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야콥스 규범이론과 적(敵)형법

        고봉진(Ko, Bong-Jin)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2016 圓光法學 Vol.32 No.3

        야콥스는 시민형법과 적형법으로 형법을 나눈다. 테러형법은 적형법의 대표적인 예이 다. 야콥스는 시민형법에서 시민에게만 인격(Person)에 의한 책임 귀속을 묻는다. 야콥스는 고립된 인간개체와의 비교를 통해 사회 속의 ‘인격’을 설명한다. ‘인격’에게는 규범적 기대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규범효력(Rechtsgeltung)을 유지하고, 규범을 안정 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야콥스는 적에게는 인격에 의한 귀속을 묻지 않는다. 적을 인격이 아닌 非인격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민형법은 인격인 시민과 소통을 하려 하지만, 적형 법은 인격이기를 거부하는 적과 소통하지 않고, 적을 위해로 보아 제거하려 한다. 필자에게 야콥스의 적형법은 현대 예방형법의 범주를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예방형법의 범주를 벗어난 적형법이라는 틀을 통해 예방형법에 부과되는 정당성 심사를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테러입법은 예방형법의 관점에서 그 정당성이 심사되어 야지, 적형법으로 정당화할 것은 아니다. IS 테러처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가 벌어지는 현 시점에서 테러형법을 적극적 일반예방을 통해 근거짓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테러형법의 경우에 한해 테러범의 책임귀속을 적극적 일반예방을 통해 근거짓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필자 또한 야콥스의 적형법 구상을 규범이론과 귀속이론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 고, 다만 테러형법을 ‘예방형법’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 했다. ‘예방형법’의 구상은 ‘법치국가 형법’의 예외로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법치 국가 형법’이라는 정상과학을 깨뜨리지는 못한다. 필자에게 야콥스의 ‘적형법’은 ‘법 치국가 형법’과는 거의 대등한 지위를 갖는 위치로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형법을 ‘법치 국가 형법’으로 바라보는 정상과학을 깨뜨리는 구상이라고 보여진다. 야콥스의 형법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는 야콥스의 ‘적형법’은 규범적으로는 수긍하지 못해도 분석적으로는 나름 의미있는 형법이론이라고 생각한다. Der Begriff ‘Feinstrafrecht’ ist eine vom deutschen Strafrechtler und Rechtsphilosophen Günther Jakobs vorgeschlagene Bezeichnung für ein Strafrecht, das bestimmten Gruppen von Menschen die Bürgerrechte versagt und sie als Feind der Gesellschaft stellt. Bestimmte Straftäter als Feind gelten nicht mehr für den verfassungsrechtliche Garantien. Jakobs sieht das Feindstrafrecht z.B. in der Sicherheitsverwahrung des Täters. Es ist kein Strafrecht im herkömmlichen Sinne, sondern ein von rechtsstaatlichen Bindungen befreites Instrument zur Gefahrenabwehr. Als Gegenbegriff prägt Jakobs den Ausdruck ‘Bürgerstrafrecht’. In diesem Aufsatz versuche ich das Konzept des Feinstrafrechts zu behandeln mit dem kritischen Ansicht zum Jakobs Normtheorie: die Regeln der Gestaltung der Identität der Gesellschaft und personale Zurechnung. Es wird der Vorwurf erhoben, dass Jakobs nicht nur eine rein deskriptiven Analyse des geltenden Strafrechts leistet, sondern zu einer Rechtfertigung dessen gelangt, was es unter ‘Feindstrafrecht’ versteht. Insbesondere das rechtfertigende Elements des Konzepts wird von der Mehrheit der Strafrechtswissenschaftler abgelehnt. Thomas Kuhn beschreibt in seinem Hauptwerk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die Wissenschaft als eine Folge von Phasen der Normalwissenschaft und von wissenschaftlichen Revolutionen. Ein zentrales Konzept ist hierbei das des Paradigmas. Eine Revolution ist nach Kuhn ein Paradigmenwechsel. Am Ende dieses Aufsatzes versuche ich das Feindstrafecht zu analysieren mit den Kuhns Komzepten: normal science, paradigm, 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

