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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公州 利仁部曲城에 대한 一考察

        서정석 한국성곽학회 2011 한국성곽학보 Vol.19 No.-

        웅진시대 백제의 도읍지였던 공주지역에는 공산성(公山城)을 중심으로 시내 전역에 20여 개소의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축성 시기라든가 축성 목적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공산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막연하게나마 웅진시대 백제 왕도의 방비체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최근들어 산성의 조사 사례가 증가하고, 백제산성은 물론이거니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산성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공주지역에 남아 있는 산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백제시대 왕도 방비체제와 관련시켜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인산성은 공주시 이인면(利仁面) 용성리(龍城里)에 자리하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된 산성임이 분명한데, 해발 230m의 성재산 정상부에 삼태기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축성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믿어진다. 게다가 성내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백제기와로 볼 수 있는 것과 통일신라시대 기와로 볼 수 있는 것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 대략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인산성의 성격은 그 명칭에 잘 나타나 있다. ‘이인산성’처럼 ‘군현명+성’과 같은 형태의 산성들은 모두가 그 지역의 치성(治城)을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예를 들어 밀양 추화산성(推火山城)은 추화군(推火郡)의 치성(治城)이었고, 광양 마로산성(馬老山城)은 마로현의 치성(治城) 이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이인산성은 이인지역의 치성(治城)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이인지역에는 군현(郡縣)이 설치된 적이 없고, 대신 부곡(部曲)이 설치되어 있었던 만큼 이인부곡(利仁部曲)의 치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이인산성의 삼태기형 평면형태는 이인산성이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무언가 치성(治城)의 역할을 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즉, 이인부곡성(利仁部曲城)이었다고 생각된다. 熊津時代の百濟の都邑地でした公州地域には 公山城を中心として 市內の全域にわたって 20餘箇所の山城がである. しかし その大部分についての まだ 發掘調査が行なわれることがなくて, 築城時期とか築城目的については全然わからないのが 實情である. 但し, 公山城を中心として 四方に配置されているので だいたい熊津時代の百濟王都の防備體制と關係がであると 理解して來た.ところで, 最近 山城の調査事例が增加して, 百濟山城はもちろん, 統一新羅時代と高麗時代 山城についての硏究が 深くなって 公州地域に 殘っている山城が 必ず百濟時代 王都の防備體制と關係があると理解する必要ではなくなっていた.利仁山城は公州市の利仁面 龍城里にある. 『新增東國輿地勝覽』によると 高麗時代の以前に築城された山城として, 海拔230mのソンゼサン(성재산)の頂上部で 箕形として存在しているのが特徵である. なお, 築城法として見るとき, 統一新羅時代以前に築造されると思われて いる. 城內で收拾された遺物の中には 百濟瓦で見られることと統一新羅時代瓦で見られることが共存している. それで 大略 統一新羅時代で 築造されたことと思われている. そんな意味で 利仁山城は里仁部曲の治城だったと思われている.

      • KCI등재

        이인(異人) 설화 <짐승 말 알아듣는 사람> 속 범인(凡人)의 좌절과 성장 서사 탐색

        강새미 한국문학치료학회 2024 문학치료연구 Vol.70 No.-

        본 논문은 ’짐승 말 알아듣기‘라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이인(異人)이 등장하는 설화를 대상으로 삼아, 이인과 짝을 이루는 범인(凡人)의 좌절과 성장 서사를 탐색하는 논문이다. 이인은 그가 가진 신이한 능력으로 인해 등장 자체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그렇기에 그간 이인 설화의 주요 관심사는 당연하게도 이인이었다. 설화 속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인이 서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아가 그들이 가진 능력의 의미가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본고는 이인의 능력과 행적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범인의 서사에 주목하여, 서사에서 이인과 범인이 만남으로써 발생하는 범인 삶의 문제를 살폈다. 범인은 이인과 만나면서 내면의 어둡고 열등한 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범인에게 분노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유발하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좌절이냐 성장이냐 라는 서사의 방향이 결정된다. <짐승 말 알아듣는 사람>의 각편은 다양한 서사적 변이를 보여준다. 각편에 따라 범인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자결하기도 하고, 속세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하며, 아주 드물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서사적 변이는 좌절의 순간에도 어디엔가 성장과 희망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열등한 면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좌절이 아닌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서사적 화두를 생각하게 한다. 설화는 인간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결핍을 가진 주인공이 결핍을 해소하고, 좌절했던 주인공이 좌절을 극복하는 모습은 무척 멋있지만,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인(異人)이 아닌 평범한 범인(凡人)의 서사에 주목하는 본 연구가 문학치료 현장에서 설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큰 간극을 느끼는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This study explored the frustration and growth narrative of an Ordinary person when paired with an Eccentric person using the folktale, “The Man who Understands the Language of Beasts,” which features an alien with a strange ability to “understand the words of animals.” The Eccentric person, as the main character in the tale, arouses people's interest owing to his strange abilities. Previous research examined the roles and abilities of people with various occupations in the tale. However, this study focused on the narrative of an Ordinary person living under the shadow of Eccentric person abilities and actions and examined the problems that occurred in the criminal's life when the Eccentric and Ordinary person meet. When the Ordinary person meets the Eccentric person, he confronts his feelings of animosity and inferiority, which leads to anger and shame. His behavior toward these feelings, whether resulting in frustration or growth, determines the direction of the narrative. Each episode of “The Man Who Understands the Language of Beasts” depicts different narratives, with the Ordinary person having different fates depending on the story: committing suicide owing to unbearable shame, disappearing from the world, or, in rare cases, living a happy life. This demonstrates that a path to growth and hope exists even amidst frustrations and struggles, which leads readers to the question: “When we face inferiorities in life, how can we move toward growth rather than frustration?” Folktales portray human struggles which are usually resolved in the end. While it is inspiring for readers to see a struggling protagonist overcome hardships, folktales differs from reality. We hope this study will help people undergoing literary therapy and those who identify with the Ordinary person’s struggles in the folktale.

