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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源極을 통해서 본 1910년대 陽明學 이해의 특징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3

          이 논문에서는, 아직 학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명학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보이는, 金源極(1871-1927)을 통해서 그가 ‘유교 이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이자 근대적 학술이 본격 유입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양명학’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원극에 대한 소개는 서경석ㆍ김진량 엮음의 『식민지 지식인의 개화 세상유학기』, 최재목의 「日帝强占期 雜誌를 통해서 본 陽明學 硏究의 動向」, 금장태의 『한국 양명학의 쟁점』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고, 본격적인 연구에 이르지는 못했다. 김원극은 그는 함경남도 永興郡 출신 유학자로, 松南, 春夢, 春夢子, 松南春夢 등의 필명을 사용하여 1908년부터 『西北學會月報』, 『太極學報』, 『大韓興學報』 등에 많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태극학보』에는 주필로 활동하였고, 西北學會에서는 副總務로 활동하던 중 1909년(明治四十二年) 11월 11일 伊藤博文 被擊事件 嫌疑者로서 眞相調査를 받았으며 1910년에는 朴殷植에 이어 『서북학회월보』의 주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1934년 11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학과 경제학을 겸비한 정치객이었던 바 그 외에도 문맹퇴치에도 노력하여온 드문 지사이었던 바 지난 소화 2년 8월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김원극은 유교를 1910년대 당시의 서세동점,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현실에 맞도록 근대적, 실천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의 개혁적 특성은 이태리 건국 삼걸의 강조하고 그러한 기풍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계몽할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 데에서, 아울러 유교를 서구 기독교에 대항할만한 근대적 콘텐츠(교리, 텍스트 등) 및 종교적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 바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수구적 보수 유림들과 사고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김원극은 박은식의 대동교 정신에 동조하는 유교 개혁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유교의 본질은 계승하되 구체적 내용들은 한국의 지금ㆍ여기에 맞는 ‘時中’의 유교를 지향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는 유교가 새로운 체제로 개혁하고 나아가서 利用厚生 및 국민ㆍ청년계몽이라는 세계사적 문명에 발맞출 수 있는 학술이어야 함을 적극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유교에 대한 관점은 그대로 양명학 이해에도 적용된다. 김원극의 양명학 이해는 「明代諸儒의 學說」과 「王陽明學論」에 잘 드러나 있는데, 먼저 「明代諸儒의 學說」에서는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은, 「王陽明學論」에서는 양명학이 나의 정신을 번롱하여 단순히 悟道를 주안으로 한 禪家와 다름을 지적하고 ‘人倫交際의 道’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각 학술은 그 세부적 특성을 유지하지만, 큰 틀에서는 합치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王陽明學論」에서는 근대학문의 한 장르인 ‘倫理學’으로서 양명학을 이해하는데 큰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은 아마도 1908년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얻은, 당시 일본에서 유포되고 있었던 최신의 양명학 지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근대적 학술체계로 전통사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양명학이 근대적 학문에 어울리는 특징이 있음을 평가하고자 했음을 인정해도 좋겠다. 김원극이 구상한 「倫理?」으로서의 양명학은 주체성과 능동성을 갖고 있으면서 ‘人倫交際의 道’로서 실제 사회에서 실용성을 갖춘, 化學ㆍ物理學ㆍ金石學ㆍ地質學등의 제 학문과 대등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인륜의 학문’(=윤리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1910년대의 한국에서, 외국의 신지식을 수용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양명학을 근대적 학술로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이 당시의 여러 양명학 연구가와 비교해 볼 때 큰 특징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This study focus on Kim Wongeuk(金源極. 1871-1927)’s Yangmyonghak(陽明學), especially, through reexamining his the famous two articles, Myongdaejeuhakseol (the Neo-confucian’s theories in Ming dynasty of china. 明代諸儒의 學說) and Yangmyonghakron(Essay on Yangmingxue. 王陽明學論). Kim Wongeuk is a man unknown to fame to us till now. But his Yangmyonghak (陽明學),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era in modern korea, is very important to know what is the characteristic of Modern Korea. He studied at Japan for a number of years, and so he had many information about Modern knowledge on sciences and academism in Japan. Based on this, I think, most of his knowledge on Yangmyonhak(陽明學) is also from modern japanese academic, scientific research information, such that modern japanese youmeigaku (Yangmyonghak, 陽明學) by Inouetetsujirou(井上哲次?)’s Youmeigaku-notetsugaku(陽明學派之哲學), Takasetakejiro(高?武次?)’s Ouyoumeisyouden(王陽明詳傳), and the Youmeigaku(陽明學) edited by Higasikeiji(東敬治). The most korean thought’s knowledge and action in Yangmyonghak(陽明學) are from these modern japanese. Kim Wongeuk try to define Yangmyonghak as Oriental ethics. And he think the Yangmonghak is one with the Buddhism. His the definition and interpretation on Yangmonghak are does not correspond with the original. an orthodox method. Most people in Joseon dynasty and modern Korea criticize the Yangmyonghak are very like with Buddhism, but it is a distinguishing mark that Kim Wongeuk take an active a point of view the two are fusing with.

