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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기시대 영남-서북큐슈 해안지역 교류에 관한 검토 - 어로구의 양상을 중심으로 -

          이상규 영남고고학회 2019 嶺南考古學 Vol.0 N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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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서북큐슈 해안지역의 교류는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해안지역이라는 특성상 어로민들 간의 교류로 이해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동일한 해협 그리고 어로라는 공통적 생업을 공유하는 양안지역의 특징에 따라 어로구를 중심으로 교류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영남-서북큐슈 해안지역 어로구의 종류는 작살류와 조침류로 대별된다. 작살은 재질에 따라 석제와 골제, 사용방 식에 따라 고정식과 분리식이 있으며 세부적으로 더 구분이 가능하다. 조침류는 결합식, 단식, 역T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어로구들은 양안지역의 양상에 따라 상사성이 높은 어로구(타제작살류·회전식작살·역T자형조침), 상이 성이 높은 어로구(석거조합형작살·결합식조침), 조성이 다른 어로구(마제석창형작살·골제편기형작살·단식조침)로 분류된다. 각 어로구들을 볼 때 큰 틀에서는 양안지역이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른 부분이 많다. 이는 두 지역에 서 도구에 관한 공통된 인식은 있으나, 도구자체의 직접적인 교환·교역 그리고 전파보다는 정보와 개념의 공유 속에 서 선택적으로 수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영남-서북큐슈 해안지역 어로구의 시간적 양상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 단계에 영남지역은 기본적인 타제 석기 전통에 동해안지역의 영향으로 마제석기류 및 골제작살이 유행한다. 서북큐슈지역은 타제석기류의 어로구만 확 인되고 있어 마찬가지로 타제석기 전통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기 단계는 영남지역에 초기농경의 전파로 인해 생 업다양화가 나타나며, 작살류 및 조침류의 어로구가 동삼동과 욕지도 같은 특정유적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1기 단계 와 달리 마제석창형작살이 사라지게 되고, 기존의 타제석창형작살이 얇아지는 등 어로도구에서 일부 변화가 나타난 다. 서북큐슈지역은 1기 단계에 이어 타제석기류의 어로구가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어로구의 출토범위가 넓 어지며, 1기 단계에는 보이지 않던 석거조합형과 결합식조침, 그리고 영남지역에서는 아직 확실한 예가 없는 단식조침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3기 단계 영남지역은 집단이동성 증가, 취락해체, 도구간략화라는 한반도 남부전체 사회상 에 따라 어로의 양상도 상당히 쇠퇴한다. 하지만 서북큐슈지역은 영남지역과 반대로 어로구가 출토되는 유적의 범위 가 가장 넓으며, 전체 어로구의 수량도 극적인 증가를 나타낸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 석거조합형작살과 서북큐슈 형 결합식조침으로 대표되는 소위 ‘서북큐슈형 어로문화'가 완성된다. 영남-서북큐슈 해안지역은 1기 단계 양안지역이 모두 서로 활발한 교류관계를 보이며, 교류의 루트도 다원적인 것 으로 생각된다. 2기 단계에는 교류의 루트가 단선화되는 양상을 나타내며, 어로가 강화되는 동삼동 및 욕지도와 같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3기 단계는 영남지역에서 큐슈로의 도항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나 큐슈지역에서 영 남지역으로의 도항은 빈번히 일어 나게 된다. 이러한 양상들은 두 지역의 환경적 또는 문화적 상황, 그리고 주변지역 과의 관계 등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전체 문화의 변화상과 연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The trade between Yeongnam and Northwestern Kyushu coastal regions (YNKR) had occurred around the Korea Straits and could be understood as an exchange between fishermen of the two regions in the nature of costal regions. In this study, I examine the trade based on fishing tools in accordance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two regions sharing the common lifestyle and fisheries. The kinds of fishing tools can be divided into harpoons and fish hooks. The harpoons can be divided into stone and bone types depending on raw materials, and stationary and separable types on using method, having subdivisions. The fish hooks can be divided into composite, singular, and opposite T-shaped types. These tools are categorized into three based on the aspect to the two regions: high similarity, high difference, and different composition. The fishing tools from the both regions are similar in broader perspective but they are also very different in details at the same time, as a result of selective acceptance of shared information within common concept as tools, rather than trade and exchange of actual tools. The chronology of YNKR fishing tools has three phases. In the I phase, the Yeongnam region is dominated by ground stone artifacts and bone harpoons by influence of the East Sea region and tradition of common knapped stone artifacts. In terms of Northwestern Kyushu region, only knapped fishing tools has been found for the I phase, so it is assumed that the knapped stone artifacts tradition is popular in that region. In the II phase, the diversification of subsistance is conspicuous related to propagation of the early agriculture in the Yeongnam region, and harpoons and hooks are only found from certain sites such as Dongsam-dong and Yokji-do. Unlike the Iphase, the ground stone spear shaped harpoons disappear, and knapped stone spear shaped harpoons become thinner. When it comes to the Northwestern Kyushu region, knapped stone fishing tools has been continuously used in broaden area. In addition, obsidian module harpoon, composite hook, and singular hook are started to be used. The III phase in Yeongnam region, the aspect of fisheries considerably declines according to the social aspect of south of Korean Peninsula such as increased mobility, demolition of villages, and simplification of tools. On the other hand, Northwestern Kyushu region has the largest range of sites as well as shows a dramatic increase in the number of fishing tools. In addition, so-called ‘Northwestern Kyushu fishing culture' represented by the combination of obsidian module harpoon and composite fish hook is completed. In summary, there is active trade between YNKR, and the routes are multilinear in the I phase. In the II phase, the route becomes unilinear, and it is centered around specific areas such as Dongsam-dong and Yokji-do, which strengthen fisheries. In the III phase, there are few voyages from Yeongnam to Kyushe, while the opposite route is busy. These aspects appear to be related to overall cultural transition, according to the environmental and cultural situation of the two regions, in addition to the relationship with adjacent regions.

