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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한국 양명학 연구 경향에 대한 반성적 고찰

            김윤경(Kim, Yun-kyeong) 한국양명학회 2013 陽明學 Vol.0 No.35

            최근까지 한국 양명학 연구는 한국 양명학의 존재양태와 그 사상사적 역할에 대한 공통된 시각 아래서 진행되어왔다. 그것은 1)양명학 전래 이후 전 시기를 통틀어 양명학적 사유를 적극 개진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기본 정신은 양명학이었던 학자가 많았다는 것과 2) 사상적 배척에도 불구하고 한국 양명학의 명맥이 꾸준히 유지되어 실학, 개화사상 등 근대적 사유의 저변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서 성립된 연구 성과들은 한국 양명학을 사상사의 수면위에 올려놓고 한국유학사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지만, 한국 양명학 연구사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검증없이 동일하게 유지되어온 연구관점에 기반하고, 한국 사상사 안에서 양명학적 사유와 계통을 밝히는 부분에만 편중되는 연구 경향을 만들어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본 논고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논점 별로 재정리하는 방법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연구사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선대 학자가 양명학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연구 경향이 한국 양명학 연구의 주를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양명학자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분명한 검토가 없었다는 점이다. 본 논자가 주장하는 바는 기존의 연구 관점에 대한 메타적인 성찰과 함께 한국 사상안에서 한국 “양명학파”를 새롭게 조망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왕양명으로부터 형성된 양명학이 한국에서 수용·이해되는 과정을 고찰하는 것을 넘어서, 양명학을 수용한 학자군의 한국 사상적 기반과 철학적 문제의식 및 해결방안을 기준으로 사상 운용 양상을 검토하고 그것이 당대 다른 사유와 어떻게 소통되는가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Until recently, the study of the Korean Yang-ming Studies was carried out from a common perspective of the existential mode of the Korean Yang-ming Studies and its role in the history of philosophy. The perspective suggested 1) that there were many scholars who took the Yang-ming Studies as their foundational idea throughout the periods after the introduction of the Yang-ming Studies though they did not positively presented Yang-Ming philosophical thoughts, and 2) that the Korean Yang-ming Studies formed the ground for early modern thoughts including Silhak, thoughts of enlightenment etc. as the vein of the Korean Yang-ming Studies had been continuously maintained despite its ideological exclusion. Though the achievements of the work established on this basis put the Korean Yang-ming Studies on the surface and provided some foundations for more richly interpreting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they are problematic in that they are based on the research perspective that has been maintained identical without essential reflection and verification, and they have given rise to the trend in which research leans too much on the explication of the thoughts and lineage of the Yang-ming Studies. This thesis was designed to examine such problems in a method in which the achievements of the existing studies are rearranged based on each issue, and come up with a new alternative. One of the representative phenomena occurring due to lack of reflection on research history is that there have been no clear reviews of criteria for determining whether one is a Yang-Ming philosopher or not despite the fact that the research tendency in which researchers try to determine whether foregoing scholars were Yang-Ming philosophers has constituted the main stream of the study of the Korean Yang-ming Studies. What the current author claims is that a shift to the perspective from which we take a novel look at Korean “Yang-Ming schools” within Korean philosophies is necessary as well as meta-reflection on the existing research perspectives. Beyond the examination of the course in which the Yang-ming Studies, which had been formed by Wang Yang Ming, was accommodated and understood in Korea, it is to review the aspects of addressing ideas on the basis of the Korean philosophical foundations for the group of scholars who accommodated the Yang-ming Studies and their philosophical awareness and solutions, and to generally examine how they communicated with other contemporary thoughts.

