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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향후 연구 과제

          주영하(Young Ha Joo) 제주학회 2012 濟州島硏究 Vol.3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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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제주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살피고, 향후 이에 대한 연구에서 지녀야 할 과제를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기존 연구 성과를 살펴본 결과 제주음식에 대한 문화적 특징을 통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점에 문제가 있었다. 필자가 살펴본 바는 다음과 같다. 제주음식의 역사적 특징은 주식이 분식(粉食)에서 입식(粒食)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기장·조·피·콩·메밀·보리 등의 잡곡을 분식으로 만들어 주식으로 삼았다. 그래서 반찬보다는 국물이 있는 음식을 주로 범벅 이나 빙떡 과 함께 먹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보리 재배가 증가하면서 보리가 주식이 되었다. 비록 부분적으로 한반도의 육지로부터 멥쌀이 유입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쌀밥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제주도에서의 벼농사 본격화 이후이다. 보리밥과 쌀밥이 주식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범벅이나 빙떡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으로 변했다. 그 대신에 육지와 유사하게 각종 반찬이 보리밥이나 쌀밥을 먹을 때 마련되었다. 나는 제주음식의 이러한 역사과정을 문화적 육지화(cultural landization) 라고 명명한다. 1980년대 이후 제주도가 관광지로 인식되면서 제주음식은 관광객을 위한 음식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제주음식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에 개발된 관광음식이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처음에 관광지에서 해당 지역의 특이한 음식에 관심을 가지지만, 자신들이 익숙한 음식을 소비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육지에서 온 관광객은 대체로 각종 회와 갈치·고등어·전복·성게 등을 비롯한 각종 생선을 재료로 한 음식을 제주음식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향후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관광음식, 로컬푸드운동, 지역학으로서의 제주학과 제주음식에 대한 연구가 더욱 심도 있게 진행되리라 믿는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history and the culture of Jeju-food and it aims to suggest the extended tasks. The results of the established studies did not satisfy the cultural diachronic characteristics of Jeju-food. My argument is as follows. The historical characteristics of Jeju-food show that main staple changes to grain based food from flour based food. The residents of Jeju Island have eaten the grain based food such as proso, millet, sawamillet, pulse, buckwheat and barley at least until the end of 19th century. So they have eaten Bumbuck and Bingduck (like korean pudding) with soup rather than with side dishes. Barley has been the main staple food due to its increase in production in the 20th century. Although some nonglutinous rice got into Jeju Island through the main land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eople in Jeju have been eating rice as main staple after they have begun rice farming in 1960s. Bumbuck and Bingduck have become special food after boiled barley and cooked rice settled as the main food. Instead, residents in Jeju island have started cooking rice and side dishes just like main land. I named this historical process of Jeju-food the cultural landization. Since 1980s when many people began to recognize Jeju as a tourist attraction, Jeju-food has transformed so that they are suitable for tourists. Jeju-food are known to Koreans today. Tourists who have visited Jeju are interested in the local food but they tend to consume more familiar food. Therefore tourists from the main land have been recognizing Jeju-food as follows. Various kinds of sashimi made of hairtail, mackerel, abalone, and sea urchin. Further studies are necessary with critical mind in Jeju studies and Jeju food which are now focused on tourist food, and local food mov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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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의 제주 지명

          오창명(Chang Myeong Oh) 제주학회 2008 濟州島硏究 Vol.3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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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에 들어있는 제주도 부분 지도의 제주 지명을 해독하고 연구한 것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 여러 가지 선행 작업을 했다. 기존의 지리지를 새로 편집하여 대동지지『大東地志)』를 편찬했을 뿐만 아니라 「동여(東與」와 「청구도(靑邱圖)」 등의 지도도 작성하였다. 그리고 직접 갈 수 있는 곳은 직접 가서 답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도 부분을 그리기 위해서 제주도를 직접 답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대동여지도』의 제주도 부분의 지도와 지명 표기 등을 분석해 보면 그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제주도 부분 지도에서 오늘날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한 제주 지명은 180여 항목이 표기되어 있다. 오롬 또는 뫼 표기는 ○○岳 또는 O○山으로, 개 표기는 ○○浦로, 마을은 ○○村으로, 내는 ○○川으로, 곶은 ○○藪로, 소는 ○○淵 등으로 표기하였다. This article is deciphers the Jeju place name of Jeju-do part map to Daedongyeojido(大東輿地圖: 1861) of KimJeongHo(金正浩), and to have studied, KimJeongHo(金正浩) was pushed various works in order to Daedong-yeojido(大東輿地圖: 1861). In addition to them, map of Dongyeo(東與) and Cheonggudo (靑邱圖) etc. wrote too, And a place to be able to go directly went directly, and delivered a valedictory. However, a direct survey is called Jeju Island in order to thaw Jeju island section do not, and is assumed. I can easily assume it if I tries to analyze map of Jeju-do part of Daedongyeojido(大東輿地圖: 1861)) and place name notation etc. The layman Jeju place name is 180 odd item is recorded nowadays to a self-government duty special Jeju at Jeju-do part maps on an administrative distr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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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어의 보전과 활용 방안

