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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예술혼의 시원을 찾아서 - 뒤러–괴테–코넬리우스

        박신자 한국괴테학회 2023 괴테연구 Vol.- No.36

        Als Goethe Albrecht Dürer in Schriften zur Kunst erwähnte, bezeichnete er ihn als einen deutschsten Künstler, der das Erscheinungsbild des alten Deutschland und die Archetypen deutscher Kunst in der gotischen Kunst zum Leben erweckt. Cornelius, der nach der Ära von Dürer und Goethe tätig war, beschäftigte sich bereits mit Dürers Kunst und Goethes Werken. Als Cornelius seine Illustrationen zu Goethes literarischen Werken anfertigte, versuchte er, die grundlegende altdeutsche Kunst zu reproduzieren, indem er die Merkmale von Dürers deutscher Kunst des 16. Jahrhunderts zu den germanischen Attributen der Vorperiode hinzufügte. Insbesondere versuchte Cornelius, die Atmosphäre des alten Deutschlands in Dürers Kunst zu übernehmen und wiederherzustellen und wie folgt zu bestätigen, dass Gotik wieder deutsche Kunst war. Mit anderen Worten: Cornelius wählte für seine Illustrationen altdeutsche Themen und schilderte die Welt der Vergangenheit auf seine eigene Art und Weise. In dem Sinne, dass die Kunst von Cornelius und Dürer in Cornelius' Faust-Illustration miteinander in Berührung kommt, scheint es daher möglich, eine Linie des deutschen Kunstgeistes aufzuzeigen, die zu Dürer, Goethe und Cornelius führt. 괴테는 뒤러의 미술은 독일적인 것과 외래적인 요소가 구별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가장 근원적인 독일의 전형을 표현하고 있으며 중세독일의 예술에 유럽의 고전예술의 형태를 이식,발전시키며 독일에 르네상스의 전기를 마련한 공로자로서 뒤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뒤러의 미술과 괴테의 작품에 심취해있던 코넬리우스 Cornelius(1783-1867)는 괴테의 작품을 삽화로 제작할 때 뒤러의 16세기 독일미술의 특성에 그 이전의 게르만적 속성까지 더하여 근원적인 옛독일 미술을 재현해보고자 했다. 그는 파우스트 삽화에서 옛독일적 주제sujet를 선택하여 뒤러의 미술을 다시 소환시킨다는 것에서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로 이어지는 독일의 예술정신의 연결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로 이어지는 독일 예술정신의 흐름에 주목하는 가운데 알브레히트 뒤러가 표현했던 독일적 주제를 괴테가 열광했고 그 영향이 다시 코넬리우스에게 전달되어 뒤러의 미술과 괴테 문학의 본질적인 것을 그려내고자 했던 이 흐름을 독일 미술정신의 시원이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본고는 독일예술의 그 창조적 근원을 찾아가는 장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코넬리우스의 삽화 「파우스트 I」는 모티브와 기법에서 명백히 뒤러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라파엘 미술의 요소와 나아가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의 영향도 보여주는 점에서 뒤러를 추종하는 코넬리우스의 미술적 특징을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뒤러와 괴테 그리고 코넬리우스에게서 확고한 독일 예술정신을 보는 동시에 독일 고딕예술에 르네상스의 특성을 입힌 유럽 예술의 감각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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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와 횔덜린에 있어 정진하는 인간상

