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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반제국주의적으로 역사적 시드기야 읽기

        유윤종 ( Yoo¸ Yoon-jong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21 서양고대사연구 Vol.61 No.-

        주전 1천년대에 왕조를 이루었던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각각 앗시리아와 바벨로니아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그 후 포로 및 포로 후기에 편집된 히브리 성서에 묘사된 역사는 왕정 시대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 글은 남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597-586 BC)에 초점을 맞춘다. 남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 시드기야에 관하여 성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 글은 반제국주의적 비평으로 구약성서에 묘사된 히스기야의 부정적 평가에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음을 밝히고, 역사적 시드기야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반제국주의적 비평은 제국주의를 힘이 센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자율성을 빼앗고 착취하는 억압의 형태로 파악하고, 그에 수반되는 제반의 부정적 묘사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구약성서의 본문에도 제국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역사서술이 나타나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글은 그 한 예를 시드기야에 관한 역사적 서술에서 찾고자 한다. 스티프(Stipp)는 예레미야서에 묘사된 시드기야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구분한 뒤, 긍정적인 묘사는 유다 멸망 전의 기록이고, 부정적인 묘사는 유다 멸망 후의 기록이라고 지적하였다. 유다 멸망 후의 기록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희생이 된 유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의한 유다의 멸망에 대해 성서 기자들은 그 책임을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돌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지켜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의 역사관으로 유다의 멸망을 평가하였다. 이 글은 예레미야, 에스겔, 역대기에 묘사된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 및 페르시아 제국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고 주장한다. 포로와 포로 후기의 작품에는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시드기야의 외교적 노력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였다.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왕의 외교적 노력을 하나님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제국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포로 이전 예언서에서 예언자들은 왕과 백성들이 이집트나 앗시리아와 같은 제국주의 세력과 외교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하여 매우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러 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예언자들의 비판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성서 기자들이 제국주의적 관점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포로와 포로 후기의 성서를 읽고 해석할 경우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성서 시대 이후의 랍비 문학에서 시드기야는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연약한 나라의 왕으로 제국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비극의 왕으로 재해석되었다. 이것은 제국주의적 억압이 걷힌 상황에서 성서에 묘사된 시드기야에 관한 신학적 편견이 걷힐 수 있다는 한 예시이기도 하다. This paper purposes to reveal the historical Zedekiah as a weak and tragic king who struggled to survive in the arena of imperial powers, focusing on Zedekiah’s reign (597-586) with anti-imperialism. An anti-imperial approach defines imperialism as ‘inherently evil’ and as a ‘cultural dominion and political sovereignty of one nation and against another.’ This study starts with asking why Zedekiah is portrayed as diverse characters in the book of Jeremiah which is already pointed out by Stipp. According to Stipp, early writings describe Zedekiah more favorably than later writings. He sees that there are major shifts from positive to negative parallel to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explains that the negative theological stance on Zedekiah reflects the perspective of later writers themselves and their communities. This paper argues that negative descriptions of Zedekiah in Jeremiah, Ezekiel, and Chronicles reflect the imperial perspective of Babylon and Persia. In the pre-exilic prophetic writings, we see that prophets blamed kings and people for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imperial powers of Egypt and Assyria. The theological mood regarding imperial powers is changed in exilic and post-exilic writings. Rather than criticizing the imperial powers of Babylon and Persia, later writers describe Zedekiah negatively by aligning the theological stance with the imperial powers of Babylon and Persia in order to maintain the theology of God’s sovereignty over history. It reveals that biblical writers described Zedekiah within the political autonomy which imperial powers allowed. In later Jewish literature, Zedekiah was evaluated more favorably. Zedekiah is depicted as a sympathetic and pathetic man. Accordingly it is implied that the anti-imperial approach helps to understand the real history by eliminating imperialism-aligned theological and political prejudices described in the Bible.