        • 1930년대 조선학(朝鮮學) 운동과 ‘실학자(實學者) 정다산(丁茶山)’의 재발견

          최재목(Choi Jae-Mok)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다산과현대 Vol.4,5 No.-

          This paper is study on the meaning of rediscovery of Dasan Jeong Yak-yong in 1930"s japanese imperialism era of modern korea. In 1935,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as a moment, begin the movements of Josonhak(Joseon Studies) that is entirely different as before. The Josonhak means that is one of the indigenous, traditional, characteristic studies for Korea, by and of the korean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Josonhak, starts area studies in the beginning, for example in Choi Nam-seon, but it becomes to be different much in the period of movements of Josonhak. J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publish a slogan Dasan Jeong Yak-yong who is the most prominent figure succeed to the intellectual line of Silhak from Bangye Yu Hyong won and Sungho Lee Ik, in the Joseo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y can appropriate a new view point for nation and world in Jose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The other hand, Dasan Jeong Yak-yong" Silhak inherit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heritage Sil(實), Silsim(實心) in korean Yangmyonhak. We can see the process of intellectual move from Yangmyonhak to Silhak. By this they seeks the best way of their own"s against the cultural, intellectual violence of imperialism under that situation. The Josonhak movements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Dasan Jeong Yak-yong, so to speak, grope in the dark between nation and world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 KCI등재

          일제강점기 정다산(丁茶山) 재발견의 의미 -신문,잡지의 논의를 통한 시론(試論)-

          최재목 ( Jae Mok Choi ) 다산학술문화재단 2010 다산학 Vol.- No.17

          이 논문은 일제 강점기의 주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하 ‘다산’ 혹은 ‘정다산’) 관련 기사 및 논고를 토대로 당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재발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정다산’의 연구와 ‘언론 매체’가 본격적으로 만나는 계기는 바로 1930년대에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한국학’인 ‘조선학’ 때문이다. 그 핵심 세력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반대하고 협조를 거부했던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연구자들 즉 안재홍安在鴻(1891~1965)·백남운白南 雲(1895~1979)·최익한崔益輪(1897~?) 등이었다. 그들이 펼친 조선학은 ‘조선문화 부흥’의 일환이며, 그것은 문화제국주의의 한국학인 ‘청구학靑丘學’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이 대립되는 양자는 ‘한국사회·한국문화 특수성론’으로 공통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자가 후자의 전도형태 顧倒形態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다산에 대한 연구는 1934년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산 서거 98주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그들은 조선학 부흥운동을 꾀하면서 그 일환으로 다산 서거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정약용의 사상을 비롯하여 여타의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실학 연구의 기념비적인 작업은 역시 1938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 東亞日報』 2면 기사에 「茶山與觸堂全書 完刑記念祝寶 來十六日 明月館에서」 라고 있는 것처럼, (1934년에 시작하여) 1938년 12월에 이뤄지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신조선사新朝雖社 출판)의 완간 작업이었다. 『여유당전서』의 출판에 참여한 인물로는 실학 관련 기사를 쓴 정인보, 최익한, 문일명文一平(1888~1936), 안재홍 등이다. 최익한은 65회에 걸쳐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독讀힘」을 발표하는데 여기서 그는 다산의 『여유당전서』의 핵심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에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조선학운동에서 ‘정다산`은 분명 우리나라 ‘위인’의 표상이자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지식, 개념, 인물을 새롭게 영유領有하는 방법론이기도 하였다. 그를 둘러 싼 좌의 ‘세계’ 지향과 우의 ‘민족’ 지향이 서로 맞서는 가운데 ‘근대적’ 학술의 논의가 진척되었고 ‘허虛의 학’을 넘어선 ‘실實의 학’을 추구해가는 절실한 논의의 지명이 열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에 크게는 〈구(전통-구식)〉⇔〈신(현대-신식〉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그 대립 속에서 새로운 이념들이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익’측에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한 대응 논리로 포괄적인 민족사상 및 학문의 전통 확립을 위해 정인보鄭寅普가 ‘얼’을, 안재홍이 ‘민족정기民族正氣’를, 분일평이 ‘조선심朝鮮心’이라는 개념을 내세워서 주도해갔다. 이에 반해 ‘좌익’측에서는 이청원, 백남운 등이 마르크스주의 역사연구 방법론을 도입하여 세계사의 보편성에서 한국사체계를 구성해 사회경제사학을 확립하는 한편 공산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정당화하였다. 이처럼 ‘세계’에 관심을 둔 좌, 민족에 관심을 둔 우의 ‘시점視點’은 정다산, 실학, 나아가서는 조선학을 서술해가는 방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정다산 논의는 ‘민족民族’과 ‘세계世界’ 사이에서 새로운 연구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This paper is study on the meaning of rediscovery of Tasan Cheong Yagyong in japanese imperialism era, especially, here focused the media and the journal in those days. In 1935, Ch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Tasan Cheong Yagyong as a moment, begin the movements of Josonhak(Joseon Studies) that is entirely different as before. The Josonhak means that is one of the indigenous, traditional, char-acteristic studies for Korea, by and of the korean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Josonhak, starts area studies in the beginning, for example in Choi Nam-seon, but it becomes to be different much in the period of movements of Josonhak. Cheong Inbo, An Jaehong and Choi Ikhan publish a slogan Tasan Cheong Yagyong who is the most prominent figure succeed to the intel-lectual line of Silhak from Bangye Yu Hyeongwon and Seongho Lee Ik, in the Joseo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y can appropriate a new view point for nation and world in Jose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The other hand, Tasan Cheong Yagyong` Silhak inherit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heritage Sil(實), Silsim(實心) in korean Yangmyonhak. We can see the process of intellectual move from Yangmyonhak to Silhak. By this they seeks the best way of their own`s against the cultural, intellec-tual violence of imperialism under that situation. The Josonhak movements with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Tasan Cheong Yagyong, so to speak, grope in the dark between nation and world under japanese imperialism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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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의 誕生

