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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의 과제와 역사학

        남동신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This paper, written on the occasion of the 50 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explores tasks facing the discipline of Korean art history – research directions and methods in the 21st century - by looking at Korean Buddhist art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I begin by discussing methodological tasks. One of the recent research trends in Korean art history has been to extend the field of research to include a broader visual culture and even material culture as a whole. In terms of methodology, this trend has been concerned with the active use of not just visual art forms, but also text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images and texts, I argue that they are different ways of recording one and the same experience, and that when these media are used to transmit religious messages, there is a difference in terms of authoritative value; a fact well understood by Buddhist artists of premodern and modern times. My discussion then moves on to future research directions. As is well-known, the modern discipline of Korean art history was a field transplanted to Korea by Japanese government- sponsored researchers as part of an attempt to legitimize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and what was transplanted was not art history as a modern academic discipline,which was created in Europe, but the way it was understood and re-adapted in Japan. This transplanted framework of art history could not properly reflect Korean history and culture,concerning both the selection of research subjects, methods, and terminology. In light of this, I propose, in this paper, the ways in which we conduct research on and interpret Korean art history as well as East Asian art history from various perspectives. To give a concrete example, I have reviewed two records of repair and renovation found inside the Seokgatap Pagoda of the Bulguksa Temple, Mugujeonggwang Jungsugi (Dabotap Jungsugi , 1024)and Seoseoktap Jungsugi (Seokgatap Jungsugi , 1038) and have identified fifteen names of stone pagoda parts that were widely used in the early Goryeo period. I suggest that these names be used to replace or complement the Japanese-style names of pagoda parts that are currently in use. Art history and history are intimately related to each other insofar as they both reorganize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past. No two academic disciplines are as closely linked to each other as art history and history. In this sense, this paper serves to stimulate the communication and exchange between these two research fields. 본고는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역사학의 관점에서 불교미술사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사학의 당면 과제–새로운 세기의 연구방향과 방법론–를 검토하였다. 첫째는 방법론의 과제이다. 최근 한국미술사학의 연구동향은, 연구 영역을 미술에서 시각문화로, 시각문화에서 물질문화로 확장하면서, 방법론에 있어서도 시각자료만이 아니라 문자자료까지 적극적으로활용하는 추세를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시각자료와 문자자료가 동일한 체험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며,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서 종교적 권위에 차이가 있는바, 이 사실을 전근대 불교도들도충분히 인식한 위에서 불교미술품을 제작하였음을 부각시켰다. 둘째는 연구 방향의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근대미술사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미술사학이일본식으로 번안되고, 이것이 다시 일본 관학자들에 의하여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를 합리화 하려는 의도에 부응하며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따라서 미술사학의 주제 설정, 방법론, 용어 등에서 한국의 역사 및 문화를 정당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불가피하였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적 시각에서 한국의 미술사, 동아시아의 미술사를 새롭게 정립할 것을 제언하였다. 구체적으로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무구정광탑중수기」(다보탑중수기, 1024년)와 「서석탑중수기」(석가탑중수기, 1038년)를 검토하여, 고려 초에 통용된 한국의 전통적인 석탑 부재 명칭 15종을 발굴하였으며, 이것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일본식 석탑 부재 명칭을 수정 보완할 수 있음을 밝혔다. 미술사학과 역사학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다른 어떤 학문분야보다 친연성이 깊다. 그런 점에서 본고는 향후 두 학문 분야간의 소통과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 KCI등재

