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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단국대학의 설립정신과 정체성

        한시준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東洋學 Vol.53 No.-

        현재 한국에는 2백개가 넘는 4년제 대학들이 있다. 각 대학들마다 설립자가 다르고, 설립한 정신이나 취지도 다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이 자신의 대학이 어떠한 대학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단국대학은 어떠한 대학인지를 살펴보려는데 목적이 있다. 단국대학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속에서 설립되었다. 우선 설립자인 범정 장형이 독립운동가였다. 장형은 일제식민지시기에 서간도와 국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과 연계되어 활동한 인물이다. 단국대학을 설립한 것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의 독립정신과 관련이 있다. 장형은 해방 후 환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설립에 참여하여 국민대학을 설립하고,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와 함께 이사장으로 국민대학을 운영하였다. 이후 1947년 신익희가 임시정부를 떠나자 국민대학과 결별하였다. 신익희의 행동을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의 설립을 추진, 1947년 11월 단국대학을 설립하였다. 단국대학은 설립주체나 과정으로 보면, 그 설립정신은 독립정신이었다. 설립자가 독립운동가였고, 또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단국대학은 다른 대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국대학만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있다.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한 대학이라는 점이다. 설립자 장형은 독립운동가였고, 임시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설립에 참여하여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에서 이사장을 맡는 등 김구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후 신익희가 임시정부를 떠난 것을 계기로,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국민대학과 결별하고 단국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둘째는 독립운동가가 세운 대학으로, 독립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대학이라는 점이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국민대학·국학대학·신흥대학 등이 설립되었지만, 이들 대학은 모두 없어지거나 재단이 바뀌었다. 독립운동가에 의해 설립되고 독립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은 단국대학이 유일하다. 셋째는 민족통일을 대비하는 대학이라는 점이다. 장형은 대학을 설립하면서 남북통일과 통일정부 수립에 기여하기를 염원하였고, 학교의 이름에 그 뜻을 담고자 하였다. ‘통일국가를 수립하려면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냐’라는 생각에서 교명을 ‘단국’으로 결정하였다. ‘단국’이란 교명은남북통일과 통일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KCI등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단국대학교