          최재목(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10 陽明學 Vol.0 No.26

          이 논문에서는 경주가 낳은 두 사상가 즉 수운의 ‘동학’과 범부의 ‘동방학’을 ‘東’의 탄생이라는 ‘視點’에서, 관련 자료를 활용하여, 다시 조명해보면서 범부는 신라 -경주로부터 내려오는 풍류를 잇는 수운의 혈맥을 다시 잇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먼저 수운과 범부의 ‘東’이란 은유의 배경 찾기로서 다양한 ‘東’의 의미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근대기 일본의 논의까지 안목에 두고 살펴보았다. 즉, 〈‘東’ - ‘日出’ 지역 쟁탈전〉, 〈‘西’에 맞선 ‘東’이라는 시점〉, 〈‘東洋’의 의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빛은 동쪽에서’(Ex Orient Lux) - 한국의 ‘동/동방’ 찾기: 元曉, 塞部〉, 〈타고르가 말한 ‘東方의 등불’ 코리아(조선)〉, 〈‘東’의 우월성’, ‘東洋思想’의 등장〉, 〈근대기 동아시아의 ‘동양’ 논의 -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의 ‘동양’-‘아시아’라는 개념논의 - 이 그것이다. 이것은 최치원 등에 의해 ‘동’으로 대표되는 ‘신라 -경주’- 수운의 ‘동학’- 범부의 ‘동방학’으로 전승되는 문화사적 고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어서 수운의 ‘동학’과 범부의 ‘동방학’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몇가지 증거를 들어 논의하였다. 즉, 〈최근 신라-경주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 〈수운, 범부의 ‘해동’-‘신라’-‘경주’로의 눈돌림〉, 〈수운의 ‘다시개벽’에서 범부의 ‘동방르네상스’로〉, 〈신라, 경주 문화의 특수성 규명의 방법-범부의 ‘오증론(五證論)’〉, 〈‘血證’論의 확대-범부의 「崔濟愚論」: 무속(巫俗), 계시(啓示), 한울님[天主]의 강림(降臨)에 주목-〉, 〈범부의 ‘사우맞음(대조화)=풍류’는 수운의 ‘內有神靈外有氣化-侍天主造化定’의 부활〉, 〈수운의 ‘仙道+武道+巫俗’(「劍訣」)와 범부의 ‘花郞道’=종교적 요소(←巫)+예술적요소(←風流)+군사적요소(←武)〉가 그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수운과 범부에게서 공통되는 요소들 ①신라-경주에의 주목, ②‘다시개벽’론-‘동방르네상스’론, ③‘내유신령외유기화’-‘시천주조화정’과 ‘사우맞음(대조화)’=‘풍류’, ④ 예컨대 「劍訣」에서 보이는 ‘仙道+武道+巫俗’의 특질과 ‘花郞道’의 ‘종교적 요소(←巫)+예술적요소(←風流)+군사적요소(←武)’의 특질이 지적되었다. 이렇게 수운과 범부의 연결을 통해 ‘동-동방’ 논의의 평가와 그 의의를 되짚어 보는 것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수운의 동학, 범부의 동방학은 ‘동=동방의 탄생’을 통해 우리 민족의 근저가 되는 ‘문화전통’의 본질적 요소들을 당시의 상황에서 재현하려는 하나의 노력이거나 운동이었음을 우리는 기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와 영화 ‘신라의 달밤’ 등은 모두 신라-경주의 발견과 재탄생을 의미했고 신라-경주가 근-현대 한국적 맥락에서 또 다른 ‘시공간’으로 새롭게 탄생되던 것처럼 말이다. This study sheds new light on the two thinkers i.e. Suun Choi Jewoo and Bombu Kim Jeongsol who are born in Gyonju of Korea. Suun advanced Donghak(the east studies) against Seohak(the west studies). And Bombu advanced Dongbanghak(the orient studies) against Seobanghak(the occident studies). The Dongbanghak of Bombu, basically, succeed the Donghak of Suun. Suun is known as a close friend with Bombu’s grandfather in Gyonju. And so, Bombu seems to have many chance to hear from his grandfather or the neighbors about Suun. This study, especially, focus on how to born the viewpoint of the east in Suun and Bombu. The two thinkers pay attention to the traditional values and traditional ethos in korean, from the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to their days, because of the erosion of traditional values Pungryu(taste for the arts and a romantic turn of mind) under the influence of foreign cultures, i.e. Jujahak(Zhuxi studies) one of the Neo-confucianism, the Christian religion, and western culture. Then Suun’s Donghak against Seohak in spirit a shamanist custom as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仙道/巫俗). And Bombu’s Dongbanghak match for west in ancient and medieval culture, Pungryu of Silla, that is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keywords for building nation morals and ethics strategies. Thus, the two thinkers, who is as a tradition-minded person, asserted each Donghak and Dongbanghak studies, as the main purpose of alternative cultural vision for survival strategy in modern korea under the rapidly changing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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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 元曉와 王陽明의 사상적 문제의식과 그 유사성

          최재목 ( Jae Mok Choi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5 한국불교사연구 Vol.6 No.-