        • KCI등재

          원삼국시대 전기 유개대부토기 편년

          안유리 영남고고학회 2020 嶺南考古學 Vol.0 No.86

          Lidded leg jars are brick-clay pottery from the early proto-Three Kingdome of Korea. These artifacts are mainly discovered in the Yeongnam and Midwest regions in Korea. As they are excavated from both regions, these artifacts could be crucial to ascertain the relationship between Youngnam and Midwest regions. Through this essay, three points could be considered. Firstly, the Youngnam and Midwest regions produced totally different types of pottery in the early time. Next, when it goes to VII level, Both regions affected each other and share the pottery form. Lastly, VII and VIII levels are very significant. In early time, both regions had their unique and different pottery types. However, they started to share the shape of the pottery in VII and VIII levels. The early types of each regions originally thought to be exclusive, now they are found in each other area. Normally, it is believed that the early brick-clay pottery does not have leg and lid while the typical type of brick -clay pottery in late proto-Three Kingdome has both of them. Potteries from after VIII level are the late brick-clay pottery. However, these lidded leg jars are from the early time and they already have a lid and leg. According to these, it could assume that the early lidded leg jars has some connection with the late pottery. Hence, the further study will be conducted later. 본고에서는 기원후 1-2세기에 영남과 호서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개대부토기의 편년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대상유물인 유개대부토기는 다양한 기형을 가지고 있으며 영남과 호서지역의 분묘 유적에서 주로 출토된다. 유개대부토기는 형태와 제작 방식을 통하여 분류할 수 있는데, 개와 대부토기는 별도로 분류하였다. 우선 개의 경우는 삿갓형과배형으로 분류하고, 삿갓형개는 다시 접합 방식에 따라 삿갓형Ⅰ류와 삿갓형Ⅱ류로 세분된다. 대부토기는 대각 위에얹어진 토기의 형태로 유개대부배, 유개대부호, 유개대부옹으로 분류된다. 분류된 유개대부토기는 형식학적속성분석법을 통하여 편년할 수 있는데, 이때 유개대부배의 상반부고 속성과 삿갓형개의 드림고 속성, 그리고 대부호의 전체 비율 속성이 시간성 반영에 유효한 속성임을 확인하였다. 분석 결과 유개대부배와 삿갓형Ⅱ류개는 7개의 단계, 삿갓형Ⅰ류와 대부호는 6개의 단계로 형식 조열되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공반되는 와질옹과 주머니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를 중심으로, 철기 유물를 보조적 검증 수단으로 활용하였고, 목관묘 단계와 교차 검토하였다. 유개대부토기의 공반 유물과 기종 간의 공반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순서배열보충법을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유개대부토기의 공반상과 군집, 단계를 확인하였다. 순서배열보충법을 통한 양식편년 결과 유개대부배와 유개대부호는 각각 5기로 확인되었고, 기존 연구의 목관묘 단계를 적용·비교하여 유개대부토기는 총 5기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유개대부토기를 통하여 설정한 1·2기는 Ⅳ·Ⅴ단계로, 1세기 중엽에 해당한다. 이 단계가 되면 영남지역에서 유개대부배가 등장한다. 3기는 Ⅴ·Ⅵ단계로, 1세기 후엽에 해당한다. 호서지역에서 점차 유개대부호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4기는 Ⅵ·Ⅶ단계로, 1세기 후엽 ~ 2세기 전엽에 해당한다. 영남에서 유개대부호와 호서에서 대부배, 전기와질토기가 출토되는 단계이다. 5기는 Ⅶ·Ⅷ단계로, 2세기 전~중엽에 해당한다. 유개대부토기가 점차 소멸하는 단계이자 전기와질토기의 마지막 단계이다. 유개대부토기의 4기에서 언급하였던 양 지역에서 상대지역 유물이 확인되는 현상은 단순한 유물의 이동이 아닌 전파 혹은 교류를 통하여 토기와 철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KCI등재

