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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지방 삼한·삼국시대 살림집의 복원연구

        함순섭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8 동원학술논문집 Vol.9 No.-

        이 글의 목적은 영남지방에서 확인된 삼한·삼국시대 살림집의 구조를 복원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 우선은 기왕의 살림집 연구에서 잘못된 점을 살펴보고, 개념에 합치될 수 있는 살림집의 분별 기준을 추출해 보고자 하였다. 그 다음은 취락 유적의 발굴 성과 검토와 집모양 주자 형태 분석을 통해 건축구조를 고찰하고, 이를 민족지 기록에 대입하여 살림집의 복원 구조를 해석하였다. The large-scale archaeological excavation that began at the start of the latter half of the 1980s has laid the foundation for the investigation into settlements, a principal subject of study within present Korean archaeology. Excavational results have shown that the investigation into settlements in Korea has been centered on the Bronze Age while investigations into the Neolithic Age and since the Early Iron Age have only yielded relatively incomplete result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ssify and analyze the restored structures of the dwellings from the periods of the Samhan and Three Kingdoms the found in the Yeongnam district based on archaeological resources and ethnographic records.

      • 일제강점기에 만든 강서 고구려 능묘벽화의 원색사진

        함순섭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18 고고학지 Vol.24 No.-

        The first color photographs to have been produced on the Korean Peninsula were those that were taken of the murals from Gangseo Great Tomb and Gangseo Middle Tomb, located in Pyeongannam-do, Gangseo-gun, Sammyo-ri, in October 1-November 12, 1936. Tanaka Toyozo (田中豊藏, 1881-1948), professor of the art history classroom at the Faculty of Law and Literature, Gyeongseong Imperial College, and Enjouji Isao (圓城寺勳), head of the collage photography club, participated in this event. The inner chambers of the tombs were furnished with electrical lights in order to achieve an even shoot. Shooting was done using a separation filter for four colors, and infrared photography was also applied. As such, each frame was shot four times. However, the glass plates of the photos taken at the time or the actual color photos are no longer extant; it is only through newspaper articles that we know of these color photos. The production of these color photos was associated with Benrido (便利堂), a publishing company based in Kyoto, which at the time had the experience and skills to make such photos. The Japanese government at the time had come up with various solutions for the preservation of the murals of the Main Hall of Horyuji Temple. One of these was to take life-size photos of each section of the murals using black-and-white negatives and infrared photography. Benrido undertook a preparatory photography session in the summer of 1934 and the actual photos were taken from August 1 to October 15 of 1935. Photography using a separation filter for four colors was also undertaken to take life-size photos of the sections of each of the walls. Taking into account the technology and photography printing that was involved for the Goguryeo murals,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technological support of Benrido had been involved. The author was fortunate enough to have acquired in Japan a collection of color postcards of the murals of the Gangseo tombs (江西古墳壁畵原色繪葉書), produced by Benrido and published by the Pyeongyang Society for the Preservation of Signigicant Sites. This set, consisting of six postcards, was contained within a envelope featuring a stamped that marked August 2, 1942 as the date of purchase. The fact that they were produced by Benrido and the date of purchase makes it highly likely that these postcards were associated with the glass plate photographs taken in 1936 by the photography club of Gyeongseong Imperial College. As records of first color photographs of cultural properties taken on the Korean Peninsula, these postcards have significant value. 한반도에서 유구의 실사 원색사진은 1936년 10월 1일부터 11월 12일까지 평안남도 강서군 삼묘리의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고분벽화를 대상으로 처음 촬영되었다. 이 촬영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미술연구실 교수인 다나카 도요조(田中豊藏, 1881-1948)와 대학사진부 주임인 엔조지 이사오(圓城寺勳)가 참여하였다. 석실 내부에는 균일한 촬영을 위해 전기 조명을 설치하였고, 원색구현을 위해 하나의 장면은 4색분해 촬영하고 적외선 촬영을 추가하여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선명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 때 촬영된 유리건판이나 원색사진은 확인할 수 없으며, 관련 사실을 전하는 신문기사와 휘보만 남아있다. 그런데 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원색사진 제작은 당시 제작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교토의 인쇄전문회사 벤리도(便利堂)와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는 나라 호류지(奈良 法隆寺) 금당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흑백 네거티브와 적외선으로 벽화를 실물 크기로 분할 촬영하는 것이었다. 벤리도는 1934년 여름에 시험촬영을 하였고, 실물 크기를 촬영할 수 있도록 특별히 주문 생산한 대형 카메라 및 대형 유리건판을 이용하여 1935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촬영을 마쳤다. 이때 벤리도는 일본 정부의 주문과 별도로 각 벽의 벽화전체를 담은 원색사진용 4색분해 촬영도 함께 진행하였다. 당시에 원색사진 분해촬영 및 전용 사진인쇄의 기술은 벤리도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듬해에 시도된 고구려 고분벽화 촬영은 촬영기술과 전용인쇄를 염두에 둔다면 당연히 벤리도의 기술지원 아래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평양명승구적보존회(平壤名勝舊蹟保存會)에서 발행하고 벤리도에서 제작한 ‘강서고분벽화원색회엽서(江西古墳壁畵原色繪葉書)’를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구입하였다. 6매 한 질의 이 사진엽서는 한 질의 봉투에 1942년 8월 2일의 구입 날짜가 날인되어 있다. 제작사 벤리도와 엽서의 날짜는 이 원색사진이 1936년 경성제국대학 사진부에서 촬영한 유리건판과 관련이 있음을 알려준다. 아쉽게도 이 원색 사진엽서는 당시 최고급 인쇄술인 콜로타이프가 아니라 망판 4색분해 이후 오프셋으로 인쇄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실사 촬영된 문화유산의 원색사진인 점에서 이 사진엽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 신라 수지형대관(樹枝形帶冠)의 퇴화형식 설정 : 동원선생 기증품을 중심으로

