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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 -1 -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1994)의 재정비를 중심으로 -

          오세현,김수진,김하라,이경근,유정열,김대중,최천식,박민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7 No.-

          It’s been a long time since scholars and researchers said there was something wrong or improper in the contents of Catalogue of Korean Books and Manuscripts in The Kyujang-gak Collection(1994). So it was necessary of modifying the contents of the book. For the purpose of doing this, a survey began at 2013, Survey of Valuable Books in the Kyujanggak Collection. Basically, this paper is grounded on the results of this survey. To modify the contents, first, the errors in the name of the authors and books should be amended. and the names of the author unknown found. Second, the year of transcription or publication should be properly estimated. Last, the standard of classification of books should be readjusted. Through this work, the errors of this book were found, corrected, and updated. so it is expected that more reliable database would be built, and it could be helpful to anyone who wants to have correct information of the Kyujanggak Collection.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1994년에 발간한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이 소장 자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규장각 소장 귀중본도서 조사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목록의 재정비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목록집의 재정비 외에도 귀중본사업은 1980년대 이후 중단된 귀중본 도서의 선정과 관리, 결본목록에 의거한 규장각 자료의 체계적 확충, ‘선본(善本) 문집 총서’(가칭)의 발간, ‘규장각 장서인(藏書印) 자료집’(가칭)의 발간을 주된 사업 목표로 한다. 본 논문이 지향하는 목록의 재정비에 대한 큰 얼개는 첫째 서명(書名)과 저자(著者)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미상을 밝히는 것, 둘째 간사년(刊寫年) 추정, 셋째 분류체계의 재조정이다. 서명과 저자명은 단순 오류를 비롯해 주변 문헌들과의 연계를 통해 저자명 미상을 밝힐 수 있는 사례들인데, 특히 원전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와 귀중본으로 분류된 도서에 대한 심층조사, 그리고 귀중본 해제 원고라는 여러 결과물을 토대로 가능했다. 간사년을 추정하는 작업은 서발문 정보에 대한 누락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문집의 간사년을 추정하는 것으로서 문집의 성격을 밝혀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분류체계의 재조정은 특히 학문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 문집이 언제 간행된 것이냐에 따라 수록 내용이 다르고, 문집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 나아가 중국본(中國本)의 재편집과 누락 문헌 등록을 통해 더욱 정확한 규장각의 소장 자료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는 일이 가능하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의 경과(1) - 2018년도 사업결과를 중심으로

          구슬아,우나영,김은슬,서진원,조성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규장각 Vol.54 No.-

          This paper is the result of analyzing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Confucian classics in the Kyujanggak. ‘The project on the rearrangement of catalogue and description books in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conducted a comprehensive survey of the Confucian classics in the Kyujanggak. As a result, information errors such as titles(書名), authors’ names(著者), printing information(版事項), publish information(發行事項), and classification criteria(四部分類) were significantly revised. We also uncovered new information. Based on the above survey, we conducted an intensive investigation to discover the value of Kyujanggak books. As a result, the following two main achievements were derived. First, we fou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Kyujanggak Book, which contained information that led to publishing in the country. Therefore, the annotation information such as the sentence and the proverb, which are described in the book, are described in detail and the relevant contents are listed. Second, we deepen the information of Chinese book. In addition, specific research policies were established and important information related to the original order of the books was listed. In order to prepare for the description project, which is the second stage of the project, important documents were listed. Through such investigation and cataloging,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possible to provide accurate information about users and to efficiently manage and utilize the collection data of Kyujanggak books. ‘규장각 소장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은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의 전수조사와 개별 상세서지조사카드 작성을 통해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수정판, 1994) 및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1982)의 정보 오류, 중복․合帙․누락 사항 등을 전면 수정하고 가칭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종합목록』을 발간하는 데 1차 목표를 둔다. 동시에 수정을 긴급히 요하는 기해제도서에 대한 수정과 우선해제대상서에 대한 해제 작성을 통해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제고하고 이용과 관리 양측면에 정확성․전문성을 기하는 데 2차 목표를 둔다. 이 논문에서는 목록 오류 수정의 기준 등 주요 사업 방법을 소개하고 2018년도 사업대상인 詩類․春秋類․禮類․樂類․孝經類․四書類 도서 약 1,200여 건에 대한 상세서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오류 수정의 주요 성과를 제시하였다. 조사 결과 서명․편저자․판사항․발행사항․동판본 및 사부분류 등 주요 항목에서 未詳의 정보를 새롭게 밝혀내거나 정보 오류를 수정하였다. 나아가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심화조사를 새롭게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성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규장각 자료에 국가나 官署 주도의 경서 향유 양상을 드러내는 정보가 많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자료에 기재된 口訣, 諺解 등의 항목을 ‘비고’란에 기술하고 관련 내용을 목록화 하는 한편, 經筵에서 교재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標識는 심화 조사하여 내용 서지를 대폭 보완하였다. 둘째, 형태서지 및 내용서지에 대한 기술이 미비한 중국본 경부 자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기술규칙을 수립하고 추후 목록집에 중복 수록을 방지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구체화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古刊本, 희귀본 擧業書 등이 규장각에 다수 소장되어 있음을 새롭게 밝히고, 한국본 경부 자료의 底本이 된 중국본 경부 자료의 구체적 활용 양상을 실증하였다. 이와 같은 심화조사 및 목록화를 통해 이용자들을 위한 정확한 서지 정보 제공, 규장각 소장 자료의 효율적 보존 관리 및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KCI등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冊板의 현황과 특징

