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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ethes Begriff der Weltliteratur und sein Verha¨ltnis zu China

        Chin, Sang-Bum 한국헤세학회 2003 헤세연구 Vol.10 No.-

        괴테의 세계문학의 개념과 중국과의 관련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논문의 목적이 있다. 지금까지의 중국적인 관점에 이루어진 연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기존의 괴테의 중국 수용과 그의 세계문학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조망해보면 너무 중국학적인 관점에서 수행되면서 많은 오해를 자아내고 있다. 필자는 이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괴테의 세계문학의 개념은 중국에 대한 관심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유럽문학의 고전에 대한 독서체험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음을 괴테의 인용문을 들어서 논증하고 있다. 괴테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게르만적이고 현학적 자만에서 벗어나 세계 시민적 시각을 얻어내고자 하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괴테는 민족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면 보편적인 것을 세계문학 이념의 중심에 도입하고 있다. 괴테의 중국의 관심은 그의 지적인 지평선을 확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괴테의 세계문학이념은 상호 다른 민족간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이 지니고 있는 개별성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류의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이해시키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괴테는 그러한 보편적인 세계를 그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작품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기존의 괴테의 세계문학개념과 중국과의 관련성을 연구를 했던 차르너 Tscharmer, 몸센 Mommsen, 바그너 디트마르 Wagner-Dittmar, 드봉 Debon의 중국지향적인 편향성을 비평하고 있다. 예컨대 스위스의 중국 철학자인 차르너는 괴테의 세계문학과 관련하여 “중독(中獨)의 사계절과 사시각 Chinesisch-Deutsche Jahres- u. Tageszeiten" 속에 내재된 중국적 자연을 높이 평가하면서 괴테의 세계문학과 관련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독일 문학자 멈센은 물론 서동시집 ”West-iestlicher Divan"과 중독(中獨) 만년시 “chinesisch-deutsche Jahers- u. Tageszeiten" 속에 내재되어 잇는 이슬람과 극동의 요소를 언급하고 있다. 괴테는 이러한 이방적인 요소를 작품에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이라는 낯선 민족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그너 디트마르도 중독의 시화 중국의 서정시의 특성과 모티브면에서 유사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서 독일의 중국학자인 귄터 드봉은 상기한 중독시에 내재되어 있는 중국적인 특이한 요소를 언급하면서 괴테의 만년의 시 “방랑자의 밤의 노래 ”Wanders Nachtlied"에도 중국적 서정시의 특성과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모든 중국지향적인 연구자들이 괴테의 이국적 세계를 대한 수용은 타민족에 관용 및 이해의 측면에서 볼 때 괴테의 세계문학적 발상의 산물이라는 편향적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필자는 괴테의 세계문학이념은 인류와 인간성을 위해서 공헌하고 보편성을 제시할 수 있는 그의 모든 글속에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KCI등재후보

        괴테의 교회관에 내재된 신학적 경향 연구

        박종소(Park, Chong-So)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2 코기토 Vol.- No.71

        독문학에서 차지하는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의 독보적인 위치를 생각할 때,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괴테가 셰익스피어와 다른 점은, 그의 천재적 탁월함이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헌학, 사학, 철학 등 인문학 전반과 신학 그리고 색채학과 광물학을 포함한 자연과학 분야에까지 미쳤으며, 또한 여러 외국어에도 능통했고 심지어는 바이마르 공국의 국정(國政)에도 오랫동안 참여하여 행정실무능력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다방면의 종합적 지성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괴테를 소개하는 이유는, 괴테야말로 학제간의 연구대상으로 아주 적합한 작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괴테를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해보려는 본 논문은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 언급되고 있는 두 명의 개신교 성직자 플리트와 아놀트가 괴테에게 끼친 영향관계를 고찰함으로써, 괴테의 교회관(敎會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본 논문의 제2장에서 플리트목사와 괴테간의 상관관계가 플리트목사의 설교와 논쟁적 태도를 중심으로 다루어진다. 괴테가 교회를 신앙적으로 성령 충만한 감동적인 교회가 아니라, 도덕적 훈계만을 일삼고 소모적인 종파적 논쟁에나 열중하는 부정적인 모습의 교회로 판단을 내리게 하는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체험적 요소가 플리트목사의 설교와 그의 논쟁적 태도였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설교에 투영된 플리트의 신학적 경향은 플리트가 그의 스승이었던 계몽철학자 볼프와 실증주의 신학자 바움가르텐의 충직한 학생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엄격한 루터주의자였던 플리트목사의 행보에서 루터교 정통주의의 핵심인 종파적 논쟁에 대한 강렬한 참여와 대응이 보이는데, 이런 그의 논쟁적 성향이 괴테로 하여금 교회에 대하여 더욱 역겨움을 불러일으켰다. 플리트목사와 전혀 다른 성향의 아놀트목사가 괴테에게 끼친 영향관계는 괴테의 교회관 정립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했던 사상적 내지는 신학적 신념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아놀트와 괴테와의 영향관계가 아놀트의 교회사 저술 『교회와 이단의 역사』에 나타난 ‘비가시적교회(非可視的敎曾)’ 개념을 중심으로 논구된다. 아놀트는 이 저서를 통하여 교회사에서는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적 제도나 종파적 사건들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개개인의 신앙적 경건함이 결정적이라는, 다시 말해 참된 교회사는 신학적 교리나 논쟁에 관한 역사가 아니라, 비가시적교회의 실체인 이단(異端)으로 박해받아온 자들의 내적 경건의 역사라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괴테는 아놀트의 이 책을 읽고서 그동안 당연시되어온 제도권교회의 편파적 사관(史觀)의 실체를 인식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결과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종교적 세계를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 KCI등재

