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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창립20주년 기념: 성과와 전망

        이혜순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20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0 No.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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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ociety of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was founded in January, 2000 with the goal of "the primary purpose of approaching and researching Korean classical women's literature from a feminine perspective, but ultimately contributing to the revitalization of Korean classical literature research by promoting active exchanges with other achievements“ From the start, the society has made clear its identity as a joint society of male and female members and integrated field to discuss the issue of ‘women’ across various fields of classical literature. Through Korean Classical Woman Literature Studies, the journal of the Society, planning specials have been frequently prepared, contribut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direction of the Society, and by discovering a number of female writers and works that have not been known in academia, Korean classical women’s literature has been enriched for 20 years. The ‘feminine perspective,’ the goal of the establishment of the Society, still seems to be valid as it needs to note the hidden voice of women. Above all, this Society is worth trying for the writing of the history of the Korean classical women’s literature. It could also be responsibility of this Society to report how far North Korean classic women’s literature has come. In future, the Society needs expanding the research subject or perspective to include women's literature in East Asia, at least in the Northeastern Asian countries, influenced by Confucian culture at similar times. It is hoped that this year, which marks the 20th anniversary of its foundation, will be a new start year for the Society. 한국고전여성문학회는 “한국고전여성문학을 여성적 시각으로 접근, 연구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되, 여타의 연구성과들과 활발한 교류를 도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한국고전문학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하에 2000년 1월 창립되었다. 본 학회는 출발부터 남녀 공동학회이고, 고전문학의 하위분야로서 고전문학 내 고소설, 고시가, 구비문학, 한문학 등 각 분야를 포괄해서 ‘여성’의 문제를 논의하는 통합 분야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본 학회의 저널인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기획특집이 자주 마련되어 학회의 방향을 확립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동안 학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작가, 작품들을 다수 발굴해서 20년 사이 한국고전여성문학을 풍성하게 정립했으며, 여성의 여행, 종교나 노년의 여성처럼 여성 관련 주제의 다양한 속성들을 보여주었다. 단지 기획 특집을 통해 의미 있는 연구 주제들의 지속적인 제시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다툴 어떤 이슈나 쟁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회창립의 목표인 ‘여성적 시각’은 고전문학 속 여성의 숨겨진 뜻과 목소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학회는 여성문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인적 자원이 풍성하다는 점에서 한국고전여성문학사의 집체적인 저술을 시도해볼 만하다. 덧붙여 북한의 고전여성문학 연구가 어디까지 왔는지, 여성사 서술에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본 학회가 중심이 되어 정리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본 학회는 연구 대상이나 시각을 유사한 시기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적어도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여성문학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하는 것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본 학회의 다양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고전문학 내 분야별로 활발하게 여성문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문학회의 존재에 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도 산재해 있는 여성 작가와 작품을 찾고,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고, 이것은 본 학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라는 점에서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올해가 한국고전여성문학회가 새롭게 다시 출발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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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의 정체성과 지구화 시대의 과제

        이경하(Lee Kyung ha)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4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0 No.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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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구화 시대에 한국고전여성문학 연구의 학문적 정체성과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는 학회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2000년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창립 당시만 해도 선명해 보였던 '여성'주의의 기치는 오늘날 힘을 잃은 듯 보인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전지구화는 '한국'과 같은 민족국가 단위의 근대적 학문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으며, '고전/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점점 더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 격변의 시대에 한국고전여성문학 연구가 '한국/고전/문학' 연구로서의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고 '여성ㆍ젠더' 연구로서의 정체성을 학회 차원에서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학회 창립 이후 15년 간 한국고전여성문학회는 지속적인 기획을 통해 '여성문학' 연구를 특성화함으로써 '한국고전문학' 분야에서 다른 학회들과의 차별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고전여성문학 연구는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여성ㆍ젠더' 문제의식에 민감해져야 하며, '여성ㆍ젠더' 연구의 간학문적이고 다학문적인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연구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화는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그 방향이 바뀌게 될 미완의 현실이다. 한국고전여성문학회도 학문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주체로서 바람직한 지구화에 기여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첫째, '고전/여성' 연구의 현재적 의의와 방법에 대한 성찰을 학회 차원에서 담론화 함으로써 인문학의 소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둘째, '한국/고전/문학' 연구의 국제화를 학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지원함으로써 학문세계의 평등한 지구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학술지가 단순한 논문 모음집에 그치지 않고 '한국/고전/여성 /문학'을 매개로 비판적 인문정신을 실험하는 비평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학회 차원의 적극적인 기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This paper considers the identity of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Women's Literature in this globalized era and critically examines the role of the Society of Korean Classical Woman's Literature which has led the research. The banner of 'feminism' has come to be raised with less enthusiasm since the days when the society was first established in 2000, while research paradigms which focus on the unit of the nation-state (such as 'Korea') are becoming fundamentally weakened in the face of globalization. In such an intellectual context, it is imperative that the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Women's Literature looks beyond the themes of 'Korean', 'classical' and 'literature' and finds a new identity by focusing on research related to 'women' and 'gender'. It is stressed in this paper that the Society must play an active role in bringing about this change in research direction. In the 15 years since its establishment, the Society has been successful in encouraging research on 'Women's literature', thereby differentiating it from other research societies which deal with Korea classical literature. However, it can be argued that research needs to be even more attuned to the issues of 'women' and 'gender', with new attempts at inter-disciplinary and multi-disciplinary research. Globalization is an ongoing process, forged through the choices and efforts of various actors. The Society of Korean Classical Woman's Literature can also engage actively in this process. Firstly, this can be done by generating discourse within the society on the meanings and methods of research on 'classical/woman', thereby contributing the restoration of communication in the humanities. Secondly, the Society must actively encourage the internationalization of research on 'Korean/ classical/literature', thereby contributing to a more equal 'globalization' of scholarship. Finally, the journal of the Society should go beyond being a mere collection of papers; it should be an arena of experimentation for humanities focused studies of a critical nature - this can only take place with the active efforts of th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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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교문학회와 국제문화교류사업: 재건 이전 한국비교문학회의 문학사적ㆍ제도사적 맥락을 중심으로