      • KCI등재

        문화제국주의의 비판적 고찰

        임동욱(Dong-Uk Yim) 한국언론정보학회 2009 한국언론정보학보 Vol.45 No.1

        본 연구는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문화제국주의 논쟁에서 가장 큰 쟁점들을 정리하고 평가분석ㆍ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 쟁점의 하나는 국제적 문화 유동(교류)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이 교류에 대한 해석을 두고 문화제국주의가 끝났느냐 아니면 계속되고 있느냐 하는 이른바 ‘문화제국주의의 역전 현상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논쟁은 이러한 유동이 세계화의 연속이냐 아니면 지역화의 일환이냐, 또는 이 유동이 동질화를 불러일으키느냐 아니면 혼성으로 이어지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대체적인 견해는 예전의 문화제국주의, 주로 1960년대와 1970~1980년대식의 일방적인 문화제국주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초국적 미디어 기업에 의한 세계적 지배는 형태를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미디어) 제국주의 논쟁에서는 국가 간의 문화교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문화제국주의는 존재하고 있는가? 세계화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세계화는 또 다른 이름의 제국주의인가? 결론적으로 국제적 문화 유동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자연 현상이나 인류의 진보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한 현상은 하나의 요소나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유동도 다양한 여러 현상과 관계 등이 관계하여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것이다. 이는 외부와 내부의 모순, 문화 유동과 관계된 국가와 사회의 내부ㆍ외부 관계, 계급, 사회적ㆍ문화적 상황 등과 관련이 있다. 최근의 문화(미디어)제국주의 논쟁에서도 특정한 나라의 편성과 장르에서 지역화와 세계화가 맞물려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특정 프로그램과 문화에 대한 문화 해석이 그 나라의 문화와 양식에 맞게 변형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문화의 유동은 양면성이 있다. 어떤 시기나 어느 국가에서는 그것이 이롭거나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해롭거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제적 문화 유동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요소와 세계화, 지역화, 동질화, 혼성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문화제국주의론이나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양측 모두 동전의 한 면만을 보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문화제국주의 현상이 끝났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국제적 문화 유동에서 미국과 초국적 미디어 기업의 지배(영향력)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원인을 외부의 적으로만 돌려버리는 단선적인 문화제국주의가 아니라 복잡한 국제적 문화유동의 과정을 밝혀 지배적 관계들(또는 과단한 영향력)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This article focuses on analysing and interpreting cultural imperialism issues that have long been debated. One of issues among them is related to the characteristics of international cultural fluid. What had been debated is that cultural imperialism has been ended or not and the debates were connected to the so called 'reverse cultural imperialism'. The other issue is about this fluid is the continuation of globalization or a part of localization and this is related to the phenomena of cultural homogenization or hybrid. General trend was that simplistic cultural imperialism which had been occurred during the 1970s and 1980s was no longer effective but global dominance by transnational global media is still strong and worldwide. Therefore my research interest is centered on how they look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s with regard to cultural imperialism. And is the framework of cultural imperialism thesis still effective tool in researching and analysing international cultural flows? How do we look globalization relating to international exchanges? Is globalization an another aspect of imperialism? In conclusion, international cultural fluid is not so simple. like natural phenomena or human progress, a phenomenon is not consisted of a single factor or relation. Cultural fluid is a complex one mixed with various phenomena and relations. This is related to internal and external contradictions, internal and external dynamics of a society and nation, and social and cultural life of human beings. Recent research results show that globalization and localization are closely related to many country's programming schedule, and particular cultural interpretation of specific programmes and culture are adopted to the country's culture and patterns. Cultural fluid has both-sides. One the hand it has useful and positive sides and on the other hand it has harmful and negative aspects. Imperialistic factor, globalization, cultural homogenization or hybrid are all operated and functioned together in cultual fluid. It is difficult to say that cultural imperialism thesis has been ended because American and global media's dominance is still effective. What needed at this time for us is a complex and dynamic analysis of international cultural fluid instead of simplistic cultural imperialism.

