 단체의 이사장으로 연합회 활동에 주력함으로써 되었다. ‘세화회’의 단체 활동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귀환자들이 일본에 귀환한 직후에 품고 있던 주요 관심사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인의 조기 철수 문제와 한반도에 두고 온 재산의 보상 문제, 그리고 귀환자들의 일본 정착을 위한 권익 보호 문제 등이었다. 주요 관심사를 본 논문에서는 (1) 북한 지역에 남겨진 일본인과의 접촉 문제, (2) 귀농 문제, (3) 관공서 관리의 처우 문제, (4) 한반도 재산 문제, (5) 재정 문제, (6) 호적과 국적 문제, (7) 자격증 및 학력 인정 문제, (8) 치료와 요양의 문제로 나누어 기관지 내용에서 각각 실증해 냈다. 귀환 과정에서 세화회가 남긴 ‘회보’에서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조선 사람과 고락을 함께 해 왔다는 인식, 식민지의 시절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식, 식민지 지배와 결별의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인식,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인식과 함께 일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다는 인식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귀환을 마친 일본인을 대변하는 ‘귀환 동포’에서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本論文は、敗戦直後における在朝日本人の団体活動として、朝鮮半島での世話会の続きとして、日本での'朝鮮引揚同胞世話会'の存在と活動を紹介するものである。特に、世話会の機関誌《引揚同胞》の内容から、朝鮮半島から日本へ引揚た人々の主な関心事が何であったかを探ってみた。ただ、1946年4月から10月までの期間に限って《引揚同胞》を調べた。これは、その時期は引揚直後の時期でもあり、引揚者から多様な関心事が団体に寄せられる時期であったからである。代わりにその後は、他の地域からの引揚者の団体と連携し、共通の権益追求活動に専念していくのである。1946年11月‘引揚者団体全国連合会’が発足するや、世話会はその団体の傘下に入り、世話会の会長穂積真六郎は、その団体の理事長として連合会の活動に注力することになった。 世話会の団体活動として表われた、引揚者が日本へ引揚た直後に抱いていた主な関心事は、朝鮮半島に残っている日本人の早期引揚問題や、朝鮮半島に置いてきた財産の補償問題、それから引揚者の日本定着のための権益保護問題などであった。主な関心事を、本論文では、(1)北朝鮮地域に残された日本人との連絡問題、(2)帰農の問題、(3)官吏・公吏の処遇問題、(4)朝鮮半島の財産問題、(5)金融問題、(6)戸籍や国籍問題、(7)資格証と学歴認定の問題、(8)治療と療養の問題に分け、機関誌の内容から各々実証した。 なお、機関誌の内容から、朝鮮半島の財産への強い執着に比べ、過去植民地支配に対する反省は全然表われなかったことが確認できる。引揚の過程で朝鮮半島の世話会が残した《會報》からは、過去の植民地支配に対して、朝鮮人とともに苦しみ楽しんできたという認識、植民地の時と自然を懐かしむという認識、植民地支配との決別の現実を受け入れようという認識、植民地支配を美化する認識とともに、一部植民地支配を反省するという認識が窺えるが、引揚た日本人を代弁する《引揚同胞》からは、植民地支配への反省の認識は一切見出すことができない。

      • 고려시대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의 활동 시기와 양상

        최영호 동의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2010 인간과 문화 연구 Vol.16 No.-