        염승섭 한국괴테학회 1997 괴테연구 Vol.9 No.-

        본 논문에서는 18세기 말, 특히 독일고전주의 시인인 괴테와 횔덜린의 작품세계에서 '정진(精進)하는 strebend' 인간상(像)과 그 함축된 의미를 추출하고자 하는 바, 그 시발점으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타나는 두 명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즉 그 하나는 "인간은 정진하는 한 방황한다"함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나 정진하며 노력하는 인간을 우리는 구제할 수 있다" 함이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주인공 파우스트의 인생행로에 적용함에 있어 지금까지의 괴테연구는 두 상반된 견해를 피력해 왔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주된 해석방향이었던 '완성가능론적 perfektibilistisch' 입장에 대해 종전 후 강한 반기를 든 빌핼름 뵘에서 시작된 '완성불가론적 anti-perfektibilistisch' 입장은 1990년 독일통일을 전후하여 다시금 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베르너 켈러는 나치의 범죄와 동독사회주의의 전체주의적 양상과 그 엄청난 폐단에 주목하며 주인공 파우스트의 모습과 행동에서 우리시대에 경고를 주는 괴테의 '메세지'를 읽고자 한다. 즉 그룻된 '전체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근래에 몰락한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의 '허위적' 성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본 논문은 '완성가능론적' 입장의 출발점을 찾기 위하여 18세기에 팽배하였던 '완전' 또는 '완전가능성'의 사고방식을 그 당시 영국의 도덕철학 전통과 그것을 받아들인 불란서의 계몽주의자들(쉐프츠베리, 아담 퍼거슨, 콘도르세 등)의 입장과 루쏘를 비롯하여 괴테, 쉴러, 횔덜린에서 나타나는 자연철학 -특히 자연을 전범으로 삼으려는 사고방식을 개관한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개체와 전체가 조화될 수 있다는 신념, 완전성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 전체가 완전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즉 인도주의적 노력이 개인의 행복을 가능케 한다는 구상이다. 괴테와 횔덜린에 있어서 우리는 그 각 시인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연관관계에 주목한다. 개인이 어떻게 발전하며 완전해지고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괴테와 횔덜린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완전지향적 인물을 부각하였다면, 같은 시기에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는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에서는 그 주인공이 한 전문기술을 습득함에 비중을 둠으로써 '완전한 교양인'이 되고자 했던 바 그 처음 목표를 수정한다. 반면 횔덜린의 경우에는 그 '전체'를 목표함으로써 그 전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등식관계에서 그의 시인적 사명을 찾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시인은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정진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들의 삶과 작품에서 공히 보여주고 있다.

      • KCI등재

        삶이라는 자연의 예술처험 : 파우스트 2부의 헬레나 비극을 중심으로 Tragoedie von Faust 2

        이영임 한국괴테학회 1995 괴테연구 Vol.7 No.-

        전설속의 방탕아 파우스트가 불멸의 인간상으로 제련되듯 말썽많은 신화속의 미녀 헬레나는 괴테에게서 칸트적 의미의 숭고미로 영혼을 고양시키는 신적인 존재로 형상화 되고 있다. 헬레나비극은 파우스트 2부에서 극의 중심을 이루며, 주인공의 여정이 자기실현의 단계인 통치자비극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전제조건으로 작용한다. 난해해 보이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자면 괴테가 인물들을 형상화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의미복합의 다층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 괴테학자들이 지적하듯, 헬레나는 파우스트의 외적인 사랑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변에 인류의 황금시대였던 희랍 고전문화의 정수라는 상징을 깔고있는 것이다. 죽은 헬레나를 저승으로부터 살려내오려는 파우스트의 소망을 잃어버린 황금시대의 정신을 새로이 되살려보려는 고전주의적 꿈으로 겹쳐 해석할 때, 베일에 싸인듯 비밀스러운 헬레나의 모습은 납득가능해지며, 또 이는 실제 헬레나가 아니라 파우스트가 자신의 영혼,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끌어올린 절대적 고전미의 이미지요 예술적 환상임이 확실해진다. 헬레나비극에는 괴테의 고전주의적 추상이 그대로 실려있는 것이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주저없이 넘어서는 파우스트에게 괴테는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이라는 통시적 환상의 세계를 열고 희랍문화의 유산으로 전해오는 인류공통의 알레고리적 심상들을 만나게 한다. 이 집단무의식의 유형들을 재인식하고 희랍 고전미의 정수를 제것으로 하는 경험은 결정적인 교양체험으로 파우스트의 정신을 거대한 높이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독자는 이런 파우스트에게서 보물을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내 원하던 것을 얻고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는 동화의 주인공을 보지만, 문제는 괴테가 이 체험이 어디까지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환상에 불과함을, 그 실현이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상대화시키며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후기 작품들을 특징짓는 아이러니의 역설의 유희구조를 통해 괴테는 파우스트의 모든 체험이 실은 예술의 영역인 vita contemplativa에 속하는 것이며, 이런 환상체험은 호문쿨루스가 보이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vita activa로 보완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백일몽에 불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또 역설적으로, 얼마나 가슴저린 삶의 진실들을 이 노대가는 그의 백일몽 속에 펼쳐보이고 있는가. 절대를 향해 치닫는 불굴의 정신과 최상의 아름다움이 결합해 낳은 아들, Poesie는 우리네 삶에서 이카루스의 운명을 겪을 수 밖에 없음을 응시하고 있으며, 그 Poesie는 불꽃처럼 떨어져내리지만, 그러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동반한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그려내고 있으니. 삶이라는 자연을 예술의 거울에 비추어 보여 그 뒤에 숨겨진 신적인 것을 예감케 하며 빛속에서 웃고있는 괴테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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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ethes Kritik zur Rezeption des Romans Wilhelm Meisters Lehrjahre

