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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인의 大倧敎 수용과 국외 항일운동 -1910~1920년대 초 서간도에서 활동을 중심으로-

          이숙화 단군학회 2020 단군학연구 Vol.42 No.-

          The main region of abroad anti-Japanese activities in the early of 1910~1920s were North-Kando and West-Kando. The Korean community of West-Kando was formed through the group resettlement of North-Kyeongsang provincials who were related with Sinminhui, while the community of North-Kando was generally formed through it of the people from Hamkyeong-do, Pyeongan-do, Seoul and Kyeonggi province. This background has mainly spot-lighted the anti-Japanese activities of West-Kando by the relationship between Sinminhui and North Kyeongsang provincials. However, this study starts from the consciousness that the anti- Japanese forces of West-Kando was formed through its close relationship with Daejonggo. Especially, the ‘Innovative Confucianists' from North Kyeongsang province drove the establishment of Strategy of independence movement in West-Kando in 1910s as people who believed Daejonggyo or had the close relationships with Daejonggyo. Futhermore, this study proved the fact that those were related with Daejonggyo of North-Kando when they developed as anti-Japanese forces after 3・1 Independent movement. The discussion of this study follows ; Firstly, the leading group of acceptance and expansion of Daejonggyo in the North Kyeongsang province was ‘Innovative Confucianists' who had been educated modern. And the believers were tended to be mainly formed by the relatives of family clans which were the characteristic of North- Kyeongsang province. Secondly, Hwanin, Yuha and Tonghwa were the places in which Strategy of independence Movement in 1910s in West-Kando. The back-grounded reason of it was the conscious that those places were historically old districts of Koreans. However, this study emphasizes that Dongchang school and Sinheung Military Academy were respectively established in Hwanin and Yuha and on the baises of them, the military education and national consciousness were disciplined. Thirdly, West Route Army(서로군정서) and North Route Army(북로군정서) emerged respective in West-Kando and North-Kando as the two main independent army groups while independent forces had been established after 3・1 Independent movement. The two army troops had a same characteristic of the independent troop of elites and a cognate conscience about Daejonggyo belief. As a result, they are the only ones who achieved integration just before Chongsanri battle among the army troops in West and North-Kando. 1910~1920년대 초 국외 항일운동의 핵심 지역은 북간도와 서간도였다. 북간도는 주로 함경도・평안도와 서울・경기 지역 출신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가 형성된 반면, 서간도는 신민회와 연결된 경북인들의 집단 이주를 통해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서간도에서 항일운동 은 주로 신민회와 경북인들의 관계를 통해 조명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서간도의 항일 세력은 대종교와 긴밀한 관계에서 형성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북에서 이주한 ‘혁신유림'들이 대종교인으로서 혹은 대종교와 관계 속에서 1910년대 서간도의 독립군기지 건설을 추진했고, 나아가 이들이 3・1만세운동 이후 항일무장 세력으로 전환한 뒤에도 북간도의 대종교계 무장세력과 연결되었던 점을 밝혔다. 본 논문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북지역의 대종교 수용과 확산의 주도세력은 근대적 신교육을 받은 ‘혁신유림'들이었다. 또한 경북 지역의 특성상 문중의 일가친척 중심으로 대종교 교인이 형성되었다. 둘째, 서간도에서 환인・유하・통화현 세 곳은 1910년대 독립운동기지가 건설된 곳이다. 그 배경에는 만주가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고토 지역'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환인현에서는 동창학교가, 유하현에서는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위에 군사교육과 민족교육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들은 대종교 본사에서 윤세복, 그리고 경북 대종교인으로서 김동삼, 김정식, 류인식, 이동하 등과 신민회 출신이자 대종교를 신앙했던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이장녕 등이었다. 셋째, 3・1만세운동 이후 항일무장세력이 형성되는 가운데 서간도에는 서로군정서가, 북간도에는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가 양대 독립군 단체로 부상하였다. 두 단체는 사관학교를 둔 정예 독립군부대라는 동질성과 대종교 신앙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 두 단체는 청산리전투 직전 서・북간도 독립군단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통합을 이루었다.