          영남지역 출토 삼국시대 비취곡옥 연구

          최혜린 영남고고학회 2018 嶺南考古學 Vol.- No.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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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focus on circulation and consumption of jadeite comma-shaped beads in Young-nam area. In the early of the 4C until 5C, the consumption was controlled by Daesung-dong and Bokcheon-dong groups, and It was buried in ruling class and reflect high classes. In the early of the 5C, Geumgwan Gaya had lost the control on surrounding areas, and the circulation spread to the ruling classes of Ham-an and Gyeongju area. In the late of the 5C, the most of consumption was concentrated in Gyeongju area. As phenomenon resulted from a construction of great tombs in Young-nam area, it had appeared in Hapcheon, Goryeong and Changnyeong area. In Gyeongju, the tombs of ruling rank had monopolized the consumption and had established costume system. This costume system was distributed to Gyeongsan area, these areas forged a political relationship. These patterns had continued after the 6C as expanding the influence of Silla on Yeongcheon and Yangsan area. Jadeite commashaped beads are appeared in So Gaya areas while the exchange between Japanese Island is lasting. The circulation had started to surrounding area as expanding the influence of Dae Gaya. The jadeite comma-shaped beads have highly possibility that had flown from Japanese Island. jadeite stone and finished goods had moved to Young nam area and had been produced in the goods. It is also that not only pivotal circulation related to the Kinai(近畿) but also related to the Fukuoka(福岡) and the Hokuriku area(北陸). 본 연구는 4세기대 금관가야 지역, 5세기 이후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영남 전역에 분포하는 비취곡옥의 시·공간적 분포에 주목하여 유통과 소비에 접근하였다. 방법으로서 제작기법의 속성을 추출하여 형식을 설정하고 시·공간성에 따라 분석하였다. 4세기 전반부터 5세기 이전에는 대성동과 복천동집단을 주체로 비취곡옥의 소비가 통제된다. 또한 이 유적의 상위집단에 비취곡옥이 부장되고 계층성이 나타난다. 5세기 전반에는 고구려 남정 이후 금관가야가 주변집단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함안·경주지역의 상위집단을 중심으로 분포가 확대된다. 5세기 후반에는 경주 중심의 유통과 소비가 정점에 달한다. 영남 각지에 고총이 축조되는 현상에 따라 합천·고령·창녕지역에 유통되기 시작한다. 경주의 최상위계층은 대형품을 비롯한 소비를 독점하여 복식품으로 착장함으로서 주변집단에 대한 우월함을 드러낸다. 또한 경산 임당집단은 복식체계를 수용하고 특정 형태를 공유함으로서 경주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한다. 대가야에도 신라와 왜를 통해 비취곡옥이 유입된다. 이는 6세기 이후에도 지속되며 영천·양산에는 신라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분포가 확산된다. 또한 대가야의 세력 확장에 따라 주변지역에 유통이 시작되고 소가야지역도 왜의 교류가 확인되는 시점에 비취곡옥이 유입된다. 한편 영남지역 출토 비취곡옥의 원류에 대하여 일본열도에서 제품 혹은 원석과 제품이 유입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검토한 결과, 제품과 원석이 유입되어 영남지역 내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畿內를 비롯한 福岡·北陸지역을 통한 유통도 추측된다.