      • KCI등재후보

        생활폐기물 적환장의 운영에 따른 수거효율성 분석

        유기영(Kee Young Yoo) 유기성자원학회 2018 유기물자원화 Vol.26 No.1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수거거점 확보, 수거시스템과 처리시스템의 연결, 간이 선별 등을 목적으로 생활폐기물 적환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적환장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운영 가능한 총운반거리 등 구체적인 적환장 운영조건에 대해 분석한 국내사례는 없다. 본 연구는 적환장 운영 여부, 발생원으로부터 적환장까지의 운반거리, 적환장의 건물형태 등을 변화시키면서 수거비용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적환장이 쓰레기 배출원에 근접할수록, 적환장의 건설비가 저렴할수록 수거비용은 감소하였고, 건물 없는 적환장의 확보가 가능한 지역은 총운반거리가 15 ㎞이상만 되어도 적환장을 운영하는 것이 운영하지 않는 경우보다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하시설물로 적환장을 확보해야하는 지역에서는 유효한 총운반거리가 35 ㎞이상으로 늘어났다. 25 local districts in Seoul have been running Waste Transfer Stations(WTSs) to secure regional collection bases, to connect between collection systems and waste treatment systems, and to commit various pre-screening of mixed wastes. There were, however, few previous researches to define how much WTSs are beneficial to waste collection system at least in Korea. So this study analyzed costs of waste collection systems with varied haul distances from waste sources(WSs) to WTS or building types of WTSs. Major results showed that the closer WTS is to WS or the cheaper the construction cost of WTS is, the lower the cost of waste collection system is. There was an additional result that WTS system with more than 15 km of total haul distance might be useful in Seoul and encapsulation of WTS in building or underground will make effective total haul distances longer up to 35km.