        미술사와 인문학적 가치 -한국미술사의 ‘20세기 구미 미술사 이론’의 수용과 전개-

        권영필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This paper, written for the occas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is a review of major methodological issues in Korean art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Korean art history,’here, should be understood as the history of traditional Korean art. Meanwhile, the papers examined here are mainly those that were presented at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but, in some cases, papers from other fields were considered as well. This essay discusses how, pioneered by Mun Myeong-dae wh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methodology in art historical studies, methodology has been continuously discussed over the past fifty years, as an area of research in its own rights, and how the application of stylistic analysis has become common since the 1970s,championed by An Hwi-jun. The discussion of methodological evolutions also includes iconology, popularized by Erwin Panofsky’s works. Iconology has been prominent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since the 1990s. Iconology is particularly widely applied in the study of Buddhist art, as can be seen in papers by Choe Seong-eun and Kim Jeong-hui. To draw attention to the overlapping characteristics between art history and other disciplines in humanities, I quote extensively from Panofsky’s discussion of humanistic art history, examining also the influence that Panofsky has had on American art history. I, then,turn to works by the US art historian V. H. Minor, published in the 1990s, proving that the influence of stylistic analysis in the field of art history remains undiminished. Examples from Japan, such as research by Nagahiro Toshio, attesting to the dominance of stylistic analysis and formalism and other European methodologies among researchers of Asian art,are cited as well. As Max Loehr famously said tha“t art exists not to express its time but to give content to its time,”art cannot be properly assessed without considering its humanistic roots. Interpreting and assessing paintings by Jeong Seon(1676-1759), to take an example of a Joseon painter, cannot be accomplished meaningfully without considering their humanistic context and subtext. Korean art history as a humanistic discipline could be especially useful for building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what we can call“Korean beauty or“Korean aesthetics.”Korean aesthetics, as a subject with humanistic values, can be mostly readily understood in art works. Art history and aesthetics, in my opinion, are two inseparable and mutuallycomplementary fields. As is well-known, the methodological framework of art history in Europe is greatly indebted to modern aesthetics. Meanwhile, due to the dearth of historical records dating from before modern times, one is forced to rely on art history in order to study Korean aesthetics. Finally, to predict future methodological directions, I turn to related phenomena in Western art history. For example, I value the viewpoint that Da Vinci’s sfumato is interpreted as an inclusive gesture toward uncertainty and argue that art plays a reconciliatory role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 also argue that Western aesthetics such as the aesthetics of reception have proved useful to an extent as a basis for Korean art historical interpretations. The guiding principle, as we search for a new methodology, should be finding a place for Korean art history in the history of world art, while not sacrificing its specific nature. 이 글은 한국미술사학회 5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한국미술사에서의 방법론의 문제를 인문학의 관점에서관찰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의 전통미술을 의미한다. 또한 분석 대상의 논문들은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된 것을 줄거리로 잡되, 필요에 따라 그 외의 것들도 포함시켰다. 문명대가 방법론을 강조한 것을 필두로 지난 50년 동안 방법론 자체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을 확인하는일면, 그 동안 발표된 논문에서, 예컨대 70년대의 안휘준의 논문을 비롯하여 ‘양식론’ 적용이 보편화되었으며, 90년대 이후부터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이 강세를 보이며 등장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최성은,김정희의 논문에서 보듯, 도상해석학은 불교미술에서 이용도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미술사의 인문학적 특성을 피력하기 위해 파노프스키의 인문학적 미술사론을끌어들였다. 이 국면에서는 미국 미술사학계에서의 파노프스키의 영향을 아울러 검토하였다. 또한 미국의마이너(V.H.Minor)는 그의 90년대의 저서에서 양식론의 위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나가히로 도시오(長廣敏雄) 등에서 보듯이 동양미술사 연구자들이 유럽의 양식론을 비롯한 서구 방법론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술이 시대를 표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내용을 부여하려고 존재한다”는 뢰어(M.Loehr)의 명제는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의 입장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겸재 회화의 평가도 이런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으로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미’와 ‘한국미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데에도 효용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미는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주제로서 무엇보다도 미술작품에서 그것의 본질을 발견할 수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필자는 미술사와 미학의 관계를 상보관계로 본다. 알려져 있듯이 미술사의 방법론 정립은 근세 이래 미학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편 ‘한국미학’은 근세 이전의 경우 문헌사료가 영성하여 미술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다. 방법론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현상을 차용하여 풀어 보았다. 예컨대 다빈치의 ‘스프마토’를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으로 해석한다든가, 미술이 문명사에서 ‘화해자(和解者)의 역할을 한다는 등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국미술사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는, 예컨대 ‘수용미학’ 같은 서양미학이어느 정도 값어치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사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세계미술사 속에 자리매김 되는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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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의 과제와 역사학

        남동신(Nam Dong-sin),최연식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본고는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역사학의 관점에서 불교미술사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사학의 당면과제-새로운 세기의 연구방향과 방법론-를 검토하였다. 첫째는 방법론의 과제이다. 최근 한국미술사학의 연구동향은, 연구 영역을 미술에서 시각문화로, 시각문화에서 물질문화로 확장하면서, 방법론에 있어서도 시각자료만이 아니라 문자자료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를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시각자료와 문자자료가 동일한 체험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며,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서 종교적 권위에 차이가 있는바, 이 사실을 전근대 불교도들도 충분히 인식한 위에서 불교미술품을 제작하였음을 부각시켰다. 둘째는 연구 방향의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근대미술사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미술사학이 일본식으로 번안되고, 이것이 다시 일본 관학자들에 의하여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를 합리화 하려는 의도에 부응하며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따라서 미술사학의 주제 설정, 방법론, 용어 등에서 한국의 역사 및 문화를 정당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불가피하였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적 시각에서 한국의 미술사, 동아시아의 미술사를 새롭게 정립할 것을 제언하였다. 구체적으로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무구정광탑중수기」(다보탑중수기,1024년)와 「서석탑중수기」(석가탑중수기, 1038년)를 검토하여, 고려 초에 통용된 한국의 전통적인 석탑부재 명칭 15종을 발굴하였으며, 이것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일본식 석탑부재 명칭을 수정 보완할 수 있음을 밝혔다. 미술사학과 역사학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다른 어떤 학문분야보다 친연성이 깊다. 그런 점에서 본고는 향후 두 학문 분야간의 소통과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This paper, written on the occasion of the 50 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explores tasks facing the discipline of Korean art history - research directions and methods in the 21st century - by looking at Korean Buddhist art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I begin by discussing methodological tasks. One of the recent research trends in Korean art history has been to extend the field of research to include a broader visual culture and even material culture as a whole. In terms of methodology, this trend has been concerned with the active use of not just visual art forms, but also text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images and texts, I argue that they are different ways of recording one and the same experience, and that when these media are used to transmit religious messages, there is a difference in terms of authoritative value; a fact well understood by Buddhist artists of premodern and modern times. My discussion then moves on to future research directions. As is well-known, the modern discipline of Korean art history was a field transplanted to Korea by Japanese government- sponsored researchers as part of an attempt to legitimize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and what was transplanted was not art history as a modern academic discipline, which was created in Europe, but the way it was understood and re-adapted in Japan. This transplanted framework of art history could not properly reflect Korean history and culture, concerning both the selection of research subjects, methods, and terminology. In light of this, I propose, in this paper, the ways in which we conduct research on and interpret Korean art history as well as East Asian art history from various perspectives. To give a concrete example, I have reviewed two records of repair and renovation found inside the Seokgatap Pagoda of the Bulguksa Temple, Mugujeonggwang fungsugi"Debotsp jungsugi, 1024) and Seoseoktep fungsugiiSeokgetsp jungsugi, 1038) and have identified fifteen names of stone pagoda parts that were widely used in the early Goryeo period. I suggest that these names be used to replace or complement the Japanese-style names of pagoda parts that are currently in use. Art history and history are intimately related to each other insofar as they both reorganize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past. No two academic disciplines are as closely linked to each other as art history and history. In this sense, this paper serves to stimulate the communication and exchange between these two research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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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1980년대 신형상 세대의 한국화 - 극사실 경향에서 민중미술까지