      • KCI등재후보

        고려 우왕대 이인임 세력의 혼인이 인적관계에 미치는 영향

        김지희 ( Ji-hee Kim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6 인문학연구 Vol.0 No.30

        정치세력에게 인적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하였다. 고려 우왕대 이인임 세력의 인적네트워크 형성과정에서 혼인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인임의 본관은 성주로, 그의 가문은 선조인 이조년부터 정계에 진출하여 대대로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문 중 하나이다. 이인임은 공민왕대에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시중의 자리까지 올랐고, 공민왕이 시해되자 어린 우왕을 옹립하여 최영과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다. 그는 우왕 원년~6년까지 최영, 경복흥, 지윤, 임견미, 조민수, 양백연 등과 함께 반대세력을 제거하였다. 반대세력의 제거를 통해서 이인임, 최영, 경복흥, 지윤, 임견미, 양백연 등에서 이인임, 최영, 임견미, 염흥방, 조민수 등으로 세력 교체가 이루어졌고 그들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졌다. 이인임 세력은 혼인을 통하여 인적관계를 강화하였다. 이인임 세력의 혼인은 이인임 가문의 혼인, 이인임 세력들의 혼인, 이인임 세력 이외의 가문과의 혼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인임 가문의 혼인은 임견미, 권집경, 강서, 이성림, 하륜, 조민수, 이림, 이희필, 도길부 등이고, 이인임 세력들의 혼인은 염흥방, 우인렬, 변안렬 등 이며, 이인임 세력 외외의 가문과의 혼인은 최영, 지윤, 양백연, 목인길 등 이다. 이인임 세력은 이인임 가문과 그 세력 안에서 혼인을 통해 권력과 경제력을 강화하였다. 이인임 세력은 부인이 살있는 경우에는 첩을 두었고, 이혼하거나 부인이 죽었을 경우에는 비슷한 가문 혹은 명문가문과 재혼 하였다. 그들은 재혼을 통해 폭넓은 인적관계를 형성하였고,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이인임 세력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인적관계는 그들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확실시 된다. 대체적으로 이인임 가문과 이인임 세력들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인물들은 우왕 14년 최영에 의해 이인임 세력이 제거될 때까지 정국 운영에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반면에 이인임 세력 이외의 가문과 혼인을 하였을 경우에는 이인임 세력과 대립하여 제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인임 세력에게 있어 혼인은 자신의 권력과 경제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자 정치적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칼과 같은 것으로, 혼인은 그 만큼 중요하였다. The human network was very important to political forces. The marriage is a large part of the Human network of Lee In-im``s factions in King Woo of Goryeo Dynasty. Lee In-im, who became a key person Lee In-im``s factions, is Seongju Lee Clan. His grandfather(namely, Lee Jo-nyeon) launch into politics from which produced the minister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y one of a good family. He had entered the government office serve as muneum, and became a Shi"jung. in the time of King Kong-Min. After the assassination of King Kong-Min, he was actively involved enthroning of King Woo. Since he was running politics political a political rather than a King Woo. After King Kong-Min had been assassinated, he was actively participate in the throne for young King Woo. Since then, he was running the political situation instead of young King Woo. He had removed their opposition forces in cooperation with Choi Young, Kyeong Bok-Heung, Ji Yoon, Jo Min-soo, Yang Baek-Yeon form first year to 6 years in the time of King Woo. After they removing the opposition forces, their power group was changed from Lee In-im, Choi Young, Kyeong Bok-Heung, Ji Yoon, Im Gyeon-mi, Yang Baek-Yeon to Lee In-im, Choi Young, Im Gyeon-mi, Yeom Heung-bang, Jo Min-soo, and their relationship is stronger than ever. Lee In-im``s factions widened the Human network through marriage. Marriage of Lee In-im``s factions are classified as intermarriage between Lee In-im``s family, and Lee In im``s factions, and Non-Lee In-im``s factions. Intermarriage between Lee In-im``s family were Im Gyeon-mii, Gwonjingyeong, Lee Seong-Im, Ha Ryun, Cho Min-su, Ha Ryun, Jo Min-soo, Lee Im(Lee Hui-pil), Do Gil-Boo, etc. Intermarriage between Lee In-im``s factions were Yeom Heung-bang and so on. Intermarriage between Non-Lee In-im``s factions were Choi Young, Ji Yoon, Mok In-gil, and so on. Lee In-im``s factions was to strengthen the power and wealth through marriage in Lee In-im``s family & factions. Im Gyeon-mi & Do Gil-Boo is a representative man. Their family was not good. So Lee In-im``s family & factions raised the status of his family by marriage. His wife is more than two people in Lee In-im``s factions, Lee In-im, Lee In-min, Lee Jon-seong, Do Gil-Boo, Do Gil-bong, Yeom Je-sin, Yeom Heung-bang, Yeom Jeong-su, Ji Yoon, and so on. If they live the wife has kept a concubine, when his wife died, the family were similar and remarriage. Formed a wide Human network through remarriage using it strengthened the power. Human network that had been achieved Lee In-im``s factions in marriage sure In the process to remove their opponents. Generally, Lee In-im``s family & factions married people are active and involved in the political Lee In-im``s factions operating until removed by Choi Young Woo``14. Whereas, Non-Lee In-im``s factions married people has been removed by conflict and Lee In-im``s factions. Lee In-im``s factions could strengthen their power and wealth but it could lose the political life in a day. Marriage was an important means to them. They used the marriage as a way to establish a political force, promote their friendly relations.

