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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대(古代) "불교사(佛敎史)" 서술 검토

        박미선 ( Mi Sun Par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1 韓國思想과 文化 Vol.59 No.-

        2009년 교육과정 개정안과 2010년 부분 개정안에 따라 2011년부터 기존의 國定 「국사」교과서 대신 6종의 檢定 「한국사」교과서가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본래 2009년 개정안에서는 국사와 세계사를 결합한 「역사」과목과 교과서를 계획했으며, 이 「역사」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2010년 「역사」를 「한국사」로 급히 변경하였고, 그로 인해 전근대사를 추가적으로 서술해야 했다. 결국 기존 「국사」교과서에 서술된 전근대사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하게 되었고, 이로써 새 교과서는 근현대사와 전근대사의 불균형, 체제의 비통일성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새 교과서에서 고대 불교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기존 교과서와는 어떤 차별점이 있으며, 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불교는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특히 불교를 수용하여 한국문화의 한 축으로 형성한 때가 바로 고대이므로 불교문화를 제외하고 고대사를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6종의 검정 교과서를 비교·검토하고, 이를 기존의 국정 국사 교과사와 비교해 보았다. 기존 「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로 나누어 서술된 데 비해, 검정 교과서들은 개설적인 서술 방식으로 정치사와 문화사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대 불교에 대한 서술을 비교해 본 결과, 6종의 교과서는 서술 분량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 원인은 불교미술에 대한 서술 분량의 차이에 있었다. 공통적으로 삼국시대에 비해 남북국시대의 불교 서술이 매우 소략하며, 남북국시대 불교를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있었다. 최근에 신라 말 ``禪宗``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 결과 새 교과서 또한 삼국의 ``불교 수용``만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태도를 답습하고 있다. 또한 「국사」교과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새 교과서에 싣다보니, ``불교문화가 발전했다``와 같은 결론만 서술하거나 불교미술의 종류와 명칭을 ``나열``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으로는 학습자들이 역사적 지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우며, 이해할 수 없는 경우 ``암기``로 이어지게 되고, ``암기``는 곧 학습 부담이 된다. 따라서 내용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역사적 판단력 함양``을 역사교육의 목표로 한다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불교미술의 나열이 아닌 시대적·사상적 배경과 因果관계 등 좀더 ``친절한`` 서술 방식이 필요하다. According to the 2009 National Curriculum Amendment and 2010 Partial Amendment, six authorized ``HANKUKSA: Korean History`` textbooks have been used in high school instead of the existing ``KUKSA: National History`` textbook. The original 2009 Amendment had a plan of making ``YUKSA: History`` subject and textbooks by combining the national and world history, centered o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But in 2010, ``YUKSA`` was changed by ``HANKUKSA`` urgently, which made additional description of premodern history inevitable. As a result, the descriptions on premodern history in the existing ``KUKSA`` were summarized and organized to be included in the new ``HANKUKSA``; therefore, the new textbook showed many problems such as the imbalance between premodern and modern-contemporary history and lack of formation-unity. The present study was performed to investigate how the new textbooks describes the Ancient Buddhism, what kinds of difference they show and what kinds of problem they include. Buddhism is the keyword in understanding Korean history and culture, and it was the Ancient Era when the Buddhism was accepted and became the axis of Korean culture. So, we can neither explain nor understand the ancient history except the Buddhist culture, and that is the reason why Buddhism should be centered on. First, six kinds of authorized textbooks were compared one another and then with the existing national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ents of the existing ``KUKSA`` were described by political, economical, social and cultural aspects, but, on the contrary, authorized textbooks were done by centering on the political and cultural history with the method of introductory description. Comparing the description of Ancient Buddhism, quantitative differences were found in six textbooks, especially, those of Buddhist arts. Commonly, the Buddhism descriptions of North and South States Period were rougher and more negligent than the Era of Three States, and even some textbook has no part of North and South States Period Buddhism. It did not match the recent trend that investigating the Zen of late Shilla is steadily increasing. As a result, the new textbooks followed the old trend again which were concentrated on the intensive descriptions of Buddhism embracement in the Era of Three States. Also, because the contents of ``KUKSA`` were summarized and included in the new textbooks, we could find only the conclusion like ``Buddhist arts were developed`` or the lists of categories and names of Buddhist arts. Such descriptions cannot make learners` understood the historical knowledge. If learners cannot understand the knowledge, they will try to ``memorize`` it, which will burden them. So, if the aim of history education is to ``foster the historical judgement`` regardless of the quantity, more ``kind`` method of description is needed by providing the background of the time and ideology and the causal relationship, instead of the lists of simple facts or Buddhist arts.

