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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아리랑 축제와 민족예술의 가능성 모색

        전영선(Jeon, Young-su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0 한국문학과 예술 Vol.6 No.-

        이 연구는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아리랑〉의 형식적 특성과 내용적 특성, 그리고 정서적 측면의 성격을 분석하여 민족예술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있다. 〈아리랑〉은 민족의 수난사를 바탕으로 10만 명이 출연하는 대형 공연작품이다. ‘아리랑’은 민족의 수난사를 바탕으로 예술체조, 무용공연, 배경대미술, 레이저 조명을 이용하여 진행한다. 〈아리랑〉은 남북의 상징하는 노래로서 국제 체육행사에서 남북이 공동 입장할 때 사용되었다. 이런 것들은 민족예술로서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소이다. 그러나 북한의 〈아리랑〉은 민족이 고난을 극복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민족의 개념도 ‘김일성 민족’으로 규정한다. 어려운 시기고난을 이겨왔듯이 최고지도자를 믿고 따르면 강성대국을 이룰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고난을 넘어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는 메시지는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아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가요들이 창작되어 불려지고 있으며, 동시와 가사 등을 공모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리랑’은 체제의 결속을 다지고, 민족 문화의 전통과 김일성 가계의 전통이 하나라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교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작된 것이다. 민족예술 가능성은 형식보다는 아리랑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arch for possibilities of “national arts”, analyzing nature in the form and emotional aspect of the grand mass gymnastics and artistic performance “Arirang”. Arirang is a grand performance with artistic gymnastics, dance, stage art and laser lighting, based on history of national suffering. The song “Arirang” using in the performance was sung when two Koreas marched together at international athletic events as a song of one nation. It is an important factor showing possibility of national arts. However, a theme of the performance “Arirang” is to urging the nation to overcome hardships and construct ‘a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The concept of nation also means “Kim Il-Sung nation”. It presents a prospect that “we can make ‘the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if we believe and follow the Leader, as done during hardships”. The message is spreading throughout whole society. Since 2000, in order to attract people’s attention, several songs with a term, arirang, as names were created and sung, and contests on children’s poem and lyrics with it also are held. In this sense, the performance “Arirang” was created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of the system, and cultivate sense of community that national culture tradition and the tradition of Kim Il-Sung family are the same. The possibilities of national arts depend on empathy, not on the form of the performance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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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삼 시에 나타난 미학적 죽음에 관한 연구

        최호빈(Choi, Ho-Bi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 한국문학과 예술 Vol.19 No.-

