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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 "국어"의 언어적 근대는 기획된 것인가 -김병문, 『언어적 근대의 기획: 주시경과 그의 시대』 (소명출판, 2013) -

        이병기 ( Byeong Gi Lee ) 한림과학원 2014 개념과 소통 Vol.0 No.14

        『언어적 근대의 기획:주시경과 그의 시대』는 주시경의 ‘국어’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근대적 기획을 설명한 저술로 언어적 측면에서 국어의 근대를 접근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시경이 국어를 추상적으로 대상화하였다는 점, 국어를 사용하는 균질적이고 평등한 주체를 형성하였다는 점, 그리고 추상적인 국어의 실체를 보여 주는 개념들을 형성하였다는 점 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모두 근대언어학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언어학의 면모는 추상화, 균질화, 평등의 측면에서 정치적·사회적으로 근대적인 특성을 가진다. 『언어적 근대의 기획』에서 설명한 대로 주시경의 시대에 국어가 근대적 면모를 가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고 “근대적 국어가 주시경시대에 탄생한 것인가, 기획된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한국어’를 나타내는 ‘국어’라는 기호는 중세에도 사용되었고 18세기를 전후하여 실학자들의 자국어 및 문자에 대한 연구에서 민족의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사역원에서 간행한 여러 외국어 학습서는 우리말과 중국, 일본, 몽고, 만주 등의 언어를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 근대의 기획』에서 근대의 특징으로 강조한 언어에 대한 대상화 역시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시경시대 이전 빠르면 중세시대에 이미 국어의 근대적면모는 발견된다고 할 수 있으면 주시경시대에 ‘근대적 국어’가 탄생하거나 기획된 것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 주시경의 국어 관련 여러 연구 및 활동이 ‘근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언어적 근대의 기획』의 응답을 추측해 보자면, 주시경이전 시기에 존재한 국어의 근대적 면모는 주시경시대의 그것과 질적으로 큰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주시경 당시 최광옥·유길준·김규식 등의 국어 문법서가 주시경의 문법서에서 사용한 용어와 체제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외형상의 유사성을 보일 뿐이고, 주시경의 저술에서는 ‘문장/ 짬듬’의 차원을 염두에 두고 ‘주체의 균질화’라는 측면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 데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국어 개념과 근대의 국어 개념에서 보이는 차이가 질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탐구는 세부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더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The Linguistic Project of Modernity:Ju Si-gyeong and his Times, explores the modern understanding of ‘ gugeo’ (國語:national language, the Korean language) and the linguistic project of modernity, by approaching the modernity of ‘ gugeo’ from a linguistic perspective. The book emphasizes the modern aspects of linguistics that Ju Si-gyeong advocated;he took ‘ gugeo’ as an abstract object and postulated an equal and homogeneous subject who uses it, and he also introduced some concepts showing the actual material expression of this abstract ‘ gugeo’. These aspects have some modern political and social characteristics:abstraction, homogenization, and equality. Aside from these modern aspects of ‘ gugeo’, the book raises the question of “whether the modern ‘ gugeo’ was born or invented in Ju Si-gyeong’ s time, or had existed traditionally”. Indeed, the word ‘ gugeo’ was used to refer to the Korean language in the medieval times, and we can identify a national consciousness of langue in the Silhak (實學·practical science) movement, with scholars studying the national language and literature around the 18th century. It can be also said that the objectification of language, which is emphasized as a modern characteristics in The Linguistic Project of Modernity, was realized in an earlier period. For example, several foreign language study books were published by Sayeokwon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foreign language services) which compared the Korean language with others, including Chinese, Japanese, Mongolian and Manchu. Thus, at least some of the modern aspects of ‘ gugeo’ had already appeared prior to Ju Si-gyeong’s work, even in medieval times, undermining some of his claims to ‘modernity’. The author’s response to this question may be that the modern aspects of ‘ gugeo’ which Ju Si-gyeong’s recognized were qualitatively different from those of earlier eras. More specifically, it might be objected that, although several grammar books by other writers seemingly share Ju Si-gyeong’s terminology and system, this similarity is actually only superficial, and that Ju Si-gyeong applied a very distinct perspective concerned with ‘the homogenization of the subject’ which takes account of ‘the sentence dimension’. Further research is necessary to determine whether there is really a qualitative difference between the traditional and modern concepts of ‘ gugeo’.

