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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Development of Hesse Reception in Korea from the Year 1926 to 1999

        Cho, Chang-Hyun 한국헤세학회 2003 헤세연구 Vol.10 No.-

        헤세의 한국수용은 크게 보아 반세기도 채 못되는 짧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의 작품이 1920년대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당시 국내의 제 여건은 그를 받아들이기에 충분치 않았고, 또한 헤세수용이 자생력을 갖고 계속 그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다. 일본통치하에서 헤세의 수용은 한편으로는 빠른 출발을 갖기는 했으나, 일본의 언어 및 문화적인 속박으로 인하여 넓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없었고, 작품 번역이나 문헌연구에 있어서도 균형을 잃었다. 또한 비록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사회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헤세의 한국 수용에 상당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특이할 만한 사실은 전집을 포함하여,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헤세의 생전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번역은 70년대에 들어와 소위 한글 세대에 의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였으나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그 이전보다 질적인 면에 있어서 떨어졌다. 그 이유는 헤세가 6-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여 상업성을 갖는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질이 떨어지는 역자와 출판사가 난립하였기 때문이다. 80년대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은 헤세수용이 독자 중심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독자가 헤세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헤세작품이 다각적으로 취사선택되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의 특이한 현상이며, 이런 전집은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헤세수용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비록 헤세수용이 상업성을 강하게 띄었다고는 하지만 능동적 헤세수용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번역 태도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점차로 오역이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원전을 통한 번역이 아닌 비전공자에 의한 영역본이나 일역본에 의한 중역이 끊이지 않는 것이 문제점으로 남는다. 헤세작품에 대한 연구는 번역보다 더 늦게 시작되었다. 헤세에 관한 논문의 주제는 초기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대로 주로 낭만주의나 동양적 내면세계 및 자아완성이라는 데 모아졌다. 초기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점은 헤세가 얼마나 동양적인 작가 인가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런 연유로 해서 주로 「싯다르타」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물론 8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이 점은 외국에서 학위논문을 마친 한국의 연구가들에게도 공통점이기도 한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주로 1970년대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헤세연구가 이 분야에 집중됨으로써 헤세가 진부한 낭만작가 내지 동양적 내면 세계만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인식을 더욱 짙게 해주었다.

      • Hesses Einfluss auf koreanische Schriftsteller : Unter besonderer Beru¨cksichtigung von H. Tjon, B. Cho und D. Kim 전혜린, 조병화, 김동리를 중심으로

        Cheong, Kyung Yang 한국헤세학회 2002 헤세연구 Vol.7 No.-

        한국에서의 헤세 붐을 반영이라도 해 주듯이 헤세의 문학은 그 동안 한국의 작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번역가, 수필가로서 전혜린은 헤세의 문학을 사랑하여 헤세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학을 읽도록 권유하거나 헤세에게 직접 편지를 띠워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전혜린은 자신의 체험과 삶을 바탕으로 헤세의 문학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의 낭만주의적인 성향과 더불어 헤세의 문학을 정서적인, 사상적인 관점에서 강하게 수용하였다. 시인 조병화 역시 헤세를 깊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시작품에 헤세의 시구를 직접 인용할 정도로 헤세의 문학에 대한 강한 사랑을 표출하였다. 조병화는 특히 서정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관점에서 헤세의 시문학을 수용했는데, 조병화 자신의 낭만주의적 문학세계와 헤세의 낭만주의적인 문학세계를 한데 아우르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창출하였다. 조병화는 시작품의 주제와 소재 면에서도 헤세의 문학을 적극 수용하고 변용하였다. 조병화와는 달리 소설가 김동리는 주로 헤세 문학의 종교 사상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따라서 김동리는 헤세 문학의 낭만주의적인 면보다는 중기와 후기 작품에 중점적으로 나타나는 동양 사상적, 내재적, 신비주의 종교성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문학사상에 수용하였다. 또한 김동리는 헤세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동양의 종교적 고전문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섭렵하였기 때문에, 김동리와 헤세의 문학은 인간의 자아에 존재하는 신적인 속성이나, 내재신(內在神)등의 종교적 표상을 구축하면서 내재적인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공통적으로 표출하였다.

