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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민주주의와 유교문화 -한국민주주의론을 위한 예비적 고찰-

          나종석 ( Na Jong-seok ) 한국가톨릭철학회 2013 가톨릭철학 Vol.0 No.21

          이 글에서 필자는 민주주의와 유교문화 사이에 긍정적인 연관이 있다는 점을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유교적 전통이 끼친 긍정적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논제를 통해 이 글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관점은 유교적 가치는 오로지 봉건적이고 반(anti)근대적이어서 근대성을 추구하는 데 결정적인 방애물이라는 통념이다. 이 통념은 한국사회에 국한해보아도 서구의 충격으로 인해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경험으로 인해 지금까지 조선 유학, 특히 조선 주자학을 바라보는 주류적 관점이다. 이 글은 이런 주류적 관점에 대한 도전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에서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어온 유교적 정치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선비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선비정신과 민주주의의 창조적 만남의 과정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내적 논리를 해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은 유교적 전통이 서구의 충격을 통해 변형되는 과정을 충(忠)관념의 민주적 변형이라는 시각에서 고찰한다. 이를 통해 유교적 정치전통의 민주적 잠재력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아직도 제대로 된 한국 민주주의론이 없는 학문적 공백을 채워보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에 대한 독자적 논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과제는 한국적 근대성의 고유한 성격이다. 유교문화와 민주화의 상생적 만남이 바로 한국 근대성의 독자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The thesis will observe the positive relationship between democracy and Confucianism by focusing on the positive impact Confucian traditions had on Korea's democratization process. From this perspective, the thesis will refute the common misperception that Confucian values are only feudalistic, anti-modern and critical barriers to pursuing modernity. This misperception is dominant in regards to Joseon Confucianism and especially Joseon Neo-Confucianism, due to the history of Joseon Dynasty's demise from the shock of opening to the West and the Japanese colonial era that ensued. This thesis will challenge that prevalent misperception. The thesis will elaborate on the positive roles that Confucian political culture, which was established throughout Joseon Dynasty, played on the development of Korea's democracy. Here, the thesis defines Korea's democracy as Seonbi(士)Democracy, and explains the internal dynamics of Korea's democratization movement as a process of creative merger between Seonbi Spirit and democracy. Also, the thesis will look at how Confucian traditions changed due to the shock of opening to the West, and considers the democratization of the chung(loyalty, 忠). The thesis is also an effort to produce a Korean theory of democracy, which is non-existent at present. The thesis aims to identify unique qualities of Korea's modernity by establishing an independent theory of Korea's democratization. The author believes the symbiotic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 culture and democracy show the distinct qualities of Korean modernity.