        김종삼 시에는 전쟁의 비극성, 종교적 가치관, 문학적 영향으로 해명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한 특별한 성격의 갈등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갈등은 예술과 죽음이 맺고 있는 강한 결속력에 대한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예술가 대부분은 자신이 이룬 높은 예술적 성취와 대조적으로 삶 또는 죽음이 비참했던 자들이다. 김종삼은 예술가의 삶을 살피면서 예술/예술가와 죽음의 관계, 즉 미학적 죽음에 천착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종삼의 죽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전봉래이다. 그는 1950년 전후에 활동하며 문단의 신진시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자신의 시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1951년 부산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전봉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김종삼은 그의 죽음을 시인이자 예술가의 죽음으로 받아들였고, 이 때문에 ‘시인의 자살’이 지닌 특수한 의미에 주목하게 된다. 예술가의 자살은 일종의 예술적 행위로 간주되는데, 김종삼은 전봉래의 자살을 “유작”, “죽음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자살의 미학적인 특성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김종삼은 시작 활동 전반에 걸쳐 전봉래와 그의 죽음을 다룬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초기의 「G 마이나」(54년)와 「하나의죽음」(56년)에서김종삼은 친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관련지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地」(69년)와 「올페」(75년)에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최종적 동의를 전봉래에게 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인학교」(73년)에서 그는 전봉래의 자살을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직접적으로 내비친다. 한국시사詩史에서 시작활동 전반에 걸쳐 죽음을 미학적으로 접근한 시인은 김종삼이 유일하다. 이런 김종삼에게 전봉래는 ‘심우心友’이자 ‘시우詩友’ 그리고 미학적 죽음에 대한 성찰적 의식을 구성하게 한 구체적인 계기였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며 김종삼 시를 살펴보는 일은 그간 논의되지 못했던 미학적 죽음과 관련된 사항들을 해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esthetic death in Kim Jong-Sam’s poems. About the image of death appeared to Kim Jong-Sam’s poems, previous studies had discussed in relation to the experience of the Korean war, the original sin, Rilke’s poetry. However, there is a conflict unusual for death in his poems. It is for the strong unity between art and death. As is generally known, Kim Jong-Sam wrote the names of many artists in his poems. In contrast to the wonderful artistic achievements, most of them lived or died miserably. What he had an interest in the late style of artist, it means that he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death or between artist and death, aesthetic death. Jeon Bong-Rae, who is the elder brother of Jeon Bong-Geon, was a poet and translator who work at around 1950. He was in the spotlight as the rising young poets, but he committed suicide in Busan during the war. Kim Jong-Sam knew that Jeon Bong-Rae had a great literary, especially in french literature, and poetic talent. For that reason, he thought about Jeon Bong-Rae’s death as an artist’s death, not his friend’s death. On the one hand, suicide is considered as an act of artistic form. Because death is the last object that artist want to complete aesthetically. Kim Jong-Sam wrote about Jeon Bong-Rae’s suicide that it was the work of ‘death’, which was the noblest and latest posthumous work. Also Kim Jong-Sam convinced himself to understand a aesthetics of ‘artist’s suicide’, and he actually had tried to commit suicide. Although the overall explanation of death consciousness is not available, it is certain that Kim Jong-Sam inspired in Jeon Bong-rae’s suicide. It is confirmed in his poems. Above all things, he has described his own image to wait for die, in school of poets (1973), reenacting the process Jeon Bong-Rae committing suicide. Therefore, to review the work associated with Jeon Bong-Rae provide a new foundation to clarify an aesthetic death in Kim Jong-Sam’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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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춤 문화 교류의 시원(始原) - 1920년대 경성의 〈예술학원(藝術學院)〉 을 중심으로

        양민아(Yang, Mina)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20 한국문학과 예술 Vol.33 No.-

        본 연구는 우리사회에서 서양의 무도 열풍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 〈예술학원(藝術學院)〉의 강습활동과 무도회 및 공연 활동을 통해 1920∼30년대 대표적인 유럽 문화인 무도문화의 근대 경성으로의 유입경로와 그 향유공간이자 유흥공간이었던 카페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경성에서 유라시아 춤문화의 교류현황과 대중화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당시 우리사회에서 유행하던 카페와 경성의 신세대들의 유라시아 춤문화의 소비패턴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이를 통하여 근대시기 우리사회에서 유라시아 춤문화의 현황과 위치 그리고 그 내재된 의미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1920∼30년대 발행된 신문『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및 잡지 『개벽』, 『삼천리』, 『조광』 그리고 당시 문화를 연구한 논문과 저서 등의 관련 학술연구물들의 문헌분석을 사용하였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inflow of European ballroom dance culture, the situations of cafes as commercial entertainment venues and the role of popularization in modern ballroom dance and the process of Eurasian dance and cultural interchange through the activities of Yesulhakwon (the Academy of Arts) in Seoul in 1920s-30s. The author examines the correlation between the cultural consumption pattern of Seoul’s new modern generations and the culture of modern cafe which was enjoyed in Korean society at that time, and understand the implicit meaning of ballroom culture in Korean culture. Research Methods include literature and library research including academic works and related articles published in the daily newspapers (Donga Ilbo, Maeil Shinbo, Chosun Ilbo) and magazines (Gaebeok, Samchulli, Jogwang) in 1920s-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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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한민족 디아스포라 예술집단에 관한 연구