        최진석 ( Jinseok Choi ) 한국비교문학회 2021 比較文學 Vol.- No.85

        본 연구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국제문화교류사업을 검토함으로써 한국비교문학회의 초기사와 관련된 문학사적ㆍ제도사적 맥락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한국비교문학회는 1959년 창립된 학회이지만, 그로부터 1975년에 재건되기 이전까지의 학회 활동 연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본 연구는 이 시기에 이하윤, 이근삼 등 한국비교문학회 회원들이 관여했던 비교문학 연구 관련 사업 및 국제문화교류사업 등을 검토함으로써 재건 이전 한국비교문학회의 활동 연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를 계승하여 펜클럽 한국본부 등이 추진했던 국제교류문화사업이 한국비교문학회의 활동에 미친 직간접적 영향을 살피는 한편, 록펠러재단의 동국대 비교문학연구소 지원 사업 관련 문서철을 발굴함으로써 1960년대 초 한국 비교문학자들의 활동을 일부 복원하였다. 본 연구는 이를 통하여 한국비교문학회의 활동과 관련하여 그간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차후 보다 본격적인 학회사 서술을 진행하는데 있어 참고가 될 방법론적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This study intends to reorganize the literary historical context of the Korean Comparative Literature Association (KCLA), by examining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s between late-1950s and mid-1970s. the KCLA was founded in 1959, but it is little-known what activities it did until 1975. In order to collect the sources for writing history of the KCLA, this study examines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s of the Korean P.E.N. and comparative literature studies of the KCLA’s lead actors, including Lee Hayun and Lee Gunsam. By using the papers of Korean comparative literature, kept in the Rockefeller Archive Center, this study demonstrates the KCLA’s activities in early 1960s. According to these documents, the KCLA’s members, including Lee Hayun and Lee Gunsam, tried to establish the Comparative Literature Research Center in Dongguk University in early and mid-1960s, but the project ended in failure. It shows that the KCLA may have tried any other scholarly projects. Through this work, this study found some historical records of the KCLA’s early activities and lay pilot studies preliminary to a full-scale writing of history of the K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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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論文) : ≪사고전서(四庫全書)≫와 ≪존목(存目)≫에 수록(收錄)된 한국인(韓國人) 저작(著作)과 그 문화의의(文化意義)

        김호 ( Ho Kim ) 한국중문학회 2010 中國文學硏究 Vol.40 No.-

        目前爲止, 國內有關≪四庫全書≫及其≪存目≫收錄的韓國人著作的數量問題, 沒有得到一致的看法。而且國外學者亦對於此問題的看法, 因爲篇幅的關係, 難免有所簡略, 加上學界對於≪四庫各省採進書目≫收錄的韓國人著作問題、≪四庫全書≫及其≪存目≫收錄的韓國人著作之文化內涵等, 均沒有進行討論。鑑於前人硏究的不足, 本文擬要對這些問題, 進行一番探討。本文經過一番討論,得到以下幾點結論: 第一、當編纂≪四庫全書≫時,向中央政府進程的韓國人著作共有五種, 就是≪朝鮮史略≫、≪朝鮮志≫、≪高麗世系≫、≪朝鮮國志≫、≪徐花潭集≫。第二、≪四庫全書≫及其≪存目≫收錄的韓國人著作共有六種: ≪朝鮮史略≫、≪朝鮮志≫和≪武英殿聚珍版程式≫三種收錄於≪四庫全書≫; ≪高麗史≫、≪朝鮮國志≫和≪徐花潭集≫三種收錄於≪存目≫。第三、≪四庫全書≫及其≪存目≫收錄韓國人著作的原則, 可分爲「以資參考」、「以資考證」、「取技能」和「表彰儒術」等。第四、≪四庫全書≫及其≪存目≫收錄韓國人著作有其獨特的文化內涵。首先,幾種韓國人著作收錄於≪四庫全書≫的事實可證明韓、中兩國的書籍交流倂不是只從中國流入韓國的單方面的,而是雙方面的。其次, 幾種韓國人著作收錄於≪四庫全書≫及其≪存目≫,這意味著幾種韓國人的著作引起傳統中國知識分子的關注,這種現象甚値得予以重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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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과 한국소설