      • KCI등재후보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주시경의 삶과 학문의 세계

        백낙천 ( Nak Cheon Bae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9 No.-

        1873년 대원군의 실권(失權) 후, 이른바 운양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76년 조선은 개항을 요구하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에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었으며 국내 정치 상황은 개화 세력과 수구 세력이 맞서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었고, 조선의 국운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치달아 국권이 흔들리고 민족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914년 선생의 나이 불과 39세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을 국어 연구와 민족어 보급 및 계몽에 힘을 썼던 학자였다. 주시경은 일찍이 민족의 계몽을 위해 신학문을 배웠는데, 당시는 국어학 연구가 서양의 문법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기술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주시경은 분명한 언어 의식과 독창적인 이론을 토대로 국어 문법을 기술한 독보적인 학자였으며, 지금도 국어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더욱이 주시경이 제시한 문법 체계가 현대 국어 문법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주시경은 그 자체가 국어 연구의 시작점이며 국어 문법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은 1894년인 19세의 나이에 큰 뜻을 품고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1900년인 25세의 나이에 배재학당을 졸업하였는데, 배재학당 재학 5년 동안, 그는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언어의 특징과 공통성을 깨우치고 언어학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국어 문법의 기틀을 세워나갔다. 주시경은 배재학당을 졸업한 1900년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였는데,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정규의 교과목으로 국어문법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또한, 국어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주시경의 학문은 크게 보아 문자론과 맞춤법, 음성학과 문법론, 사전 편찬의 노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시경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대한국어문법>(1906), <國語文典音學>(1908), <國語文法>(1910), <말의소리>(1914)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주시경은 구한말 민족의 언어와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쓴 애국 계몽운동가요 국어학자이다. 주시경의 나라 사랑과 국어 사랑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에 마땅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후세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an attempt to revalue life and outlook on the linguistic study of Ju, Si-Gyeong, and he was the initiator and leader of the standardization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orthography systems. Also His original ideas set out in his various works have not been fully evaluated by his followers. His linguistic theory interested in phonology, morphology and syntax. However, He is most impressive in his scholarly attainments is his creative efforts to set up his own phonological and theories. Ju, Si-Gyeong was the scholar who established a certain theoretical system about the Korean grammar in the earliest period. His linguistic study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linguistic theory or description on the comtemporary Korean grammar, and his theory has still become the subject for examination from various points of view.

      • KCI등재

        주시경(周時經)의 음학(音學)-산제본(刪除本) 『말』을 중심으로-

        정승철 ( Jung Seung-chul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03 어문연구(語文硏究) Vol.31 No.2

        이 논문은 周時經의 문법서 말 (1906~1907)을 중심으로 周時經 音學에 드러난 근대 언어학적 인식 양상과 그 특징을 살피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周時經 音學의 이론적 진전 과정을 고려하면서 말 에 나타난 音學的 서술로부터 周時經 音學의 대강을 기술하였다. 周時經은 음운론적 교체 현상을 元素的인 단위에 의해 분해하면서 기술하는 分析的 音學을 전개하였다. 이로부터 周時經은 규칙적 교체를 따르는 음운 현상과 불규칙적 교체를 따르는 음운 현상을 구별하여 기술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규칙적인 교체가 보이는 일반성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周時經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일반성을 밝히는 音學, 다시 말해 일반적 교체 방식을 따르는 本音의 音學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周時經이 本音을 표기의 기준으로 삼는 형태음소적 표기법의 타당성을 주장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This study aims to revaluate Ju, Si-gyeong(1876~1914)'s phonological theory by scrutinizing the cognitive aspects of his phonology implied in his grammar Mal(that is, The Speech), written between 1906~1907. The main points of this paper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 Ju, Si-gyeong discovered the phonologically conditioned alternations in Korean by examining phonological environments thoroughly. He also developed the analytic phonological theory, which posited ‘elements’ and explained all other sounds as ‘complexes of those elements’. Futhermore the ultimate aim of his phonological research was to discover the generality of phonology. Therefore the aim led him to be interested in regular alternations with the generality, which were covered by a general statement.