        이민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39 No.-

        After the mid-1970s, a new atmosphere was created in the Korean art world by the formation of a unique figurative art. This stream is represented by the so-called Hyperrealism, which was mainly spread out through consecutively held large-scale private sponsored exhibitions such as The Grand Art Exhibition of Korea, Donga Art Festival, and Joongang Fine Arts Prize. These exhibitions all claimed to support ‘originality’ and ‘figuration.’ To begin with, they carry repellent meanings toward Informel, Dansekhwa, and other abstractive tendencies. These events were also called as ‘new figuration’ to be distinguished from existing and unchanging conceptions spread by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I highlight that the emphasis on this ‘new figuration’ brought great differences to trends in Hangukhwa (Korean painting). Artists who sought for their direction to modern Hangukhwas from traditional paintings were awarded not only in private exhibitions, but also in The Grand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by submitting numerous hyper-real Hangukhwas. The combination of Hyperrealism and Hangukhwa seems incompatible in an instant, then what does this fusion mean? Such phenomenon cannot be interpreted solely by focused discourses on the existing combination of ink wash painting and abstraction. Therefore, this study retraces Hangukwha with the flow of ‘figuration’. In other words, it will compare and contrast how figure is expressed in traditional and modern Hangukhwas. This examination should be started from the hyper-real Hangukhwas. By this, the study analyzes and understands Real-Scenery Landscapes and urban landscapes in the 1970s, the ink painting movement in the early 1980s, and Hangukhwa affiliated with Minjung Art in the context of art of the same period.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 미술계에는 독특한 구상(具象)(figurative) 미술이 하나의 기류를 형성했다. 이른바 극사실주의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당시 잇달아 개막한 《한국미술대상전》,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과 같은 대규모 민간 주최 공모전(이하 민전)을 통해 주로 전개되었다. 이들 민전이 표방한 것은 ‘새로움(New)’과 ‘형상성(Figuration)’이다. 여기에는 우선, 1960년대와 70년대 전반까지의 앵포르멜, 단색화와 같은 추상 경향에 대한 반발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또한 기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만연한 구태의연한 구상과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형상’으로 지칭되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새로운 형상성’의 강조가 당시 한국화의 경향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전통회화에서 현대 한국화로의 방향을 모색하던 화가들은 민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미술대전》에 극사실 경향 한국화 작품들을 대거 출품해 입상했다. 언뜻 봐도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극사실기법과 한국화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같은 현상은 기존의 수묵과 추상의 관계에 집중된 논의를 통해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상성’의 흐름으로 한국화를 다시 기술한다. 즉 전통회화에서의 형상 표현과 현대 한국화에서의 그것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를 극사실 경향 한국화를 기점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1970년대 실경산수화와 도시풍경화, 이후 1980년대 전반기의 수묵화운동, 그리고 민중미술 계열 한국화를 동시대 미술의 문맥에서 분석하고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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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와 인문학적 가치