        차원현(Cha Won-Hyun) 한국현대문학회 2010 한국현대문학연구 Vol.0 No.31

        5.18은 비극이었다. 개발독재를 지향했던 국가체제의 과잉폭력과 그에 맞선자유 시민들의 반-폭력 사이의 싸움이었고 후자가 패배했으되, 그 패배를 통해 1980년 이후의 한국사에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영구히 각인시킨 숭고한 싸움이었다. 5.18의 비극적 숭고(崇高)는 한국민주주의 발전의 분수령을 이룬 사건이었으며 이후 한국사의 진보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편 5.18은 직ㆍ간접으로 연루된 개인들과 살아남은 개인들, 방관자의 위치에서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안겨 주었다. 이 상처들은 1980년대 전체를 관통하면서 한국사회의 분열과 혼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개인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5.18이 낳은 한국사회의 분열의 현실을 살아내야 했으며, 사적인 분노와 공적인 저항의 양극단을 오가며 개인과 사회 모두의 치유를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5.18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 뒤, 한국사회는 그것의 역사적 의미와 전망을 되묻고 성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문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5.18이 야기한 폭력의 인간학과 병리학의 문제를 섬세하게 탐구하고 어루만지는 작업은 문학의 몫이었다. 많은 문인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여 저마다의 보고물을 남겼다. 분열과 굴절의 일생을 살이야 했던 다양한 계층의 개인들에 관한 이 보고서는 1980년대 중반 이래 우리 사회의 폭력학과 병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소설에 기록되었다. 기록은 처참하고 처연했다. 5.18에 관한한 한국문학은 아직 명랑한 상상력의 작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5.18 이 일어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두 주제에 대한 한국소설의 대응양상을 살피는 글이다. 주요 작가 및 작품은 임철우의 《봄날》(1997)과 정찬의 《광야》(2002),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 중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가 수록된 5.18 15주년 기념 작품집인 《꽃잎처럼-5월광주대표소설집》(1995) 등이다. May 18th in 1980 of Korea was a tragedy. It was a war to one's death between the two incompatible forces, one of which was the stare power oriented to the national development by dictatorship, the other was the liberal citizens who were in great hopes for the realization of radical democracy but finally defeated. But in some paradoxical senses, the defeat has been a symbol of a sublime engagement for liberty and civil rights throughout the political history of Korean 1980s'. The tragic sublime of May 18th was a water-shed event and a source of energy in the later development of korean democracy Yet, May 18th caused an unrecoverable damage in the soul of those who were engaged directly or indirectly in that war, and also the incessant disputes, conflicts and confused disorders in korean civil society throughout Korean 1980s'. The citizens, in holding of various wounded and dissociated psyches should have survived their own everyday lives, unsettled between the two extremities of passive resentment and aggressive public resistance. After the tragic au of May 18th lowered it's curtains, the entire korean society has entered into the investigation of it's historical meaning and perspectives, also was the korean literature. So, the anthropology of violence caused by May 18th and the reflection of it's peculiar pathology attached was alloted to the vocation of korean literature and writers of literary works, producing some remarkable and descriptive reports on the lives of various wounded and dissociated psyches in that era. The records were sons of some wretched and miserable ones. There have been much colorful imaginations but with no happiness. This thesis is on the two themes written above, so to speak, the anthropology of violence caused by May 18th and the reflection of it's peculiar pathology recorded in the texts of korean narratives after May 18th, especially on the viewpoint of the memory of 30 years' anniversary. Main authors and works are as follows; Days of Spring(《봄날》, 1997) written by Chul-Woo, Lim, A Wide Plain(《광야》, 2002) written by Chan, Jung, and like a Floral Leaf-Masterpieces on May of Kwang-ju, a commemorated edition of narratives about May 18th Movement, including A Flag(〈깃발〉, 1988) written by Heui-Dam, Hong, There Falls A Floral Leaf With No Sound(〈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1988) written by Yo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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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이 보는 한국 구비문학