      • 맑스의 민족주의의 이해에 대하여 : 레닌의 제국주의론으로

        노태구 경기대학교 2000 論文集 Vol.44 No.1

        맑스의 저작에서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동양은 맑스주의의 범주내에서 서구의 정보를 접하는 초창기의 서구로 취급되고 있다. 레닌의 사고에 있어서는 동방은,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로 통합되는 것을 시사한 제국주의의 이론을 통하여 맑스주의내에 포함되어지는 것이다. 이 단계의 성격은 레닌에 따르면 동방은 반드시 그 스스로는 충분하게 자본주의자로 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부분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레닌은 이러한 이론적 포용의 대가는 그 특수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함이 없이 맑스주의의 이론내로 포함시켰다. 동시에 이 특수성은 더 이상 동양주의적 단어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레닌이 제국주의의 시기전에 동양의 역사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고,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쟁점에 대해 어떠한 사려깊은 고려를 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으로 그들은 동양주의적 은유와 이미지로 충만되어 있다. 레닌은 동방을 정체되어 있고 동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 외에서도 레닌은 러시아를 '아시아적'인 것으로 규정하였을 때, 그 용어는 후진성 그리고 심지어 야만성을 위한 은유로서 기능하였다. 그러나 좀 더 기본적인 의미에서 레닌의 이론은 동양주의의 파라다임의 토대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왜냐하면 제국주의가 어떻게 지구의 후진적 부분을 자본주의의 영향력하에 둘 것인가를 서술함에 있어서 레닌은 그 스스로 동방의 특수성을 국한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또 동구를 동일한 과정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반대로 레닌은 일본은 제국주의국가의 수준에 속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이 구분은 더 이상 '동양'과 '서양'의 개념을 불가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제국주의국가와 식민지화된 국가, 상대적으로 선진적이고 상대적으로 후진인 국가, 억압민족과 피억압민족으로 구분하였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당시로는 얼마의 절묘한 솜씨로 처리한 묘기였다. 제국주의론에서 동방은 맑스주의이론 속으로 통합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혁명에 있어서 동방의 중요성은 매우 직접적이며 그리고 즉시에 이 혁명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식민지문제와 민족문제는 레닌의 경우는 복수심으로 결합시킨데 반해, 맑스는 분리된 잇슈로 취급했다. 그리고 맑스에 있어서와 같이 불안의 잠재적 요소로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제 민족문제의 형태로서 식민지 문제는 무산대중 혁명의 동맹자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레닌에 의해 기도된 맑스주의이론의 발전과 재구성의 중요성은 (다른 영역에서와 같이) 과대평가되어질 수 없다. 맑스주의이론에서 차지하는 비서구세계의 위치는 사회주의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급진적으로 재고되었다. 이는 물론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으며 항상 직접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더욱 더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되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관점과 관련하여 레닌이론의 두가지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Seth, 1995 :49) 가끔 지적하였다시피 레닌은 식민지 민족주의운동을 억압국가의 민족주의가 어떤 점에서는 반동적으로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결코 고려하지 않고 부르죠아 - 민주주의로 서술하였다. 이유는 제국주의의 반테제로서 떠오르는 (그리고 여기에는 그러므로 그 정치적 내용에 관해 어떠한 특별한 결론도 수반하지 않는) 식민지민족주의의 새로운 이해에 따라, 동방은 여전히 민주주의 등을 옹호할 성장중의 자산계급을 유지하면서 서방을 따라 역사적 단계로 출현하는 동방민족주의의 진화적 견해를 소유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전망은 모순적이지 않다. 그러나 레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들 두가지 시각이 반드시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반세기 그리고 그 이상의 역사적 경험으로 때로는 맑스주의자들이 (그러나 맑스주의자 뿐만 아니라) 놀라고 자주 곤경스러워 하면서 심지어 어느 의미에서 반제국주의로 있는 피압박민족의 민족주의운동이 언제나 자유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되풀이하여 입증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해답으로 창출된 식민지 민족주의와, 지구의 후진지역의 역사적 진화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식민지 민족주의의 사이에 단순한 잘못으로 구분을 하는 이러한 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식민지 민족주의가 반제국주의적이지만 어떤 다른 의미에서는 부르죠아민주주의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고 심지어 반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이들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세계혁명의 대의명분이 달리는 진보적일 수 없는 사건들과 과정에 의해서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 단계를 다루지 않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치적으로 혁명적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진보적이라는 주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레닌이 제2국제당의 완고하고 결정론적이며 진화론적인 맑스주의와 단호하게 관계를 단절하고 난 이후에는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레닌의 맑스주의에 중요하게 되었다. 레닌은 역사의 진화론적 (그리고 목적론적) 해석에서 정치적 선택을 기초로 하는 것을 계속하였다. 역사의 해석속에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역사적 진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발견되며, 진보의 각종 관념이 (정치적이고 그리고 역사적/진화적인) 다른 것을 보증함으로써, 이러한 이중적 의미에서 진화적이며 진보적이었다. 레닌이론의 두 번째 결과는 식민지와 민족문제를 융합함에 있어서 식민지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도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억압민족주의와 피억압민족주의 사이의 구분을 중심 쟁점으로 함으로써 레닌은 다음과 같은 다른 가능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민족형성의 문화적 그리고/ 또는 언어적, 역사적 차원, 그리고 진보적인 다양성에 관한 이러한 사회주의적 요구를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것을 배격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레닌은 아마도 이와 같은 문제들을 구체적인 혁명적 덕목과 비교하여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것으로 취급한 것 같다. 실로 그와 같은 문제가 틀림없이 레닌의 반응을 기대하며 제기되었을 때, 레닌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전념하지 않았다.(Seth, 1995 :48-51) 사실상 맑스는 이런 문제에 역점을 두지 않았다. 맑스와 엥겔스의 민족문제에 관한 저서는, 홉슨의 말에 의하면, 민족과 민족해방의 운동은 그들 스스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세계혁명의 과정, 이익과 전략과 관련하여서만 고려된다는 확고한 신념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레닌의 저술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레닌은 어떤 민족투쟁이 세계혁명에 기여하였는가 하는 여부를 판별할 때, 임시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실용적 기초를 제공하기보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론화'에 의하여 암시되는 바로 그 체계화는 역시 맑스의 저술에서 결여된 것은 레닌의 저술로부터도 명백히 제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억압민족과 피억압민족사이의 구별이 주요한 쟁점이 되고, 그리고 이러한 기본위에서 진보적 민족주의와 반동적 민족주의를 구분함으로써, 레닌의 이론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레닌주의의 구체화속에서 맑시즘내의 문제로하여 그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 KCI등재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와 우크라이나

        박노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22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9 No.3