          김순자(Soon Ja Kim) 제주학회 2011 濟州島硏究 Vol.3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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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는 전래적인 언어다. 이러한 제주어가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학계와 행정기관, 시민단체, 연구자, 뜻있는 도민 등을 중심으로 제주어 보전을 위한 크고 작은 사업들을 펼쳐왔다.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들은 부족한 상태다. 유네스코도 2010년 12월 8일 제주어를 인도의 코로(KORO)어와 함께 사라지는 언어 5단계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하였다. 유네스코의 이런 진단이 내려진 이후 행정에서는 제주어연구소 설립 방침을 밝히고, 교육 당국에서는 제주어 교육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도 제주어 보전을 위한 지면과 방송 시간을 늘리는 등 제주어 보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각종 상품과 상호 이름으로 제주어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어 보전을 위한 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어의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또 일상생활에서 제주어가 생활화할 수 있도록 제주어 교육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어 교사 양성과 연구자 육성 등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 방안의 하나로 연구자와 교사 양성 등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할 수 있는 제주어 기금 설립도 서둘러야 한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깃는 문화의 정수인 제주어 보전은 제주어 정책을 담당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 당국, 그리고 제주도민 모두 에게 주어진 과제다. Jeju language is traditional language delivering thoughts and feelings of Jeju people but it is endangered nowadays. So academia, administrative agencies, civic organizations, scholars and other interested citizens engage in various preservation projects of Jeju language. However, there are not enough alternatives conserving Jeju language entirely. UNESCO categorized Jeju language and KORO India language as 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 which is fourth degree out of five in December 8, 2010. After UNESCO s decision, administrative agencies decided to establish Jeju language Institute and educational authorities implemants a policy on Jeju language education. Newspapers and broadcasting also expand their air time and articles. More Jeju language is used for the namas of goods and shops. However, we still need more support. It is important to take a systematic approach in preserving Jeju language and keep educating people Jeju language as a part of life. For this, Jeju language teacher and researcher training is needed. First of all, Jeju language funding is need to be found to raise teachers and researchers. Jeju language preservation is the task for the governmant of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educational authorities and even all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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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역연구의 성과와 전지구화시대 제주학의 발전 방향

          염미경(Mi Gyeung Yeum) 제주학회 2014 濟州島硏究 Vol.4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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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전지구화, 정보화, 지방화를 겪으면서 지역사회를 단위로 한지역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주학 관련 연구기관의 조직 화과정과 지역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제주에서는 1960년 대부터 제주학 및 제주지역 연구를 위한 연구기관들이 조직되기 시작했으나 비교적 연구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제주학 및 제주지역 연구기관들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제주대 부설기관인 탐라문화연구소와 민간 연구기관인 제주학회이다. 탐라문화연구소의 학술지인 『탐라문화』는 주로 인문학 분야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가 가세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반해, 제주학회의 학술지인 『제주도연구』에 수록된 연구 분야를 보면 당시 학회 집행부에 따라 연구 분야가 약간의 편차를 보이지만 대체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가 비교적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최근 지역 간, 국가 간 이주의 급격한 증가와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한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권 간 접촉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학의 연구 방향과 내용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전지구화, 정보화, 지방화시대에 지역학으로서 제주학도 이제는 보편론적 시각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Although the investigation research to the Jeju Island was activated in a rise of the concern about social history, a life history, and cultural history, in globalization, and a localization flow, it turns out that there is a limit decided as usual in the time for research and a field side. If involved with a related setup of the Jeju studies, most researches which were made connected with the Jeju history and approached by modem history research of the Jeju Island area are the actual condition which is not. When the