        나수호 한국구비문학회 2008 口碑文學硏究 Vol.0 No.27

        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어떻게 한국 구비문학을 보는가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 질문의 저류에 있는 보다 깊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데에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응답자 중에 두 명을 선택하여 직접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설문조사 1부는 응답자에 대한 통계학적 정보를 얻기 위한 것으로 국적, 인종, 한국 거주 기간, 직업, 연령, 성별, 한국어 능력 등의 정보를 수집했다. 2부는 한국 전통·현대 문화와 구비문학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국 전통 문화는 유교문화로 특징되고 현대 문화는 기술로 특징된다는 답이 우세했다. 전통 구비문학 장르의 인지도는 설화, 속담, 판소리, 민요, 탈춤, 무가, 인형극 순으로 나타났으며 문화축제나 예술극장에서 접했다는 답이 많았다. 한국 현대 구비문학에 대한 의견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전통 장르 중에 설화나 판소리와 같이 아직도 살아 있는 구비문학을 지적한 것, 대중음악이나 드라마와 같은 현대적인 장르를 지적한 것,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고 지적한 것이 그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대략 두 가지 문제를 다루었다. 첫째는 어떻게 하면 외국인이 한국 구비문학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며 둘째는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주의 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것이었다. 첫째 질문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인터뷰 대상자 모두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즉, 한국 구비문학을 알리는 것이 일방통행 길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둘째 질문에 대하여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을 외국인에게 알리는 것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타자가 한국 문화나 문학을 재해석하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이 한국 구비문학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엔 타자와의 만남을 다루는 문제이다. 일방적으로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나 구비문학을 알리겠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그 문화와 구비문학을 공유하는 단계를 목표로 삼아서 서로 간의 이해와 교류가 있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This paper begins with the question of how foreigners in Korea view Korean oral literature and goes on to deal with the issues underlying that question, ultimately aiming to take the first step in providing an answer. To this end, a survey was conducted that targeted foreigners residing in Korea; in addition, two of the respondents were interviewed. The results are as follows. The first part of the survey dealt with demographic information, with questions on nationality, ethnicity, length of stay in Korea, occupation, age, and Korean language proficiency. The second part dealt with views and opinions on traditional and modern culture and oral literature. Most respondents chose Confucian culture as the defining characteristic of traditional Korean culture, while technology was seen as the defining characteristic of modern Korean culture. Recognition of traditional genres of Korean oral literature was as follows, from highest level of recognition to lowest: tales and stories, proverbs and sayings, pansori, folk songs, mask dances, shaman songs, and puppet plays. Opinions on modern Korean oral literature can be placed into one of three general categories: those that focused on a traditional genre that survives to the present, such as tales and pansori, those that focused on a modern representation, such as pop music or television dramas, and those that saw modern oral literature as a meeting of past and present. The interviews dealt mainly with two questions: how can we make Korean oral literature more accessible to foreigners, and what does Korean need to do to become a truly multicultural society? With regards to the first question, the interviewees had similar views, namely that bringing Korean oral literature to foreigners cannot be a one-way road. They also mentioned that the views of foreigners must be taken into consideration and thought given to the issue of how to make oral literature more palatable to foreigners. Replying to the second question, they stressed the need to come to a greater understanding of foreigners living in Korea rather than efforts to simply advertise Korea to foreigners. They also noted that Koreans needed to accept the possibility of a reinterpretation by the Other of Korean culture and literature. The question of how foreigners view Korean oral literature ultimately deals with a meeting with the Other. Rather than engaging in a one-way education of foreigners on Korean culture or oral literature, it would be better to aim for a place where culture and oral literature are shared within a meeting with the Other, and to work to create a world of mutual understanding and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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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궤적