          이 논문은 분황(芬皇) 원효(元曉. 617-686)와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 1472- 1528)의 생애, 사상,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비교, 논의해보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시대와 지역과 사상적 맥락을 달리 한다. 즉 공간적으로한반도와 중국대륙처럼 서로 다른 문화와 습속을 갖고 있다. 또 시간적으로는 양자간에 850여년의 차이를 보인다. 아울러 사상의 면에서 이 둘은 불교와 유교로 그 맥락을 달리 한다. 이렇게 시공간과 사상적 맥락의차이를 넘어서서, 두 사상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두 사상가는 인간의 ‘마음(心)’에 주목하여 독자적인사상을 구축, 전개해간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두 사상가는 생애와 철학적 문제의식에서 매우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즉원효와 왕양명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사상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렀다. 먼저, 이 두 사상가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인물로서 통합적 안목과 실천적인 성향을 가졌다. 다음으로, 두 사람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결론도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즉 원효가 무덤에서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깨달았던 ‘심외무법(心外無法)``은 양명이 그의 좌천지 귀주성 용장 생활에서 깨달았던 ‘심즉리(心卽理)’와 흡사한 경지였다. 왕양명은 나와 세계의 분리, 이분법적인 분열을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가 주요 과제였다. 즉「심과 리를 합하여 하나로 한다(合心與理而爲一)」는 과제를 해결할 열쇠는 결국 바깥에 있지 않고 ‘오심(吾心)’에 자족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것으로 그의 번민을 끝낸다. 원효 또한 국가, 사회적인 고뇌 의 날카로움, 즉 ‘두 뿔(角=覺) 사이’에 돋아난 ‘뇌영옹종(腦영癰腫)’을 중생심=일심의 수레를 끌고서 해소해간다. 이 원효의 심외무법(心外無法)과왕양명의 심즉리는 결국 나와 세계라는 두 축의 통합이라는 유사한 번민을 껴안고 있었다. 모두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인문적 방법론을 모색함으로써 그 돌파구를 마련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상적 문제의식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걸출한 사상가는 나와 세계를 만들어 내는 ‘나’(=주체)의 존재양식을 철저히‘통찰’함으로써 나와 세계의 이분화=분열이 결국 ‘나’에서 비롯됨을 자각하였다. 그 고뇌는 해소는 내 마음의 장애를 넘어 ‘하나 됨(一, 合一)’ 지평을 만남으로써 가능하였다. This paper is to discuss a Similarity of Philosophical Issues between Bunhwang Wonhyo(芬皇元曉) and Yangming Wangshouren(陽明王守仁). Wonhyo is a priest of the Silla dynasty of korea and Wang Yangming is a neo-confucian scholar of Ming dynasty of china. Such these, the two thinkers differ in time and space. However, between the two thinkers. we can see some similarities, in philosophical issues, career and character. First, the two are free-spirited personality. Next, the two are reached very similar conclusions in perspective for life and the world. Wonhyo drank water in the skeleton of the grave. And then he realized that, out of our mind, there is no principle of the world. Wang Yangming also realized that our mind is a principle in the cave of northwestern china, one day which exiled from the bureaucratic life of Beijing. The separation, conflicts and dilemma between me and the world, also the pain and anguish in our daily life and history, is comes from me. There is no truth beyond the mind. Therefore, the two knew that we must discipline our minds before criticizing the outside, and should be changed inside of me.

