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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몽주의 시대의 엘리트 문화와 민중문화- 인간은 기본적으로 문화적인 존재이다 -

        김복래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07 역사문화연구 Vol.28 No.-

        Elite culture and popular culture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Kim, Bok-rae The aim of this paper entitled “Elite culture and popular culture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is to examine firstly the aspects of Elite/popular cultures from the standpoint of cultural hegemony. Secondly, it is to understand the basic religious beliefs of mass people. Thirdly, it is also to understand the reasons why elite and popular cultures became separate into the 18th century. Elites was culturally defined by literacy, the acceptance of counter reformation religious practices, going to secondary school, attendance at university, access to the classical texts and the humanities, the possession of a library, and the frequenting of specialist groups. An essential element is the humanist culture from the renaissance, with its revival of the classics, popularisation of them, and their wide dissemination by the printing press. Popular culture is often defined in its opposition or contrast to elite culture. Elite culture is literate, popular culture is illiterate, learned/unlearned, written/oral, even rational/magic.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there was a separation between elite and popular cultures. From the distinction of two heterogenous cultures to their plausible fusion in the name of mass culture, it is useful to analyze the dominant/dominated cultures through the case study of elite/popular culture in the 18th century. 계몽주의 시대의 엘리트 문화와 민중문화 - 인간은 기본적으로 문화적인 존재이다 - 김 복 래 본고의 목적은 첫째, 계몽주의시대의 엘리트문화와 민중문화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대중들의 기본적인 종교 신앙을 이해한다. 셋째, 왜 18세기에 엘리트와 민중문화가 분리되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한다. 18세기 엘리트문화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①문자 교육(literacy)과 교양, ②반종교개혁의 종교관행에 대한 승인, ③중등학교에 다니기, ④대학출석, ⑤고전텍스트와 인문학, ⑥서재소유, ⑦특별한 집단들과의 교제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고전문학․인문학의 재생과 대중화, 특히 인쇄술발달에 따른 인문주의의 광범위한 보급을 들 수 있다. 18세기 엘리트문화의 또 다른 양상으로 사법사회(judicial society)의 등장, 궁정문화에 의해 촉진된 문명화과정, 언어문화의 변화, 빈자들에 대한 상류층의 커다란 문화공포와 기피현상을 지적할 수 있다. 민중문화는 엘리트문화의 반대 내지 대립현상으로 곧잘 정의된다. 엘리트문화는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교양 있는 학술문화이며, 민중문화는 문맹 또는 무학의 교양 없는 문화로 정의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엘리트 대(對) 민중문화는 ①교육/무교육, ②기술(written)/구두(oral)문화, ③합리적(rational)/마술(magic)문화로 구분된다. 18세기는 이러한 문화의 구분 짓기가 가속화되어, 상류층과 하층문화가 분리되었던 시기이다. 사실상 엘리트 대 민중문화의 이분법은 자의적이다. 민중문화는 단순히 일원론적 하부구조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민중문화의 기원을 종종 학술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엘리트 계층에게 전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문화가 ‘따로(à part)’ 존재한다는 발상은 역사적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민주문화에 따뜻한 연민을 품은 현대 역사가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문화의 구별 짓기의 놀이에서 경계 허물기, 즉 엘리트주의적 문화개념의 폐기에 이르기까지 18세기의 엘리트 대 민중문화의 대립구도는 문화연구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리라 본다.

      • KCI등재

        주류문화와의 조우로 인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장례문화 변화 양상 : 전통의 고수와 동화 사이의 혼종성

