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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보급의 관점에서 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목판(木板): 지식 확산을 위한 물적 기반 또는 국왕의 기념물

        권기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5 한국문화 Vol.0 No.111

        본 연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104종 17,800여 장의 목판 자료군을 대상으로, 조선후기 국가 주도의 인쇄문화와 서적 보급 정책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규장각 소장 목판은 제작처와 보관처가 상이한 다양한 경로를 거쳐 통합된 자료로, 중앙 관청인 규장각(奎章閣)·교서관(校書館)·시강원(侍講院)뿐만 아니라 경상감영(慶尙監營)·영변부(寧邊府) 등 지방 관아에서 제작된 목판까지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목판을 단순한 인쇄 도구가 아닌 지식 확산과 기록유산 보존의 기반으로 파악하고, 그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분석 결과, 규장각 목판의 대표적 자료군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 세트와 영조 어제서(御製書)가 확인되었다. 사서삼경 세트는 중앙과 지방에서 동시 제작되어 유학 경전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위한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밝히고, 목판의 제작 연대와 간행처, 독자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조선후기 학술 보급 체계와의 관련성을 탐구하였다. 한편 영조 어제서는 사고(史庫)와 봉모당(奉謨堂) 등 특별 보관처에 장기 봉안되어 국왕 저술의 상징성과 국가적 위상을 반영하였으며, 이러한 보존 정책은 목판의 현전(現傳)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본고는 일제강점기 이후 규장각 목판의 수집·이송 과정과 자료 통합의 맥락을 추적하여, 현존 목판의 구성이 근대 이전의 장판(藏板) 정책과 식민지기 자료 관리 체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밝혔다. 더불어 활용도가 높았음에도 현전하지 않는 정조 어정(御定)·명찬서(命撰書) 및 윤음(綸音)과 지방 관아 번각본(飜刻本)의 부재 원인을 검토함으로써, 목판의 보존 여부가 정치적 위상, 보급 정책, 관리 체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음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규장각 소장 목판을 조선후기 관영 출판문화의 총체적 산물로 재평가하고, 전근대 지식유통 구조와 기록문화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This study examines 104 titles comprising over 17,800 printing woodblocks housed at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奎章閣韓國學硏究院)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focusing on state-led printing culture and book distribution policies. The Kyujanggak collection includes woodblocks produced and preserved through diverse channels, encompassing not only central offices such as the Kyujanggak (奎章閣), Gyoseogwan (校書館, publishing office), and Sigangwon (侍講院, Office for Crown Prince Education), but also regional administrative institutions such as the Gyeongsang Provincial Office (慶尙監營) and Yeongbyeon Prefecture (寧邊府). These woodblocks are analyzed as a foundation for knowledge dissemination and cultural heritage preservation, rather than as mere printing tools. The analysis identifies two representative groups: the Saseo Samgyeong (四書三經, Four Books and Three Classics) set and King Yeongjo’s eoje-seo (御製書, books written by the king). The Saseo Samgyeong woodblocks, produced simultaneously at central and regional levels, served as key tools for the wide distribution of Confucian texts. By contrast, eoje-seo was stored in designated repositories such as the state archives (史庫) and Bongmodang (奉謨堂, Hall of Reverence for Royal Instructions), emphasizing their symbolic and political importance. The study also examines how these woodblocks were relocated and integr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revealing that their present composition reflects both premodern block storage policies and colonial archival practices. It highlights the absence of many once-utilized but now-lost works, such as King Jeongjo’s eojeong and myeongchan-seo (御定·命撰書, royally commissioned works), yuneum (綸音, royal proclamations), and regional beongakbon (飜刻本, reprinted editions). This analysis shows that preservation was determined by political hierarchy, distribution strategies, and administrative systems. The findings reframe the Kyujanggak woodblock collection as a comprehensive legacy of Joseon’s state-driven publishing culture and provide essential primary sources for research on premodern Korean knowledge networks and print culture.