        • KCI등재

          동북아시아 雙鳥形 안테나식검의 성격과 의미

          박선미(Sunmi Park), 마크 바잉턴(Mark Byington) 영남고고학회 2012 嶺南考古學 Vol.- No.63

          본고는 남만주, 한반도, 북부 규슈 등 동북아시아에서 발견되는 쌍조형 안테나식검의 지리적 분포 현황과 형식학적 특징을 살펴보고 편년을 시도하였으며, 이들 검이 남만주, 한반도, 규슈에 나타나게 된 배경, 쌍조형 안테나식검의 성격과 의미등을 구명해 보고자 하였다. 본문에서는 검신, 검파, 검파두식이 갖는 속성을 기준으로 하여 雙鳥形안테나식검을 Ⅰ형, Ⅱ형, Ⅲ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세부 속성에 따라 세분하였다. 그리고 앞의 I형과 Ⅱ형이 주로 남만주에 분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남만주계'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Ⅲ형이 영남지구를 중심으로 제작,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이를‘영남계'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명명하였다. 이들 각 형식은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며 제작, 유통되었는데, 기원전 5세기경 처음 吉長地區에 쌍조형 안테나식검이 등장하였고,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형식상의 변화를 보이면서 遼北地區, 평양지구, 스시마-가라쯔지구로 확산되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지구에 처음 출현하였고, 다시 동남부로 이동하여 영남지구를 최종 정착지로 해서 소위 영남계 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주민의 이동 (혹은 이주)과 교역이라는 기제가 모두 작용하였다. 동북아시아의 쌍조형 안테나식검은 외부로부터 교역되었다기 보다는 북방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집단이 토착의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문화를 결합시켜 재창조해낸 것으로 파악하였다. 吉林蛟河洋犁地와 평양 토성동 486호묘 출토품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새로운 발명품은 남만주 지역에서는 부여와, 영남지역에서는 변ㆍ진한 소국과 연결되면서 정치,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동맹이나 제휴를 나타내는 상징품 혹은 위세품으로서 분배, 공유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of diffusion for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 in southern Manchuria,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rn Kyushu, analyzing the distribution of the daggers and swords, classifying them, and establishing a chronology. The authors have classified the daggers into three types-Form I, Form II, and Form III-and, based on three criteria,divided each of these into sub-classifications based on characteristics of the blade, the handle, and the pommel. We refer to Form I and Form II as the “southern Manchurian type of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which are distributed primarily in the Chinese provinces of Liaoning and Jilin. We refer to Form III as the “Yongnam type of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which are distributed and manufactured in the Yongnam region centering on Taegu and Kyongsan. Each form was produced and used in different time periods and in different areas, emerging first in the Jilin-Changcun (吉長地區) region of central Jilin in approximately the fifth century BC, and then, after the third century BC, expanding into the Northern Liao (遼北地區) region, the Pyongyang region, and as far as Tsushima and northern Kyushu (對馬島-唐津地區). The dagger appeared in the Korean peninsula first in the Pyongyang (平壤地區) region, from which it expanded further to the southeast until it developed into the Yongnam type. It is quite possible that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was brought by immigrants from Pyongyang to the Yongnam (嶺南地區) region.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 of northeast Asia is unlikely to have been a trade item imported from outside of the region, but is more likely a local development in which the indigenous cultures that manufactured mandolin-shaped bronze daggers or slender bronze daggers received the influence of bronze cultures of northern Asia. This view is well supported by the daggers found at Yanglidi in Jiaohe County of Jilin and at tomb 486 at Tosong-dong in Pyongyang. This new type of dagger possibly represented a symbol or prestige goods of political or economic alliance within the Puyo polity of southern Manchuria or among the statelets of Pyonhan and Chinhan in the Yongnam region.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 eventually flourished in the Yongnam region, where a local style developed. These daggers diffused in turn to Tsushima in the mid-first century BC by immigration and trade.