      • KCI등재

        현암 이을호의 탈주자학,탈중국적 자주성과 한국사상연구의 시각

        김형찬 ( Hyoung Chan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4 No.-

        현암 이을호는 중국사상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사상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나아가 그러한 기준에서 중국사상의 발전에 기여한 한국사상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한국사상이 중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려 하였고, 그 독자적 특성을 기반으로 평가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한민족의 뿌리인 동이문화가 중국문화에 뒤질 것이 없다는 당당한 자부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중국의 수직적 문화와 다른 한국의 수평적 문화, 중국의 도일분수적(道一分殊的) 사유방식과 대조가 되는 한국의 회삼귀일적(會三歸一的) 사유방식을 그 특징으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그러한 한국의 수평적 호혜 문화가 중국의 수직적 종속 문화보다 앞선 것이며, 회삼귀일?이이일(二而一)적 묘합(妙合)의 문화가 서구의 논리적 사고를 넘어서는 차원의 사유방식이라고 자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한국 고유의 사상을 `한사상’으로 정의하고, `한사상’의 기준으로 한국사상사를 재평가하였다. 현암의 이러한 평가는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사상사의 큰 맥락에서 한국사상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참고할 만한 좋은 선례가 된다. Hyeonam Yi Eulho tried to reveal how much Korean Thought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Chinese Thought and suggest the criteria of evaluation on the basis of the independent property of Korean Thought. That was a great contrast to the other scholars that have found the value of Korean Thought by the standard of Chinese Thought and have disclosed which of Korean Thought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hinese Thought by the same criteria. His attempt like this was on the basis of the confident pride that the culture of Dong-I, as the root of the Korean race, is never inferior to the Chinese culture. Therefore, he presented the horizontal culture of Korea that was deferent from the vertical culture of China and the Korean way of thinking uniting the three vehicles into one (會三歸一) that contrasted with the Chinese way of thinking dividing one way to a great number of individuals (道一分殊) as the characteristics. Moreover, he was confident on the idea that the Korean culture of the horizontal reciprocity was one step ahead of the Chinese culture of vertical subordination and the Korean culture of the mysterious combination was the way of thinking that went beyond the logical thinking of the West. Then on the base of these characteristics, he defined the original Korean thought as `One Thought` and revaluated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on the standard of `One Thought`. Hyeonam`s assessment like this would be hard to escape from the excessiveness, however it could be a good precedent to refer if we think what should be the criteria of Korean Thought in the grand context of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 KCI등재후보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순흥지역 단종복위의거 관련 시문(詩文)을 통해 본 선비정신 연구

        이정화 ( Jeong Hwa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2 韓國思想과 文化 Vol.61 No.-