        고가영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8 역사문화연구 Vol.67 No.-

        이글은 오늘날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장례문화의 특징을 살펴본 글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와 언어가 민족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지고 있으나,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대부분이 무신론자인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전통 종교와 언어를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날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강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일상 속에서 보존되어 계승되고 있는 전통 생활문화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요소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장례문화이다. 고려인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결혼 풍습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전통들이 변모될 수 있지만, 장례문화만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만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이처럼 고려인들의 장례 문화는 전통을 고수하는, 즉 ‘문화동결 현상’이 두드러진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장례문화에는 ‘문화동결 현상’만이 나타나고 있는지, 오늘날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장례문화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분석하기 위해 필자는 고려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 공화국의 고려인 묘지들을 고찰했으며, 49명의 고려인들과의 구술인터뷰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고려인들의 장례의례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사적 공간인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장례 의례는 망자의 사망이 확인된 순간부터 입관과 그 이후 장지로 출발하기 이전까지의 단계로서, ‘혼 부르기’ ‘명정 쓰기’ 입관 이전에 한 번 절하고 입관 이후에 세 번 절하기, 3일간 ‘제사상’ 차리기 등의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적공간에서의 상례는 전통이 잘 유지되고 있는 ‘문화 동결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사적 공간에서의 전통의 고수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인 집을 떠나는 발인과 장지에 도착한 이후 행해지는 매장의식과 묘를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는 다른 특성이 드러난다. 발인과 장지에서의 장례식 과정에서 관 뚜껑을 닫지 않고 연채로 관을 운송하고 의례를 행하는 것,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묘지 조성 방식은 한국의 매장 풍습과는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배민족이었던 러시아인들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사적 공간에서 전통의 고수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에 반해 공적인 영역, 즉 사회적 공간에서는 ‘문화 동결 현상’ 보다는 주류 문화에의 동화를 통한 ‘혼종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956년 거주제한이 철폐된 이후 도시로 진출하게 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강제이주를 통해 자신들의 운명이 지배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경험을 한 고려인들은 장례문화에 있어서도 사회적 공간에서는 ‘동화’를 선택한 것이다. 비록 자신들이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적 공간인 ‘가정’ 내에서는 장례문화의 ‘전통의 고수’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사회적 공간인 묘지 조성에 있어서는 주류문화와의 ‘동화’ 현상이 두드러진 문화의 혼종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의 장례문화는 ‘전통의 고수’와 ‘동화’ 사이에서 혼종성을 드러내며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의 핵심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This paper aims to delve in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funeral practices of the Soviet Koreans living in Central Asia. In general, religion and language are considered crucial elements that form one's ethnic identity. However, the Russian-speaking, mostly atheistic Soviet Koreans living in Central Asia are a rare exception. The ethnic Koreans in post-Soviet Central Asia maintain a strong sense of ethnic identity even without their own religion or language. One of the most indispensable factors that constitute the long-held ethnic identity of the Soviet Koreans is the traditional way of living that have been handed down from their ancestors and preserved to date. Among others, the funeral practices of the Soviet Koreans are deemed as one of the most well-preserved traditional elements. While the majority of the Soviet Koreans believe that marriage and other traditional customs may change over time, they insist on keeping their funeral practices alive in their original form. As such, funeral practices are regarded as one of the domains where traditions remain intact, clearly demonstrating the so-called "cultural freezing" phenomenon. In this paper, the author surveyed the tombs of the Soviet Koreans located in their main inhabitations including Kazakhstan, Uzbekistan and the Kyrgyz Republic and conducted oral interviews with 49 Soviet Koreans to find out whether the funerary customs of the Soviet Koreans living in Central Asia pertain to only the "cultural freezing" phenomenon and assess the features of their current funeral practices. This study found that the funeral rituals of the Soviet Koreans reveal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public and private spaces. The funerary rituals performed at home or private space refer to the early stages of the funerary process prior to carrying a casket to a burial site, ranging from the confirmation of the death to placing the body into a casket. More specifically, the rituals in the private sphere consist of the "calling the soul of the dead", "preparing the funeral banner," bowing three times after casketing the body and setting up the "memorial service table" for three days. The funeral rituals are well preserved in private space manifesting the "cultural freezing" phenomenon. This demonstrates that the Soviet Koreans enjoyed relative freedom to maintain their traditions in private space. However, the later stages of the funeral rituals ranging from carrying a casket out of the house to on-site burial practices to tomb-building customs display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particular, moving a casket with the lid open from the house to the burial site, conducting burial rituals with the lid open on the burial ground, performing music and tomb-building practices are markedly different from the burial customs practiced in Korea, as these rituals follow those of the ruling Russians. Unlike in private space where traditions are clearly preserved, in public or social space the traditional practices have been assimilated into the mainstream culture rather than being frozen in time, leading to cultural "hybridity." Such trend became more prominent after the removal of residential restrictions in 1956, which allowed people to migrate to cities. After realizing that their fate had largely depended on their relationship with the ruling regime through forced migration, the Soviet Koreans opted for "assimilation" regarding their funeral practices carried out in social space. Although they may not be fully aware, the Soviet Koreans have successfully preserved their funeral practices in the private sphere such as “home,” while largely assimilating into the mainstream culture in the social sphere such as a burial site, which resulted in cultural hybridity. Demonstrating such cultural hybridization between “tradition” and “assimilation”, the funeral practices of the Soviet Koreans in Central Asia remains one of the key identities of the diaspora.