        본 논문은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들이 고려사회에서 활동한 시기를 재검토하는 한편, 그들의 출신 지역과 활동 양상을 분석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고려와 송나라의 해상 무역이 현종 3년(1012)부터 충렬왕 4년(1278)까지 전개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송나라의 해상 무역 상인들은 송나라의 건국 초기인 10세기 중기부터 고려사회를 드나들기 시작하여 송나라의 멸망 당해 연도인 충렬왕 5년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 관계나 자국의 해상 무역 금지 정책 및 정치적 위기 상황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고려사회에서 해상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송나라의 건국 전후에도 국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泉州․台州․福州․明州․南楚․廣南․溫州․務州 지역의 출신이었다. 이로써 고려사회에는 10세기 중엽 이래 다양한 국제 교역 물품의 수입과 함께 이 지역의 유․불 지식인이나 전문 기술 인력과 선진 문화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들 해상 무역 상인들은 무역물품의 교역이라는 경제적인 영역 이외, 정치․사회․문화적 교섭 등의 영역에서도 중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의약 및 무기․공예품의 재료와 함께 불교 경판․경전이나 백과사전류 등 다양한 문물을 유입시켰다. 이 경판이나 서적들은 고려사회의 불교 연구와 유학 진흥 및 출판 인쇄술을 발전시켰으며, 왕권과 통치 규범의 확립에도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고려의 불교문화를 일본으로 전달하는 등 고려․송․일본을 연결하는 문화 교섭을 중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여․송 외교관계에 관여하였으며, 송나라와 고려의 문인․승려 지식인․전문 기술 인력과 사신 일행을 수송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고려의 관리로 임명되는 등 고려 국내 정치에도 참여하였다. 撰寫本文的目的在於一方面再探討宋朝海上貿易商人在高麗社會活動的具體時間, 一方面分析他們的籍貫和活動面貌. 旣往的硏究認爲高麗與宋朝的海上貿易從高麗顯宗3年(1012)開始進行到高麗忠烈王4年(1278)爲止. 其實海上貿易商人從10世紀中葉宋朝建國初期開始來往高麗, 而這種活動持續到高麗忠烈王5年宋朝滅亡爲止. 雖然高麗同宋朝之間的外交關係因時而變化, 有時候國家下令禁止海上貿易, 或是發生政治上的危機狀況, 但是他們不會收到打擊仍然與高麗進行海上貿易. 他們大部分出身於泉州․台州․福州․明州․南楚․廣南․溫州․務州地區, 這些地區在宋朝建國前後已經成爲國際海上貿易的中心地了. 這些海上貿易商人除了在經濟方面進行物品交易以外, 還有在政治․社會․文化交流等方面也發揮了重要功能. 他們將藥品, 武器․工藝品材料, 佛敎經板․經典, 百科全書等各種文物帶進來了. 這些經板和書籍, 一面促進高麗社會的佛敎硏究, 儒學振興以及出版印刷術的發展, 一面有助於王權和統治規範的樹立. 他們還有擔當國際文化交涉中間人之角色, 將高麗的佛敎文化傳給日本. 他們又過問高麗與宋朝之間的外交關係, 幇助宋朝和高麗之間文人․僧侶․知識分子․技術人員․使臣的來往. 甚至他們當中一部分人作爲官吏, 參與高麗內政.

      • 회전익기 결빙 감항 인증을 위한 수평안정판 착빙 모사 얼음 형상 선정 사례 연구

        최영호,김용진,유병두,김직수,임평호 한국항공우주학회 2014 한국항공우주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Vol.2014 No.11

        최근 국내에서는 여러 회전익기 개발 및 도입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해외 선진 업체에서는 전천후 항공기를 목표로 하여 결빙 감항 인증을 획득하는 것이 추세이다. 향후 국내의 회전익기 사업에서도 결빙 감항 인증 획득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회전익기 결빙 감항성 확인 및 입증 업무 또한 요구될 것으로 생각된다. 결빙 감항 인증 획득을 위해서는 해석, 결빙 풍동 시험, 건조공기 비행시험, 인공결빙 비행시험, 자연결빙 비행시험 등과 같이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입증 활동이 요구된다. 본 연구는 결빙 감항 입증 활동의 한 부분인 착빙 모사 얼음 형상 부착 건조공기 비행시험의 준비 단계를 다루었다. 본 연구에서는 수평안정판에 착빙 모사 얼음 형상을 부착하여 건조공기 비행시험을 수행한 회전익기 사례를 문헌 조사하였으며, 사례를 분석하여 임계 얼음 형상 획득을 위한 해석 조건 범위 안을 제시하고, 건조공기 비행시험에 사용할 임계 얼음 형상의 선정 과정을 기술하였다. The development or procurement program of various rotorcraft has been started or prepared in Korea recently. Foreign manufactures of rotorcraft have designed and developed new rotorcraft which has ability to flight in icing conditions. It is expected that the program of rotorcraft will request for new rotorcraft to have icing certification in Korea. The case of dry air flight test with simulated ice shapes on a horizontal stabilizer is found in literature and reviewed at this study. The condition range draft for critical ice shape calculation is presented and the selection step of critical ice shapes is described at this study.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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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에 소장된『唐賢詩範』의 역사·문화적 성격