      • KCI등재

        뫼르소, 이인으로 남은 이인

        이기언 ( Kie Un Lee ) 한국불어불문학회 2010 불어불문학연구 Vol.0 No.81

        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출간된 지 곧 70년이 된다. 그렇다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뫼르소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 되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이인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뫼르소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본 연구는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폴 리쾨르의 해석학 이론을 빌려 『이인』 텍스트에 대한 해석학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 뫼르소는 화자이자 주인공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뫼르소는 무엇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리쾨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자기 인식" 혹은 "자기 이해"를 위해서이다. 리쾨르에 따르면, "자기 인식"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전통과는 달리 "간접적인" 인식이다. 즉, "자기 인식"은 3중의 매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자기 행동"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타인들이 자기에게 내리는 "도덕적 평가"를 통해서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의 간접성은, 너무나 우연하게도, 『이인』 텍스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뫼르소는 "자기 행동의 주체"이고, "자기 이야기의 화자이자 인물"이고, 타인들이 내리는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매개들을 분석하면서 이인 뫼르소의 다르고 특이하면서도 다양한 얼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 얼굴들의 합이 뫼르소의 정체성을 규명해 줄 것이다. 『이인』에 대한 우리의 해석학적 읽기는 뫼르소가 "자기 행동"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도덕적 평가"를 통해서 자기 인식 혹은 자기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상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첫째로, "자기 행동의 주체"로서의 뫼르소에 대해서는 장례식에서의 행동, 살인 행위 그리고 교화 신부에게 퍼붓는 분노 행위 분석을 통해서 뫼르소의 "특이성" 혹은 "이인성(etrangete)"을 확인하고 있다. 장례식의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심함"을 보여주는 "내면 의식"이 비어있는 인간이지만, 자기 육신과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인간이다. 한 마디로, 그는 "육신의 인간(home de chair)"이다. 운명의 날, 그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태양을 이기고자" 그리고 "태양을 떨쳐내고자" 사력을 다한다. 육신이 심각한 위협에 처한 그는 "불가항력(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의미에서)"에 이끌려 아랍인의 칼날에 반사되어 그의 두 눈을 파고드는 태양을 향해 발사한다. 해석학적 차원에서 『이인』 텍스트는 뫼르소가 첫발을 아랍인에게 발사했다는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태양을 향해 겨누었다는 해석을 낳게 하도록 되어 있다. "태양을 사랑하는" 그리고 "육체적으로 태양에 종속된" 뫼르소는 태양 살해자이다. 그는 자기의 `사랑`과 `자기의 주인`을 동시에 살해한 "부조리한 인간"이자 "반항인"이다. 사르트르가 지적했듯이, "부조리한 인간은 반항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교화 신부에게 퍼붓는 분노 행위에서는 "반-기독자"로서의 뫼르소가 삶과 운명에 대한 자신의 모든 생각들을 처음으로 드러내는데, 무엇보다도 이 분노 행위를 통해서 "새 뫼르소(un nouveau Meursault)"가 탄생한다. 둘째로, 뫼르소는 『이인』의 화자이자 인물이다. 화자 뫼르소는 장례 기간 동안 자기 몸의 욕구와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장례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하관 장면은 언급하지 않는다. 자기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화자의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살인 장면에서도 생자의 몸에서 흘러나왔을 붉은 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역시 화자의 전략이다. 마치 그가 살해한 태양은 `피가 없다`라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감추기 전략의 대가인 화자 뫼르소는 무엇보다도 자기에 대해 얘기하면서 마치 남에 대해서 얘기하듯이 혹은 남이 자기에 대해서 얘기하듯이 말한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이인』의 "나(je)"는 "그(il)"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 화자가 자기 자신을 `타자(他者)` 혹은 `이인(異人)`으로 만들고 있다. 등장인물로서의 뫼르소는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극도로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소통 의지가 철저하게 결여된 인간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성공한 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제대로 그를 이해하는 인물이 없다. 