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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파세마고원의 거석유적

          임영진 ( Young Jin Yim ),박수현 ( Soo Hyun Park ),이정진 ( Jung Jin Lee ),( Bagyo Prasetyo ),가종수 ( Jong Soo Ka ),이동희 ( Dong Hee Lee ),조진선 ( Jin Seon Cho ),윤호필 ( Ho Pil Yun ) 호남고고학회 2011 湖南考古學報 Vol.38 No.-

          이 글은 2011년 2월에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파세마고원 지대의 거석문화유적에 대한 현지조사 보고문이다. 한국의 (재)호남문화재연구원과 인도네시아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동으로 이 지역의 지석묘와 석실묘를 중심으로 실시하였으며 지석묘 7개소, 석실묘 7개소, 석상·석물·입석 13개소, 암각화 1개소를 조사하였다. 지석묘는 평야지대에 군집되어 있으며 남방식과 개석식이 공존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석실묘는 구릉지대에 단독 또는 몇기가 모여 있으며 지하 횡구식이지만 외형만으로는 지석묘와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석실묘 역시 정확한 시기를 알기 어렵지만 철기 유입 이후 지석묘가 발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석상과 석물은 대부분 지석묘나 석실묘와 같은 지역에 공존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용도와 상호 관계가 파악되지 못하고 있으며 입석은 단독으로 존재한다. 수마트라섬의 파세마고원 지대에 남아있는 많은 거석문화유적은 선사·고대의 동아시아 교류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지만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는 정밀한 발굴을 통한 정확한 연대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This is a survey report on the megalithic monuments of the Pasema area in Sumatra, Indonesia, which was conducted in February 2011. The survey was carried out collaboratively by the Honam Cultural Property Research Center in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and Development Center of Archaeology in Indonesia, and investigated seven dolmens, seven stone chamber tombs, thirteen stone statues, and one rock carving site. The dolmens, which can be divided into stone-supported type and capstone type, are situated on the plains and their construction dates are difficult to estimate. The stone chamber tombs, which are a side-entrance type, are situated on the low hills, but some of them are not clearly distinguished from the capstone type dolmens. The construction date of the stone chamber tombs is equally ambiguous, although they appear to have developed after the dolmens. Most of the stone statues coexist with the dolmens or the stone chamber tombs, but their function and the relationship with each other is not clearly understood until now. Menhir exists alone. The megalithic sites of the Pasema area are important archaeological materials through which we can understand cultural interactions in ancient East Asia. They awaits further investigation, particularly on the issue of establishing chronology through systematic exca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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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지역 가야고분의 현황과 특징

          전상학 호남고고학회 2018 湖南考古學報 Vol.59 No.-

          전북의 동부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가야계 고총고분은 진안고원(장수,장계분지)에 240여기, 운봉고원에 150여기이며, 이 중 발굴조사를 통해 140여기의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가 조사되었다. 이를 토대로 전북의 동부지역에는백제와 신라가 진출하기 이전까지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한 국가단계의 정치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가야고분의 입지는 대체적으로 하천이 흐르고 주변에 충적지가 발달된 지형으로, 고분이 자리하는 지역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산줄기의 정상부 또는 주능선의 등줄기를 따라 자리한다. 전북지역 가야고분은 봉토가 타원형이고, 호석이 확인되지 않는다. 봉토와 매장시설의 축조방법은 1차성토 후이를 파내어 묘광을 마련하고 매장시설을 축조하며. 일부 주구가 확인되고 있다. 이는 재지문화 속에 가야문화가결합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토유물의 특징은 가야 권역에서 출토 예가 거의 없는 위신재의 부장, 여러 지역의 다양한 유물들이 동일 고분내에서 확인된다는 점이다. 토기류는 재지계, 대가야(고령양식), 소가야(진주·고성양식), 마한, 백제, 신라, 왜계토기등이 있다. 분묘자료 이외에도 관방(산성·봉수)유적과 제철유적 등은 전북 가야의 실체와 발전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The Mound of Gaya found so far in eastern North Jeolla Province is 240 here in the Jinan Plateau (Janggye and Janggye Basin), and 150 in Unbong Plateau. Of these, the excavation team examined the remains of a 140 stone lined Tomb in Gaya. Based on this, it is assumed that the eastern region of North Jeolla Province had a national organization developed based on Gaya culture before Baekje and Silla entered the country. The location of Gaya tombs is generally a geographical feature in which streams and ancestral sites are developed. Gaya Tomb in North Jeolla Province has an oval bowl and no stone statues are found. The way to construct the Bongto and its burial facilities is to dig up the first stage, prepare a tombstone, and construct a burial facility. Some tools are being identified. It is understandable that Gaya’s culture is now being combined into a re-designated painting. The unique features of the excavated items are that the head of the Wisinjae Temple, which has few examples from Gaya, and the various relics from different regions are found inside the same ancient tomb. The pottery includes Gaya, Baekje, Silla, Mahan, and Japanese pottery. In addition to the ancient tombs, acid, beacons, and iron ore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on understanding the reality and development process in North Jeolla Kaya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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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호남지방 고분 출토 동물유체 고찰