      • KCI등재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 -1 -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1994)의 재정비를 중심으로 -

        오세현,김수진,김하라,이경근,유정열,김대중,최천식,박민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7 No.-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1994년에 발간한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이 소장 자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규장각 소장 귀중본도서 조사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목록의 재정비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목록집의 재정비 외에도 귀중본사업은 1980년대 이후 중단된 귀중본 도서의 선정과 관리, 결본목록에 의거한 규장각 자료의 체계적 확충, ‘선본(善本) 문집 총서’(가칭)의 발간, ‘규장각 장서인(藏書印) 자료집’(가칭)의 발간을 주된 사업 목표로 한다. 본 논문이 지향하는 목록의 재정비에 대한 큰 얼개는 첫째 서명(書名)과 저자(著者)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미상을 밝히는 것, 둘째 간사년(刊寫年) 추정, 셋째 분류체계의 재조정이다. 서명과 저자명은 단순 오류를 비롯해 주변 문헌들과의 연계를 통해 저자명 미상을 밝힐 수 있는 사례들인데, 특히 원전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와 귀중본으로 분류된 도서에 대한 심층조사, 그리고 귀중본 해제 원고라는 여러 결과물을 토대로 가능했다. 간사년을 추정하는 작업은 서발문 정보에 대한 누락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문집의 간사년을 추정하는 것으로서 문집의 성격을 밝혀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분류체계의 재조정은 특히 학문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 문집이 언제 간행된 것이냐에 따라 수록 내용이 다르고, 문집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 나아가 중국본(中國本)의 재편집과 누락 문헌 등록을 통해 더욱 정확한 규장각의 소장 자료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는 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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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지』 서발문 연구

        채송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5 한국문화 Vol.0 No.111

        『규장각지』는 정조가 규장각 설립과 그 체제 확립을 위해 직접 기획하고 편찬을 지시한 관찬서이다. 총 7편의 서발문(序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서발문들을 통해 정조와 각신들이 규장각 및 『규장각지』에 부여한 의미와 기대를 분석하였다. 먼저 정조의 어제(御製) 서문 2편은 초초본·재초본과 정유자본에 각각 수록되어 있으며, 『규장각지』의 편찬 의의와 ‘지(誌)’의 이상적 형식을 정의하고 있다. 초초본 서문은 대화체 형식을 통해 편찬 경위를 서술하고, 정유자본 서문에서는 『규장각지』를 당대의 실용서이자 후대의 사료로 삼고자 하는 목적을 보다 분명히 한다. 이복원·이휘지·황경원·서명응·김종수의 발문은 각기 다른 시각에서 규장각과 『규장각지』의 의의와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모두 정조의 규장각 설립과 그 정신을 지지한다. 특히 이복원·이휘지·황경원은 규장각 제도 자체에 주목하고, 서명응은 『규장각지』의 내용 구성과 왕도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며, 김종수는 현직자의 입장에서 정조의 교지를 직접 인용해 충성과 책임 의식을 드러낸다. 이 서발문들은 『시경』·『서경』·사서(四書), 그리고 소식과 이몽양(李夢陽) 등의 중국 문헌을 폭넓게 인용함으로써 학술적 깊이를 더하며, 『규장각지』를 군자의 글쓰기이자 성군의 정치 이념을 반영한 전범(典範)으로 제시하고 있다. Gyujanggakji(奎章閣志) is an official publication compiled under the direct initiative of King Jeongjo to establish and institutionalize the Gyujanggak. It contains a total of seven prefaces and epilogues(序跋文). This study analyzes the meanings and expectations that King Jeongjo and his court officials attributed to the Gyujanggak and Gyujanggakji through these texts. The two written by King Jeongjo himself are found in the first and second drafts, as well as in the final Jeongyuja edition(丁酉字本). These prefaces define the ideal form of the ji (誌) genre while clarifying the compilation’s purpose. The preface in the first draft adopts a dialogic format to narrate the background of the project, while the Jeongyuja edition’s preface explicitly positions the book as a practical reference for the present and a historical record for future generations. The epilogues by Yi Bok-won, Yi Hwi-ji, Hwang Gyeong-won, Seo Myeong-eung, and Kim Jong-su each emphasize the institutional and intellectual value of the Gyujanggak and this book, while uniformly supporting Jeongjo’s vision. Yi Bok-won, Yi Hwi-ji, and Hwang Gyeong-won focus on the Gyujanggak’s institutional framework; Seo Myeong-eung highlights the book’s content structure and its reflection of Jeongjo’s political ideals; and Kim Jong-su, writing as a current official, directly cites royal instructions to express loyalty and responsibility. These prefaces and epilogues draw on a wide range of classical texts—including the Book of Songs (詩經), the Book of Documents (書經), the Four Books(四書), and writings by Chinese literati such as Su Shi(蘇軾) and Li Mengyang(李夢陽)—thereby enhancing the scholarly depth of Gyujanggakji. Collectively, they present the work as a model of gentlemanly writing and a literary embodiment of sage king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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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冊板의 현황과 특징