      • KCI등재

        ‘的2’, ‘的3’과 ‘來着1’의 통사적 특징과시간 자질 중한 대조연구

        한경숙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8 東洋學 Vol.73 No.-

        본고는 현대중국어 시간조사 ‘的₂’, ‘的₃’과 ‘來着₁’의 통사구조와 시간 자질에 대한 공시적인 중한 대조분석을통하여 이들의 변별적 시간 자질 즉 ‘的₂’, ‘的₃’과 ‘來着₁’ 사이의 시간 표현의 차이를 규명하였고 ‘的₂’와 ‘了₁’의차이도 분석하였다. ‘的₂’는 술어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 ‘的₃’은 문장의 말미 즉 목적어 뒤에 위치한다. ‘來着₁’도문장의 말미에 위치한다. ‘的₂’, ‘的₃’ 구문의 술어는 지속성 동사, 비지속성 동사, 심리동사, 형용사 등이 가능하고 ‘來着₁’ 구문의 술어는 지속성 동사, 심리동사, 존재동사, 판단동사 모두 가능하다. 복합문 중에서 ‘來着₁’은앞 구문의 말미에 출현할 수 있지만, ‘的₂’, ‘的₃’은 앞과 뒤 구문 모두 가능하다. ‘的₂’, ‘的₃’ 구문에서 ‘的₂’, ‘的₃’ 은 어기에 따라 분류된 陳述句, 感叹句, 祈使句, 疑问句 등 구문에 모두 출현 가능하고, 특수한 主謂句인 連動 句, 兼語句, ‘把’字句, ‘被’字句 등에도 출현 가능하지만, 存現句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來着₁’ 구문은 疑问句가가장 많고 陳述句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으며 ‘的₂’, ‘的₃과 달리 存現句가 가능하다. 현대중국어 시간조사 ‘的₂’, ‘的₃’과 ‘來着₁’은 술어 동사의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的₂’, ‘的₃’과 ‘來着₁’의시간 자질을 고찰하기 위하여 이들과 관련된 술어의 자질을 먼저 고찰하였다. 상 자질 보유 여부를 판단할 수있는 [+동태성], [+완결성], [-순간성], [+접근성] 등 술어자질을 먼저 설정하고 예문 분석을 통하여 ‘的₂’, ‘的₃’과‘來着₁’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的₂’는 상 자질과 시제 자질을 가지고 있고, ‘的₃’은 시제조사 겸 어기조사이며, ‘來着₁’ 역시 어기조사 겸 시제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的₂’, ‘的₃’과 ‘來着₁’ 모두 우리말의 ‘_었(었었)_’으로번역되는데 ‘_었(었었)_’은 한국어에서 ‘과거시제’를 나타낸다. 즉 중국어의 시간조사 ‘的₂’, ‘的₃’과 ‘來着₁’ 등은상, 시제, 어기 등 여러 가지 자질을 구현하고 있지만, 이들과 대응되는 한국어의 범주는 시제 범주의 하위 범주인 과거시제뿐이다. 이렇듯 한중 두 언어는 시간 표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的₂’와 ‘了₁’도 비교 분석하였다. ‘的₂’와 ‘了₁’ 두 조사 모두 술어 동사의 뒤에서 동사의 상 자질을 구현해주고있지만, ‘的₂’구문의 의미지향(語義指向)은 동사 앞의 부사어에 있는 반면, ‘了₁’ 구문의 의미지향은 술어 동사자체의 상에 있다. 비록 이들 모두 술어 동사의 상을 구현해주고 있지만, 두 조사의 의미지향이 다르기에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 자질들이 서로 다르다. 즉 각 구문의 초점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的₂’와 ‘了’ 앞의 동사가[+순간성] 자질을 가지고 있는 동사일 때 ‘的₂’가 동사의 과거시제를 나타내지만, ‘了’는 동태조사가 아닌 어기조사 ‘了₂’이다. 즉 술어동사가 [+순간성] 자질을 가지고 있는 동사일 때 그 뒤의 ‘了’는 동사의 상 자질을 구현해 줄 수 없다. ‘的₃’과 ‘來着₁’은 비록 문장 중에서 모두 어기조사 겸 시제조사이지만, ‘的₃’ 구문의 의미지향은 술어동사 앞의 부사어에 있고 ‘來着₁’ 구문의 의미지향은 술어 동사에 있다. 이렇듯 ‘的₂’, ‘的₃’과 ‘來着₁’ 모두 시간자질을 가지 ... “De₂(的₂)” located immediately behind the predicate and the end “De₃(的₃)” is located behind the object. “Laizhe₁(來着₁)” located in the tail. “De₂(的₂)”, “De₃(的₃)” syntax of the wine is often a bean properties of verbs, psychological verbs, verbs, adjectives, and other “Laizhe₁(來着₁)” syntax“ of the wine is continuity verbs, psychological verbs, verbs are verbs, judgement is possible. composite door “Laizhe₁(來着₁)” of the phrase appeared in the end of the can, “De₂(的₂)”, “De₃(的 ₃)” before and after the phrases are possible. “De₂(的₂)”, “De₃(的₃)” syntax is the statement, the question, the research use the as soon as possible, and “Laizhe₁(來着₁)” phrases are only part of the question, the statement is possible. the investigation of modern chinese time “De₂(的₂)”, “De₃ (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time is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verb. “De(的₂)”, “De(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time, the quality of their relationship with the predicate of the first temple. the quality judgment of whether to have [+ Dynamics], [+Completion], [-Instantaneity], [+Proximity] the transient availability, quality and sample analysis, first through the “De₂(的₂)”, “De₃ (的₃)” and the “Laizhe₁(來着₁)” the results “De₂(的₂)” the quality and test quality. when the “De₃(的 ₃)” and what, “Laizhe₁(來着₁)” is what and how to investigate. “De₂(的₂)”, “De₃(的₃)” and “Laizhe₁(來 着₁)” can be translated into Korean “-었(었었)-”, Korean “-었(었었)-” belongs to the past tense system. it is the chinese for “De₂(的₂)”, “De₃(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is the tense, and reflects the quality of tone, but also to be the language of the sub category of the category of the test is in the past tense. this is also “De₂(的₂)” and “Le₁(了₁)”, “De(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comparative analysis. “De₂(的₂)” and “Le₁(了₁)” difference is the object of verbs are also in the quality of the verb to have, “De的₂” focus in front of the adverbial verb phrase in the phrase, “Le₁(了₁)” focus on the language itself. the investigation of the two, although they are different in terms of verbs and the use of different means, and the existence of reasons will be different. and “De(的₂)” and “Le₁ (了₁)” difference, the verb “De₂(的₂)” is [+ Dynamics], [+Completion], [+Instantaneity], [-Proximity], “the availability of “De₂(的₂)”, the past tense of verbs in the mainland, in the category. the trial. this is also “De₂(的₂)” and “Le₁(了₁)”, “De₃(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comparative analysis. “De₃(的₃)” and “Laizhe₁(來着₁)” is from the article are what and how the “De₃(的₃)”, the focus of the predicate verb in the adverbial “Laizhe₁(來着₁)” syntax of the predicate verb is the focus. such “De₂(的₂)”, “De₃(的₃)” and time are “Laizhe₁(來着₁)” quality, but also have a car to see things.

      • KCI등재

        적실성 있는 설교 적용을 통한 청중의 변화 방안

        김재선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2014 복음과 실천신학 Vol.33 No.-