        • KCI등재

          한국 영화의 가족담론을 통해 본 여성주체

          신정원(Shin, Jung Won ) 한국여성철학회 2017 한국여성철학 Vol.27 No.-

          본 연구는 한국 여성 경험의 철학화를 위하여 한국 여성의 경험이 갖는 특수성을 가족관계의 맥락을 중심으로 논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영화 속에 나타난 가족관계의 변화가 한국여성주체 형성에 갖는 철학적 함의를 밝힐 것이다. 전통적 유교사회에서 가족관계에 강하게 얽매여있던 한국 여성의 경험은 근대와 탈근대 사회를 통과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와 같은 변화가 한국의 여성주체 형성에 갖는 철학적 함의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한국영화 속에 나타난 여성주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가족관계의 경험에 주목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분석할 것이며 특히 두 편의 영화 <하녀>를 중심으로 논의할 것이다. 근대 사회에서의 굴곡과 변형을 거쳤으며 탈근대 사회 안에서의 다원성과 해체에 직면한 ‘여성주체'가 무엇인지는 여러 각도에서의 철학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대 한국의 여성주체는 전통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여전히 변형된 전통적 질서와 가족관계의 맥락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며, 근대화와 탈근대가 심어놓은 가치들을 내면화하면서도 현실의 모순과 한계에 어느 정도 안주하고 있는 존재,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의지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 안에서 가족들과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여성의 모습들을 영화 텍스트를 통하여 살펴보고 가족과 한국여성주체의 관계, 탈근대 이후 새로운 가족관계 속에서 여성주체의 가능성이란 무엇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In view of a philosophical discussion, this study discusses the experiences of Korean women based on the context of family relations. For this purpose, it sheds light on the philosophical implications that various changes in family relations have on the formation of female identity. Whereas Korean women in the past had faced strict constraints dictated by the behavioral norms expected in family relations within traditional Confucian society, the modern and postmodern eras ushered in rapid changes for Korean women. To draw the philosophical implications that such changes place upon the formation of Korean female identity, this study focuses on family relations and the range of experiences portrayed in Korean movies, and analyzes them from a philosophical perspective. A review of the female identity, which has undergone significant change in the context of modern society, and which is now faced with pluralism and dissolution in postmodern society, requires a philosophical discussion from various perspectives. Though today's women are striving to part with traditional ideologies of the past, they are still largely influenced by modified traditional norms and family relations. To some degree, they live with the contradictions and constraints of reality, despite having internalized modern and postmodern values. Although they seem to be taking the initiative and leading independent lives, they are still concerned about how they are viewed by others in and outside the family due to the invisible relationships of power in the capitalist society. By reviewing images of Korean women through their dialogues in movies, this study discuss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women and their families, and how their identity might evolve within redefined family relations of the postmodern era.

        • KCI등재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한국철학관'과 내셔널리즘

          김미영(Kim Miyeong)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철학계에서는 다카하시의 철학관을 두 측면에서 평가한다. 한편으로는 식민사관으로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의미의 전통철학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한다. 이 양대 평가는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에 걸쳐 나타나는 그의 한국철학관의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그의 한국철학관 형성과정과 국가사상 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1910년대에는 한국이 중국사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향모색의 과정에서 조선의 고유문자나 조선의 고유문학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의 일본어로의 대체를 강조하며, 한국철학사에서 조선어에 의한 창작활동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유학사 연구의 시발점을 1910년대에는 신라시대로부터 시작하나, 1920년대에는 철학으로서의 유학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성리학 구명에 중점을 두며 고려말부터 시작하고 있다. 또한 1920년대에는 유학을 철학적 측면으로 다루며 조선성리학에 집중하고, 한국인의 일본에의 동화를 위한 종교정책의 일환으로 불교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1930년대에 접어들면 조선유학의 특징을 종교성에 두며, 한국인에게 종교적 교화라는 측면에서 불교보다 유학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그는 더 이상 불교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한국유교의 종교성을 구명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그는 중국이 근세 쇠퇴한 원인이나 조선이 멸망한 원인을 유교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부정하면서, 조선이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철학관의 변화는 그의 전통철학 연구대상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철학사와 국가사상간의 관계를 읽어볼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철학사상이 국가사상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의 문제는 20세기 전개된 철학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Takahas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is evaluated from two aspects by Korean philosophers. One is criticized by Colonialism, and the other is evaluated from the standpoint that he was the scholar studying Korean traditional philosophy by modern systems of study. These two aspects are related with the course of colonial regime of Japanese imperialism. So, I stud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evelopment process of 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and the nationalism, laying stress on the change of his viewpoint on it in 1910's, 1920's, and 1930's. In 1910's, he didn't exclude the possibility of Korean traditional character or literature as a way out of Korean Chinese Thought in this time. But in 1920's, he as an assimilationist, stressing the substitution of Japanese for Korean, tried to exclude the possibility of studying Korean philosophy in Korean in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Accordingly, in 1910's, he put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confucian history in Shilla, but in 1920's, in the end of Koryo. Also, in 1920's, he focused on Chu Zi's learning of Chosun, emphasizing the confucianism as a philosophical idea, and on Korean Buddhism as a part of a religion policy for the Korean assimilation to Japan. But, in 1930's, he emphasized Chosun confucianism as a religion, not studying the Korean Buddhism any more, but Korean confucianism, from the viewpoint that the confucianism as a religion was more suitable for Korean. This change of 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led to the transition of object of his study and show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and the nationalism. Therefore, in order for philosophy to overcome nationalism, I think we have to have critical review on his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developed in the 20th century.