          권기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This study tried to investigate the wooden printing blocks of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KIKS), and to analyze the catalogs of the wooden blocks in 18~19th centuries and the books printed by the KIKS blocks. According to the publishing office, there were different characteristics in the appearance of the blocks, and based on this, it was possible to estimate the publication information of the blocks without colophon. In addition, I compared the catalogs of the wooden blocks with the current status of the KIKS blocks, and obtained more information about publishing place and storage place of the blocks. I then examined how much books printed using the KIKS blocks were included in the archives of KIKS, what ownership seals(印記) were stamped on them, and what records of royal bestowal(內賜記) were written.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the blocks made in the central offices mainly satisfied the demands of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royal family. The blocks of the local government were used relatively more to print books for private holders, but the central government also actively used them. Based on the above findings, the blocks of Kyujanggak can be divided into two groups according to the time and purpose of making. The first group consisted of Confucian scriptures, history books, and learning materials published during the 19th century, while the second group consisted of the books written by the King himself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in the 18th century. Although the publishing place and time of these blocks are very diverse, we can confirm that blocks were made, used for printing, and distributed to people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central and the local areas. 본고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판의 현황과 특징을 더욱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규장각 서고에 있는 책판 실물에 대한 조사와 아울러, 18~19세기 책판 목록들과 규장각 소장 책판을 활용한 인출본에 대한 분석 등을 병행하였다. 책판의 실물 조사 결과 간행기관(內閣, 春坊, 芸閣, 嶺營, 寧邊府 등) 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책판의 외형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 刊記의 미확인으로 부족했던 간행 정보에 대한 보완이 가능했다. 책판 목록과의 대조를 통해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들이 동일 서적의 책판들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범위의 책판 관리 체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인출본에 대한 분석은 규장각 소장 도서에 국한하였는데, 인출본에서 확인되는 印記와 內賜記에 대한 분석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중앙 관서에서 간행한 책판의 인출본은 주로 중앙정부에서 수집되어 활용된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방 책판의 인출본은 개인 소장본이 많았지만, 중앙 관서의 수요를 위해서 활용되는 비중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장각 소장 책판은 여러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순조~고종대와 18세기 영조대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체로 경전, 성리서, 역사서, 학습서 등 중앙정부와 왕실의 講學을 위한 책들이고, 후자는 국왕의 정치적 의지나 교훈을 담은 御製書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 구별된다.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와 시기는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중앙과 外方 사이의 통합적인 체계 속에서 책판의 간행과 인출, 보급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 日帝强占期 京城帝國大學의 奎章閣 관리와 所藏 資料 활용