        적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들은,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잘 해석해서 선포하기만 하 면 하나님께서 각 청중에게 적절하게 적용해 주신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설교에서 적용은 반드 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적용은 실제로 하나님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설교자는 적용 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적용의 필연성을 말한다. 그리고 적용의 필연성은 물론, 그 적용이 청 중에게 적실성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청중에게 적실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청중의 삶에 타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실제적 적실성’이라 한다. 또한 그것의 타당성을 깨달아 이해해야 하는 것을 ‘기능적 적실성’이라고 한다. 설교가 청중에게 들려지는 말씀이 되도록 하 는 것이 적실한 적용이다. 설교와 적용의 목적은 청중의 변화에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그 메시지가 청중의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지 변화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적실한 적용을 통한 청중의 변화는 가치 관의 변화, 성품의 변화 그리고 행동의 변화로 세분화 할 수 있다. 특히 적용으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는 내세를 묵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한 성품의 변화는 자기 부정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행동의 변화는 십자가를 지는 적극적인 삶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된 모습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이러 한 변화의 구체적인 영역을 목표한 적용을 시도할 수 있다. 청중이 설교의 적실성이 있는 적용으로 가치관과 성품 그리고 행동이 변화 되어 올바른 삶을 살 게 된다면, 그로인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 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적실한 설교 적용을 통해 청중이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다. 결국 설교 적용을 통해 변화된 청중의 실 천적인 삶의 목적과 방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Some contemporary homileticians have a negative view about sermon application, and assert that if preachers interpret the Scriptures correctly and declare the God’s message to their congregation, He will give to each audience member something to be properly applied in their lives. However, another group of homileticians argue for the importance of sermon application and strongly assert the inevitability of sermon application. The necessity of the sermon’s application should be applicable to the sermon hearers. If a preacher wants his sermon to be applicable to his hearers, that sermon should also be appropriate to the hearer’s lives. This is called ‘practical applicability’. Consequently, to understand the validity of the things realized is called ‘functional applicability’. In order for a sermon to applicable in its application to the audience, it needs to be preached as the Word of God. The purpose of preaching and its application is the transformation of the audience. The preacher should specifically consider how the message is expected to change the lives in the diverse range of his audience. The maturity of the audience, through applicable sermon application, will determine the changes in values, personality and behavior. Particularly, changes in values will be a life of meditation concerning the future, changes in personality will be a life of self-denial and changes in behavior will be a positive life of bearing one’s cross. The ultimate purpose of the sermon is to achieve, for the audience through sermon application, a change in values, personality and behavior of the audience. This is to the of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and His presence forever. A life of glorify to God is transformed by applicable or appropriate sermon application. Finally, the purpose and direction of the audience’s practical life, through sermon application, should be to glorify God forever.

      • KCI등재

        마르크스와 사회적인 것

        백승욱(Seung Wook Baek) 한국사회학회 2015 韓國社會學 Vol.49 No.5

        마르크스는 ‘사회적인 것’의 자리를 서로 다른 교환의 세 가지 규정을 통해 설명한다. ‘교환1’은 자유로운 계약관계로서 ‘자유·평등·소유·벤담’의 세계이며, ‘교환2’는 생산과정 속에서 노동력과 자본 사이의 ‘직접적 교환’이란 부른 것으로 ‘교환=비교환’이고, 세 번째는 이 두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물신숭배로서의 ‘교환3’이다. 사회적인 것을 형성하는 교환의 세 영역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울상의 전도’의 결과로서, 우리는 ‘사회적인 것’을 사실상 세 번째 교환의 영역, 즉 물신숭배의 영역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오로지 볼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공간에서 ‘교환’으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것의 효과들이지만, 사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사회적인 것’은 속이 비어 있는 사회적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재생산이란 ‘교환1’의 공간을 전제로 해서, ‘교환2’에 의해서 작동하며, 그 결과로서 ‘교환3’[을 유일한 실현]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의 ‘사회적인 것’의 세 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성을 형성한다. 마르크스의 강점은 ‘사회적인 것’을 경제나 정치의 외부로 설정하지 않는 데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교환과 재생산을 통해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사회적인 것의 재생산이 그 자체에 의해 완결될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마르크스의 논의 속에 ‘사회(적인 것) I’과 구분되는 ‘사회(적인 것) II’가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징후는 국가와 관련된 쟁점들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상이한 사회적인 것의 구분을 독일어의 구분에 따라, 마르크스가 명시적으로 분석해 보여주려는 ‘사회(적인 것) I’ 또는 ‘das Gesellscahftliche’과 그에게 암묵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의 맹목점이 될 수 있는 ‘사회(적인 것) II’ 또는 ‘das Soziale’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것) I’은 모순이 발생하는 기원지이지만, 그 자체가 (정치에서) ‘표상’되는 것은 아니다. 전도된 것으로서 ‘사회적인 것 I’의 ‘물신숭배’적 표상은 ‘사회적인 것 II’ 속에서 비로소 자기 표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것) II’는 전도된 사회성의 자리 속에서 개인에게 주체로서의 자리를 부여하는 형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Marx explains ‘the social’ through three different definitions of exchanges. ‘Exchange 1’ designates free relations of contract. that is the world of ‘freedom. equality, property, and Bentham’. ‘Exchange 2’ is the direct exchange between labor-power and capital in production process, therefore “exchange=non-exchange”. ‘Exchange 3’ is fetishism taken place as a consequence of former two exchanges. The social in Marx emerges only in the third domain of ‘exchange 3’ as a result of ‘mirror inversion’. As we only see the effects of the social in the 3rd realm of ‘exchange 3’, what we see in the domain of the social is hollow. Re-production in Marx functions in ‘exchange 2’ with the premise of ‘exchange 1’, bringing about ‘exchange 3’ as their consequences. Marx’s three domains, the spaces of ‘the social’ cannot be separated from each other, for those form a united one. The reproduction of ‘the social’ in Marx’s concept cannot be completed by itself, without other spaces of ‘the social’. I will discern ‘the social I’(das Gesellschaftliche) from ‘the social II’(das Soziale). ‘The social I’ itself cannot be represented in the sphere of politics though it is the origin of the contradictions. Inverted representation of fetishism finds its expression only in ‘the social II’. Individuals are entitled to have their space as subjects only in ‘the social II’ as a result of inverted sociality in ‘the social I’.