      • Hermann Hesses fru¨he Gedichte

        Noh, Tae-Han 한국헤세학회 2003 헤세연구 Vol.10 No.-

        헤세는 원래 시인으로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열세 살 때 "시인이 아니면 그 어느 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결심한 헤세는 평생 이에 충실하려 노력했으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부러진 나무 가지의 삐걱대는 소리」 라는 시를 손질했다. 60여 년에 이르는 작가 생활 동안 헤세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시적 유산에 버금가는 시작품을 1400 편 이상 남겼다. 시인으로서의 헤세는 그러나 지금까지의 헤세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다. 독일·프랑스 오스트리아·미국 등지에서는 그의 시에 대한 연구가 더러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헤세 시 연구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헤세 시에 대한 연구는 시작품들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시·소설·수필·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헤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특히 그의 소설작품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유의미한 단서들을 제공해주며, 작가로서 또 인간로서 헤세가 겪게 되는 변화와 발전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해 준다. 헤세의 시들은 그가 특정 이념이나 사조를 넘어 폭넓은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헤세 평자들의 일치되는 견해에 따르면 그의 시 창작은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누어져 전개되며, 각각의 시기는 시인이 자기 자신과 투쟁하고 인생과 대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도달하게 되는 여러 단계와, 시의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빠르게 나타나는 여러 경향들을 반영한다. 그러면서도 헤세의 시는 전체적으로 주제와 형식 양면에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시의 내용과 형식이 점차적으로 변형·변화·발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뿐 아니라 특히 그의 초기 시가 크게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헤세 시 창작의 초기는 1895년에서 시작하여 그가 정신적인 면에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1916년경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의 시들은 대부분 4행 연 셋으로 이루어지고 모티브나 주제가 소박하며 자연스러운 서정이 시의 분위기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민요적이고 음악적이며 낭만적이다. 또한 이들 시에서는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내면의 움직임이 통제되고 다듬어진 언어의 흐름 속에서 표현된다. 초기 시가 그러나 시적 기교를 배제하고 있는 것 아니다. 여기에서는 민요조의 노래를 읊조리는 순박한 청년의 모습뿐 아니라 꿈의 세계에 몰입하는 조숙한 기교주의자의 면모가 보이기도 하고, 비관적인 시각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회의주의자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가 시의 분위기를 지배하면서도 그 덧없음이나 순간성에서 포착된 자연풍경·체험·기분 등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순수한 음향,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소, 명확하고 절제된 이미지, 보편적인 정서 등을 특색으로 하는 헤세의 초기 시들은 시인 헤세의 본질과 시적 재능을 순수하면서도 노련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헤세 시 창작의 초기를 대표하는 두 편의 시 「안개 속에서」 와 「엘리자베트 3」 을 초기 시의 일반적 특성과 관련지어 살펴본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세의 시 가운데 하나인 「안개 속에서」 는 헤세 시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인간 실존의 고독'을 다루고 있으며, 헤세의 뛰어난 연애시 가운데 하나인 「엘리자베스 3」 은 탁월한 이미지 연결과 언어의 음악성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는 시이다.

      • KCI등재

        Schwellenüberwindung im Problemfeld „Das Fremde und das Eigene“ - Die Hesse-Rezeption in Korea