        권영필(Kwon Young-pil),이인범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이 글은 한국미술사학회 5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한국미술사에서의 방법론의 문제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관찰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여기에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의 전통미술을 의미한다. 또한 분석 대상의 논문들은 한국미술사학회에서 발표된 것을 줄거리로 잡되. 필요에 따라 그 외의 것들도 포함시켰다. 문명대가 방법론을 강조한 것을 필두로 지난 50년 동안 방법론 자체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을 확인하는 일면, 그 동안 발표된 논문에서, 예컨대 70년대의 안휘준의 논문을 비롯하여 "양식론" 적용이 보편화되었으며,90년대 이후부터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이 강세를 보이며 등장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최성은, 김정희의 논문에서 보듯, 도상해석학은 불교미술에서 이용도가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미술사의 인문학적 특성을 피력하기 위해 파노프스키의 인문학적 미술사론을 끌어들였다. 이 국면에서는 미국 미술사학계에서의 파노프스키의 영향을 아울러 검토하였다. 또한 미국의 마이너(V.H.Minor)는그의 90년대의 저서에서 양식론의 위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나가히로 도시오(長廣敏雄) 등에서 보듯이 동양미술사 연구자들이 유럽의 양식론을 비롯한 서구 방법론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술이 시대를 표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내용을 부여하려고 존재한다"는 뢰어(M.Loehr)의 명제는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의 입장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겸재 회화의 평가도 이런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으로서의 "한국미술사는 "한국미"와 "한국미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데에도 효용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미는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주제로서 무엇보다도 미술작품에서 그것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필자는 미술사와 미학의 관계를 상보관계로 본다. 알려져 있듯이 미술사의 방법론 정립은 근세 이래 미학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한편 "한국미학‘은 근세 이전의 경우 문헌사료가 영성하여 미술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다. 방법론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현상을 차용하여 풀어 보았다. 예컨대 다빈치의 "스프마토"를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으로 해석한다든가, 미술이 문명사에서 "화해자(和解者)의 역할을 한다는 등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국미술사 해석을 위한 기초로서는, 예컨대 "수용미학"같은 서양미학이 어느 정도 값어치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한국미술사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세계미술사 속에 자리매김 되는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This paper, written for the occas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is a review of major methodological issues in Korean art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Korean art history; here, should be understood as the history of traditional Korean art. Meanwhile, the papers examined here are mainly those that were presented at the Association of Korean Art History, but, in some cases, papers from other fields were considered as well. This essay discusses how, pioneered by Mun Myeong-dae who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methodology in art historical studies, methodology has been continuously discussed over the past fifty years, as an area of research in its own rights, and how the application of stylistic analysis has become common since the 1970s, championed by An Hwi-jun. The discussion of methodological evolutions also includes iconology, popularized by Erwin Panofsky"s works. Iconology has been prominent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since the 1990s. Iconology is particularly widely applied in the study of Buddhist art, as can be seen in papers by Choe Seong-eun and Kim Ieong-hui. To draw attention to the overlapping characteristics between art history and other disciplines in humanities, I quote extensively from Panofsky"s discussion of humanistic art history, examining also the influence that Panofsky has had on American art history. I, then, turn to works by the US art historian V. H. Minor, published in the 1990s, proving that the influence of stylistic analysis in the field of art history remains undiminished. Examples from japan, such as research by Nagahiro Toshio, attesting to the dominance of stylistic analysis and formalism and other European methodologies among researchers of Asian art, are cited as well. As Max Loehr famously said that "art exists not to express its time but to give content to its time;" art cannot be properly assessed without considering its humanistic roots, Interpreting and assessing paintings by Jeong Seon(1676-1759), to take an example of a Joseon painter, cannot be accomplished meaningfully without considering their humanistic context and subtext. Korean art history as a humanistic discipline could be especially useful for building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what we can call "Korean beauty or "Korean aesthetics," Korean aesthetics, as a subject with humanistic values, can be mostly readily understood in art works, Art history and aesthetics, in my opinion, are two inseparable and mutually-complementary fields, As is well-known, the methodological framework of art history in Europe is greatly indebted to modern aesthetics, Meanwhile, due to the dearth of historical records dating from before modern times, one is forced to rely on art history in order to study Korean aesthetics. Finally, to predict future methodological directions, I turn to related phenomena in Western art history, For example, I value the viewpoint that Da Vinci"s sfumato is interpreted as an inclusive gesture toward uncertainty and argue that art plays a reconciliatory role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 also argue that Western aesthetics such as the aesthetics of reception have proved useful to an extent as a basis for Korean art historical interpretations, The guiding principle, as we search for a new methodology, should be finding a place for Korean art history in the history of world art, while not sacrificing its specific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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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樹黙 秦弘燮 박사 학문세계와 한국미술사에 남긴 업적

