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文獻과 考古資料로 본 麗末鮮初 제주의 기와수공업

          전영준(Jeon, Young-joon) 역사실학회 2016 역사와실학 Vol.59 No.-

          최근 제주시 광양로터리 인근의 숙박시설 부지 내에서 발굴된 2기의 瓦窯址는 고려시대의 유구로 파악되고 있어서 늦어도 여말선초시기 제주지역에는 기와수공업이 실재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여말선초시기 제주지역의 수공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부분 유배인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때문에 여말선초시기 기와수공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고려시대 제주 지역 창건 사찰의 사찰수공업 운영 방식을 내륙 사찰과 비교 검토하거나, 여말선초시기의 제주 행정관서에 대한 일련의 발굴 결과를 반영하여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당시의 제주사회상을 알려주는 내용이 있는데, [궁실] 항목의 弘化閣과 [누정] 항목의 觀德亭에 대한 기사이다. 1435년에 화재로 소실된 관청 건물을 중수할 때 廢寺된 사찰의 기와를 재활용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제주에서는 그 이전부터 기와를 사용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제주 지역에는 고려시대부터 운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찰이 15處 내외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수정사는 법화사 · 원당사와 함께 고려시대 제주의 3대 사찰로 손꼽혔다. 고려시대의 사찰들은 자체적으로 필요한 僧物의 제작이나 사찰건축에 필요한 물자의 생산 기능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제주지역에서 운용되었던 사찰에서도 그 기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삼별초의 제주 진입과 함께 유입되었을 각종 수공업 문화는 기존의 사원수공업과 함께 여말선초 수공업 문화의 한 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판단된다. 홍화각의 중수 때 함께 마련된 건물은 모두 206칸으로 상당한 규모를 보인다. 많은 건물을 중수하거나 신축할 때에는 당연히 상당한 양의 건축자재를 필요로 하는데, 기와 또한 상당량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홍화각 중수에 폐사된 사찰의 기와를 사용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사용처가 담장지에 제한적으로 쓰였다는 발굴 결과를 반영한다면, 신축 건물에 쓰였을 기와는 새롭게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기와 생산 방식이 수요처의 인근에서 제작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주목 관아지와 가까운 곳에 당시의 기와 가마터가 존재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 KCI등재

          전근대시기 제주사회의 기상변화와 대응

          전영준(Jeon, Young-Joon) 역사실학회 2014 역사와실학 Vol.55 No.-

          The study of the Korean history on meteorological change or climate change is generally carried out by focusing on natural calamities included in the official history in each period. Concerning the Goryeo Period, it was focused on the change of the five elements in general. Namely, astronomical phenomena and five elements were composed as major items in the history books, and therefore, the records contained in those books are addressed as serious natural calamities nearly indicating the signs of the chaotic world. For this reason, studies are concentrated on how natural disasters affected the nation and social organizations and how the government and private sector's responses were, rather than on the meteorological phenomena. This paper identified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meteorological data used for the study of Korean history, and discussed the meteorological change and response aspects of the Jeju society in the Pre-modern Period, based on the study results that analyzed various meteorological changes and response ways in the pre-modern society, due to natural disasters.

        • KCI등재

          麗末鮮初 度牒制 運用과 僧徒의 性格

          全暎俊(Jeon, Young-joon) 백산학회 2004 白山學報 Vol.- No.70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e Purpose of the research is to analyze the original characteristics and functions of the Dochubje(도첩제) during the period between the Late Koryo dynasty and Early Chosun dynasty. According to Koryosa(高麗史) and Chosun dynasty Memoir(朝鮮王朝實錄), the original intension of Dochubje was to maintain the religious functions and control joining the Buddhist priest. However, in practice, the Dochubje was often abused for evil purposes like avoiding corvee by the low-class or common people. Consequently, the Dochubje was made the target of criticism and reformation. On examining documents related reforming policies in the early Chosun dynasty, one may find out that the reform was mainly concentrated on economic innovation and securing the labour-power of common people. Subsequently, this study, based on Chosun Dynasty Memoir and Koryosa, shows that the Dochubje had for its object to accomplish the ensuring labour-power of public engineering work, controlling Buddhist priest, and economic reformation of temples.