        The present paper deals with Marx’ and Engels’ assessment of nineteenth-century Russian imperialism, Lenin’s characterizations of early twentieth-century Tsarist imperialism, Soviet Union’s ‘imperial’ characteristics, and, last but not least, with the main traits of Russia’s post-Soviet imperialism, the character of its current invasion of Ukraine, and the questions of leftist reactions to this invasion. Already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Marx and Engels discussed the ‘abnormality’ of Tsarist imperialism, with its continuity to post-fifteenth century continental territorial expansion of more ‘feudal’ (pre-modern) kind and its seeming lack of interconnectedness with the development of industrial capitalism (lagging behind, in Russia’s case). Lenin, famously, defined this ‘abnormality’ as Russia’s ‘military-feudal imperialism.’ As the Bolshevik government established by Leninists in 1917 was turning increasingly conservative in the wake of Stalin’s consolidation of dictatorial power, Soviet Union was also demonstrating certain distinctively ‘imperial’ features. It was, however, a more ‘participatory’ empire, with local non-Russian cadres coopted into the Stalinist bureaucratic apparatus as junior partners of Moscow’s apparatchiks. Since these apparatchiks were also constantly using the socialist rhetoric inherited from the 1917 revolution, the main legitimizing event for their regime, it was sometimes difficult to discern the ‘imperial’ traits inherent in Soviet Union’s political and economic structure. In the wake of the Soviet collapse, the new Russian state, especially after 2000, consolidated the patterns which one, with Lenin’s definition in mind, can characterize as ‘military-resource imperialism.’ Lacking either financial or technologic hegemony, Russia’s imperialism is just as inherently weaker compared to its American (Western) competitors as Russia’s ‘abnormal’ imperialism used to be in the age of Marx and Engels. However, the relative weakness of Russian imperialism, its characteristics as a junior competitor to the imperialism of the world-systemic core, should not be used as a ground to see it as any kind of ‘lesser evil’ compared to its stronger core rivals. As the present paper argues, the international leftist movement, including Russian leftists, has all grounds to support a defeat of Russian imperialist invasion of Ukraine. 본 논문은 19세기 그 당시의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와 20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견해, 나아가서 스탈린주의의 본격적 등장 이후의 ‘제국’으로서의 소련의 특성과 소련 몰락 이후의 러시아 제국주의의 여러 특징, 그리고 러시아 제국주의가 현재에 우크라이나와 벌이는 전쟁의 성격과 그 전쟁에 대한 좌파의 대응의 문제에 대해 논해 봤다. 산업 자본주의 발전 이전에 이미 본격화되고, 서구와 달리 19세기 말까지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이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않았던 러시아 제국주의는 마르크스나 엥겔스에 의해서 그 ‘기형성’이나 전근대성 등이 일찍이 지적됐다. 이 ‘기형성’에 대해 레닌이 ‘군사-봉건적 제국주의’라고 정의한 바 있다. 1917년 반(反)제국주의적 10월 혁명의 변질, 혁명 와중에서 출현된 급진적 정권의 보수화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 소련의 새로운 제국은 ‘참여형’ 제국이었다. 이 제국은 러시아 주변부 이(異)민족들의 간부층을 ‘주니어 파트너’로서 포섭, 관리했다. 거기에다 1917년 혁명으로부터 이어받아 정권 명분 차원에서 이용해온 사회주의적 수사까지 영향을 미쳐, 국제 좌파의 많은 구성원들은 ‘제국’으로서의 소련의 성격을 다소 간과했다. 소련 몰락 이후에는 러시아는 일종의 ‘군사-자원의 제국주의’ 패턴을 굳혀 왔다. 금융, 기술 등의 차원에서의 패권이 결여된 이 ‘하위’ 제국주의는, 미국을 비롯한 구미권 (세계 체제 중심부) 세력에 비해 그 총체적인 세계적 비중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러시아가 다시 19세기의 ‘기형적’ 제국주의로 – 다만, 자본주의 세계 체제 발전의 새 단계에서 – 돌아왔다고 볼 여지가 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상대적 약체성(性)이나 미국 제국주의의 하위 경쟁 세력으로서의 그 입장에 중점을 두어서 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일종의 ‘차악’으로 보는 시각은, 과거의 소련의 제국적 성격에 대한 간과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좌파의 일각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시각을 극복해 러시아 제국주의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패배를 지지하는 것이 좌파로서 보다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점을 논증하려 한다.

      • KCI등재

        종전/해방 직후(1945.8~1948.7) 남한 담론 공간과 `적색 제국주의 소련`상(相·像)