        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4 石堂論叢 Vol.0 No.60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into the historical & cultural value of the Danghyenshiberm(唐賢詩範)-woodblock that is stored in the Haein-Temple(海印寺). in the process, the variety of original information has been restored. in particular, this paper has been newly confirmed the existent fact of the Gaeryeong- BunsaDaejangdogam(開寧分司大藏都監) there was established in Gaeryeong about the Middle of the 13th Century. Gaeryeong- BunsaDaejangdogam was the sculpturing-work of the Ganghwa- Capital-Woodblock(江華經板) Koryo-Dynasty's Tripitaka(高麗大臧經) in the Haein-Temple. First, this paper has been generally arranged the surface configuration form & bibliographic information of the Danghyenshiberm-woodblock, the imprint(刊記) & the engravers(刻手). we are noted the fact that the woodblock was composed 6 pannel of 1 table(1板6面). in particular, we are noted the fact that the imprint was inscribed ‘the Danghyenshiberm-woodblock have been carved in the Koryo-Dynasty's Gaeryeong- BunsaDaejangdogam(高麗國開寧分司大藏都監開板)’, the fact that the engravers have been sculpted ‘Joungjang(正藏)․Sonjak(孫綽)․Hyegyeon(惠堅)’. Next, this paper has analyzed into the historical & cultural nature of the Danghyenshiberm-woodblock itself. this woodblock have been carved in the Gaeryeong-BunsaDaejangdogam, the carved time was about 1246 year. it was also reflected in the empirical scientific-nature & visual artistry. and it was reflected in the creative woodblock-technology & publishing-print capability of the Koryo-Dynasty, the independent foreignness-perception. Finally, this paper has analyzed into the historical & cultural value that can be applied to the original information of the Danghyenshiberm-woodblock. this original information can be used as a new status data that can be analyzed into the bibliographic fields of the Korea, the surface configuration form of the East Asian woodblock, and the operating conditions of the Gaeryeong- BunsaDaejangdogam. 이 글은 해인사 소장의 불교경판 및 詩文集 목판 등 가운데 시문집의 일종인『당현시범』의 역사·문화적 성격을 분석하였다. 기록유산의 자체에 함축된 의미와 함께 이들 원천정보를 확장하여 응용할 수 있는 부분도 진단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다양한 내용을 복원하였으며, 특히 開寧(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지역도 강화경판『고려대장경』의 조성공간이 분산적으로 운영된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먼저,『당현시범』에 새겨진 목판의 외형적 구성형태, 서지학적 내용, 刊記, 刻手 등의 기초적인 원천정보를 전반적으로 정리하였다. 그 가운데 본 목판은 1판 6장으로 총 5판 30장의 완본이며, 형태서지학적으로 界腺과 板心 형식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특히 간기 ‘丙午歲開寧分司大藏都監開板’과 각수 正藏·孫綽·惠堅을 복원하였다. 다음으로,『당현시범』목판 자체의 역사·문화적 실체와 가치를 진단하였다. 그 결과, 해인사소장『당현시범』의 목판은 고종 33년(1246) 開寧지역의 분사대장도감에서 조성되었으며, 고려 조정이 주도하여 시 작품의 표준화를 도모하고 그 지적 정보를 확대 보급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고려와 송나라가 해상교섭을 통해 지적 정보를 교류한 흔적, 그리고 인출본의 편리한 열람, 목판 보존의 지속성 및 인출사업의 원활성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경험적 과학성과 함께 시각적 예술성도 반영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13세기 중엽 고려 사람들의 창조적인 목판 가공 기술력과 출판인쇄 역량, 그리고 자주적인 대외인식관도 담겨져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당현시범』의 원천정보를 확장하여 응용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성격도 진단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형태서지학 분야와 동아시아 목판의 외형적 구성 형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開寧분사대장도감의 운영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새로운 비교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KCI등재

        춘천 지역 중년 및 노인에서의 대사증후군의 유병률과 관련위험요인: 한림노년연구

        최영호,최용준,문유선,홍경순,최문기,신해림,김동현,정진영,곽경섭,강성현,장숙랑,김윤기,권혁성 대한가정의학회 2006 Korean Journal of Family Medicine Vol.27 No.3