        금성대군의 「서문(誓文)」에서는 "충(忠)"의 정신으로 일관했던 대군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실천하는 선비였음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기륭, 이명희는 단종 충신들을 현창하기 위한 초석을 구축한 선비들이다. 이 두 선비들의 공로는 유가적 문화의식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충절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한 그들의 선비정신이야말로 18세기 순흥 지역의 선비문화를 창달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대평서당기(大平書堂記)」는 1822년에 지은 것으로, 19세기 순흥 고을 사람들에 의해 계승된 유교 문화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축년에 희생된 지사들의 충절을 현창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금성단이 유교의 성지(聖地)로 자리하며 추앙을 받는 연유는 이처럼 고을 사람들이 진심을 모아 거행해 온 제사의식에 의해 순흥의 유교문화가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목숨을 바쳐 인(仁)과 의(義)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굳은 결심이 아니고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목숨을 바쳐 단종 복위 의거에 참여한 지사들의 마음이야말로 유자(儒者)들이 추구하는 선비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금성단 경내에 "성인비(成仁碑)"가 세워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추진된 순흥 지역의 단종 복위 의거는 수개월간 그들이 불철주야(不撤晝夜)로 의기투합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무매(無寐)」시를 지으며 한을 형상화한 것은 적소(謫所)에 있는 단종의 한(恨)을 자신의 한(恨)과 동일시한 데서 오는 괴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시운(延諡韻)」은 금성대군에게 "정민(貞愍)"이란 시호가 내려져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홍구경의 시는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해서는 백 번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금성대군의 결의(決意)를 추념(追念)한 것이다. 홍응린의 시는 "홍모(鴻毛)"와 "산(山)"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을 추념하고 있다. 군자는 선(善)에 대한 식견이 분명하기 때문에 명분(名分)과 절의(節義)를 태산보다 더 무겁게 여기며 그 마음씀이 엄밀하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기러기 털보다 더 가볍게 여긴다. 「등순흥금성단유감(登順興錦城壇有感)」시에서는 "의백충혼(毅魄忠魂)"과 "천년벽혈(千年碧血)"을 통해 영령들의 충의(忠毅) 정신이 후대인들에 의해 영원히 현창(顯彰)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대평서당(大平書堂) 찬시(撰詩)」는 정축년의 참화를 입어 몰살당한 76가구의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온 사실을 전해 듣고 이를 미담(美談)으로 여겨 칭송한 것이다. 작가는 고을 주민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영령들의 충의(忠毅) 정신이 현창(顯彰)되고 있어서 이곳 순흥이 어질고 정의로운 고장으로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충혼(忠魂)들의 원한(怨恨)과, 순흥 지역 사람들의 숙원(宿怨)을 신원(伸寃)한 사실에 대해 축경(祝慶)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향의식을 거행하며 충혼(忠魂)들을 현창(顯彰)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고을 사람들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This thesis is to based upon a study on spirit of literati-scholars in the poetry. Especially in connection with a worthy undertaking of reinstatement on related King Danjong in Sunheng. In retrospect, spirit of literati-scholars, which took in the morality and knowledge, by bringing on the a single-hearted devotion to King Danj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most of literati-scholars viewed in the most favorable light about a worthy undertaking of reinstatement on related King Danjong in Sunheng. Because of the honest spirit of literati-scholars are founded on Confucian ideals. Spirit of literati-scholars in connection with a worthy undertaking of reinstatement on related King Danjong in Sunheng was realized the sincerity of King Danjong. Especially Kemsengdaegun maintained an moral view as a literati-scholar. Poetry of Kemsengdaegun and faithful retainers in connection with King Danjong emphasize a single-hearted devotion. Culture of literati-scholar on a single-hearted devotion in Sunheng have taken root Kemsengdaegun and faithful retainers in connection with King Danjong. The modern descendants in Sunheng still bear spirit of literati-scholars. Also the descendants in Sunheng permanently have respect for the holy sacrifice of Kemsengdaegun and faithful retainers in connection with King Dan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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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점필재(占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화도연명술주(和陶淵明述酒)」 시(詩)에 나타난 자아의 정신

