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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가족의 형성과 문화적 적응

          여중철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민족문화논총 Vol.0 No.44

          이 글은 199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다문화가족과 국제결혼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그것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그간에 나온 논문들과 신문자료, 인터넷 검색자료 등을 분석하여 주제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구체적으로는 ① 혼혈 및 혼혈인, 국제결혼-단일민족론에 대한 담론과 혼혈 및 혼혈인에 대한 인식, 6・25전쟁과 국제결혼, ② 다문화가족의 형성과 가족관계-외국인근로자의 유입, 다문화가족의 형성과 가족관계, ③ 다문화가족의 문화적 적응-여성결혼이민자의 문화적 적응, 다문화가족 자녀의 문화적 적응, 건강한 다문화사회 건설을 위한 제언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단일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아시아 내에서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이뤄져 형성된, 다양성을 지닌 민족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단일민족에 대한 그간의 생각을 수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국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를 넘어선 만큼 대한민국도 이제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가족은 도시지역 보다 농촌지역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농촌지역에서의 가족관계는 핵가족 직계가족에서의 가족관계를 넘어 친족관계까지로 확대되어 있어 도시에서의 그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며느리가 이해해야 할 가족관계가 광범위하고 복잡하여 가족생활에의 몰입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어온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으로는 ① 결혼이주 여성의 문화적 부적응 문제, ② 다문화가족 아동의 사회부적응 문제, ③ 다문화가족에 대한 언론의 편견조장, ④ 가정폭력문제. ⑤ 다문화가족의 경제적 곤란, ⑥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의 도덕적 문제, ⑦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드는 경우가 많다. 첫째, 「혼혈 및 혼혈인, 국제결혼」에서는 단일민족에 관한 종전의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혼혈 및 혼혈인에 대한 인식은 아직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6・25전쟁은 국제결혼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어 지금의 다문화사회, 다문화가족 형성의 기틀을 제공한 것으로 보았다. 둘째, 「다문화가족의 형성과 가족관계」에서는 1990년대 초반 외국인근로자의 유입 배경을 설명하고 2000년대 들어 형성되기 시작한 다문화가족의 형성과정과 그들의 가족관계에 대하여 간략히 검토하였다. 셋째, 「다문화가족의 문화적 적응」에서는 여성결혼이민자의 문화적 적응과 다문화가족 자녀의 문화적 적응에 대하여 고찰하였는데 다문화가족 자녀의 이중언어 습득이 한국사회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향해가는 배경에는 6・25전쟁을 전후한 국제결혼, 1990년대 초반 외국인근로자의 유입, 2000년대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외국인과의 결혼 등이 자리잡고 있고 문화적 적응이라는 의미로 교육을 통해 이주자의 동화를 지향하는 것은 곧 다른 형태의 차별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This article deals with multicultural families and international marriages which emerged in the Korean society from the 1990s and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and with the analysis of the research papers, newspaper articles and Internet-based data, this article discusses the topics related to multicultural families and international marriages. Specifically, the main issues of this article are as follows: ① racial mixture and multiracial people, international marriages-discussions on single-race and the awareness of racial mixture and multiracial people, the Korean War and international marriages, ② the formation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the family relations-the influx of workers from overseas, the formation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the family relations, ③ cultural adjustment of multicultural families-cultural adjustment of female marriage immigrants, cultural adjustment of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proposals for the construction of healthy multicultural society. We, Koreans, generally refer to Korea as a single-race nation. Here, a single-race nation does not mean that the origin of Korean people but means that Koreans have acquired genetic homogenenity with time. Koreans were formed by the genes from the southern and northern region and they are a race of people with ethnic diversity. Based on the various kinds of data, we can draw a conclusion that it is time for us to modify our ideas of a single-race nation. It is reported that there are more than 1 million foreigners living in Korea. Experts assume that since the foreigners take up 2% of Korea’s population, Korea has set foot in the age of multicultural society. However, multicultural families are more easily found in the rural areas rather than in urban areas. In the rural areas, the family relation has extended from nuclear immediate family to kinship and this kind of aspect has a big difference with that of the urban areas. Accordingly, the family relations get widened and more complex which make foreign wives to put more effort in their family life. The drawbacks of the multicultural families in the Korean society which have been discusses are as follows: ① cultural maladjustment of female marriage immigrants ② the problems of social maladjustment of children from multicultural families ③ promoting bias against multicultural families by press ④ the problems related to domestic violence ⑤ the financial difficulties of multicultural families ⑥ the moral problems of matchmakers of international marriages ⑦ the educational problems of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First, in terms of racial mixture, multiracial people and international marriages, this article points out that there has been a change in the previous concept of a single-race nation and that there is a lack of changes in the awareness of racial mixture and multiracial people. In addition, with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international marriages have served as a basis of multicultural society and the formation of multicultural families in the present. Second, in terms of the formation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the family relations, this article explicates the background of the influx of foreign workers in the early 1990s and briefly discusses the formation process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their family relations. Third, in terms of the cultural adjustment of multicutural families, this article inquires into the cultural adjustment of female marriage immigrants and the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and draws out a conclusion that bilingual acquisition of the children will be helpful in enhancing the nation's competitiveness in the future. As a result, international marriages around the Korean War, the influx of foregin workers in the early 1990s and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the international marriages with the opening of the 21st century account for the Korean society’s change into a multicultural society, and an inclination to assim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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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시대의 단군연구