      • KCI등재

        周時經 『대한국어문법』 異本과 그 成立過程

        이현희,Kawasaki Keigo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6 No.-

        周時經의 초기 저작으로 알려진 『대한국어문법』(1906)은 오랫동안 六堂文庫本만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國立中央圖書館 소장의 필사본(청구기호: 古316-1)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本稿는 먼저 이를 소개하여 두 가지 異本들의 차이점이나 수정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성립과정을 밝혀, 나아가 『대한국어문법』 자체의 성립과정이나 周時經의 연구상 발전과정 등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정리한다. 國立中央圖書館本은 주시경 이외의 누군가가 六堂文庫本과 같은 판본의 책(A⁰本)을 보면서 베낀 필사본이며, 六堂文庫本 성립과정의 한 단계를 비교적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六堂文庫本에서 삭제․수정된 내용을 復元하고 그 내용적 변개에 대하여 고찰하거나, 六堂文庫本에 보이는 수정들을 A⁰版 이전의 수정(수정Ⅰ)과 이후의 수정(수정Ⅱ)으로 크게 나누어서 단계적 수정양상을 고찰하였다. 또한 國立中央圖書館本의 필사자는, 적어도 필사 시작 시점에서는 단순히 『대한국어문법』의 구체적 내용에 낯설었을뿐더러, 이 책의 “표기법” 자체가 주시경의 많은 고민이 담긴, 주시경 문법의 실천적인 “보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으며, 그만큼 周時經의 한글 및 국어 연구에서 먼 곳에 있었던 ‘일개의 일반 독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 시기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나 『대한국어문법』의 집필․출판과 거의 동시대였을 것으로 보이며, 만약에 그렇다면 國立中央圖書館本은 ‘그 당시 사람들의 표기법에 관한 인식’이나 ‘그들과 周時經 사이의 거리감’, ‘『대한국어문법』이 어떻게 읽혔는지’ 등, 『대한국어문법』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지닐 가능성이 있다. 國立中央圖書館本은 周時經과 『대한국어문법』에 대해, 이처럼 재조명해 주고 있다.

      • KCI등재

        주시경의 삶과 학문의 세계

        백낙천 한국사상문화학회 2013 韓國思想과 文化 Vol.69 No.-

        The aim of this paper is an attempt to revalue life and outlook on the linguistic study of Ju, Si-Gyeong, and he was the initiator and leader of the standardization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orthography systems. Also His original ideas set out in his various works have not been fully evaluated by his followers. His linguistic theory interested in phonology, morphology and syntax. However, He is most impressive in his scholarly attainments is his creative efforts to set up his own phonological and theories. Ju, Si-Gyeong was the scholar who established a certain theoretical system about the Korean grammar in the earliest period. His linguistic study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linguistic theory or description on the comtemporary Korean grammar, and his theory has still become the subject for examination from various points of view. 1873년 대원군의 실권(失權) 후, 이른바 운양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1876년 조선은 개항을 요구하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에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었으며 국내 정치 상황은 개화 세력과 수구 세력이 맞서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었고, 조선의 국운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치달아 국권이 흔들리고 민족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914년 선생의 나이 불과 39세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을 국어 연구와 민족어 보급 및 계몽에 힘을 썼던 학자였다. 주시경은 일찍이 민족의 계몽을 위해 신학문을 배웠는데, 당시는 국어학 연구가 서양의 문법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기술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주시경은 분명한 언어 의식과 독창적인 이론을 토대로 국어 문법을 기술한 독보적인 학자였으며, 지금도 국어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더욱이 주시경이 제시한 문법 체계가 현대 국어 문법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주시경은 그 자체가 국어 연구의 시작점이며 국어 문법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시경은 1894년인 19세의 나이에 큰 뜻을 품고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1900년인 25세의 나이에 배재학당을 졸업하였는데, 배재학당 재학 5년 동안, 그는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언어의 특징과 공통성을 깨우치고 언어학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국어 문법의 기틀을 세워나갔다. 주시경은 배재학당을 졸업한 1900년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였는데,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정규의 교과목으로 국어문법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또한, 국어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주시경의 학문은 크게 보아 문자론과 맞춤법, 음성학과 문법론, 사전 편찬의 노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시경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대한국어문법>(1906), <國語文典音學>(1908), <國語文法>(1910), <말의소리>(1914)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주시경은 구한말 민족의 언어와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쓴 애국 계몽운동가요 국어학자이다. 주시경의 나라 사랑과 국어 사랑의 열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에 마땅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후세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 KCI등재