        강경숙(Kang, Kyung sook) 한국미술사학회 2018 美術史學硏究 Vol.299 No.299

        한국미술사학회는 1960년에 시작한 고고미술동인 다섯 선생님들로부터 시작했다. 이 중에 진홍섭과 황수영 두 분 선생은 2018년 탄생 100년을 맞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한국미술사학회에서는 학술대회를 개최했으니 그 의의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분 선생은 같은 해 개성에서 태어나고 일본에 유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했다. 전공 분야와는 연관이 없는 미술사 연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개성박물관 관장인 우현 고유섭의 영향이다. 두 분 선생은 평생 한국미술사학을 연구하여 학계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한국미술사학회를 이끈 주역이다. 수묵 진홍섭 선생은 우현 고유섭의 뒤를 이어 개성박물관장이 되었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에는 경주박물관장을 거쳐 잠깐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장을 역임했지만, 바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박물관장의 보직을 받아 20년을 재직했다. 선생은 경주박물관장 시절 ‘경주 어린이 박물관 학교’를 개설했고 지금까지 수 천명의 어린이들이 이곳을 거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미술사전공 제자를 많이 배출했는데 이들은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각계에서 중진역할을 하고 있다. 제자들은 선생이 지어준 ‘여여회’ 이름으로 경주 어린이박물관에 매년 어린이 책을 기증하고 있으며, ‘수묵문고’가 있는 도서실은 경주박물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선생의 무언의 가르침이었고 온누리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있다. 1899년에 개성에서 개교한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가 폐교에 직면했을 때 선생은 선뜻 큰 재산을 희사해 살려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주시내를 관통하게 될 고속철도의 건설을 막기 위해 1995년 3월 「경주는 중환자이다」라는 것을 발표했고 이때 달걀세례를 받았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서울 시민회관에서의 일은 선생의 문화재 사랑의 일면을 보여준다. 선생은 단행본 25권, 논문 147편, 보고서 6권, 전집 및 도록 6권으로 놀랄만한 연구의 흔적을 남겼다. 특히 『한국미술사자료집성』 9권은 미술사 연구의 문헌적인 기초 자료를 제공했고 오랫동안 묵묵히 자료를 모았던 수묵 선생의 땀의 결실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책으로 엮은 자료는 수 십 세기가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한 눈에 한국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연표』는 수차례 수정 보완을 거친 책으로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된다. 선생은 2010년 11월 타계하기 1년 전까지도 책의 수정 보완을 게을리하지 않고 늘 책을 옆에 두었다. 제자들이 본받을 수도 없는 열정을 끝까지 가지고 계셨다. 선생의 평생을 돌이켜보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중앙국립박물관 관장의 제의가 있을 때 이를 양보한 일이라던지, 또 문화재 훼손에서는 주저함 없이 앞장에 섰던 것은 정의를 위해 굽히지 않았던 선생의 면모이다. 어려운 고비마다 한국미술사학회의 대표직을 수행했던 것은 학회 사랑의 모습이다. 선생의 이러한 면모가 ‘명리를 멀리한 군자’로 칭송받는 이유이다.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was established with the five scholars in the Coterie of Antiquarians, which had been founded in 1960. The year of 2018 marks the centennial of the birth of two of the five scholars, Chin Hong-sup and Hwang Su-young. To celebrate the centennial anniversary,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organized a conference, which has a special meaning in the field of Korean art history. Both of the two scholars were born in Gaeseong in the same year, and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in Japan. The reason why they became scholars in art history, which was unrelated to their major, was because of the director of the Gaeseong Museum, Uhyeon Ko Yu-seop’s influence on them. The two scholars devoted their entire life to the study of Korean art history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cholarship in the field and founded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Of the two scholars, Soomuk Chin Hong-sup succeeded Uhyeon Ko Yu-seop as the director of the Gaeseong Museum. After the Korean War, Chin was appointed the director of the Gyeongju Museum and then the chief official in the Office of Culture Properties. Shortly after the appointment he was hired as a professor at the Ewha Womans University, with which he held the position of the director of the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concurrently for twenty years. During his term in office at the Gyeongju Museum, Chin established the Gyeongju Children’s Museum School, which has served thousands of children thus far. At the Ewha Womans University, he trained numerous students in art history, who are now playing important roles in various fields. His students in the group called Yeoyeohoe, whose name was given by Chin, donate books to the Gyeongju Children’s Museum School every year, and a library with a collection of Chin’s books, named “Soomuk mungo,” has been run by the Gyeongju Museum. These activities embody his teachings and exert positive influence throughout the country. In 1899 when the Hosudon Girls’ High School in Gaeseong was about to be closed down, he willingly donated a large fortune to continue the school, demonstrating his exceptional virtue. To prevent the construction of KTX, which would pass through Gyeongju, he published his article titled “Gyeongju is a Critical Patient.” in conference at the Seoul Civic Center he became the victim of egging. Nonetheless, he kept his seat until the end of the conference, showing his strong affection for cultural heritages. Chin made outstanding academic achievement as illustrated in his publications encompassing 25 books, 147 articles, 6 reports, and 6 catalogues. Of these publications the ninth volume of the Compilation of Primary Sources in Korean Art History provides textual sources for art history research, and represents his persistent scholarly endeavor. Although digitized materials are being extensively utilized in the field, the materials collected in this book will be invaluable for centuries. Furthermore, the Chronology of Korean Art History has been useful for both specialists and non-specialists in Korean art history, having been revised by the author several times. Up until he passed away in November of 2010, Chin had kept revising and supplementing the publication, demonstrating his enormous enthusiasm about art history that cannot be surpassed by any of his students. He did not seek fame and profit throughout his entire life, as illustrated in the fact that he declined the post of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Showing his strong will and sense of justice, he always took initiative without hesitation in stopping damages on cultural heritages. He also assumed the leadership, whenever the Art History Association of Korea was faced with a crisis, as he cherished the association. Because of these characteristics, Soomuk Chin Hongsup well deserves the admiration as “a man of noble character standing aloof from fame and pro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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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우(崔淳雨) 선생의 공예 연구

        최응천 ( Choi Eung Chon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2018 강좌미술사 Vol.51 No.-