        전창배 한국괴테학회 2006 괴테연구 Vol.0 No.19

        괴테는 그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대한 일련의 비평을 접할 때마다 작품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일축함으로써 작품의 다양한 수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소설의 주인공 빌헬름을 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왕국을 획득한 구약성서의 사울 왕에 비유함으로써 작품에 내재된 의도적 우연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괴테는 이러한 우연성을 통해 한편으로는 독자의 독서경험을 다양하게 할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창작적 측면에서 작가의 열린 창작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주인공 빌헬름의 “나귀를 찾으려는 노력”과 “한 왕국을 얻는 노력” 사이에 독자의 창의적 글 읽기와 작가 괴테의 창작적 글쓰기가 함께 놓여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괴테는 주인공 빌헬름의 교양을 위한 오디세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보다는 빌헬름의 긍정적이며 발전적인 내재적 소양을 중심으로 독자에게 수용의 폭을 가능한 한 최대로 넓히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를 창작하면서 실러와 쾨르너 그리고 훔볼트가 피력하는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함으로써 열린 글쓰기에 노력하였다. 특히 실러, 쾨르너, 훔볼트의 조언을 통해 괴테는 작품의 사실성과 이상성을 조화롭게 보완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 인해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는 그 장르적 규명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전통적인 교양소설은 물론, 교육소설, 발전소설, 사회소설 그리고 심지어 파괴소설 Zerstörungsroman에 이르는 실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를 창작하면서 실러와 훔볼트 등이 거론한 교양소설이라는 범주에서 교양의 개념을 자아의 계발과 연관된 이상향의 심화로 이해하였다. 즉, 내재적 자아의 계발에 상응한 목표의 설정과 이의 점진적 성취를 추구하는 빌헬름의 모습은 여러 단계를 거쳐 조화로운 존재에 이르는 것이 가능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연극의 세계와 탑사회는 빌헬름의 이러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괴테의 동시대 비평가들이 대부분 빌헬름 마이스터를 교양소설 내지 교육소설로 해석한 것도 바로 여기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괴테는 그의 소설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은 물론 비판적인 수용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면서 보다 더 나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더욱 노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괴테가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를 통해 주인공 빌헬름의 내면의 발전적 자질과 교양을 바탕으로 독자가 현실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교감과 성찰을 통해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의미를 새로이 읽어내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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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를 읽는 슐레겔을 ‘읽기’ - 슐레겔의 「괴테의 마이스터에 관해」를 중심으로