이런 배경에는 우리가 `등가 윤리(morale egalisatrice)`라고 부르는 그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고, 그래서 그는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마찬가지주의자(ca-m`est-egaliste)`이다. 이처럼, 그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기를 낯설게 하는 자이고, 사회가 그를 낯선 자로 만든다. 한 마디로, 이 사회에서 그는 `유별난 인간`, `다른 인간`, `기인(奇人)`이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인간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자신의 죽음, 즉 "태양을 사랑하는 동물의 육체적 두려움"과 맞서게 된다. 소설 마지막 장의 전반부(후반부는 교화 신부와의 대화에 할애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쪽수가 같다)에 묘사된 자신의 죽음과의 처절한 투쟁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뫼르소를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토록 드러내지 않던 그의 내면 사고가 사형 제도에 대한 그의 담론에서 처음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명증한 정신으로 모든 생존가능성(탈출, 상고, 사면)을 하나하나 배제하고 난 후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그래, 나는 죽는다(Eh bien, je mourrai donc)."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죽음을 정복한 자`, 즉 `자기 죽음의 주인`이다. 셋째로, 우리는 타인들, 특히 법조인들(수사 검사, 변호사, 공판 검사)의 뫼르소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분석하고 있다. 이것은 『이인』의 소설구조 자체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 소설의 1부는 자연인 뫼르소를 기술하고 있고, 2부(1, 3, 4장)는 살인을 저지른 이 자연인 뫼르소에 대한 법조인들의 해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석학적으로 볼 때, 1부는 읽어야 할 텍스트이고, 2부는 이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법률학은 해석학의 한 분야이고, 법조인들의 작업은 심문과 증언에서 체취한 문서, 즉 텍스트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해석학적 작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문제는 이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의 원인은, 해석학적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법조인들이 "텍스트의 의도"가 아니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공판 검사는 뫼르소를 "도덕적 괴물(un monstre moral)"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인』 텍스트에는 두 뫼르소가 있다.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가 있는데, 같은 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낯설고 다른 자이다. 이런 점에서, 뫼르소는 `이인(異人)`이자 `이인(二人)`이다. 이것은 죄수 뫼르소가 독방에서 자신의 얼굴이 비친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뫼르소가 "웃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이미지는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카뮈 자신이 지적한 대로, "『이인』의 의미는 정확하게 2부 구조의 평행관계에 담겨 있다"는 것이 거듭 확인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인』 텍스트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뫼르소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우리는 앞에서 뫼르소가 때로는 보통 사람, 때로는 다른 사람, 때로는 특이한 사람, 때로는 예외적인 인간, 때로는 유일한 인간, 때로는 엉뚱한 인간, 때로는 이인(異人), 때로는 기인(奇人),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낯선 인간, 때로는 사회에 낯선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았고, 게다가 화자 뫼르소와 인물 뫼르소,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가 서로에게 이인(異人)이면서 이인(二人)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여기에다 뫼르소 자신이 말하는 "새 뫼르소"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모두에 던진 물음에 대해서 뫼르소는 `이인으로 남은 이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찾아낸 뫼르소의 정체성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글의 모두에 명시했던 우리의 해석학적 읽기의 전제, 즉 뫼르소가 "자기 행동"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타인들이 자기에게 내리는 도덕적 평가"를 통해서 자기 인식 혹은 자기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전제의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이론모델을 제공한 폴 리쾨르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타자처럼 자기 자신(Soi-meme comme un autre)". 리쾨르의 이론을 따른다면, 이것이곧 뫼르소의 "이야기 정체성(identite narrative)"일까?