        임종명(Im, Chong-Myong) 고려사학회 2016 한국사학보 Vol.- No.62

        종전/해방 직후 남한의 우익 엘리트들은 당대 담론 공간에서 민족주의를 척도로 하여 소련 사회주의의 세계적 성격을 부인하고, 그것을 소련 국가 이익 중심의 이념으로 일국화 또는 국가화하고, 나아가 그것을 제국주의 이념화한다. 이어서, 소련 제국주의는 민족적(ethnical)으로는 슬라브인을 위한 것으로 제시된다. 이와 같은 소련과 소련 제국주의의 슬라브화에 이어, 그것들은 장기 지속의 것으로 역사화되고, 다시 ‘자연화’되어, 소련 제국주의는 슬라브 민족의 내재적인 것으로 본능화된다. 그리고 글들은 제정 러시아나 소련 모두를 ‘재물과 자원, 경제 이권과 영토’ 확보를 목표로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수단을 동원해 외부 세계로 침략과 팽창을 거듭한 것으로 재현한다. 이로써 ‘소련의 적색 제국주의’상과 ‘공산주의의 적색 제국주의 이념화’의 재현·표상 작업은 마무리된다. 이어서 소련의 적색 제국주의는 세계적 사태로서, 그리고 다시 한국의 문제로 재현된다. 먼저, 소련 적색 제국주의 침략 대상지의 한국 연장은 소련의 동아시아 지정학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의 동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련이 한국에서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재현되는데, 이것은 소련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한민족의 적대적 타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련 타자화는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을 민족의 타자로 재현 표상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명과 정조, 또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사람들을 소련 제국주의의 현재적 피해자로, 또 남한 사람들을 소련 제국주의의 잠재적 희생자로 만든다. 잠재적 희생자화는 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반공·반소·반북 선전과 선동, 나아가 반공 반소의 정치적 주체 생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목적의 소련 적색 제국주의화는 혈연주의적 민족 상상법을 지지 강화하는 한편 한민족을 ‘이념의 공동체’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후자는 다시 반제 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초기 냉전 시기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블록에로의 한국 편입을 정당화하는 관념상의 자원을 제공하였다. 바로 이것이 종전/해방 직후의 ‘소련 적색 제국주의상’이 가진 정치적 함의였다. From the perspective of nationalism, the rightist elites in post-World War and post-Liberation South Korea, invalidating the global meanings of Soviet socialism, nationalized it as a Soviet-oriented ideology, and even determined it to be an imperialist one. Then, the imperialism of the Soviet was represented as what was ethnically for the Slavic people. The Slavization of the Soviet and its imperialism was followed by the historicization of the two as long-duration entities and again by the nationalization of them as a kind of instinct of the Slavic people. The works related represent the Soviet as what constantly pursued its outward invasion and external growth by the ideological means of socialism and communism for the purpose of securing financial means, natural resources, and economic interests, and territorial expansion. In this way, the Soviet was represented as the red imperialist state, and socialism and communism as the Soviet red imperialism. Subsequently, the red imperialism of the Soviet was represented as a global issue, and, accordingly, as a Korean problem. First of all, the argued geopolitics of the East Asia and the geopolitical location of Korea were exploited to show that Korea was a target for the Soviet imperialism. And then, the red imperialist Soviet was represented as seeking its own political and economic interests in Korea, which suggested the Soviet as the national Other of Korea in terms of politics and economy. The Othering of the Soviet was to nationally otherize Korean communists, too, for their loyalty to the Soviet. At the same time, the Othering was to represent common North Korean people as actual victims to the Soviet imperialism, and also South Koreans as potential ones in terms of their physical life, sexual chastity and fidelity, and family life. Their victimization meant to propagate anti-communism ideology and anti-Soviet and anti-North Korean sentiments throughout South Korea, and ultimately fashion South Koreans into a political anti-communist and anti-Soviet subject. These goals of representing the Soviet as a red imperialism supported and solidified the blood-oriented nationalism while transforming the Korean nation into a community of an ideology. The transformation provided the discursive materials to South Korean elites who wanted to legitimize the inclusion of South Korea into American bloc from the viewpoint of anti-imperialistic nationalism. This constituted the political implication of the representation of the Soviet as a red imperialism in the post-Liberation and post-World War II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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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 식민지 분할과 전쟁 그리고 비평화적 접근에 대한 고찰