        • KCI등재

          이중 언어 문화 교육 철학론과 교육 모형

          이숙화 이중언어학회 1995 이중언어학 Vol.12 No.1

          세계적인 사회문화 변화의 추세에 따라 한국 언어학계에서는 영어교육 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초등 영어 교육과정의 새로운 도입 (교육부 발표, 1997년부터 초등 교육과정 3년부터 영어 교육 실시 참조)은 보다 과학적인 시점에서 한국어와 세계 공통 언어인 영어와의 언어 문화적인 연관관계의 차원에서 이중 언어 문화 교육철학 쪽을 연구함이 바람직 할 것이다. 왜냐면 이 이중 언어 교육 철학하에 개발된 교육 모형과 과정이 학습인에게 두 언어가 나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달하면서 두 가지의 다른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 언어-문화 교육 철학론은 학습인이 두 가지의 언어와 문화를 효율적으로 배우고 습득하여 모국어는 물론 다른 언어권의 사회 생활에 필요한 의사 교환의 능력을 갖도록 교육 목적 혹은 철학에 의거하여 교육 과정, 교수법, 교육자료 등 모든 교육 활동을 수반하여 학습인을 위한 교육 학습 목적을 성취하는 복합적인 교육관과 실천과정 및 결과의 방향을 제시하여준다. 이 교육 철학은 그 사회의 언어 사용 분류와 학습인의 학습 목적에 준하여 다양한 교육 모형으로 발달 될 수 있다. 학교에서의 언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습인에게 언어 능력의 다섯 요소인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그리고 사고하기를 두루 발달 시켜 지성인으로서 사회 문화 생활을 편리하게 함에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언어를 바슷하게 사용하고 그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자 함이 곧 이중 언어 문화 교육 철학관이다. 필자가 한국 주재 외국인 학교들 (대전& 송탄)에서 교육 관찰한 경험에 의하여, 실생활에서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언어 사용인들의 부류를 셋으로 범주화 한다면 실질적으로 두 가지의 언어를 사용함에 다음의 경우들이 있다: (가) 언어 사용능력이 양쪽 언어에 비슷하게 발달 되어 언어의 다섯 요소인 쓰고, 읽고, 말하고 듣고, 사고하는데 융통성이 있다; (나) 두 언어중 한쪽 언어만 언어 능력의 다섯 요소로 발달하고 다른 언어는 단지 듣고 말하는 데에서 머문다. 그리고 (다) 양쪽 언어를 듣고 말할 수 있으나 쓰고 읽는데에 제한을 갖는다. 이 중에서 (가)의 경우와 같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어린이가 영어를 배울 때 양쪽 언어 능력의 다섯 요소를 나란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교육 모형이 짜여지고 실천 될 수 있다면 그 어린이와 인지능력과 언어 발달은 긍정적으로 병행되게 될 것이다. 현 한국의 영어교육 문제의 핵심은 언어, 언어학, 언어 교육학, 제 2언어교육학의 철학적 이해와 의미 분석 그리고 교육 실천 방안 정립에 연구초점을 두고 교육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언어란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호간의 의사 교환에 필요한 상징적 도구이다. 언어학이란 이 언어를 개념상으로 분류 분석하여 학문적인 규정을 약속하여 놓은 것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말한다. 언어 교육학이란 언어와 언어학을 이해한 후 인간의 인지 세계와 사회환경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학습목적 성취를 향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과학적인 교육과정 고안을 작성하고 실천하며 사회 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제2언어 교육학이란 언어, 언어학, 그리고 언어 교육학에 충분한 철학적 이해를 수반한 후 학습자의 모국어(제 1 언어) 문화와 교육 사회에 적합한 모형을 작성하고 실천하며 교육 목적과 그 성취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본고의 목적은 첫째, Lee (1990)의 이중(두 가지) 언어문화 교육철학관에 근거하여 짜여진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어린이의 이중 언어 발달을 위하여 어떠한 교육적 배려와 실천이 필요한가에 대해 논하기 위함이며 둘째, 그 이중 언어 모형에 따라 고안된 상호문화 교육자료 (Korean-American Intercultural Curricula)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단체와 그렇지 않은 단체를 대상으로 사용하였던 결과를 밭표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제 2 언어교육은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이중언어(문화) 또는 복합언어(문화) 교육으로서 발전되어 왔다. 이중언어 교육에는 제도적인 교육방침 및 과학적인 교육과정과 교수 방법이 따라야 할 것은 물론이다. 아울러 효과적인 교사 교육은 그 사회에 맞는 교육 철학과 방법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개발 1991년 12월, 통권 75호 pp. 24-31참조). 제 2 언어 교육의 이해는 어린이의 언어 습득과정에서 모국어와 외국어와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두 언어를 학습하는 어린이의 지능 발달과 학습률의 영향을 연구하는 데에 학자들은 중점을 두었다. 종래에 영어 교육을 위한 자료나 교수법은 Teachers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TESO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ESL) 또는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EFL)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었던 교수법이나 자료가 인지 과학에 준한 학습이론(Cognitive psychology) 보다는 언어학적인 면 (Linguistics)에 주로 중점을 둔 나머지 교수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다소 문제점을 함축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자 언어 교육을 보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학계의 관심은 이중언어를 자유로이 사용하는 능력(Biingualism)의 형성과정에 기울어지게 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발표된 학계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다양한 학술적 시점에서 분석된 이중 언어교육관은 언어학, 사회문화학, 심리학, 교육학적인 시점에서 지지를 받았다(Lee, 1990). 특히 어린시절의 이중언어 교육의 효과와 인지 발달과의 관련성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과제로서 줄곧 논고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유아들의 이중언어 습득력, 제 1 언어(Ll)와 제 2언어(L2)와의 연계성, 학교 교육과정과 실시 방법에 모여지고 있다.