        “불행한 사람”의 노래

        임우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8 외국문학연구 Vol.- No.31

        Goethes hymn 「Harz journey in the winter」belongs to one of his most difficult poems Goethes. Main problem of the interpretation of this poem is because of the fact that differently than its Frankfurt hymns the pictures and the Metaphor in this poetic text do not seem to have a uniform reference to itself. It concerns whether this hymn as a self reflection or as the compound pictures with different figures like “who ist's apart?”, “the brothers of the hunt”, “the lonely poet” or “your poet” be regarded must. But for the latter case it is hardly possible without Goethes biographic knowledge to understand this hymn. Goethes self explanation over this hymn (1820) help to illuminate the dark side of this poem. But he refers there “the unfortunate one” in the hymn to the young and disturbed Plessing, whom he visited in the Harz journey, so that the poem could be called only report on a journey. Naturally one could interpret this poem out on the biography of its author, by doing without on the aesthetic ambiguity of the poem. Because it could be hardly possible without exact biographic knowledge to understand this hymn. But if a poetic work is read particularly on the biography of the author, these marginal data of the text could lead to a Tradition of the “positivistic Misunderstanding”. Goethe's describing- remarks serve however rather to attribute to the literary text an illusory clarity which is to mask a more deep-seated meaning. Nevertheless only according to the linguistic pictures of the poem a following unit of the plot is put out: “My song” like a eagle, which looks after the booty, represents the fates of the “the fortunate one” prescribed by a God on the one hand and of “the unfortunate one” on the other hand. But “the unfortunate one” climbs the Brocken-mountain under the protection of the “father of the love” and praises enthusiastically on the peak the divinity and the glory, who breathes in nature. It ist clear that “the unfortunate one” becomes “the lonely one”, which is called in the 9th Strophe poem of “the father of the love”, finally to “the happy one” on the Brocken-peak. Then why did Goethe hide the lonely poet, whom the eagle found, in pictures of the Harz-journey in the winter? This doubt could be solved thereby if it may be worked with a hypothesis that Goethe sets his song and the poet to each other as his deputy into a relationship. The pictures of the poetic text describe the Goethes crisis situation as poet. It concerns the search of the poet for a transcendental confirmation and the reflection over the poet at the Weimar Court on a higher level. 괴테의 찬가 「겨울 하르츠 여행 Harzreise im Winter」은 그의 시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시의 하나로 꼽힌다. 이 시의 해석을 어렵게 하는 가장 핵심 요소는 괴테가 프랑크푸르트 시절에 쓴 찬가와는 다르게 이 시가 제시하는 형상과 그 메타포에 일관적인 연관성이 없고 산만해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 전체를 괴테의 자전적 “자기 성찰”로 보느냐 아니면 괴테의 주장을 받아들여 시적 자아가 노래하는 “행복한 사람”, “저 길 옆의 사람”, “사냥하는 형제들”, “고독한 사람”, “당신의 시인” 등의 상이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시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괴테의 전기에 대한 지식 없이는 찬가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괴테가 40여년이 지난 후에 도 이 시가 자기 시 중에서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시로 남아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도, 이 찬가를 불쌍한 플레씽을 방문했던 단순한 하르츠 여행기에 불과한 시로 해석함으로써 이 시의 해석을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괴테가 1820년에 스스로 해설한 것이 그때까지 암흑에 가려있었던 사실들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시를 괴테의 입장에서만 해석함으로써 시가 가진 다의성을 포기하고 시적 텍스트를 괴테의 자서전적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괴테의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 없이는 이 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해석할 때 너무 전기적 요소에만 의존함으로써 ‘실증주의적 오해’를 야기했던 경우를 고려해보면, 괴테가 40여년이 지난 뒤 이 시를 쓸 당시를 회상하면서 쓴 이런 자서전적 자료가 이 시에 담긴 깊은 뜻을 숨기기 위한 “위장 해설”일 수도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텍스트에 나타난 내용만을 기초로 해서 다음과 같은 시적 통일성을 도출해낼 수는 있다. 즉, 먹이를 노려보는 독수리와 같은 이 찬가의 주체인 “나의 노래”는 신이 각자에게 인생의 행로를 이미 결정해 놓은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지켜보며 노래한다. 그러나 인생의 행로가 불행하게 결정된 사람은 오히려 “사랑의 신”의 보호를 받으며 브로켄 산의 정상에 올라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신성 Gottheit’을 발견하고 신의 업적에 대해 환희와 열광에 차서 그 거룩함을 찬양한다. 이 과정에서 전반부의 ‘불행한 사람’이 중반부에서는 방랑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바뀌어 “사랑의 신”의 시인으로 변하고, 후반부에는 이 시인이 브로켄 산의 정상에 오름으로써 ‘행복한 사람’으로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의 노래”가 독수리처럼 먹이를 찾다 발견한 불행하고 고독한 “시인”을 괴테가 하르츠여행 때 경험한 모습들 속으로 숨겨놓은 의도는 무엇일까? 이 의문은 괴테가 시적 텍스트 안에 “노래”와 “시인”을 자기 자신의 대리인으로 서로 연결시켜놓고 있다는 가정을 통해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적 텍스트에 나타난 형상들은 바이마르 궁정에서 활동하면서 작가로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괴테가 스스로의 존재위치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 KCI등재