          • KCI등재후보

            한국양명학 연구현황과 새로운 모색 - 강화학 연구의 필요성과 접근방법을 중심 논제로 -

            김용재 한국양명학회 2005 陽明學 Vol.0 No.14

            A Review and Challenge of Korean Yang-Ming Studies * Zhu-Xi studies had exercised its influence in the field of culture and study in Korea peninsula since it was imported. Specially, The Chosun dynasty adopted Confucianism, actually speaking Zhu-Xi studies, as a national ideology, which ruled Chosun dynasty for 5oo years. In the early years of the Chosun dynasty, Confucianism was used for justifying new dynasty and establishing social systems, and as time goes on, Korean Confucianism built its typical and colorful style Now we can have a question whether only Zhu-Xi studies ruled public thought of the Chosun society? Until now, approximately this question didn't ask and accepted as a true. But this hypothesis isn't objective and lacks of positive study, because the Chosun Confucianism not only have Zhu-Xi studies but also have creative theories. In addition, Yang-Ming studies obviously maintained its position in the Chosun society. Specially, we can pose a hypothesis that Korean Yang-ming studies and kang-hua school played a role as a linker of the practical science (實學) and western learning(西學)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본 논문은 한국유학사의 한 단면을 당당히 이어 왔던 ‘양명학'에 대하여 그 연구사 검토와 함께 향후 ‘한국양명학 연구'에 있어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들을 밝혀놓은 것이다.그동안 한국 유학의 사상계는 다양성의 전철을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관의 망국론에 기초한 주자 일존주의의 학풍으로 일관하였다는 오해와 오류에서 벗어나, 묻혀왔던 양명학사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십분 발휘했던 주자학의 그늘 하에 있었던 양명학을 한국에서 조명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 양명학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이러한 사안들을 발굴하는 작업으로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이제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들은 한국양명학의 한 획을 점철하고 있었던 ‘강화 양명학파'의 연구에 주력해야 함을 피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사상사가 주자학을 한국화하는 과정의 연속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계의 자유로움과 왕성한 학술적 활동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본 논문은 기존의 발상에 있어서 도식적 파악과 왜곡된 흔적들에 대한 재검토, 혹은 역비판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한국 철학계의 전반적인 구조와 흐름을 명시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분야 - 강화학 - 의 기초 자료 및 영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유학 사상계는 주자학 이외에도 獨創的이고도 理智的인 많은 학설들이 산출되었을 것이고,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양명학의 유입과 관심이 미약하게나마 엄연하게 그 궤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철학사와 한국지성사 속에서 양명학의 위상과 자리매김은 일제 식민사관의 성리학 망국론에 기초한 왜곡경직된 한국사상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마련은 물론이고, 다양한 한국 사상계의 복원을 기대하는 학문 후속세대들에게 또다른 연구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우리 한국사상계의 흐름과 정체성을 바로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와 같이 한국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그 출발과 기획에서부터 貶下와 浮沈의 연속이었다. 향후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 이상의 시행착오와 인식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양명학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발굴하여, 한국양명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강화 양명학 연구가 필요함을 밝혀 보았다.

          • KCI등재

            한국양명학 연구현황과 새로운 모색

            김용재(Kim Yong-Jae) 한국양명학회 2005 陽明學 Vol.- No.14

            본 논문은 한국유학사의 한 단면을 당당히 이어 왔던 ‘양명학'에 대하여 그 연구사 검토와 함께 향후 ‘한국양명학 연구'에 있어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들을 밝혀놓은 것이다. 그동안 한국 유학의 사상계는 다양성의 전철을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관의 망국론에 기초한 주자 일존주의의 학풍으로 일관하였다는 오해와 오류에서 벗어나, 묻혀왔던 양명학사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십분 발휘했던 주자학의 그늘 하에 있었던 양명학을 한국에서 조명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 양명학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이러한 사안들을 발굴하는 작업으로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이제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들은 한국양명학의 한 획을 점철하고 있었던 ‘강화 양명학파'의 연구에 주력해야 함을 피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사상사가 주자학을 한국화하는 과정의 연속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계의 자유로움과 왕성한 학술적 활동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본 논문은 기존의 발상에 있어서 도식적 파악과 왜곡된 흔적들에 대한 재검토, 혹은 역비판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한국 철학계의 전반적인 구조와 흐름을 명시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분야 - 강화학 - 의 기초 자료 및 영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유학 사상계는 주자학 이외에도 獨創的이고도 理智的인 많은 학설들이 산출되었을 것이고,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양명학의 유입과 관심이 미약하게나마 엄연하게 그 궤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철학사와 한국지성사 속에서 양명학의 위상과 자리매김은 일제 식민사관의 성리학 망국론에 기초한 왜곡ㆍ경직된 한국사상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마련은 물론이고, 다양한 한국 사상계의 복원을 기대하는 학문 후속세대들에게 또다른 연구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우리 한국사상계의 흐름과 정체성을 바로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그 출발과 기획에서부터 貶下와 浮沈의 연속이었다. 향후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 이상의 시행착오와 인식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양명학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발굴하여, 한국양명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강화 양명학 연구가 필요함을 밝혀 보았다. Zhu-Xi studies had exercised its influence in the field of culture and study in Korea peninsula since it was imported. Specially, The Chosun dynasty adopted Confucianism, actually speaking Zhu-Xi studies, as a national ideology, which ruled Chosun dynasty for 500 years. In the early years of the Chosun dynasty, Confucianism was used for justifying new dynasty and establishing social systems, and as time goes on, Korean Confucianism built its typical and colorful style Now we can have a question whether only Zhu-Xi studies ruled public thought of the Chosun society? Until now, approximately this question didn't ask and accepted as a true. But this hypothesis isn't objective and lacks of positive study, because the Chosun Confucianism not only have Zhu-Xi studies but also have creative theories. In addition, Yang-Ming studies obviously maintained its position in the Chosun society. Specially, we can pose a hypothesis that Korean Yang-ming studies and kang-hua school played a role as a linker of the practical science (實學) and western learning(西學)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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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심학의 전개에 관한 연구