        이구의 ( Ku Eui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2 No.-

        본고는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화도연명술주」시에 나타난 정신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먼저 이 시의 형식면을 보면, 이 시의 구성은 6구, 8구, 8구, 6구, 2구로 이루어졌다. 이 시의 특징은, 첫째 시인이 많은 고사(故事)를 사용하고 있다. 둘째 용사(用事)를 통하여 우의(寓意)하고 있다. 용사의 대상은 전국시대에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까지의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의 이야기이다. 이 시를 지은 목적은 후세의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그의 시를 보고 경계(警戒)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두고 보면 이 시는 교훈성에 목적이 있다. 이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이 시를 지었을 때 구성방법은 공자의 『춘추』 정신이다. 점필재의 「화도연명술주」시에 나타난 정신은, 첫째 자연 질서(自然秩序)에의 순응(順應)과 정명주의(正名主義)의 실천이다. 둘째 과거의 역사에 대한 현재의 사실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셋째 충성(忠誠)과 직필(直筆)의 정도관(正道觀)이다. 넷째 천운(天運)의 순환(循環)과 인과응보의 관념이다. 이 「화도연명술주」시를 통해서 볼 때 점필재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선비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도연명이 초인문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점필재는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 도연명의 시와 점필재의 시가 다른 점이다. This thesis examines how the poetry of Jeumpiljae KimJongjic`s (점畢齋 金宗直: 1431-1492) are linked with life, and what the spiritual sphere in which is. It is composed of fiver steps.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m can be summarized into several things. In this poem, he used amount event of the remote past. He satirized his lifetime using these event of the remote past. The object 0f using event of the remote past is stories of the Age of the Warring States and the dynasty of the WijinNambukjo`s traitors. The object 0f This poem is in order to cautious of traitors in his after age. An ultimate goal of this poem is giving a lesson to coming ages. The persona in his poetry corresponded with nature and human beings. In this poem, It revealed the historical view is a spirit of the Chronicles of Lu. His view of life is empiricism from the cultivation of disposition. An atmosphere through this poem is the inseparability of knowledge and practice. The styles of his poetry is tranquility and thinness especially in his describing amusements. In conclusion, the spiritual sphere in Jeumpiljae KimJongjic`s a response of Toyeunmyeung`s description of an intoxicant is possessing powerfulness and tenderness. A point of difference between Jeumpiljae and Toyeunmyeung`s is humanistic and transcendental. The spiritual sphere of Toyeunmyeung`s is rising above the world.

      • KCI등재후보

        다문화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

        윤일수 ( Il Soo Yoon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6 韓國思想과 文化 Vol.83 No.-

        본고에서는 대중문화에 재현되어 나타나는 다문화가족의 모습을 통해 이들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을 진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다문화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와 <완득이>를 텍스트로 삼아, 배양이론을 사용하여 분석해 보았다. 대중서사물은 다문화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재현수단이기 때문이다. 연구결과, 첫째, 오늘날 한국사회는 결혼이주여성을 ‘팔려온 여성’으로 보며 천시하는 경향으로 인해 결혼이주여성이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외모나 말투, 미숙한 한국어 구사, 학습부진 등으로 또래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인종과 민족 그리고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다문화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길이었다. 이처럼 영화는 다문화가족을 특정한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재현하는 과정에 문화정치적인 함의를 담고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결과는 향후 다문화가족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viewpoints of contemporaries towards muticultural families represented in popular culture. For this purpose, I referred to the multicural families as texts in the movies, My Wedding Expedition and Wandeoki, using the cultivation theory. As we know, a popular narrative can bean effective representative means, overcoming the estrangement between multicultural discourses and practices. The finding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migrated females are systematically excluded in the Korean society degrading the migrated females as‘females being sold.’ Second, the children from the muticultural families are often treated as social outcasts among their peer group, due to their appearances, ways of talking, unskilled Korean, and school underachievement. Third, it can be away to minimize the problems arising in multicultural society to accept the mutual cultures, admitting the differences among races, ethnics, and cultures. On the way, the movies reveals the cultural, political implications on the process of presentation and representation of multicultural families. Hence, this study can afterwards serve as a foundation in establishing multucultural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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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박세당의 『사변록』 저술동기와 「대학」 본문 재배열 문제에 대한 검토