        김보희(Gim Bohi),엄경희(토론자)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09 한국문학과 예술 Vol.4 No.-

        본 논문은 고려인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한 고려인들의 음악활동을 중심으로 전문예술단체인 ‘고려극장’과 비전문예술단체인 ‘소인예술단’의 음악활동에 나타난 음악사회조직의 역할과 두 단체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고려인의 예술활동은 ‘소인예술단’이라는 비전문집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높은 수준의 아마추어 예술집단인 ‘인민예술단’을 거쳐 전문적인 집단으로 발전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32년 러시아 연해주 원동에서 ‘원동변강 조선극장’ 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된 이후 역사와 정치적인 이유로 극장명칭이 다양하게 변해왔다. 특히 1990년 개방개혁정책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고려극장’ 으로 바뀐 것은 ‘조선’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남한과의 교류를 의식하고 남북한에 거주하는 한민족과 상대적으로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고려사람’, ‘고려신문’, ‘고려극장’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1937년 이전 원동 연해주시절의 고려인들의 음악활동은 1935년 ‘춘향전’ 공연을 중심으로 민족예술에 관심을 갖고 모국의 문화를 전승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이후에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즐오르다에 자리를 잡은 ’고려극장‘은 1년에 3개월 연습을 하고 9개월씩 순회공연을 다니며 고려인들의 문화적 향수를 달래주었고, 비전문예술집단인 ’소인예술단‘에게 한국 전통적인 노래, 민요, 잡가 등의 노래와 춤을 전수해 주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려인 문화예술단체들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후손들에게 문화를 전수하는 교육기관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였다. This article aims to clarify cultural activities of Soviet Koreans through the musical activities of the former Soviet-Koreans and to compare the social structure and roles between the professional art group ‘Koryo theatre’ and the amateur art group ‘soin yesuldan’. Soviet-Koreans musicians often start their career as a member of the amateur art group ‘soin yesuldan.’ After developing and demonstrating mastery of various musical techniques within this art group, they will receive certification from the Soviet government as an ‘Inmin yesuldal’. After receiving this certification or through recommended by fine artists, can the musician become an artist of the professional art group ‘Koryo theatre’. In 1932, a Soviet-Korean’s theatre was started in the Far East Russian city of Vladivostok called the ‘Wondong Byungang Chosun Gukjang’. But the Soviet Koreans theatre name has been changed several times through the years due to various political or historical events. After 1990s, the Soviet-Korean theatre changed their name to ‘Koryo theatre’ due to closer relations with the South Korean’s art group ‘Gukrip Geukjang’ (Korean National theatre). Especially after Perestroika, the Soviet Koreans identified themselves as ‘koryoin’, ‘koryo theatre’ ‘koyro sinmun’ or ‘koryo saram’. In 1935, the Koryo theatre had performed the traditional Korean music drama “The Chunghyang”. These performances were quite influential among Soviet Korean peoples who were often eager to transmit the culture of their homeland to their descendents. In particular after 1937, when the Soviet Koreans were deported from the Far East and some were moved to the Kzulorda city of the Kazakhstan Republic the Koryo theatre visited many different collective farms which placed in the republics of central Asia to comfort the many Soviet-Korean who were displaced . At this time, the theatre brought many Korean songs and dance to the Koryoin and also educated many in the the amateur art group ‘soinyesuldan’. These Koryoin groups made many contributions as a center of cultural education maintaining not only the musical culture but in the transmission of their cultural identities to their descen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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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 아트와 계급구조의 재생산

        김정석(Kim Jung-Suk)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한국문학과 예술 Vol.22 No.-