          김태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 규장각 Vol.33 No.-

          Imperial Japan tried to carry out the cultural policy strongly in the colonial Joseon to control the national movement of Korean and assimilate the Koreans to the Japanese. Namely, it attempted to take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Koreans into the colonial system after 1919, while to press or exclude the Joseon culture before this time. The department of law-literature in Keijo Imperial University(京城帝国大学) founded in 1926 showed this purpose of Imperial Japan. Therefore, the direction of Joseon study placed emphasis on the explaining of the mixed and dependent color of Joseon culture rather than of it’s original and independent one. Imperial Japan transferred the Kyujanggak archives of education and management office(학무과) to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from 1928 to 1930 in order to arrange and applicate them. Also it printed some Kyujanggak archives(for example, Joseon Dynasty Sillok) to promote the research activity of Japanese official scholars and displayed them to reduce the complaints of many Koreans about the difficulty of perusal. But these efforts of Imperial Japan didn't place emphasis on the clarifying the universality and individuality of Joseon culture but on the embossing it's dependency to justify their colonial rule. Therefore, Korean scholars had to correct the management system of Kyujanggak archives in order to build the national culture after 1945. 일제는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강점한 뒤 漸進的 同化主義를 내세워 이른바 舊慣制度調査事業을 본격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문헌상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에 착수하였다. 이후 추진 기관의 잦은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이르면 미흡하나마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가 수립한 식민지배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內鮮融和와 內鮮一體를 구실로 한민족의 말살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조사사업의 일종이라 할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과 연계하여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했다. 특히 3‧1 운동이 일어나고 이어서 조선인들의 민족운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일제는 문화의식 방면에서 적극적인 학술문화정책을 강구해야 했다. 즉 종전까지는 조선 문화를 탄압하거나 배제하는 전략을 고수했다면 이제는 조선문화를 일제의 통치 의도에 맞추어 정리하는 방침으로 전환해야 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설치는 일제의 이러한 방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이 중 법문학부의 조선연구 방향은 조선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해명하기보다는 동양 문화 연구를 전제로 하여 中國‧滿蒙 및 日本에 부수되는 조선 문화의 地政學的 關係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단지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된 문화로 치부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19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학무국 학무과 분실에서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된 규장각 자료는 일제의 이러한 학술문화정책과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의 연구 방향에 부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일본인 관학자들의 연구 방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 중 법문학부가 진력하였던 奎章閣叢書의 간행과 『朝鮮王朝實錄』의 영인은 주로 동양 문화 연구 또는 일본 문화 연구와 관련되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 학술연구과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하겠다. 나아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조선=동양 연구는 이러한 학술 문화 기반 위에서 관련 전공자의 연구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규장각 자료가 근대적 도서관의 형태를 갖춘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연구자들에게는 열람의 기회가 오히려 제한되었을뿐더러 심지어 규장각 자료가 신간 도서에 밀려 이른바 소사실에 방치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가운데 규장각 자료를 이등국민의 문화잔재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본으로 본 개항기 서양 국제법 서적의 수입과 간행