        최순우 선생의 공예 분야의 연구 성과는 비록 개설의 성격이지만 최초로 우리나라 공예 분야를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시대별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을 소개한 미술서적이 전무하였던 당시 상황에서 한국 공예에 관한 소개서를 일본에서 출간한 공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 일찍부터 한국 목공예품이나 민속공예품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의 저술을 남겼고 『韓國의 木漆家具』라는 역저를 출간하여 조선시대 목공예품을 비롯한 나전칠기를 민예품의 차원을 떠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당당한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선생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미술사의 업적은 도자기와 회화 부분에서 단연 돋보이며 특히 국립박물관의 조사 성과를 토대로 초기 고려청자 요지를 밝힌 것도 주요한 업적이다. 白磁 大壺를 ‘달 항아리’, 玉璧底 굽을 ‘햇무리 굽’ 이라는 도자 관련 용어를 우리말로 고쳐 부른 것도 선생의 천부적인 어휘력과 탁월한 미감에서 창출된 것이다. 선생의 고려나 조선의 도자기 논고를 제외한 공예 관련의 단편 논문은 5 편 정도가 확인되며 주로 고려 범종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선생 역시 한국 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틈틈이 조사하여 자료를 남기고자 했음이 파악된다. 나머지 글들은 대체로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비교적 짧은 글들이지만 여기에 선생이 지닌 평소의 미의식과 탁월한 식견, 나아가 일반 독자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여 한국 공예의 우수성을 소개한 점은 공예사 분야의 숨은 성과로 판단된다. 지면상의 한계와 학술 논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전문가적 식견은 선생의 평소 여러 분야에 노력을 경주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진다. 논문의 성격을 띤 글들이 주로 회화와 도자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공예에 관한 글들은 수필이나 에세이 성격을 지닌 단편적인 글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공예 분야의 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미술사학자들이 추구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공예품을 고대부터 조선시대라는 통시대에 걸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선생이 지닌 통찰력과 타고난 심미안을 통해서 가능했지만 평생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울였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선생은 그동안 외국인과 일본인이 지녔던 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미술을 설명하고 한국 공예의 특질과 아름다움을 도출해내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를 일본과 미국 유럽에 알리고자 국립박물관 재직시절 기획하고 총괄하였던 <한국미술 오천년>전시는 가난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5000 년이라는 유구한 문화를 지녔음을 전 세계에 알린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바로 이 전시의 중심에서 한국 문화재를 세계 속에 알린 가장 훌륭한 문화 외교관이셨다. Research accomplishment in the craft history field of Choi Sun-woo is introductory in nature, but it is the first time that the Korean arts fields were organized by period from Three Kingdoms Period to Joseon era. In a situation with the absence of an art book introducing Korea, he would publish introducing books about Korean crafts overseas in Japan. Early on, he focused on Korean woodwork and folk crafts, and left the books in a field that was not very noticeable to upgrade them to the representative artworks of our country beyond simple folk art crafts. Among his accomplishments related to craft history are conspicuous in ceramic history studies. It is also one of the major accomplishments that based on the survey results of the National Museum, he clarified the kiln site of the early Goryeo celadon, and revised the ceramics related terms 'Dalhangari' and 'Haetmurigup' in Korean. The short articles related to crafts, except for his papers on ceramics, are about five, and it is understood that the contents of Goryeo bells mainl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Korean bells early at the time. The rest of the articles related with crafts are relatively short essays publish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but the point that his aesthetic sense, excellent insight, and easy-to-understand explanations for everyone in general, introduced the excellence of Korean crafts is a hidden achievement in the field of craft history. Although it is not an academic paper, his works reveal the depth of the professio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expert’s opinion. It is noteworthy that the arts of various fields, which were not pursued by other scholars of art history, have been interested from ancient times to the Joseon period. It was because of his insight and innate aesthetics that he spent his entire life at the National Museum, so that he could express his deep affection for Korean cultural assets. Away from Korean art, which was depicted by perspectives of foreigners, through our concrete and clear vision, he devoted his life to deriving the qualities and beauty of Korean crafts. The exhibition of “Five Thousand Years of Korean Arts”, which was planned and organized by him when he worked at the National Museum to inform the beauty of Korea to Japa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s an excellent opportunity to show the world that Korea was a cultural nation with a 5000 year old culture. He was the greatest cultural diplomat who informed the world of Korean cultural assets in the very center of this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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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蕉雨와 樹黙의 石造美術史 연구와 의의