      • KCI등재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방문화원의 기능적 역할 연구

        한동현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2 역사문화연구 Vol.44 No.-

        지방문화원과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역사와 관계를 들여다보면 지방문화원은 지역민의 문화정체성과 지역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고,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의 사업을 원활히 지원하고 지방문화원을 대신해 지역 문화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 그리고 정부는 한국문화원연합회를 통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지방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각각 맡아왔다. 그러나 지방문화원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승인과 예산을 받게 됨에 따라 그 관계가 불명확해졌다. 이전에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들을 중재하고 국가 예산을 받아 각 지방문화원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문화원의 정점에 있는 조직이었다. 지금은 각 지방문화원들이 지방자체단체의 예산을 받고 있고, 한국문화원연합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받아 자체적인 사업을 하고, 일부 사업의 경우에 있어서 지방문화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수행사업의 결과를 보고받는 기관으로 변화되었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 하는 지방문화원은 한국문화원연합회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금년에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다방면으로 지방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기여해 온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이제 앞으로의 새로운 50주년을 생각하며 지방문화원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문화정책의 목표는 크게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모든 형태의 예술 창작의 질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유산과 예술창작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 차례 문화정책의 변화를 겪어왔다. 초기에는 문화 정체성에 주력하였던 각국의 문화정책이 1960년대 들어와 고급예술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자는 ‘문화민주화’ 개념이 그 중심에 들어섰다. 그러나 ‘문화민주화’ 정책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1970년과 1980년대에 ‘문화민주주의’ 개념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오늘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다양성은 언어나 의상, 전통,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 도덕과 종교에 대한 관념, 주변과의 상호작용 등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문화민주주의와 지역 문화의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문화민주화에 따른 하향식 정책은 문화의 획일화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지역민의 현재 문화들도 인정을 받고, 이를 토대로 문화민주주의도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정보통신분야의 발전은 문화민주주의의 길을 더욱 열어 놓았다. 오늘날 문화 정보화 사업의 핵심은 소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들이 하는 사업들의 결과물들을 관리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하며, 지방문화원들은 지역민의 문화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지방문화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자료들은 과거와 현재의 지역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원자료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다. 또한 새로운 문화상품 기획에 열의를 내고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방문화원과 한국문화원연합회는 두 주체 사이의 관계와 역할의 재정립을 통해 지방문화 정보 서비 ... Looking into the relation between local culture centers(hereafter, LCC) and the Fereation of Korean Culture Center(hereafter, FKCC), we can figure out LCC have been established for cultural identity of local people, and for succession and development of local culture, while FKCC has taken on the role of supporting activities of LCC and telling the needs of LCC to the government which provides financial supports for LCC through FKCC to keep local cultures. But the relation is getting unclear, since LCC has to get approval and financial support by the local governments. KFCC does run its own programs and businesses supported financially by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and checks the results of businesses of LCC, which are sponsored financially by KFCC. Consequently, LCC do not obtain substantial help and support from KFCC, showing tendency of not thinking highly of communicating with KFCC. This year, KFCC celebrates its 50-year anniversary on the establishment. Looking back on the past, it now feels the need to re-organize the relation with LCC for another celebration of 50-year anniversary. The purposes of cultural policy are to keep quality and diversity of all kinds of art works and to provide the people with opportunities of accessing cultural heritage and creative works. Europe has changed cultural policy several times since the second World War. Cultural policies European countries which were focused on building up their own cultural identity began to embrace the concept of 'Democratization of Culture' in 1960s. It intended to spread classic arts among the people. However, European countries introduced 'Cultural Democracy' policy in1970s and 1980s after they recognized the limits of 'Democratization of Culture' policy. Today, discussions on cultural diversity go on in many ways. 'Cultural Diversity' policy admits cultural differences, including languages, clothes, tradition, ways of organizing their own society, ethics and religions, and interaction with one another. It also is an important concept for cultural democracy and development of local cultures. The top-down policy of 'Democratization of Culture' could have risk of falling into cultural standardization. But only if cultural diversity is admitted, the present cultures of local people can be acknowledged, developing into cultural democracy. The lately development of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opened the way to 'Cultural Democracy'. The core of culture informatization is to be put on the fluid and flexible communication. In this respect, FKCC has to manage and publicize the results of businesses and activities done by LCC, and the latter has to actively embrace and meet the cultural needs and wants of local people. Cultural materials of LCC are a good source worth of studying the past and present of local cultures. Also, they might be used by the culture content industry insiders who are eager to create new cultural items. Therefore, FKCC and LCC need to re-set up a role to each other to prepare for information services of local cultures. FKCC should be a platform to do services of local cultures, because it connects to the network of 229 units of LCC. And LCC as nationwide nodes are to communicate with local people, discover local cultures continuously, and transfer results of business and activity to FKCC for providing digital services. Likewise, if new roles and work process of FKCC and LCC are set up for the production and service of local cultural resources, LCC can have an advantage of doing businesses and activities and, at the same time, managing its results for public relations. And FKCC can be a hub for the promotion of local cultures.