fact that Jeju Island was the traditional seashore road regularly used when interchanging with the approachability of geographical distance and other areas of especially a South Korean peninsula compared with other areas, and the coast which approached most etc. was taken into consideration, cultural exchange may have been realized flourishing. Therefore, the investigation research exchange in Jeju studies, it will help each other for academic enhancement each other. For this, reclamation of research situation is important. Therefore, we have to enlarge the meaning of studies and purpose to make a gener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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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공 윤주일의 <제주선경가(濟州仙景歌)> 교정 연구

          윤용택(Yoon Yong-taek) 제주학회 2016 濟州島硏究 Vol.4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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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공 윤주일(1895-1969)은 한국전쟁 중에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제주선경가>를 지었다. 현공은 <제주선경가>에서 그동안 유학지들이 도가적 이상향으로 구성한 영주섭경과 제주의 자연, 역사 지명 둥을 불교적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제주섬이 불국정토임을 천명하고 있다. 제주선경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광주에서 출간된 『불교강연집』에 실려 있지만 제주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1982년 7월 「제주신문」을 통해서이다. 「제주신문」에 보도된 <제주선경가>는 여러 가지 오류들이 많고, 잘못된 내용들이 진실인 것처럼 이미 널리 유포되어 있어서 그에 대한 교정이 필요하다. 현공의 <제주선경가>는 적어도 세 차례 이상 수정되었다. 재판 『불교강연집』에 실린 <제주선경가>는 현공의 생전에 교정된 것이고, 현공 사후에 제자들이 발간한 『현공윤주일대법사설법집』과 『불교강설』에 실린 <제주선경가>는 제주지역 포교를 위해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제주어를 일부 수용하여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현공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쉬움이 있다. 이 글에서는 현공의 <제주선경가>들과 「제주신문」에 보도된 <제주선경가>를 검토하여 시비를 논해보고자 한다. Hyunkong Yun Jooil(1895~1969) wrote <Jejuseonkyeong-ga> in Jeju during the Korean War. In <Jejuseongyeong-ga> Hyunkong reinterpreted Yeongjusipkyeong from the Buddhist point of view, gave the Buddhist meaning to nature, history and place names of Jeju island. It was first published in Gwangju in 1953, but was reported very differently in Jeju on the newspaper in 1982. Still false information about it has been prevailing in Jeju. <Jejuseonkyeong-ga> was revised at least three times. The second edition of <Jejuseongyeong-ga> was modified by Hyunkong. Therefore, it can be called authentic, but this also needs to be re-corrected to match the spelling. In writing <Jejuseonkyeong-ga>, Hyunkong tried to use Jeju language familiar to the public. However his disciples did not understand his intentions. So they changed Jeju language into the standard Korean in revised <Jejuseonkyeong-ga>s. Therefore, I propose newly modified <Jejuseongyeong-ga> considering Hyunkong s int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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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향토음식이미지가 관광객만족과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 -제주방문관광객 대상 설문조사분석을 중심으로-

          최광수 제주학회 2019 濟州島硏究 Vol.5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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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제주향토음식 경험이 있는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제주향토음식이미지와 관광객만족 그리고 행동의도와 관련하여 영향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이다. 연구결과 제주향토음식이미지는 청정이미지, 지역이미지, 전통이미지, 메뉴이미지, 거리이미지가 도출 되었다. 제주음식이미지가 제주관광지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청정음식이미지(.331), 전통음식이미지(.137)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긍정적인 구전에는 청정음식이미지(.318), 지역음식이미지(.171)가 재방문에는 청정음식이미지(.283)가 추전에는 청정음식이미지(.282), 지역음식이미지(.259)가 각각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제주향토음식이미지 중 관광객 만족과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은 청정음식이미지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청정음식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제주향토음식점의 청결과 제주향토음식 메뉴의 현대화 그리고 종사원의 위생관련 교육의 지속적인 실시와 제주 식재료의 청정 이미지 등을 통하여 제주향토음식의 청정 이미지화를 높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제주에서 만이 먹을 수 있는 지역 브랜드 메뉴를 강조하여 메뉴 구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Jeju native food image, tourist satisfaction, and behavioral intention of tourists visiting Jeju with local food experience. As a result, the clean image, regional image, traditional image, menu image and street image of Jeju native food image were derived. The effect of Jeju food image on the satisfaction of Jeju tourist destination was influenced by clean food image (.331) and traditional food image (.137), and the positive word of mouth factor was influenced by the clean food image (.318) and local food image (.171), while the revisiting factor was influenced by clean food image (.283), and the recommendation factor was influenced by the clean food image(.282), and local food image(.259) respectively. Therefore, the clean food image was the most influential factor among Jeju native food images which affects the satisfaction and the behavioral intention of tourists. In order to improve the image of clean food, cleanliness of local restaurants in Jeju, modernization of local food menu in Jeju, clean image of Jeju food ingredients and hygiene education of employees of Jeju restaurants should be reinfor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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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4세기 원(元) 목축문화의 유임에 따른 제주사회 변화