        엄기표(Eom, Gi pyo) 한국미술사학회 2018 美術史學硏究 Vol.299 No.299

        초우 황수영(1918~2011)과 수묵 진홍섭(1918~2010) 선생은 한국미술사 연구의 선각자이자 태두이신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의 제자로 한국미술사의 기반을 다진 대표적인 한국의 초기 미술사학자이다. 우현 선생은 인천 출신이었지만 개성박물관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였으며, 초우와 수묵 선생은 개성 출신으로 죽마고우였다. 이들 세 분은 개성에서 한국미술사와 관련된 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연구 기반을 다져, 오늘날 한국미술사를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기 때문에 ‘개성삼걸’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성에서 세분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우 선생은 우현 선생과 함께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미술사의 필요성을 느꼈고, 특히 우현 선생이 갑자기 타계하고 나서 추도사를 준비하고 읽으면서 미술사 연구를 굳게 다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묵 선생은 우현 선생과 함께 개성 인근의 유적을 답사하거나 박물관에서 우현 선생으로부터 한국 역사와 미술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 자연스럽게 관심이 미술사로 기울게 되었고, 대학 졸업후에 미술사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초우와 수묵 선생은 스승의 유훈을 계승한 한국미술사 연구의 선구자였다. 그리고 한국미술사 분야중에서 석조미술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였으며, 오늘날 중요한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초우와 수묵 선생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석조미술품 중에서 석탑과 석불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였다. 두 분은 석조미술사 연구에 있어 기본적으로 실증적인 연구 방법론은 견지하였으며, 거기에 양식과 기록 등 석조미술품의 이해와 연구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한국 석조미술품에 대한 시대별 편년 설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성과를 통하여 양식적인 발전 과정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 석조미술의 양식사를 체계적으로 정립시켰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오늘날까지 석조미술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기초 자료가 되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Chowoo Hwang Su-young(1918~2011) and Soomuk Chin Hong-sup(1918~2010) both learned from Woohyun Ko Yu-seop, a pioneer and an early luminary of Korean art history. They were scholars who laid the groundwork for art history of today. Ko Yu-seop was from Incheon, but worked as the director of the Museum at Gaeseong, where Hwang and Chin were friends from childhood. The researches they made from Gaeseong helped to establish Korean art history as an academic field, and for this, they are often referred to as “Gaeseong Samgeol (Three Heroes of Gaeseong).” Their friendship that started at Gaeseong could be described as fortuitous. Hwang first understood the value of art history when on field research with Ko, and decided firmly to pursue the subject as he prepared and read the eulogy for Ko after his sudden death. As for Chin, he was much impressed by monuments around Gaeseong when on surveys with Ko and by what he learned about Korean history and art from him at the Gaeseong Museum. It was only natural that Chin took interest in art history and deeply felt the need for art historical research after finishing college. Hwang and Chin were pioneers of Korean art history who followed in the footsteps Ko, their teacher. They were mainly concerned with stone sculptures, forming the basis of art history today, and securing its position as an important part of Korean art history. Both Hwang and Chin’s main areas of interest were stone stupas and Buddhist sculptures from Three Kingdoms Dynasty, Unified Silla, and Goryeo, the same as Ko. Their method was fundamentally empirical but they did not disregard artistic style and written documents that were necessary for understanding and studying Stone sculptures. The two scholars’ achievements made it possible to determine the dates of stone sculptures and to understand the stylistic development and changes that set up a systematic method for stylistic analysis. Their achievements are significant as the basis and the fundamentals of Korea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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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

        이주형 한국미술사학회 2010 美術史學硏究 Vol.268 No.268

        Art history as a modern academic discipline was established in Korea during the late 1970s and early 1980s with the return of several scholars after studying abroad in the U.S. and Europe. Beginning in this period, modern methods of art history—such as visually analyzing objects or monuments as works of art, identifying their themes and functions,and exploring their artistic or historical significances—appeared in their writings in a sophisticated form and were taught at university programs, which produced numerous younger scholars. Thus, art historical scholarship in Korea has been fully modernized in less than three decades, reaching a level in some areas comparable with more advanced academic traditions outside Korea. Around the time when this new phase unfolded in Korean academia, art historical scholarship in Europe and the U.S. was about to undergo revolutionary changes in both outlook and methodology, which was heralded by a movement called New Art History or the social history of art initiated by such radical scholars as T. J. Clark in England, although to reduce various voices heard in these new developments to the New Art History alone would be a gross misjudgement. Disenchanted by conventional undertakings of art history, scholars began to question the discipline's longstanding premises deeply affected by its prevailing positivistic attitude as well as its manifest adherence to high art and Eurocentrism and to reflect on ways to seek new methodological paths or to revive grand visions of its founding fathers of the late nineteenth and early twenties century. Unfortunately, these new developments in Europe and the U.S. made little impact on Korean academia, which had different agenda of first establishing art historical scholarship as a modern discipline. Most scholars specializing in Korea or other parts of Asia devoted themselves in constructing knowledge in connoisseurship, chronology, and iconography in a positivistic spirit without having any leisure to pay attention to critically pondering on the premises of their work or alternative methodological paths. On the basis of great achievement made during last three decades, art historical scholarship in Korea is obviously at the point to reflect on the nature of its accomplishment and seek ways to innovate itself for a new horizon. This paper addresses these problems. 한국에서 근대적 학문으로서의 미술사학은 구미에 유학했던 몇몇 연구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1980년대 초 사이에 귀국하여 학계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확립되었다. 이들 학자의 글에서 미술사학의 근대적 방법들, 즉 유물이나 모뉴먼트를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그 주제와 기능을 밝히며, 그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해명하는 방법들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고, 아울러 대학에 마련된 교육과정을 통해 수많은 신진학자들이 길러졌다. 그리하여 한국의 미술사학은 불과 30년도 안 되는 기간에 근대적 학문으로 자리잡게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외의 선진 학계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학자가 귀국할 무렵구미의 미술사학은 관점이나 방법론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T. J. 클라크(Clark) 등 영국의 급진적인 학자들이 주도한 소위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 운동의 예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변화 속에 일어났던 여러 흐름을 신미술사학만이 대표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아무튼 기존 미술사학의 전통적인 학풍과 관행에 실망한 많은 학자들이 미술사학의 오랜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의문은 실증주의적인 학풍과 고급 예술 중시/유럽중심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이들은 새로운 방법론적인 선택의 가능성들을 모색하고 아울러 19세기 말과20세기 초의 미술사학의 근대적 창시자들의 거시적인 비전에도 다시 주목했다. 불행히도 구미에서 일어난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한국 학계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의 미술사학계는 미술사학을 근대적 학문으로 확립해야 하는, 구미와는 다른 어젠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그 밖의 아시아 지역의 미술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실증적 작업을 통해 감식과 편년, 도상 정립 등의 지식 구축에 몰두해야 했고,그 과정에서 그러한 작업의 전제나 의의에 대해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30년간 축적된 놀랄 만한 성취를 바탕으로 이제 한국의 미술사학은 그 성취의 의미를 성찰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자기혁신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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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조의 <핵(核)> 연작 - 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