        • KCI등재

          2009 개정교육과정과 고등 『한국사』교과서의 여몽교류사(麗蒙交流史) 서술 분석

          전영준 ( Jeon Young-joon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7 탐라문화 Vol.0 No.54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검정교과서의 서술은 기존의 민족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의 공존이 가져온 결과임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는 전 시기에 걸쳐 주변의 송-거란-여진-원-일본 등 국가 간의 상호 교류를 통해 발전하였음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다문화 및 글로벌 시민교육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면서도 2007년의 개정7차교육과정의 `세계사 속의 한국사`라는 맥락으로 잘 반영되어 있으며, 2009개정교육과정(총론)과 2011 개정교육과정(각론) 교육과정에서도 그 기조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교과서 집필지침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서술을 강요하여 “우수한 송의 문화와 저급한 북방민족의 문화”라는 등식을 무의식중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교육의 목표를 파악한 서술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할 것이고 서술의 중립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교과서의 분량이 다소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미 전개되었던 한국사의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집필지침의 수정 없이 고착화된 역사교육을 주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주변의 여러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형성되었다는 전반적인 이해에 장애가 되고 있음은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The description by authorized textbooks currently used in middle and high schools reflects actively the result of the coexistence of various cultures away from the existing perspective of nationalism. In particular, these textbooks state that the Goryeo dynasty developed through mutual exchanges with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the Song dynasty, the Kitan, the Jurchen, the Yuan dynasty and Japan throughout the period. This indicates the changes in the perspective on multicultural and global citizen education and is well reflected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Korea in the history of the world` of the revised 7th curriculum in 2007. The keynote was maintained in the revised 2009 curriculum (the general) and the revised 2011 curriculum (the particular). However, it is pointed out that the guidelines on textbook writing still insist on the description from the nationalist views and show unconsciously the perception of “the excellent culture of the Song dynasty and the low culture of northern peoples.” To overcome this, it is necessary to actively reflect the description that grasps the goals of the history education according to the curriculum and to ensure the neutrality of the description. Besides, it is essential to improve the understanding of the historical lessons suggested by historical facts in Korean history that was already developed, even if the amount of textbooks increases to some extent. Furthermore, there is a need to clearly point out that leading the fixed history education without revising the writing guidelines according to the changes of the times hinders the overall understanding of the fact that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Goryeo dynasty were formed through active exchange with many neighboring countries.

        • KCI등재

          탐라신화(耽羅神話)에 보이는 여성성(女性性)의 역사문화적 의미

          전영준 ( Jeon Young-joon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6 동국사학 Vol.61 No.-