          전영준(Young Joon Jeon) 제주학회 2013 濟州島硏究 Vol.4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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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가 원에 복속된 이후, 원의 탐라목장 설치와 대규모 운영은 제주사 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고려가 원으로부터 제주를 돌려받을 때 까지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주 사회는 풍습이나 복식 및 음식문 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변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목축문화의 형성과 전승에서도 원 문화의 영향은 다양한 방식에서 이루어겼고, 이를 근거로 하는 원 이주민과 생활 습속의 유입은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제주도는 말을 키우기 적합한 자연환경과 元 복속기에 설치되었던 탐라 목장과 목축문화의 유입으로 사회 변화의 다양성을 보여 왔다. 특히 고 려 · 조선시대는 진상마의 가치가 높아 중앙 정부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 는 등 제주의 말 사육은 중요한 생업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제주문화 형성 의 저변에는 원 문화가 끼친 분야를 도외시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연구 는 고려와 원의 정치 · 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 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제주사회가 지닌 문화원형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며, 원형질의 문화에 습합되어 전승된 문화상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에서의 출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고려가 원에 복속된 이후, 원의 탐라목장 설치와 대규모 운영은 제주사 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고려가 원으로부터 제주를 돌려받을 때 까지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주 사회는 풍습이나 복식 및 음식문 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변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목축문화의 형성과 전승에서도 원 문화의 영향은 다양한 방식에서 이루어겼고, 이를 근거로 하는 원 이주민과 생활 습속의 유입은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제주도는 말을 키우기 적합한 자연환경과 元 복속기에 설치되었던 탐라 목장과 목축문화의 유입으로 사회 변화의 다양성을 보여 왔다. 특히 고 려 · 조선시대는 진상마의 가치가 높아 중앙 정부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 는 등 제주의 말 사육은 중요한 생업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제주문화 형성 의 저변에는 원 문화가 끼친 분야를 도외시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연구 는 고려와 원의 정치 · 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 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제주사회가 지닌 문화원형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며, 원형질의 문화에 습합되어 전승된 문화상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에서의 출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고려가 원에 복속된 이후, 원의 탐라목장 설치와 대규모 운영은 제주사 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고려가 원으로부터 제주를 돌려받을 때 까지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주 사회는 풍습이나 복식 및 음식문 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변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목축문화의 형성과 전승에서도 원 문화의 영향은 다양한 방식에서 이루어겼고, 이를 근거로 하는 원 이주민과 생활 습속의 유입은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제주도는 말을 키우기 적합한 자연환경과 元 복속기에 설치되었던 탐라 목장과 목축문화의 유입으로 사회 변화의 다양성을 보여 왔다. 특히 고 려 · 조선시대는 진상마의 가치가 높아 중앙 정부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 는 등 제주의 말 사육은 중요한 생업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제주문화 형성 의 저변에는 원 문화가 끼친 분야를 도외시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연구 는 고려와 원의 정치 · 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 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제주사회가 지닌 문화원형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며, 원형질의 문화에 습합되어 전승된 문화상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에서의 출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Since the subjugation of Goryeo by Yuan, the large-scal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the ranches in Tamra, the island, had much influence on the society of Jeju Island. Over a century of Goryeo s regaining Jeju from Yuan, the society of Jeju had been affected in many aspects from customs, costumes to foods. Particularly, the formation and transmission of the hores husbandry, culture was influenced in many ways by the culture of Yuan in China. Under the situation, the inflow of the immigrants from Yuan and their customs looked natural. Jeju Island has gone through a variety of social changes by the natural environment perfect for horse farming and the Tamra ranches established in the period of subjugation and inflow of the horse husbandry culture. Particularly, as the premium horses in the island were highly valuable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to be recognized by the central government, horse faming was one of the key bread-and-butter jobs in Jeju. The influence of the Yuan culture cannot be neglected in the formation of the culture of Since the subjugation of Goryeo by Yuan, the large-scal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the