            고재석(Go, Jae-Suk) 한국양명학회 2018 陽明學 Vol.0 No.49

            이 글은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4-16세기 성리학자에 의해 이단의 학문으로 배척되었던 ‘한국 심학'의 전개 양상을 검토하여, 한국 심학 및 한국유학사 연구의 다각적인 이론토대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 심학에 대한 국내학계의 연구는 이미 ‘한국 양명학'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필자는 ‘한국 양명학'이라는 학술 용어가 600여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된 조선의 심학 전부를 개괄하는 용어로 규정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본다. 조선의 심학은 양명학이 전래된 시점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려시기 불교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학술경향이나 화담의 기학 등이 형성의 토대가 되었고, 성리학과 함께 동시에 유입된 상산 심학 역시 그 기초가 되었다. 이에 여기서는 우선 14-16세기의 조선의 학자들이 상산에 대해 지녔던 긍정적 태도와 부정적 관점을 검토하고, 상산의 학문을 비판적으로 논박한 성리학자들의 이론을 분석하여, 조선 초기 한국 ‘심학'의 전개 양상을 규명하였다. 상산과 양명의 철학사상은 조선 초기 유입되어,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그 정신을 표출하였다. 그런 면에서 성리학과 대비되는 보편가치인 ‘한국 심학'이란 개념으로, 심학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양상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 있다. 게다가 근현대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한국 양명학' 개념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이용되고 왜곡된 측면 역시 존재한다. 일제시기에는 식민주의 침략 정당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용되었고, 최근 중국에서는 문화중심주의 확산 개념으로 협소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국 양명학'은 일제 침략 정당화의 이론근거로 이용한 시각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중국 철학사상의 지역적 확산 개념으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한국양명학'을 고수한다면 조선시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양명의 학설만이 아닌 다원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고려해야 하고, 근현대 격변기에 정치적 의도에 의해 왜곡된 의미 역시 제거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intends for the presentation of theoretical foundation for diverse studies of the history of Confucianism and the Philosophy of Mind in Korea through an examination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the Philosophy of Mind, which was expelled by scholars of Neo-Confucianism in the era of 14-16 centuries. Domestic studies, delved into the Philosophy of Mind, have produced significant achievement center around the concept of Korean Yang-Ming Studies. However, author of this paper assumes the term Korean Yang-Ming Studies would be inadequate as a term comprehensively covering the extent of the the Philosophy of Mind, which had been developed in diverse aspects over 600 years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dynasty of Joseon. Thus, this study examines the positive attitudes and negative standpoints of the scholars of Confucianism in the dynasty of Joseon in the era of 14-16 centuries. Further, the theories of the scholars of Neo-Confucianism, who refuted the studies of Xiangshan (象山), were analyzed to clarify the development of the Philosophy of Mind in Korea in the early age of the dynasty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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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에서의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