      • KCI등재

        『제국신문』소재 「血의淚 下篇」 연구 - 작가의 진위(眞僞) 논란 및 판본의 위상 문제를 중심으로

        김영민 상허학회 2013 상허학보 Vol.39 No.-

        The first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firm the identity of the author of The Tear of Blood: Volume 2. The second purpose is to analyze characteristics of the text. The first chapter explores how the new text was discovered. The Tear of Blood: Volume 2 was published by Jaekook-Sinmoon. The text contains the signature of the author Kookcho. Kookcho is a pen name of Lee In Jik, one of most popular writers of the enlightenment period in Korean literary history. But some scholars question whether this signature is genuine and suggest the possibility that a different person, the real author, borrowed Lee In Jik's pen name. The second chapter explores the possibility that Lee In Jik, chief editor of the Mansebo, himself serially published The Tear of Blood: Volume 2 in Jaekook-Sinmoon. Jaekook-Sinmoon was expanding at the time and needed popular writers to fill the newly created space. Lee In Jik was seeking a new medium that would allow him to write new novels and articles. He had a plan to leave Mansebo, which had given him editorial space, and chose Jaekook-Sinmoon as the medium to realize his new plan. The third chapter presents the evidence for the authorship of The Tear of Blood: Volume 2. It demonstrates that the author was indeed Lee In Jik, who also wrote the first volume of the novel. The literary style of The Tear of Blood: Volume 2 is similar to that of the first volume of The Tear of Blood. The writing techniques used in The Tear of Blood: Volume 2 also evidence this authorship. Additionally, this chapter explores the reason why the author Lee In Jik stopped writing the series. The financial situation of Jaekook-Sinmoon worsened after the change of the administration that had promised to support it. Lee In Jik stopped writing The Tear of Blood: Volume 2 after this cabinet change. The last chapter explores characteristics of The Tear of Blood: Volume 2. The characteristics of its plot are similar to those of Lee In Jik's completed short story. Lee In Jik thought episodes are important in writing a narrative. The distinguishing construction of narrative in his works is connected to this belief. 학계에서 이루어진 「혈의루」 판본 관련 논의 중에서 가장 진전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제국신문』 소재 「血의淚 下篇」에 관한 것이다. 『제국신문』 소재 「血의淚 下篇」에 대해서는 작가의 진위 문제부터 그 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문들이 제기된 바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의문들이 나오게 되는 배경에서부터 출발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血의淚 下篇」이 지니는 위상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제국신문』 연재본 「血의淚 下篇」에는 작가가 국초(菊初)로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제 이인직의 창작이 아니라 필명을 양도한 작품일 수 있다는 의문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한 의문이 지속된 가장 큰 이유는 「血의淚 下篇」의 문체가 이인직의 문체와 차이가 난다는 점과, 그가 11회 만에 갑자기 연재를 중단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 등에 있다. 본 논문에서는 「血의淚 下篇」의 문체와 작법의 특질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어 검증했다. 우선의 기존의 논의에서 문제로 지적 되었던 대화문의 특질과 관련해서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血의淚 下篇」의 서두가 「血의淚」 및 「鬼의聲」의 서두와 여러 가지로 유사하다는 점과 , 특히 「血의淚 下篇」에 사용된 장면 전환의 기법이 이 시기 이인직이 즐겨 사용하던 기법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아울러, 「血의淚 下篇」이 『제국신문』에 연재된 배경과 이인직이 연재를 갑자기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를 찾아내 논증했다. 『제국신문』에 실린 이인직 ‘유고’ 관련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은 「鬼의聲」의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과 『만세보』 논설의 필자 대체 문제 등을 통해 검증할 수 있었다. 이인직이 『제국신문』에 사원으로 근무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과장된 해석이며, 이인직과 『제국신문』의 관계는 공적이라기보다는 『제국신문』 사장 이종일과의 사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인직이 「血의淚 下篇」의 연재 지면으로 『제국신문』을 선택한 것은,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만세보』의 불안한 미래를 『제국신문』이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시기 지면의 확장을 앞둔 『제국신문』으로서는 대중적 인기 확산을 위한 새로운 소설 작가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이인직과 『제국신문』의 만남은 상호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血의淚 下篇」의 연재 시작 직후에 일어난 이완용 친일 내각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제국신문』과 이인직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세보』의 미래를 대체할 활동의 장이 『제국신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한 이인직은 「血의淚 下篇」의 연재를 중단한 채 필자로 복귀하지 않는다. 「血의淚 下篇」은 구성의 형식으로 보면 거의 독립된 단편소설에 가깝다. 「血의淚 下篇」은 옥련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최주사의 ‘미국 방문기’이다. 「血의淚 下篇」의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미국 방문기’는, 출발 장면에서 시작해 귀환 장면까지 이르는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血의淚 下篇」을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이인직의 소설 작법상 특질 가운데 하나는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 방식이다. 이인직의 소설들은 짧고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는데, 이 에피소드들은 서로 연관되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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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試論李白對韓國詩人李仁老的影響