        • KCI등재

          동북아시아 雙鳥形 안테나식검의 성격과 의미

          박선미,마크,바잉턴 영남고고학회 2012 嶺南考古學 Vol.- No.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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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of diffusion for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 in southern Manchuria,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rn Kyushu, analyzing the distribution of the daggers and swords, classifying them, and establishing a chronology. The authors have classified the daggers into three types-Form I, Form II, and Form III-and, based on three criteria,divided each of these into sub-classifications based on characteristics of the blade, the handle, and the pommel. We refer to Form I and Form II as the “southern Manchurian type of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which are distributed primarily in the Chinese provinces of Liaoning and Jilin. We refer to Form III as the “Yongnam type of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and swords,”which are distributed and manufactured in the Yongnam region centering on Taegu and Kyongsan. Each form was produced and used in different time periods and in different areas, emerging first in the Jilin-Changcun (吉長地區) region of central Jilin in approximately the fifth century BC, and then, after the third century BC, expanding into the Northern Liao (遼北地區) region, the Pyongyang region, and as far as Tsushima and northern Kyushu (對馬島-唐津地區). The dagger appeared in the Korean peninsula first in the Pyongyang (平壤地區) region, from which it expanded further to the southeast until it developed into the Yongnam type. It is quite possible that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s was brought by immigrants from Pyongyang to the Yongnam (嶺南地區) region.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 of northeast Asia is unlikely to have been a trade item imported from outside of the region, but is more likely a local development in which the indigenous cultures that manufactured mandolin-shaped bronze daggers or slender bronze daggers received the influence of bronze cultures of northern Asia. This view is well supported by the daggers found at Yanglidi in Jiaohe County of Jilin and at tomb 486 at Tosong-dong in Pyongyang. This new type of dagger possibly represented a symbol or prestige goods of political or economic alliance within the Puyo polity of southern Manchuria or among the statelets of Pyonhan and Chinhan in the Yongnam region. The bird-pair-shaped antenna-style dagger eventually flourished in the Yongnam region, where a local style developed. These daggers diffused in turn to Tsushima in the mid-first century BC by immigration and trade. 본고는 남만주, 한반도, 북부 규슈 등 동북아시아에서 발견되는 쌍조형 안테나식검의 지리적 분포 현황과 형식학적 특징을 살펴보고 편년을 시도하였으며, 이들 검이 남만주, 한반도, 규슈에 나타나게 된 배경, 쌍조형 안테나식검의 성격과 의미등을 구명해 보고자 하였다. 본문에서는 검신, 검파, 검파두식이 갖는 속성을 기준으로 하여 雙鳥形안테나식검을 Ⅰ형, Ⅱ형, Ⅲ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세부 속성에 따라 세분하였다. 그리고 앞의 I형과 Ⅱ형이 주로 남만주에 분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남만주계'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Ⅲ형이 영남지구를 중심으로 제작,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이를‘영남계'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명명하였다. 이들 각 형식은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며 제작, 유통되었는데, 기원전 5세기경 처음 吉長地區에 쌍조형 안테나식검이 등장하였고,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형식상의 변화를 보이면서 遼北地區, 평양지구, 스시마-가라쯔지구로 확산되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지구에 처음 출현하였고, 다시 동남부로 이동하여 영남지구를 최종 정착지로 해서 소위 영남계 쌍조형 안테나식검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주민의 이동 (혹은 이주)과 교역이라는 기제가 모두 작용하였다. 동북아시아의 쌍조형 안테나식검은 외부로부터 교역되었다기 보다는 북방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집단이 토착의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문화를 결합시켜 재창조해낸 것으로 파악하였다. 吉林蛟河洋犁地와 평양 토성동 486호묘 출토품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새로운 발명품은 남만주 지역에서는 부여와, 영남지역에서는 변·진한 소국과 연결되면서 정치,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동맹이나 제휴를 나타내는 상징품 혹은 위세품으로서 분배, 공유되었다.