        야스퍼스와 쿠르티우스의 괴테 논쟁 - 독일의 재건과 전후 극복의 관점에서

        서송석 ( Suh Songsuk ) 한국브레히트학회 2021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Vol.- No.44

        본 논문은 1947년 야스퍼스의 괴테상 수상 연셜 “우리의 미래와 괴테” 해석을 두고 벌어진 첨예한 논쟁 사건을 다룬다. 전범국가로서 독일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불협화음 및 재건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적 혼란스러움이 여전한 가운데, 괴테 탄생 200년이 되는 1949년에 언론에서 갑작스럽게 촉발된 야스퍼스와 쿠르티우스의 괴테 논쟁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당대 독일의 괴테 비판 내지는 괴테 수용이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려는 것이다. 이 논쟁의 과격한 성격은 괴테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두 학자의 상반된 이해를 반영하기에, 본 논문을 통해 괴테 해석으로 표출되는 야스퍼스와 쿠르티우스의 서로 다른 미래 전망과 독일의 자기반성에 대한 평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로만어학자인 쿠르티우스가 괴테 숭배를 노골화하면서까지 논쟁을 공격적으로 이끈 이유는, 독일과 유럽을 재건하는데 있어서 유럽 전통으로부터 근원적인 단절을 역설한 야스퍼스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이다. 야스퍼스는 독일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총체적 범죄행위로부터 정화되기 위해서는 괴테를 포함한 전통의 무조건적인 계승을 철폐해야 한다고 본 반면, 쿠르티우스는 야스퍼스가 자유와 학문, 교양과 기독교 문화가 일구어낸 찬란한 유럽 문명을 통째로 거부한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쟁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주의의 가치가 독일의 부활을 위한 핵심 요소라고 믿는 쿠르티우스의 신념과 전통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비판적인 괴테 수용을 설파하고자 한 야스퍼스 철학 사이의 날선 대립이 현재화된 하나의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Diese Studie behandelt eine heftige Debatte über Goethe, deren Anlass ein von dem deutschen Romanisten Ernst Robert Curtius im Goethe-Jahr 1949 in der Wochenzeitung Die Zeit veröffentlichter Beitrag unter dem Titel “Goethe oder Jaspers?” war. Dabei knüpfte sich die Kontroverse vor allem an seine radikal kritische Interpretation von Karl Jaspers’ Rede “Unsere Zukunft und Goethe” insbesondere aber an die aggressive Rhetorik gegen Jaspers. Dabei geht es um die gengensätzliche Weltauffassung zwischen Curtius und Jaspers, die durch die unterschiedliche Sicht auf Goethe zusätzlich radikalisiert wird. Vor diesem Hintergrund liegt das Hauptinteresse dieser Arbeit darin, die unterschiedlichen Ansätze von Jaspers und Curtius hinsichtlich des Wiederaufbaus Deutschlands und der kollektiven Schuldfrage nach dem Zweiten Weltkrieganhand ihrer Goethe-Rezeption aufzuzeigen und zu analysieren. Jaspers beharrt in diesem Zusammenhang auf einer totalen und ausnahmslosen Abkehr von der europäischen Tradition, während es für Curtius wesentlich ist, das europäische kulturelle Erbe zu erhalten und wieder zu beleben. So erscheint Goethe entweder als Gegenstand der Innovation oder als Bewahrer europäischer Traditionen und Werte.