        • KCI등재후보

          보육시설과 가정의 연계를 통한 감각활동이 영아의 신체발달과 영아-부모 상호작용에 미치는 효과

          이숙화,황성하,남미경 한국보육지원학회 2010 한국보육지원학회지 Vol.6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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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effects of 1 or 2 years old infant to target infant care facilities and the sense of family activities conducted in conjunction with the infant's physical development and infant -parent interac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research questions are as follows. First,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y is effective in the infant's physical development? Second,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y is effective in the infant-parent interaction? The subjects of this study are 56 infants of 1-2 year old and their mother or father 56people in S and D infant care facilities in K city. S infant care center,experimental group, carry out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y. D infant care center is control group to apply an integrated program. The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y are conduct on 24 times, 3 times a week, totally 8 weeks.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ies are partially effective on the infant's physical development than the control group. Therefore, in order to promote the development of the infant's physical development, home and child care center will be done in conjunction with sensory activities are needed. Second,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ies had positive effect on infant-parent interaction than the control group. Therefore, to improve infant-parent interaction, it is necessary to carry out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ies. In conclusion, child care center-family linked sensory activities are correlated in positive effects on the physical development of infants and the infant-parent interaction. 본 연구는 보육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영아 감각활동을 가정과 연계하여 실시함으로써 영아의 신체발달과 영아-부모 상호작용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고 이를통해 영아의 발달과 부모의 자녀양육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연구대상은 K시의 S어린이집과 D어린이집에 재원중인 만 1ㆍ2세 영아 56명과 영아의어머니 또는 아버지 56명이다. 연구도구는 교사용 1ㆍ2세 영아발달평가도구(이영자, 이종숙, 신은수, 곽향림, 이정욱, 2002)중 일부와 Assessment Profile for Early Childhood Program(APECP)(Abbott-Shim & Sibely, 1987)를 수정하여 사용한선행연구(강숙현, 2002)를 참고하여 영아-부모 상호작용 설문지를 작성하여 사용하였다. 보육시설-가정연계 감각활동은 표준보육과정에 근거하여 육아정책개발센터(2007)에서 개발한 프로그램과 삼성복지재단(2003)의 영아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선정된 감각활동을 보육시설의 월간 계획안에 반영하여 1주일에 3회씩 총8주에 걸쳐 24회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첫째, 보육시설-가정연계 감각활동을 적용한 집단은 통제집단보다 영아의 신체발달에서 부분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둘째, 보육시설-가정연계 감각활동을 적용한 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전체적으로 영아-부모 상호작용 증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KCI등재

          황온순의 민족운동에 대한 시론

          이숙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9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82 No.-