        • KCI등재

          연구논문 : 한국선도(韓國仙道)에서의 여신선(女神仙)의 계보(系譜)와 위상(位相): 조선시대의 선도자료를 중심으로

          임채우 ( Chae Woo Lim ) 한국동서철학회 2014 동서철학연구 Vol.73 No.-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선도의 역사적 전개속에서 여신선, 여신선(女神仙)의 존재를 추적하여 그 계보를 재구성함으로써 한국선도사에서 여신선의 의미와 위상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한국의 선도사서, 선도사서(仙道史書)들을 비교 분석해보면 10여명의 여신선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추려보면 2종류의 도맥, 도맥(道脈)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학집』과 『규원사화』에서 보이는 환인→ 환웅천왕→ 단군→문박씨→ 을밀→영랑→ 안류→ ‘신녀, 神女 보덕, 普德'→ 이순→ 옥보고로 이어지는 한국선도의 계보와, 『해동전도록』에 보이는 당(唐) 종리권 → 자혜 → 명오 → 설현 → 김시습 → 홍유손→ ‘박씨, 묘관, 妙觀'→ 장세미→ 강귀천→ 장도관으로 이어지는 중국 도교 계통의 계보이다. 단군을 중심으로 한 선도가 문박씨와 영랑을 거쳐 신라시대의 보덕에게 전해진 계보의 특징은 고유의 선도로서 운률, 韻律과 풍류, 風流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중국 종리권의 도맥이 신라시대에 들어와 홍유손으로부터 묘관에게 전해진 계보의 특징은 중국 전진교의 내단수련 도교라는 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선도사에서 여신선의 존재는 위축 변질되었다. 그것은 특히 조선시대에 유교이데올로기와 중화주의라는 이중의 맥락속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한국의 선도사서, 仙道史書가 새롭게 등장하는데, 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중화주의적 세계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한국선도를 자각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외우내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일부 식자층들 사이에 기존의 유교독존주의와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되돌아보면서, 도교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눈을 돌리고, 고유선도라는 주체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and status of the female immortal by tracing and reconstructing its genealogy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in Korean Taoism. As a result of comparative analysis of Korean Taoism literatures, there are approximately ten female immortals and they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of the Taoism lines; One is the Korean Taoism line connected in order of Goddess Bodeok, Isun, and Okbogo in Cheonghakjip and the other is the Chinese Taoism line connected in order of Jongrigwon, Bakssi, and Jangsemi in Haedongjeondorok. The characteristic of the Dangun-based Taoism line including Munbakssi, Youngrang, and Bodeok is its unique Taoism based on geomungos and transcendent taste for the arts. On the other hand, the Chinese Jongrigwon Taoism line, which was inherited from Hongyuson to Myogwan in the Shilla Dynasty, is Internal Alchemy Taoism of Internal Alchemy of the Quanzhen School. However, as time goes by, the existence of the female immortal of Korean Taoism has been changed. It happened in the dual contexts of the Confucian ideology and Sinocentrism in the Joseon Dynasty. However, after the mid Joseon Dynasty, Korean Taoism literatures newly appeared. In this period, passing through the Japanese and Chinese invasions, the Sinocentric view began to change and it became an opportunity to recognize Korean Taoism. Going through such difficult circumstances, some of the literate stratum looked back exclusively on the existing Confucianism and Sinocentric view, concentrated on the new Taoism view, and had the autonomous awareness of Korean Taoism.