        이 글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뉴미디어 아트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가늠해 보기 위한 것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상품에도 독특한 논리를 가진 경제가 존재한다. 경제 부양에 있어서 문화산업의 역할이 커진 작금에 대중들의 문화소비는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의 상품화와 더불어 많은 대중들이 손쉽게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게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만, 여전히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이 존재하고 그들이 소비하는 문화에 따라 각자의 사회적 계급이 구별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성의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문화는 콘텐츠화를 통해 상품으로써의 변화를 시도했고, 예술 역시 새로운 미디어를 끌어들여 표현방식과 향유방식에의 변화를 시도했다. 고전적인 의미의 예술이 고상함을 벗어던지고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오고자 했던 이래로 오늘날만큼 손쉽게 대중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예술이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향유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일반 대중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뉴미디어 아트는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며, 때때로 아무런 의미 없음을 감춘 채 예술이라는 명칭 뒤에 숨어 스스로의 가치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러한 현상 뒤에는 예술가와 감상자 사이의 오인(誤認)을 통한 암묵적 동의가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자본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예술 작품은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예술가는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환 속에서, 자칫 현대예술은 계급 구분을 결정짓고 상대적 박탈감 혹은 허무감을 양산해내는 자본주의적 아방가르드가 될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This essay is based on an attempt to measure the meaning of new media art, which has been recognized as a new art form in our society. In the opinion of Bourdieu, there is also an economy with a unique logic in the area of cultural products. In these times that the role of the cultural industry has grown in terms of economic stimulation, the cultural consumption of the public has become an important concern. It is positive that with the commercialization of culture, many people have easily consumed various cultures. But it is necessary to reflect on the fact that there is still a distinction between high culture and low culture and that discrimination is achieved by distinguishing the social class according to the culture that people consume. In the digital era, each culture tried to change as a product through commercialization, and the art accepting new media modified the way of expression and enjoyment. Since the art of classical meaning was to throw away the sophistication and to approach the masses, there was no time for the public to see art easily more than these days. But even so, it is difficult to say that contemporary art has become something that can be easily understood and enjoyed by the public. In particular, new media art, which uses digital technology that is commonly used by the general public, is sometimes difficult to understand. And sometimes, hiding empty of meaning, it distorting the value of oneself. Behind such a phenomenon, there is some tacit agreement through misunderstanding between the artist and the viewer. And that collusion of these days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accumulation of capital. Because under the circumstance that art works are created by artists and artists are created by capital, contemporary art becomes a capitalist avant-garde that determines class distinctions and produces relative deprivation or imp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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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교육과 인문학적 바탕

        전선자(Cheon, Seon-Ja)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1 한국문학과 예술 Vol.8 No.-

        지금은 과학기술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우리를 자유롭게’ 혹은 ‘인간답게’ 하는 ‘인문학의 전형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갖고, 문화예술교육에서 인문학적 바탕을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명확히 반영되는 새로운 지식의 활용을 통해 고찰한 연구논문이다. 이 연구방법을 택한 것은 현장은 살아남기 위해 항상 앞서가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또 현장의 문화예술인들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창의적인 지식을 생산하며 또 그 지식을 확산해 사회적으로 활용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들이 창출한 지식은 자신을 성찰하고 정신적 성장만을 도와주는 전통적 의미의 지식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실용성을 입증하는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창출한 것이다. 사회 현상 속에서 이 같이 꼭 필요한 지식은 교육의 장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학습대상이다. 그 이유는 교육의 장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화예술의 현장 속에서 과학시대의 인문학적 소양이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의 ‘인문학’과 ‘과학’은 인류문명의 두 축이다. 이 관계는 대립이나 경쟁관계가 아니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바로 인간과 인간적 삶의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전제된 가운데 자연과 인간에 관한 과학적 탐구와 그 의미도 소용이 된다. 문화예술분야도 이제 과학기술의 활용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은 문화예술교육에서도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현장 속의 문화예술인들의 전문지식활용을 통해 보면, 과학과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인문학적 바탕을 여전히 필수전제조건으로 갖는다. 따라서 우리 문화예술교육의 혁신과 발전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새로운 지식창출과 활용능력과 함께 교육목표로 삼았을 때 가능할 것이다. 자동차디자인, 광고디자인, 미디어아트라는 문화예술의 실상이 이제는 우리 공교육현장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In the era of science and technology, I asked the question "what is the typical model for humanities that "set us free" or make us "humanly"?" and looked up the study of arts educations with humanities in the very field that arts education is being applied. What is the necessary in the field of society is the targets that must be learned in the field of education. This is the study that indicates knowledge of humanities are strongly essential in the field where arts education is applied, through several cases. In the era of technology, "Humanities" and "Science" are the two axes of human civilization, and these two axes are not antagonistic nor competitive but rather compatible, and need each other. It is useless of scientific study of nature and human without the understanding of humanities which includes comprehension of human and the value of human lives. Also, nowadays arts education needs the scientific technology. Therefore, "the merge of Humanities and science" is undetachable in the field of arts education. However, I found the appropriateness of humanities being prerequisites in arts education, for the creative evolution of science, humanities, and arts education. This work looks up "humanities" in 3 cases of arts educational field: Car Design, Advertisement Design, and Media Art. I hope this work be a help to the internal change and development of our arts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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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아트 창작에 대한 범위설정 문제 연구

