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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학문적 정의 구현을 향한 한국고고학회의 종합적 발전 방향 모색

        이남규 한국고고학회 2016 한국고고학보 Vol.100 No.-

        한국고고학이 일제로부터 학문주권을 되찾은 지 71년의 세월이 흘렀고 1976년에 설립된 한국고고학회는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 결코 짧지 않은 우리나라의 고고학사에서 그동안 우리 학계가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학문 내외적으로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부분들이 산재해 있어 다방면 내지 전방위적으로 개선 내지는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우리 남한의 고고학은 그 시초부터 전공연구자가 월북해 버린 상태에서 비전문가들에 의해 파행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함으로써 대학의 연구와 교육체제는 물론 각종 박물관 및 연구소조차도 상당히 취약한 구조와 체질을갖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며 그러한 태생적 취약성은 아직도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채 상당히 잔존해 있다. 게다가 경제적 절대 빈곤의 시대를 거쳐 무분별하고 급속한 국토개발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 매장문화재 관련 조사체제, 법 및 행정 등에 있어 국가적 정책이 정향적으로 수립되지 못하고 반복된 파행과 시행착오의 결과 각종 부조리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야기되고 있다. 즉 우리 고고학이 절대적 빈곤의 시대는 일단 극복한 셈이나 아직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선진적 수준에는 도달해 있지 못한 과도기적 시점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의 이러한 전반적 부실상황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과거 및 현재의 모든 고고학 종사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통감하고 그에 대한 본격적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공감대의 형성보다는 오히려 지역주의와 출신주의 등이 균형적 수준을 넘어서서 과도한 분파주의를 형성하여 상호 소통 부재와 비협력적 관계의 양상을 많이 보이고 있어 이의 극복이 학회의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국가적 책임하에 있는 매장문화재의 조사관리 및 보존체제가 부실한 상태로 계속 방치되고 있는 것은 담당 부서의 취약성에 그 원인이 있기는 하겠으나, 그에 앞서 국가의 정책결정권을 장악한 행정책임자 및 위정자들의 역사인식 결핍과 현재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의 부재가 보다 더 큰 원인이고, 또한 국민 일반의 역사인식 부족과 문화재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는 보다 더 근본적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보다 근원적인 선결과제의 해결 없이 우리 고고학의 개혁과 선진적 수준의 달성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내외적으로 상식과 양식, 도덕성과 정의감 등이 결여된 파행적 상황의 한국고고학을 향후 정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가야 할 주체로서 한국고고학회는 그동안 이러한 점들에 대응하여 그 기능을 제대로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였고, 인문학 분야의 위약한 일개 임의학술단체에 불과하였음을 통렬히 자성해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한국고고학회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학회는 어떠한 부문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의 제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필자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 KCI등재

        한국의 고고학과 박물관

        배기동 한국고고학회 2016 한국고고학보 Vol.100 No.-

        한국의 고고학은 박물관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지난 70년 동안 성장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성장의 질은 각 단계, 즉 사회변동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져온 것이고 또한 최근 사회의 분화와 함께 이러한 분야들이 각기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두 영역은 상호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며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고고학과 박물관의 관계는 몇 가지의 주요한 공동기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전문인력자원, 즉 학예사와 고고학자의 상관관계이다. 그리고 바로 유물 또는 소장품으로 부르는 두 분야가 공동의 기반을 두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자산이다. 이러한 인적 그리고 물적 기반에서 두 가지의 영역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작업의 본질은 상당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박물관이라는 장소와 기관이 고고학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가 있는지의 문제이다. 결국 이러한 세가지 기반의 특성이 바로 고고학과 박물관의 관계를 보여 주고 또한 발전의 과정에서 분화와 통섭의 범위와 특성을 달리하여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분야의 영역에서 각기 대중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분야에서는 각기 고유한 전략을 가지고 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두 개의 영역이 하나의 루프로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루프를 통해서 각기 발전을 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고고학의 지난 70년 동안의 과정에서 본다면 이 두 영역은 통합적 체제에서 분화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 관계의 질이 사회적인 발전에 힘입어서 점진적으 로 높아져 오고 또한 보완적인 성격을 달리하여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고고학이 성장하여 오면서 박물관이나 박물관연구 영역과 어떤 관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변화상과 미래상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박물관은 고고학이 야외현장과 연구실에서 정리 연구한 유물들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그것은 가까운 과거이든 먼 과거이든 간에 고대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이 가장 원론적인 박물관의 정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물관 소장품의 대부분이 고고미술품으로 인식되던 시대가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박물관은 훨씬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박물관은 고고학이 학문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포함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박물관의 정의도 많이 변화하는 것이 현대의 조류이지만, 이와 함께 현대에 들어서는 고고학 역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음을 비추어 본다면 시대가 바뀌어 각 영역이 사회적인 수요가 바뀌어도 그러한 학문의 영역 차이도 별로 크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공통점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고고학이 다루는 오브제의 다양화는 과거의 고고학보다는 엄청나게 확장되어 있고 앞으로도 확장될 것이다. 박물관을 구성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장품들은 모두 고고학적인 수집과 연구과정에 의해서 정의된다는 점에서 두 분야의 기본적인 기반은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장품이나 유물을 다루는 목적이나 범주가 다를 뿐이다. 고고학이 다루는 유형유산들은 선사시대의 석기이든 중세의 칼이든 또는 심지어 청계천에서 건져 올린1960년대의 주민등록증이건 간에 고고학은 이러한 유형유산들을 연구하여 그 유산의 특성과 의미를 찾아내게 되고 이것들은 바로 박물관의 소장품이 된다. 그런데 지난 세기 말에 박물관의 영역에 무형유산을 포함시키게 되면서 유형유산이 박물관 콘텐츠의 모든 영역인 시대는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러한 무형유산조차 박물관에 남겨지고 또한 전시되는 것은 바로 유형적인 오브제로서 유형유산기능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유형유산을 다루는 고고학과 박물관은 정말 그 본질 또는 기반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박물관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하여야 하는 것이 바로 고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반적인 학문의 영역이나 관계의 개념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어느 사회에서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논하여야 하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난 70년 동안 한국의 고고학적인 실행과 박물관의 관계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기본적인 입장을 토대로 이제까지의 수행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에서 돌아보되 한국에서 고고학과 박물관 연구의 실행에 있어서 상호연관의 특성과 그 변화를 정리하고 비평하여 앞으로 두 학