        이헌경 사단법인 한국평화연구학회 2020 평화학연구 Vol.21 No.3

        This paper focuses on identifying imperialism from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perspectives. And it also discusses the penetration of industrial revolution as well as imperialism, the division of colonies between imperialist countries and the war of colonial occupation, and the exploitation of and non-peaceful approach to colonial states. Since the Industrial Revolution, Western imperialist powers have engaged in predatory trade with numerous colonial states in the Americas, Africa and Asia. They have committed harsh acts such as coercion, oppression, exploitation and looting of the governed. This led to material difficulties, and mental and physical suffering in the dismal state of governance. Of course, there were differences in the degree of harsh behavior, but they had to suffer unhappiness that was difficult to avoid. However, as Marx-Lenin argued, the last stage of capitalism was imperialism, socialism was not brought in due to the destruction of imperialism, and rather communist socialism had come to an end. Moreover, the theory of inviolability that imperialist war breaks out due to capitalist development has also lost its momentum. After that, the tendency to view neoliberalism following the dependency theory as a product of imperialism has since been wrong. It concerns about network and cultural imperialism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re only premature. In the pluralistic high-tech industrial society, private companies and multinational corporations pursue economic benefits through various forms of penetration. However, imperialist sovereignty invasion and colonialism will not recur. This is because it will never repeat the bad precedent left by imperialism. 본 논문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점의 제국주의를 파악하고,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침투, 제국주의 국가 간 식민지 분할과 식민지 쟁탈 전쟁, 그리고 식민국가에 대한 착취와 비평화적 접근에 대해 논하고 있다. 산업혁명 후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수많은 식민국가들을 대상으로 약탈무역을 했으며, 피지배민에 대한 강압, 탄압, 착취, 약탈 등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이로 인해 피지배민들은 암울한 피지배 상태에서 물질적 어려움과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었다. 물론 가혹 행위의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피해가기 어려운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맑스-레닌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의 최후단계가 제국주의이며, 제국주의 멸망에 따른 사회주의가 도래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산사회주의가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 발달로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쟁불가피론도 동력을 잃었다. 그 뒤 종속이론에 이어 신자유주의를 제국주의의 산물로 보는 경향은 잘못되었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네트워크 제국주의와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는 시기상조의 기우에 불과하다. 다원주의적 첨단산업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침투를 통해 민간기업과 다국적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 가지만 제국주의적 주권 침탈과 식민지주의는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결코 제국주의가 남긴 나쁜 선례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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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열강 제국주의동맹이 일본의 조선침략과 한반도에 미친 영향

        김주삼 한국동북아학회 2009 한국동북아논총 Vol.14 No.1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relations between the imperialistic behaviors of Japan and western powers shown in the process of the Japanese invasion and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international political conditions of East Asia in the late 19th century were confusing and complicating as invasion of western powers continued. Korea was forcibly occupied by Japan as it was blind to international political conditions though both nations had fought in the Imjin War in the 16th century and the Byeongja War in the 17th century. Japanese invasion of Korea had been prepared from 1870. It was an international crime which remains to be seriously considered in the 21st century, especially, the liability for reparation between North Korea and Japan, which has not yet been resolved. Japanese invasion of Korea came from an imperialistic idea to secure its economic interests as a result of modernization in 1868. Japan is considered as a nation of imperialistic plunder as it threatened and occupied Korea after they won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Russo-Japanese War. The invasion of Korea was a joint work obtained through aggressive alliances between Japan and western powers such as America, England and Russia which supported the Japanese invasion. In spite of the imperial alliance between the two parties, Korean upper class with political power were divided into the Hueingseon party and the Min Family party. The split provided a pretext for western powers to invade Korea. Korean elites and citizenship were mature and powerful leadership to drive innovation of the political systems was not enough in the late 19th century. However, a historical error of Japan and western powers to Korea can not be exempted in that it was a forceful behavior that occupied a weak nation and destructed international peace through the imperial alliance. After the forced occupation of Korea, they maintained the imperial alliance, ignoring internal peace to pursue their own economic interests.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completion of World War 2 was a product derived from imperial alliance between Japan, America, and Russia maintained during th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The past imperialistic behaviors of Japan and western powers should be reevaluated to pursue a universal value of human beings in the 21st century. Therefore, this study suggests that the problems in Korean peninsula can be solved only when the Korean people solve their national problem based on independent capability. 이 논문은 근대기 조선침략과정에서 나타난 일본과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행태와 한반도분단의 연관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19세기말 동아시아국제정세는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침투가 계속되면서 혼란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조선은 16세기 임진왜란과 17세기 병자호란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 국제정세에 대한 대외인식의 부족으로 결국 일본에 강제점령당하고 말았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1870년대 이후부터 이미 준비되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국제범죄행위이며, 이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해결해야 할 국제적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북한과 일본이 아직 과거 식민지 배상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그들이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룬 결과, 자국의 경제적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조선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승리 이후 강제로 위협하여 점령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약탈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조선침략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서구열강이 제국주의동맹관계에서 일본을 지원한 침략동맹관계에서 이루어진 산물이었다. 이러한 일본과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동맹관계에도 불구하고, 조선 상층부 집권층은 흥선대원군파와 민씨정권파로 국론이 분열되었다. 조선의 국론분열은 일본을 비롯한 서구열강에게 조선침략을 위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19세기말 조선엘리트와 시민의식은 아직 미성숙상태였으며, 체제개혁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은 미약했다. 조선에 대한 일본과 서구열강의 역사적 과오는 제국주의동맹을 통해 일방적으로 약소국을 강제점령하는 국제평화질서를 파괴한 행위였다. 조선강점 이후 일본과 서구열강은 오직 그들의 자국경제적 이익추구를 위해 국제평화를 무시한 제국주의동맹행태를 지속시켜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방적인 한반도의 분단역시 그동안 19세기-20세기에 걸쳐 진행된 일본과 미국,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국가들의 동맹관계에서 비롯된 산물에 불과하다. 과거 조선침략에 대한 일본과 서구열강의 제국주의행태들은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가치추구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본 논문의 결론은 한반도 문제 해결은 한민족이 자주적 역량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했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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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순 소설의 탈식민적 페미니즘 연구 : 「탄실이와 주영이」, 「손님」, 「나는사랑한다」에 나타나는 제국주의 자본을 중심으로