      • KCI등재

        근대화 이후 한국의 괴테 수용 연구

        조우호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0 코기토 Vol.- No.68

        20세기 한국에서 괴테의 소개와 그의 작품 번역 및 연구를 통한 수용은 일제의 불법적 무력강점 직전인 구한말, 학문과 문학의 근대화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근 일세기의 역사를 보이며 전개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괴테 수용은 한국 근대화의 역사와 동일한 셈인데, 한국의 근대화가 문제점을 동반한 발전이듯이 괴테의 수용 역시 그러했다. 20세기 한국의 괴테 수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괴테 작품의 번역과 연구에 나타난 일면성과 아류성에 있다. 그러므로 우선 시급히 해결해야하는 과제는 이를 극복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괴테의 주요 작품으로 된 전집 번역이 앞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전집이 될 수 있게 번역에 누락된 많은 작품들을 추가시켜야 할 것이다. 연구 역시 좀 더 분석적, 실증적, 체계적인 동시에 괴테의 폭넓은 저작을 망라하여 그의 사상과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영역으로 확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진정한 의미에서 괴테 및 독일문학의 학제간 또는 학문연계적 연구의 기초가 될 것이다.

      • KCI등재

        괴테의 중국수용과 그 세계문학적 이념의 의미

        진상범 ( Sang Bum Chin ) 韓國世界文學比較學會 2012 世界文學比較硏究 Vol.41 No.-

        괴테는 다양한 중국고전을 탐독하면서 중국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차원 높은 절제와 윤리성이 강조되는 유교적 세계관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가적 세계관을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괴테는 중국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과 자연의 유대감을 인식할 수 있었다. 괴테는 중국문학에서 동양과 서양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감하고 그의 만년시 「중국과 독일의 사계절과 사시각」을 창작하게 되였다. 괴테는 정무에 지친 나머지 상기한 시의 제1과 6시에서 중국풍의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영감을 가지고 술을 마시며 시를 창조하는 이태백처럼 중국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괴테의 상기 시 중에서 제 5, 6, 그리고 7시 속에 표현되어 있는 정원의 모티브는 화전『花□』이라는 중국 사랑이야기를 Thoms의 영어번역본에서 암시를 받아서 사랑의 공간으로서 수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11시와 12시에서 괴테는 노자와 공자의 실천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시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괴테의 중국시의 번역은 국가 사이의 이방문화를 접함으로써 이방문화에 대한 이해심이 증가되며 타민족에 대한 존경과 관용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시점에서 번역을 통한 중국의 수용은 세계문학의 사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그의 만년의 시「중국과 독일의 사계절과 사시각」은 중국문학에서 찾아볼수 있는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근거해서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괴테는 동양을 위기에 처한 유럽의 공간으로부터 도피의 공간으로 선택했다. 괴테는 그의 세계문학이념에 따르면 동양과 서양 사이의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서로 타민족을 이해하고 타민족에 대한 관용정신을 가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괴테는 이러한 세계문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괴테 자신이 몸소 이국적 중국시를 번역하고 그의 시를 창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괴테는 중국의 모티브, 사상을 그의 작품에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괴테는 그의 세계문학의 이념을 실현시키고 그 당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아시아 특히 중국의 문학과 사상에서 발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KCI등재