        • KCI등재

          敦煌 莫高窟 第158窟에 내재된 불교사상 연구

          최재목(Choi, Jae-Mok),조숙경(Jo, Sook-Gyeong) 한국동양철학회 2014 동양철학 Vol.0 No.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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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敦煌 莫高窟 가운데, 唐代의 吐蕃 점령기에 조성된, 第158窟에 내재한 불교사상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158굴에서는 소조와 벽화에 있어서 높은 작품성과 질서가 느껴지는데 이는 당대의 완성도 높은 불교문화와 토번통치기라는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158굴의 경변화는 전시대인 수대보다 내용이 더 복잡해지고 경변의 수도 많아진다. 당대에 조성되어진 돈황석굴 중에서도 토번 통치기라는 특수한 상황 안에서 조성되어진 158굴 연구는 당대의 중국화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불교가 토번의 문화와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예술로 승화시켰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돈황미술연구에 일조하고자한다. 이 논문에서는 굴의 전체적인 구도를 파악한 후 서 · 남 · 북벽의 소조상과 동 · 서 · 남 · 북벽의 벽화를 살펴보고, 벽화로 그려진 경변을 경전의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첫째, 158굴에 세벽에 안치된 소조상을 통하여 과거불, 미래불, 현세불인 삼세불이 있으며, 천정의 정토변으로 표현된 10방불들과 어우려져 화신불, 법신불, 보신불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58굴은 당대 중기의 토번통치기의 굴이다. 당대는 측천무후와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이입되어 공고해진 화엄사상의 흐름이 이 시기까지 지속되었으며, 대승의 교리 또한 깊어진다. 소조상과 경변의 짜임새 있는 배치와 함께 경을 해석하여 그림으로 옮길 때 국가 수호의 의지도 곁들여 놓았다. 또한 다양한 경변화와 함께 천정에 그려진 천불과 보살들의 그림에서는 수행을 통하여 누구든지 깨달음을 받을 수 있다는 평등한 사상이 158굴 안에 내재되어있다. 셋째, 158굴은 벽면 곳곳에 보살상들이 보이는데, 현실 뿐 만아니라 시방세계, 모든 세계에 상주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서벽, 남벽, 동벽의 벽화에 내재된 보살이 현세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 구제라는 대승적인 의미가 천정의 정토변에 이어져 있으며, 이것으로 대승사상과 정토사상 그리고 밀교사상이 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58굴은 긴 장방형의 전실의 사방 벽과 천정의 공간을 질서 있게 배치하였다. 삼세불의 입상을 통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도 부처가 존재하며, 동,서,남,북 뿐만아니라 간방(間方)까지 합쳐 삼라만상 어디에나 부처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방삼세불(十方三世佛)은 밀교에서 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만다라적 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성행과 아울러 토번통치기의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주고자하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는 부분이다. Mogao Cave 158 in Dunhuang(敦煌 莫高窟 第158窟) was built under the occupation of Tufan(吐蕃/土蕃/土番), the Tibetan Empire. The sculptures and iconographic wall paintings called Gyeongbyeon in Mogao Cave 158 include the Buddhism of the Tang Dynasty. Gaseop, the Buddha of past, Seokga, the Buddha of present, and Maitreya, the Buddha of future were molded on the south wall, the west wall, and the north wall. Geum-gwang-myeonggyeong-byeon and Sa-ik-beom-cheon-so-mun-gyeong-byeon were painted on the east wall that faces the statue of nirvana enshrined on the west wall. In addition, Yeo-ui-ryun-gwan-eum-mandala, a round Buddha’s picture was painted on the door of the east wall. On the ceiling, Jeong-to-byeon, Cheon-bul-do, and Bo-sal-do were painted. I studied the sculptures and the mural paintings of Cave 158 with Buddhist scriptures. This paper includes three points as below. The center of this cave is the Buddha statue of nirvana enshrined on the west wall. On its one side, the statue of the past buddha Gaseop stands, the south wall. On the other side, the statue of the future buddha