      • KCI등재

        경산시 문화자원 활용을 위한 교육콘텐츠 구축 방안

        한동현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8 역사문화연구 Vol.65 No.-

        Recently, since digital information is highly variable and transferable, many digital information can be produced, communicated, and enjoyed. As a result, there has been a generation that enjoys virtual networks represented by the Internet as an important aspect of life. In recent years, the population born in the mid-1990s is called the Z-generation. Unlike Generation X and Generation Y who have experienced both analog and digital way of life, they are also called Digital Native, a generation that experienced digital life from birth. The Z generation is familiar with social media, multitasking and high-speed Interne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ways of understanding of local culture and then strengthening local identity through the production of digital cultural resources and the educational program for these new generations. As a representative cultural infrastructure based on the region, the local cultural center has been playing an important role as the need for securing the cultural identity of the region has been increased. However, the position of it has been falling due to lack of budget and manpower, and diversification of similar cultural institutions. In this situation, in order for the local cultural center to become the hub of creating and supplying variable local culture, it is urgent to disseminate substantial contents that can affect the local people, especially young digital generation. Therefore, I try to suggest ways to develop local cultural center by building the Wikipedia on local culture and the electronic culture map utilizing local cultural resources. Gyeongsan city in Gyeongsangbuk-do was selected as the study area. It is known as the birthplace of the three saints of Wonhyo, Seolchong and Ilyeon. It has many cultural resources such as 17 national cultural properties and 25 provincial cultural assets. However, there is a great lack of data and information on the culture of Gyeongsan City, and they need to be linked to and provided through a variety of media. Therefore, it is suggested here to create an electronic cultural mapping platform for local residents to participate in with diverse cultural resources of Gyeongsan City, and to utilize and enrich local culture by the participation of youth and local people in educational programs. 최근 디지털 정보의 가변성과 전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많은 디지털 정보가 생산되고 소통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가상 네트워크를 삶의 중요한 한 측면으로 누리는 세대가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인구를 Z세대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X세대, Y세대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경험한 세대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고도 불린다. Z세대는 소셜미디어에 친숙하며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고속인터넷에 익숙한 것이 특징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지방문화원을 중심으로 이러한 새로운 세대들에게 디지털 지역문화자원 생산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지역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정체성을 함양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데 있다. 지방문화원은 지역을 거점으로 한 대표적 문화기반시설로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확보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및 인력 부족, 유사문화기관들의 다양화로 그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문화원이 지역문화생산과 보급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민, 특히 디지털 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콘텐츠 보급이 절실하다. 따라서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문화 위키백과와 전자문화지도 구축을 통하여 지방문화원이 발전해 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 지역으로는 경상북도 경산시를 선정하였다. 경상북도 경산시는 3성현이라 하여 원효, 설총, 일연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17개, 도지정문화재 25개 등 많은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경산시 문화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편이고, 지역문화자료에 대한 다양한 미디어와의 연결도 필요한 실정이다. 따라서 경산시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지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전자문화지도 플랫폼을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청소년들과 지역민의 참여를 통하여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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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연구를 위한 문화지도의 개념과 활용