          Hwang On-soon, a Won Buddhist, had devoted herself to the social welfare and education. Her life was coincided with the religious orientation of Won Buddhism. Moreover, she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Movement even though it was for a short period of time and has not been revealed. Her National Movement has not been known because researchers have concentrated on her only as a Won Buddhist beside the insufficient investigation of records about her. Hwang, who had been a Protestant before she converted to Won Buddhism, developed her national spirit under the influence of her Protestant mother(Song Choong-gi) who contributed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Yeonan, Hwanghae-do by making and distributing Korean national flags during the March 1st Movement. Hwang also, even though it was a short period of time,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Movement in the Christian community of Gillim, Manchuria by working as a baby sitter of kindergarten and for a Christian youth organization while she studied in the Gillim National Educational School. These activities were connected to the independence activities in Shanghai. Therefore the Japanese police noticed her as a "Korean Criminality" and continuously monitored her to find the relationship between her and the activists in Shanghai. However, this paper could not apprehend the other independence activities of her during the period in detail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materials. After coming back from Manchuria, Hwang married, converted to Won Buddhism and lived in different life as a Won Buddhist. She tried to overcome realities of life in colonial Korea such as nursery, orphanage care and women's employment. The activities had been evaluated as the only ones of social welfare. However Won Buddhist Hwang's accomplishments under the colonial harsh system of wartime should be evaluated as a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as Won Buddhism have to be reevaluated as a ‘Korean Nation Religion'. 원불교인 황온순은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에 매진하며 일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사회 어두운 곳을 살피며 살다간 그녀의 생애는 원불교의 종교적 지향성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황온순의 활동 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민족운동에 관한 것도 있다. 그동안 황온순의 민족운동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자료의 미발굴도 있겠지만, ‘원불교인 황온순'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황온순은 원불교에 귀의하기 전 개신교를 신앙하였다. 개신교 신자인 황온순의 어머니는 황해도 3.1운동에서 태극기를 제작·배포하여 연안의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나는데 기여했다. 부모님의 영향 아래 황온순의 민족의식도 성장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황온순은 만주 길림에서 직접 민족운동에 참여했었다. 황온순은 주로 유치원 보모로 일했고, 길림사범학교에서는 학업에 열중하면서 기독교 청년단체에서도 활동했었다. 이러한 활동은 상해 기독교계 독립운동가들과 연결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일제 측에서는 황온순을 ‘배일 용의자'로 지목하였고, 상해와 관계된 부분을 찾고자 지속적으로 감시했었다. 하지만 사료 부족으로 이 논문에서는 황온순의 인물관계와 활동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원불교인 황온순은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에 매진하며 일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사회 어두운 곳을 살피며 살다간 그녀의 생애는 원불교의 종교적 지향성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황온순의 활동 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민족운동에 관한 것도 있다. 그동안 황온순의 민족운동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자료의 미발굴도 있겠지만, ‘원불교인 황온순'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황온순은 원불교에 귀의하기 전 개신교를 신앙하였다. 개신교 신자인 황온순의 어머니는 황해도 3.1운동에서 태극기를 제작·배포하여 연안의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나는데 기여했다. 부모님의 영향 아래 황온순의 민족의식도 성장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황온순은 만주 길림에서 직접 민족운동에 참여했었다. 황온순은 주로 유치원 보모로 일했고, 길림사범학교에서는 학업에 열중하면서 기독교 청년단체에서도 활동했었다. 이러한 활동은 상해 기독교계 독립운동가들과 연결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일제 측에서는 황온순을 ‘배일 용의자'로 지목하였고, 상해와 관계된 부분을 찾고자 지속적으로 감시했었다. 하지만 사료 부족으로 이 논문에서는 황온순의 인물관계와 활동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 KCI등재