Maitreya stands, the north wall. On the wall behind the Buddha statue of nirvana, there are the paintings of Bosal(Buddhist saints’ images), Na-han-yeol-sang, Sa-cheon-wang-sang(four Devas’ images), Cheon-ryong-pal-bu. At the bottom of this wall, there is Su-bal-da-ra-seon-bul-ip-myeol-do. There is the painting of Mourning Disciples(Je-ja-geo-ae-do) on the south wall, and the painting of Mourning Potentates(gak-guk-guk-wang-geo-ae-do) on the north wall. These works don’t seem to be just the description of the situation when Buddha entered into nirvana. One description of nirvana of Buddha recorded in Dae-ban-yeol-ban-gyeong written by Dam-mu-cham mentioned like this:“The holy body of Buddha is unchangeable and immortal, so all living beings have the nature of Buddha. That is the thought of Mahayana Buddhism.” Buddha entering the nirvana in reverence means the thought of Beopsin. Buddha appears as the body of the truth. Beopsin is Buddha that is the body of the truth itself and shows the truth as it is. The past Buddha Gaseop and the future Buddha Maitreya are the Buddha of Hwasin. Buddhas enshrined on the Buddha land in Jeong-to-byeon painted on the ceiling are the Buddha of Bosin. In Cave 158, there are Buddhas of Three Ages, those are the Buddha of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And the Buddhas of Three Ages lead to the Buddha of Hwasin, the Buddha of Beopsin, and the Buddha of Bosin with Buddhas on the Pure Land in the ceiling. Mogao Cave 158 was built under the occupation of Tufan in the Middle Tang period. During the Tang Dynasty the stream of Hwaeom Idealism was settled and continued, and Mahayana Buddhism became profound. Well-organized arrangement of the sculptures and the wall paintings derived not only from the interpretation of Buddhist scriptures but also from the will of protecting the country. The wall paintings of Gyeongbyeon and the ceiling paintings shows each and every person can find enlightenment through practicing asceticism. That is the ideology of equality presented in Cave 158. The sculptures and paintings on the walls and the ceiling are expanded version of the mandala composition whose scale is expanded to the entire cave. We can find a lot of images of bodhisattva all over the walls. That tells us bodhisattva exists in everywhere in the ideal worlds as well as the real world. These bodhisattvas save the people in sufferings in this world, and that is Mahayana Buddhism. The thought of Mahayana Buddhism, Buddhist Elysium, and Esoteric Buddhism are compounded and connected to Jeong-to-byeon in the ceiling. The statues of Buddha mean that Buddha exists everytime, in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ose also show us Buddha exists every directions and everywhere in the universe. All of these are intended for the prevalence of Buddhism and for comforting the people in hard tims of th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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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어둠(蒙)"에서 "빛(光)"으로의 기획 -격몽요결(擊蒙要訣)』의 「혁구습(革舊習)」장(章),「지신(持身)」장(章)을 중심으로-

          최재목 ( Jae Mok Choi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4 儒學硏究 Vol.31 No.-