        장정자 한국헤세학회 2009 헤세연구 Vol.22 No.-

        국제화, 세계화가 논의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낯선 것”과 “자신의 고유함”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립은 국가 간,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한 절충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상적 시각과, 반대로 “문명의 충돌”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도대체 국제화의 야누스적 면모를 감당할 만한 중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문학의 수용미학이론, 혹은 수용사적 연구는 신일희가 말하는 감당할 만한 중간을 ‘한국, 혹은 동양에서의 헤세수용’에서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 헤르만 헤세의 경우를 택한 것은 유럽작가로서, 그것도 정통적인 경건주의 기독교 신학에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싯다르타,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같이 아시아의 종교, 불교와 브라만교를, 고대 중국철학의 지혜를 주제로 다루는, 충돌이나 갈등없이 그야 말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헤세의 개방적인 관용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한국에서의 헤세수용의 연구결과들을 번역물, 한국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연구논문 및 연구서, 헤세수용의 근간이 되는 매(개)체 등 순서로 정리해 보았다. 헤세 수용에서 특징적인 것은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보여 주는 연구, 해석과 함께 헤세 팬들의 인터넷 활동을 통한 헤세수용의 확장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헤세 수용은 한편에서는 헤세 대중화와 맞물려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작곡가, 시인, 미술애호가 정신분석 심리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중성 내지 다양성은 시대정신에 맞게, 문학이 “읽혀질 뿐만 아니라, 보여지고, 청취되고, 무대에 올려지고, 화폭에 담아지며, 노래로 불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편적이고,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술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 “달리보기”을 제시해 줌으로써 “풍요로움”으로, 차봉희의 표현을 빌리면, 수용의 “풍요로운 오해 fruchtbare Missverständnisse” 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 KCI등재

        Hermann Hesses Anschauungen von Dichtung und Kunst im Spiegel seiner Gedichte

        노태한 한국헤세학회 2008 헤세연구 Vol.19 No.-

        헤르만 헤세는 수많은 서평과 편지, 『나르치스 운트 골트문트』와 『황야의 늑대』, 『로스할데』 등과 같은 소설 작품에서 뿐 아니라 여러 편의 시 작품에서도 ‘문학’과 ‘예술’, ‘작가(시인)’ 내지 ‘예술가’의 문제를 다른 테마들과 함께 하나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시인,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하고 문학을 일종의 자기고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던 헤세로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특히 일련의 시에서 헤세는 문학과 예술의 본질과 기능, 나아가 작가나 예술가의 과제와 임무와 관련해 여러 가지 견해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의 창작 시기에 따라 몇 가지 전형적인 견해와 함께 그것의 일정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시를 통해 헤세의 문학관이나 예술관뿐 아니라 그 변화의 양상까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탐미주의의 경향이 강한 초기의 시에서 헤세는 작가, 시인을 꿈꾸는 자, ‘고향’을 찾는 자, 유미주의자로서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른바 ‘위기시대’로 불리는 중기의 시에서 시인은 현실에 절망하는 자, 아웃사이더, 자기비판자.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자로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소설 『유리알유희』의 분위기가 지배적인 1930, 40년대의 시에서 헤세는 시인과 작가를, 언어의 질서 부여 능력과 명증성을 이용하여 과거의 원형적인 아름다운 세계를 불러내고 보존하는 자, 신의 세계창조를 모방하는 제2의 창조자로 이해하고 있다. 시인, 작가로서의 자기 존재의 본질과 사명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같은 헤세의 일련의 시들을 우리는 헤세의 ‘문학시’ 또는 ‘예술시’라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이들 시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감상하는 일도 예술가로서의 헤세의 자의식 및 자기이해와 그의 문학 활동 전반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헤르만 헤세의 노년단상