        조수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39 No.-

        Lee Seungjio is well known for his <Nucleus> series — paintings comprised of various cylindrical forms resembling pipes. Throughout his lifetime, Lee devoted himself to these distinctively clear, rational and deliberate abstract pieces. Existing analyses of Lee Seungjio’s paintings often view the pipe-like forms in the <Nucleus> series as symbols of modernization unfolding in Korea at the time, and regard his work as a model example of Korean geometric abstract art. Additionally, some have associated the changes since the 1970s in Lee’s paintings with the conceptual art of group “AG” or Lee’s interest in phenomenology. In other analyses, Seungjio has been touted as one of the founding fathers of monochrome abstract art in Korea. However, in these previous studies, it is difficult to find detailed explanation regarding what exact features of the <Nucleus> series made it different from other geometric abstract art at the time — or what exactly Korean op art even was. Is there really no way of recognizing the significance of Lee Seungjio’s art, without referencing his core artistic features to specific organizations or art styles? This paper began from the above question. This paper aims to achieve two things: first, to regard Lee’s paintings as a visual indicator existing within the societal/cultural and political/economic climate of the time; second, to propose a new way to understand not only Lee’s art but also the history of Korean geometrical abstract art since the 1960s. This paper finds that Lee’s <Nucleus> series was born from the intersection of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vant-garde art group “Origin”, and industrial design — leading the paintings to simultaneously embody the contradicting qualities of avant-garde/ academic, and pure/applied arts. Furthermore, this paper also argues that the <Nucleus> series cannot be understood only in the confines of figurative painting, geometric or monochromatic abstract painting. This paper seeks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existing research methods in Korean art history, which has traditionally been rooted on nationalism and evolutionist views. As an alternative, this paper employs a new methodological framework to investigate geometric abstract art and Lee Seungjio’s works. As a result, this study finds that in his styles spanning across the figurative, the abstract, and the hyper-realistic, Lee’s only objective as an artist ultimately lied in the visual issues of paintings. In conclusion, Lee Seungjio’s <Nucleus> series successfully created a complete visual illusion by overcoming the resistance of medium, fulfilling the duty long carried by modernism abstract paintings. From this, we can discover from Lee’s abstract works a new possibility for Korean modernism — one that neither relies on tradition nor spirit. 이승조(李承祚, 1941-1990)는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한 회화 〈핵(核, Nucleus)〉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작가는 특유의 명징하고, 이지적이며, 계획적인 성격의 추상회화를 평생 고집스럽게 선보여 작고한 뒤엔 “우리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 화가”, “논리적인 작업의 전통이나 체험이 빈약한 우리의 현대미술 속에서 더없이 이채로운 존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승조 회화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대체로 〈핵〉 연작에 나타나는 파이프 형상을 조국 근대화에 주력하던 한국 사회의 시대적 상징물로 바라보면서, 그의 작업을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새로운 전형을 구축한 것으로 여기거나, 한국 옵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간주한다. 또 1970년대 이후 이승조 작품의 변화를 그룹 ‘AG’의 개념미술 및 현상학에의 관심과 연계해 해석하거나, 그를 모노크롬 추상회화의 태동과 형성을 주도한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구들에서 정작 이승조의 〈핵〉 연작의 어떤 특징이 당대의 다른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는지, 한국적 옵아트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구체 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승조의 예술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 특징을 특정 활동 단체나 회화 양식의 성격에 기대지 않고 고찰해 그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이승조의 회화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 자리하는 시각적 지표로 간주하고, 그의 작품뿐 아니라 1960년대 이후 한국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역사 전반에 대한 기존 견해를 교정할 기회를 마련해 보고자 했다. 이로써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 옵아트의 시발점이 된 이승조의 〈핵〉 연작이 《국전》, 재야의 전위 단체 ‘오리진’, 산업디자인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음을, 그리하여 태생적으로 전위미술과 아카데미즘 미술,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음을 밝혔다. 또 이승조의 〈핵〉 연작을 구상, 기하학적 추상, 모노크롬 추상, 그리고 극사실회화의 어느 한 범주에만 국한해 이해할 수 없음도 피력했다. 본 연구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순혈주의와 진화론에 기반했던 기존 한국 현대미술사의 기술 방식을 극복하고,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이승조 회화를 고찰할수 있는 새로운 미술사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그 결과 구상에서 출발해 추상으로, 그리고 다시 극사실에 도달하기까지, 작가 이승조의 목표는 오로지 회화에 서의 시각적 문제의 추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승조의 〈핵〉 연작은 미술사에서 모더니즘 추상회화에 주어졌던 과업, 즉 ‘매체의 저항을 압도해 완벽한 시각적 일루 전을 창출하는’ 일을 완수해냈는데, 이로써 우리는 그의 추상회화에서 전통이나 정신에 기대지 않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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