        王紅霞(Wang Hong-Xia),南基守(Nam Ki-Su) 동아인문학회 2009 동아인문학 Vol.16 No.-

        이태백의 시는 천고에 빛이 나며, 그의 구애받지 않는 성품과 시적 재능은 비단 당대와 후대의 중국 시가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동방의 이웃인 고려의 문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고려 중엽의 문단 지도자인 이인로가 그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이다. 이인로는 이태백의 시로부터 풍부한 영감을 얻었으며, 그의 인생관과 문예 창작 활동은 모두 이태백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고려 왕실에서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본보기로 삼아, 시(詩)ㆍ부(賦)ㆍ송(頌) 및 시무책 그리고 다량의 중국서적을 도입하였고, 그 중 唐人의 시집과 문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문인들이 영향을 받은 당나라 문인 중 특히 이백의 경우 그의 낭만적 인생관과 구애받지 않는 성격, 비범한 시적 재능 등이 고려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고려중엽의 문단 지도자였던 이인로의 경우 본인 창작활동의 매개체로써 이백을 받아들였고 전파하였는데, 그의 인품(人品)과 시품(詩品) 모두에 걸쳐 이백의 문체가 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이백의 문헌을 언급하고 있는 이인로의 《파한집》 속에 집필동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이인로가 대범하고 구애받지 않는 성품을 추구한다는 점이 확실히 드러나 있다. 이인로의 성품과 당시 상황을 볼 때 그 시대는 이태백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이인로가 남긴 작품은 비교적 적으나, 우리는 여전히 현존하는 그 작품 속에서 이태백에게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이인로가 이태백의 시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이태백의 인품 및 시로만 이태백을 살펴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바쳐 이태백을 연구하였기에, 이태백에 대해서 더욱 깊게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응당 이러한 해석의 시각은 비교적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얻어낸 해석의 결과는 마땅히 확실하며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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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로에 대한 시평의 일고찰

        이미순 동남어문학회 2020 동남어문논집 Vol.1 No.49

        Lee In­ro, a literary man representative of the mid­Koryo Dynasty, was an advocate of the importance of yongsa(用事) and formalism according to the trend of its literature valuing rhetoric. His poetry, having influenced by Song Dynasty’s poetry prevalent in literature in those days, took on its poetic style. In Joseon Dynasty, however, his literature was evaluated as a type of Tang Dynasty’s poetry characteristic of cheongsin­buryeo(淸新富麗, Novelty and Splendor). The studies on Lee In­ro’s poems in the critical study of poetry during the Koryo Dynasty began to be understood from new perspectives, such as taking note of Lee In­ro’s yongsa and Lee Gyu­bo’s sinui(新意) and viewing them as complementary to each other. However, this essay considered the views of representative literary critics from the mid­Kory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fact that conflicting views on Lee In­ro during the Joseon Dynasty may be related to changes according to the era of standards for poetry review. In other words, it investigates which standards were applied to commenting on his poetry depending on each period. The results showed that the three Joseon Dynasty’s critics, Seo Geo­jeong, Heo Gyun, and Hong Man­jong, were evaluating Lee In­ro’s poetry with words praising Tang Dynasty’s literary qualities such as cheongsin­buryeo, cheong(淸), cheongryeo(淸麗) and cheongwan(淸婉). Besides, in the light of traditional rating method in cultures of Chinese character, which consists of three criteria, shin(神), myo(妙), neung(能), Lee In­ro was rated as the greatest state, shin, and Lee Gyu­bo as myo. Therefore, the contradictory evaluations of Lee In­ro in the Joseon Dynasty could be inferred that his poetry did not point out that his style of poetry followed the Tang Dynasty’s, but that the temperament shown in his works came from the same as those of the Tang Dynasty. In other words, it was to extol literature of Lee In­ro.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이인로는 당시(當時)의 수사를 중시하는 문예사조에 따라 용사 및 형식론의 중요성을 주창한 인물로 당시 성행하던 송시(宋詩)의 영향을 받은 그의 시문학은 송풍(宋風)을 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인로의 작품은 ‘청신부려(淸新富麗)’라는 당풍(唐風)적 성격의 평가를 받는다. 고려시대 시문학 비평연구에 있어서 이인로에 관한 연구는 종래의 이인로의 ‘용사(用事)’와 이규보의 ‘신의(新意)’에 주목하여 상호 대비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보는 등의 새로운 관점으로 파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인로에 대한 조선시대의 상충된 평가가 시평 기준별 시대 변화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문학비평가의 시관을 검토하였다. 다시 말하여 이인로에 대한 시대에 따른 시평 기준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당시(唐詩)를 존숭하는 조선시대 비평가 서거정, 허균, 홍만종의 3인은 ‘청신부려’, ‘청(淸)’, ‘청려(淸麗)’, ‘청완(淸婉)’ 등의 당풍(唐風)적 문학성을 칭송하는 어구로 이인로의 시문학을 평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자 문화권의 신(神)ㆍ묘(妙)ㆍ능(能)의 삼품에 따른 전통적인 품등법에 비추어 볼 때 이인로를 최고의 경지인 신품으로 이규보는 묘품의 경지로 파악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인로에 대한 조선시대의 상충된 평가는 이인로의 시풍이 당풍(唐風)을 따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 나타난 기질이 당시(唐詩)와 같다는, 즉 그의 문학성을 극찬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吳之湖 · 金周經 二人畵集』을 통해서 본 김주경의 1930년대 작품