          「대한독립선언서」 쟁점의 再論과 大倧敎와의 관련성

          이숙화 단군학회 2019 단군학연구 Vol.41 No.-

          This paper reexamines the ‘declaration date' and ‘declarant' of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hich have been were the points at academic issue in the centennial of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e reexamination is through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ose days' documents concerned the declaration such as 「Diary of Jisan」, 『Jin Dan』(News paper), 「Diary of Lee Jong-il」 and the records left by Jo So-ang who drew up the declaration. And to examine the relation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ith Daejonggyo, refraining from the conventional analysis focused on the signers of the declaration, this paper analyzes Deajonggyo's policy on the war of Independence, the relevancy of Daehan-Independence Righteous Army and Daehan-Gunjeongseo, and Daejonggyo's religious aspect and idea included in the declaration. My conclusions are as follows, Firstly,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written and declared on the second of March at least after the declaration of <2・8 Declaration>. Secondly,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for the independence activists, not for the general public. Therefore, it was a declaration insisting the complete sovereign independence through independent war. Thirdly, The declaration was printed and distributed by Daehan- Independence righteous Army. However, the desire, idea and practical plan for the independence of the declaration were entirely accorded with the religious idea of Daejonggyo. Above all,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the declaration is on the basis of the inherent sovereignty theory originated from Dangun. The declaration could be evaluated as the independence war declaration which was proposed by Deajonggyo and Daehan-Gunjeongseo which regarded themselves as main organizations of ‘Armed struggles'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올해 「대한독립선언서」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학계의 쟁점이 되어왔던 「대한독립선언서」의 ‘발표 시기', ‘발표 주체'에 관해 재검토하였다. 또한 「대한독립선언서」와 대종교와의 관련성도 서명인 중심의 분석을 지양하고, ①독립전쟁에 대한 대종교의 입장, ②대한독립의군부와 대한군정서의 관련성, ③선언서에 담긴 대종교의 종교성・철학・사상 등을 중심으로 면밀하고 다면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대한독립선언서」는 「2・8선언서」 이후, 혹은 늦어도 3월 2일 경에 발표되었다. 둘째, 「대한독립선언서」 기초는 1919년 2월 27일 이전에 완성되었다. 셋째, 「대한독립선언서」는 일반 대중에게 선언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며, 독립전쟁에 의한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문한 선언문이다. 넷째, 「대한독립선언서」의 작성・인쇄・배포의 주체는 대한독립의군부이다. 그러나 이 선언서가 지향하는 독립의 이념과 철학, 실천 방식은 대종교의 종교 이론 및 정신과 완전히 일치한다. 또한 이 선언서의 철학적 배경은 단군으로부터 비롯된 고유 주권에 근거한다. 이는 나철이 주장했던 일본 주도의 ‘동양평화론' 한계를 극복하고, 동양평화와 한국의 독립은 한(韓)의 고유한 권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서는 ‘혈전'의 주체로 나선 독립운동세력의 독립전쟁을 위한 선언문이자 동시에 독립군단체가 설립되어야 하는 명분과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글이다.

        • KCI등재

          제1문화 인지 형성법이 제2언어 습득에 주는 효력

          이숙화 이중언어학회 1997 이중언어학 Vol.14 No.1

          This paper reports the results of a 17-month study which examined the effects of first language (L1) cultural schemata influence on second language (L2) learning. Ten students were randomly selected for the study. They were involved in a program of Bilingual-Intercultural Education (BICE) at an international school in Korea. The studied subjects included: one Chinese and three Korean non-English speaking (NES) elementary students who transferred from their L1 school to the L2 school. three Korean-English bilingual secondary students. and three English monolingual secondary students. The study methods used were qualitative and case study. The term cultural schemata in the study reflect one's previously organized way of perceiving cognitively and responding to incoming complex socio-cultural situations or circumstances. Base on the cultural schemata theory, the subjects, previously learned sociocultural variables in these subjects were considered. A paradigm of bilingual pedagogy developed by the researcher was used for the study period. The researcher used mainly Korean and English because the Chinese student was able to speak Korean. Under the paradigm, most of the learning and teaching materials were designed by the researcher: culturally relevant reading materials were translated from L1 to L2 or vice versa: instruments were developed to investigate the subjects socio-cultural background. Two methods were used to examine the effects of L1 cultural schemata on L2 in the task of sentence interpretation and composition from L1 to L2: A. L1 & L2 Cultural Schemata Interactive Method by reformulating word order in an L1 sentence using L2 word order. phrases, and clause structure in the sentence. Example: Step 1. L1 - 그들의 집(가정)은 하나의 배였다/ 두 현명한 눈들이 있는/ 저 양쯔강 위에/ ·Arranged Ll by following L2 clause, phrase, and word order. Step 2. L2 - Their home was a boat/ with two wise eyes/ on the Yangtze river. Paused L2 reading(/), according to the L1 sentence of step 1. Step 3. L1 - 그들의 집은 양쯔강 위에 두 현명한 눈을 가진 배였다. ·Interpreted from L2 to L1 after reading the L2 sentence. B. L1 & L2 Cultural Schemata Separative Method by translating L2 into L1 after reading a whole sentence in L2 Example: Step 1. L2 - Their home was a boat with two wise eyes on the Yangtze river. ·Read the whole sentence in L2. Step 2. L1 - 그들의 집은 양쯔강 위에 두 현명한 눈을 가진 배였다. ·Interpreted from L2 to L1. Along with these cross cultural perspectives, the following data were gathered: 1. NES children's transcripts from L1 schools and Stanford Achievement Test (SAT) results after receiving bilingual education from L2 school. 2. Habits of pronunciation (e.g. phoneme, intonation, stress. 3. Patterns of verbal and nonverbal communicative styles in L1 and L2 usage. 4. Learning method of word order (syntax) and meaning (semantics) in L1 and L2 sentences. 5. The answers and nonverbal reaction to comprehension and interpretation questions of culturally related and non-related stories (e.g. a Korean folk tale: "The old man with a growth" and a Chinese cultural background story: "The Story About Ping": and other stories taken from children's literature). 6. Classification and evaluation of different and similar learning patterns in L1 and L2. Comparative analysis of the data revealed that L1 cultural schemata have significant effects on L2 acquisition and learning. From the schematic viewpoint, the developmental patterns of L1 and L2 acquisition were apparently similar. The subjects' social and communicative behaviors in L1 appeared also in L2. Each subject's previously formed L1 learning pattern was influential in forming the L2 learning pattern. When performing the task of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sentences and compositions, the subjects' mastery learning speed was faster in method A (cultural schemata interactive), than B (cultural schemata separative). The characters in the stories were interpreted somewhat differently from the subject's different L1 cultural viewpoints. The subjects showed less interest in the completion of reading comprehension questions when the stories were less related to their cultural background. On the other hand, they showed more interest in reading the stories which were familiar to their L1 cultural background. The subjects of Chinese and Korean cultural background performed higher in both literal and inferential comprehension than the subjects of American cultural background. The result of this study support the hypothesis of relationship between L1 and L2 cultural schemata, which affect learning. Under the same bilingual input intervention, the four subjects L2 learning rules and patterns were different according to their own propositions and categorized prototypes in schemata variability. Concerning the implications for schemata-theoretic notions of efficacy of memory paradigms and L2 acquisition, this study suggested that developing L2 learning materials that are relevant to the L1 culture would be a beneficial prerequisite step to providing L2 text or commercial materials for learners. The constructive way of developing bilingual curricula should be carried out by the multidisciplinary and eclectic perspectives of linguists, psychologists, cultural anthropologists. sociologists, and pedagogical professionals. In the process of mastering these culturally relevant learning materials, the learners should receive bilingual therapeutic intervention bilingually in order to be fluent L1 and L2 users.