            김세정 한국양명학회 2019 陽明學 Vol.0 No.54

            This paper tries to arrange and analyze periodically and categorically the achievements in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carried out in Korea during the last 50 years from 1970s up to now. Based on that analysis, it considers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dern Korean Yangming studies, i.e. the modern Yangming studies in Korea which is apart from Yangming studies in Joseon era. During the last 60 years from 1960s up to now, there are 677 pieces of research including 24 books, 30 translations, 49 PhD. theses, 85 MA. theses, and 489 papers concerning Yangming studies in Korea. The main periods and characteristics of research achievements from 1970s to 2010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first period is ‘the beginning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1970s to 1980s'. The second is ‘the nationalization and diversification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1990s'. The third is the opening of a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2000s, based on the nationalization and diversification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1990s. And the fourth is the flourishing period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2010s, succeeding the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2000s. Subsequently, the author tries to draw a topographic map of the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Korea nowadays, based on the division of main research achievements produced in Korea during the last 20 years, from 2000 up to now, into some categories and the analysis of those categories as follows. ① The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the viewpoint of comparative philosophy ② The reconsideration of Yangming studies based on positions of bioethics, environmental ethics, ecological philosophy etc. in the connection with the current ecological problems ③ The search for modern roles of Yangming studies in education, based on the reconsideration of Yangming studies from the position of education philosophy or pedagogy ④ The search for the modern application of Yangming studies based on the connection between Yangming studies and philosophical counseling, psychology, therapeutics etc. ⑤ The approach to Yangming studies in arts and physical education ⑥ The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the connection with feminism and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Obviously, Yangming studies are now being researched from positions of various fields as a measure for resolving different problems that the Korean society in particular and the whole world in general is facing. It is not that the current Korean Yangming studies are still bearing fruits. Henceforward, there are many problems that must be resolved for the fruition of it. First, the research in different fields must be more intensified so that we can weave together into one result. Second, it is necessary to share new research subjects with researchers on Yangming studies. Third, it is necessary to promote the comparison of different countries'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ourth, Yangming studies now must participate in popular and cultural movements. With the solution to those problems, the current Korean Yangming studies will be able to achieve more considerable success. 이 글에서는 1970년대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50여 년간 한국에서 일구어낸 양명학 연구 성과물들을 시대별ㆍ유형별로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양명학과 다른 한국의 현대양명학, 즉 ‘현대한국양명학' 형성 과정과 그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난 60여 년간 한국에서는 양명학과 관련하여 24권의 저서, 30권의 번역서, 49편의 박사학위논문, 85편의 석사학위논문, 487편의 학술논문 등 총 675종의 연구 성과물이 나왔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연구 성과를 시기별로 유형과 통계를 바탕으로 개요와 현황과 특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양명학 연구의 시작' 시기이다. 두 번째는 ‘1990년대 양명학 연구의 다양화와 토착화 시기'이다. 세 번째는 2000년대로 1990년대의 양명학 연구의 다양화와 토착화를 기반으로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을 연 시기'이다. 네 번째는 2010년대로 2000년대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을 이어 ‘양명학 연구의 꽃피운 시기'이다. 이어서 2000년도부터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전개된 양명학 연구의 주요 성과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로 대표적인 성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한국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의 지형도를 그려보았다. ① 비교철학의 관점에서의 양명학 연구, ② 오늘날의 생명 문제와 연관 지어 생명철학ㆍ환경윤리ㆍ생태철학의 입장에서 양명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입장, ③ 교육철학 및 교육학의 입장에서 양명학을 재조명하면서 교육 분야에서의 양명학의 현대적 역할을 모색하는 입장, ④ 양명학을 철학상담, 심리학, 치유학과 연결 지으면서 양명학에 대한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입장, ⑤ 예술과 체육학 분야에서의 양명학에 대한 연구, ⑥ 여성주의 및 제4차 산업혁명시대와 관련한 양명학 연구이다. 양명학은 철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 나아가 전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연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한국양명학은 아직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첫째, 분야별 연구들이 보다 심화되고 하나의 결실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연구 주제와 내용들이 양명학 연구자들에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다른 나라의 양명학 연구와의 비교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양명학은 이제 대중운동, 문화운동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함으로써 현대한국양명학은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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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韩国经学的研究倾向