        신수경(Shin Soo-kyung) 인물미술사학회 2019 인물미술사학 Vol.- No.14·15

        『吳之湖 · 金周經二人畵集』은 1930년대 회화사 자료일 뿐만 아니라 서지학, 미술비평 등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二人畵集』의 지면구성과 편집, 텍스트와 작품의 관계, 화집에 수록된 김주경 작품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오지호, 김주경 두 화가의 서로 다른 제작태도에도 불구하고 『二人畵集』에는 작품을 조화롭게 배치하기 위해 도판의 배열 순서에 매우 세심하게 신경썼다. 특히 두 작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도판 중 맨 마지막 부분에 담아 풍경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김주경은 작품을 연도별로 배치하고, 작품과 관련된 내용을 글로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김주경의 문학적 감수성과 함께 우리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이 텍스트들은 작품과 서로 보완관계이다. 즉 작품을 제작한 계기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심정 등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는 많은 정보를 통해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二人畵集』에 수록된 작품들은 1930년대 작품이 남아있지 않은 김주경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20년대 후반 조선미전에 출품한 작품들과 『二人畵集』에 수록된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1930년대 작품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물화가 많았던 1920년대와 달리 『二人畵集』에는 정물화가 한 점도 없으며, 풍경화가 중심을 이룬다. 1920년대 그린 풍경화들이 대부분 신식건물이 들어선 도심의 특정 경관을 다루었다면, 1930년대 작품은 어디를 그렸는지 알 수 없는 평범한 야산으로 이루어졌다. 인물화 역시 의자에 앉아있는 관전풍의 여인좌상에서 1930년대 초반에는 우울한 색채로 하층민들의 모습을 담았으나 이러한 화풍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35년 카프가 해산되고, 개성에서 정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앞이 탁 트인 평원을 선호했던 김주경은 자연에서 느낀 감흥을 주관적인 색채와 대담한 터치로 표현했다. 또 인물을 풍경의 한 요소처럼 작게 그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된 세계를 그렸다. 서구 인상주의 사조를 김주경 나름대로 소화한 1930년대 작품은 “햇빛이 찬연하고 선명한 색채”를 지닌 우리 자연에 대한 연가(戀歌)라고 할 수 있다. A Painting Collection of Two Artists, Oh Chi-Ho & Kim Chu-Keung the rest called as A Painting Collection of Two Artists is an essential material to comprehend Korean painting history in the 1930s. In addition, there are important values such as bibliography and art criticism. This article focused on the composition, editing , balance of text and work of A Painting Collection of Two Artists and the analysis of the Kim Chu-keung’ Works. Despite the different style of the two artists, A Painting Collection of Two Artists has remarkable arrangement of order. In particular, features of each author are placed at the end of compilation to show their artistic identity. Kim Chu-keung organized the works by year and wrote down the details of them. These texts are congruous with the picture and show his literary sensibility, affection for Nature. In other words, it provides a lot of information more than painting itself such as process of the work and the author’s feelings about the subject. A Painting Collection of Two Artists are important sources to figure out Kim Chu-keung’s works in the 1930s. The characteristics of works in 1930s from the book is cleary different compared to works submitted to the Joseon Art Exhibition in the late 1920s. Most of former subject are stilllife paintings, compared to later, landscape paintings. Furthermore, former paintings dealt with a certain view of the city, where new buildings were built, but Later paintings were made up of ordinary and unknown hills and fields. In case of figure, former painting was usually a woman seat in a chair and it is began to the lower class with gloomy color in early 1930s. However, this style of painting did not last long. Many changes took place in 1935. The KAPF was disbanded and he moved from Gaeseong to Keijyo(Seoul). Kim Chu-keung had preferred an open plain, and started to express the personal feeling in Nature with subjective colors and bold touches. He also drew a small figure like an element of the landscape, depicting a world where Nature and human beings are united. Kim Chu-keung’s 1930s work is characterized by a bright and clear colors of Joseon’s Nature which is influenced by Western impressionism in its own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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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적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신선·이인 서사와 그 의미