        • KCI등재

          근대 단군민족주의의 계승과 단군운동-한말에서 임시정부 수립까지-

          이숙화 단군학회 2018 단군학연구 Vol.39 No.-

          This article is about recognition tendency of Dangun Nationalism between late Korean Empire and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The recognition of Dangun Nationalism led Korean's national consciousness and is related with independent movement. Dangun was a mediator when Korean people became a modern nation people. Moreover Dangun and Dangun's thought offered a logic to the anti-Japanese national movement and made an important role to gather Korean people together. The succession and movement of Modern Dangun Nationalism has four stages. Firstly, national enlightenment through writing and education of history books. Secondly, reestablishment of national identity and development of anti-Japanese consciousness. Thirdly, the modern Korean people which had a rebirth as “Dangun's descendant‘ and 'Baedal Nation‘ led 3・1 Independence Movement, established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 Through these all stages, they became a leading role of Independent Movement. A nation is rejected by Post-nationalism as an imaginative community, but Korean was analyzed in this article as a historical entity which went into the establishment of modern nation state and independent movement. It means that Dangun's thought could be used as a theory of peace-movement and unification-movement. 이글은 한말에서 임시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단군민족주의 인식의 동향을 추적하면서 ‘단군 자손'의 주체적 의식이 근대적 민족의식의 성장을 주도하고 단군운동, 독립운동과 밀접하게 결합되어있음을 분석하였다. 단군은 한국사의 오랜 부침을 함께 했다. 특히 한국인이 ‘근대적 민족'으로 거듭날 때 핵심적 매개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단군과 단군사상은 항일민족운동 및 독립전쟁의 논리를 제공하고, 국내외 한민족의 결집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로서 기여하였다. 이 글에서는 근대 단군민족주의의 계승과 운동을 세 단계로 살펴보았다. 첫째, 한말 역사교과서 저술과 교육을 통한 국민계몽의 단계, 둘째,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단군문화운동으로 항일의식을 키워가는 단계, 셋째, ‘단군 자손'과 ‘배달민족'의 이름으로 재탄생한 근대적 한민족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단계이다. 민족은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상상의 공동체'로서 배척되지만, 이 글에서 한민족은 근대 민족국가 건설과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역사적 실체'로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향후 단군의 문제가 평화운동의 원리로서, 통일운동의 이론으로 제시될 충분한 가능성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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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군정서의 성립과 독립군단 통합운동 -총재 서일의 활동시기를 중심으로-