        • 『21세기 찬송가』의 "한국화" 연구

          김세완 한국기독교철학회 2014 기독교철학 Vol.18 No.-

          이 글은 『21세기 찬송가』에 나타난 ‘한국화'된 곡을 음악적으로 분석하여 ‘한국화'된 양상을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에 음악적 분석으로 연구된 한국교회음악에 대한 ‘한국화' 양상은 주로 한국전통음악의 음악적인 요소의 반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교회음악에 이루어진 ‘한국화'를 한국전통음악의 요소가 반영된 여부에만 초점 맞추지 않는다. 한국교회음악의 ‘한국화'는 현시대에 진정한 ‘한국화'를 인식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현시대의 진정한 ‘한국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단하는 것이 선행되며 현재적 진단 뒤에 도출되는 의미에 따라 한국교회음악의 ‘한국화'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음악의 ‘한국화'된 양상을 살피기 위해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교회음악의 핵심인 찬송가이다. 연구대상으로 삼기에 적합한 찬송가는 현행찬송가인 『21세기 찬송가』이다. 『21세기 찬송가』에는 ‘한국화'된 곡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찬송가』의 ‘한국화'에 대한 연구는 먼저 ‘한국화'된 곡을 추려낸 다음에 작곡가별로 음악적으로 분석하여 ‘한국화'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작곡가별 분석이 끝난 뒤에는 ‘한국화' 지수를 매겨 ‘한국화'된 양상을 가시화하였다. 도출된 ‘한국화' 지수는 한국교회음악의 ‘한국화'에 대한 현재적 상황을 진단하고 현재적 상황에 맞는 한국화를 모색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This thesis analyzes the Koreanized Christian church hymns selected from 21th Century Hymnal. It sequentially suggests some practical methods and musical technics for the future development of authentic Koreanized church music in its context. The previous studies on the Koreanized church music were done only in the perspectives of the past Korean traditional elements. This study, however, develops beyond those traditional components because the true Koreanized music must authentically reflect the current Korean musicality. Thus, it is necessary to correctly define what it means to be a Koreanized church music. This definition will subsequently aid to draw some practical suggestions on how to enhance the Koreanization of church music in the days to come. In order to achieve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the following procedures were conducted: Firstly, as samples, several hymn songs with the prominently Koreanized components were selected from 21th Century Hymnal, which is used in the most churches in South Korea today. As the second step, the musical analyses were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composers and their musical patterns and distinctiveness. Thirdly, based on the how Koreanized those songs were, they were systematically categorized with the scale of indexing figures. This study provides the accurate diagnoses and evaluations of the current Koreanization of Christian church songs as well as practical recommendations on development of the future dir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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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법체계의 법원리를 표상할 수 있는 (상징적) 표제어 정립을 위한 시론(試論)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시론―