        • KCI등재

          영남지역 묘역지석묘 축조사회의 전개

          우명하 영남고고학회 2016 嶺南考古學 Vol.- No.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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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forms and chronologies of dolmens in the graveyards of Yeongnam with a focus on the graveyard facilities and examine the relations and changes of the groups that built dolmens in the graveyards of Yeongnam. The findings offer critical information about the changing aspects of Bronze Age from the middle stage to the late one as well as the appearance and development of dolmens in the graveyards. In the latter half of early stage of Bronze Age, they used both Jugu and stone material boundaries for dolmens in the graveyards and underwent a shift from the old dolmens with vertical landscape to the new ones with horizontal landscape. In the former half of middle stage, they used both Jugu and stone material boundaries for dolmens in the graveyards with diverse forms and structures confirmed in the graveyards that used stone materials. The latter half of middle stage witnessed the increasingly massive size of dolmens in the graveyards accompanied by the graveyards characterized by the combination of Jugu and stone material boundaries. The dolmens in the graveyards and the locality of red polished pottery buried in them confirmed the network of local groups. The late stage of Bronze Age was graveyards with no tombs or altar graveyards were built along with dolmens in the graveyards in the previous years, but it was in the late stage that they became the facilities to replace dolmens in the graveyards for the common ceremonial rites of local groups. The construction of dolmens in the graveyards was active, the society placed importance on the solidarity of local groups, which had the medium of common ceremonies. Based on the findings, it was estimated that the society that built dolmens in the graveyards of Yeongnam during Bronze Age was in a horizontal hierarchy around the head that supervised memorial services. 이 글에서는 영남지역 묘역지석묘의 묘역시설에 중점을 두어 형식과 편년을 확인하고, 영남지역 묘역지석묘 축조집단의 관계와 변화를 파악해 보았다. 그 결과, 묘역지석묘의 등장과 전개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중기와 후기의 사회변화상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영남지역의 묘역지석묘는 주구를 굴착한 묘역, 석재를 사용한 묘역, 주구와 석재를 같이 사용한 묘역이 축조되었다. 묘역의 세부 속성은 경계구조와 채움구조의 구조적 속성과 평면형태와 크기의 형태적 속성이 파악되었다. 형식분류를 통해 청동기시대 전기후반-중기전반-중기후반-후기로의 변화과정과 경북내륙, 경남내륙, 경남해안, 영남동해안의 지역적 특징을 함께 확인하였다. 청동기시대 전기후반의 묘역지석묘는 주구경계와 석재경계 모두 사용하였고, 종래에 축조되었던 수직적 경관의 지석묘에서 수평적 경관의 묘역지석묘로 변화하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전반의 묘역지석묘는 주구경계와 석재경계가 모두 사용되며, 특히 석재를 사용한 묘역에서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 중기후반의 묘역지석묘는 규모가 거대해지고, 주구와 석재경계를 혼합한 묘역시설을 동반하였다. 또한 묘역지석묘와 부장유물인 적색마연토기의 지역성을 통해 지역집단간의 네트워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 후기는 묘역지석묘와 함께 무덤이 없는 묘역, 즉 제단묘역이 확인된다. 이전 시기에 이미 제단묘역이 축조되었으나 후기에는 지역집단의 공동의례행위를 위해 묘역지석묘를 대체하는 시설이 되었다. 묘역지석묘를 활발히 축조했던 청동기시대 중기사회는 지역집단의 상호결속을 중요하게 여긴 사회였고, 집단의 결속은 공동의례를 매개체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영남지역에서 묘역지석묘를 가장 적극적으로 축조한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의 사회는 제사를 관장하는 수장을 중심으로 수평적 위계화가 이루어졌던 사회로 해석된다.

        • KCI등재후보

          蔚山地域 靑銅器時代 聚落의 立地에 대한 檢討-生業과 關聯하여-

          김도헌,李在熙 영남고고학회 2004 嶺南考古學 Vol.- No.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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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를 분석하여 입지 유형에 따른 생업형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이다. 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는 구릉지가 대부분인데, 미지형에 따라 구릉능선형과 구릉사면형으로 구분된다. 능선형과 사면형 취락은 생업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동일하지만 생업형태의 차이로 인해 입지의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자는 전작 중심의 농경이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수도작과 전작이 결합된 형태의 농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수도작의 도입은 가경지 면적의 확대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생업에서 농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농경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락의 규모 확대와 존속 기간이 길어지게 되는 사회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남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취락의 존속 기간은 짧은 편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울산지역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가경지가 제한적인 것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KCI등재