        김진환 한국괴테학회 2023 괴테연구 Vol.- No.36

        이 글의 첫 목표는 슐레겔이 괴테를 ‘어떤 식으로’ 읽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글의 둘째 목표는 그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이 글은 ‘낭만주의자’ 슐레겔이 ‘고전주의자’ 괴테와 어떤 영향 관계에 있는지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집중하는 것은, 슐레겔이 「괴테의 마이스터에 관해」라는 글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해당 글에서 슐레겔은 마치 낭만적 이념들을 괴테로부터 발견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는가 싶다가는 갑작스럽게 침묵하고 만다. 이러한 침묵은 ‘의도적 침묵’으로 읽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의미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려는 하나의 ‘행위’로 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슐레겔의 침묵으로부터 우리는 ‘소외’의 상태로부터 ‘분리’의 상태로 나아가려는 한 명의 행위주체를 볼 수 있다. 슐레겔의 이러한 몸짓은 우리에게 ‘읽기’ 자체에 대해 논할 하나의 징후를 제공해주는 셈인데, 읽기는 ‘내용(의미)’ 차원보다 ‘형식(행위)’ 자체에 집중할 때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용 차원에서 반박하거나 동의하는 식으로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오독을 배제할 수 없는 읽기 자체 차원에서 말이다. 읽기란 내용으로 주어진 무엇과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드러내지 않고 있는 침묵의 장소와 관계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의 가능성을 접하게 된다. 진리의 탐구, 체계의 완성은 무한한 과정 속에 있다는 낭만적 표현들을 또한 이런 점에서 상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Das erste Ziel dieses Artikels besteht darin, zu untersuchen, ‘auf welche Weise’ Schlegel Goethe liest. Das zweite Ziel besteht darin, den Akt des ‘Lesens’ selbst zu diskutieren. In diesem Artikel geht es nicht darum, welche Art von Beziehung Schlegel, ein “Romantiker”, zu Goethe, einem “Klassiker”, hatte. Zu diesem Thema wurde bereits viel geforscht. Im Fokus steht hier der Moment, in dem Schlegel im Artikel Über Goethes Meister das Schweigen wählt. In dem Artikel schreibt Schlegel, als würde er die romantischen Ideen von Goethe aus entdecken, verstummt dann aber plötzlich. Dieses Schweigen wird hier als ‘absichtliches Schweigen’ gelesen, genauer gesagt als ein ‘Akt’ des Versuchs, sich von der Bedeutungswelt zu trennen, zu der man gehört. Das heißt, in Schlegels Schweigen können wir ein Subjekt erkennen, das versucht, von einem Zustand der ‘Entfremdung’ in einen Zustand der ‘Trennung’ zu gelangen. Schlegels Geste gibt uns den Hinweis, über das ‘Lesen’ selbst zu diskutieren. Das Lesen führt zu produktiveren Ergebnissen, wenn es sich auf die ‘Form (Akt)’ selbst und nicht auf die Dimension ‘Inhalt (Bedeutung)’ konzentriert. Nicht nur im Sinne einer Widerlegung oder Übereinstimmung auf der inhaltlichen Ebene, sondern auch auf der Ebene der Lektüre selbst, wo Fehlinterpretationen nicht auszuschließen sind. Das Lesen bezieht sich nicht nur auf etwas als Inhalt Gegebenes, sondern auch auf einen Ort der Stille, den der Inhalt nicht preisgibt. Von dort aus ist die Möglichkeit von etwas völlig Neuem zu erwarten. In diesem Zusammenhang kann man sich auch an die romantische Vorstellung erinnern, dass die Suche nach der Wahrheit und die Vollendung eines Systems Teil eines unendlichen Prozesses s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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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문학에 나타나는 신화와 폭력 - 이피게네이아와 헬레네 신화를 중심으로