        이군호 한국헤세학회 2018 헤세연구 Vol.40 No.-

        Die Thematik ‘Hesse und das Alter’ gehört zu den noch nicht bestellten Feldern in der Hesse-Forschung, und es gibt bislang keine umfassende Studie über seine Vorstellung vom Alter. Ein Grund dafür wäre der Umstand, dass Hesses Reflexionen über das Alter nicht in einer geregelten Form(Roman od. Erzählung) bzw. in einem Altersnarrartiv, sondern in den Gedichten, Prosastücken und Briefen verstreut existieren.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wird versucht, aus der Fülle solcher Schilderungen einen roten Faden zu finden. Im Gegensatz zu den üblichen Altersnarrativen bei anderen Schriftstellern steht bei Hesse keine “vergegenständlichte Jugend” im Vordergrund, die in der Gestalt einer jungen Liebhaberin dargestellt wird, in die sich der alte Protagonist verliebt und in die er seine eigene Jugend projiziert. Stattdessen ist bei Hesse eine “verinnerlichte Jugend” zu erkennen, die als sein alter Ego in seinem Inneren erhalten bleibt. Hesses Prosa ist die dramatischste Form der Bekenntnisliteratur, und dies gilt auch beim Thema ‘Alter’. Hesse könnte als “Realist des Alters” anerkannt werden, der den “Realismus des Alters” veranschaulicht, indem er das nackte Leben des Alters, die Innenseite des Alters und deren Angst wahrheitsgetreu bekennt. Zugleich ist er als “Moralist des Alters” anzusehen in dem Sinne, dass er ein Muster der vorbildlichsten Lebensanschauung im Alter vorzeigt. ‘헤세와 노년’이라는 주제는 기존의 헤세연구에서 전혀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며 아직까지 관련연구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노년에 관한 헤세의 사색의 기록들이 시, 산문, 편지 등에 산재하며, 그 결과 이른바 ‘노년서사(Altersnarrativ)’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본고에서는 노년에 관한 헤세의 산재한 기록들로부터 하나의 일관되고 논리적인 줄기를 찾아보고자 한다. 최근 독일문학 연구에서 노년주제의 논문들이 주로 분석하는 작품들이 거의 노년의 사랑을 소재로 한 것들인 반면에, 헤세의 작품에서는 노년서사도, 노년의 사랑도, 타자화된 젊음도 보이지 않는다. 노년의 헤세에게 젊음은 타자로 대상화된 젊음이 아니라 ‘노년인 지금의 나’와 시간의 끈으로 이어진 자신의 젊음이다. 그것은 노년의 헤세의 내면에 간직된 자신의 젊음, 즉 ‘내면화된 젊음’이며 그의 내면에서의 ‘청춘과 노년의 시간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헤세의 산문은 가장 극적인 형태의 고백문학이며, 노년의 주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공되지 않은 노년의 삶의 실상과 노년의 내면과 고민과 불안을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고백한다는 면에서 헤세는 ‘노년의 리얼리즘’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노년의 리얼리스트’이다. 또한 헤세가 말하는 노년관과 노년의 생활양식은 서구의 전통적 노년관에서 지향하는, 가장 모범적인 노년의 삶의 한 전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헤세는 이를테면 ‘노년의 모럴리스트’라고 칭해도 무방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 KCI등재후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헤세 연구 논문의 수용에 관한 분석적 고찰