        권기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본고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판의 현황과 특징을 더욱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규장각 서고에 있는 책판 실물에 대한 조사와 아울러, 18~19세기 책판 목록들과 규장각 소장 책판을 활용한 인출본에 대한 분석 등을 병행하였다. 책판의 실물 조사 결과 간행기관(內閣, 春坊, 芸閣, 嶺營, 寧邊府 등) 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책판의 외형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 刊記의 미확인으로 부족했던 간행 정보에 대한 보완이 가능했다. 책판 목록과의 대조를 통해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들이 동일 서적의 책판들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범위의 책판 관리 체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인출본에 대한 분석은 규장각 소장 도서에 국한하였는데, 인출본에서 확인되는 印記와 內賜記에 대한 분석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중앙 관서에서 간행한 책판의 인출본은 주로 중앙정부에서 수집되어 활용된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방 책판의 인출본은 개인 소장본이 많았지만, 중앙 관서의 수요를 위해서 활용되는 비중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장각 소장 책판은 여러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순조~고종대와 18세기 영조대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체로 경전, 성리서, 역사서, 학습서 등 중앙정부와 왕실의 講學을 위한 책들이고, 후자는 국왕의 정치적 의지나 교훈을 담은 御製書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 구별된다.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와 시기는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중앙과 外方 사이의 통합적인 체계 속에서 책판의 간행과 인출, 보급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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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의 경과(1) - 2018년도 사업결과를 중심으로

        구슬아,우나영,김은슬,서진원,조성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규장각 Vol.54 No.-

        ‘규장각 소장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은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의 전수조사와 개별 상세서지조사카드 작성을 통해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수정판, 1994) 및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1982)의 정보 오류, 중복․合帙․누락 사항 등을 전면 수정하고 가칭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종합목록』을 발간하는 데 1차 목표를 둔다. 동시에 수정을 긴급히 요하는 기해제도서에 대한 수정과 우선해제대상서에 대한 해제 작성을 통해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제고하고 이용과 관리 양측면에 정확성․전문성을 기하는 데 2차 목표를 둔다. 이 논문에서는 목록 오류 수정의 기준 등 주요 사업 방법을 소개하고 2018년도 사업대상인 詩類․春秋類․禮類․樂類․孝經類․四書類 도서 약 1,200여 건에 대한 상세서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오류 수정의 주요 성과를 제시하였다. 조사 결과 서명․편저자․판사항․발행사항․동판본 및 사부분류 등 주요 항목에서 未詳의 정보를 새롭게 밝혀내거나 정보 오류를 수정하였다. 나아가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심화조사를 새롭게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성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규장각 자료에 국가나 官署 주도의 경서 향유 양상을 드러내는 정보가 많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자료에 기재된 口訣, 諺解 등의 항목을 ‘비고’란에 기술하고 관련 내용을 목록화 하는 한편, 經筵에서 교재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標識는 심화 조사하여 내용 서지를 대폭 보완하였다. 둘째, 형태서지 및 내용서지에 대한 기술이 미비한 중국본 경부 자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기술규칙을 수립하고 추후 목록집에 중복 수록을 방지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구체화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古刊本, 희귀본 擧業書 등이 규장각에 다수 소장되어 있음을 새롭게 밝히고, 한국본 경부 자료의 底本이 된 중국본 경부 자료의 구체적 활용 양상을 실증하였다. 이와 같은 심화조사 및 목록화를 통해 이용자들을 위한 정확한 서지 정보 제공, 규장각 소장 자료의 효율적 보존 관리 및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KCI등재