          신라·가야의 경계로서 경주와 부산

          김두철 영남고고학회 2014 嶺南考古學 Vol.- No.70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e relationship of Silla and Gaya before the demise of Gaya was not always fixed or a complementary set between the two. The political system of Silla to Gaya was ogranic according to period and growth. It developedspatially and was fluid. Because it is historically seen as a relationship character of mutually oppositional paritythat centred on the world-view of the victor of Saro-Silla, I intend to explain the perspective of ‘Silla-not Silla'in the growth process of Silla. From the explanation of this from the framework of archaeological interpretation,I address the dichotomy of traditional Gaya and Silla pottery style theory, the theory of prestige artifacts and thewearing of ornaments or horse tack as an advance guard to join in on recent perspectives on new understandingsof the indigenous funerary rituals of the wooden chamber tombs of Gyeongju that are covered by stone andearthen mounds. From these perspectives, it is necessary to write this article to clearly elucidate my critical position on all ofthe arguments of interpretation that have been organized. Thus I start by putting forward critical points on problemsabout models of pottery style and prestige goods. I reinterpret he circumstances of the aftermath of the dismantlingof early Gaya through funerary methods that led to changes to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lateGaya and the large-scale mounded tombs of the Yeongnam region. Gyeongju was the clearly the central positionof Yeongnam in the period of the establishment of late Gaya, and this process of growth can be understoodthrough the division of Gyeongju (Silla) pottery cultural style into early, middle, and late. This is linked to thetransitional process of social development of Silla with Gyeongju at the centre. It is through these points that Iconsider and understand the concept of the large-scale mounded tombs as related to Gaya. The rise and declineof large-scale mounded tombs and the process of the spread of the late Silla pottery style is estimated to a goodcriterion of the role of the border between Silla and Gaya. From the perspective of these interpretations, and also for the purpose of describing the real process of thegrowth of Gyeongju, the rise and decline of Busan for the grooming of Gyeongju is a good example of a suppor tfor the role it's growth. Busan was an axis of early Gaya and in comparison with the centre of Gyeongju in theperiod of the establishment of large-scale mounded tombs, the strength of one region fell and the perspective ofthe lesser maintenance of existence in the building of the large-scale mounded tombs of the Yeonsan-dong sitewas halted as it was completely incorporated by Silla. One viewpoint is that Busan went from being a strength of Gaya to that of Silla. These are the essentials of the points that I make in this article about theory of interpretations. 가야의 멸망 이전 삼국시대 영남지역에 있었던 신라와 가야는 항상 고착되었다거나 서로 여집합인 관계도 아니었다. 신라와 가야로 불린 정치체는 유기체와 같이 시간에 따라 성장, 발전하였고 공간적으로도 유동성이 있었다. 이들을 서로 대립적 관계의 대등한 성격으로 파악한 것은 역사의 승자로 남은 斯盧-新羅 중심의 세계관, 즉 신라와 非新羅(가야)의 관점에 서서 신라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고고학의 해석 틀로서는 종래 가야토기와 신라토기로 이분한 토기양식론, 착장형 장신구나마구 등을 이용한 위세품론이 첨병의 역할을 하였고 최근에는 경주 고유 묘제인 적석목곽묘에 대한 새로운 이해 관점들도 여기에 가세해왔다. 이러한 관점에 줄곧 비판적이었던 필자는 그간의 논고를 정리한 해석적인 입장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어 본고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먼저 토기양식론, 위세품론에 대한 문제 지적과 비판 견해를 제시하였다. 나아가 장법을 통해서 전기가야의 해체 이후,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후기가야가 성립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고총고분 성립기의 영남지역 정세를 재해석하였다. 후기가야성립기의 경주는 영남에서 중심으로 확실히 입지하였으며, 그 성장과정은 전·중·후기로 나눈 경주(신라)양식의 토기문화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사회발전과정과도 연동한다. 이를 가야와의 관련을 고려하여 ‘高塚古墳時代'라는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가야지역 고총고분의 성쇠와 신라후기양식 토기의 확산과정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를 가늠하는 유효한잣대로서 역할한다. 이러한 해석 관점에서, 또한 실제적인 경주의 성장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주 성장에 큰 지주 역할을 했던 부산의 성쇠를 경주와대비시킴으로써 예시코자 하였다. 전기가야 중심의 한 축이었던 부산은 고총고분 성립기에 중심인 경주에 비해 한 지역 세력으로 전락하며 그나마 유지되던 명맥은 연산동유적에서 고총고분의 축조가 중단되는 시점에서 완전 신라에 편입되었다. 부산이 가야의 한세력에서 신라가 된 시점이다. 이상이 본고에서 제시한 해석론의 요점이다.