          제주의 문화자산으로서 신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재평가의 움직임은 다양한 탐라신화에 대한 선학들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당연한 자연법칙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라 할 만큼 탐라신화에는 지혜롭고 강인한 여성상이 등장하며, 이들에 대해 주목하는 최근의 연구는 제주 사회의 구성요소에 대한 본질적 탐구라 할 만하다. 제주도의 독특한 종교문화는 열악한 제주여성들의 삶의 정황에 기인한 것이다. 絶海孤島의 지리적 제한, 척박한 자연환경과 어려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제주여성들은 집안일, 밭일, 바닷일에 더해 사회적 역할까지 감내해야 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삶을 위협하는 자연의 변화에서 생명 보존과 풍요에 대한 강한 염원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과 敬畏로 표현되었다. 다양한 성격의 신화와 공간이 창출되었고, 신앙 공간의 주된 행위자는 척박한 제주 사회를 이끌었던 여성이라는 점이다. 장기간에 걸친 여성 우월적인 문화패턴이 인류역사 초기에 존재했었음을 알리는 증거들은 여러 민족의 건국신화에 잘 드러난다. 性的인 역할과 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근래에 들어 크게 달라지면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여성우월적인 문화패턴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더욱이 그런 시대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인간생활의 총체적인 표현이 역사이며, 이것에는 생활습속을 포함한 신앙, 의식의 한 형식으로 신화를 품고 있다. 제주에 전승되고 있는 풍부한 내용의 신화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신화의 형성은 이성의 지배, 과학기술의 발달이나 산업화 현상 등 합리주의의 근대적 요소들과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인데, 제주인의 역사는 이 같은 反신화적인 요인들이 비교적 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탐라신화의 형성과 전승과정에 잘 드러나는 여성적인 감성요소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제주의 역사가 전근대적인 단계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근대 유럽의 계몽적 합리정신이 추상적인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기계문명과 산업사회를 일으켰던 역사는 남성적인 이성능력의 소산이었다. 반면, 합리주의와 산업문명에 의해 마멸되지 않은 소박한 인간성의 온존상태와 같은 여성적인 감수성과 보호본능을 강하게 드러내는 탐라신화는 제주 역사문화의 전개과정에서 풍요를 담당하는 주체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의 여러 건국신화가 전쟁과 투쟁으로 점철되는 영웅신화로 여기의 여성상이 객체 또는 매개체의 역할에 제한되어 있지만, 탐라신화에 보이는 여성상은 여성영웅으로서 천지와 국토를 창조하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주체로서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래의 제주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이제까지 홀대받았던 탐라신화의 가치는 새롭게 인식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주문화의 전승 기반으로서 탐라신화에 보이는 여성성의 역사문화적 이해는 제주문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이면서도 탐라신화의 역사적·문화사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일정한 방향성을 提高할 수 있을 것이다. A move to newly perceive and reevaluate Jeju Island`s myths as Jeju Island`s cultural asset is based on previous scholars` studies of various Tamra mythologies. Tamra mythologies show such wise and strong feminine images as can be shocking to those who see male dominance over women as natural law. Recent studies focusing on these images deserve to be considered as intrinsic explorations into the components of Jeju Island`s society. Jeju island`s unique religious culture is based on bad life situations of the Jeju Island women. In the remote and isolated island with geographic limitations, harsh natural environment and turbulent history, the women of Jeju Island had to go through hardships to play social roles as well as to work around the house, in fields and at sea. Their strong desire for survival and abundance in the changes in nature that poses a threat to life was expressed in faith and awe of supernatural beings. Different types of myth and space were created accordingly, and major leaders in the space of faith were women that led the Jeju Island`s harsh society. Many tribes` state-founding myths clearly show proofs that there was a long-term female-dominating culture pattern in the early stage of human society. As the expectation of gender role and capacity has changed greatly these days, people are currently paying keen attention to the facts that female-dominating culture pattern was natural in the early stage of human history and that such a stage lasted for a very long time. The comprehensive expression of human life is history, which contains myths as a form of faith and ceremony including manners and customs. Myths with rich contents inherited to the Jeju Island people have their sufficient historical backgrounds. The formation of a myth is difficult to coexist with modern factors of rationalism such as the rule of reason, the development of scientific technology or the phenomenon of industrialization. Nevertheless, these anti-mythical factors had relatively little influence on the history of the Jeju Island people. Feminine emotional factors revealed well in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inheritance of Tamra mythologies are found a lot; this is attributed to the fact that the history of the Jeju Island was kept for a long time in the pre-modern stage. Enlightenment rationalism in modern Europe helped to discover abstract natural law and to develop machine civilization and industrial society using natural science and technologies. This history was the outcome of masculine reasoning ability. Meanwhile, Tamra mythologies clearly reveal feminine sensitivity and protective instinct such as the maintenance of simple humanity that is not destroyed by rationalism and industrial civilization. It is noteworthy that Tamra mythologies have been granted subjective roles in being responsible for abundance in the process of the Jeju Island people`s historico-cultural development. Many state-founding myths in the Korean Peninsula include heroic myths filled with wars and strifes. Although feminine images in these myths are limited to the roles of objects or intermediaries, feminine images seen in Tamra mythologies are characterized as heroines having been granted the roles of entities to create heaven and earth and to bring about abundance. In terms of the discovery of a new value to lead the future Jeju Island`s society, it is necessary to newly perceive and reevaluate the value of Tamra mythologies that have been neglected up to now. So, a historico-cultural understanding of femininity seen in Tamra mythologies as the foundation for the inheritance of the Jeju Island`s culture will be a trigger to expand the realm of the Jeju Island`s culture and also to improve the sense of direction for reestablishing the cultural-historical status of Tamra mythologies.

        • KCI등재
        • KCI등재

          삼별초의 항파두리 토성 입거와 전략적 활용

          전영준(Jeon, Young-joon) 한국역사민속학회 2015 역사민속학 Vol.0 No.47

          대몽항쟁기 삼별초는 강화도, 진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항전하였다. 여몽연합군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 등으로 삼별초 진영은 와해되고 있었다. 제주도를 최종 방어지로 선택한 것 또한 여몽연합군의 공세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삼별초의 제주 웅거와 관련하여 당시 제주 지역의 지방행정 조직에 대한 그동안 연구는 문헌사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이유로 고려의 지방정부로 편입되는 시기의 제주도에 대한 논의는 고려 태조 때거나 숙종 또는 의종 때로 나누어져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 방법에서 벗어나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항파두리 토성 발굴 결과를 활용하여 제주의 지방 정부 편입 시기를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발굴 현장에서 수습되는 명문와(銘文瓦)에는 당시 제주 지역의 촌락명이 포함되어 있어서 고려 정부와의 행정적 관계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기의 제주지역 촌명을 확인하는 작업은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입거하였던 이유를 규명할 수 있으면서도 삼별초가 항파두리 토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였던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During the war against Mongol Invasion, Sambyeolcho fought against Mongolia in Ganghwado, Jindo and Jeju Islands. The camp of Sambyeolcho was collapsing due to the continued pressure and placation by Goryeo-Mongol Allied Forces. Selecting Jeju Island as the final defensive position was to get away from the attack by the Allied Forces. The previous researches on the regional administrative structure in Jeju at that time regarding Sambyeolcho's holding and defending were conducted mainly by the literary historical materials. Therefore, the discussions on Jeju Island during the integration of the island into the local government of Goryeo were divided into the period under the reign of King Taejo or Sukjong or Uijong in Goryeo. That is why there are problems appeared from the start of discussions in researching Jeju Island in the Goryeo Dynasty. This study aimed to discuss the integration period of Jeju into the local government using the excavation results of Hangpaduri Fortress, which is actively underway, beyond the existing research methods. In particular, the collected inscribed tile included the name of the towns in Jeju contribute largely to identifying the administrative relationship between the island and the Goryeo government. Therefore, identification of town names in Jeju in the Goryeo Dynasty can discover the reason for Sambyeolcho's entry into Hangpaduri. Furthermore, it may be helpful to explain the background for Sambyeolcho to strategically use the Hangpaduri Fortress.