        오순희 한국괴테학회 2023 괴테연구 Vol.- No.36

        본고는 신화 속에 나타나는 폭력의 문제를 괴테가 어떻게 다루는지를 탐구하며, 이를 위해 파우스트 와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고전 비극 등을 중심으로 고대 작품들에서 해당 신화의 소재들이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한다. 이피게네이아와 헬레나의 존재는 트로이 전쟁의 출발점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와 오뒷세이아 에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거나(이피게네이아의 경우)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로(헬레네의 경우) 그려진다. 고전 비극을 대표하는 세 작가는 이피게네이아 신화를 다루긴 하지만, 이피게네이아의 관점에 주목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헬레네 신화의 경우 얼마나 많은 영웅이 헬레네를 둘러싸고 구애했던가 하는 문제가 중심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를 다루는 고대의 작품들을 살펴볼 때, 헬레네의 관점에 주목하면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작가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은 근대적 의미의 사랑 개념이 12세기 이후부터야 발전했다는 사실과도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괴테는 이피게네이아와 헬레네 신화에 관한 고대의 서사들을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서 괴테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본고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문제들에 주목한다. 괴테는 이피게네이아와 헬레나 신화를 다루면서 고대의 선배들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고 보완하는가, 그리고 괴테와 그 선배들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괴테가 이피게네이아 신화와 헬레네 신화를 재현할 때 나타나는 본질적인 특징은 폭력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 사이에는 다시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서는 괴테가 이피게니에의 내면적 갈등을 그려내는 동시에 외부 세계의 폭력적 갈등에 대한 평화적 해결 방식까지도 제안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파우스트 에서 다루는 헬레네 신화에서는 한편에서 러브스토리의 측면을 보완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사랑과 전쟁의 연관성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괴테는 트로이 전쟁뿐 아니라 중세의 십자군 전쟁, 심지어 근대의 그리스 독립전쟁까지도 파우스트와 헬레나의 사랑 이야기에 연관시키고 있다. Anhand der Dramen Faust und Iphigenie auf Tauris untersucht der vorliegende Aufsatz, wie Goethe das Problem der Gewalt in der Mythologie darstellt. Dazu wird zunächst analysiert, wie diese mythischen Stoffe in antiken Werken von Homers Epen bis zu den klassischen Tragödien behandelt werden. Zwar sind sowohl Iphigenie als auch Helena am Ausgangspunkt des Trojanischen Krieges von Bedeutung, doch werden diese beiden Mythen in Homers Epen Ilias und Odyssee entweder gar nicht behandelt (Iphigenie) oder weitgehend negativ dargestellt(Helena). Alle drei großen Tragödiendichter behandeln den Iphigenie-Mythos, jedoch mit unterschiedlichem Schwerpunkt auf Iphigenies Perspektive. Obwohl sich die Helena-Mythologie häufig um die Frage dreht, wie viele Helden um Helena geworben haben, findet sich in den antiken Verarbeitungen dieses Stoffes kaum ein Autor, der dieses Problem angemessen aus Helenas Perspektive behandelt. Dies lässt sich auf die Tatsache zurückführen, dass sich der Begriff Liebe im modernen Sinne erst ab dem 12. Jahrhundert entwickelte. Goethe ergänzt die antiken Erzählungen der Iphigenie- und Helena-Mythen um seine eigenen Merkmale. Der vorliegende Aufsatz untersucht dabei die folgenden Aspekte: Wie Goethe die Errungenschaften seiner Vorgänger in der Behandlung des Iphigenie- und Helena-Mythos übernimmt oder ergänzt, und worin der Unterschied zwischen Goethe und seinen antiken Vorgängern besteht. Ein wesentliches Merkmal von Goethes Bearbeitung sowohl des Iphigenie- wie des Helena-Mythos ist die Betonung der Gewalt, wobei zwischen beiden ein feiner Unterschied besteht: In Iphigenie auf Tauris präsentiert Goethe nicht nur die inneren Konflikte von Iphigenie, sondern auch eine friedliche Lösung für die gewaltsamen äußeren Konflikte, während in seiner Behandlung Helenas in Faust einerseits der Aspekt der Liebesgeschichte ergänzt und andererseits die Verbindung zwischen Liebe und Krieg verstärkt wird. Hierbei bringt Goethe nicht nur den Trojanischen Krieg, sondern auch die mittelalterlichen Kreuzzüge und sogar den modernen griechischen Unabhängigkeitskrieg mit der Liebesgeschichte von Helena und Faust in Verbin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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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노스와 문화콘텐츠 -괴테와 브레히트의 시 그리고 달리의 그림을 중심으로