          이 논문은 栗谷 李珥(1537-1584)(이하 율곡 혹은 이율곡)의 『擊蒙要訣』가운데 특히제2 『革舊習』章과 제3 「持身」章을 중심으로 하여, 그 내부에서 천명하려는 <``어둠(蒙)에서 빛(光)으로``의 기획>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지성사적 안목에서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양의 擊蒙, 啓蒙, 訓蒙, 正蒙은 어둠에서 빛으로의 기획이었다. 전통적으로 아동용 텍스트들-즉 『童蒙先習』, 『啓蒙篇』, 『訓蒙字會』, 『正蒙類語』등에서 보듯이 - 가운데 ``蒙`` 자가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아동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빛의 문양, 빛살무늬``를 일깨워내려는 기법을 내세우는 의도를 살펴볼수 있다. 특히 『擊蒙要訣』의 「革舊習」장과「持身」장에서는 유교가 가진 ``어둠``에서 ``빛``으로의기획이 잘 드러나 있다. 문자-지식-문명을 빛으로 상정하고, 그러한 가능성(=明德)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음을 전제한 다음, 빛의 저편에 있는 어둠(결국은 인간 혹은 인간의 내면이 대상이 되지만)을 빛의 세계로 편입시키려는(=明明德) 의도를 갖는다. 그것을 ``인간다움``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획이 꼭 유교에서 전매특허를 낸 것이 아님을 우리는 동서양 문화속의 여러 예들을 통해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교에서는 문명화라는 전략 속에서, 童蒙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를 어리석음으로 보고(童+蒙) 어린이=어리석음을 ``치고 때려``(=擊蒙), ``열어서``(=啓蒙), ``가르치고``(=訓蒙), ``바로잡는``(=正蒙) 작업을 추진한다. 아동들은 교육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서, ``암흑(혹은 흑암)``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먼저 ``격몽`` 이해의 근거로서 ``어린아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이어서이율곡 『擊蒙要訣』속의 「革舊習」章과 「持身」章이 가지고 있는 ``心身`` 건축의 설계도를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빛`` 회복하기로서 주자학적 공부론을, 마지막으로 인간다움을향한 ``擊蒙``을 동양식 ``빛``의 기획 혹은 건축술로서 조명하고자 한다. 그 결과 『革舊習』章과 「持身」章의 내용은, 이율곡이 『擊蒙要訣』의「서」에서 밝혔듯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 ``인간 살아가는 여러 복잡한 관계들(오륜)의 마땅함을 터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즉 (=五倫)의 매뉴얼을 신체화하는 것임을 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천지의 빛 속에서 인간도 하나의 빛이 되어 스스로의 빛을 밝히며 살아가는일이다. This research aimed at investigating philosophical meaning a design of ``from the darkness to the light``, with the discerning eye of mentality history, particularly centered with the two chapters, Hyukguseup(innovating the past habits) and Jisin(embodied in the body), among Yulgok Yi I``s Gyeokmongyogyeol(the point of hitting the stupidity), which tried to clarify itself. Eastern gyeokmong, gyemong, hunmong, jeongmong, which are generally used, were the planning of ``from the darkness to the light``. Traditionally, as seen in children``s texts - e.g. Dongmongseonseub, Gyemongpyeon, Hunmongjahwe, Jeongmongryueo, etc. - the reason why ``mong`` enters in the middle is the same reason. In other words, the technique to awaken ``pattern of light, rays of light`` which is sleeping within the child and the intention of training can be seen. Particularly, in the two chapters, Hyukguseup and Jisin, of Gyeokmongyogyeol, the design of ``from the darkness`` ``to the light``, which Confucianism had, appeared. It has the intention to include(myeongmyeongdeok) the darkness beyond the light(eventually the human or human inside becomes the target) into the light world, after presuming letter-knowledgecivilization as the light, and premising that possibility(=myeongdeok, enlightening the bright virtue) is hidden in human inner side, into the light. That is to see the completion of ``humanity``. Of course, we can prove that this planning is not necessarily patented only in Confucianism through various examples of eastern western culture. However, in Confucianism, in the strategy of civilization, as we can see in the word,dongmong(dong/children+mong/stupidity), they promoted the task to ``beat and hit``(gyeokmong) children=stupidity, ``evoke`` it(gyemong), ``teach`` it(hunmong), and ``correct`` it(jeongmong) by seeing children as stupidity(dongmong). Children became the beings of ``darkness(or heugam)``, as the target of education, not the main agent. First, this discussion treated what is ``children`` as the basis of understanding of gyeokmong, next, investigated the blueprint of ``mind and body`` architecture which Yi Yulgok``s the two chapters, Hyukguseup and Jisin in Gyeokmongyogyeol. Then, it investigated non- Confucian method of study as the recovery of ``light``, lastly, explored gyeokmong towards humanity as the oriental planning or architecture of ``light``. As the result, as the two chapters, Hyukguseup and Jisin, determined in the Introduction(Seo) of Gyeokmongyogyeol, this research discussed the point to learn and practice ``to be a man of decent character``, ``propriety of various complex relationships(Oryun, the five kinds of virtues) in human life``, that is, to embody the manual of (Oryun). That is, human being becomes a light in the light of the world and lives by emitting one``s own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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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후계(后溪) 김범(金範)의 『성학십도(聖學十圖)』에 대한 연구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비교를 통한 기초적 검토-