        김상헌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09 역사문화연구 Vol.34 No.-

        This article is about ‘Cultural atlas’ for understanding of culture. Developing and using new medias, members of various human communities increase interests on different cultures of other country. In this time, ‘Atlas’ can be an useful tool of cultural studies. Because we can express all human things and events of time and space with broad definition in atlas. This means cultural atlas is an effective tool of understanding culture. The function of atlas has been developed with the needs. The first time, atlas played a role of location indicator and this reflected viewpoint for the world. In the beginning of exploring period, the importance of exact location have been emphasized. But after 19 centuries atlas became from a picture of geographical locator to the field for showing various themes. With the support of aerial photo technology, remote sensing, geographical information system(GIS), and other technical development, atlas perfectly copy the real of the earth on the topographical survey. Now it's matter how to use this real atlas. Culture is proper item of using the atlas, which can cover and express all human activities on the basis of time and space. We call it ‘Cultural atlas’ as expression of culture through the media of atlas. Cultural atlas can express various cultures with points, lines and surfaces on the basic axles of time and space. Usually points represent fixed location of cultures, lines represents moving direction of culture or cultural section, surface represents cultural distribution. These each components could be concretely presented using various graphic factors and become very effective method to deliver visual message and meaning. The example of various museums in Japan shows good utilizing of cultural atlas as a kind of exhibition tool. 이 글은 문화를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문화지도’에 관한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세계는 하나의 촌락, 즉 지구촌으로 좁혀지고 있다.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이때 지도는 문화를 총체적으로,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활동이라 정의한다면 시-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는 문화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도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선택적으로, 지리적 공간에서의 현상 재현해주며, 대상과 대상 혹은 사회와의 관계를 규정해 줌으로써 상호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은 지도를 통해 세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도는 현실 그대로의 모사라기보다, 인간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추상화된 표현 도구이기도하다. 지도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그 기능이 확장되어 왔다. 지도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단순히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는 그림이었지만 점차 다양한 정보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매체로 확장 된다. 오늘날의 지도는 항공사진과 지리정보체계 등의 발달로 실제 지구상의 지리적 윤곽을 완벽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이제 지도는 우리에게 지형 그 자체보다 그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 정보를 담아내는 매체가 되고 있다. 이 ‘지도’라는 매체에 문화를 표현한 것을 우리는 ‘문화지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문화지도는 단순한 지형도가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결과물을 표현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문화적 기호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줄 필요가 있다. 이글에서는 지도상에 표현되는 이러한 공간과 시간, 기호가 문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 KCI등재

        유럽통합 과정에 있어서 문화적 갈등문제와 이문화 이해 증진 정책: - 문화수렴 현상과 공동의 교육정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

        노명환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08 역사문화연구 Vol.30 No.-

        European Countries have been developing native and individual cultures. Faced the formation of the Single Market according to the Single European Act, European Communities realized the necessity to harmonize the various cultures of the member states. In this sense, the programs for the inter-cultural understanding have been developed. These programs included the exchanges of the students between the member states and common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in the dimension of Europe. The common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programs raised the importance of the policies for the inter-cultural and cross-cultural understanding. At the same time they proved to be good instruments to promote the understandings between cultures. The emergence of the Single Market according to Single European Act implied the free movement of the goods, services, labours and capitals. For that the common rules and regulations in the dimension of Europe were established. In the results of these processes people could observe the convergence of the cultures among the member states. People began to expect that these developments could contribute to the establishment of the european citizenship, especially through the joint effects with the programs for the inter-cultural understanding. However, the different cultures of Europe are the sources of the cultural clashes and simultaneously the ones of cultural creativities and diversities. In this sense, the programs for the inter-cultural understanding have been being conducted under the motto “unity in diversity”. 오랜 역사 동안 유럽 국가들은 고유한 문화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유럽통합이 이루어지면서 특히 단일유럽의정서에 의한 단일시장의 형성을 눈앞에 두면서 회원 각국의 문화들을 조화시킬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문화 이해 증진 프로그램들이 이 필요성에 화답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주로 학생들의 교환 교육 또는 공동의 다문화 훈련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유럽차원의 공동의 직업 교육·훈련 프로그램 및 교환 프로그램들이 또한 이문화 이해 증진의 필요성을 높였으며 실제적으로 이문회 이해 증진의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단일유럽의정서에 의거한 단일시장의 형성은 상품, 노동, 자본 그리고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하였는데 이는 유럽차원의 공동의 규정들을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문화수렴 현상이 목격되었는데 이 문화수렴이 어느 정도에 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문화 이해 증진 프로그램들과 문화수렴 현상이 맞물리면서 유럽통합과정과 더불어 유럽 공동의 문화라고 불릴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이는 유럽시민권 제도의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유럽내의 서로 다른 문화들은 각기 다른 종교적, 교육적 전통과 지리 및 기후 조건들에 의한 것으로 유럽통합과 더불어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원성의 보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성 속의 통일’ 이라는 목표하에 이문화 이해 증진 프로그램들이 추진되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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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 문화 자료의 자원화 방안 연구