        1915년 조선총독부의 고려대장경 인출 사업

        양혜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3 규장각 Vol.62 No.-

        본고에서는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인출한 고려대장경 관련 자료를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그간 불분명하던 자료들의 성격과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명하였다. 자료의 첫 번째 분류는 규장각에 소장된 3종 자료로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관련 자료군’인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海士일10, 한은40) - 『大藏經綴本目錄』(奎26757) -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 인경본(奎15036)’이다. 두 번째는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3부’로,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과 그 동일 판본인 일본 東京 宮内庁 書陵部 소장본 및 일본 京都 泉涌寺 소장본이다.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은 1915년 고려대장경의 인쇄 경위와 인쇄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일본 천황가에 바치기 위해 조선 총독이던 寺内正毅가 해인사 대장경을 절본 1부, 철본 2부로 총 3부 인출하였다. 현재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은 그 중 ‘철본’ 대장경으로, 철본이란 선장본을 뜻한다. 『大藏經綴本目錄』은 규장각 소장 철본 고려대장경의 經名, 卷數, 張數, 冊次 등을 정리한 것으로, 그 내용은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의 현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여기 수록된 대장경의 경전 종수와 권수를 헤아리면 1,511종 6,805권이 되는데, 이는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 수록 小田幹治朗의 「大藏經印刷終了報告」에서 전체 경전이 1,511종 6,805권이라 언급한 것과 일치한다. 즉, 『大藏經綴本目錄』의 정리 결과를 근거로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이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은 위 두 자료의 기록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며,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서술한 조선 전통의 대장경 제작 기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이 세 자료는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 주는 자료인 셈이다. 한편, 『大藏經綴本目錄』에서 고려대장경의 경전 종수와 권수를 각각 1,511종 6,805권으로 정리한 것은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1,514종, 6,808권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大藏經綴本目錄』에서 「補遺目錄」, 『金剛頂瑜伽念珠經』, 『蓮華眼陀羅尼經』의 3종 3권을 별건으로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밝혔다.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언급한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절본 1부, 철본 2부는 그 소장처가 불분명하였는데, 실물 조사를 통해 각각 일본 교토 泉涌寺,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본 도쿄 궁내청 書陵部 소장 고려대장경을 가리킨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書陵部 소장 대장경 사이에서 나온 카드를 통해,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말하는 갑본이 泉涌寺 대장경, 을본이 규장각 대장경, 병본이 書陵部 대장경임도 밝혔다.

      • KCI등재후보

        等狀을 통해 본 조선후기 聯名呈訴와 公論 형성

        金景淑(Kim Kyeongsook)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2010 규장각 Vol.36 No.-

        이 논문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等狀 1,125건을 대상으로 조선후기 연명정소 활동의 실태와 공론 형성의 특성을 분석한 글이다. 등장은 2인 이상이 연명으로 정소하는 문서로 1인 정소와는 달리 다수의 관련인 들이 의견을 결집하고 단체 행동을 한 결과물이었다. 연명 정소는 18세기 후반 이후 활성화하며 사회적 추세를 형성하였는데, 조선후기 대표적인 사회 문제에 해당하는 산송, 토지, 부세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50인 이상의 대규모 정소에서는 특히 정려?증직 관련 활동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보였다. 연명 정소는 친족집단인 족인 및 문중, 서원?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생, 그리고 향촌공동체의 民人 등 세 사회집단이 주도하면서 각각 문중 공론, 유생 공론, 향촌 공론을 형성하였다. 족인들은 爲先事業을 중심으로 문중 차원에서 문중 공론을 형성하고 대규모 정소활동을 전개하였다. 유생들은 정려?증직 등 성리학적 사회질서의 유지와 연관된 문제를 중심으로 군현 단위의 공론을 형성하며 중대규모의 정소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인들은 조선후기 최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부세 문제를 중심으로 촌락 단위에서 중소규모의 향촌 공론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정소활동과 공론 형성의 특성은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각 사회집단들이 당면한 사회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This study analyzes the reality of filing petitions jointly and the characteristics of public opinion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by examining 1,125 pieces of “Deungjang (等狀)” paper which are owned by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Deungjang is a petition filed by more than two people. Unlike the oneperson-filing petition, these joint petitions can be seen as a product of collective efforts to gather opinions and organize group actions. Joint petitions were usually filed by three social groups - clan (族人), confucian scholars (儒生) of local confucian temples, and the commoners of the local communities, by whom public opinions were formed in various levels of society. Clan groups were interested in the ancestor-related affairs such as conflicts on ancestral grave sites and family genealogies, and thus endeavored to draw an agreement within a particular clan concerning those issues. Confucian scholars’ joint petitions were focused on the issues such as commemoration and decoration that were essential in sustaining neo-confucian ideology and social order. Their arguments formed public opinions of local scholars. Commoners tackled tax issues and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villages’ public opinions about it. In this sense, the acts of filing petitions and thereby drawing a consensus within groups could be said to result from each group’s collective efforts to resolve social problems and conflicts in the turmoil of great socio-economic changes during the late Chosun period.