          박종목 한국법철학회 2017 법철학연구 Vol.20 No.2

          이 연구의 궁극의 목적은 튼실한 민주와 정상적인 법치의 활착이다. 그 작은 목표로 한국 법체계의 법원리 법원칙을 표상할 수 있는 상징적 표제어를 발굴 정초하려는 것이다. 한국 법문화에서 이 표제어는 현재 공백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법치주의의 역사문화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구형 민주와 법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동양형 민주와 법치 역시 시의(時宜)에 맞게 창신(創新)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분석대상을 한두 가지로 국한해서 세밀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한국 법체계 전체 국면의 큰 흐름을 가능한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소략하게 논증하기 때문에 시론적 작업이라 명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법체계의 법원리를 추출하고 표상화하는 실질적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조선시대 법체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의 정보위(正寶位), 경국대전(經國大典), 다산(茶山)의 형전(刑典), 그리고 근대의 법체계인 임정헌법, 제헌헌법, 대법원 판결례를 아주 제한적으로 분석 우리 헌정질서에 담겨진 법가치를 재확인 법원리로 표상할 수 있는 표제어를 부분적으로 입안 정초하려는 것이다. 그 큰 흐름의 하나는 여민(與民)의 법가치와 인민주권의 법원리이며, 그 둘은 여민의 법가치와 경제균평의 법원리이다. 조선경국전 정보위(正寶位)의 균방국(均邦國), 경국대전의 경제질서, 다산의 균평(均平)의 법(정치)원리, 그리고 임정헌법의 이익균등 제헌헌법의 이익균점, 지금의 경제민주에 이르기까지 한국 법체계의 법원리로서 면면히 이어지는 법원칙이며 법의 정신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법원리는 근대 법체계에서 국민주권의 법원리, 그리고 활사개공(活私開公)의 법원리, 경제민주의 법원리와 큰 틀에서 상응 상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례에서 추론하여 표상화 할 수 있는 법원리 역시 넓은 의미에서 활사개공(活私開公)의 법원리이며, 활문개작, 활문개창의 법(해석)원리이다. 한편 오피니언 리더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정제된 담론에서 활사개공의 법원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가설적 법원리 입안은 한국사회의 규범현실을 진맥하고 소통을 촉진하며, 소박하게나마 한국사회의 기존의 법이론 정의론 전개를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법의 철학을 전개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다. 위와 같은 총체적 과정에서 한국 법체계의 법공동체 공론의 장에서 수긍할 수 있는 법원리 후보군이 결정되면 그 상징적 표제어를 최종적으로 입론하게 될 것이다. It is the ultimate purpose that this study settles down normal rule of law and sturdy democracy. It is the definite purpose that the study sets up a symbolic title representing the general rule of law on Korean legal system.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title is absent now. The present state proves the lack of legitimacy historically and culturally. Western democracy and rule of law haven't been settled down and also oriental democracy and rule of law haven't been improved timely. The subject of analysis is not described narrowly in the article. First, I aim to discuss the whole of main stream, so I name the preliminary study as a kind of essay. How will we establish practical standard which symbolize the legal principle of Korean legal system? I am going to analyze such as: Righteous Throne(Jung-Bo- Wi: 正寶位) in the Chosun National Government Code(朝鮮經國典) of Jung-Do-jun's, the Constitution of Chosun Dynasty, Criminal Code of Dasan's, the Constitution of de facto government of Korea, first Constitution of Korea, Supreme court precedents. Thus, I will identify legal value in the constitutional law in order to establish partially the title symbolizing legal principle. The one of main stream is the legal principle of people's(인민) sovereignty and legal value of with people humanitarianism(與民). The another is the legal principle and legal value of economic equality(均平). These are the inherited legal principle and legal spirit in our legal system in such as: Righteous Throne (JungBoWi: 正寶位) and egalitarian states (GunBangKuk: 均邦國) in the Chosun National Government Code (ChosunGyeonggukjeon朝鮮經國典) of Jung-Do-jun's, the economic system of Constitution of Chosun Dynasty, Political equality principle of Dasan, the equal distribution of profit in the Constitution of de facto government of Korea and first Constitution of Korea, the economic democracy in the present Korea. We will focus on point that these principles have something in correspondingly with the modern principles such as people's(국민) sovereignty, “Hwal-Sa-Gae-Gong(活私開公: Opening common goods through improving private interests)”, economic democracy. The legal principles which are symbolized from Supreme Court precedents are as like in a broad sense: “Hwal-Sa-Gae-Gong(活私開公: enliven the private & open up the public)”, “Hwal-Mun-Gae-Jak(活文改作: Opening operations through improving literally interpretation)”, “Hwal- Mun-Gae-Chang(活文開創: Opening opreations through improving creation)”. And we can identify the “Hwal-Sa-Gae-Gong(活私開公: Opening common goods through improving private interests)” from the refined discussion within opinion leaders and NGO's. These hypothetic thinking makes us introspect the existing Justice theory and legal theory simply and promotes the opportunities for the communication with reality of norms. Futhermore, it gives momentum for developing our legal philosophy. When we decide candidates of legal principle which convince us in the public sphere of Korean legal society generally, we can establish the symbolic title finally.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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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의 "차이"의 개념으로 본 오지호 연구