            金容載(김용재) 한국양명학회 2012 陽明學 Vol.0 No.33

            한국에서의 경학 연구는 학문적 특성 상, ‘中語中文學'·‘漢文學'·‘哲學'·‘思想'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다. 특히 ‘中語中文學科' 전공에서의 경학은 주로 ‘文字學'(小學)과 ‘『詩經』'·‘『論語』' 중심의 연구가 主를 이루어 왔고, ‘漢文學' 전공에서는 五經과 四書에 대한 조선시대 유자들의 경전 주해를 주요 논제로 다루어 연구되어 왔다. 동양사상이나 철학 방면에서는 유가경전을 모두 섭렵하여 총괄적인 연구를 진행해 오기도 했으며, 사상사에 드러난 ‘인물' 중심의 연구도 아울러 병행되어 왔다. 특히 동양사상을 연구하는 유교경전 연구 방면에서는 十三經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註釋(注疏)뿐만 아니라, 경서에 나타나 있는 인물과 사상(예컨대 정치사상·경제사상·교육사상·예술사상 등)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왔다. 뿐만 아니라, 경서에 담긴 註解 내용을 근저로 중국의 유가사상과 한국의 유가사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집주』와의 同異點을 찾아내어 담론의 장을 이끌어내며 지금까지 주요 테제를 창의적으로 발굴하여 연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조선시대의 유학이 주로 朱子學에 傾倒되어 왔기 때문에, 주자학 이면의 유자와 사상적 위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연구과제로 각광받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의 ‘경학'은 각계각층으로부터, 또는 다양한 학문 영역으로부터 여러 방면의 學問思潮를 형성하며 제각기 연구되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연구 활동이 하나의 창구로 일원화 되지 못하여, 일방통행식의 연구로 직진하여 왔다. 물론 어떤 경서에 대한 연구가 학문영역별로 똑같은 성과를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같은 경서이기에 참고할만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서로 간의 학문적 교류와 소통이 다소 미흡했었다. 이에 한국에서의 경학을 연구하거나 경학에 관심이 많은 자들은 좀 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한 ‘경학' 연구가 진행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각계각층의 학자와 교수들이 학회 창립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타진하기에 이르게 되었고, 이는 한국의 수많은 경학 연구자들이 ‘한국경학학회'의 창립을 열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경학은 우리나라 반만년 동안의 왕조 교체기 때마다 대두되었던 지도 체제였으며 이념이었다. 또한 동아시아 삼국의 한자문화권·유교문화권 내에서 경학은 韓·中·日 삼국의 교집합 요소라 할 수 있으며, 중추적 역할을 자임해온 것으로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그 이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국내의 몇몇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경학학회 창립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오랫동안의 숙고 끝에 2011년 2월 名實이 相符한 ‘韓國經學學會'가 창립되어, 당해 연도 4월부터 바로 학회의 제반 활동에 돌입하였다. 본고는 국내에서 한국경학학회가 창립된 후, 不斷한 학술활동과 연구발표 그리고 신진학자 발굴 등 왕성한 학회 활동과 향후 동향을 중국 산서성 산서대학 국제학술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것이다.

          • KCI등재

            조선 전기 심학의 전개에 관한 연구- 象山 학문의 수용태도와 비판논점 분석을 중심으로 -

            고재석 한국양명학회 2018 陽明學 Vol.0 No.49

            This paper intends for the presentation of theoretical foundation for diverse studies of the history of Confucianism and the Philosophy of Mind in Korea through an examination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the Philosophy of Mind, which was expelled by scholars of Neo-Confucianism in the era of 14-16 centuries. Domestic studies, delved into the Philosophy of Mind, have produced significant achievement center around the concept of Korean Yang-Ming Studies. However, author of this paper assumes the term Korean Yang-Ming Studies would be inadequate as a term comprehensively covering the extent of the the Philosophy of Mind, which had been developed in diverse aspects over 600 years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dynasty of Joseon. Thus, this study examines the positive attitudes and negative standpoints of the scholars of Confucianism in the dynasty of Joseon in the era of 14-16 centuries. Further, the theories of the scholars of Neo-Confucianism, who refuted the studies of Xiangshan (象山), were analyzed to clarify the development of the Philosophy of Mind in Korea in the early age of the dynasty of Joseon. 이 글은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4-16세기 성리학자에 의해 이단의 학문으로 배척되었던 ‘한국 심학'의 전개 양상을 검토하여, 한국 심학 및 한국 유학사 연구의 다각적인 이론토대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 심학에 대한 국내학계의 연구는 이미 ‘한국 양명학'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필자는 ‘한국 양명학'이라는 학술 용어가 600여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된 조선의 심학 전부를 개괄하는 용어로 규정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본다. 조선의 심학은 양명학이 전래된 시점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려시기 불교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학술경향이나 화담의 기학 등이 형성의 토대가 되었고, 성리학과 함께 동시에 유입된 상산 심학 역시 그 기초가 되었다. 이에 여기서는 우선 14-16세기의 조선의 학자들이 상산에 대해 지녔던 긍정적 태도와 부정적 관점을 검토하고, 상산의 학문을 비판적으로 논박한 성리학자들의 이론을 분석하여, 조선 초기 한국 ‘심학'의 전개 양상을 규명하였다. 상산과 양명의 철학사상은 조선 초기 유입되어,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그 정신을 표출하였다. 그런 면에서 성리학과 대비되는 보편가치인 ‘한국 심학'이란 개념으로, 심학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양상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 있다. 게다가 근현대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한국 양명학' 개념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이용되고 왜곡된 측면 역시 존재한다. 일제시기에는 식민주의 침략 정당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용되었고, 최근 중국에서는 문화중심주의 확산 개념으로 협소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국 양명학'은 일제 침략 정당화의 이론근거로 이용한 시각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중국 철학사상의 지역적 확산 개념으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한국양명학'을 고수한다면 조선시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양명의 학설만이 아닌 다원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고려해야 하고, 근현대 격변기에 정치적 의도에 의해 왜곡된 의미 역시 제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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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에서의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