      • KCI등재후보

        19세기 조선의 曆算 매뉴얼 『推步捷例』

        전용훈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4 규장각 Vol.44 No.-

        『推步捷例』(古7300-8)는 19세기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南秉吉(1820~1869)이 1861년에 편찬하고 간행한 것으로, 관상감의 관원들이 時憲曆法에 따라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고 일용역서를 작성하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 편찬한 역산 매뉴얼이다. 각종의 수표를 이용하여 원하는 계산을 간단하고 빠르게 하기 위한 계산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을 뿐, 계산법에 적용된 수학적 원리나 천문학적 의미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은 전혀 없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推步捷例』와 『七政步法』(奎12508), 그리고 『作曆式』(奎12506)이라는 책을 상호 대조해보면, 『推步捷例』는 『七政步法』과 『作曆式』의 합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한 책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七政步法』(奎12508)과 『作曆式』(奎12506)은 원래 한 권의 책이었으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분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推步捷例』에는 일용 역서에서 날짜별 길흉의기를 나타내는 역주를 기입하는 방법도 수록하고 있다.

      • KCI등재

        대한제국기 각군읍지와 『읍지대장』

        이재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9 No.-

        1899년(광무 3) 대한제국 내부에서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동안 1899년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한성부를 포함한 전국 342개 부ㆍ군에서 제작한 읍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규장각 소장의 『읍지대장』과 규장각의 청구기호는 1899년지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총독부 참사관실에서 조사한 『읍지대장』은 각군읍지를 도별 군별로 번호와 읍지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 읍지를 제외하면 1899년에 제작한 312개 군의 읍지 목록이다. 『읍지대장』에 실린 5종 38개 읍지와 강원도 읍지 23종은 내부의 읍지수상령과 관계없는 읍지이다. 강원도의 22종 25개 고을 33개 읍지는 1910년대 초반 총독부 참사관실의 지시로 강원도청에서 제작한 것이며, 강원도 양양군 읍지인 『현산지』도 1911년경에 편찬한 읍지이다. 장서각은 강원도 26개 군의 1899년지를 소장하고 있다. 규장각 도서 중에는 1899년에 제작한 각군읍지가 경기도부터 함경북도까지 일정한 청구번호대에 연속해 있다. 1899년 당시의 342개 부ㆍ군 가운데, 강원도 26개 군을 제외하면, 『읍지대장』에서는 한성부, 경상북도 경주군, 평안남도 성천군, 함경남도 함흥군의 4개 읍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읍지대장』과 규장각 목록에 실려 있던 평안북도 영변군 읍지는 분실한 상태이며, 성천군 읍지는 ‘후사본 읍지’ 중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규장각과 장서각 도서에서 1899년지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한성부ㆍ경주군ㆍ영변군ㆍ함흥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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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全州全氏 中人집안 고문서 고찰: 全得龜(1740~?) 가계를 중심으로

        박철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8 No.-

        이 글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全得龜 집안 고문서를 살펴본 것이다. 전득구 집안은 전주전씨 중인집안의 일원으로 18세기 이후 주요 잡과 배출 가계인 全爾常의 次男 집안이다. 현재 규장각 소장 문서 중에는 전득구를 비롯하여 그의 후손들이 간직하였던 집안 고문서가 적어도 199점이 확인된다. 해당 집안의 고문서는 全得龜의 장남 全興大의 활동시기 주로 형성되어 19세기 말까지 집안에 소장되다가 일제강점기 고문서상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에 판매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문서는 시기적으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걸쳐져있다. 문서 중에는 告身 및 官誥 등의 임명문서를 비롯하여 공인문서, 토지 및 가옥 매매문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토지 및 가옥 매매문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舊文書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전득구 집안에서 19세기 말까지 소유하였던 토지 및 가옥 문서의 연계문서를 찾아 문서 간의 관계 정리를 시도하고, 이를 표로 제시하였다. 전득구 집안의 토지 및 가옥 매매 문서들은 중인의 경제활동이라는 관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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