      • KCI등재

        중세고고학의 진전을 위하여

        정의도 한국고고학회 2016 韓國考古學報 Vol.100 No.-

        ‘중세고고학’은 시기를 나누는 ‘중세’와 수많은 학문의 영역 가운데 하나인 ‘고고학’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명칭이다. 그 앞에 ‘한국’을 덧붙이면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공간이 한정된다. 한국이라는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공간을 논하는 것은 이번 글에서는 논외로하고 중세고고학이라는 시대구분이 제기하는 문제점에 천착하여 보기로 한다. 먼저 중세고고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고고학의 개념과 목적에 관한 여러 논의가 있겠지만 고고학이 인류가 남긴 일체의 유적과 유물의 분석을 통하여 편년을 시도하고 인간의 행위양상과 사회·문화·경제적인 여러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세라는 시대구분론적 용어로서 이것은 당연히 고대와 근세라는 시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만큼 중세가 함의하고 있는 개념적 문제이며 이것은 고고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말하자면 어디서 어디까지를, 어떤 근거로 하여 중세로 보느냐에 따라 고대의 하한과 근세의 상한도 결정되는 것이므로 중세라는 시기구분은 고고학적 연구대상의 철학적 관점을 담보로 하는 것이며 고고학으로 바라보는 시대 전반을 논의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 KCI등재