            김세정(Kim, Sea-jeong) 한국양명학회 2019 陽明學 Vol.0 No.54

            이 글에서는 1970년대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50여 년간 한국에서 일구어낸 양명학 연구 성과물들을 시대별ㆍ유형별로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양명학과 다른 한국의 현대양명학, 즉 ‘현대한국양명학' 형성 과정과 그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난 60여 년간 한국에서는 양명학과 관련하여 24권의 저서, 30권의 번역서, 49편의 박사학위논문, 85편의 석사학위논문, 487편의 학술논문 등 총 675종의 연구 성과물이 나왔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연구 성과를 시기별로 유형과 통계를 바탕으로 개요와 현황과 특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양명학 연구의 시작' 시기이다. 두 번째는 ‘1990년대 양명학 연구의 다양화와 토착화 시기'이다. 세 번째는 2000년대로 1990년대의 양명학 연구의 다양화와 토착화를 기반으로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을 연 시기'이다. 네 번째는 2010년대로 2000년대 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을 이어 ‘양명학 연구의 꽃피운 시기'이다. 이어서 2000년도부터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전개된 양명학 연구의 주요성과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로 대표적인 성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한국양명학 연구의 신지평의 지형도를 그려보았다. ① 비교철학의 관점에서의 양명학 연구, ② 오늘날의 생명 문제와 연관 지어 생명철학ㆍ환경윤리ㆍ생태철학의 입장에서 양명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입장, ③ 교육철학 및 교육학의 입장에서 양명학을 재조명 하면서 교육 분야에서의 양명학의 현대적 역할을 모색하는 입장, ④ 양명학을 철학상담, 심리학, 치유학과 연결 지으면서 양명학에 대한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입장, ⑤ 예술과 체육학 분야에서의 양명학에 대한 연구, ⑥ 여성주의 및 제4차 산업혁명시대와 관련한 양명학 연구이다. 양명학은 철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 나아가 전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연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한국양명학은 아직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첫째, 분야별 연구들이 보다 심화되고 하나의 결실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연구 주제와 내용들이 양명학 연구자들에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다른 나라의 양명학 연구와의 비교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양명학은 이제 대중운동, 문화운동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함으로써 현대한 국양명학은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tries to arrange and analyze periodically and categorically the achievements in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carried out in Korea during the last 50 years from 1970s up to now. Based on that analysis, it considers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dern Korean Yangming studies, i.e. the modern Yangming studies in Korea which is apart from Yangming studies in Joseon era. During the last 60 years from 1960s up to now, there are 677 pieces of research including 24 books, 30 translations, 49 PhD. theses, 85 MA. theses, and 489 papers concerning Yangming studies in Korea. The main periods and characteristics of research achievements from 1970s to 2010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first period is ‘the beginning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1970s to 1980s'. The second is ‘the nationalization and diversification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1990s'. The third is the opening of a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2000s, based on the nationalization and diversification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1990s. And the fourth is the flourishing period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2010s, succeeding the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2000s. Subsequently, the author tries to draw a topographic map of the new prospect of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Korea nowadays, based on the division of main research achievements produced in Korea during the last 20 years, from 2000 up to now, into some categories and the analysis of those categories as follows. ① The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rom the viewpoint of comparative philosophy ② The reconsideration of Yangming studies based on positions of bioethics, environmental ethics, ecological philosophy etc. in the connection with the current ecological problems ③ The search for modern roles of Yangming studies in education, based on the reconsideration of Yangming studies from the position of education philosophy or pedagogy ④ The search for the modern application of Yangming studies based on the connection between Yangming studies and philosophical counseling, psychology, therapeutics etc. ⑤ The approach to Yangming studies in arts and physical education ⑥ The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in the connection with feminism and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Obviously, Yangming studies are now being researched from positions of various fields as a measure for resolving different problems that the Korean society in particular and the whole world in general is facing. It is not that the current Korean Yangming studies are still bearing fruits. Henceforward, there are many problems that must be resolved for the fruition of it. First, the research in different fields must be more intensified so that we can weave together into one result. Second, it is necessary to share new research subjects with researchers on Yangming studies. Third, it is necessary to promote the comparison of different countries' research on Yangming studies. Fourth, Yangming studies now must participate in popular and cultural movements. With the solution to those problems, the current Korean Yangming studies will be able to achieve more considerable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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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近代 韓國ㆍ日本의 「陽明先生肖像」에 나타난 思想 戰略