          민회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7 No.-

          In late 19th century, several western books on international law began to be translated into Chinese character, mostly performed by William Martin, an 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in China. Henry Wheaton’s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was translated as 『Manguk-Gongbup(萬國公法)』, Charles de Martens’ 『Le Guide Diplomatique』 as 『Sungcho- Jijang(星軺指掌)』, Theodore Woolsey’s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International Law』 as 『Gongbup-Pyunram(公法便覽)』, and Johann Bluntschli’s 『Das moderne Völkerrecht der civilisierten Staten als Rechtsbuch dargestellt』 as 『Gongbup-Hoetong(公法會通)』. Investigating the situation of possession for these books in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SNU Library, 『Gongbup-Pyunram』 seems to have been collected by Keijo Imperial University(京城帝國大學)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while 『Sungcho-Jijang』 by Chip-ok-jae(集玉齋), King Kojong’s royal Library. 『Manguk-Gongbup』 and 『Gongbup-Hoetong』 is omitted from the Index of Royal Books(『帝室圖書目錄』) in 1909, meaning that Ko-Jong(高宗) or Soon-Jong(純宗) kept and read these books in private. 『Gongbup-Hoetong』, solely published in Chosun among 4 books, have been collected to Kyujanggak via various courses, implying that the root for gaining knowledge of international law in Chosun leaned too much towards 『Gongbup-Hoetong』, which interrupted Chosun people’s correct understanding for the jungle law reality of world order. 19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에 서양의 국제법 관련 연구서들이 한문으로 번역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 주재 선교사였던 마틴(W.A.P.Martin, 1827~1916)에 의해 주로 이 작업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법학자 휘튼(Henry Wheaton‚ 1785~1848)의 책을 번역한 『萬國公法』(1864)을 필두로 『星軺指掌』(1876, 원저자; 마르텐스[Charles de Martens, 1790~1863]), 『公法便覽』(1877, 원저자; 울지[T.D.Woolsey, 1801~1889]), 『公法會通』(1880, 원저자; 블룬츨리[J.C.Bluntschli, 1808~1881]) 등이 차례로 漢譯되어 동아시아에 소개되었다. 이들의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및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 소장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 하에서 작성된 주요 서목들의 기재 상황 및 藏書印 등으로 미루어볼 때, 『공법편람』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시절에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성초지장』은 集玉齋 및 帝室圖書를 거쳐 조선총독부 取調局 → 參事官 分室 → 京城帝大 → 서울대 → 규장각의 전형적 코스를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만국공법』과 『공법회통』은 규장각 도서 총목록인 『帝室圖書目錄』(1909)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이들이 고종이나 순종의 개인 열람도서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틴이 한역한 4종의 도서 중 유일하게 조선에서 간행된 『공법회통』은 현재 규장각 소장본의 입수 경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당시 조선의 국제법 지식 습득의 통로가 『공법회통』으로 편중된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법전 편찬체계 및 ‘회통’이라는 書名이 주는 어감 등으로 인해 『공법회통』을 서양 국제법을 집대성한 책으로 인식함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 만국공법적 국제질서의 냉엄한 약육강식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맹자』 판본 연구 - 정조∼고종대 書目에서의 계승을 중심으로 -

          함영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한국문화 Vol.70 No.-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formation of bibliotheca in Kyujanggak(奎章閣) tracking down editions of 『Mengzi』 in the list of books in Kyujanggak during the period from King Jeongjo(正祖) to King Kojong(高宗) era The book lists of Wongyujanggak, several libraries around Kyujanggak, Jipokjae(集玉齋) and Sago(史庫) in King Kojong era were examined to track down variation and succession of 『Mengzi』 editions in the list of books in Kyujanggak. As a result, the 『Mengzi』 edition, which is often listed in normal book lists as a Confucian classic, is found to be a major method to understand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yujanggak bibliotheca. While different information of the editions was reflected according to each era and location, the editions themselves were succeeded continuously without much loss. Therefore, the attempt to examine the formation of Kyujanggak books through book lists deserves to continue sampling more various editions. Since Kyujanggak has less inflow of books and proper storage measures with authority of king’s library, the editions of 『Mengzi』 are not much separated. Without outside pressure to disperse the books, they could maintain their appearance. Examining other editions of Confucian classics would support this point positively. Few editions of Confucian classics have been added to book lists ever since Japanese colonial era. It is estimated that organizing and utilizing were more focused at this time. This point will be discussed in the next study.

        • KCI등재

          정조의 奎章閣 解題書目 작성과 서명응 일가

          함영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한국문화 Vol.79 No.-

          This paper makes a basic approach to academic exchanges and support that involved the family of Seo Myung-eung in terms of filing of literature, which was part of King Jeong-jo’s educational policies. As is confirmed, King Jeong-jo tried to implement the policy of giving priority to the literary over the military for the development of education and filing of literature. It was due to the instruction of Bomanjae(保晩齋) Seo Myung-eung(徐命膺) and his own taste. The institute that took the central role in this was Kyujanggak(奎章閣). Kyujanggak was practically run by geomseogwan(檢書官, public officials working in Kyujanggak, taking care of the books) system, but those who were actually intended to raise was chogyemoonshin(抄啟文臣, talented civil servants who were selected and reported to King Joeng-jo) However, one of the most important projects of the academic culture, the collection, arrangement, and compilation of literature, Seo Myung-eung and his family were actively involved. Seo Myung-eung and his family actively supported the King’s policy, played a key role in writing haejeseomok(解題書目, lists and summaries of books), and also a significant role in casting types. Seo Myung-eung and his family supported King Jeong-jo’s policy of prioritizing the literary in the forefront and played a significant role but this has not been studied enough. What also needs to be examined closely is ‘Kyujangchongmok(奎章總目)’ and ‘Nupango(鏤板考)’, and the level of summarizing ‘Naegakbangseorok(內閣訪書錄)’, which is thought to have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production of the two. The scholastic exchange between King Jeong-jo and the family of Seo Myung-eung can provide a perspective in understanding the nature of academia under King Jeong-jo’s rule. What is clear is that King Jeong-jo and the family of Seo Myung-eung were steadily influencing each other in the academic world. This can be understood more meaningfully by comparison with ‘Chongmokjeyo(總目提要)’, which was written in the similar period. The academic promotion of King Jeong-jo should start from tracing the level of the literature he published and the process. Along with the thorough evaluation of the achievement,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the education policies that were focused on one monarchy should also be assessed.