        18세기말 동서 지성의 해외체험, 성찰의 방향과 그 의미

        이혜순(Hai-soon Lee),安三煥(토론자)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08 한국문학과 예술 Vol.2 No.-

        이 논문은 18세기 말 유사한 시기에 각각 북경과 로마를 여행했던 연암과 괴테의『열하일기』와 『이탈리아의 기행』을 비교하여 두 작가가 보여준 성찰의 방향과 그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다. 이 연구의 중점은『열하일기』 다시 읽기에 있고,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최근 서구 학계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고찰한 방식들이다. 첫째는 괴테가 보여준 이태리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추적하는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이다. 괴테의 기행문이 로마의 장엄함을 ‘폐허’로 가리우면서 로마의 현재를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이와 함께 과거의 유산을 바라보는 괴테의 시선이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인 것도 성장하고 있는 로마 당대의 모습을 알려주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이태리 기행을 괴테의 자기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낭만주의적 관점으로, 18세기 말 여행문학이 주관성으로 전환하고, 물질 여행에서 내면 여행으로 재형성하게 된 측면을 괴테에게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괴테는 이태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단지 단편적으로 그리고 불분명하게 알아온 전체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지적 도덕적 그리고 미적 ‘재생’을 확신한 바 있다. 셋째는 노마디즘의 관점으로 괴테의 여행은 과거 그가 누리던 삶의 모든 조건과 배경으로 부터의 탈주였고 자기 換置였다. 그는 로마에서 제2의 탄생을 경험하는데, 이것은 탈주한 이전 배치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코드의 창출이라는 주장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열하일기』에 적용해본 결과 연암에게 북경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미적 가치의 상징이기보다는 새로운 사유의 단서가 되는 변화하는 힘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당시 황제가 열하에 가 있으므로 북경의 가치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괴테의 로마와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또한 연암의 시선은 여행 내내 개인보다는 사회, 내면보다는 외부로 늘 열려 있었을 뿐더러, 저 아닌 남이 되어 저를 보아야만 저도 비로소 다른 물건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는 나와 타인과의 탈경계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역사상 이름난 건축물도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된 새로운 사유를 생성하게 하는 살아있는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행이 바로 삶이라는 점에서 비록 방향은 다르지만 이들 여행기가 담고 있는 두 문호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진지한 성찰로, 이것이 상호 관련 없는 두 지성의 비교문학적 고찰이 수행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This paper was attempted to examine the direction and the meaning of contemplation of Pak Chi-won and Goethe who traveled respectively Beijing and Rome at the similar period of the late 18th century. The focus of this study lies on rereading Yulhailki by adopting the critical methods which recent Western scholars applied to Goethe’s Italian Journey. The first is post-colonial perspective making search for the misunderstanding and prejudice of Goethe against Italy as a country of ruins and monument instead of grandeur without representing the present growing Rome. Besides it was pointed out that Goethe’s vision of Italian past cultural heritage had been overobsessed by formalism and therefore lacked a viable contemporary history. The second is romantic perspective approaching to Italian Journey as narrative of self-discovery. The 18th century was a period which the idea of the Romantic travel became almost identified with subjective turn, that is, re-figuration of the material journey as interior voyage, and Italian Journey was regarded to reflect such turn. When Goethe saw with his own eyes the whole which one had hitherto only known in fragments and chaotically, he confessed that he was convinced of the intellectual, moral and aesthetic rebirth in Rome which he had not realized before. as if a new life was beginning, The third is nomadic perspective: according to it, the departure of Goethe from Weimar means fleet and self-displacement from all the conditions and backgrounds of his routine familiar daily life. Thus his experience of the second rebirth in Rome was analyzed to be simply not the return to the past placement, but also creation of new code. Applying these three perspectives to Yulhailki Beijing itself seems to be functioning to Pak Chi-won as dynamic inducing new thought rather than a symbol of independent, permanent aesthetic value. The city is very much different from Rome in a sense that it appeared as if the value of Beijing was shaken without political power, since at the time the Emperor of Ching China was at Yulha. Contrary to Goethe Pak Chi-won had always his eyes open toward society than individual, outward than inward, and showed border-demolishing vision which the observing subject tried to take the standpoint of the observed object. He even regarded the famous historical architects as basis creating new speculation related to everyday life of people who were living here now. However, journey is said to be equal to life, and in this regard what is most important may be the endless, serious contemplation of the two great intellects on individual and society which their travelogues embody. That is the departure point of this paper studying them by comparative approach.