        조창현 한국헤세학회 2004 헤세연구 Vol.12 No.-

        90년대에 들어와서, 헤세에 관한 논문의 주제는 여전히 낭만주의나 동양적 내면 세계 및 자아완성이라는데 모아졌다. 90년대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헤세가 얼마나 내면 세계 및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작가인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고, 그런 연유로 해서 주로 데미안과 싯다르타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헤세연구의 초기논문에서부터 9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 헤세연구가 이 분야에 집중됨으로써 헤세가 동양적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심리분석이나 신비주의 또는 음악성 등의 주제를 가진 논문들이 90년대에 발표되면서 헤세연구의 다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헤세 문학의 바른 수용이란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헤세에 대한 또 다른 접근방식인 시대와 정치적 성향에 대한 같은 주제의 논문은 80년대에 시작되어 9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많이 다루어짐으로써 헤세를 시대성과 현대성이 있는 작가로 재조명 해보기도 했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홍순길과 노태한 이 두 학자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졌다. 먼저 홍순길은 헤세의 정치를 <인간의 정치>로 규정한다. 즉, 헤세적인 의미에 있어서 참다운 의미의 정치는 참다운 인간이 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참다운 의미의 정치는 진실한 인간, 양심 있는 인간, 책임 있는 인간, 봉사하는 인간, 사랑할 능력이 있는 인간을 형성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 헤세는 결코 보덴호반이나 스위스의 산 속 몽타뇰라의 은둔자로만 여길 수 없다. 그 시대의 고뇌와 그 시대가 그에게 위임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음을 홍순길은 자신의 논문들을 통해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리하여 헤세는 우리가 쉽사리 그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을 허용치 않는 깊이와 폭을 가진 작가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작가가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작가이며 그가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주제, 극적 상황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성과 현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헤세의 작품은 그가 속한 시대의 산물로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헤세의 정치이념에 있어, 그는 순수한 공산주의에 호감을 가졌고, 사회주의를 신봉했고, 반유태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헤세는 결코 이러한 이념에 빠지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이념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헤세의 정치이념의 방향은 내면세계의 성숙과 자아의 완성에 기초한 대중의 구제와 완성에 그 목표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헤세는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지키려 노력했으며, 설혹 그가 일반적 의미의 정치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예술 속에 정치를 추구하는 예술가적 정치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노태한은 자신의 논문들을 통해 헤세의 정치성뿐만 아니라 그의 진정한 인간적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다. 그 자신은 분명히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정치현상을 문제삼는데서 그리고 정치에 대해 계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서 어떻게 그의 정치관이 의미화 되었는지 노태한은 잘 보여주고 있다. 노태한이 소개한 것처럼 헤세는 경향적인 작가나 행동주의적 참여 작가는 아니다. 단지 헤세는 용감...

      • KCI등재후보
      • KCI등재

        헤르만 헤세와 하인리히 하이네 - 헤세의 삶과 작품 속의 하이네 -

        이군호 한국헤세학회 2015 헤세연구 Vol.34 No.-

        Hermann Hesses Verhältnis zu Heinrich Heine ist bislang in der Forschung sowohl in Bezug auf Hesse als auch auf Heine wenig beachtet worden. Trotz der grundsätzlichen Unterschiede der beiden Dichter in persönlicher, dichterischer und literarischer Hinsicht gibt es jedoch zwischen Hesse und Heine klare Bezugspunkte. In der vorliegenden Arbeit geht es darum, bedeutsame Stellen in Hesses Lebenszeugnissen und Werken, in denen er Heine erwähnt oder zitiert, in chronologischer Reihenfolge aufzuzeigen. Dadurch soll Hesses Verhältnis zu Heine oder, mit anderen Worten, Heines Wirkung auf Hesse beleuchtet werden. Im Vordergrund steht vor allem der Zeitraum von 1892 bis 1895, eine Zeit, in der sich der junge Hesse enthusiastisch der Heine-Lektüre hingegeben hat. Heines Werk hat den jungen Hesse, der in dieser Zeit Träume von einem Leben als Dichter zu spinnen begann, ganz maßgeblich beeinflusst. Besonders nach seinem Eintritt ins Gymnasium in Cannstatt hat er monatelang nur Heine gelesen, wie er selber berichtet, bis er schließlich Heine “glücklich überstanden” hat. In mehreren Briefen an seinen ehemaligen Maulbronner Mitschüler Theodor Rümeln gibt er seiner Begeisterung für Heine Ausdruck und legt Gedichte des Vorbildes bei. Auch in den Briefen an Dr. Kapff, seinen ehemaligen Lehrer in Maulbronn, sind die Einflüsse Heines auf Hesse unverkennbar. Nicht zufällig trägt Hesses erstes, 1898 im Alter von 21 Jahren veröffentlichtes Buch den Titel Romantische Lieder. Hesse setzte sich 1925, nun im Mannesalter, sehr aktiv für die Errichtung eines Heine-Denkmal in Düsseldorf ein. Seine enthusiastische Stellungnahme, in der er Heine als einen “deutschen” Dichter rühmt, hat neben Thomas Manns Fürsprache besondere Beachtung verdient. Ein weiteres wichtiges Zeugnis von Hesses innerer Wahlverwandtschaft mit Heine findet man in einem 1931 veröffentlichten offenen Brief an einen Kommunisten. Darin äußert sich Hesse über die Aufgabe und die Grenze des politischen Engagement des Dichters in politisch unruhigen Zeiten, indem er auf die freundliche und fruchtbare Beziehung zwischen Heine und Marx in den 40er Jahren des 19. Jahrhunderts anspielt. Diese beiden wichtigen Zeugnisse sind ohne die frühere Begeisterung Hesses für Heine undenkbar.