        한동현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0 역사문화연구 Vol.36 No.-

        We are now witnessing so-called new devices such as smartphone, tablet PC, e-book getting rid of paper in our daily life, in slow but constant pace. Now consumers are enabled to consume content thanks to these devices, and this trend brings up the need for diverse content. History is an aggregate of human experiences and knowledge which reveals itself as a whole. We who live today get creativity from the past and prepare for the future. So, historic resources can be, and should be transformed into countless number of content so as to be accessible to public. The writer of this thesis aims to propose methods concerning resource rendering of local cultural data or information. The term of resource rendering, equivalent to SECI process proposed by Nonaka Ichikuro, refers to the stage where raw materials are transformed into resources of content development. Nonaka, departing from the classic categorization of knowledge proposed by Michael Polanyi, proposed four stages of knowledge transformation cycle of Socialization, Externalization, Combination, Internalization. The writer’s proposal is relevant to the process of Combination which aims to facilitate content developers to utilize historic data or information through metadata and visualization, which will bring out a better understanding of meaning of historic resources for public. When establishing metadata, one should consider connectivity of different resources, analyze its contents, and include design process so as to ameliorate its readability for users. Even at this very moment, discovery of cultural resources is on the way, but their exposure and usage are somehow limited. In respect to sustainable development of Korean culture, amelioration of their usage should not be neglected, and public institutions should take the leading role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ly, it is they who have large collection of cultural data or information because they have taken charge in discovering and collecting them. Secondly, the nature of local cultural data or information is public, which means they should remain open for public. Thirdly, the cooperation between institutions can make possible the organic usage of cultural data or information collected by multiple institutions. In this thesis, departing from the case study of the Korea Culture Archtypes Digitalization project executed by Korea Creative Contents Agency, the writer described the resource rendering process of historic data or information and proposed Kimcheon city’s case as its viable example. Historic resources are suitable for storytelling. Storytelling serves as basis of many other contents, such as movie, drama, animation, books, and so on. So, if we concentrate on the resource rendering of historic data or information in regards of story development, this will unveil many historic resources which have been hidden for long time, and they will greatly enrich our cultures. 스마트폰, 태블릿 PC, 전자북과 같은 새로운 디바이스의 등장은 탈 종이화 시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새로운 디지털 기기를 통하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콘텐츠들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고 따라서 더 많은 콘텐츠가 제작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역사는 인류 경험과 지식의 보고이며 인간의 삶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통하여 창의력을 얻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자료들은 무수히 많은 콘텐츠로 기획되어 활용될 수 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향토 문화 자료를 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고 했다. 자원화라는 용어는 원자료를 콘텐츠 개발의 리소스가 되는 자원으로 전환하는 단계로서 노나카 이치쿠로가 제시한 지식창조 프로세스에 비교될 수 있다. 폴라니는 지식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암묵지와 암묵지가 외부로 표출되는 형식지로 구분하였다. 노나카 이치쿠로는 이를 발전시켜 암묵지가 형식지로 형식지가 다시 암묵지로 변환되는 네 가지 변환 과정(공동화, 표출화, 연결화, 내면화)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제시하는 자원화 과정은 지식창조 프로세스 중 연결화 과정에 포함되었고, 역사 자료 가운데 대중들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헌 자료나 유물, 유적 등을 메타데이터와 시각화를 이용하여 콘텐츠 제작자들이 활용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다. 메타데이터 작성 시 자료들의 연결성을 고려하여 내용 분석을 해야 하며, 분석된 내용은 사용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정보를 디자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많은 향토 문화 자원들이 보존, 발굴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자원들 대부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하고 활용되고 있지도 않다. 한국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향토 자료들을 자원화 하여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하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은 공공기관에서 수행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공공기관들이 향토 문화 자료들을 수집해 왔고,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향토 문화 자료들이 공공재로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공공기관들은 이미 수집된 다양한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우리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의 사례를 통하여 역사 자료의 자원화 과정을 보여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천시 향토 자료의 자원화 방안을 사례로 제시하였다. 역사 자료들은 스토리텔링을 하기가 용이하며, 스토리텔링은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도서 등과 같은 다른 콘텐츠들의 기본 토대가 된다. 따라서 스토리 개발을 중심으로 하여 향토 자료들을 자원화 한다면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많은 자료들이 알려지게 될 것이고, 우리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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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thought on the mutual Relationships of History, Culture and Area Studies in the light of Epistemology