          변상형 ( Sang Hyung Byun ) 한국동서철학회 2011 동서철학연구 Vol.62 No.-

          그동안 우리의 근대미술이 갖고 있었던 시기적 특수성은 많은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거세게 들이닥친 근대화의 흐름 속에 우리의 미술계는 서양미술과 접촉하며 전통적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미술계가 본격적인 서양미술의 도입으로 근대적인 화단을 형성한 것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들로부터 출발한다. 1세대 유학생이었고 최초의 서양미술가였던 고희동 이후 지속적으로 유학생들은 늘어났으며, 일본 강점기동안 보다 다양한 서양미술의 수용으로 우리의 화단은 점차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서양미술의 도입과 수용은 일본을 통한 왜곡된 일본화 된 서양미술로서 굴절된 이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우리의 근대미술로 수용된 서양의 인상주의는 서양의 본래적인 인상주의의 문제의식과 달랐으며, 일본의 풍토와 결합된 일본적 인상주의와도 또 다른 모습의 것이었다. 하지만 본 논고는 이러한 우리근대미술의 상황을 서양미술에 대한 왜곡된 과정으로 보기보다 다양한 시대적 흐름과 지역이 가지고 있는 풍토에 따라 창조적으로 변화하며 생성되는 한국적 인상주의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근대미술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은 서구화가 곧 근대화로 가는 첩경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왔다. 하지만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이라는 이원적인 범주의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점이며, 작품상으로도 온전하게 서양미술인 것도 동양미술인 것도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적 서양미술의 형성기에 대한 논의를 좀 더 다각화하고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보다 주체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들뢰즈의 ``차이``의 개념을 통해 우리의 근대미술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한국적 인상주의를 향토적 색채로 형상화한 오지호를 연구함으로써 일본식 인상주의와는 다른 차이를 창조적으로 생성한 근대 한국미술의 성과를 논하고자 한다. 일본과 한국은 들뢰즈(Gilles Deleuze)적 관점에서 보자면 모두 서양에 대한 소수자로서 각자의 근대미술계를 시작하고 있다. 서로 다른 풍토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서양미술의 자양분을 섭취하였고 각기 다른 차원의 조형성을 생성시킨 개별체로서 중심이 아닌 주변의 차이를 형성해냈던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들뢰즈의 ``차이`` 개념으로 한국의 근대서양미술을 보다 의미 있게 들여다보면서 서양과 일본과도 다른 인상주의의의 지점을 발생시킨 오지호 작가를 보다 주체적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미술의 근대 형성기를 일본에 의한 강제적 이식이나 절름발이식 이식이라는 폄하된 평가로 부터 벗어나 서구와 일본미술과도 차이를 생성시킨 적극적인 서구미술 수용기로 이해하고자 한다. 일제시대부터 오지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근대미술형성기는 창조적인 ``차이``를 생성해내고자 지속적으로 변화의 내재성을 품고 끊임없이 중심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탈주해나갔던 시기였다. 이러한 자발적인 흐름의 중심에 오지호가 있었고 그는 독자적이고 유일한 존재자로서의 차이를 생성한 한국미술계의 주체였다. Up to now, Korea`s modern art has had many unique critical views due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era when modernism spread widely in Korea. In the flow of modernization, Korea`s art circles contacted Western art, and its traditional art was also affected from this new trend. The development of modern art circles in Korea started from artists who came back to Korea after studying in Japan and introducing Western art into their works. Since Go Hui-dong (고희동), who was a first-generation artist who studied abroad and the first Western-style painter in Korea, the number of students studying abroad has increas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more various Western types of art were accepted, and Korea`s art circles showed more variation. However, the Western art accepted into Korea then was distorted, japanized Western art, and it is usually evaluated as a refracted transplantation. The Western impressionism accepted into Korea as modern art was different from its original critical view, and also different from the Japanized impressionism combined with the climate of Japan. However, this paper tries to understand that the development of Korean-style impressionism was creatively changed and produced according to the flow of Korean eras and its regional climate, rather than seeing that Korean modern art was developed as a distorted version of Western art. From the period of the Japanese occupation to the present, in Korean art circles, there have been overflowing views that westernization is modernization. However, today, it is thought that the dualistic division between Western and Asian art is no longer valid. And it is also difficult to perfectly distinguish Western and Asian art works. So, this study tries to further diversify the discussion on the developing period of Korea-style Western art and to look over Korea`s modern art circles through a concept of Gilles Deleuze, ``difference,`` in order to define the identity of Korean art. In particular, it tries to discuss the results of Korean modern art that creatively produced a different art from Japanized impressionism by examining artist Oh Ji-ho(오지호), who formed a Korean-style impressionism with local colors. In terms of Gilles Deleuze, Korea and Japan each started to develop its own modernism as minors of the West. In each different climate and historical flow, they took in the nutritive elements of Western art and formed not a central art but a peripheral art as an individual country that created a different formativeness. So, this paper evaluates Oh Ji-ho(오지호) in detail, who developed a different impressionism from Japanized impressionism, looking over Korea`s modern art with the concept of Gilles Deleuze, ``difference.`` Through this examination, it tries to understand that Korea`s acceptance of Western impressionism is neither a transplantation forced by Japan nor a lame transplantation, and that the developing period of Korean modern art was a period that actively accepted Western art and made a different impressionism art from Japanese art. The developing period of Korea`s modern art,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o the working period of Oh Ji-ho(오지호), produced a creative difference and willingly escaped from Western art holding the intrinsic value of change. In the center of this voluntary flow, there was Oh Ji-ho(이호지), who was a principal figure in Korea`s art history as a unique artist who produced a different impressionism.