          김건수 ( Geon Su Kim ) 호남고고학회 2016 湖南考古學報 Vol.52 No.-

          호남지방에는 많은 고분이 산재하고, 이 고분들 가운데는 동물유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고분의 조영과 관련된 의례행위로서 동물을 매납했던 것들이다. 호남지방의 고분에서 동물유체가 출토되는 곳은 전역에 걸쳐 산발적으로 분포한다. 특히 전남지방에 있어서는 고분조영에 있어 전반적으로 동물을 제사에 이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시기적으로는 호남지방의 고분에서 동물을 제사를 이용한 것은 5세기 말부터 시작하였고, 6세기 대에는 전남지방 각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물유체가 확인되는 고분의 종류는 주구묘, 석실분, 석곽분, 전방후원형분이며 아직 옹관고분에서는 그 실례가 없다. 호남지방 고분에서 출토된 동물은 소, 말, 돼지, 개가 있는데 주류는 소가 중심이다. 이러한 동물공헌은 고구려와 백제의 관련 속에서 발전해 온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Many ancient tombs are located in the Honam region, some of which contain animal remains. These remains represent ritual activitie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the tombs. Tombs with animal remains are widely scattered across the Honam region. In the Jeonnam province, it appears that animals were commonly sacrificed during tomb construction. Animal sacrifice rituals started in the 5th century AD and became prevalent across the Jeonnam province by the 6th century AD. The tombs with animal remains are stylistically diverse and include fosse-girded tombs, stone-chamber tombs, stone-lined tombs, and keyhole-shaped tombs. Yet there is no archaeological example of a jar-coffin tomb with animal remains. The represented animals are cow (Bos), horse (Equus), pig (Sus), and dog (Canis), with cow comprising the majority. Animal sacrifice should be seen as a unique regional tradition that developed in interaction with Goguryeo and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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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기로 본 5~6세기 복암리세력과 주변지역의 동향

          서현주 ( Hyunju Seo ) 호남고고학회 2016 湖南考古學報 Vol.54 No.-

          나주 복암리 일대는 복암리 1~4호분으로 보아 3~7세기동안 고분이 조영되었음이 알려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최근들어 5~6세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형 고분들이 조사되면서 다양한 계통을 보여 주는 자료가 확인되어 이를 통해 복암리세력의 동향을 좀더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최 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복암리 정촌고분, 가흥리 신흥고분의 토기를 중심으로 하고 복암리고분군과 비교하면서 5 ~6세기 복암리세력과 주변지역의 동향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복암리 정촌고분과 가흥리 신흥고분은 영산강중류지역인 복암리고분군의 인근에 위치하며, 토기나 매장시설로 보아 복암리 3호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조영되기 시작하였고 계통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흥리 신흥고분은 5세기 중엽, 복암리 정촌고분은 분구와 함께 1호 석실묘가 5세기 후엽에 조영되기 시작하여 7세기를 전후한 시기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계통적으로 볼 때 가흥리 신흥고분은 가야계, 왜계, 백제계, 영산강하류지역, 복암리 정촌 고분의 1호 석실묘는 왜계, 백제계, 영산강상류지역 등 다양한 계통과 관련지역이 확인되며, 이후 석곽묘와 옹관묘, 사비기 석실묘에는 재지계 유물과 함께 소수의 가야계 유물도 포함되어 있다. 복암리 3호분이나 영동리고분군에서는 신라계 자료도 확인된다. 가흥리 신흥고분은 영산강하류지역의 양상과 연결되므로 5세기 중엽경에 이 일대의 세력이 재지성향을 가지면 서 중류지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복암리 정촌고분은 다른 영산강 중류나 하류 지역의 고 분들과 비교하면, 토기나 매장시설 등에서 다소 이질적이다. 특히, 1호 석실묘는 영산강상류지역, 백제와의 관련이 두드러진다. 6세기경에 조영되어 주로 6세기 전반에 매장이 이루어진 복암리 3호분의 96석실묘를 중심으로 한 복 암리고분군에서도 백제계 토기는 이어지지만, 소위 백제식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배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두 고분 모두 백제계 위세품인 금동식리가 부장되어 백제와의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데, 토기 양상 또한 시차를 두고 복암리세력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위상과 역할이 변화·확대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Bokam-ri, Naju, is known for the presence of ancient tumuli dated to the 3rd to the 7th centuries AD, and a new set of tombs have recently been excavated. The current paper examines pottery assemblages of the newly excavated tombs and discusses their implications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interaction of regional polities. The Jeongchon tomb in Bokam-ri and the Shinheung tomb in Gaheung-ri are located in the middle reach of the Yeongsan River. These tombs are close to the Bokam-ri tombs, but were built earlier than the Bokam-ri no. 3 tomb. The Shinheung tomb was built around the mid 5th century and reflects the influence from Gaya, Wa (倭) and Baekje. The tomb represents the emergence of new power group in the area. The stone chamber of the Jeongchon tomb was built around the late 5th century. The tomb and the associated pottery reflects cultural connections with Baekje, especially those in the upper area of Yeongsan River. The so-called Baekje-style flat cups are the dominant artifact types discovered from No. 96 chamber tomb of the Bokam-ri no. 3 tomb. Gilt-bronze shoes, a Baekje-style prestige item, were discovered from the Jeongchon tomb and the Bokam-ri no. 3 tomb. These findings suggest the close relationships of the local polities with Baekje and the changing political status of the Bokam-ri elite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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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기로 본 5~6세기 복암리세력과 주변지역의 동향