ranches in Tamra, the island, had much influence on the society of Jeju Island. Over a century of Goryeo s regaining Jeju from Yuan, the society of Jeju had been affected in many aspects from customs, costumes to foods. Particularly, the formation and transmission of the hores husbandry, culture was influenced in many ways by the culture of Yuan in China. Under the situation, the inflow of the immigrants from Yuan and their customs looked natural. Jeju Island has gone through a variety of social changes by the natural environment perfect for horse farming and the Tamra ranches established in the period of subjugation and inflow of the horse husbandry culture. Particularly, as the premium horses in the island were highly valuable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to be recognized by the central government, horse faming was one of the key bread-and-butter jobs in Jeju. The influence of the Yuan culture cannot be neglected in the formation of the culture of Jeju The research on the aspect requires the new sense of sights to be solved. in the political and social dynamics of Goryeo and Yuan. This is not to say to damage the original form of the culture in the society of Jeju but to signify the starting of the sight that requires focusing on materializing inherited cultural aspects mixed with the origin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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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한시의 번역 양상 고찰

          윤치부(Yoo Chi-boo) 제주학회 2016 濟州島硏究 Vol.4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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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주 출신 학자들이 제주 관련 자료를 주로 제주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번역서에 수록된 제주 한시의 번역 양상을 고찰한 논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제주 관련 자료의 최초의 번역은 1970년대 들어 나타나는데, 제주도교육위원회에서 향토 교육 자료로 간행한 『탐리문헌집』이 그것이다. 이 번역서에 수록된 자료들은 김상헌의 『남사록』, 이원진의 『탐라지』, 김석익의 『탐라기년』 등 일기체 한문수필이나 지지들이다. 이들 자료에는 적잖은 제주 한시들이 수록되었다. 이와 같은 제주 관련 자료의 번역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들어 조금씩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다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한다. 이런 배경에는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나 제주문화원과 같은 관련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제주 관련 자료 번역에 힘썼기 때문이다. 제주 관련 자료의 범위도 한문수필이나 지지를 뛰어넘어 개인 문집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번역자의 면면도 오문복이나 김익수 같은 원로 한학자는 물론 한문학이나 국문학이나 사학 등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중진학자나 소장학자들이 대거 번역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번역서에는 적잖은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다. 한시어의 정확한 고증 없이 한시를 번역함으로써 문맥이 통하지 않는 오역을 한다는 점, 한시어 주석이 상식적 차원에서 설명되어 한시어 설명에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필요한 한시어의 주석을 빠뜨림으로써 한시 해석에 오류를 보인다는 점, 한문 원전을 오독함으로써 작자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번역을 한다는 점, 이본에 따라 한시어의 변이현상을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정확한 번역을 하지 못한다는 점, 교정에 소홀하여 원전과 활자화한 원문이 일치하지 않는 점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앞으로 제주 한시 번역이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개선되어 좀 더 체계적으로 한시 번역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translation aspects of Jeju poetry appeared in a foreign-language book mainly translated in Jeju and published by scholars from Jeju. So far the first translation of the material relating to Jeju appeared in 1970s and the title of it was Tamra literature collections published by Education Committee as a local training material. The works included in Tamramoohengip written in foreign-language are travel essays or geographical records such as Namsarok written by Sang-hem Kim, Tamraji written by Won-jin Lee and Tamraginyen written by Seok-ik Kim Also, many Jeju poetry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were inducted. The translation of the materials related to Jeju had increased gradually in the 1990s and 1980s, but it showed a rapid increase in the 2000s because the relevant institutions such as Jeju Cultural center and Tamra Cultural Institute of Jeju University made efforts to translate materials related to Jeju in earnest. Also, the range of materials relating to Jeju had been expanded to private collection of works beyond travel essay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or records about geography. In the aspects of the translator, the scholars of the leading group and the young group who studied Chinese literature, historical studies and Korean language study in earnest as well as veteran scholars of the Chinese classics such as Oh Moon-bok and Kim Ik-soo have participated in translating works. But these translations were exposed to considerable problems. The problems are as follows. First, there were errors in translation such as out of context due to translating the poetry without accurate historical research. Second, explanatory notes do not help explaining poetry because those of poetry were