        • KCI등재

          한국과 일본의 전통무용에 나타나는 남성무용수의 여성이미지 비교(탈춤과 가부키를 중심으로)

          유태균,최윤정,노경일 한국체육철학회 2010 움직임의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Vol.18 No.1

          This study aims to look into male dancers' feminine images in Korean and Japanese traditional dances. To attain the goal of the study, the researchers made a comparative study on talchum and kabuki, respectively Korean and Japanese traditional dances. In the first place, the researchers analyzed Korean and Japanese patterns of directing with a view to looking into their separate feminine images in their respective traditional dances. In the second place, the researchers analyzed their directing methods on the basis of the analyzed patterns of directing. And the researchers in turn analyzed directing methods by dividing them into stage, makeup and costume, and music. As a result, the findings of the research were as follows: First, Korean and Japanese male dancers' feminine patterns of directing were categorized into court dance, ritual dance, artistic dance and folk dance in both of them. Second, as a consequence of Korean and Japanese male dancers' feminine patterns of directing being divided into stage, makeup and costume, and music, the Korean male dancers were free and informal in their characterization with no stereotyped stages, with comical makeups, and with no special costumes creating feminine images, while on the contrary the Japanese male dancers were expressing their feminine images better with stereotyped stages, with diverse facial expressions and makeups, with costumes creating feminineness nicely, and with formal and regular patterns of music and dances. 이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무용 속에서 볼 수 있는 남성무용수에 대한 여성이미지를 알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전통무용인 탈춤과 가부키(歌舞伎)를 중심으로 비교 연구하였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전통무용에서 나타나는 여성이미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출 유형을 분석하였고 다음으로, 분석된 연출 유형을 토대로 연출 방법을 분석하였다. 연출 방법은 무대, 분장 및 의상, 음악으로 나누어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첫째, 한․일 남성무용수에 의한 여성적 연출 유형은 한․일 모두 궁중무용, 종교의식무용, 예능무용, 민속무용으로 나타났다. 둘째, 한․일 남성무용수에 의한 여성적 연출 방법은 무대, 분장 및 의상, 음악 및 무용형태로 나누어 본 결과 한국은 정형화된 무대가 없고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여성적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특별한 의상 없이 자유롭고 비형식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은 정형화된 무대와 다양한 표정의 분장, 여성스러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의상이 있으며 형식적이고 고정적인 음악과 무용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남성무용수에 의해 여성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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