            최재목(崔在穆)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1

            이 논문은 崔南善의 『少年』誌와 東敬治의 『陽明學』誌를 중심으로 近代 韓國ㆍ日本의 「陽明先生肖像」에 나타난 思想 戰略을 살펴본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로서의 王陽明 사상이 일본의 明治期에서 재평가되어 근대적 학문의 맥락에서 朱子學, 古學이란 용어와 더불어 新造語인 ‘陽明學'이란 개념이 탄생하여 중국으로 進輸出되고, 한국은 일본과 중국 양방향에서 그 개념 수용의 시간적 편차를 보이면서도 근대 학술로 서서히 편 입해간다. 이 속에는, 近代知의 領有와 交信이, 동아시아 내부에 제국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진행된 遊學生 및 지식인의 교류, 텍스트 流通網을 통해서 긴밀히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서 「陽明先生肖像」은, 근대적 정신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주요 記號로서, 아울러 실천적 사상을 전하는 미디어 역할을 하는 형태로 유통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맥락 속에서 그것을 복제 혹은 재생산하는 형태로 잡지나 저술 등에 편집하여 넣는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王陽明 생전과 逝去 후에 여러 종류의 초상화가 나온다. 이들의 일부가 한국과 일본으로 유입되어 활용된다. 일부는 복제되고, 일부는 모사되고, 또 일부는 중국에서 유출되어 일본에만 남아있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정황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복잡한 궤적과도 맞물려있다. 주자학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양명학 유통망에 장애가 있었던 한국에서는 「陽明先生肖像」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거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崔南善의 『少年』誌、 終刊號에 들어있는 「陽明先生肖像」일 것이다. 이 號에는 특집으로서 讓谷 朴殷植(l859~ 1925)의 『王陽明先生實記』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특집호의 口繪로서 실린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東敬治(호는 正堂, 敬治는 이름 1860- 1935)가 주간하는 「陽明學會」 발행의 『陽明學』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잡지와 학술서를 통해 다량의 「陽明先生肖像」이 유통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을, 지면 관계상 모두 다루지 않고 그 가운데 朴殷植에게 영향을 주었던 『陽明學』을 대상으로 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에만여러 건의 「陽明先生肖像」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것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동아시아 근대기에 「陽明先生肖像」은 일반 대중 그 가운데서도 청년 및 소년(=청소년)을 계몽하는 하나의 ‘실천적 정신'을 전달하는 새로운 미디어로서 등장하고 있었으며, 또한 肖像의 선택에는 나름대로의 의미부여가 있었다. 그렇다면 肖像은 근대적 사상을 전달하는 전략으로서 하나의 미디어 역할을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王陽明 생전 및 逝去 후에 나타난 肖像畵를 살펴보고, 한국의 「陽明先生肖像」은 崔南善의 『少年』誌를 통해서, 일본의 그것은 東敬治의 『陽明學』誌를 통해서 각각 살펴보고 그 近代的 의의를 思想 戰略的 자원에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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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능화의 한국 양명학 연구