      • KCI등재

        헤세 작품 속에 나타난 죽음의 제 양상들― 헤세의 초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

        김선형 한국헤세학회 2013 헤세연구 Vol.30 No.-

        In den Hinterlassenen Schriften und Gedichten von Hermann Lauscher ist der Tübinger Student, Elendele, ein Mann, der wie Giebenrath in Hesses Werk, Untem Rad Angst vor dem Examen und dem Leben hat. Nachdem Elenderle in einer stürmischen und melancholischen Novembernacht mit den Freunden zusammen getrunken hat, wird er an den Stufen der Brücke über die Ammer tot aufgefunden. Obwohl die Freunde, Lauscher und Aber, die Leiche von Elenderle sehen, melden sie den Fund der Leiche nicht der Polizei, da sie durch das plötzlichen Erscheinen des geheimnisvollen und teuflischen Werber überrascht werden und fliehen. Am nächsten Morgen hat Elenderle das Gefühl,dass der gestrige Vorfall nur ein Traum war. Der Tod von Elenderle ist plötzlich eingetreten und es ist nicht geklärt, ob sein Tod nun Freitod oder ein Mord war. In der Stadt Tübingen, wo die kalte Ammer in der trüben Nacht flieβt und man das Romantische und die Schwermut zugleich fühlen kann, machen die teuflische Erscheinung und das Benehmen von Werber, vergleichbar mit Kaspar und Samiel im Freischütz von Carl Maria von Weber, und die Nachricht der Vermieterin, dass Elenderle gestern Selbstmord begangen hat, die Atmosphäre des Werkes besonders dramatisch. In Gertrud haben der Komponist und Geigenspieler Kuhn und der Opernsänger Muoth aus Liebeskummer beschlossen, Selbstmord zu begehen. Hesse entwickelt in Gertrud eine Theorie vom Tod nach stoischen Schule, die dem Selbstmord eher positiv gegenübersteht. Er deutet dort auch an, dass in seinem biographischen Roman Gertrud die Ehe für den Künslter nicht angemessen sei. Gleichzeitig ist der Tod für Gertrud, der letzte Ausweg, um einer schwierigen Lage zu entkommen. In Rosshalde hängt der Kindestod mit der “Verantwortung der Zurückgebliebenen und dem Problem der Veränderung” zusammen. Der Maler Vegaruth reflektiert dort, nach der bitteren Erfahrung der Krankheit und des Todes seines jüngsten Sohnes, über das Problem seiner eigenen Ehe und sein künftiges Leben. Ausgelöst durch dieses Nachdenken über das Problem des Todes erhält der Held noch einmal die Gelegenheit,sein Leben zu reflektieren und eine bis dahin unereichte Tiefe des Denkens zu erreichen. 24 헤세연구 제30집In den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 sinnt der Held Knulp nüchtern über den Tod und nimmt diesen positiv an. Obwohl Knulp keine Ausbildung nicht genossen hat,scheint er literarisch sehr gebildet. Der Tod erscheint ihm als eine Art von Schlaf und er stellt sich vor, dass der Mensch nach dem Tod als schöner Knabe wiedergeboren wird, so wie es Lessing in seinem Werk Wie die Alten den Tod gebildet schilderte. Knulp führt zuletzt in der Stunde seines Todes ein Gespräch mit Gott, in dem er auf sein eigenes Leben zurückgeblickt und dadurch seine Furcht vor dem Todes überwindet: er findet sich am End in den Armen Go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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