        김길웅 ( Gil Ung Kim ),김기선 ( Ki Son Kim ),조경태 ( Kyung Tae Cho ),이민용 ( Min Yong Lee ) 한국괴테학회 2009 괴테연구 Vol.0 No.22

        Kronos, der Titan im griechischen Mythos, findet von alters her sehr oft seine Anwendung in der Kunst, da er eine komplexe Figur ist. Als jungster Sohn des Uranos und der Gaia entmannt er seinen Vater und wird er selbst von seinem Sohn, Zeus, gesturzt. Diese sich wiederholende Entthronung wird in der Kunst als Motiv des Vater-Sohn-Konfliktes angewendet. Kronos wird zweitens auch als Symbolfigur der Zeit gesehen, das im Griechischen die Zeit darstellt. Schließlich drittens wurde er nach der Niederlage beim Thronungskampf mit Zeus an die Kuste Latium geschickt und grundete das goldene Zeitalter und gilt somit drittens als Erntegott. In diesem Aufsatz wird aufgefuhrt, wie Kronos als Zeitgott in verschiedenen Zeiten in den Kunsten dargestellt sind. Im Gedicht An Schwager Kronos von Goethe handelt es sich um die linear fließende Zeit. Zeit burgt fur den Fortschritt, was das Wahrzeichen der beginnenden Moderne ist. Im Gedicht An Kronos von Brecht und in den Bildern von Dali wird Zeit verflucht. Beide Kunstler sehen die linear fließende Zeit als Ursache des Unglucks und Zerstorung, was damit zu erkl?ren ist, dass das 20. Jahrhundert das katastrophale Ende der Moderne bedeutet. Mit der Analyse der Figur Kronos in den Kunsten stellt sich heraus, wie eng die Vorstellung vom abstrakten Begriff der Zeit mit dem kulturellen Hintergrund verbunden 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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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지기 전 Vor Sonnenuntergang』 안에서 만난 괴테와 하우프트만

        송전 ( Jun Song ) 한국괴테학회 2009 괴테연구 Vol.0 No.22

        Die vorliegende Arbeit beschaftigt sich mit dem Drama Hauptmanns 『Vor Sonnenuntergang』, das als sein letztes naturalistische Stuck gehalten wird und dessen Urauffuhrung im Jahr 1932 erfolgte, als man in Deutschland dem 100. Todestag Goethes gedachte, sowie den 70. Geburtstag Hauptmanns feierte. Hier wird beabsichtigt, die Beziehung zwischen Goethe und Hauptmann und die literarische Intention Hauptmanns in diesem Werk zu erlautern, die Hauptmann durch dieses Stuck erfullen will. Erstens behandelt diese Arbeit, wie die Liebesbeziehung des siebzigjahirgen hochl angesehenen Unternehmers Clausen zu der achtzehnjahrigen jungen Frau Inken an dem heftigen Widerstand seiner Kinder gescheitert ist, fur die es nur um die Erbe geht.. Zweitens setzt sich diese Arbeit mit den Spuren Goethes im Stuck auseinander. Dabei wird in Betracht gezogen: ① die Liebesbeziehung zwischen Goethe und Urlike von Levetzow, die man uber die Beziehung zwischen Clausen und Inke in diesem Stuck leicht assoziiren kann. ② die Angabe der Namen aus dem Familienkreise Goethes-Wolfgang, Egmont, Bettina, Ottilie-fur die Kinder Clausens als dramatischen Personen im Stuck, weil sie die oben erwahnte Assoziation verstarkt. ③ die sogenannte `Lotte-Szene` aus Das Leiden des jungen Werthers, "Lotte, Brot schneidend" im Stuck, die auch die Affarre Clausens mit der von Goethe in Pararelle setzt. Drittens erlautert diese Arbeit, dass Hauptmann in Anlehnung an Clausens Selbstmord auf die Auflosung des seit dem 18. Jahrhunder in Deutschland vorhandenen humanistischen Wertsystems des Bildungsburgertums hinweisen will sowie auf das Ende einer der Hauptmann eigenen, literarischen Richtungen hinweist. Dabei zeigt sich das Drama Vor Sonnenuntergang als ein Zeitdiagnose sowie eine Prophzeiung fur eindringende Zukunft Deutschlands. Abschließend kann man feststellen, dass Hauptmann in diesem Drama mit Goethe ein literarisches Gesprach fuhrt.