        최선영(Choi, sun-young)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 한국문학과 예술 Vol.20 No.-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 “미디어 아트 창작물” 이라는 대상 자체를 예술과 과학 분야 사이에 상호보완관계로 설명하고 새로운 관점에 예술 비평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통 예술 분야는 특수한 사고의 영역이 강조되어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일원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현대에 이르러 “미디어아트 (media art)”는 미술사나 미디어연구에서 아직도 다양한 시각에서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에 다매체를 활용한 각종 예술 영역은 "학문간 융합" 또는 "상호 학문간 연구"라는 교환을 통해서 제도적 간격을 와해하고 있는 것이다. 2장에서는 미디어 기술과 미디어 예술 사이에 제도적 간격의 개념과 의미의 구분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교환 현상과 두 분야의 착종 양상을 설명한다. 다양한 착종형태의 현대미디어 아트는 예술가의 사고영역과 기술자의 표현기술들로 만들어진다. 3장은 기술과 예술이 착종된 창작물과 창작형태의 의미를 분석하고 현대 예술의 일반론으로 설명한다. 미디어 아트의 창작물은 작품의 탄생과정에서 예술가와 기술자 사이에 협업과정 중 누구나 작품 창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의 상보적 관계를 다양한 유형의 과학적 연구들과 예술적 실험들을 통하여 두 문화의 통섭을 설명하고 기존 연구 영역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로써 본 논문은 현재 미디어 시대의 ‘예술(art)’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making the base for new perspectives on art criticism. Contemporary media arts creates between arts and sciences what are described as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But the modern world is "art media (media art)" and still continue to debate various perspectives in art history and media studies. Up to now, special emphasis thinking has been being in the area of traditional arts. The tendency is also the artists and artworks unification. However, contemporary art area to utilize multimedia has collapsed the institutional gap through the exchange of "interdisciplinary fusion" or "mutual-interlaboratory research". In the Chapter 2 is the description of exchange between the arts and the sciences based on phenomena aspect of entangling. Distinction between the concept and the mean of institutional separation between media technologies and media arts. Contemporary media art in a variety of entangling form is interpreted as a variety of factors, specific think of artists or technicians on the technique of expression and then communicate to audiences. The scope depends on point of view of the active creator of interpreting the creative works. It is possible to express the possibility of debris between artists and technicians. Chapter 3 is the analysis of technologies and arts entangling with the creations and meaning of creative forms. That is to explain the generalities of contemporary art. Creations of media arts influent (to) the creative works of all, artists and technicians in the collaboration process in the birth of the work. In conclusion, contemporary art has a distinctiveness of structural similarity of arts and sciences. This similarity emphasizes that the reductive interpretation that does meaningless. Various types of complementary relationships between sciences and arts describe the consilience of two cultures through scientific researches and artistic experimentations and beyond the limitations of the existing research areas. Thus this paper is to expand the discussion of the "art (art) " of the media 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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