        한시준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0 東洋學 Vol.47 No.-

        Since 1945, many powers of Korean Independent movement including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PGRK) were participated in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or a college). Just after returning home from abroad, PGRK set up ‘A Group of Political Underground Activities’and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And PGRK, under the responsibility of Sin, Ik-hee,put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in charge of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Sin Ik-hee, under the aim for founding a people’s university, organized ‘An Association for the Realization of a Plan (ARP) to founding Kookmin University. ARP invited Kimkoo and Kim Kyu-sik as advisors, Tjo, So-yang as an honorary chairman, 40 society personages of the interior as directors, and Sin Ik-hee became Chairman of ARP. Sin Ik-hee as Chairman and Chang Hyoung as one of directors fully led Practical business affairs of early ARP. Chang Hyoung was a leader of an independence movement who was acted for collect war funds in the western Gando region. Since 1945, when he met Kim Hong-il on SimYang, Kim suggested him to help Kimkoo. Then he returned to Seoul and joined ARP. ARP had a plan for the foundation of the university with 50 million won as fund-raising, but the plan is not easy to be achieved. At that time, Cho Huijae, who was Park Ki-hong’s widow, donated 5 thousand pyeong(=6.013㎥) to ARP through Chang Hyoung who was a close friend of Park Ki-hong. By basic of this property,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on September 1946.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by PGRK and was managed by Sin Ik-hee as the president and Chan Hyoung as the chair director. However, Sin Ik-hee left PGRK and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and joined to the side of Rhee Syngman and Korean Democratic Party. Chang Hyoung thought that Sin’s political movement was a betrayal against Kimkoo and Kookmin University could not success the spirit of PGRK. Chang Hyoung left from managing Kookmin University, and decided to found a new university which success Kimkoo’s spirit. At the time, Cho Huijae positively agreed and donated her property(about 80 thousand pyeong) to Chang Hyoung again. Chang Hyoung tried to set up a new university within a basis of the property, and founded Dankook University on November 1947. Therefore, the foundation of Dankook University was a proof to the contrary by failure of Kookmin University as the succession of the spirit of PGRK. 해방 후 대학을 설립한 주체의 하나는 독립운동 세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도 환국 후, 국내에서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는 환국 직후 내무부 산하에 정치공작대와 행정연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행정연구위회에 대학설립을 맡겼다. 신익희가 내무부장으로 그 책임을 맡았다. 신익희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하여 ‘국민의 대학’을 설립한다는 취지아래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기성회는 주석 김구와 부주석 김규식을 고문, 외무부장 조소앙을 명예회장으로 하고, 회장은신익희가 맡았다. 국내의 각계 인사 40명이 이사진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기성회 중심으로 대학설립을추진해 나갔다. 기성회에서 실무를 주도한 것은 회장 신익희와 이사 장형이었다. 장형은 군자금을 모집하며 서간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심양에서 김홍일을 만나 ‘국내에 들어가 김구를 도우라’는 말을 듣고 귀국하여 이사에 참여하였다. 기성회는 5천만원의 대학설립 기금을 모집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장형이 독립운동 시기의 동지였던 박기홍의 미망인 조희재로부터 5만평의토지를 기증받았다. 그리고 이를 기본 재산으로 하여 1946년 9월 1일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국민대학은 임시정부가 세운 대학이었다. 신익희가 학장, 장형이 이사장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신익희가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을 떠나 이승만측과 한국민주당에 참여하는 일이 일어났다. 장형은 이를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국민대학은 임시정부의 정신을 잇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장형은 국민대학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을 별도로 설립키로 했다. 조희재가 이에 적극 찬동하고, 80만평의 토지를 기증하였다. 장형은 이를 기반으로 대학설립을추진, 1947년 11월 단국대학을 설립하였다. 단국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은 국민대학이 임시정부의 정신을이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계승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단국대학이었다. 여기에는 김구와의 관계도 작용하였다. 장형은 김구와 각별한 관계에 있었고, 김구의 노선을 지지하고있었다. 그리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이사장을 맡아, 소장 김구와 함께 이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단국’이란 교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장형은 임시정부와 김구가 추진하는 통일국가수립을 지지하였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하는데, 남북이 모두 받들 수 있는 것은 단군의 건국정신이라 보고, 교명을 ‘단국’이라고 정한 것이다.

      • KCI등재

        단국대학 시절, 신동엽이 만난 고구려와 동학- 신동엽 연구(11)