          이숙화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7 역사문화연구 Vol.66 No.-

          This paper proves the characteristics of organization of Daehan- Gunjungseo and writes on the military consolidation which was pursued by them as a way of Independence War. The followings are examined. Firstly, Daehan-Gunjungseo was organized during a long term anti-Japan policy and its execution by Daejonggyo. Daejonggyo founded Junggwangdan in March of 1911 and proceeded National Education Movement as a main misson. When National Self-Determination was proclaimed by Wilson, the president of USA in 1918, Daejonggyo proceeded Diplomatic movement to international societies by organizing Dongwondang with the leading member Seo-il and dispatching representatives to Peace Conference at Paris. On the other hand, Daejonggyo proclaimed Anti-Japanes Armed Struggle with the declaration of "The 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round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in Manchuria and established Daehan-Junguidan as a substantial armed corps. Secondly, Daehan-Gunjungseo was initiated from Daehan-Junguidan, turned to Daehan-gunjeongbu and had grown up the best Independence Corps in North Chientao. Daehan-Junguidan was established by association of Gonggyo and Christian. However, there were members who were opposed when Daehan-Junguidan pursued Republicanism. Therefore Daehan-Gunjeonghoi was reorganized after separating the opposition. Daehan-Gunjeongbu attempted to unify military corps. However, Daehan-Gukminhoi asserted its leadership over Independence Corps so that Daehan-Gunjeongbu changed its name again as Daehan-Gunjungseo according to the recommenda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in Shanghai. Daehan- Gunjungseo grew up to be the biggest troop in North Chientao by Kim Jwajin and military strategists from Sinheung Military School. Thirdly, military consolidation of Daehan-Gunjungseo is examined on the epoch of Battle of Qingshanli. Before the Battle of Qingshanli, military consolidation movement was planned and leaded by The Provisional Government. So it was dual system composed of Mindan(administrative organization) and Gundan(military). The Gundan was composed of Daehan-Gunjeongseo and Hong Bumdo‘s military unit. But the dual system was not the result pursued by Daehan-Gunjungseo which wanted a total consolidation. After the Battle of Qingshanli, Daehan-Gunjungseo pushed military unit again and organized Daehan-Tongeuibu. The members of Daehan-T ongeuibu moved to Svobodnyi to reconsolidate all of Independence Corps. However it was failed by ‘the Tradegy of Free City'. Daehan-Gunjungseo failed to make total consolidation of Military Corps. But it struggled to prepare Independence War and pushed military consolidation forward. As a result, the victory of the Battle of Qingshanli was possible. However, after the Battle of Qingshanli, the result of consolidation could not be succeeded to anti-Japan resistance. Nevertheless, the struggles to make a consolidation of Military Corps is enough to be evaluated as a way of Independence Korean history for National Movement. 이 논문은 대한군정서의 성립과정과 조직의 특성을 밝히고 독립전쟁의 일환으로서 대한군정서에서 추구했던 독립군단 통합운동을 다루었다. 대한군정서는 대종교 교단에서 설립한 독립군단체이다. 선행연구들은 이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나 대한군정서 인물들의 대종교 신앙 유무만 지적하였고 대한군정서의 성립과정 및 무장활동에 있어서 대종교 교단의 실질적인 지원활동은 충분히 논의되지는 못했다. 또한 청산리전쟁 승리의 요인을 독립군단체 통합운동과 관련하여 재조명한 연구들도 있지만 통합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대한군정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명하였다. 첫째, 대종교는 1910년대부터 대종교 교단에서 전개한 ‘민족의 역량강화'·‘외교독립'·‘무장투쟁노선'이라는 일련의 대일정책과 그에 따른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1911년 3월 중광단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전개하였다. 1918년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서일 등을 중심으로 동원당을 조직하고 파리평화회의에 대표파견을 지원하였다. 1919년 3.1만세시위운동 전후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최종적으로 독립전쟁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무장단체로서 대한정의단을 설립하였다. 둘째, 대한정의단은 대한군정부로 재편된 뒤 북간도 최고의 독립군단체 대한군정서로 성장하였다. 대한정의단은 1919년 5월에 공교도·기독교와 연합으로 설립하였다. 1919년 9월 대한군정부로 재편하고 ‘통일주의'에 따라 북간도 독립군단체의 통합을 전개하였다. 대한군정부는 1919년 12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결의에 따라 대한군정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한군정서의 중앙조직은 서일을 중심으로 하는 군무 중심의 총재부와 김좌진을 중심으로 장교양성 및 군부대를 지휘·운영하는 사령부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지방조직에는 대종교 신도와 연계한 39개의 경신국을 조직하여 간도 전 지역의 통신과 경찰업무를 관할하며 북간도 최대 최고의 독립군단체로 성장했다. 셋째, 대한군정서의 독립군단 통합운동은 통합의 주체, 통합의 성격에 따라 청산리전쟁 이전과 이후로 구분했다. 청산리전쟁 이전의 통합운동은 임정에서 주도하여 민단과 군단의 이원화된 체제로 결정되었다. 군단은 대한군정서와 홍범도 부대가 양립했다. 이원 체제는 대한군정서가 추구했던 통일주의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그렇지만 홍범도 부대와 연합에 의한 청산리전쟁의 승리는 통합운동의 영향으로 평가된다. 청산리전쟁 이후 러시아로 이동과정에서 대한군정서는 서로군정서·홍범도 부대와 삼단연합을 추진하며 대한통의부를 조직하였다. 대한군정서는 다시 독립군단 전체와 재통합을 이루고자 자유시로 이동했으나 자유시참변을 맞아 재통합의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서일 총재의 이후 1922년 부총재 현천묵은 대종교 간부들과 대한군정서 재건에 노력하여 1923년 김좌진의 대한독립군단과 통합하였다. 통합운동은 1925년 신민부 설립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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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중복장애학생 전환교육에 대한 운영 실태와 교사인식