      • KCI등재

        괴테의 시문학에 대한 헤겔의 철학적 반응

        서정혁(Jeong-Hyok Seo) 한국철학회 2013 철학 Vol.0 No.114

        괴테와 헤겔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지금까지 주로 『파우스트』와 『정신현상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들은 『호토판 미학』이 『파우스트』를 ‘절대적인 철학적 비극’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점에서도 우선 타당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언급하고 있는 곳은 ‘이성’ 장의 ‘쾌락과 필연성’을 논하는 단 한 곳뿐으로, 그것도 비판적인 맥락에서다. 그리고, 『호토판 미학』을 제외하고 다른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어느 곳에서도 『파우스트』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호토가 편집간행한 『호토판 미학』에서만 『파우스트』에 대해 부여된 ‘절대적인 철학적 비극’이라는 규정이, 헤겔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제기는 괴테의 시문학에 대한 헤겔의 철학적 관심이 『파우스트』를 넘어서 『서동시집』에까지 폭넓게 미치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괴테의 『서동시집』을 ‘최고의 것’이자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괴테가 『서동시집』을 통해 의도한 ‘세계문학’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헤겔이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헤겔은 괴테의 『서동시집』에 동서양의 문학과 문화,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상호 작용의 계기가 담겨 있다고 보고, 이 계기가 서양 근대의 낭만주의적 예술형식을 넘어서는 또 다른 예술의 시작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괴테의 시문학에 대한 헤겔의 철학적 반응을 『파우스트』에만 제한하지 않고 『서동시집』에까지 확대할 경우에만, 우리는 괴테와 더불어 헤겔이 ‘미학강의’ 전반에서 견지하려 했던 시선의 폭과 깊이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Until now, many studies on the relationship of Goethe and Hegel have been mostly done focused on Faust and Phenomenology of Spirit. These studies seem to be reasonable at the first view, because Hegel regarded Faust as ‘absolute philosophical tragedy’ in his Lectures on Aesthetics(ed. by Hotho). But Hegel mentioned Faust only once in negative context of Phenomenology of Spirit. In other Lectures on Aesthetics Hegel never appreciated Faust highly like Lectures on Aesthetics(ed. by Hotho). For these reasons, it must be questioned if this definition ‘absolute philosophical tragedy’ really reflects Hegel"s own intention. This question has its justification in that Hegel had a broad interest in Goethe"s works, especially in West-Ostlicher Divan. In other Lectures on Aesthetics Hegel regarded West-Ostlicher Divan as ‘the highest and best’ and ‘the most wonderful work’. This appreciation was possible because Hegel had approval with Goethe who was exploring the possibility of world literature in West-Ostlicher Divan. Hegel believed that there were important elements like interaction between eastern - and western literature, culture, and furthermore humanity"s universal interaction in West-Ostlicher Divan. He thought that these elements can make a new beginning of art that transcends the romantic form of art in western modern world. Therefore, when we don"t restrict Hegel"s philosophical reaction to Goethe"s literature within Faust but expand it into West-Ostlicher Divan, we can understand an important standpoint very well that Hegel shared with Goethe in Lectures on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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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시와 진실』에 나타난 "옷 입기"와 "변장하기" -괴테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오순희 ( Soon Hee Oh ) 한국독어독문학회 2011 獨逸文學 Vol.118 No.-