        김응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23 東洋學 Vol.- No.90

        Poet Shin Dong-yeop(1930~1969) studied two big histories when he was a student at Dankook University. First, it is very important that Kim Gu(金九, 1876~1949) chose the first private university created by independence movement figures. Dankook University, established by Jang Hyung(張炯, 1889~ 1964) and Jang Do Bin(張道斌, 1888~1963), who campaigned for independence to Shin Dong-yeop, who already had problems with left and right wings and anarchist ideas during the Jeonju high school, would have come to go through at least once. Second, Shin Dong-yeop meets the ideas of Daegyo, represented by Jang Hyeong, at Dankook University. Shin Dong-yeop may have learned continental imagination from Jang Hyeong’s poems. Third, Shin Dong-yeop traveled to places of the Donghak(東學) Peasant War during the Dankook Dynasty. There is a possibility that Jang Do-bin’s book on the Donghak Revolution may have been devoured. After that, Shin Dong-yeop studied Donghak thought and history such as “Donggyeong Daejeon( 東經大全 ),” and studied for nearly 30 years to complete the epic “Geumgang.” Shin Dong-yeop experienced war when he was in Dankook University, and he could have learned grand religion from Jang Hyung, a former independence fighter who lived history and religion through life, not ideas, and learned the secrets of Goguryeo and Jang Do-bin. After the war, Shin Dong-yeop, a graduate of Dankook University, meets In Byeong-seon and begins a new start to open his eyes to new love. It was not until August 1953 that Dankook University returned to Sindang-dong, Seoul, and it was newly opened anew. Certain periods in a person’s life can have a big impact. The days of Dankook University were definitely an important period that gave poet Shin Dong-yup a new opportunity. 시인 신동엽(1930~1969)은 단국대학교 재학 시절에 두 가지 큰 역사 공부를 한다. 첫째, 김구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인사들이 만든 최초의 민립대학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전주사범 시절 이미 좌우익의 문제, 아나키스트 사상까지 섭렵한 신동엽에게 독립운동을 했던 장형과 장도빈이 세운 단국대는 한번쯤 거쳐야 할 상아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둘째, 신동엽은 장형으로 대표되는 대종교의 사상을 단국대에서 만난다. 장형의 시에서 대륙적 상상력을 배웠을 수도 있다. 셋째, 신동엽은 단국대 시절에 동학농민전쟁 기행을 한다. 장도빈의 동학혁명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인 갑오농민란과 전봉준 (1926)를 탐독했을 가능성도 살펴 보았다. 이후 신동엽은 동경대전 등 동학사상과 역사공부를 하며, 30년에 가까운 공부를 하여 서사시 「금강」을 완성한다. 신동엽은 단국대학 시절 전쟁을 체험했고, 관념이 아니라 삶으로 역사와 종교를 살았던 독립투사 출신 장형에게 대종교, 장도빈에게 고구려와 동학혁명의 알짬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1953년 8월에야 단국대학은 서울 신당동으로 복귀하면서 새롭게 개교한다. 한 인간의 삶에 특정 시기는 큰영향을 줄 수 있다. 시인 신동엽에게 단국대 시절은 분명 새로운 눈뜸의 계기를 준 종요로운 시기였다.

      • KCI등재후보

        Liberal Education, 그 오래된 미래를 향하여 - 교양교육 혁신을 위한 단국대학교의 도전

        윤승준 단국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2020 교양기초교육연구 Vol.1 No.1

        본고는 단국대학교가 Liberal Arts College와 Liberal Education을 시행하기 위하여 준비해 온 과정을 돌아보고, 자유교양대학(D-LAC)을 운영하고자 하는 목 적과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이를 위하여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편하였으며, 그 시행 에 있어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단국 대학교는 학생들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식견, 깊이 있는 안목을 갖춘 인재로 양성하기 위하여 기존의 교양교육대학을 자유교양 대학(D-LAC)으로 전환하고, 대학의 교육과정을 교양ㆍ전공ㆍ선택(웅비)의 3원 체 제로 재편하면서 교양교육과정의 내실화를 도모하였다. 다만 그 시행에 있어서는 학내 여건을 고려하여 교양교육과정의 개편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하였다. Liberal Education을 위한 단국대학교의 교양교육과정은 중핵교양, 공통교양, 영역별교양 으로 구성되는데, 중핵교양 교과목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여 2020학년도 에는 공통교양과 영역별교양으로만 구성하고, 2023학년도부터 중핵교양을 포함한 교양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대신 2020학년도부터는 기존의 대학기초교양 영역에 개설되었던 전공기초 성격의 교과목을 전공교육과정에서 이수하도록 하고, 특정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교과목이나 취창업 관련 교과목 등 보편지성교육을 위한 교 양 교과목으로서는 부적합한 교과목들을 웅비교육과정에서 이수할 수 있도록 함으 로써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교양교육과정의 정체성을 제고할 수 있 도록 하였다.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기 위 해서는 학내 구성원의 협력과 공조, 「세계 지성사의 이해」와 같은 새로운 교과목 의 개발, 영역별교양 이수학점의 확대, 기초학문 분야 전임교원의 확보 및 교육여 건 확충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This paper reviews the process that Dankook University has prepared to implement Liberal Arts College, the goal of Liberal Education that Dankook University pursues, and how to reorganize the curriculum for the purpose of realizing the educational goals, and what tasks were to be needed in its implementation. Dankook University has transformed an existing the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into a liberal arts college (D-LAC) in order to cultivate students with a wide range of knowledge, insights and in-depth knowledge in the fields of humanities, social sciences and natural sciences. The education curriculum was reorganized into a three-element system of liberal arts, majors, and choices (Ungbi), aiming to enhance the liberal arts curriculum. However, the implementation of the liberal arts curriculum was decided in stages in consideration of the university conditions. Dankook University’s general education curriculum for Liberal Education consists of core curriculum, common course, and distributed requirements. Considering the time required for the development of core curriculum, the 2020 school year consists only of common course and distributed requirements. And in 2023, a complete liberal arts curriculum including core curriculum will be operated. In order for Dankook University’s liberal arts college to take root and develop stably, cooperation among the members of the university, development of new courses such as “Understanding of the World Intellectual History”, expansion of credits for liberal arts in each area, securing of full-time faculty in basic academic fields, and increasing educational conditions remain a challenge.