        현대 국어학 연구 맹아기의 지석영과 주시경의 표기·음운·문자 연구의 맥락

        이준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8 No.-

        이 글은 현대 국어학 연구 맹아기에 이루어진 국어의 표기와 음운과 문자에 관한 논의를 지석영과 주시경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자음, 모음, 운소, 문자에 관한 고찰을 통하여 그간 주시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지석영의 연구에 관심을 두어 살피고 이로써 지석영과 주시경이 보인 표기와 음운과 문자에 관한 논의를 비교하여 그 흐름과 성격을 이해해 보려 하였다. 자음이나 모음에 관해서는 주시경에서 ‘자음’, ‘모음’이란 용어가 사용되어 있으나 조음 음성학적인 면에서의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음절의 구성 요소의 의미로 정의가 되어 있다. 자음은 조음 방법 면에서 청탁으로써 소리의 분류와 기술이 이루어졌다. 주시경은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였는데 탁음을 하나의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정의하여 비록 성운학에 온 청탁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개념은 차이를 보임이 눈에 띈다. 모음에서는 합음이란 말을 써서 ‘ㅑ, ㅕ’, ‘ㅐ, ㅔ’, ‘ㅣㅡ의 합음인 ㆍ’ 등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소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문자 사용과 관련한 표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결과 이중 모음에서 반모음을 분석하지 못하고 ‘ㅑ, ㅕ’를 ‘ㅣㅏ, ㅣㅓ의 합음’과 같이 보게 되었다. ‘ㆍ’를 ‘ㅣㅡ의 합음’으로 본 것은 화음, 국어의 표기 양상을 두루 고려한 것이나 실제 결론은 ‘ㅑ, ㅕ, ㅛ, ㅠ’와의 관계가 중시된 결과이다. 운소와 관련해서는 지석영이 강조한 높낮이, 장단에 관한 것이 주시경에도 잘 수용되어 주시경은 강약까지 더한 운소에 관한 연구로 이어 갔다. 문자의 사용에서는 국어 표기에는 불필요한 ‘ㆁ, ㆆ, ㅿ, ◊’ 등에 대해서 지석영은 민간 행용 부적당으로 판단하고 있는 반면에 주시경은 그 소리는 있으니 아니 쓸 수가 없다와 같이 기술하여 이 문자들의 정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의 논의 내용 및 논의 방법을 보면 지석영과 주시경 모두 전통적으로 표기, 음운, 문자를 연구하는 틀에 바탕을 두고 연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주시경의 학문 활동과 신학문의 영향

        백낙천(Baek, Nak-Cheon)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동서인문학 Vol.0 No.50

        20세기 초 국어 연구가 서양 문법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기술되던 시기에 주시경은 분명한 언어 의식과 독창적인 이론을 토대로 국어 문법을 기술한 학자로서 지금도 국어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주시경은 1892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할 뜻을 세웠으며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학문에 매진하였다. 특히 배재학당 재학 동안 영문법을 공부하면서 세계 언어의 특징과 공통성을 깨우치고 일반 언어학의 이론을 정립하면서 국어 문법의 기틀을 세웠다. 이렇듯, 주시경의 학문적 배경 형성에는 당시 신학문의 요람 역할을 하였던 배재학당에서의 수학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때 터득한 영문법과 세계 언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주시경의 학문 세계는 크게 보아 문자론과 맞춤법, 음성학과 문법론, 사전 편찬에 대한 관심으로 전개되었다. 주시경은 언어와 국가를 동일시하여 우리말을 민족 자주정신과 나라의 바탕으로 삼았으며 평생을 나라 사랑의 일념으로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썼던 민족적 국어관을 가진 선각자였다. The aim of this paper is an attempt to revalue influence of modern sciences and outlook on the linguistic study of Ju, Si-Gyeong. Ju, Si-Gyeong was the initiator and leader of the standardization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orthography systems. Also His linguistic theory interested in phonology, morphology and syntax. Ju, Si-Gyeong was the scholar who established a certain theoretical system about the Korean grammar in the earliest period. And His linguistic study is related to study in the Pai Chai school. and His grammar theory has still become the subject for examination from various points of view.

      • 배재학당과 주시경

        백낙천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교육연구소 2016 대학교양교육연구 Vol.1 No.1

        본고는 19세말에서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배재학당 창학의 의미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펴보고 역사 속 배재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함을 주시경 선생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일제가 자행한 우리말과 우리글의 말살과 민족의 저항에 있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일제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진 조선교육령의 정체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말과 우리글을 통해 민족혼을 살리려는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민족의 선각자들 덕분에 일제 치하에서도 민족어를 정립시키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말과 우리글의 운명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한글 보급 운동을 통한 민족성 고취와 문맹 퇴치가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근대교육과 학교 제도의 설립의 과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배재학당의 역사적 의의를 언급하고 배재학당 출신 인물인 주시경 선생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시경 선생은 국어의 개념을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국어를 연구한 유일한 학자였고 선생의 연구에서 언어적 근대의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주시경 선생의 이러한 국어관 형성이 배재학당에서의 수학 시절과 결코 문관하지 않다는 점을 밝혔다. This study aimed to describe features and value about the PaiChai School and Ju, Si-Gyeong. PaiChai School was representation of modern education in enlightenment season, and Ju, Si-Gyeong was the initiator and leader of the standardization movement of the Korean language and orthography systems. Ju, Si-Gyeong graduated in PaiChai School. Also His original ideas and various works set out in PaiChai School. Ju, Si-Gyeong was made most impressive in his scholarly attainments is his creative efforts was completed in PaiChai School. Ju, Si-Gyeong was the scholar who established a certain theoretical system about the Korean grammar in the PaiChai School learning period. This is a PaiChai`s pride in nowadays.