          권상우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2 민족문화논총 Vol.0 No.52

          논문에서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단군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기존 단군연구에서는 대개 단군을 단일민족성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군상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을 뿐이며,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단군상은 독립운동의 이론적, 종교적 기반이면서 한민족의 단결성을 강화시키는 동력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단군상이 일제강점기에는 시대적 의미를 지닐 수 있었지만, 다문화사회에서에 진입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군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단군은 민족성의 상징체이며, 민족성은 사회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고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존재하는 의미를 알게 해 준다. 그렇다면, 민족의 시원인 단군신화를 단일적인 민족, 또는 폐쇄적인 민족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소통적인 민족성의 지평에서 새롭게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단군문화가 외래문화와 상호작용 또는 융합의 과정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단군신화와 이와 관련 있는 관련된 풍류도, 낭가 등에서는 혈통주의적 민족성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다문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문화사회에서는 토착문화의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자신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상징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상징체계를 단군과 단군문화를 재해석하면서 창출해 낼 필요가 있음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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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전남의 근대 누정 연구

          권수용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민족문화논총 Vol.0 No.45

          In Honam area, there remain many Nujeong which were cultural institutions of our ancestors. There remain 630 Nujeong or more in Gwangju and Chonnam province at the present time, and adding Nujeong disappeared till now, about 2500 Nujeong has been built in this area. Among those, the number of Nujeong built at the modern age is over a third part of total Nujeong numbers. The modern age, like this, was an important period for Honam Nujeong culture to be stable; nevertheless, there has been no interest about it because of several reasons: that is, its history is not long and a person building Nujeong was not famous, etc.. Then, most of Nujeong that building date is not long has been disappeared to the back of history without being known its name. A Nujeong was a place for many people to associate each other with a poetry, for a conversation leading a society to be made, and also to cultivate younger students. The culture like this was not suddenly happened at the modern age but originated from Goryeo dynasty and developed in Choseon dynasty and has been continued to now as cultural spirit. To understand the present state of a modern Nujeong culture, like above, is also to investigate a character of Honam culture. We must, hence, prevent our excellent legacy of culture from being lost with a special concern before it disappears. However, a large number of a modern Nujeong and a collection of individual works remain fortunately up to now and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totally those. It become possible to make clear principal Nujeong writers and major Nujeong with understanding totally the present state of modern Nujeong. At the same time, it was possible to investigate by studying a Nujeong poem how our ancestors had self-discipline and associated with neighbors and has been doing cultural activities in a natural space of a Nujeong. Many people built a Nujeong and most of a talented man took part in writing Nujeong poetry and prose in the modern age. But, the reason for them to act like this may be to pride themselves on personal relationships and to raise a power of their families. This is different from the previous generation in the meaning of a building intention, and must be said to be unique phenomena of culture in the modern age. 호남지역에는 우리 선조들의 문화공간이었던 누정이 많이 남아있다. 광주・전남지역에는 현재 630여 곳 이상이 남아있으며, 그동안 사라진 것까지 합쳐보면 2500여 곳에 이르는 누정이 세워졌다. 그중에서 근대기에 건립된 누정은 전체 누정수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처럼 근대기는 호남 누정문화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데도 그동안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거나 잘 알려진 인물이 지은 경우가 아니었다는 이유 등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건립연대도 오래지 않은 대부분의 누정들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누정은 많은 사람들의 시적 교유 현장임과 동시에 그 사회를 이끄는 담론이 형성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공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근대기에 이르러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멀리 고려시대부터 생겨났으며 조선시대에 발전해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문화의 큰 맥이다. 