          서현주 호남고고학회 2016 湖南考古學報 Vol.54 No.-

          Bokam-ri, Naju, is known for the presence of ancient tumuli dated to the 3rd to the 7th centuries AD, and a new set of tombs have recently been excavated. The current paper examines pottery assemblages of the newly excavated tombs and discusses their implications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interaction of regional polities. The Jeongchon tomb in Bokam-ri and the Shinheung tomb in Gaheung-ri are located in the middle reach of the Yeongsan River. These tombs are close to the Bokam-ri tombs, but were built earlier than the Bokam-ri no. 3 tomb. The Shinheung tomb was built around the mid 5th century and reflects the influence from Gaya, Wa (倭) and Baekje. The tomb represents the emergence of new power group in the area. The stone chamber of the Jeongchon tomb was built around the late 5th century. The tomb and the associated pottery reflects cultural connections with Baekje, especially those in the upper area of Yeongsan River. The socalled Baekje-style flat cups the dominant artifact types discovered from No. 96 chamber tomb of the Bokam-ri no. 3 tomb. Gilt-bronze shoes, a Baekje-style prestige item, were discovered from the Jeongchon tomb and the Bokam-ri no. 3 tomb. These findings suggests the close relationships of the local polities with Baekje and the changing political status of the Bokam-ri elite groups. 나주 복암리 일대는 복암리 1~4호분으로 보아 3~7세기동안 고분이 조영되었음이 알려졌으며 이를 바탕으로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최근들어 5~6세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형 고분들이 조사되면서 다양한 계통을 보여주는 자료가 확인되어 이를 통해 복암리세력의 동향을 좀더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복암리 정촌고분, 가흥리 신흥고분의 토기를 중심으로 하고 복암리고분군과 비교하면서 5 ~6세기 복암리세력과 주변지역의 동향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복암리 정촌고분과 가흥리 신흥고분은 영산강중류지역인 복암리고분군의 인근에 위치하며, 토기나 매장시설로보아 복암리 3호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조영되기 시작하였고 계통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흥리 신흥고분은 5세기중엽, 복암리 정촌고분은 분구와 함께 1호 석실묘가 5세기 후엽에 조영되기 시작하여 7세기를 전후한 시기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계통적으로 볼 때 가흥리 신흥고분은 가야계, 왜계, 백제계, 영산강하류지역, 복암리 정촌고분의 1호 석실묘는 왜계, 백제계, 영산강상류지역 등 다양한 계통과 관련지역이 확인되며, 이후 석곽묘와 옹관묘, 사비기 석실묘에는 재지계 유물과 함께 소수의 가야계 유물도 포함되어 있다. 복암리 3호분이나 영동리고분군에서는 신라계 자료도 확인된다. 가흥리 신흥고분은 영산강하류지역의 양상과 연결되므로 5세기 중엽경에 이 일대의 세력이 재지성향을 가지면서 중류지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복암리 정촌고분은 다른 영산강 중류나 하류 지역의 고분들과 비교하면, 토기나 매장시설 등에서 다소 이질적이다. 특히, 1호 석실묘는 영산강상류지역, 백제와의 관련이두드러진다. 6세기경에 조영되어 주로 6세기 전반에 매장이 이루어진 복암리 3호분의 96석실묘를 중심으로 한 복암리고분군에서도 백제계 토기는 이어지지만, 소위 백제식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배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두고분 모두 백제계 위세품인 금동식리가 부장되어 백제와의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데, 토기 양상 또한 시차를두고 복암리세력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위상과 역할이 변화·확대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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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지역 마한과 백제, 그리고 가야의 상호관계