          이숙화,한동일,이해균 한국시각장애교육&재활학회 2012 시각장애연구 Vol.28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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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order to develop and provide appropriate transition programs for visually impaired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this study aims to identify characteristics of the actual education environment, the problems with the current transition education, and to make suggestions for improvement. The results show that:Firstly, the number of visually impaired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has increased steadily for the last five years. Over 50 percent of the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are assigned to irregular special classes. The subject teachers or home room teachers teach them activities of daily living and social and cognitive skills. The relevant teachers discuss and define the educational content, and use programs which have been developed by special education teachers for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Secondly, Over 85 percent of teachers think that the current transition education is not very helpful for the visually impaired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and believe that vocational teachers should take charge of the education. For a more effective education, special classes and facilities should be assigned to the visually impaired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The thing that teachers put more emphasis on is the training of skills for independent living, communication and adaption to the community, and basic learning abilities. Thirdly, the problems identified in the current transition education include a lack of adequate curriculum options, insufficient equipment and facilities, and a shortage of personnel, including assistant teachers. The required outside support includes program development, administrative and financial support from the government, and more training and assignment of special education teachers for visually impaired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The abilities to teach independent living skills, to perform diagnostic evaluations, and to establish an individualized transition plan must be required of the transition education teachers to provide valuable and effective skills for students with multiple disabilities. 본 연구는 시각중복장애학생에게 적합한 전환교육을 위하여 학교에서 중복장애학생에게 교육하는 전환교육의 운영 실태와 교사들의 인식 및 문제점을 알아보고, 앞으로 시각중복장애 전환교육의 개선방향을 모색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 결과를 기초로 전국 시각장애학교 중복장애 지도교사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통계처리를 거쳐 자료를 분석하였다. 이에 따른 연구 결과 시각중복장애학생 전환교육의 운영 실태와 교사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각중복장애 전환교육의 운영 실태는 중복장애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로 대부분 비정규학급에 배치되어 교과 담당교사나 담임교사가 지도하고 일상생활훈련, 사회성발달지도, 인지발달지도가 주요 수업내용이다. 또한 교육내용 선정방법은 관련교사들의 협의와 교사의 판단에 따라 선정하고, 중복장애학생 담당교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둘째, 시각중복장애 전환교육의 지원체제와 교사인식은 전환교육 지도를 하고 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효율적인 전환교육을 위해서는 중복장애학급을 구성하여 직업담당교사가 적절한 교육과정 및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지도하여야 한다. 전환교육의 수업내용은 일상생활의 신변자립 훈련, 의사소통능력, 지역사회 생활능력, 기초학습능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셋째, 시각중복장애 전환교육 운영의 문제점은 적절한 교육과정의 부재, 시설ㆍ설비의 지원 부족, 보조교사의 지원인력 부족이다. 이를 위한 개선방법으로 중복장애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국가의 행정ㆍ재정 지원, 전담교사 양성 배치 및 연수와 관련된 지원이 필요하다. 중복장애 전환교육 지도교사의 전문능력으로 신변자립 생활지도능력, 학습자 진단평가능력, 개별화전환교육 계획수립능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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