        김태년 ( Tae Neon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1 No.-

        본 연구는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대학사변록(大學思辨錄)』을 둘러싼 쟁점 중 저술 동기와 『대학』 본문의 재배열 문제를 검토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박세당은 조선 후기 탈주자학적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학자로 평가받았으며, 그 근거는 『사변록』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대한 비판이 담긴 『대학사변록』은 주희의 학문체계를 벗어나는 박세당의 사상적 특징이 잘 드러난 텍스트로 여겨졌다. 『사변록』에 대한 해석은 크게 보아 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는 숙종대 벌어진 노론과 소론 간의 시비 과정에서 나온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평가였고, 2차는 근대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탈주자학`이라는 해석이다. 본고에서는 당대 학자들과 근대 이후 연구자들의 견해를 함께 살펴보면서 『대학사변록』을 둘러싼 쟁점을 추출하고, 우선 저술 동기와 『대학』 본문 재배열의 문제를 검토하여 `사문난적`과 `탈주자학`이라는 해석의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사변록』의 저술동기와 『대학』 본문의 재배열은 박세당을 `사문난적`으로 몰거나 `탈·반 주자학자`로 평가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motif and the rearrangement of contents of The Great Learning in Daehak Sabyeonrok(大學思辨錄, Treatises on the Great Learnig) written by Park Sedang(朴世堂, 1629-1703). Park has been considered as the representive of post Neo-Confucianist stance in late Joseon period. Such evaluation was based on the estimation of Sabyeonrok, and especially a part of Sabyeonrok, Daehak sabyeonrok, which was a ciriticism against ZhuXi`s Exegesis on Great Learning(大學章句), has been regarded as the most important and exemplar work reflecting such stance. Evaluation of Sabyeonrok bore two stages in history. The first one was to evaluate his work as belonging to `Samunranjeok`, and presented in the course of the series of debate between Noron and Soron in the time of Sukjong. The second one was assessing the work as one of post Neo-Confucianism, and suggested by modern academics. In this article, the author tried to clarify and re-assess the issues concerning Joseon scholars and the contemporary academics`s evaluation of Daehak sabyeonrok, and then proceeded to analyse the motif of the work and the aspects of rearranging The Great Learning in it, mainly focusing on the validity of hitherto evaluation of the work as Samunranjeok or as the one of post Neo-Confucianist stance.In sum, the author concluded that, far from the hitherto evaluation of Sabyeonrok, the analysis of the motif and the rearrangement of The Great Learning in the book shows that Sabyeonrok cannot be an evidence of Park`s being Samunranjeok or being post Neo-Confuc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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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하서(河西)의 의리사상(義理思想)