      • 效果的인「커뮤니케이션」은 從業員의 歸屬感을 높인다

        檀國大學校 商經大學 商學硏究部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상학연구부 1964 商學論叢 Vol.3 No.-

        기업이 일을 매개로 한 인간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간주될 때 여기에는 복수의 인간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업활동이 한 사람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사람의 추서있는 협동체제를 통해서만이 효과적으로 영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한 기업에 속하는 개개 구성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통괄과 행위규범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 대학 학생행정의 개념 재정립과 학생행정 부서의 기능활성화 대책

        오교한 단국대학교 정책과학연구소 2001 정책과학연구 Vol.11 No.-

        대학은 지식창조의 뿌리이며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변화의 시대를 주도하고 위기감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사명이 지식공동체인 대학에 주어여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의 역할은 고도의 지식정보화와 세계화 추세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을 주도하는 지식경쟁력의 원천으로 변화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이에 따라서 우리들 각 대학은 사회변화에 발맞춘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교육환경개선을 통해서 최선의 내실있는 대학교육을 실천하며, 대학행정의 과학화를 통하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학들의 이러한 노력이 비록 최선과 최대를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의 과감한 이행에 대한 요구와 여러 행정직 선생님들의 지원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할 것이다. 21세기의 대학은 연구와 교수라는 역할 이외데도 사회봉사라는 기능도 수행할 것이 기대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간·학제간의 공동 노력과 더불어 행정서비스의 완벽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적으로 유수한 대학들과 같이 경쟁하며 수준높은 지식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최대한의 자율성 보장과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대학 학생행정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학생행정 부서의 기능활성화 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결국 학생행정의 차원에 대학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대학 본연의 역할수행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을 재확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학행정은 근원적으로 학생과의 관련성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보자면 대학행정이란 곧 학생행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생행정의 수준이 곧 대학행정의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학생행정에 있어서 교직원들의 사명의식과 전문화된 직무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학생행정의 방향은 너무나 뚜렷하다. 학생행정 주무부서는 미래지향적인 학생들의 학문과 지식의 성장을 돕고 알차고 편리한 대학생활을.지원하여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가는 초석의 역할을 해야한다. 그들의 학문적, 지적 발전을 돕고 대학 내의 건강하고 창의적인 공동체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창조적 지식인으로 성장하고, 저화롭고 아름다운 인격적 공동체를 구현하며 새로운 대학 문화를 창조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생행정의 방향은 보다 구체적으로 총학생회의 활동을 지원하여 자치활동을 돕고,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반영하고, 중앙 동아리의 자치활동을 지원하여 대학의 자주적 문화 퐁토 속에서 창조적이고 낭만적인 학풍을 육성해 가도록 해야 한다.

      • 맹 학교 교육 과정의 개선 방향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학생회 학술부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학생회 1987 특수교육 Vol.4 No.-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현행 맹학교 교육 과정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다만 테두리만을 제시한 것 뿐이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세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런 개선 방향이 과학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학생들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개선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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