이와 같은 근대기 누정문화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은 근대 호남문화의 특징을 구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들은 자료가 사라지기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훌륭한 문화유산이 더 이상 유실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이 시기에 건립된 누정이나 개인 문집이 많이 남아있어서 전체적인 파악이 용이한 편이다. 근대기 누정의 전체 현황파악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주요 누정작가들과 주요 누정들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누정을 중심으로 주로 어떤 활동들이 있었는가를 밝힐 수도 있다. 또한 누정시문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이 누정이라는 자연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을 수양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문화 활동을 해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 근대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정 건립 활동을 하였고, 또 대다수의 인물들이 누정시문의 창작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누정의 건립 목적이 전대에 비해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고 가문의 위세를 드높이고자한 의도도 내포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기에 나타나는 특이한 문화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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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지역 술두루미와 혼례 음식 교환 방식의 문화지도와 그 의미

          강정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9 민족문화논총 Vol.0 No.42

          In this article I made some cultural maps of the Suldurumi and the exchange pattern of the wedding food in the Kyungbuk Province. Through this work I aimed to give basic informations for the study of the pottery and the traditional wedding ceremony. In addition I wanted to know the meaning of the cultural area. The Data for this paper was collected through the questionaire that is not used generally under the modern Korean anthropologists. It was collected firstly through the direct conversation, secondly per mail. For this work I choose one village per Myeon, so in 225 villages questionaires were filled through the direct conversation. Per mail I could get only 20 questionaires of all 200 which were sent to the elementary school in all Myeon. I think this method makes my paper different from the other anthropological papers in Korean produced by the case study method. In Kyungbuk Province there are two cultural areas in the east and the west. The middle zone can be considered as transition zone is normally composed of Yecheon, Andong, Chongsong, Eusung, Chilgok, Chongdo Kuns. While in the east zone the ceramic bottles for the Japanese Sake were used already in the 50es as transport instrument for the ceremony alcohol, the traditional Suldurumi was used till 70es in the west zone of the Kyungbuk Province. I think that this process began from the Yangban in the east zone, and it was imitated by the ordinary people. Through cultural maps I have known that this process was different in line with the zone. In the west Zone it went on slowly, because there was a relative little tension between the Yangban and the peasant. In conclusion I think that the regional specialities, which came into view through the cultural map study,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in the studying of the traditional Korean folk cultures. 본 논문에서는 술두루미와 혼례 음식 교환 방식에 대한 경북지역 문화지도를 작성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평면적인 문화지도에 시간과 사회적 관계라는 요소를 도입하여 좀더 입체적으로 설명을 하고자 했다. 본고의 연구대상 시기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가 되며, 기초자료는 각 면마다 한 개의 마을을 선정하여 수집하였고, 우편을 통한 설문조사 작업도 병행하였다. 술두루미와 혼례에 관련해서 보았을 때, 경북에는 크게 안동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수가 있으며, 안동의 동쪽 지역은 청송에서 영덕을 잇는 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안동은 경북에서 문화 중심지로서 술두루미를 유리대병으로 교체하는 데에 중심 역할을 하였다. 안동의 동쪽은 대부분의 술두루미가 유리대병으로 교체되었지만, 서쪽에서는 술두루미가 70년대까지도 사용되었다. 안동을 포함해서 안동 동쪽 지역에서 술두루미가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목이 긴 형태를 보여 준다. 경북의 동쪽 지역은 경주권과 안동권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안동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나타나지만, 안동의 북부지역은 유교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주며, 경주 지역은 좀더 남성 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각 문화권 내 계층 사이의 모방과 차별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형성된 것인데, 안동의 치열한 계층 갈등은 계층 사이의 모방 속도를 빠르게 하여 술두루미가 유리대병으로 이른 시기에 교체되는 현상을 가져 왔다. 김천이나 성주는 안동과 달리 계층 사이에 갈등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나타나서 농민들의 경우 오랜 시기 술두루미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고는 문화지도를 통해서 경북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 데에 첫 번째 의의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 전통문화를 연구함에 문화권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 데에 본 논문의 두 번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적 특수성을 무시할 경우 현상을 왜곡 해석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 KCI등재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한국정신문화 이해 교육 연구

