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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진상현,Shin, Jeong-Hoon,Jin, Sang-Hyeon 한국융합신호처리학회 2007 융합신호처리학회 논문지 (JISPS) Vol.8 No.4
Ubiquitous systems have grown explosively over the few years. Nowadays users' needs for high qualify service lead a various type of user terminals. One of various type of user interface, various types of effective human computer interface methods have been developed. In many researches, researchers have focused on using brain-wave interface, that is to say, BCI. Nowadays, researches which are related to BCI are under way to find out effective methods. But, most researches which are related to BCI are not centralized and not systematic. These problems brought about ineffective results of researches. In most researches related in HCI, that is to say - pattern recognition, the most important foundation of the research is to build correct and sufficient DB. But there is no effective and reliable standard research conditions when researchers are gathering brain-wave in BCI. Subjects as well as researchers do not know effective methods for gathering DB. Researchers do not know how to instruct subjects and subjects also do not know how to follow researchers' instruction. To solve these kinds of problems, we propose effective brain-wave DB building system using the five senses stimulation. Researcher instructs the subject to use the five senses. Subjects imagine the instructed senses. It is also possible for researchers to distinguish whether brain-wave is right or not. In real time, researches verify gathered brain-wane data using spectrogram. To verify effectiveness of our proposed system, we analyze the spectrogram of gathered brain-wave DB and pattern. On the basis of spectrogram and pattern analysis, we propose an effective brain-wave DB building method using the five senses stimulation.
EEG 대역별 스펙트럼 활성 비를 활용한 BCI-TAT 기반 심리 분석 시스템
신정훈,진상현,Shin, Jeon-Hoon,Jin, Sang-Hyeon 한국융합신호처리학회 2010 융합신호처리학회 논문지 (JISPS) Vol.11 No.2
정신장애 관련 검사 및 진단 방안에 관한 연구는 국내 외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해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연구인 심리검사에 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내포한다. 기존 심리 검사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는 심리상담가의 전문적 훈련정도에 따른 검사 결과의 해석 차이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객관화된 심리 분석기법의 부재로부터 야기되어 지며 그 결과 동일한 피험자 응답에 대해서도 심리 검사자에 따른 서로 다른 주관적인 분석으로 귀결되어 진다. 심리검사 시 또 다른 문제점은 심리검사의 방법으로 부터 야기되어 진다. 기존의 심리검사는 다양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며, 이러한 문제는 중증장애우, 외국인, 영유아 피험자들의 심리 검사 및 분석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주관적인 심리검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Ballken지수법을 활용하여 주관적 심리검사 및 분석 기법중 하나인 TAT(Thematic Apperception Test)를 분석하여 정량화를 시도하며 객관화 하고자 한다. 정량화되어진 분석결과를 BCI(Brain Computer Interface)기반의 TAT환경 하에 수집되어진 사용자의 뇌파 신호와 비교분석하여 정신장애에 따른 뇌파특징벡터 DB의 구축 및 분류를 수행 한다. 본 논문에서 제안하는 심리검사 및 진단 시스템은 기 구축된 뇌파특징벡터 DB를 활용하여 기존의 주관적인 심리검사 기법을 정량화 및 객관화하며, 피험자의 간단한 뇌파검사만으로도 심리검사가 가능하여 기존 심리검사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해결 가능 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羅州 新村里 9호분과 百濟의 정치 변천―百濟·大伽倻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정훈 택민국학연구원 2023 국학연구론총 Vol.- No.32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과 환두대도 등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5세기 후반과 후엽 무렵에 이 지역에 초기국가로 발전한 정치세력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百濟는 475년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는 큰 혼란이 있었다. 백제가 충청남도에 있는 웅진으로 남하함에 따라 영산강 유역에 있던 耽羅와 처음 관계를 맺게 되었다. 文周王 2年(476)에 백제와 탐라의 관계는 탐라 사신이 恩率의 관등을 받은 것으로 보아, 上, 下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문주왕대에 解仇와 같은 간접지배자로 인해 내정이 불안했다. 이에 따라 백제는 탐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東城王 20년(498) 8월에, 耽羅가 貢賦를 바치지 않아 백제가 치려 했다. 耽羅의 지배자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므로 그만두었다. 이 때 백제가 탐라를 치는 것을 그만 둔 데에는 大伽倻의 영향력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동성왕 21년과 23년의 잇따른 천재지변은 백제의 정치적 불안을 상징하고 있다. 동성왕 23년에 苩加가 왕을 시해했다. 동성왕 21년부터 23년까지 백제 내정 의 불안으로 탐라는 백제의 세력권에서 실제적으로 벗어나 있었다. 주목되는 점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할 무렵 백제 왕의 운명이다. 蓋鹵王은 고구려 군에게 잡혀 죽었으며, 文周王은 시해 되었다. 三斤王代에 권력을 잡은 해구가 반란을 일으켰으며, 東城王은 백가에게 시해되었다, 이것은 백제 정치의 총체적 혼란을 보여준다. 그 주요한 요인은 백제왕권과 기존에 웅진(공주) 일대에 있던 간접지배자가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정국 흐름으로 보아 백제는 영산강 유역에 있던 탐라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로 보아 나주 신촌리 9호분을 조영한 반남의 정치세력은 5세기에 백제와는 별개의 독립된 세력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나라가 대가야이다. 479년에 대가야왕이 南齊로부터 ‘輔國將軍 本國王’의 작호를 받았다. 그런데 475년에 동아시아에서 격변이 있었다.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였언 것이다. 이런 백제의 혼란 속에서 대가야가 중국 남제에 조공했다. 대가야는 중국 남쪽에 있는 남제로 가기 위해서 전남 영산강 유역에 있는 초기국가 단계의 나주 신촌리 9호분을 조영한 세력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대가야는 섬진강을 넘어서 영산강 유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나주 신촌리에서 대가야계의 유물이 사용되고 매납되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나주 신촌리 9호분의 조영시기는 고고학의 유물과 문헌사료로 보면 좁혀지게 된다. 그 시기는 백제의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는 470년대 무렵부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된 동성왕대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