        노명환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08 역사문화연구 Vol.29 No.-

        The true nature of a certain (special, individual, particular) area implies the ultimate outcome of the history unique to the area. Because, the history unique to an area is the aggregate of all past experiences of the area people. History has a stratified structure which represents the aggregate (totality) of the diachronic accumulations of the occurrences. Each period builds upon the past. In the each phase (slice) of this stratification of history live the area contemporaries. Each phase can be understood as the culture which comprises whole life fields of the area inhabitants. This culture is formed through the history of this individual area. So, without understanding the stratified structure of history of an area (that is, the total accumulations of historical occurrences), we can not recognize the culture as the aggregate lifestyle of the area accurately. Culture may be defined briefly as a community of a people who hold numerous features of belief, behavior, and overall way of life in common, including ideology, technology, social institutions, and material possessions. Without a doubt, history is the aggregate of all past experiences. But in reality, we can only realize history which comes within our spheres of cognizance. That means that history which we know, in its volume and character, also depends on our faculty of understanding. We can conclude that history stands in a strong relationship with epistemology. The central object of area studies is the human beings of the area who are in the process of the history. Area studies can be regarded a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researcher of an area and the research object (and other area). From this point of view, I conclude that area studies is a science of epistemology. Because of the different history each area possesses particularity, that is individuality. The first goal of area studies lies in the recognition of this individuality. This individuality can be more obviously recognized through continuous comparisons between areas. Under this process we can also extract universality (generality) gradually. In the end we can develop a third new perspective. That is the dialectic unification between speciality and universality. 역사 과정을 통하여 한 지역의 개성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그 지역인의 성격이 결성된다. 역사의 중층적 구조의 각 층은 제 단계의 문화를 보여준다. 문화란 그 지역인들의 가치관, 사고방식 그리고 행위방식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지역학 (지역연구)의 핵심 연구 대상이다. 그런데 역사란 과거에 속하는 사료와 현재에 속하는 역사가의 끊임없는 접촉 속에서 밝혀지는 인식론적 차원의 결과물이다. 인식자인 역사가의 관점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한 지역의 문화라는 것도 인식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파악될 수 있는 인식론적 차원의 결과물이다. 이는 지역학의 결과가 그러함을 의미한다. 각 지역의 문화를 상호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그 특수성과 보편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지역을 연구하는 방법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각 지역의 역사를 과거, 현재,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 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각 지역간의 상호 인식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각 지역의 성격을 규명한다. 각 지역 역사는 그 지역의 개별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고 그 개별성은 각 지역간 끊임없는 상호 교차 인식 속에서 그리고 비교 과정에서 더욱 선명해 진다. 각 지역의 개별성은 이 끊임없는 교차 인식 과정에서 변증법적 통일을 기하여 보편성을 추구한다. 이는 역사학과 지역학이 인식론의 바탕위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과 지역학의 관계가 위와 같이 규명될 수 있는 것이며 역사학은 각 지역의 개별성 파악을 위해 필수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학문 분과이고 그 개별성들의 끊임없는 비교과정을 통해 역사의 개별성과 보편성의 자대가 확립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역학을 통해 역사연구는 심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또한 풍부한 역사학의 지평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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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 國定 歷史敎科書 中外歷史綱要의 導入과 그 性格

        임상훈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22 역사문화연구 Vol.82 No.-

        In 2017, China confirmed the nationalized history textbooks, and the history curriculum was divided into three stages: mandatory, selective, and optional subjects. The nationalized history textbook Zhong wai Li Shi Gang Yao( 中外歷史綱要 , The Outline of Chinese and Foreign History) is planned to be used as the only history textbook in general high schools across China from 2022.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history education among the causes of the historical conflict between Korea and China, and considered the background, influence, and problems of the appearance of Gang Yao. The fact that Gang Yao appeared in a situation where the U.S.-China hegemony competition accelerated and became more isolated internationally suggests many points. In order to overcome this situation, China has put a lot of effort into strengthening patriotism education, and through this, it is promoting internal unity. In this situation, the Gang Yao that appeared includes such political intentions in China. China's political intentions are strongly projected, and Gang Yao has several problems such as a narrative method based on materialistic views, a lecture on the theory of a unified multi-ethnic state, and a historical narrative centered on the country. Considering that all general high school students across the country will be educated through this in the future, our position should be actively expressed. It is necessary to observe and analyze the contents related to us in more detail in China's history textbooks, and to continuously present opinions and coordinate the contents through active exchange and communication between Korea and China. 2017년 중국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확정하였고, 역사교육과정을 필수·선택적 필수·선택 과목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 중외역사강요 는 2022년 이후부터 중국 전역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유일한 역사 교재로서 활용될 계획이다. 본고는 한중 간 역사갈등의 원인 중 역사교육에 대하여 주목하며, 강요 의 출현 배경과 영향, 문제 등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강요가 미중패권경쟁의 가속화와 함께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되어가는 상황에서 등장했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은 애국심 강화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내부의 일치단결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강요 는 이와 같은 중국의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투영된 강요는 지나치게 유물사관에 입각한 서술방식, 통일다민족국가론의 강변, 자국중심의 역사서술 등의 여러 문제를 지니고 있다. 향후 전국의 모든 일반계 고등학생이 이를 통해 교육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의 입장을 적극 표현해야 한다다. 중국의 역사교과서 속 우리와 관련된 내용을 보다 세밀하게 관찰·분석하며, 한중 민관학계의 적극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 내용을 조율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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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민중사’의 모색과 구술사 방법론의 활용