        정문상(Chung Moon-Sang) 한국근대문학회 2012 한국근대문학연구 Vol.13 No.1

        이 글의 목적은, 최근 역사학계와 문학계에서 이루어진 한국인의 근현대 중국 인식에 관련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흐름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있다. 한국인의 중국 인식은, 한중관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동과 밀접히 연동되어 표출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청일 전쟁 전후한 시기, 일제강점기, 냉전기 등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중국 인식의 전개 과정을 추적하였다. 청일전쟁은 전통시기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중국 중심에서 일본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변동되는 의의를 가지는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은 부정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입각한 기왕의 대청(對淸) 인식에 서구 문명론이 새로이 가미되면서, 중국(청)은 '문명개화의 낙오자'이자 조선 근대화의 장애물로 타자화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중국 멸시관이 확산되는 한편 일상생활에서 중국인이 한국인을 억압하고 생존까지 위협하는 '인정 없고 비열한 존재'로서 경험되면서 청일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비록 일제 강점기 부정적 중국인식이 주류적 시선이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중국 인식을 부정 일변도로 규정할 수는 없다. 중국혁명에 조국의 광복과 독립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중국에 망명한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부정적 중국 인식'과는 다른 유형의 중국 인식이 표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독립운동가들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연대와 활동의 대상을 달리했지만, 그들에게 중국은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있는 '동병상련의 대상'이자 일제에 공동으로 대항해야 하는 '연대와 협력의 대상'으로, 나아가서는 항일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중심'으로까지 간주되기도 하였다. 독립운동가 중에는 일부 독립 운동가들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적 태도'를 문제 삼아 이를 '사대주의'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연대와 협력을 다각도로 모색하되 의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인의 주체적이며 독자적인 입장과 관점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였던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관점과 입장이 반영된 중국 인식은 중국 혁명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노력했던 국내의 언론 매체의 중국 특파원들에 의해서도 표출된 바 있다. 냉전시기에 들어서,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에 의해 표출된 중국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관점들은 냉전 논리에 압도되면서 양극단으로 분열되었다. 미소가 주도한 냉전구도 아래 남북한이 본격적인 체제 경쟁에 돌입하면서,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 한국인 사이에 형성되었던 다층적인 중국 인식은 '중공(中共) 오랑케'와 '피로써 맺어진 형제국' 등 호칭에서 드러나듯 극단적으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는 중국을 '한국 사회 변혁의 모델'이나 '연대와 제휴의 대상'으로 보았던 기왕의 중국에 대한 시선과 관점은 억압, 배재되었고 '반공 냉전형 중공 인식'이 압도하였다. 북한 사회에서는 근대 이후 일련의 한중관계를 통해 표출되고 형성되었던 다양한 내용의 '부정적 중국관'은 자취를 감추고 '피로써 맺어진 형제국'으로서만 단일화되었던 것이었다. 냉전기 남북한의 대립과 체제 경쟁구도가 그대로 남북한의 중국 인식에도 투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frame the flow of modern Koreans' perceptions toward China in a multi-layered manner by examining relevant studies recently conducted in learned circles of history and literature. To effectively present the changes in the perceptions, modern times in this paper were divided into the enlightenment period in the latter era of the Chosen Dynasty,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Cold War era. Unlike traditional times, Koreans in the enlightenment period perceived China(Qing Dynasty) as a negative object. As the theory of civilization was added to the existing perceptions toward Qing based on the Sinocentrism in Chosen, Qing was otherized as a negatively perceived object as 'a modernization loser'. Ente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Koreans experienced Chinese as 'a cold-hearted, mean people' who suppressed Koreans' daily lives and threatened their survival. As a result, the negative perceptions toward China strengthened further. On the other hand, a different type of perception toward China was formed among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who went into exile in China with the expectation of Korea's independence resulting from the Chinese Revolution. Even though the activists' objects of solidarity and activities varied due to their ideological differences, China was considered 'an object of sympathy,' 'an object of solidarity and cooperation,' and, furthermore, 'the center of global solidarity.' Some independence activists made an issue of some others' 'overdependent attitudes' toward China and criticized such attitudes as 'toadyism.' Some national news media that attempted to critically accept the outcomes of the Chinese Revolution presented a perception that Koreans needed to hold their own independent viewpoints on China. During the Cold War era, Koreans' various viewpoints and perspectives on China expressed throughout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overwhelmed by the Cold War logic and divided into the two extremes. As South and North Koreas entered regime competition in earnest within the Cold War system led by the US and the Soviet Union, and, especially, went through the Korean war, the multi-layered perceptions toward China that had been formed among Korean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divided into South and North, as represented by two different appellations-'barbarians in Communist China' and 'a brother nation in blood alliance.' In South Korea, the existing viewpoints on China as 'a model for social reforms in Korea' or 'an object of solidarity and cooperation' were suppressed, excluded, and, finally, overwhelmed by 'the anticommunist cold-war style perception of Communist China.' In North Korea, in comparison, a variety of 'negative viewpoints on China' that had been formed and expressed through a series of Korea-China relationships since modern times disappeared and became unified into the perception as 'a brother nation in blood alliance.' In other words, the confrontation and regime competition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s in the Cold War era was consistently applied to the two nations' perceptions towar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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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의 한국 현대문학 연구 : 역사적 반성 및 협동 연구 전망

        장사선(張師善) 한국현대문학회 2010 한국현대문학연구 Vol.0 No.30

        다카하시 토오루의 「한국의 문학」(1906)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이는 일본에서의 한국현대문학 연구는 100년의 역사를 넘겼다. 일본에서 한국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1914년 창간된 『학지광』에서의 안자산이나 1927년 무렵부터 1935년 무렵까지 이어지는 백철, 안막 등의 무산계급문학 논의에서였다. 본격적 전쟁기로 들어가는 1939년 무렵부터 전쟁과 더불어 일본인들은 조선문학에 대한 고조된 관심을 보인다. 이는 조선문학을 본질로부터 이해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학논의였고, 조선문학의 독자적 성격을 이해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일본문학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키려는 목적이 앞섰던 연구였다. 1945년 이후에 이르자, 해방 전 한일 양국에서 지하에 잠복되었던 1930년대의 사회주의 문학론이 일본에서 다시 살아났다. “조선 작가와 일본어 문제”나 일본에서의 조선문학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조선 학회가 발족되어 「조선 학보」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무렵부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현대문학이 일본에서 논의된 것은 주로 김달수 박춘일 등에 의해서였다. 이들에 의한 논의의 대상 작가 및 작품 선정, 그리고 논조까지도 대체로 친북한적인 것이었다. 1970년대 들어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연구는 양적으로 현저하게 늘어나며, 질적으로는 아카데미즘적인 내용으로의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그동안 단독 논문중심의 한국문학 연구가 이제는 단행본 중심으로 옮겨가 연구의 응집력과 지속력을 증가시켜 나아갔다. 조총련 조직의 경직성, 문예동에서 작가에게 가해지던 지나친 압력 등으로 인해, 문예동의 학자들은 북한문학 일변도에서 비판적 남한문학 예찬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일본 학술 잡지 『文學』은 “조선문학 특집호”를 발간하고, 일본인 중심의 초유의 한국문학 연구회가 결성되어 그 연구지가 지속적으로 발간되었다. 『한양』과 『계간 삼천리』가 큰 호응 속에 발행되며 많은 한국문학이 논의 소개되었다. 김지하 연구는 한국에서의 금기로 잠복되었다가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솟아올라 그를 우상화하는 분위기까지 만들어졌다. 196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한 1세대 연구자 중 대표자 오오무라 마스오는, 윤동주 문학, 재만 조선인 문학에서부터, 북한문학 혹은 해방 이전의 리얼리즘 문학, 재일 조선인 문학까지를 앞서서 섭렵해 나간 학자이며, 리얼리즘 작품들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한 연구자이다. 사에구사 도시카쓰는 처음으로 독자적 시점으로 일본인이 일본어로 집필한 ‘한국문학사’를 탄생시켰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2세대들의 특징은 한국으로의 유학과 박사학위 취득이 보편화되고, 한국의 연구 풍토와 일본의 연구 방법에 양면적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학풍을 나타낸다. 대체로 세리카와 테츠요, 시라카와 유타카, 호테이 도시히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1세대들이 주로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향해 연구나 평론 활동을 했다면 이들은 한국의 연구자들과 함께 분업적 연구에도 참여하게된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3세대에 속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등장하였고, 이런 3세대 연구자들은 양국 쌍방 소통의 유학과 연구를 통해 한국현대문학연구를 일신해 가고 있다. 정백수, 남부진 등 신진 연구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각기 다른 시각을 변증법적으로 활용하고 양국의 학회나 학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혁신적 관점과 방법으로 한국현대문학을 새로운 지평에서 재규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구는 적지 않은 문제도 남겼다. ‘외국 문학 연구’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연구와 “자국 문학 연구”의미에 갇혀 있는 한국에서의 한국문학 연구를 모두 탈피하고 양자를 지양 극복할 필요성, 일본에 온존하는 남북한의 거리가 남긴 용어의 문제에서부터 문학을 보는 관점의 난립 문제, 연구 영역 및 대상의 집중과 확산이 총체적 시각에서 재조정되고 재검토 문제 등은 시급하다. 장기적인 계획에 기반한 양국의 공동연구의 공동 기반 구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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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영호남사림(嶺湖南士林)과 금남최부(錦南崔溥)