explained in commonsense level and there were errors in translation because necessary explanatory notes of the poetry were missed. Third the author of emotion was mistranslated by misreading the Chinese original text. Fourth, the end did not make an accurate translation because the semantic phenomena were not figured out due to the different version of poetry. Fifth, the original translated texts did not match the printed texts due to neglecting proofreading the original texts. In order to jump forward one more step in Jeju poetry translation of these issues will have to be done in a more systematic improvements in poetry translation work continu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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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제주사 연구의 성과와 과제

          홍기표(Hong Ki-pyo) 제주학회 2018 濟州島硏究 Vol.5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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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제주사에 대한 연구사 정리는 그 동안 세 차례 있었다. 1983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1991년 제주도사연구회, 2011년 제주학회에서 수행하였다. 각각 당시까지의 제주사 연구 논저를 시대별, 주제별로 파악하여 그 성과를 검토하였다. 거기에 연구자 및 연구기관까지 소개하며 제주사 연구의 주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1983년의 연구사 정리는 1945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35년간 국내외에서 간행 발표된 역사 고고 분야에서의 제주도 관계 제반 논저를 개괄, 정리하였다. 1991년의 연구사 정리는 1980년대 논저를 대상으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하였다. 이 두 차례의 연구사 정리는 제주사 연구 풍토나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을 때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비교적 소량의 논저를 대상으로 그 내용과 비판 및 향후 주제 제시까지 세밀히 정리하였다. 2011년의 연구사 정리는 앞의 두 차례와 달리 내용의 소개와 검토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1990년대 이후 제주사 연구자의 증가, 연구기관(단체)의 창립이 이어지면서 다량의 연구 논저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본고는 이상의 연구사 성과를 검토한 후, 다음의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 논지를 전개하였다. 첫째, 시대별 연구주제(연구자)와 전망. 둘째, 제주사 연구기관과 그 성과. 셋째, 제주사 연구과제 검토와 전망. 필자는 이상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해방 이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제주사 관련 논저 목록을 작성 하였다. 논저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연구휘보』 및 각 기관(단체)의 학술지 목록 등을 참고하여 대략 1,000편 전후가 수집되었다. 이상의 논저를 시대별, 주제별, 기관(단체)별 등으로 분류한 뒤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 첫째 제주사의 주요 논저 목록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둘째 향후 제주사의 시대별 연구 방향과 주제를 제시한다. 셋째 제주사 연구의 과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After liberation, there had been three times of study on history of Jeju so far. One of them had been taken by “Tamra” culture research institute in Jeju university in 1983, the other one taken by research society of history of Jeju in 1991 and lastly, taken by Jeju Academy in 2011. Each of them reviewed the outcome of studies by figuring out the research paper chronologically and per subjects. On top of that, it informed researchers and research institute which makes people can grasp who is the main agent of the research. First of all, the review of study in 1983 organized and summarized the books related history and archaeology field of Jeju from 1945 to the late 1970s. Second of all, the review of the study in 1991 provided a brief introduction to contents of books in 1980s and present future research tasks. These two times of studies had been done while the capability and condition of history research was not in good order. Therefore, with small quantity of books, relatively, this manuscript organizes the contents of those books by from criticizing to presenting future research task. Lastly, the review of study in 2011. This study did not introduce and review the content of the studies unlike the previous two reviews. This is because the researcher and research institute on history of Jeju had increased in number after 1990s, which produced a number of research papers. This manuscript reviews the outcome of the previous three studies. After that, it develop the contents focusing on next three subjects. 1. chronological research subject(or researcher) and the prospect. 2. Reseach institute of history of Jeju and the outcome. 3. Review on research subject of history of Jeju and the prospect. The writer of this article made a list of books related to history of Jeju from after liberation to 2017. This list consisted of about a thousand of books which are referred to 『A Collection of Reports of Korea History』 by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s well as journal lists of each research institutes. These books are classified by periods, subjects, and institutes. With these sources, this article set up three goals. Firstly, Introducing a list of primary books about history of Jeju in detail. Secondly, Suggesting future research direction and the subject of history of Jeju per period. Lastly, Suggesting the way of research on history of Jeju for conducting the study more synthetically and systema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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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동자석(濟州童子石)의 헤어디자인 연구