        이미화 한국문학회 2014 韓國文學論叢 Vol.66 No.-

        김명순의 소설은 탈식민적 페미니즘 서사를 갖춘, 즉 가부장제 여성의 항일저항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적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탄실이와 주영이」, 「손님」, 「나는사랑한다」는 제국주의와 가부장제라는 다중억압에 저항하는 식민지 여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세작품의 공통점을 통해 작가가 지닌 제국주의 자본에 대한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게 하므로 충분히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김탄실과 심삼순은 제국주의 가부장제에서 학생이며 딸이라는 젠더를, 박영옥은 거기에 아내라는 젠더를 더한 인물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제국주의 자본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본고는 이를 제국주의 자본활용과 식민지 여성의 교육열 제국주의 자본 절제와 식민지 여성의 사회참여의식, 제국주의 자본 비판과 식민지 여성의 저항을 통해 살펴본다. The novel is an epic Kim Myung-soon with postcolonial feminism, that women in patriarchal consciousness to reveal the anti-Japanese resistance is not a strategic work However, 「Tansil and Juyoung」, 「Guest」, 「I Love」is a multi- patriarchal oppression of imperialism and colonial women ap야ms to be resistance. And these characteristics are common to the work of three artists to explore with imperialist capital values, since it allows for significant value jininda enough. Kim tansil patriarchy and imperialism Sim samsun that the student and gender specificity daughter, a wife, a Park youngok figure with gender specificity. Showing they have in common is the capital and the imperialist 'distancing' means the need was. To take advantage of imperialist and colonial capital of this paper is on education of women, colonial imperialism, women's social participation in moderation and consciousness, criticism of imperialism and colonial capital looks at the woman's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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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면적 역사 이해를 위한 교수·학습 방안 :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이종경,손선영 이화여자대학교 교과교육연구소 2008 교과교육학연구 Vol.12 No.2

        최근 역사교육계에서는 역사적 현상의 다양한 측면과 해석을 고려한 다면적 역사 이해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는 이와 같은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현장 적용을 위한 접근방안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제국주의’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제국주의에 대한 다면적 역사 이해를 교육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안 제시를 위해 먼저 제국주의에 관한 교과서 서술과 연구성과의 비판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학계에서는 기존의 지배-종속의 이분법적 제국주의 해석에서 벗어나 행위자 간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의 복합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교과서 서술은 여전히 기존의 해석에 치우쳐 있으며 새로운 관점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듯이 서술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교과서의 일면적 서술을 넘어서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해석을 교육 현장에 소개함으로써 역사적 현상의 다면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에 제국주의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중등학교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구성한 내용으로 교수·학습안을 개발하였다. 제국주의 논쟁의 한 국면을 최대한 간결하게 제시해 학습자의 쉬운 이해를 돕고자 소설과 영화 자료를 활용하였다. 교수·학습안은 교사평가와 예비조사를 통해 도출된 개선사항을 보완해 최종 설문조사 수업안을 확정하고 그 실천가능성을 검증하였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학습자는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해석은 거듭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또한 역사적 현상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갖고 스스로 역사해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느낌으로써 다면적 역사 이해에 접근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Multidimensional aspects on the historical phenomenon is rightly being emphasized in history education. But it is rarely followed up in history classrooms, and ways of realizing it in classrooms have not been sufficiently discussed. This study aims to develop teaching and learning methods for multidimensional understanding of imperialism applicable to history classrooms. Imperialism can be a good candidate for this job, because multidimensional aspects of imperialism such as complex cultural changes and interdependence have been explored. Multidimensional aspects of historical phenomenon can effectively be revealed by introducing new interpretations on imperialism in history classrooms. This study aims to develop teaching and learning methods applicable to secondary school classrooms. Using the proposed teaching and learning guidelines, students will be able to attempt diverse interpretations of historical phenomena, to nurture their own understanding of history, and get nearer to multidimensional understanding of history by reconstructing historical interpre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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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1927 호남(湖南)의 물가(物價)변동