        최한선 한국고시가문학회 2011 한국시가문화연구 Vol.0 No.27

        崔溥(1454-1504)는 耽津人으로 자는 淵淵호는 錦南인데 進士澤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異質하여 剛毅精敏했다고 한다. 금남은 점필재의 문하로서 戊午士禍(1498) 시 그의 집안에 점필재집이 있다는 이유로 訊問을 받고 杖刑을 받은 뒤 端川에 유배되었다가 甲子士禍(1504) 때 處刑되었다. 금남은 호남인으로서 占畢齋의 학문을 직접 받아들여 이 고장 士林의 발흥에 크게 기여한 첫 번째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그 당시 점필재와 어깨를 나란히 한 호남 선비로는 竹林曺秀文인데 그는 담양 竹林書院에서 배향되고 있거니와 그의 아들 雲穀曺浩는 점필재의 문하로서 汝忠, 汝諶등 문학으로 훌륭한 후손을 많이 배출했다.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로 이어지는 학맥은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金宏弼로 이어지는 학맥과 함께 호남 사림의 깊이와 폭을 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최부는 후생의 敎導에 미미不倦하였는데 해남의 邑을 밑아 있을 때 그 곳은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 文學이란 게 없고 禮儀또한 荒陋했는데 금남은 正論으로써 陋俗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이때 漁樵隱尹孝貞과 林遇利그리고 柳桂隣등을 부지런히 가르쳤는바 이들을 보고 온 고을 사람들이 翕然하여 마침내 文獻之邦이 되게 했다고 한다. 호남의 사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 말 할 수 있겠다. 먼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王朝交替期(1392)와 世祖의 王位簒奪事件(1455) 때 입향 또는 낙향해 온 세력과 다음으로는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로 이어지는 이른바 영남을 통하여 호남에 뿌리를 내린 계열을 들 수 있겠다. 호남 사림은 대체로 金宏弼, 崔溥, 宋欽, 樸祥, 李恒, 金安國계열 등으로 나누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樸祥을 제외한 모두가 金宗直淵源임을 알 수 있다. 宋欽도 김굉필을 私淑했으니 송흠을 연원한 박상도 어떤 면에서는 같은 뿌리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최부 계열은 주로 海南과 羅州에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금남 학맥은 尹孝貞, 林遇利, 柳桂隣, 羅질, 尹衢, 尹巷, 尹行, 尹復, 柳成春, 柳希春, 李仲虎, 鄭介淸, 羅士침(錦南의 外孫子), 羅德明등 6 兄弟, 羅緯素(羅德埈의 子) 등으로 이어진다. 최부의 호남학맥은 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1454-1504)로 이어지는 사림의 正脈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사림들은 韓國儒學史上 또는 韓國文學史上과 韓國義兵史등에서 뚜렷한 足跡을 남긴 인물들이 다수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문하들이 이룬 호남학에서의 문학적 성과는 浪漫的情緖라는 風流性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어보였다는 데서, 곧 溪山風流를 표방한 부류와는 시 세계를 달리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의 史學, 文學, 經學등 학문적 영향은 해남과 나주를 중심으로 湖南學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특히 文學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羅緯素: 1582-1666) 약 2세기 동안 그 전통이 활발히 이어져 나왔고, 그 이후에도 羅景煥(性菴家藏), 鄭錫珍(蘭坡遺稿), 羅允煦(錦坡集), 羅燾圭등으로 20세기까지 계승되면서 근현대 문학으로 移行되었다. 