        이기동 ( Ki Dong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1 No.-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의 발전을 이룬 시대에 살면서 온갖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과거의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현대인들이 살기 좋아진 것은 몸의 삶에 국한된다. 현대인들은 몸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힘쓴 대신, 마음이라는 것을 방치하고 말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마음이 황폐해지고 영혼이 고달프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방식은 인간의 마음을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옛날 조선시대에 한 점의 욕심도 없이 깨끗이 살았던 한 선비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삶은 욕심을 채우는 과정이 삶의 전부처럼 되어버린 오늘날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삶과 사상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잃고 욕심을 따라 우왕좌왕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공하는 한 기준이 될 것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은 조선 중종대왈(中宗大王) 5년에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나셨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총명예지(聰明叡智)하여 주위에 소문이 자자하였고, 10세 때에는 능히 시(詩)를 지을 수 있었다. 34세 때에 당시 세자(世子)였던 인종(仁宗)을 가르쳤는데, 이 때 선생은 인종의 훌륭함을 알았다. 유학(儒學)의 목적은 자기를 완성하고 타인을 완성시켜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 이것은 뜻있는 유학자(儒學者)가 꿈꾸는 최고의 이상이다. 그런데 인종을 가르치던 하서는 꿈이 실현될 수 있음을 알았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인종이 바로 죽음을 맞이하자, 하서는 크게 좌절하고 모든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수양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한 점 욕심도 없이 깨끗한 삶을 살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욕심은 남과 나를 갈라놓는다. 남이 성공하면 배가 아프다. 남의 불행을 보는 것이 행복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이러한 마음 상태로 정치를 하면 남을 위한 정치가 나올 수 없고, 이러한 마음으로 경영을 하면 남을 위한 경영이 나올 수 없으며, 이러한 마음으로 교육을 하면 남을 위한 교육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은 점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사람들의 삶이 욕심 채우기로 달려가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사람 되는 노력을 게을리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 가꾸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하서에게서 배울 수 있다. 현대인은 심사숙고할 때가 되었다. Modern people are living in comfort in a rapidly developed society. Nevertheless, we cannot say that modern people are happier than the people in the past. The happiness of modern life is only limited to the exterior. Modern people have been struggling themselves to enrich their life. They, however, have not fertilized their mind. As the result, most of the modern people have devastated their soul. Therefore modern people should cultivate their mind. In order to do so, it is important to look back upon the exemplary life of a scholar in Chosun Dynasty. The life of Haseo Kim Inhoo will give us a life index which shows the standard of how to live a good life. Haseo Kim Inhoo was born in the 5th year of Joong Jong the Great in Chosun dynasty. He was well known by his cleverness and he could write a poem when he was 10 years old. When he was 34, he taught Injong, the crown prince and he noticed Injong`s greatness. The purpose of Confucianism is to complete oneself and others so that people can have a true utopia. When teaching Injong, Haseo realized that his dream of making a true utopia can come true. But Injong died soon afterwards. Haseo was discouraged a great deal and went back to his hometown after resigning from his seat. From that time, he spent his life on cultivating his mind and he lived a poor but honest living. These days, people are busy with satisfying their desire. If other people succeed, we feel jealous. We feel as if it could become our happiness to look at other people`s misfortune. However, with this kind of mind, we cannot govern, manage, or teach people in the right way. That is why we are suffering from certain problems in modern society and that is why we do not feel happier than before. Therefore we should go back to the basic. We should have an epoch-making change. To have a tree full of blossom, we should start from taking care of its root. And from Haseo, we can learn how to do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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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고려시대(高麗時代) 기술관(技術官)의 사회적 지위

        이미숙 ( Mi Sook Lee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1 No.-

        고려시대의 기술관은 대체로 의관(醫官)·역관(譯官)·일관(日官)·산관(算官)·율관(律官)·화원(畵員)·서관(書官, 사자관: 寫字官) 등을 말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해당 기술관서의 실무를 맡고 있던 관원이었다. 따라서 고려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 있어서 이들 기술관의 활동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큰 것이었다. 기술관은 직제가 정비된 의관이 가장 원활하게 승진하였으며, 일관은 거의 오랜 기간 일관직 계통에서 근무하였으며, 그 안에서 이동 내지는 승진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후기에는 의관과 역관들 중에는 문관으로 진출한 자들도 있고, 또 그중 일부는 재상급에까지 승진한 사람들도 여러 명 있었다. 또한 일관도 문반이나 재상급에까지 승진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후기에는 재상급에까지 등장한 경우도 여러 명 있었던 것을 보면, 이들 기술관의 정치·사회적 지위가 점차 상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관도 근무하는 대가로 전시(田柴)와 녹봉(祿俸)을 지급받음으로써 관인으로서의 경제적 지위를 어느 정도는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잡과 출신의 하급관리였기 때문에 문·무관에 비하여 전시와 녹봉을 지급받는데 있어서 낮게 받음으로서 대체로 차별을 당하였으며,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반면 고려는 조선보다 기술관의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또 무신의 집권과 몽고의 침입 이후로는 사회가 문란해지면서 특히 역관과 같은 기술관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등 신분제도를 비롯한 사회적 변화에 큰 몫을 담당함으로써 기술관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Technocrats of Goryeo age include medical officer, interpretation officer, astronomy officer, accounting officer, legal officer, painting artist and recording officer in general, and they were the government officers who were in charge of administrative works of technical departments concerned. Accordingly, the activities of the technocrats carried very significant meaning in leading the society of Goryeo Dynasty. Among those technocrats, medical officers could be promoted the most smoothly as the position structure was well organized. In the case of astronomy officer, they were assigned to the astronomical position system for very long period of time, during which they were given the opportunities for transfer and promotion to higher positions within the system. At the later part of Goryeo age, some medical officers and interpretation officers were given opportunities to advance to civil officials, some of whom were promoted as high as up to minister level. Based on the fact that some technocrats were promoted up to minister level at the later part of Goryeo age even if the number of persons promoted to minister level were not many, we can see that the political and social positions of technocrats at that time were gradually upgrading. As the compensation for their services, technocrats were also given free land and salary, which means that their positions were guaranteed in terms of economic status to some extent. However, as their positions were classified as lower class officers who were employed through the government examination but in miscellaneous fields, they were discriminated in general as their compensation level was lower compared to civil officials and military officers. Moreover, there were a lot of constraints in their social and political activities. On the other hand, social status of technocrats in Goryeo age was comparatively higher as compared to that in Joseon age. Since military officials` grasping political power and the invasion of Mongolia, society was in disorder situation and thus technocrats especially interpretation officers got promotion to high positions playing significant role in the social change including position system, which resulted in influencing to the enhancement of the social and economic status of technocrats in Goryeo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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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한국교육사상사(韓國敎育思想史)를 통해 본 현대교육의 당면과제