          김춘일(Chun Il Kim) 제주학회 2015 濟州島硏究 Vol.4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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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디자인(hair design)은 모발이라는 소재에 선(line), 모양(shape), 방향(direction), 그리고 질감(texture)을 이용해 만든 예술로서 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미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로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머리모양은 인종, 풍토, 그 시대의 미의식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 정치, 성별, 연령, 직업과 신분 등을 나타내며 그 시대의 사회가 추구했던 모든 가치관을 읽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서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제주동자석(濟州童子石)은 무덤가에 한 쌍으로 세워지는 약 30~100cm 크기의 사람 형태를 지닌 조형물이다. 일반적으로 현무암과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아이 형상의 석상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투박하고 서민적인 간결한 표현방식으로 제주 고유의 정서를 담아내는 독특한 기념물이자 제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어 제주동자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제주동자석의 시대적인 배경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머리모양이 제주동자석의 머리모양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문헌, 논문, 서적,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고찰하였다. 또한 제주동자석의 동시대적인 배경으로 이해되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머리모양들을 고찰하고 제주동자석과 비교·분석함으로써 조선시대의 머리모양이 제주동자석에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를 확인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나타난 공통의 머리모양(쌍상투, 쪽진 머리, 댕기머리)을 작품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머리모양이 제주동자석의 머리 모양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고, 머리모양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기 독특한 유형으로 변화·발전되어 왔으며, 제주동자석이라는 조형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헤어디자인은 인체에 이루어지는 행위 예술로서 영구적으로 보존되어지는 디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다 섬세하고 과학적이며 심미안적인 디자인의 개발과 그 기술적 정립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동자석의 헤어디자인 연구를 통해 현대인들의 차별화 되고 동창적인 헤어디자인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하고 예술적인 연구가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Hair design is an art that creates on the material of hair utilizing line, shape, direction, and texture, i.e. decorating hair is one of basic desire for beauty, the most basic desire of human regardless of gender or age, and position. Moreover, hair style not only reflects the race, cultural climate, and the esthetic consciousness of the period, but also expresses the nationality, religion, politics, gender, age, occupation, and position, etc., which has various symbolization as an important factor that can understand all values that the society of that period pursued.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is a human shape sculpture, about 30~100cm sized, built in pair beside a grave. Generally, they are made of basalt and limestone, which has various shapes of formative beauty as the stone statue in the shape of a child that consoles the soul of the dead. It has been acknowledged as a special monument that contains the original emotion of Jeju with crude and folksy as well as simple expression mode and another image that represents Jeju, therefore, interest in Jeju Dongjaseok is increasing. Therefore, this research studied literature, theses, books, and internet material, etc. in order to investigate the influence of hair style of Joseon Dynasty, presumed as the period background of Jeju Dongjaseok, on the hair design of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Also, this research determined how the hair design of Joseon Dynasty was embodied in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by considering various hair styles of Joseon Dynasty which is understood as the same age background of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and comparing·analyzing Jeju Dongjaseok, based on this, produced a work of common hair style(twice topknot, bun, daenggi hair). Accordingly, this research could determine that Joseon period hair style influenced hair style of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a lot, also, hair style has changed· developed as the unique type respectively along with social, political, cultural, and religious environment change, which had been reflected on the sculpture,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as they are. Hair design is a performance art on human body, which is not permanently preserved. Therefore, it is continuously required to develop more delicate, scientific, and esthetic design and establish the technique thereof. Accordingly, the researcher expects that various and artistic researches to be continued that can respond to differentiated and original hair design demand of modern people based on the research on hair design of Jeju Dongjaseok(濟州童子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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