        • KCI등재

          『1872년 郡縣地圖』의 소장 현황과 장황 형태

          김성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6 No.-

          조선시대 관찬 군현지도집의 마지막 성과물로 평가되는 『1872년 군현지도』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군현지도의 일부 책의(冊衣)에는 지도의 완성 시기가 1872년 3월에서 6월로 표기되어 있어 약 4개월이라는 기간에 전국적으로 지도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도별로 수합된 지도들은 총 461장에 이른다. 이전의 관찬 군현지도집의 형태는 도별로 묶어 책 형태로 편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1872년 군현지도』의 장황은 각 군현의 지도가 독립된 첩(帖) 형태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지도의 장황 형태는 지도의 제작 목적이나 사용 방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1872년 군현지도』 소장 상태는 원형이 아닌 개장(改粧)된 이후의 모습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872년 군현지도』의 상태조사를 통해서 소장 현황을 파악하고 장황 형태의 원형을 복원하여 지도의 제작 목적과 실질적인 이용 방법을 추정하였다. The prefectural and county maps of 1872 are the last product of Joseon government-led efforts and those are currently house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Kyujanggak Institute. The part of the map that shows the last products were completed in 4 month between March and June of 1872 and the collection comprises of 461 maps. They are notable for the way each region is painted on a separate sheet of paper, each of a different size and in a different style while previous maps compile as form of books. The bookbinding technique of the maps can be an important clue to find that they were produced for a single purpose and method of use. However, the 1872 map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Kyujanggak Institute possession are not the originals, but are recreations. Therefore, this study examined the purpose of cartography and method of using maps through preservation and restoration of the 1872 original maps.