崔溥(1454-1504) 字淵淵,號錦南,明朝朝鮮全羅道耽津(卽今韓國康津郡),進士澤的兒子。崔溥是占畢齋(金宗直)門下,不幸戊午士禍(1498)時因家裏被發現占畢齋文集,他受杖刑後流放到偏僻端川,然後甲子士禍(1504)時被處刑。錦南崔溥被評爲韓國湖南士林人脈的第一個世代。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的一些人的學脈근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金宏弼的學脈對韓國湖南士林的形成和發展起了흔大的影響。韓國湖南士林分爲兩大類。朝鮮王朝交替期(1392)和世祖的簒奪王位事件(1455)時入鄕或被露鄕的勢力。前者是光州出身錦城範氏範世東、羅州出身河東鄭氏鄭地、天安全氏全新民、在鄕下隱居的沃川趙氏趙瑜、光山金氏金子進、金麟厚祖先蔚山金氏金穩、光州卓氏卓光武等。後者世祖的찬奪王位事件時在鄕下隱居的是順天金氏的金宗瑞、流放到長興的晉州鄭氏鄭분、在靈巖隱居的南平文氏文孟和、在光山隱居的樸祥的父親忠州樸氏樸智興、在務安隱居的務安樸氏樸益卿、在長興隱居的忠州金氏金麟、在高興隱居的礪山宋氏宋侃、在淳昌隱居的高靈申氏申末舟、在羅州隱居的慶州李氏李碩、在海南隱居的原州李氏、在潭陽隱居的洪州宋氏、在鹹平隱居的陽城李氏、在靈巖隱居的鹹平魯氏魯宗周等。其次是嶺南系的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學脈。湖南士林分爲金宏弼、崔溥、宋欽、樸祥、李恒、金安國系, 細看湖南士林的分類分析, 除了樸祥以外都是其淵源在金宗直。崔溥系主要是在海南和羅州活動的人物。崔溥學脈是尹孝貞、林遇利、柳桂隣、羅질、尹衢、尹巷、尹行、尹復、柳成春、柳希春、李仲虎、鄭介淸、羅士침(錦南的外孫子)、羅德明等6兄弟、羅緯素(羅德埈的兒子)等人。住在海南蓮洞的尹孝貞是孤山尹善道的高祖父, 以근海南鄭氏家婚姻爲跳板復興名門貴族。尹孝貞的三個兒子橘亭尹衢、尹行、杏堂尹復是公認的詩書門弟。尹衢的兒子曆任左參贊, 他的兒子尹惟幾曆任江原道觀察使。他抱養了尹善道繼承下來了海南尹氏家的榮譽。孤山尹善道寫瞭『孤山遺稿』『漁父四時詞』40首等75首詩歌。孤山尹善道與長歌松江一同稱爲韓國文學界的皇帝。此外尹氏家在壬辰倭亂和丁酉再亂中培養出了許多的義兵將,在救國運動中立了大功。尹衢的女서履素齋李仲虎是在光州初次實行鄕約, 以鄕校爲中心振作了儒學。他曆任全羅監査和大提學,有四子汲、潑、潔、직。杏堂尹復曆任全羅道使、忠淸道觀察使,寫出了『杏堂先生遺稿』及許多漢詩。杏堂的甥姪楓菴文緯世在退溪門下學了「八陳圖」,硏究了性理學。壬辰倭亂和丁酉再亂中근5個兒子、奴僕、弟子一起擧行了義軍蜂起,特別是在自籌軍糧米中做出了흔大貢獻。.柳桂隣有兩個出衆的兒子懶齋柳成春和眉巖柳希春。柳成春同尹衢、崔山斗被稱誦爲湖南三傑,又曆任了吏曹銓郞,但因己卯士禍時被流放到邊疆幷夭折的緣故沒留下特別的業績。柳希春寫出了有名的『眉巖日記』。『眉巖日記』是從宣祖卽位年(1567)起十年時間裏的公私內容的日記,在當時曆史硏究上흔有硏究價値。他校訂『朱子大典』,編纂『國朝儒先錄』,寫出『眉巖集』,還刊行外祖父崔溥的『漂海錄』。流放到鏡城的羅德明在流配地遇到壬辰倭亂,在戰亂中討伐鞠景仁等的叛亂留以功績。也有文學方面的知識流傳『嘯浦遺稿』。他兒子羅緯素是短歌『江湖九歌』的作者。他的詩歌作品和孤山尹善道的『漁父四時詞』相提幷論,又被評爲江湖詩歌潮流的繼承。羅德憲從流配地被釋放後壬辰倭亂和李適之亂(1624)時立下了功勳,而且善於外交的他訪問了三次瀋陽,被國王稱爲忠烈諡號。林遇利是善山人,其父秀的四個兒子元、亨、利、貞中排老三。林亨有五個兒子千齡、萬齡、億齡、百齡、九齡都是賢達。林千齡被追贈領議政,寫出了『遯庵先生文集』。林九齡曆任光州牧使以善政被稱爲淸官的稱誦。林百齡被追贈右議政,乙巳士禍時受禍了。林億齡(號石川)是韓國湖南歌詞的詞宗,被退溪、栗穀、聽松、玉峰、高峰、河西、龜峰等盛贊叫大詩人。同霽峰高敬命、松江鄭澈、棲霞堂金成遠等一起有時以朋友交流,有時以師弟關系交遊,開展了不拘一格,又不失氣稟和格調的講學與詩的創作活動。從上述來看崔溥的湖南學脈是連接安裕-權溥-李穀-鄭夢周-吉再-金淑滋-金宗直-崔溥(1454-1504)的韓國士林正脈。從崔溥門下輩出的人在韓國儒學史上、韓國文學史上、韓國義兵史上都有흔多影響。他門下一些人的文學方面的成就因근以前浪漫情緖的不一樣,근標榜溪山風流的當時詩歌派的不一樣,有著更深的意義,他們創作了新詩歌世界。他的史學、文學、經學等學問的影響對以海南和羅州爲中心成立的湖南學有흔大貢獻。特別是在文學方面直到17世紀中期(羅緯素1582-1666)還活潑地流傳了下去。此後以羅景煥(性菴家藏)、鄭錫珍(蘭坡遺稿)、羅允煦(錦坡集)、羅燾圭等形式繼承到20世紀的文學,現在移行到了近現代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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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의 ‘전후’ 개념의 형성과 그 성격