      • KCI등재

        20세기 초 전후 글쓰기 방식의 변화와 주시경 國語文法 (1910)의 문체 연구 이 논문은 20세기 한국어와 21세기 한국어의 변화를 살피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2020년 부산대학교 신임교수연구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20C 한국어와 21C 한국어의 변화를 살피기

        서민정(Min-jeong Seo) 우리말학회 2023 우리말연구 Vol.72 No.-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기존의 한문체를 포함하여 국한문체와 현토체, 그리고 국문체(한글체) 등 1930년대 어문규정에 따른 문체 이른바 언문일치체로 확립되기 전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시도되던 시기였다. 신문, 잡지,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그러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은 ‘하나’의 텍스트 내에서는 국한문체이든 국문체이든 동일한 글쓰기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주시경의 『國語文法』(1910)은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國語文法』(1910)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주시경의 한문, 영어 등의 다른 언어를 접한 경험이나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國語文法』(1910)에 대해서는 국어학사적 관점에서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글쓰기 방식, 즉 ‘문체’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주시경의 『國語文法』(1910)의 ‘문체’에 주목하여 이를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글쓰기 실험과 주시경의 학문적 배경 등과 관련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 KCI등재

        주시경의 국어 음운 현상 연구에 대하여

        김영선 동남어문학회 2016 동남어문논집 Vol.1 No.41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valuate a phonological value about phonological phenomena of Korea language to be studied by Ju Si-Kyung. In order to this purpose, we observed some books related to Korean language's phonological phenomena he wrote. He proposed '상접변(相接變)' a concept of phonological phenomena. It implies at least '홀소리와 닷소리의 잇는일', '잇어박구임', and '익음소리'. Then '익음소리' are a set of phenomena with different characteristics contrast to '잇는일' and '잇어박구임'. These are phenomenon with phonological and morphological constraints, and have private dialects and local dialects. Sometimes it can be explained by historical phenomena. But some samples in '익음소리' can be treated samples of '잇어박구임', in that they have similar phonological characteristics with '잇어박구임'. Therefore, to divide phonological phenomena of Korean language to '잇어박구임' and '익은소리' is not appropriate basically. At this point, to distinguishes '잇는일' and '잇어박구임' can not be reasonably. Because when two consonants are continuous, '잇는일' may cause a sound change. His claims on the phonological phenomena of Korean language are enough to recall concepts associated with an underlying form, a surface form, and a phonological rule. And a underlying form, a surface form, and a phonological rule are a very important concepts in contemporary phonological theory. 이 글의 목적은 주시경의 음운 현상 관련 논의를 발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개화기 국어 음운 분야 연구의 단면을 평가하는 데 있다. 개화기 당시의 국어에 대한 논의는 1900년대를 전후하여 선교와 식민지 통치를 위한 현실적 목적을 가진 외국인 연구자들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들은 그들의 문법으로 국어를 기술하였으며 그들의 관점에서 국어를 새롭게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이와 달리 1905년 이후 주시경의 일련의 논의는 학문적인 목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국어 연구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05년 『國文文法』의 ‘상접변’이라는 용어는 이후 ‘접변’으로 바뀌면서 다시 ‘잇는일’과 ‘박구임’, 그리고 ‘익은소리’ 등으로 세분화하였다. 각각의 범주에 포함되는 현상들은 현상으로서의 정당성을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통시성과 공시성의 문제, 기저 어간 설정 문제, 기저형의 재구조화 문제, 불규칙 용언의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 방언형과 지역 방언형까지도 모두 음운 현상으로 처리하였다는 점에서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가 기술하였던 음운 현상과 이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처리하고자 하였던 노력은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는 주시경(1905)에서부터 주시경(1914)에 이르는, 국어의 음운 현상을 다룬 핵심적인 저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그의 국어 음운 분야 연구의 선구적인 업적을 기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주시경(1905) 이전과 이후의 국어 음운 현상에 대한 사적 논의를 보다 풍요롭게 해줄 것이며, 현재 국어 음운 현상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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