        함순섭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0 동원학술논문집 Vol.3 No.-

        신라 수지형대관(樹枝形帶冠)은 흔히 출자형관(出子形冠)으로 알려져 있는 관(冠)이다. 이 형식의 관은 1920년 양산 부부총과 1921년 경주 금관총 조사결과를 통해 알려졌다. 이 가운데 금관총에서 우연히 발견된 금관은, 무덤 이름으로까지 반영된 바와 같이 국제적으로 상당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된 사실은 너무나 획기적이었기에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순수한 학문적 의의를 넘어서는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하였다. 금관에 대한 관심이 경주지역에서 고총고분의 발굴을 촉진시켰고, 그 결과물은 신라 고고학 연구의 모태가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난 80년간의 연구사를 되돌아보면, 수지형대관에 대한 연구는 높은 관심에 비해 성과가 다소 빈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금속공예품에 비해 제작기법이 조략(粗略)하고 의장(意匠)이 단순하므로, 다양한 형식학적 계량 분석을 투영해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주제도 다변화되지 못했다. 초기 연구에서 다루었던 상징과 계통에 대한 검토가 지속되지 못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 글은 신라 수지형대관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형식학적 문제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분석대상으로 동원선생 기증유물을 선택한 이유는 표준형식과 퇴형형식의 연결고리를 설명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형을 알 수 없던 일부 금동관을 복원하여 추론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라 수지형대관의 연구에서 그간 미지의 부분으로 남아 있던 표준형식(標準型式)에서 퇴화형식(退化型式)으로의 전환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하였다.

      • 납동위원소비법에 의한 청당동유적 출토 청동제대구(靑銅製帶鉤)의 산지추정

        강형태,김규호,함순섭,히라오 요시미츠(平尾良光),에노모토 준코(榎本淳子),하야카와 야스히로(早川泰弘)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8 고고학지 Vol.9 No.-

        천안시 청당동 유적의 분묘는 대체로 AD 2세기 후반에서 AD 3세기 후반의 원삼국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출토 유물은 장신구, 토기, 칠기 등인데 장신구로서 청동제마형대구 18점과 곡봉형대구 1점이 출토되었다. 청동제대구의 주성분과 미량성분은 형광X-선분석법으로 분석하였는데, 부식이 매우 심하여 정량분석을 위한 금속 소지의 채취가 불가능하였다. 다만 마형대구의 정성분석 결과는 모두 구리, 주석, 납을 주요성분으로 하는 청동이며, 그 밖에 불순물로서 안티몬, 은, 비소, 아연, 철 등이 나타났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여기에 납을 첨가하는 목적은 주조 시 유동성을 좋게 하고 용융온도를 낮추기 위해서, 또는 값비싼 주석을 얻기 어려워서 대신 납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렇듯 청동기를 제조할 때 납은 당시의 기술적,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첨가되지만 동시에 납은 산지에 따라 납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므로 이를 분석해보면 언제·어디서 원료가 입수되었는지 알 수 있고, 이는 교역이나 침탈에 의한 물자의 이동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고안된 자연과학적 방법이 납동위원소를 이용한 산지추정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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