          나채근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6 민족문화논총 Vol.62 No.-

          Pungryu Spiritual Culture, which has been Korea’s original spiritual culture, is an archetype of the collective moral and spiritual energy of Koreans. It is the basis of the people’s religion, lifestyle, and emotions. However, owing to a lack of academic materials, the origin and characteristics of Pungryu Spiritual Culture have not been accurately studied, and many of its intrinsic properties have been lost or distorted.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make a persuasive inquiry into the essence of Pungryu Spiritual Culture with the help of A.N. Whitehead’s philosophy of organism. In contrast with the views of other substance philosophies that regard an unchanging, permanent thing as a ‘real thing’, Whitehead’s philosophy of organism holds the perspective that considers process and creation as a real thing. By applying the philosophy of organism to the character of Pungryu Spiritual Culture, I try to define ‘Shinmyoung’ (subject-superject’s creative vitality) which makes up the core components of Pungryu Spiritual Culture. Shinmyoung occurs naturally in the emotional wholeness of body and spirit This study also formed the foundation of a course for foreign students, involving reading 「A Shaman’s Story(무녀도)」 which describes the characteristics of ‘Shinmyoung’ . Through the learning processes of reading, dialogue, and discussion, students were able to improve their thought and cognition, and develop a logical and critical understanding of Shinmyoung. Through the extension of their cognition, they also gained a deeper intercultural perspective.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은 생성과 과정을 실재(reality)로 보는 철학적 관점을 지닌 실천적인 사변철학이다. 필자는 이러한 유기체 철학적 개념을 통해 풍류정신문화의 핵심요소인 ‘신명’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신명은 고정된 틀과 격식에서 벗어나 내재해 있는 정서적 정신적 생기의 표출에서 생기는 감정과 느낌인데, 이러한 감정과 느낌을 통해 주체와 대상의 벽을 허물어트림으로써 삶의 새로운 창조적 생명력은 생성되는 것이다. 또한 풍류정신문화의 ‘신명’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고 있는 김동리의 「무녀도」를 선정하여 한국어학습자들과 독서하는 학습과정을 구성하였다. 한국어학습자들은 학습과정에서 독서와 대화와 토론과정을 거치며 풍류정신문화의 신명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사고를 확인하고 수정・변환시켰으며, 신명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이해를 발전시켰다. 아울러 자신의 인식과 사고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간문화적 시각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 풍류정신문화는 한민족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신앙이자 정서이며 생활양식이었다. 그러나 풍류정신문화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명확한 학문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풍류의 고유한 특성은 상실되고 왜곡되어왔다. 따라서 민족의 정신적 토대를 형성해 온 풍류정신문화의 본질을 설득력있게 탐색하는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에 풍류정신문화가 결핍하고 있는 정합적, 실용적 체계를 갖춘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통해 한국 풍류정신문화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규정해보고자 한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은 생성과 과정을 실재(reality)로 보는 철학적 관점을 지닌 실천적인 사변철학이다. 필자는 이러한 유기체 철학적 개념을 통해 풍류정신문화의 핵심요소인 ‘신명’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신명은 고정된 틀과 격식에서 벗어나 내재해 있는 정서적 정신적 생기의 표출에서 생기는 감정과 느낌인데, 이러한 감정과 느낌을 통해 주체와 대상의 벽을 허물어트림으로써 삶의 새로운 창조적 생명력은 생성되는 것이다. 또한 풍류정신문화의 ‘신명’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고 있는 김동리의 「무녀도」를 선정하여 한국어학습자들과 독서하는 학습과정을 구성하였다. 한국어학습자들은 학습과정에서 독서와 대화와 토론과정을 거치며 풍류정신문화의 신명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사고를 확인하고 수정・변환시켰으며, 신명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이해를 발전시켰다. 아울러 자신의 인식과 사고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간문화적 시각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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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교 후보생의 다문화 경험에 따른 다문화 인식 및 다문화 군대에 관한 태도