        • KCI등재

          제주 줄다리기[照里戱]의 역사문화원형 복원과 축제콘텐츠 개발

          전영준(Jeon, Young-Joon) 역사문화학회 2017 지방사와 지방문화 Vol.20 No.2

          한국의 줄다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東國輿地勝覽』『濟州牧』의 기사이다. 이후 『南槎錄』이나 『南槎日錄』, 『耽羅志』 등에서도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는 점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공동체 놀이로 연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제주도가 島嶼지역이라는 특징에 더하여 제주 줄다리기의 연행 시기나 형태에서도 ‘서로 모여 즐긴다'는 성격의 축제나 감사제의 한 유형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한반도 내륙의 여러 지역에 전승되는 줄다리기가 豐農이나 豊漁를 의미하는 占豊祭 성격과는 역사문화적 의미가 다르다. 제주문화의 역사적 전통은 북방문화와 남방문화를 함께 받아들여 이를 절충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 일본(오키나와), 대만, 중국을 잇는 동아시아 지중해의 거점이라는 해양문화적 요소는, 제주도가 고대부터 동아시아 지역의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문화교류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부각된다. 이것은 동아시아와 인접한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에서도 줄다리기 연희가 행해졌다는 것은 해양을 통한 문화교류 또는 문화전파의 한 갈래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내륙부의 줄다리기 문화와는 또 다른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제주문화는 중세화․근대화 과정에서 중앙과 격리되고 소외되었다는 특성과, 제주도에 유입된 중앙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화의 원형이자 동아시아의 문화허브(Culture-Hub)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의 역사문화자원은 구비․전승된 신화를 생활에서 풀어내거나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살아있는 기록을 근거로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제주인과 문화이주민이 서로 나눌 수 있는 문화적 가치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제주문화를 형성하여 왔던 원천적인 특질인 문화 개방성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The oldest record of Korea"s tug-of-war is found in the article of 『Jejumok』 in 『Shinjeung Dongguk Yeoji Seungnam (Augmented Survey of the Geography of Korea)』. The fact that the related records are also found in 『Namsarok』, 『Namsailrok』 and 『Tamnaji』after the first one indicates that the tug-of-war continued as a community sport through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Considering that Jeju Island is an island, Jeju"s tug-of-war is very likely to have been enjoyed as a type of festival or thanksgiving event held in a certain time and form with the purpose of "gathering and enjoying together." Thus, the historical and cultural meaning of Jeju"s tug-of-war is different from that of mainland Korea"s tug-of-war, which has been handed down in various regions as a ritual to pray for abundant harvest or abundant fish catch. The historical tradition of Jeju culture embraced northern culture and southern culture together, and formed a unique culture that compromised both of them. In particular, Jeju Island has functioned as the center of East Asia Mediterranean that connects Korea, Japan (Okinawa), Taiwan and China. This maritime cultural characteristic of Jeju Island is more conspicuous in that Jeju Island has served as a bridge for cultural exchanges that connects the continents and the oceans of East Asia since ancient times. The tug-of-war has been also carried out in Cambodia, Philippines and Vietnam near East Asia, and this is understood as a result of the exchange or propagation of culture across the ocean. This shows another distinctive feature, which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tug-of-war culture in the mainland Korea. Moreover, Jeju culture has been separated and isolated from that of mainland Korea during the process of medievalization and modernization, and the culture of mainland Korea introduced into Jeju Island still remains intact in Jeju culture. In this sense, Jeju culture can be regarded as the prototype of Korean culture and the culture-hub of East Asia. Therefore, as for Jeju"s historical and cultural resources, preserved and inherited myths need to be presented in utilized in everyday life, and resources that are clearly seen in history need to be reconstructed based on the records. These are likely to be reorganized into cultural values that Jeju people and cultural immigrants can share, and this will be made possible through cultural openness, which has been a main characteristic of Jeju culture for a long time.

        • KCI등재후보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