      • KCI등재

        '的'의 의미 기능에 관한 재고찰

        LIU XIUPING 한국중국문화학회 2018 中國學論叢 Vol.0 No.60

        This paper mainly examines the semantic function of ‘de'in ‘de-construction' and the identity among three types of ‘de-construction'. Firstly, this paper sorts out and analyses the current research on the ‘de-construction', and puts forward some problems related to ‘de-construction', which are still unsolved and controversial. This paper demonstrates through examples that ‘de’ in ‘de-construction’ is not a ‘tense-aspect marker’. It can coexist with ‘le’, ‘zhe’ and ‘guo’. Finally, from the cognitive point of view, this paper introdu’es the concepts of ‘reality’and ‘irreality’ proposed by Langacker. It is considered that the three types of the ‘de-construction' has identity. The basic function of the ‘de-construction'is that the speaker protiling the reality as a gestalt and conveys it to the listener. The ‘de’ is a ‘reality protiling marker’ and the ‘de’ what is called Nominalization marker is a ‘entity protiling marker’ marker. There is identity between the two. 본고는 ‘的구문’에서의 ‘的’의 의미기능과 세 가지 유형의 ‘的구문’ 간의 동일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우선 ‘的구문’에 대한 기존연구를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현재까지 아직 해결되지 못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예문에 대한 분석을 통해 ‘的구문’에서 ‘的’는 단순히 시제-상 표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였고, ‘的’는 상 표지인 ‘了'、'著'、'過'와 모두 공기할 수 있다는 사실과 원인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인지적인 관점에서 Langacker가 제가한 ‘실상’과 ‘비실상’의 개념을 도입하여 ‘的구문’에 적용시켜 세 가지 유형의 ‘的구문’은 동일성을 가진다고 밝혔다. 그리고 본고에는 ‘的구문’의 근본적인 의미기능은 ‘화자가 실상을 하나의 게쉬탈트로 윤곽부여 청자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的구문’에서 '的'는 ‘실상 윤곽 부여 표지’이고, 소위 명사화 표지인 ‘的’는 ‘실체 윤곽부여 표지’이며 이 두 개의 '的'는 서로 동일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 KCI등재