        • KCI등재

          한반도 남부 청동기~원삼국시대 수장의 권력 기반과 그 변천

          이희준 영남고고학회 2011 嶺南考古學 Vol.- No.58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한반도 남부 청동기~원삼국시대 사회 진화는 각 시기 수장의 권력 기반 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으니 이는 각 시기 무덤 출토 유물의 성격을 분석해서 해당 시기 수장의 권력 기반이 이념, 경제, 무력이라는 세 부문 중 어떤 부문들로 구성되었고 또 그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추적하는 작업이다. 청동기시대 지석묘의 마제석검이나 비파형동검은 정치적 지위를 상징하는 기물로서 당시 수장의리더십 기반이 이념으로 한정되었음을 일러준다. 초기철기시대 호서·호남 지방 Ⅰ단계 무덤들에는세형동검과 다뉴경에 이형동기 등이, Ⅱ단계 무덤에는 이형동기 대신 청동방울류 외에 동사 등이 부장된다. Ⅰ단계 청동기들은 수장의 정치적 지위를 상징하면서 대외 연계망 관할 능력을 뜻하기에 새로운 이념 기반 이외에 경제 기반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Ⅱ단계의 청동방울은 수장의 종교직능자 성격을 명확히 말해주기에 앞 시기보다 이념 기반이 좀 더 강화되었음을 암시하며동사 등은 대외 교역에서의 문자사용을 시사하기에 경제 기반의 강화를 뜻한다. Ⅲ단계에서는 청동기외에 철기가 부장되므로 경제 기반은 한층 굳건해졌으며 그와 더불어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므로 이제수장을 중심으로 한 동족 지배 집단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Ⅳ단계는 과도기이다. 원삼국시대 영남 지방 서기전 1세기 목관묘(Ⅰ) 단계의 전한경 외 각종 청동기와 풍부한 철기는 수장권의 이념 기반 이외에 경제 기반이 전대보다 강화되었음을 말해주나 무력 기반은 다음 서기 1세기(Ⅱ) 단계 목관묘에 다량 부장되기 시작하는 철촉으로 본격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에는 판상철부가 다량 부장되어 경제 기반이 한층 강화되었음을 일러준다. 마지막 서기 2세기 중엽~3세기 초(Ⅲ) 단계의 목곽묘에 다량 부장된 철촉과 철모는 무력 기반의 확립을, 쇠스랑 등 중요 기경구는 경제 기반의 확립을 뜻하니 이제 수장의 권력 기반이 완비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approach the evolution of ancient polities in southern Korean peninsula from the Bronze Age to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by analysing and interpreting meanings of artifacts from representative tombs of each period with a view to understand which kinds of three power bases, i.e. ideology, economy and military force of chieftains existed during each period and how they had been transformed in the course of time. The polished stone-daggers and bronze daggers from the Bronze Age megalithic tombs are symbols of political status as a leader pointing to the fact that the power base of this age chieftains was confined to ideology. Bronze daggers, mirrors and idiosyncratic implements of the first stage in the Early Iron Age tells us the consolidation of ideological power base of chieftains as shamans and the existence of the incipient economic power base as evidenced by the network-oriented nature of various bronze artifacts. The second stage saw the strengthening both of ideological base in the use of more concrete shamanic tools like characteristic bells and of economic base in the first possible use of letters for long distance exchange activities as evidenced by the existence of bronze tools for working wood for caligraphy. The first appearance of iron implements and clustering of tombs at the third stage suggests the chieftains' strengthened economic power base and the formation of ruling elite lineages. The first stage in the 1st century BC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began with interment of chinese bronze mirrors and a plenty of iron implements for agriculture and manufacture in tombs and this is interpreted as pronouncing the establishment of economic power base and the ideological secularization of the ruling elite. The second stage in the 1st century AD saw the appearance of the first concrete evidence for military power base in the accompaniment of rich iron arrowheads in tombs together with a multitude of the flat iron axes which is a telltale evidence of strong economic power base. With the beginning of the third stage in the mid-2nd century AD together with double coffin tombs, the evolution of chieftains' power bases reaches a peak as the military force base is evidently established with a sudden increase of iron weapons like spearheads and arrowheads.

        • KCI등재

          蔚山地域 靑銅器時代 聚落의 立地에 대한 檢討 : 生業과 關聯하여

          金度憲,李在熙 영남고고학회 2004 嶺南考古學 Vol.- No.35

          In this paper, we explore the occupation form in accordance with the location type is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settlement-location of the Bronze-Age in Ulsan. The settlement-locations of the Bronze-Age in Ulsan are mostly hill areas and they are divided into the hill-ridge type and the hillslope type. Occupation elements, regardless of type, were same, but occupation forms were different. The agriculture of hill-ridge type was run on a dry-field farming, while was run on dry-field and wetfield farming in hill-slope type. The rate of agriculture in occupation was increased by the arableland enlargement which was happened by the induction of wet-field farming. And the size of settlement was enlarged and the continuance of settlement was extended by the rate enlargement of agriculture. 본고는 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를 분석하여 입지 유형에 따른 생업형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이다. 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는 구릉지가 대부분인데, 미지형에 따라 구릉능선형과 구릉사면형으로 구분된다. 능선형과 사면형 취락은 생업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동일하지만 생업형태의 차이로 인해 입지의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자는 전작 중심의 농경이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수도작과 전작이 결합된 형태의 농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수도작의 도입은 가경지 면적의 확대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생업에서 농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농경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락의 규모 확대와 존속 기간이 길어지게 되는 사회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영남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취락의 존속 기간은 짧은 편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울산지역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가경지가 제한적인 것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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