        이용기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2010 역사문화연구 Vol.37 No.-

        이 글의 목적은 ‘민중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2000년대 이래 변화된 현실에 조응하여 실천적 역사학을 재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써 ‘새로운 민중사’의 문제의식과 가능성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중사학의 의의와 한계를 성찰하고, ‘새로운 민중사’를 모색하는 논의를 정리하고, ‘새로운 민중사’의 유력한 방법론의 하나로써 구술사의 가능성과 의의를 검토하였다. 1980년대에 ‘민중사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이자 변혁의 주체로 인식하고 해방을 향한 민중의 역정을 형상화함으로써 진보적·실천적 역사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민중사학은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탄력적으로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급속하게 퇴조했다. 돌이켜 보건대, 민중사학은 그 인식론적 기반이던 ‘과학적·변혁적 민중론’ 또는 ‘변혁주체 민중론’의 규범성과 도식성, 그리고 목적론적 역사관의 한계로 인해 민중의 실제적인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변혁을 지향하는 지식인이 염원하는 민중상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역사학의 실천성과 ‘아래로부터 역사’라는 민중사학의 지향을 계승하면서도 변화된 조건과 인식론을 반영하여 근대비판의 관점에서 민중사를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와 같은 ‘새로운 민중사’는 민족·국가 단위의 발전과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을 규범화하던 과거의 민중사학과 달리, ① 민중의 일상성과 생활정치에 대한 주목, ② 민중의 다성성과 중층성의 인식, ③ 자율과 종속의 복잡한 맞물림에 대한 고려, ④ 국민국가 단위의 발전론으로 수렴되는 근대주의 패러다임의 극복 등을 공유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구술사는 단지 문헌자료의 공백을 메워주는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동안 침묵되었던 민중의 기억을 불러냄으로써 국가가 강요하는 지배적인 공식기억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대항적 역사서술의 도그마에도 도전한다. 또한 구술사는 ‘변혁주체 민중론’에서 간과되었던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로 관심을 확대하고, 저항적 지식생산을 넘어 공감과 치유의 역사학을 추구한다. 이러한 점에서 구술사는 ‘새로운 민중사’의 유력한 방법론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민중사’는 학술적 담론의 차원에서만 맴돌지 않고 ‘대중의 역사화’로 확장되어 역사학의 실천성을 새롭게 획득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orientation of ‘new minjung history’ and its possibility as an attempt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minjungsahak(minjung historiography)’ in the 1980~90s and reconstruct practical history in accordance with the realities that have been changing since the 2000s. So I reflected on the meaning and limitations of minjungsahak, and organized the discussions to search for ‘new minjung history’, and then examined the possibility and the meaning of oral history as an influential methodology. ‘Minjungsahak’ in the 1980s recognized minjung(people) as the main agent of history and revolution and became the symbol of progressive and practical historiography by embodying the journey of the people toward self-liberation. However, minjungsahak rapidly declined due to its inability to adapt itself flexibly to the social changes through the 1990s. In retrospect, minjungsahak failed to look the actual life of the people straight in the face due to the limitations of the normativeness, schematization, and teleological view of history embedded in the ‘scientific and revolutionary people theory’ or ‘revolution-subject people theory’ that is the epistemological basis of minjungsahak, so it described the image of the people that the intellectuals who aimed for reform wished. In the 2000s, the tendency to restructure minjung history from the view point of criticising modernity reflecting changed conditions and epistemology while succeeding to the aim of minjungsahak, which is the practicality of historical studies and ‘history from below’, emerged. Such ‘new minjung history’, unlike minjungsahak in the past that standardized the people as the main agents of the development and reformation of nation and state, can be viewed as a flow that shares ① the attention to the people's daily life and the politics in the everyday life, ② the recognition of multi-vocality and multi-strata, ③ the consideration of complex interlocking of autonomy and subordination, and ④ the overcome of modernist paradigm that is converged into development theory of the nation-state. The oral history that has recently been in the limelight is not just accessorial means to fill the vacancy of literacy data, but elicits the memory of the people who have been silenced, and challenges not only the state-imposed dominant official memory but also the dogma of resistant historiography. Also, the oral history expands its interest to the weak and minorities who were overlooked in the minjungsahak, and pursues historiography of sympathy and cure beyond producing the resistant knowledge. In this sense, the oral history could be an influential methodology of ‘new minjung history’, and ‘new minjung history’ could be expanded to the historicization of the people beyond just academic discourse and newly obtain the practicality of historic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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