        연국 논문 : "자오(自娛)"의 예술창작관 연구

        김연주 한국미학예술학회 2011 美學·藝術學硏究 Vol.33 No.-

        ``자오(自娛)``, 즉 스스로 즐긴다라는 예술적 ``쾌``의 의미가 강조된 이 창작관은 ``무목적의 목적``이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로 알려진 서양의 예술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예술 창작관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는 자신들의 회화 창작관을 피력하고 있는 글을 서술한 계층의 대부분이 자신의 학문도야 및 인격수양이라고 하는 삶의 자세를 지속했던 문인사대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자오``의 예술창작관 속에는 문학적·철리적·인격수양적인 다양한 함의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문인들의 삶이 응축된 철리성이 배인 창작물로서의 문인화는 사물의 단순한 반영이기 보다는 화의(畵意)를 중시하여 따라서 뜻을 그려내는 사의화(寫意畵)라고도 불린다. 문인화를 그려내는 창작태도인 ``자오``에서 ``즐긴다``라는 쾌감의 추구는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러한 정신경계를 지닌 회화는 이미 평범함을 넘어 의미심장하고 ``노님[遊]``의 화의가 흘러넘치는 화도(畵道)의 경계라 할 수 있다. 당대 이전의 회화는 문자를 터득하지 못한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신성한 것과 사악한 것 등의 개념을 형상을 빌어 각인시키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또한 동일한 붓을 사용하는 서화(書畵)는 글씨를 익혀 배움의 깊이를 더하고 형상으로써 인간관계를 익히는 수단이었다. 당대 장언원(張彦遠, 815~879)은 그림을 보고 인간의 착함과 어짐을 구별하며 이를 경계하거나 배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림의 효용성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림을 육경(六經)의 지위에 놓았다. 그 후 오대를 거치면서 동양의 정신에 면면히 흐르는 회화정신은 ``자오``의 의식적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특히 이상화된 산수 속에서 문인들은 유유자적한 ``유(遊)``의 정신경계를 누렸다. 중국회화에 있어서 회화가 ``삶을 즐기는 방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송대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예술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려는 의지가 강한 시기였다. 특히 송대 문인화는 문인들의 서정적인 감정 및 학식과 취향의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산수이건 인물이건 초충이건 새나 동물이건 주제가 무엇이든지 문인들은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명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상상력에 의한 형태를 끌어내고 내적인 것으로 향하는데 몰두했다. 문인화의 특징을 실용적 목적에 근거를 두지 않은 순수한 즐거움에의 추구에 두는데 이러한 경지를 대표하는 용어가 ``자오``이다. 일생동안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던 예찬(倪纘, 1301~1374)은 일기(逸氣)를 담은 일필(逸筆)을 통해 ``자오``의 예술적 경계를 실현하였다. 원대(元代)에 더욱 발전한 문인화는 문인들이 ``자오``하는 필수 도야과정이 되었고 사물의 객관적 묘사나 교화를 위한 효용성 보다는 철리성을 보전한 마음 속 뜻을 표출하는 경향이 강조되면서 예술의 자율적 특성을 확보했다. 그러므로 ``자오``라는 개념은 예술이 그 효용성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문인들이 삶에서 도출한 것이다. ``자오``는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되찾는 노력이다. 따라서 예술창작관으로 살펴 본 ``자오``의 경계는 흘러가버린 옛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도 재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자오``는 회화의 가치가 교화적 효용성으로부터 예술적 자율성을 획득한 개념이면서 예술적 통찰력을 분출할 수 있는 모든 의지를 담고 있는 마음이 자유로운 경지이다. 결론적으로 ``자오``의 예술창작관은 문인들이 학문도야와 인격수양을 통해 우러나오는 초연한 마음자세를 근본으로 하여 그 뜻을 초월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이로부터 예술적 통찰력이 발휘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다양한 삶에서의 수양이 바탕이 되어야만 체험할 수 있는 경지이며, 이로부터 ``도(道)``를 담지한 진정한 자유로운 창작에의 경지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所謂"自娛",旣注重自娛自樂的藝術性之"快"的創作觀.흔顯然,這有別於與被稱爲"無目的的目的"或"爲藝術而藝術(art for art`s sake)"的,注重藝術自律性的西方藝術創作觀.這是因著述其繪畵創作觀的階層中多數人屬於致力於親身實踐學問之陶冶及人格修養爲目的的文人士大夫.而此特點又讓"自娛"的藝術創作觀裏囊括了有關文學性,哲學性及人格修養等多重含義.凝聚著文人人生的文人畵幷不僅僅是對事物的單純反映,而是重視畵意,畵出意境的寫意畵.``自娛``作爲創作文人畵的創作態度,其對快感的追求-"娛"是平凡且自然的,而包含此精神境界的繪畵可以說已超越了平凡,進入了意境深遠,"遊"之畵意橫溢的畵道之境界.唐代張彦遠(815~879)的『歷代名畵記』明確了見畵區別人之善賢,幷以此戒備或빈棄是畵之效用.而歷經唐,五代一直貫穿東方精神的繪畵精神使"自娛"的意識更加深遠了.如山水畵,將飽覽眼底的山水刻畵在心中後,每當畵意湧動,就將心中的山水當做欲想居住的境界,發揮藝術洞察力去創作.文人們就在這般理想化了的山水中享受著悠然自居的"遊"之精神境界.可以說繪畵旣"享受生活之捷徑"的觀念的普及是在宋以後.此時正處藝術家們渴望表現自我的意志比任何時期都强烈的時期.特別是宋代文人畵,其對抒發文人情致,表現學識及愛好方面的作用是非常突出的.不管其主題是山水,人物還是鳥獸,只要是展現在文人眼前的,幷不拘泥於逼眞描繪而更熱衷於憑借想像力引出其形態,轉入內在."自娛"是定義文人畵不追求任何實用目的而只追求純享受的特點,是代表此境界的用語.繪畵在重視"自娛"的境界之前,更是敎化不識字的百姓通過形象區分神聖與邪惡的手段.同樣使用毛筆的書畵又是通過學習文字來加深學問,幷以其形象交人的手段.倪纘(1301~1374)一生都在追求自由自在的生活,他通過-"自娛".而倪纘繪畵論中的代表性槪念,如"逸氣","逸筆","不求形似","自娛"等包含的追求自由的意志幷不僅僅意味著做自己想做的,而是無爲的境界,是將自我消滅於太虛中的境界.在中國,可以說"繪畵"幾乎和"文化"是同義詞.因此,타與時代的普遍思想密切相關,且隨之變化發展;幷富其傾向.文人畵就是文人在仕途平坦時,遵循儒家思想積極入世;仕途坎□時,遵循道家思想,出世,自行其樂的書畵.타是隨著文人們"自娛"傾向的流行而出現的時代産物.唐代繪畵因當時社會重視勸誡,而深受政治宗敎的影響,且唐末的政治混亂推動了山水畵的發展;經五代的變亂,此傾向更加速發展.到了元代,更上一層樓的文人畵成了文人雅士"自娛"必經的陶冶過程;比起對事物的客觀描繪及爲了敎化的效用,表露富含哲理性的心中之意更受重視.而這又保障了藝術的自律性特點.因此,"自娛"就是文人在藝術效用性中確保其自律性的人生中導出的槪念.道旣普遍規律,象則是事物各自相異的形式表現.藝術形象可通過此類象發現事物的內容本質,更可以親自領會道,幷體現道.因此,體驗畵道就是身處"可成就繪畵的最高精神境界"中,體會道之境界的自由過程中表露出的愉悅.不僅藝術創作,藝術欣賞也是如此.這樣的人生只有在文人們追求的以文學·哲學全副武裝的,超凡脫俗的遊歷境界才有可能實現.