          김승옥 호남고고학회 2019 湖南考古學報 Vol.63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the interrelation between Mahan, Baekjae, and Gaya in the Honam Region. To this end, we first look at the theoretical premises and methodologies for examining the evolution and interrelation of political bodies based on material culture. Next, we discuss the diversity of the cultures within the Honam region from the early Iron Age to the Three Kingdoms period, as well as the space-time of Mahan. Based on material culture and written records, the temporal development of Mahan may be segmented into the initial- early-middle-late periods. The key spatial sphere of Mahan saw changes along with the progression of the periods, accompanied by diverse changes in the content and nature of its material culture. This study considers the interrelation between Mahan, Baekjae, and Gaya in the Honam region through three stages. The 1st Stage (middle 3rd century ~ middle-late 4th century) was one where interrelation and negotiations began between Mahan, Baekjae, and Gaya in the Honam region. During this stage, the ancient culture of Mahan reached its peak in the western areas of the Honam region, spreading throughout the Seomjin River area, with the exception of the Jinan highlands in the upper Geum River area and the vicinity of the Woonbong highlands. Regionally, Mahan culture exhibited marked differences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with further differences found in each of the sub-regions in not only the western but also eastern areas. The cultures of the midstream and lower areas of the Seomjin River and that of the Boseong River area, which were relatively disparate from those of the western regions, came to form close relations with the cultures in the upper Youngsan River and the southwestern coastline. The Mahan political bodies of the Honam region - in particular those near the basin of the Youngsan River - pursued activ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Baekjae and Mahan political bodies in the mid-western regions, as well as Geumgwan-Gaya in the western part of the Gyeongsangnam-do province. Such diplomatic negotiations may be regarded not as a relationship between a core and its periphery, but as an 'interaction relationship between equal political bodies'. With the advent of the 2nd Stage (late 4th century ~ late 5th century), the western areas of the Jeollabuk-do province came under the dominion of Baekjae. However, most areas of the Youngsan River - barring certain foothold territories - still retained their political and cultural autonomy. As the Mahan culture gradually deteriorated in the basin areas of the Seomjin River, there was a confluence of cultural elements from Baekjae, Ara-Gaya, and So-Gaya. However, by the mid-5th century, there occurred an intense power struggle between Baekjae and Dae-Gaya - the key areas of this struggle are presumed to be in the upper Geum River area and the midstream of the Seomjin River. Lastly, with the advent of the 3rd Stage (early to mid-6th century), most of the Honam region became the territory of Baekjae, with the establishment of direct control seeing completion by the mid-6th century. This is supported by both material culture and written records. The areas that were the last to come under Baekjae control appear to have been around the Seomjin River. After first subjugating the upper and midstream regions, Baekjae then went on to conquer Dae-Gaya in the Woonbong highlands and Jangsoo, as well as the Four Prefectures of Imna(任那四縣) in the downstream parts of the river. 이 글의 목적은 호남지역 마한과 백제, 그리고 가야의 상호관계를 논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물질문화를 통한 정치체의 동정과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적 전제 및 방법론에 대해 살펴본다. 다음으로 호남지역 초기철기∼삼국시대 문화의 다양성과 마한의 시공간에 대해 논의한다. 마한의 시간적 전개과정은 물질문화와 문헌기록으로 볼 때 조기-전기-중기-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획기별로 마한의 주요 공간이 이동하였고 물질문화의 내용과 성격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호남지역 마한과 백제, 가야의 상호관계를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1단계(3세기 중반∼4세기 중후반)는 호남지역에서 마한과 백제, 가야가 상호관계와 교섭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단계의 마한 문화는 호남 서부 일대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고, 금강 상류의 진안고원과 운봉고원 일대를 제외한 섬진강 전역에 나타난다. 마한 문화의 지역적 차이는 서부와 동부로 대별되는데, 서부는 물론이고 동부에서도 소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서부와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섬진강 중류와 하류, 보성강권 문화는 영산강 상류와 서남해안의 문화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호남지역, 특히 영산강유역의 마한 정치체는 중서부 지역 백제나 마한 정치체, 경남 서부의 금관가야와 활발한 대외관계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대외교섭은 중심과 주변간의 관계가 아닌, 소위 ‘동등 정치체간 교호관계’로 볼 수 있다. 2단계(4세기 후반∼5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전북 서부 일대는 백제의 지배영역으로 편입되지만 일부 거점지역을 제외한 영산강 일대는 정치와 문화의 자율성을 누렸던 것으로 판단된다. 섬진강유역권에서는 마한 문화가 점차 쇠퇴하면서 백제, 아라가야, 소가야의 문화요소가 혼재하게 된다. 그러나 5세기 중반 경에 이르면 백제와 대가야 세력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게 되는데, 그 핵심지대는 금강 상류와 섬진강 중류 일대로 추정된다. 마지막의 3단계(6세기 전반∼중반)에 이르면 백제가 호남지역 대부분을 영역화하기 시작하며 6세기 중반 경에는 직접지배가 완료되는데, 이는 물질자료와 문헌기록에서 입증된다. 영역화가 가장 늦은 지역은 섬진강 일대로 볼 수 있는데, 상류와 중류를 장악한 백제는 이후 운봉고원과 장수의 대가야 세력, 하류의 任那四縣을 정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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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양상과 특징 -생활유적을 중심으로-