        전형권 중국사학회 2016 中國史硏究 Vol.103 No.-

        米价是物价變動最基本的表現. 米价從1918年至1927年總的呈現出上漲趨勢. 1918年11月 每擔爲4.32元, 1925年11月每擔爲9.90元,上漲了129.2%. 1921-1923年的平均米价是每石6.51元. 與1909-1912年的每石平均4.0元相比, 上漲了62.75. 1932-1934年的石當7.44元與1921-1923年間對比上漲了14.29%. 由此可以看出, 20世紀20年代上半期的米价上漲比30年代更明顯. 爲了把握米价的相對物价, 與鹽价比較的話, 在1921-1925年間, 米价上漲了22.2%, 鹽价同期上漲了12.9%. 洋油价格表現出下滑趨勢, 而米价持續上漲, 所以据此本人認爲農民收入和購買力更加提高. 鹽价雖然從1921年至1927年錢文値顯示急劇上漲趨勢, 但主要通貨銀元的价格直到1926年一直保持着穩定上漲. 本人認爲鹽价的穩定因爲洋鹽進口的增加和精鹽公司的設立等之貢獻. 棉花价格從1918年11月至1920年价格保持不變或下降. 而自1921年到1925年呈現出持續上漲趨勢. 1926年和1927年則減緩上漲勢甚至呈下降趨勢. 1934年前后, 長沙的棉花价格與1918年11月的价格一樣. 而1930年代的棉花价格比1920年代上半期相比却在下降. 茶油价格也從1918年11月到1927年呈現出持續上漲的趨勢. 錢文値的急劇上漲率的是通貨膨脹的結果. 在『長沙大公報』上, 桐油价格從1921年開始出現. 本人認爲這與此時期桐油出口額的增加有關. 桐油在錢文値從1921年到1927年持續急劇上漲趨勢. 銀元价格在1925年和1926年呈現出部分下降趨勢, 1927年再次上漲. 恐?與1934年前后桐油出口的減少有關. 洋油是最具代表性的進口商品. 以錢文爲算, 大體呈現出上漲趨勢, 但是銀元却在穩步下降. 直到1927年出現部分反彈, 但比1921年水平更低. 在由貨幣濫發的混亂之中, 銀元擔任基幹通貨的作用. 商人要求用銀元付款或通過銀元的价格標示等, 以此維持市場經濟. 1921年至1927年間, 以銀元价格爲標准, 穩定的上漲趨勢是主流. 這比1930年代前半期上漲率更高. 從工資水平來看, 以日給爲准, 各縣的27個行業的平均工資爲0.13元. 這與木匠的平均工資一致的. 雇農的日給爲0.11元, 與別的行業相比較低. 雇農的日給可以購買的鹽是1.05斤, 或者可以購買1.93斤米. 木匠可以購買的鹽平均是1.15斤, 可以購買的米平均是2.16斤. 這是基于提供飯菜的工資, 如果非提供飯菜的工資比此更高. 在高工資的地區, 日給比飯錢更高, 而非高工資地區呈現出日給和飯錢費類似的情況. 通過工資長期變動趨勢, 我們發現工資也在?隨物价一起上漲. 本人曾經通過比較汝城縣工資的大米購買能力而發現民國時期實際工資的增長. 在『湖南實業志』和地方志等, 可以證實工資和物价有關聯, 而且能看出工人對工資提高的要求. 本人認爲自1922年以來的全國勞工運動對湖南産生了一定的影響. 在貿易和物价方面, 以往學者認爲帝國主義侵略的高潮引起了貿易的快速發展, 洋商的把戱飇升了物价. 但是, 進口産品的价格由于貿易促進進口量增加的影響而使价格下降. 洋油的供應增加引起价格下降是最具典范性的例子. 出口産品則由于貿易出口量增加, 物价反而上漲. 代表性出口産品桐油, 從第一次世界大戰后的1921年至1927年間, 由于持續增加出口量顯示出价格急劇上漲的趨勢. 而20世紀30年代由于出口低潮价格下降. ?産物也經歷了在第一次世界大戰時期, 由于出口量增加价格上漲, 在戰后由于出口低潮价格暴跌的情況. 之后, 逐漸出現了出口復蘇和价格上漲的情況. 從貿易和景氣角度來看, 由于第一次世界大戰后帝國主義列强的重新來臨和侵略的强化, 物价飛漲和增加人民生活負擔的公式化與湖南的現實似乎幷不符合. 對相關數据進行審査時, 大部分數据指出自1921年至1926年, 甚至1928年時情況較好. 而民國19年(1930)以后出現了經濟衰退. 根据湖南的進出口動向, 雖然自1925年至1928年交易量多, 但是出現赤字情況, 卽入超多. 但是, 1932年至1934年間相反, 卽出現了貿易順差, 但相比于1920年代, 貿易量急劇減少. 從這一点來看, 經濟景氣比起貿易赤字, 與貿易量的增減有着更加緊密的關系. 從大部分資料里指出的自1930年以后經濟衰退來看, 本人認爲在貿易量和情況下, 1930年代出現了經濟衰退型順差. 有的學者提出了由于第一次世界大戰間帝國主義列强的暫時撤退和戰爭需要的增加, 雖然中國的情況相對較好, 但是由于戰后帝國主義列强的卷土重來和侵略的高潮, 急劇的貿易發展引起了物价飛漲和中國人民的負擔的加重. 本人認爲這個看法不妥當. 以湖南爲對象進行實證硏究, 1921年至1927年間, 貿易量增加, 物价穩中有漲, 商業繁榮. 當時人們自己也認識到經濟相對好景氣. 帝國主義列强不是單一的結社體, 而是互相競爭的對手. 所以本人認爲, 分析對帝國主義經濟侵略的具體情況時, 過度的民族主義情緖應該要控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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