      • KCI등재

        괴테의 우는 남자들 -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중심으로

        정현규 한국괴테학회 2017 괴테연구 Vol.- No.30

        »Weinende Männer sind gut«, so hat Goethe in einem Gedicht im West-östlichen Divan gesungen. Aber warum hat er das Weinen mit dem sittlichen Wert »gut« verbunden? Einen Hinweis darauf können wir am Ende desselben Gedichts finden: »Laßt mich weinen! Tränen beleben den Staub. Schon grunelt’s.« Die Kraft zum Wachsen und Erneuern bieten also die Tränen. Die Tränen, die Oranien für Egmont fließen läßt, der gerade den Weg des Todes betreten wird, oder die Tränen, die von Wilhelm für die starr gewordene Mignon vergossen werden, sind dargestellt als die Versuche, die Sterbenden zu retten. Aber dieses Motiv läßt ebenso an Lessings Sympathielehre erinnern, die er zusammenfassend so formuliert hat: »Der mitleidigste Mensch ist der beste Mensch.« Die weinenden Männer bei Goethe zeigen nämlich auch einen Paradigmenwechsel vom Gefühl, indem jener »die bislang üblichen Gesetze des decorum im Zeichen der eben entwickelten Kunsttheorie des Gefühls«(Schings 1980, 65) sprengt.

      • KCI등재후보

        『겨울의 하르츠 여행』을 읽는 한 가지 방법 - ‘2년이나 바이마르에 머물고도 아직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다니!’

        안삼환 한국괴테학회 2003 괴테연구 Vol.0 No.15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은 매우 난해한 시이다. 이 시는 ꡔ젊은 베르터의 고뇌ꡕ와 ꡔ괴츠ꡕ로 일약 문명을 떨치게 된 청년 괴테가 바이마르로 초빙되어 온 지 2년이 지난 1777년 겨울에 씌어졌다. 필자는 이 무렵의 괴테가 바이마르의 젊은 군주 아우구스트 공과 어울려 술, 무도회, 승마, 사냥 등에 탐닉함으로써 매우 방종한 생활을 한 한편, 바이마르의 귀족 슈타인 부인과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애정 관계에 있었던 사실에 착안하여 그의 비밀스러운 하르츠 여행과 그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겨울의 하르츠 여행」을, 시인 괴테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되찾기 위하여 비좁고 훤소(喧騷)한 삶의 공간인 바르마르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을 일단 한번 훌쩍 떠나 위험한 대자연의 품안으로 들어가 본 모험과 그 기록물로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토마스 만의 ꡔ마의 산ꡕ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죽음’의 세계인 ‘마의 산’에 들어와 몽롱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스키를 타고 설원(雪原)으로 들어가 볼 생각을 털어놓자 세템브리니가 “정말 훌륭한 계획입니다! 여기에 2년이나 머물고도 그런 착상을 할 수 있다니!” 하고 감탄하는 후대의 문학적 토포스에 기대어, 필자는 이 시에서 ‘2년이나 바이마르에 머물고도” 아직 혼자 하르츠의 보로켄산에 오를 착상을 할 수 있었던 시인 괴테의 예술가 정신을 높이 사고, 이 시를 이런 컨텍스트에서 한 예술가의 자기 정체성 찾기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1777년 괴테의 ‘하르츠 여행’은 말하자면 후일의 ‘이 탈리아 여행’의 전조(前兆)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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