        김익수 ( Ik Su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1 No.-

        효(孝)는 우리의 고유사상(固有思想)이라고 한다. 삼국(三國)시대로 이어져 傳承해 온 고유사상의 바탕위에 고구려의 태학(太學), 백제의 태학(太學)에서 五經중심의 교육을 하였는데 五經속에 내재(內在)한 仁學과 孝學을 공부하여 겉과 속(表裏)이 일체(一體)가 되는 한국의 효사상으로 확고해졌다. 신라의 國學에서는 『論語』와 『孝經』이 국책적 교양필수과목이어서 仁孝교육이 철저하였다. 고려(高麗)의 대학인 國子監에서 이를 계승 발전시켜는데 원(元)나라의 효사상도 수용되었다. 조선조는 朱子學의 열풍으로 『孝經』 대신에 『小學』이 중시되어 국책교과가 되었고, 朱子家禮가 생활 속에 자리를 굳혀지면서 주자학이 정초가 세워졌다. 官學으로는 중앙의 成均館에서는 사서(四書), 오경(五經)을 공부하고, 四部學堂과 지방의 향교(鄕校)에서도 경학(經學)공부를 통한 仁孝교육이 절대적이어서 감히 세계적이라고 할만하다. 세종대왕은 국책으로 『三綱行實圖』를 편찬 보급하여 孝·忠·烈을 가치체계로 政敎를 一致시켰다. 中宗 때는 『二倫行實圖』로 보완하였고, 正祖때는 『五倫行實圖』로 이른바 통합정치로 국민과 소통되었다. 근세에 이르면서 서구교육사조의 비판없는 수용으로 전통적인 교육사상의 골격인 효사상이 완전히 붕괴되어 교육의 본질이 실종되어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위기가 총체적인 국정의 위기를 초래시키고 있다. 2005년 호주제 개악(改惡)이후 도덕적 기조가 부실해져서 2007년8월3일에 대통령령으로 "효행장렴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이 공포되고, 2008년 7월 20일 충남도지사는 "충남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으며 각지자체에서도 연속되고 있다. 교육에 관한 주요조항이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서부터 교육을 해야 하고, 사회교육에서도 효행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를 버팀목으로 하여 교육의 본질을 회복시기 위하여 반전(反轉)시키는 기회로 삼자. Filial piety is Korea`s traditional thought since the ancient time. The Three Kingdoms period inherited this traditional thought. With this traditional thought as a foundation, Goguryo`s Taehak and Baikje`s Taehak taught the Five Classics of Confucianism. The curriculum emphasized the Study of Benevolence and the Study of Filial Piety in the Five Classics of Confucianism to educate the students to learn li and chi as one that consolidate the thought of Korean filial piety. Silla`s Gukhak emphasized the study of benevolence and filial piety making the studies of Analects and Book of Filial Piety as the general requirements by the government. Goryo`s national college Gukjagam also inherited this tradition while adopting the thought of filial piety of Yuan Dynasty. During Joseon Dynasty, the Book of Elementary Education replaced the Book of Filial Piety as a national requirement because of the boom of the study of Chu Hsi. Family Rituals of Chu Hsi became a part of everyday life and the foundation for the study of Chu Hsi was well established. As the national educational institutions, Seongyunguan in the capital educated the Four Books of Ancient China and Five Books of Confucianism while Four Colleges in the capital and Hyanggyo in the regions educated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The study of benevolence and filial piety became so important and it became a world standard. King Sejong the Great published and circulated the Diagram for the Three Bonds to make political and educational aims as one with the ideas of filial piety, loyalty and devotion. During the era of Jeongjo, he communicated with people as a policy of consolidation with the publication of the Diagram for the Moral Rules to Govern the Five Human Relationship. Korea faces the crisis with confusion caused by the destruction of the substance of education from the total collapse of filial piety that is the framework of Korean traditional educational thought since the modern period, which is the time that the Western educational thoughts were adopted with criticism. The crisis in education causes the total crisis in government policy. Finally, the Law of the Headship of Family revised in 2005 in a wrong way to make the moral system unreliable. On August 3, 2007, the "Law Related to Encourage and Support Filial Piety" promulgated and the Governor of Chungnam Province promulgated the "Ordinance Related to Encourage and Support Filial Piety in Chungnam" in July 20, 2008. This trend continues to spread out to all the regional and local governments. The codification clarifies that all preschools, elementary schools, junior-high schools and high schools must educate the subject of filial piety as well as the continuing education. Korean education needs to shift the paradigm with revitalizing its substance to make this change as the stepping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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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인문학적(人文學的) 글쓰기와 스토리 텔링, 그 가능성을 위한 초고(初考)