      • KCI등재

        아시아의 신(神)들은 빨간쌀을 좋아한다: 의례용(儀禮用) 적미(赤米)와 적미박멸(赤米撲滅)의 식민정책(植民政策)

        전경수 ( Kyung Soo Chun ) 한국문화인류학회 2009 韓國文化人類學 Vol.42 No.1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적미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하나의 연구 질문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삼아 온 여러 지역들, 예를 들면 일본과 베트남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발견되는 적미가 왜 한반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 본고를 작성하는 목적은 녹색혁명이라고 하는 근대적인 지식 체계에 의해서 사라져 간 아시아의 쌀에 관해서 논하는 것이며, 특히 이미 지역에 따라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적미와 적미에 관련된 아시아 문화의 특성에 관련된 논의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쌀이라고 하면, 백미만을 생각하게 된다. 환언하면, `쌀은 흰색`이라는 생각은 식민지배의 영향에 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적미와 관련된 쌀의 문화론은 사라지고, 백미만이 남은 이 땅의 쌀 문화론을 논하는 것은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망각하는 셈이다. 쌀에 각인된 식민지의 역사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은 역사의 핵심부분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적미에 관련된 자료들을 집적하여 적미 박멸의 역사를 재구성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시아에서는 의례용으로 적미를 사용한 기록과 삶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아시아의 신들에게 바쳐지는 음식은 빨간쌀이 기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영역에서 공희로 바쳐지던 빨간쌀이 사라지는 과정에 식민주의가 개입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기록들이 증거로서 존재하고 있다. 신들을 위한 공희용으로 재배되었던 적미의 존재로 인하여 적미의 종은 유전되고 있다. This paper supports the hypothesis that red rice in the Korean peninsula has almost disappeared as an outcome of Japanese colonial policy. I focus on the process of colonial domination, and how it resulted in policies that eradicated the cultivation of red rice. In terms of comparison, red rice is still grown in China, Japan, and Vietnam, while Korean rice farmers no longer grow the red rice. The question of why red rice disappeared in Korea is addressed in this paper in the context of the green revolution in Asia. Contemporary Koreans believe that rice should be white in color, an idea which has been the result of the colonial influence. This is a reflection of the culture of colonialism, and it also reflects the tendency of forgetting about the colonial history.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the red rice means that it is necessary to uncover the colonial history. Based on the ethnographic surveys, red rice is mapped on various areas of Asian societies. Red rice has been sacrificed for the spirits in Asian culture in general. The eradication of the red rice during the colonial times in Korea should be seen as a kind of cultural genocide in spiritual terms.