        신상필(Shin, Sang-phil) 국어국문학회 2020 국어국문학 Vol.0 No.193

        〈600백만 불의 사나이〉로 유명한 TV시리즈 속의 초인은 이미 고전에 속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언 맨’으로 대표되는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너무도 현실감있게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등장하여 알파고가 인간의 바둑 실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말았다. AI로 대표되는 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세기말적 세계관도 전혀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더구나 죽음에 대항할 기술들을 적극 수용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트랜스 휴머니스트의 주장에 마주하게 되면 곧 다가올 인간을 넘어선 그 이후, 즉 포스트 휴먼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요청되는 시점임을 깨닫게 된다. 이 점에서 포스트 휴먼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다소 예상 가능한 극단적 과학기술의 시대에 대한 예비적 담론이다. 본고는 트랜스휴먼의 형상에 매우 유사한 신선·이인의 서사를 통해 포스트휴먼의 관점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특이점’에 수렴하는 인간의 면모는 도교적 수련의 방식을 거쳐 신선·이인으로 전환했던 인물들의 양상과 대비시켜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넘어선 ‘포스트휴먼’의 고전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대인들의 신선과 이인에 대한 시각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비윤리적 불온성을 지닌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평범함을 넘어 제어하기 힘든 능력을 갖게 된 주체로서의 신선과 이인이 선과 악의 어느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다가올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먼에 대한 해답은 오래된 미래이자 고전적 포스트휴먼인 신선과 이인들의 행적에 이미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The Superman in the TV series, famous for The Man of $600 Million, has already become a classic. This is because the characters appearing in the blockbuster of Hollywood, represented by ‘Iron Man’, come in so realistically. This also appeared in reality, and AlphaGo made human’s Go ability weak. New technologies represented by AI are surpassing human capabilities day by day. This is why the end-of-the-century worldview shown in the films 〈Terminator〉 and 〈The Matrix〉 is not felt at all as fiction. In addition, when we face the insistence of trans-humanists to overcome human limitations by actively accepting technologies to fight death, we realize that it is the time when understanding and preparation for post-humans is required soon after, beyond humans. However, post-human is a preliminary discourse about the era of extreme science and technology, which is still unfinished but somewhat predictable. This paper attempts to approach the posthuman perspective through the narrative of the Sinseon and the Yiin, which is very similar to the shape of a transhuman. I think it is possible to discuss the aspect of humans converging to the ‘singularity’ through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contrast with the aspects of the characters who have converted to Shinseon and Yiin through Taoist training methods. This is because these are the classic examples of “posthumans” beyond human existence. In addition, the perspectives of the people of the day on the Sinseon and the Yiin were both the object of envy and admiration, and at the same time, they had two sides with unethical discord. This was a vigilant gaze on which direction Sinseon and Yiin should act in the direction of good and evil, as subjects with abilities that are difficult to control beyond ordinary. Perhaps the answer to the post-human and trans-human that will come before us has already been latent in the actions of the classic post-human, Sinseon and Yiin, as the old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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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정치가로서 이인직의 위치와 합방 정국에서 그의 역할

        전봉관(Jun Bong-Gwan) 한국현대문학회 2010 한국현대문학연구 Vol.0 No.31

        정치가로서 이인직이 친일 노선을 견지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 현실 정치에서 친일은 단일한 정치 노선이 아니었다. 똑같이 친일파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도 한국 주차 일본군과 결탁한 일진회 세력과 통감부의 지원을 받은 이완용 내각이 치열한 권력 투쟁을 전개했다. 이 글에서는 이인직이 친일 정치 세력 내부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그가 왜 합방 정국에 개입했고, 어떠한 논리로 합방을 정당화했는지 살펴보았다. 이인직은 똑같이 친일의 범주에 묶이지만,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상극의 정치 집단이었던 일진회와 이완용 내각, 두 정치 집단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신소설에 나타난 이인직의 한국 인식은 양반 관료의 부정부패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본의 세력을 끌어들여 ‘양반 내각’ ‘문벌 내각’을 붕괴시키고 ‘민당(民黨)’의 집권을 도모한 일진회의 인식에 이어지지만, 정작 그는 일진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완용 내각의 홍보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일진회의 합방정원 이후에는 이완용을 대리해 국내에서 합방 반대 운동을 벌이고, 이완용의 밀명을 띄고 도일해 일본에서 여론 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의 후진성의 근본 원인이 ‘관리의 폭염’에 있음을 논설과 신소설을 통해 통렬히 비판하던 이인직이 1907년 이후 황실과 양반 계급에 대해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그 시기 그 자신이 한때 통렬히 비판했던 권력의 핵심과 연결되었고, 또한 그가 비판한 것은 ‘관리의 폭염’이었을 뿐, 양반 계급 그 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친분, 욕망과 이해관계를 제외하고 일진회에서 이완용 내각으로 이인직의 전향을 설명해줄 거의 유일한 내적 동력은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서얼 가계라는 양반 계급 내에서 그가 차지한 독특한 신분적 위치 정도이다. There is no one to deny the fact that Lee Injik was a pro-Japanese politician. But There were divers pro-Japanese political group; in the period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Both Iljinhoe an Lee Wan-yong Cabinet were pro-Japanese political groups but they fought each other to gain the political power. This study explains the position of Lee Injik as a pro-japanese politician, why he became a pro-Japanese politician and how he justified his political activities. Lee Injik was thought to be the only politician who took a important role both Iljinhoe an Lee Wan-yong Cabinet which were incompatible almost every political issues. His novels, as Iljinhoe, severely criticize corruptions of government officials and yangban the Korean aristocracy but he actually broke off relations with Iljinhoe and collaborated with Lee Wan-yong Cabinet which represented corrupted government officials and yangban class. This study explain his discrepancy in the perspective of his family's contradictory position at once descendant of powerful yangban and child of concub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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