          장지현 ( Jihyoun Jang ) 호남고고학회 2015 湖南考古學報 Vol.51 No.-

          최근 호남지역에서는 점토대토기문화 단계의 주거지, 수혈유구, 구상유구 등 생활유적에 대한 조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유적과 출토유물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본고에서는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 양상과 특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호남지역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출토유물, 주거지의 구조적 특징,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값 등을 통해 크게 Ⅰ·Ⅱ·Ⅲ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Ⅰ기(기원전 5세기 전반~기원전 4세기 후반)는 A유형의 주거지에서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데, 점토대토기문화와 재지의 송국리문화가 만나는 시기로서 유적은 호남의 전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된다. Ⅱ기(기원전 3세기 전반~기원전 2세기 중반)는 점토대토기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시기로서 A유형 의 주거지도 확인되나 B유형의 주거지가 주를 이루게 된다. II기의 취락은 대부분 해발고도 34m 미만의 낮은 구릉 정상부나 사면 또는 말단부에 입지한다. 또한 대부분 2~5기 정도의 주거로 구성된 소규모 취락의 양상을 보이고, 전북 내륙지역, 특히 만경강유역을 중심으로 유적이 밀집·분포한다. 출토유물은 원형점토대토기를 비롯하여 조합 식우각형파수부호, 두형토기, 삼각형석촉 등이 확인되며, 삼각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유적도 일부 등장하기 시작한다. Ⅲ기(기원전 2세기 후반~기원후 2세기 전반)에는 C유형의 주거지가 주를 이루며, 광주를 비롯한 영산강 유역에 취락이 밀집·분포한다는 점에서 II기와 대조된다. 출토유물은 원형점토대토기가 극히 소량으로 확인되고 삼각형점토대토기의 비중이 매우 높아진다. 또한 조합식우각형파수 대신 우각형이나 봉상형파수로 대체되며, 경질무문토기가 다수 공반되고 두형토기의 출토율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시루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The Clay-stripe Pottery culture of the Honam region can be divided into three phases -- I, II, and III -- on the basis of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dwellings, stylistic observations of the excavated artifacts, and radiocarbon dating. In Phase I (early 5th to late 4th century BC), clay-stripe pottery with circular bands emerged. This was the period in which the indigenous Songguk-ri culture first encountered the Clay-stripe Pottery culture. Phase II (early 3rd to mid 2nd century BC) witnessed the rapid spread of the Clay-strip Pottery culture across the Honam region. Villages are mostly located on low hilltops and slopes lower than 34 meters above sea level, are small-scale with only 2-5 houses, and are densely distributed in inland Jeollabuk-do. Artifacts of this phase include assembled cow-horned jars, mounted dishes, triangular stone arrowheads as well as clay-stripe pottery with either circular or triangular bands. In Phase III (late 2nd century BC to early 2nd century AD), villages were densely distributed along the Yeongsan River around Gwangju. The ratio of clay-stripe pottery with triangular bands increased. The amount of hard Mumun pottery also increased and assembled cow-horned jars were replaced by simple cow-horned or rod-handled jars. Steamers also began to appear in Phase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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