      • KCI등재

        “적”语法性连语和汉语对应表现形式的研究

        류홍샨(刘,虹杉) 한국중국문화학회 2021 中國學論叢 Vol.- No.70

        对于“적”的语法教学是重点不涉及的领域,因此,有关“적”的学习资料不足,是实际语言生活中外国学习者们错误地使用“적”的原因。不仅在教授中国人依存名词“적”时,在让韩国的汉语学习者更准确地理解与依存名词“적”相关的汉语的对应表现形式等方面也存在一些问题。 实际上,中国学习者在学习有关依存名词“적”的先·后行要素时出现的偏误,应该先观察是否与时(时制,시제,Tense)或体(时态,상,Aspect)有关。这是因为不了解“적”的具体使用条件,翻译时对“적”的使用没有明确的标准。对此,先前的研究整理了以“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的概念和特征。对韩国语词典、韩国使用的韩国语教材和中国用于韩国语教学的韩国语教材以及韩国语料库中的“적”语法项目进行研究后,将“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以形态,语法结构和意义的层面分析了“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阐明了以“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和汉语的对应表现形式。以此为基础,本研究通过分析“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和汉语的对应表现形式来使用语法时,错误的原因主要是母语中没有相同的概念和形态,因此没有意识。所以,学习者们在学习汉语和韩国语中没有的类似表述时,会遇到困难。进而将“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从意义上分为:“过去有过…的时候”,“经验性事实”,“…的时候”三类,并归纳了这三类意义对应的形态,即,“-(으)ㄴ/-었-(-았-/-였-)던 적 있/없-”,“(-어 보-)+-(으)ㄴ/-었-(-았-/-였-)(던) 적 있/없-”,“(-(으)ㄴ/(-었-/-았-/-였-)을/-(으)ㄹ) 적”。并详细阐述了以“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和汉语的对应表现形式相关的使用条件,以中国人韩国语学习者和韩国人汉语学习者为对象完善了具体的教学方案。 本研究以韩国语“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与汉语的对应表现形式为重点,为消除中国学习者在学习韩国语的依存名词“적”和韩国学习者在学习相关的汉语语法时出现的困难,提供更加具体详细的教学方案。 为此,本研究将根据意义分类,与汉语进行对比分析,整理以“적”为中心的语法性连语和汉语的对应表现形式的用法。然后,通过例句系统地阐明使用情况,加以分析并归纳总结,在实际教学中可以灵活运用。 在韩国,对语法性连语的讨论比较活跃,但是目前还没有统一术语。共同之处是在韩国语语言学中讨论的语法性连语的特征是,由语法要素和词汇要素组成的结构,具有共起性 连语(연 Foreign learners are not focusing on “적” grammar. Therefore, the lack of materials on “적” is the reason that foreign learners use “적” in real life. In particular, when teaching the Chinese-dependent noun “적”,there are some problems in making the Chinese equivalent of “적”. more accurately understood by Koreans. In addition, when using grammar through analyzing the grammatical conjunction centered on “적” and the corresponding expression of Chinese, the main reason for the error is that there is no common concept and form in the mother tongue, so there is no consciousness. Therefore, it is difficult for learners to learn similar expressions that are not in Chinese or Korean.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improve specific educational programs for Korean learners and Korean Chinese learners in terms of the time system and the corresponding performance of Chinese grammar and Chinese characters based on the previous version of “적”.

      • KCI등재

        『적성의전』에 나타난 청각적인 소재의 역할과 의미

        박성호 ( Sung Ho Par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2 동방학 Vol.23 No.-

        『적성의전』에는 피리소리, 거문고소리, 기러기, 닭, 삽입시 등 다양한 청각적인 소재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청각적인 소재들은 작품 안에서 인물 간의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악기소리나 삽입시 등은 인물의 非凡함을 드러내는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청각적인 소재들이 『적성의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근원설화인 「善事太子入海品」과의 비교를 시도해 보았다. 그 결과 청각적인 소재의 빈번한 활용이 『적성의전』과 「선사태자입해품」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간극을 메우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였음을 밝혔다. 여기서 시간적 간극이란 고대인도의 설화와 조선후기의 한글소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의미한다. 고대설화와 한글소설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틈을 메우기 위해 『적성의전』의 작가는 작품의 인과성을 좀 더 치밀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적성의전』이 「선사태자입해품」에 비해 좀 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선행연구에서도 이미 밝힌 바이다. 본고에서는 청각적인 소재들이 등장인물들 간의 인연 맺기 방식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서사적 인과성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작가는 불교가 성행했던 인도와 억불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던 조선 사이의 공간적 간극 역시 매울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선사태자입해품」에 나타난 불교적 색채를 감소시키고 『적성의전』에 유교적 색채를 덧씌우기 위해 초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仙官이나 天地神明과 같은 초현실적인 소재가 ‘孝’라는 유교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In 『Jeok Seongeui Jeon』, there anr many auditory material such as the sound of a flute and a k?mungo(a Korean harp with six strings), wild goose and chicken and interposed poems. These auditory material plays important part to make relation between characters. Futhermore the musical instrument and interposed poems have another role to disclose characters` extraordinary gifts. To explain the reason that the auditory material are showed frequently in the novel, I carried out the comparison of 『Jeok Seongeui Jeon』 and 「SunSaTaeJa IpHaePoom(善事太子入海品)」, the source narrative. As a result, I could prove that the frequent use of auditory material is the gadget to overcome the gab of time between the two works. Concretely the gab of time means that the gab that exist between ancient narrative and Korean novel created in the Joseon Dynasty era. To fill up the gap, the author of 『Jeok Seongeui Jeon』 needed to organize the story more delicately. For this auditory material intervened directly and indirectly and increased causality of plot. Also the author needed to fill up the gap of space between ancient India which Buddhism is prevalent and Choson which Buddhism is suppressed. So the author needed to recoat the color of Confucianism over Buddhism. As part of the effort to recoat, author used surreal material. I proved this fact confirming the surreal material is mostly used to preserve filiality.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