        고고학 논문의 학술성 제고를 위하여

        이희준 한국고고학회 2016 한국고고학보 Vol.100 No.-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진리일진대, ‘학술성 제고를 위해’ 무언가 논의를 한다니 웬일인가 싶을 것 같다. 실은 몇 달 전에 한국고고학회 이남규 회장이 전화를 해 학회 운영위원회에서 학회 40주년과 『한국고고학보』 100호 발행 기념으로 몇 사람에게 학회 또는 학계의 현안 문제들에 대한 특별 논고를 받아 싣기로 기획을 했다면서 필자에게 ‘학술성 제고’와 관련된 글을 쓰되 제목은 마음대로 정해도 되니 맡아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주제가 사실 막연하다고 생각이 되는 데다 개인적으로 금년이 안식년이라 그 취지에 따라 심신을 평안히 하려는 중이라고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오히려 안식년이라 시간 여유가 있을 테니 맡아 주어야 한다고 강권을 하였다. 이 논리와 평소 친분에 반한 거절 부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처를 할 수가 있었지만 현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에 대해 전임 학회장으로서 나 몰라라 하기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했으나 그래 놓고는 후회가 막급하였다. 제도 개선 같은 주제는 어떻든 ‘방안’이라는 게 나올 수가 있지만 학술성을 높인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방안이라는 게 있을 리 없기에 막막했다. 처음에는 학술대회, 저서, 논문 나아가서는 발굴 등을 포괄하는 논의를 해야 하겠지 싶어서 궁리를 하다가 결국 기한이 거의 다 되어 논의의 대상을 논문으로만 좁혔다. 이를테면 발굴 분야의 학술성 제고를 위한 논의처럼 특정적이면 매장문화재부담금제도 제안과 같은 나름의 구체적 방안이 제시(김권구 2016)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논문이나 저서의 경우에 그런 방안은 나올 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글의 성격상 이래야 된다느니 저래야 된다느니 하는 당위를 논하지않을 수 없다. 더구나 고고학의 시대별, 분야별로 당연히 서로 다른 소위 아젠다들이 있을것인 데도 한 사람이 전체에 관해 말해 보라니 역시 무리가 아닌가 싶다. 이러해서 과연 필자가 그런 당위를 운위할 만한 자격이 되느냐 하는 문제부터 시작해 꺼림칙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욱이 일반 논문처럼 평소에 오랫동안은 아니더라도 고민을 하던 주제도 아니다. 그래서 평소 대학교 강단이나 학회 등에서 느낀 바를 그야말로 두서없이 언급하는 수 밖에 없을 듯싶다. 다만, 논의의 주제와 초점은 고고학계에 전체적으로 관련되게 마련인 당위의 영역, 이를테면 발굴을 잘 해야 한다느니 대학교에서 학위 논문 심사를 좀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느니 번역서를 더 많이 내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런 문제보다 고고학 연구자각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직접 와 닿고 또 공감할 만한 부분으로 최대한 맞추도록 하겠다. 또 되도록이면 나름대로 일반화를 지향하겠지만 사례라든지 내용이 어쩔 수 없이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필자가 거주하고 전공하는 영남 삼국시대로 쏠리는 편향성이 강한 내용이 되고 말 터이니 미리 양해를 구해 둔다.

      • KCI등재

        한국 중세고고학 연구와 문헌사료의 활용

        김광철(Kim, Gwangcheol) 한국중세고고학회 2017 한국중세고고학 Vol.- No.2

        중세고고학이라는 용어와 그에 대한 이해도 이제 한국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그동안 중세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연구의 필요성, 중세사학과 고고학의 소통과 융합을 강조해온 결과이다. 더욱이 한국 중세고고학 기초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관련 연구 성과를 정리한 『한국 중세고고학 자료집성』이 간행됨으로써 중세고고학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분묘유적, 성곽유적, 사원유적, 도자 연구 중심으로 고고학적 연구에서 문헌사료 활용의 양상을 검토한 결과, 전체적으로 문헌 사료 활용의 빈도가 높지만, 성곽유적 연구에서 사료의 활용 빈도가 가장 높고, 분묘연구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물론 연구 분야에 따라 문헌사료 확보량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고고학 연구에서 문헌사료의 활용방법은 사료를 먼저 제시하고 유적, 유물의 분석에 들어가는 유형과 분석과 해석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사료를 제시하는 유형이 있다. 문헌사료의 활용은 고고학 연구 분야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겠지만, 현황과 배경 서술에서 많이 활용되고, 해석의 단계에 해당하는 성격과 특징, 그리고 변화상을 조명하는 데에 관련 사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세고고학 연구에서 문헌 사료의 활용은 매우 중요하며, 역사학과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는 것은 연구 성과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문헌사료의 활용과 중세사학과의 통섭이 본래의 고고학적 연구방법에서 벗어나거나 왜곡하는 것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문헌사료를 폭넓게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도, 문헌사료의 입을 빌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 유물 등 물질자료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헌사료의 역할은 물질자료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The term and understanding of medieval archeology is now somewhat familiar to Korean archaeologists and historians. It is the result of the emphasis on medieval archeology, the necessity of its research, mediation of medieval history and archeology, and its convergence. Furthermore, the Korean medieval archaeological data collection has been published and the results of the related research results have been published, thus creating the conditions for the medieval archaeological research to be revitalized. The number of medieval archaeological research results in Korea is 1,095 by 2011, and the number of research results for 6 years from 2012 to 2017 is 596. The research results of Korean medieval archeology seems to be led by the study of porcelain only by quantity. The next active area of research is the study of tombs. In the archaeological study, the utilization of the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was examined in the research of tombs, castle ruins, temple ruins, and ceramics. Although the use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as a whole is high, the study of castle ruins has the highest frequency of use and the use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in the study of Grave Relies is relatively low.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are often used to describe current status and background, and are actively using related diets to analyze personality, characteristics, and changes. In order to utilize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effectively, it is first required to secure a large amount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of the Goryeo period, and to classify and sort them by field. Next, when using the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it is necessary to constantly criticize the historical materials. In medieval archaeological research, the utilization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is very important, and communicating and converging with history is a way to enhance the quality of research results. However, the use of medieval texts and the mediation of medieval studies should not be deviated from or distorted from the original archaeological methods. Medieval archeology is not a medieval history but an archeology, and the purpose and method of research as archeology must always be maintained. Even if it is desirable to utilize a wide range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it should be possible to talk about material artifacts of the relics, not the mouths of documents. The role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should be abandoned in a line that guides and advises the material data on its own.