        • KCI등재후보

          규장각 소장 한글 필사본 『오륜행실』에 대한 국어학적 연구 - 표기와 음운 현상을 중심으로 -

          이상훈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2 규장각 Vol.41 No.-

          This paper aims at introducing the Korean (Han-geul) manuscript of 『Oryun-haengsil』 located among Kyujanggak’s collection and at providing a linguistic approach. The manuscript is a transcription of the Korean annotation of 『Oryun-haengsildo』, which was published in 1797, but some parts of the transcription are not exact matches to the original text and language. It appears that some corrections were made to reflect the language and its usage during that time, in order to convey the meaning in an easier manner. The document thus proves to be a significant source and subject of research from a linguistic perspective. The end of the volume presents lyrics of ‘Punyŏ-haengsilnok’, which appear to have been composed as words of advice on the norms of married life to one’s daughter. They are not simple abstract concepts and teachings, they are actually quite detailed and vivid. The end of the volume also has a transcription, which dates to the year of Kyemyonyŏn. The years corresponding to this period after the publication of 『Oryun-haengsildo』 are the year 1843 (Year 9 of Hŏnjong) and 1903 (Year 7 of Kwangmu). However, certain linguistic aspects reveal that this book was written after the mid-19th century. We can first observe the change of ‘ㅡ’ to ‘ㅓ’ at the anlaut syllable and the change of ‘ㅓ>ㅡ’ where the beginning and the end have been shifted. The change of ‘ㅓ’ to ‘ㅡ’ at the anlaut syllable is a characteristic of the dialect in the central area of the country, which stipulates this document originates from the central dialect area. We also observe examples of writing lax consonants into hard consonants after the stems ‘ㄴ, ㅁ’, as well as changes of ‘ㅡ’ to ‘ㅣ’after ‘ㅅ, ㅈ, ㅊ’. Thes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are not to be seen among literature and documents dating before the mid-19th century. Based on such aspects, this paper concludes the document was transcribed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during the reign of Kojong. 이 글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한글 필사본인 『오륜행실』에 대해 소개하고, 이 문헌의 국어학적 특징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은 1797년에 간행된 『오륜행실도』의 언해 부분만을 필사한 한글 필사본이다. 그런데 모든 부분에서 『오륜행실도』의 언어를 그대로 필사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언어 사실을 반영하여 표기된 부분들과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새로 수정한 부분들도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국어학 연구의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권말에는 ‘부녀행실녹’이라는 가사가 실려 있다.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의 규범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가사는 추상적인 훈계가 아니고,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권말에는 필사기가 있다. 필사기에는 계묘년이라는 필사시기가 적혀 있다. 『오륜행실도』의 간행 이후 계묘년에 해당하는 시기는 1843년(헌종 9)년과 1903년(광무 7)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19세기 중엽 이후의 것임을 보여주는 언어 현상들이 보인다. 먼저 어두 음절에서 ‘ㅡ’가 ‘ㅓ’로 바뀐 현상과 이 현상에서 입력부와 출력부가 바뀐 ‘ㅓ>ㅡ’의 변화가 있다. 특히 어두 음절에서 ‘ㅓ’가 ‘ㅡ’로 바뀌는 현상은 중부 방언권의 모음 변화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으로 이 자료를 중부 방언 혹은 중앙어의 자료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외에 용언의 어간말 ‘ㄴ, ㅁ’ 뒤에서 평음을 경음으로 표기한 예들과 ‘ㅅ, ㅈ, ㅊ’ 다음에 오는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들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들 역시 19세기 중엽 이전의 문헌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문헌의 필사시기를 20세기 초 고종 대에 필사한 자료로 추정하였다.

        • KCI등재

          『혜빈궁일기』와 궁궐 여성 처소의 일상

          정병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Hyebingungilgi is a palace journal of the Crown Princess Hyebin [Hyegyeong (1735- 1815)] who was the mother of the King Jeongjo and the wife of Crown Prince Sado. She was appointed as a Crown Princess in 1744 and bestowed with the title of Hyebin after her husband’s famous death in 1762, and also bestowed with the title of Hyegyeong upon her son’s enthronement as King in 1776. She is famous for a writing Hanjoongrok (Memoirs of Lady Hyegyeong) which is one of the most famous works in the Korean literary history. Hyebingungilgi was the official journal written by persons working on the Palace. It is the only article as a official journal made by the palace owned by a female. It is held in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It is a literary Chinese and Hangeul manuscript book, total 2 volume, one in each year 1764 and 1765. Hyebingungilgi which tells us what kind of things happened in Hyebingung, such as greetings and rituals and daily life. There are a lot of interesting contents such as making soy sauce and kimchi in the palace, coloring cloths. And there are not many content that rarely can be seen in other records as to how the officers and staff worked and how they were alive. It is a very important material for the research of the history of the Joseon palace, especially the history of the female in Joseon palace. 『혜빈궁일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한문한글필사본 자료이다. 한문으로 된 부분도 있고 한글로 된 부분도 있는 필사본이다. 혜빈궁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사람에게 붙은 이름인 동시에 궁궐 처소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혜빈궁일기』는 혜빈궁 처소의 일지인 셈이다. 이는 궁궐 여성 지존 처소의 일지로는 유일한 것이다. 『혜빈궁일기』는 혜경궁 생애 전체에 걸쳐 남아 있지 않고, 1764년과 1765년의 이 년 치 두 권만 남아 있다. 불과 두 해의 기록에 불과하지만 유사한 다른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궁중여성사, 궁중풍속사 등의 연구에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혜빈궁일기』는 혜빈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문안 인사와 제사 등 궁중 의식이고, 두 번째는 의식(衣食)과 관련된 기본 생활 정보이며, 세 번째는 내관, 궁녀, 여종들에 대한 관리이다. 구체적으로는 궁궐에서 간장이나 김치를 담는 일, 옷감을 나누고 염색을 하는 것, 단오, 유두, 중양절 등에 진상하고 하사한 물건 등을 볼 수 있고, 또 별감과 궁녀 및 여종들이 어떻게 근무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기록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내용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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