        박승희 ( Seung Hee Park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韓國思想과 文化 Vol.51 No.-

        본 논문은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적 글쓰기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는 스토리 텔링에 대한 연구이다. 현재 우리의 글쓰기 환경은 첨단 테크놀로지와 후기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 그리고 정보 사회의 고도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인문학과 글쓰기가 변화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이러한 영상매체와 첨단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하고 자기 반성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가상을 통해서만 인지되는 현실의 허구성, 영상의 통해서만 서사적 읽기를 즐기는 젊은 세대, 오락 중심의 인지행위 등은 그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은 이러한 우리 시대의 매카니즘과 문화적 조건 위에서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와 그 소통의 방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인문학의 대표적인 소통 방식인 글쓰기의 위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고구(考究)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중심으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스토리 텔링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전통 문학 장르 속에서의 스토리 텔링의 의미와 기능, 대중문학적 소통과 스토링 텔링,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스토리 텔링의 가능성 등을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인문학적 사유와 그 가치를 전제한 스토리 텔링의 멀티리터러시라는 개념을 통해 스토리 텔링의 상업화를 경계하고 진정한 교육적 위상에서 스토리 텔링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 볼 것이다. This study examined the prestige and new possibility of writing, a representative communication method of the humanities regarding realistic problems about a new humanistic thought and its communication method based on today`s mechanism and cultural conditions. Based on such a problem, it is aimed at looking into recently discussed story telling from the diverse aspects. This study firstly purposes to examine the concept and function of storytelling, the communication as popular literature and storytelling, and possibility of a new storytelling of the digital era. In addition, it will inspect the meaning of storytelling again by avoiding commercialization of storytelling and seeking true educational prestige through multi-literacy of storytelling that is premised on humanistic thought and its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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