            이우진(Lee, Woo-Jin),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5 陽明學 Vol.0 No.42

            이 논문은 ‘한국 양명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서 이능화(李能和)에 대한 탐구이다. 먼저, 이능화가 양명학이 어떤 측면에서 “주자학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서구적인(=서구화할 수 있는) 사상 유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탐색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주자학을 서구근대화의 장애물'로 판단하게 된 이유를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이능화의 조선유계지양명학파 에서 나타난 한국 양명학의 연구 관점이나 자료수집의 폭이 어떤 것이며, 그것이 이후 한국 양명학 연구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이능화는 조선을 ‘사상속박시대'라고 비난할 정도로 오직 주자학만을 유일무이한 학문으로 존숭하였던 조선 유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지녔다. 그에 따르면, 조선의 교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사대주의(事大主義)에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그러한 교조주의는 당파의 분열을 발생시켜 유교의 특장점인 정치적 · 윤리적인 사회철학적 성격을 상실케 되었다고 파악한다. 반면 이능화는 양명학을 시대변혁의 방향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사상으로 파악한 듯 하다. ‘전근대적인 주자학'을 탈피하여 당시의 역사적 사명인 ‘서구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사상'으로 양명학을 바라보았던 것으로 유추된다. 이는 일본의 서구 근대화가 양명학이라는 이념적 기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능화는 『조선유계지양명학파(朝鮮儒界之陽明學派)』에서 조선 양명학파를 학문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국 양명학파를 성립시킨 인물로서 정제두로 제시하였으며, 남언경(南彦經)을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로서 규정하였다. 다음으로 한국의 양명학 전래시기를 1567년 전후로 추정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이후의 한국 양명학 연구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특히 이능화는 조선의 양명학 배척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논증하였다. 이후 그의 한국 양명학 연구는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에게 이어져 식민사관으로 재생산된다. 하지만 윤남한(尹南漢)과 유명종(劉明種)에 이르면 다카하시 도오루가 보여준 식민사관을 넘어서게 되고, 이능화가 마련한 인물 · 시각 · 자료 · 사건들을 그들의 한국 양명학 연구에서 근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점에서 이능화는 ‘한국 양명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이라고 지칭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This paper is aimed to study on Lee Nung-Hwa as ‘the drafter for research on Korean Yangmyeonghak(陽明學)'. First, we examined that why Lee considered Yangmyeonghak as most modern thought. In addition to this, We investigated that why he thought JuJahak(朱子學) as the obstacle of making Josun modern westernization. Second, we investigated Lee's Josunyukyejiyangmyeonghakpa(朝鮮儒界之陽明學派) for seeking his research perspective and scope of data collection about Korean Yangmyeonghak. And, we examined in particular that what Lee had influenced on researchers on Korean Yangmyeonghak since he published this Josunyukyejiyangmyeonghakpa . Lee described Josun(朝鮮) as ‘the spirit bondage era.' He had a very critical stance on the Josun Confucianism, because it only acknowledged JuJahak. At that time, any other thoughts except JuJahak were regarded as unorthodox. According to him, Jujahak dogmatism was due to toadyism basically. Jujahak dogmatism had generated multitudinous partisan brawls from the earliest days of Josun. So, the confucianim lost its advantages of ethical and political philosophy. But, Lee looked at Yangmyeonghak positively. He considered Yangmyeonghak as most modern thought. Because Yangmyeonghak was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the Meiji Restoration. Lee organized the Korean Yangmyeonghak school at the political side, not the academic side in 『Josunyukyejiyangmyeonghakpa』. Lee described Jeongjedu(鄭齊斗) as the feature of establish Korean Yangmyeonghak school, and identified Namunkyung(南彦經) as the first Yangmyeonghak scholar inf Josun. And, Lee estimated the Yangmyeonghak transmission time as around 1567. Many researchers followed these his views. But, Lee analyzed the Korean Yangmyeonghak school from the perspective of colonial history. His perspective of colonial history was continued to Takahasi torou(高橋亨), but that perstpective had been refused by Yunnahan(尹南漢) and Yumyeongjong(劉明宗). However, people, data, and events selected by Lee had been accepted by almost all researchers. In that point, we identify Lee as the drafter for research on Korean Yangmyeong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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