        옷을 입거나, 벗거나, 갈아입는 것, 또는 변장, 심지어 특정한 종류의 옷에 대한 병적 집착에 이르기까지 옷에 관한 다양한 모티브들이 여러 문학작품들에서 묘사되어 왔다. 괴테의 『시와 진실』에도 옷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어린 괴테가 이야기하는 <신(新) 파리스>와 프리데리케 브리온과의 만남을 다루는 <제젠하임 에피소드>에서는 옷과 관련된 모티브들이 괴테의 내면심리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와 진실』은 괴테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바이마르에서의 작가생활이 시작되기 이전에 끝난다. 괴테는 작가로서의 입지가 확고히 굳혀진 상태에서 이 시절을 회고하며 썼기 때문에 얼핏 보면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강조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던 시기가 이 시기였다. 다시 말해 『시와 진실』에서 그려지는 청년 괴테의 모습은 일견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대해 확신하고 당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원하는 법률가의 길을 갈지,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길을 갈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막연히 양쪽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옷 모티브``는 이처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는 청년괴테의 내면상태를 비유적으로 드러내주는 장치이다. 다른 자서전적 글들에도 옷 모티브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시와 진실』에서 처럼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본고가 『시와 진실』에 나타나는 옷 모티브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학에 나타난 옷 모티브는 문화사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시와 진실』에서는 문화사적으로 로코코적 시대분위기가 옷 모티브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의 배경을 이루며, 심리적으로는 괴테와 아버지의 관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면서 『시와 진실』에 나타나는 옷 모티브를 분석할 경우, 『시와 진실』에서 괴테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작가로서의 자부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이었다는 사실이 뚜렷이 부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시와 진실』에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자서전적 글에서도 계속 다루어진다는 것을 괴테 스스로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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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예술혼의 시원을 찾아서 - 뒤러–괴테–코넬리우스

        박신자 한국괴테학회 2023 괴테연구 Vol.- No.36

        Als Goethe Albrecht Dürer in Schriften zur Kunst erwähnte, bezeichnete er ihn als einen deutschsten Künstler, der das Erscheinungsbild des alten Deutschland und die Archetypen deutscher Kunst in der gotischen Kunst zum Leben erweckt. Cornelius, der nach der Ära von Dürer und Goethe tätig war, beschäftigte sich bereits mit Dürers Kunst und Goethes Werken. Als Cornelius seine Illustrationen zu Goethes literarischen Werken anfertigte, versuchte er, die grundlegende altdeutsche Kunst zu reproduzieren, indem er die Merkmale von Dürers deutscher Kunst des 16. Jahrhunderts zu den germanischen Attributen der Vorperiode hinzufügte. Insbesondere versuchte Cornelius, die Atmosphäre des alten Deutschlands in Dürers Kunst zu übernehmen und wiederherzustellen und wie folgt zu bestätigen, dass Gotik wieder deutsche Kunst war. Mit anderen Worten: Cornelius wählte für seine Illustrationen altdeutsche Themen und schilderte die Welt der Vergangenheit auf seine eigene Art und Weise. In dem Sinne, dass die Kunst von Cornelius und Dürer in Cornelius' Faust-Illustration miteinander in Berührung kommt, scheint es daher möglich, eine Linie des deutschen Kunstgeistes aufzuzeigen, die zu Dürer, Goethe und Cornelius führt. 괴테는 뒤러의 미술은 독일적인 것과 외래적인 요소가 구별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가장 근원적인 독일의 전형을 표현하고 있으며 중세독일의 예술에 유럽의 고전예술의 형태를 이식,발전시키며 독일에 르네상스의 전기를 마련한 공로자로서 뒤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뒤러의 미술과 괴테의 작품에 심취해있던 코넬리우스 Cornelius(1783-1867)는 괴테의 작품을 삽화로 제작할 때 뒤러의 16세기 독일미술의 특성에 그 이전의 게르만적 속성까지 더하여 근원적인 옛독일 미술을 재현해보고자 했다. 그는 파우스트 삽화에서 옛독일적 주제sujet를 선택하여 뒤러의 미술을 다시 소환시킨다는 것에서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로 이어지는 독일의 예술정신의 연결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로 이어지는 독일 예술정신의 흐름에 주목하는 가운데 알브레히트 뒤러가 표현했던 독일적 주제를 괴테가 열광했고 그 영향이 다시 코넬리우스에게 전달되어 뒤러의 미술과 괴테 문학의 본질적인 것을 그려내고자 했던 이 흐름을 독일 미술정신의 시원이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본고는 독일예술의 그 창조적 근원을 찾아가는 장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코넬리우스의 삽화 「파우스트 I」는 모티브와 기법에서 명백히 뒤러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라파엘 미술의 요소와 나아가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의 영향도 보여주는 점에서 뒤러를 추종하는 코넬리우스의 미술적 특징을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에게서 확고한 독일 예술정신을 보는 동시에 독일 고딕예술에 르네상스의 특성을 입힌 유럽 예술의 감각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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