        The Prevalence and Risk Factors of the Metabolic Syndrome among Local Residents Aged 45 or over in Chuncheon: Hallym Aging Study 연구배경: 근래에 대사증후군은 전 세계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비서구 계열, 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만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대사증후군의 높은 유병률이 주요 보건학적인 문제로 대두하고 있어, 이에 관한 역학적 연구의 수행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 거주민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45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대사증후군 유병률을 추정하고, 어떠한 요인들이 대사증후군의 유병수준과 관련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법: 춘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45세 이상 주민 중 무작위로 선정된 지역에서 계통추출된 1,514명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대상자 중 검사에 응한 922명 중에서 대사증후군 진단에 필요한 다섯 가지 항목에서 하나라도 누락된 260명을 제외하고, 662명(남자 276명, 여자 386명)을 최종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대사증후군은 복부 비만, 높은 혈압, 저HDL 콜레스테롤혈증, 고중성지방혈증, 고혈당증 중 세 가지 이상의 소견을 보이는 경우로 정의하였다. 대사증후군과 각 구성요소들의 유병률을 추정하였으며, 다중 로지스틱 회귀 모형을 사용하여 나이, 교육수준, 사회경제적 수준, 흡연, 음주, 그리고 운동과 대사증후군의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결과: ATP III의 기준을 적용한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은 남자 30.1%, 여자 37.9%였으며, 여자는 연령에 따라 유병률이 증가하였고, 남자는 55~64세에 정점을 이룬 후 점차로 감소하였다. 아시아/태평양 기준을 적용한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은 남자 48.2%, 여자 46.6%였으며 남자는 연령 증가와 함께 유병률이 감소하였고 여자는 연령증가와 함께 유병률이 증가하였다. 대사증후군 진단기준별 유병률은 남성에서 높은 빈도부터 고혈압, 복부비만, 고중성지방혈증, 저HDL-콜레스테롤혈증, 고혈당의 순이었고, 여성에서는 높은 빈도부터 복부비만, 고혈압, 저HDL-콜레스테롤혈증, 고중성지방혈증, 고혈당의 순이었다. 다른 요인의 영향을 보정한 로지스틱 회귀분석 결과, 현재 흡연의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1.93배 대사증후군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95% 신뢰구간 1.06~3.51). 결론: 본 연구에서 조사한 중년 및 노년층에서의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이전 보고에 비해 훨씬 높고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 적극적인 선별 조사를 통해 체계화된 예방적 관리가 필요하다 하겠다.

      • KCI등재

        13세기 중엽 鄭晏의 활동과 현실인식

        최영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石堂論叢 Vol.0 No.70

        This paper attempt to new analyze into an activity space & activity domain & human network & personal propensity & real recognition of Jeong-An who acted a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about the mid-13th century. in the process, the existed studies have been critically reviewed, and the original information has been newly organized. Except for the 10 years when he was worked in the Jinyang(晋陽) & Ganghwa-Capital(江華京) as a government official, he is a representative character who has lived in the Hadong(河東) area for 20 to 30 years. he i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that has acted in the Hadong area about the mid-13th century. he i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that has been well versed in the Confucianism & Buddhism & Ying-Yang(陰陽) & arithmetic(算術) & Korean-medicine(韓醫藥) & temperament(音律). He has conducted various activities. he has nurtured young literary intellectuals who had the Confucianism knowledge, and has also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medicine. he lived a Buddhist life in Hadong region, and conducted a variety of Buddhist activities. he also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the Haein-Temple(海印寺)’s Buddhism-Sutra-woodblock that was pushed as a national project about the mid-13th century. He has formed a human network with various individuals who has acted as a literary intellectuals &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Buddhist intellectual about the mid-13th century. his personal propensity can be defined as a convergence intellectual of seclusion-form. his real recognition was also accorded with the prayers of those days Goryeo(高麗)-people that had wished the stability of the royal family and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이 글에서는 13세기 중엽 융합지식인으로 활동한 鄭晏의 활동공간․영역과 인적 연계망 및 성향․현실인식을 새롭게 검토하였다. 정안은 관료로 활동하면서 晋陽․江華京에서 생활한 10년 정도를 제외하면, 최소 20~30년 동안 河東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하며 활동한 하동지역사회의 대표적인 융합지식인으로, 유․불교 소양과 함께 陰陽․算術․醫藥․音律까지 두루 정통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이후 國子祭酒와 동지공거를 지내면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 문인지식인들을 발굴․육성하였으며, 한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지역민 대상의 의료활동도 전개하였다. 특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불교적인 일상생활을 실천하면서 사원을 창건․운영하는 등 다양한 불교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3세기 중엽 국가사업으로 추진된 해인사대장경판의 조성 佛事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였다. 정안은 다양한 주체들과 인적 연계망을 구축하였다. 관료로 생활하던 때에는 신진 문인지식인과 무인집권자 및 관료지식인 등과 인적 연계망을 구축하였다. 특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할 때에는 당대 불교계를 주도하던 수선사계열 및 가지산문을 비롯하여 대덕고승․승려지식인 등과 연계망을 긴밀하게 맺었다. 정안의 성향은 다양한 학문영역의 지식소양을 두루 갖춘 은둔적 융합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정안은 20~30년 동안 하동지역을 중심으로 은둔하여 생활하면서도 그의 재능은 국왕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는 기존의 연구처럼 최씨무인정권과 밀착된 관계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와 견제관계를 유지하였다. 그의 현실인식도 崔怡의 안녕보다 국왕․왕실 및 조정과 같은 국가의 안정, 몽고 침략군의 격퇴, 민족적 안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佛法의 보급, 가족․친족 및 중생의 극락왕생, 질병의 치료 등 당대 고려 사람들이 기원하던 염원도 반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안은 국가․왕실․조정 및 일반 백성을 포함하는 당대 고려 사람들의 염원을 기원하고 실천한 은둔적 융합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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