      • KCI등재

        통일고고학을 위하여

        이상준 한국고고학회 2016 한국고고학보 Vol.100 No.-

        통일고고학이란 좁은 의미로는 ‘통일시대를 대비한 한국고고학’이며, 넓은 의미로는‘통일시대의 한반도고고학’이라 정의할 수 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완전히 다른 사상과 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서로 간 인도적 차원의 교류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대결과 반목의 세월을 보냈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남북 간에는 사회전 반에 걸친 격차와 이질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고고학도 이제는 서로 다른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것을 찾아야 할만큼 인식상의 차이가 발생해 있다. 이런 인식상의 차이를 조정하고 통합해 나가는 과정이 곧 통일고고학인 것이다. 일찍이 북한은 유럽에서 체계적인 고고학교육을 받은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문화재 관련 법규를 손질하고 박물관을 비롯한 연구기관을 만들어 고고학연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한반도의 선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웅기 굴포리유적이나 무산호곡동유적과 같은 선사시대 유적을 차례로 발굴하였다. 이를 통해 한반도 최초로 구석기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청동기시대를 하나의 시대구분 단계로 설정하여 일본학자들이 세워 놓은 왜곡된 역사해석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또한 해외에 남아 있는 우리 역사유적에 대한 조사에도 치중하여 연해주와 요동지역에 남아 있는 고조선과 발해 유적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그리고 대표적인 조사성과로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경 요동지방에 위치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주체사상의 확립과 더불어 이전의 활발하던 북한고고학도 침체기를 겪게 된다. 비록 1986년 『조선고고연구』 가 창간되었으나, 그 내용은 조사된 유적을 소개하거나 간략한 검토의견 정도의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는 세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대동강 일원에서 건국되었다는 이른바 ‘대동강문화론’을 주창하면서 그들이 이미 결론 낸 바 있는 고조선의 재요동설을 스스로 반박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최근 북한의 고고학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술적 측면에서 지난 10년간 남한과의 공동발굴 경험으로 체득한 조사・연구 방법을 나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실제 2016년 지금까지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해 왔던 개성 만월대 유적을 단독으로 발굴하였고, 개성에 남아 있는 2기의 고려왕릉도 발굴하였다. 그리고 북한학계는 조사과정과 출토유물을 자체 검토한 뒤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북한이 만월대 발굴성과로 내세운 ‘여섯 쪽으로 펼쳐진 꽃모양 형식의 돌 구조물’이 차맷돌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고, 개성 해선리에서 발굴된 고려왕릉은 구조와 유물에 대한 상세한 언급 없이 단지 덕종 숙릉과 정종 주릉으로 결론지었다. 통일고고학의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 KCI등재

        한국 원사고고학의 기원론과 연대론

        이창희 한국고고학회 2017 한국고고학보 Vol.102 No.-

        한국 원사고고학의 기원론은 좁게는 서북한지역, 넓게는 중국 동북지역과 연해주지역의 고고자료와 한반도 남부 고고자료와의 상사성 추구로부터 출발하여 주민 이주와 문화 전파의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고고자료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문헌기록이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못해 이주와 전파의 배경이 事實이 아닌 史實로 해석되었다. 그 연대 또한 자연스레 史實로 결정되었다. 본고에서는 한국 원사시대의 고고자료를 키워드 중심으로 학사와 현황을 파악하여 기원론과 연대론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한국 원사시대의 기원과 연대를 좌지우지했던 史實인 연국의 동호경략, 위만조선의 성립, 한사군 설치라는 역사적 배경은 신자료의 증가와 중국 자료의 재검토를 통해, 그리고 탄소14연대에 대한 이해 증진과 데이터 축적에 의해 신연대론과 충돌하고 있다. 탄소14연대와 대세론의 대립은 원사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고학에서 역연대 추정은 자연과학과 서로 보완적인 관계여야 하나 한국 원사고고학에서는 물과 기름처럼 그 대립이 첨예하다. 하지만 그 대립은 보편적인 고고학적 연대결정법이 아닌史實과의 대립이다. 철기 출현에 대한 배경으로 ‘낙랑→위만→진개’라는 史實의 키워드만 바뀌면서 전혀 다른 철의 역사를 그려 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원사고고학에서 기원론은 史實論과탄소14연대에 대한 인식의 재고를 통해 史實에 동조시키는 풍조에서 탈피하여 다시금 시발점에 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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