          최재목 ( Jae Mok Choi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5 儒學硏究 Vol.32 No.-

          이 논문에서는 최근 새로 발굴한 자료인 ‘后溪 金範’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聖學十圖』를 살펴 보았다. 논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刊寫地, 刊寫者, 刊寫年 未詳인 金範 편집의 『성학십도』는 「第一 太極陰陽候圖」 왼쪽 하단에 ‘后溪’라는 사인이 새겨져 있는 것에서 일단 김범의 것으로 확인할 수 있으나 내용을 검토해보면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이 간행된 이후에 편집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둘째, 金範의 『성학십도』는 ① 「第一 太極陰陽候圖」, ② 「第二 理氣生物之圖」, ③ 「第三 心統性情全圖」, ④ 「第四 心性情善惡圖」, ⑤「第五 學庸合一之圖」, ⑥「第六 西銘之圖」, ⑦ 「第七 小學題辭之圖」, ⑧ 「第八 聖賢道統贊圖」, ⑨ 「第九 學敎之圖」, ⑩ 「第十 敎訓來裔之圖」이다. 기본적으로 <우주론(①,②)→심성론(③,④)→공부론(⑤,⑥,⑦,⑧)→실천론(⑨,⑩)>의 순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셋째, 김범의 『성학십도』는 이황의 것과 대비해보면 50%는 유사하지만 그 나머지들은 수정되거나 새로 추가된 것들이다. 특히 이황의 『성학십도』에 보이는 ⑦ 「仁說圖」, ⑨ 「敬齋箴圖」, ⑩ 「夙興夜寐箴圖」가 김범의 것에는 없다. 대신에 김범의 ⑧ 「第八 聖賢道統贊圖」와 ⑩ 「第十 敎訓來裔之圖」는 이황의 것에는 없다. 넷째, 김범의 『성학십도』는 이황의 『성학십도』(1568년)의 내용에 대항하거나 그것을 보완·수정하려는 율곡학적 이념과 의식을 담은 저작임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s about Seonghaksipdo(ten diagrams) edited by Hugye Gimbeom. Summaries are below. First, the detail information about the Gimbeom`s Seonghaksipdo is not clear including when, where and by whom. However, in ``Jeil-taegukeumyanghudo`` of Seonghaksipdo, there has one carved seal clue, the name ``hugae``, who is assumed to be the author of this text. Secondly, Seonghaksipdo is composed of ten diagrams, which include (1)``Jeil-taegukeumyanghudo``, (2) ``jeyi-yigisangmuljido``, (3)``jesam-simtongsungjungjeongdo``, (4) ``jesa-simsungjungseongakdo``, (5) ``jeo-hhakyounghapiljido``, (6) ``jeyuk-seomyungjido``, (7) ``jechil-sohakjaesajido``, (8) ``jepal-sunghyundotongchando``, (9)jegu-hakgyojido, (10)jeship-gyohunraeyejido. This text is in ordered: Cosmology((1),(2))→Treatise of Human Nature((3),(4))→ Theory of Learning ((5),(6),(7),(8))→ Theory of Practice((9),(10)). Third, Gimbeom`s Seonghaksipdo is fifty percent similar to Yihwang`s. However, we cannot find Gimbeom`s ``jepal-sunghyundotongchando`` and jeship-gyohunraeyejido in Yihwang`s, but we cannot find Yihawang`s ``insuldo``, ``gyungjejamdo`` and `sukhungyamaejamdo`` in Gimbeom`s. Finally, Gimbeom`s one stands against Yihwang`s. In other words, Gimbeom`s one represents the school of Yulgok`s prospective and philosophy. This paper introduced the newly discovered materials, Gimbeom`s Seonghaksipdo, that have not been dealt in Korea. From this, we have found that there is not only yihwang`s one but also Gimbeom`s Seonghaksipdo, so we could add a new prospect in the research field of the Confucianism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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