        박현수(Park, Hyun-soo) 한국현대문학회 2016 한국현대문학연구 Vol.0 No.49

        한국 현대문학에서 ‘전후’ 개념은 ‘전후=한국전쟁 이후’라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과는 무관한 타자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기의를 채워나가는 생성 중인 개념이었다. 즉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이 개념은 외국문학을 소개할 때에만 등장하고 우리 문학적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는 외신용 개념 혹은 타자의 개념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기의가 가세하여 이 개념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1960년 전후에 한국전쟁이 기의 상의 기축으로 존재하며 다른 전쟁을 아우르는 중층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1950년대에 전후 개념이 한국 문학에 적극적으로 적용되면서 혼선도 발생하였는데, 그 혼선의 진원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신구문화사의 『세계전후문학전집』이었다. 이 전집은 전후 개념의 기점을 한국전쟁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으로 잡음으로써 ‘한국전쟁 이후’라는 기의를 고정시켜가는 당시 담론의 진행방향에 반성과 혼선을 동시에 주고 있었다. 그 원인은 그 전집이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일본의 ‘아프레게르총서’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전후 개념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이루어진 것은 1950년대 후반에 와서였다. 김우종과 백철의 논의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한국문학에 있어서 전후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서구적 기의와 태평양전쟁이라는 일본적 기의,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한국적 기의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중층적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런 중층성에 대한 인식이 없이 한국의 전후문학의 본질은 제대로 파악되기 힘들 것이며, 1960년대 이후 고착화된 ‘한국전쟁 이후의 문학’이라는 전후 개념은 유용성의 측면에서도 실재성의 측면에서도 부적절하게 될 것이다. The ‘aprés guerre’(postwar) in Korean contemporary literature was not a single concept indicating “aprés guerre=after Korean War” but a forming one which was filling its own signifié although it departed from the concept of "others" irrelevant to Korean literary circumstances. The ‘aprés guerre’ in Korean literature is a complex, multi-tiered concept: it carries the Western signifié i,e. World War II , the japanese signifié i,e. the Pacific War, and Korean signifié i,e. Korean war. Specifically speaking, during the period from the Liberation from Japan to the outbreak of Korean War, this was a foreign concept (or the concept of "others") having no connection with Korean literary circumstances. It only appeared when a foreign literature was introduced. But this concept after adding Korean War on its signifié was developed more complex. Therefore, in circa 1960, the multi-dimensional meaning, which turns on its axis of the Korean war overwhelming other wars, was prevailed. When the concept ‘aprés guerre’ was applied to Korean literature in 1950"s, the concept went through some confusions, the epicenter of confusions was ironically Sege Jeonhu Munhakjeonjip(1960), the collection of postwar world literature, published by Singumunhwasa. This collection argued that the stating point of the concept ‘aprés guerre’ was not Korean War but World War II. Accordingly, it gave reflection and at the same time confusion to the progress of the discourse at the time when the signifié was being fixed. The reason of the argument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the collection"s model was Japan"s ‘Aprés‐Guerre Créatrice’. Such reflective study about the ‘aprés guerre’ concept was performed since late 1950". Kim woo-jong and Baek chol who played main role at the time pointed out that the ‘aprés guerre’ concept in Korean literature was multi-dimensional. Without awareness of this muti-dimensional complexities, it would be really hard to grasp the essence of Korean postwar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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