          김정수,박진옥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5 민족문화논총 Vol.61 No.-

          The purposes of this study are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multicultural experience on the multicultural awareness and attitude toward multicultural military among military officer’s cadets. The subjects in this study were the students of military studies and ROTC cadets in the regions of Gyeongbuk province. A structured survey was conducted to gather data.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degree of military officer’s cadets’ multicultural awareness are middle levels. And multicultural education effected multicultural awareness. Second, the military officer’s cadets’ attitude towards multicultural soldiers were a positive but it is more negative than the active duty soldiers’. Third, it effected by multicultural education on the necessary of soldiers’ education for multicultural military. Therefore, it is essentially required to multicultural education for military officer’s cadets and develop the programs that would enhance the effectiveness of multicultural awareness. 본 연구는 장교 후보생의 다문화 경험에 따른 다문화 인식과 다문화 군대에 관한 태도를 분석하기 위해 경상북도 소재 대학에 재학중인 군사학과 학생과 학군사관후보생(ROTC)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교 후보생의 다문화 인식 정도는 중간 정도(3.43)로 나타났고, 다문화 경험이 있는 경우가 다문화 인식의 모든 영역인 ‘다문화현상 이해’, ‘다문화수용 인식’, ‘다민족 선호태도’에서 다문화경험이 없는 경우보다 이해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장교 후보생의 다문화가족 장병에 대한 태도는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나타났으나 현역장병과 병사보다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다문화 군대 정착을 위한 장병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문화 교육 경험, 다문화 관련 행사 참여 경험, 외국인과의 교류 경험이 있는 장교 후보생이 경험이 없는 경우 보다 다문화 군대 정착을 위한 장병 교육의 필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다문화 경험은 장교 후보생 자신의 다문화 인식뿐만 아니라 다문화 장병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형성과 다문화 군대 정착을 위한 장병 교육의 필요성 인식 형성에도 주요한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이 후보생 과정에서 풍부한 다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문화 학생과의 교류나 행사참여, 다문화 강사 초빙교육, 다문화 관련 봉사활동 등의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현행 ROTC 장교양성교육과 군사학과 교육 과정에 다문화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이 전무한 현실을 볼 때 후보생 교육과정에 관련과목을 개설하거나 교양 및 선택 과목으로 수강과 앞에서 제시한 다양한 다문화 경험을 통해 장교 후보생들에게 다문화가족병사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는 것이 다문화 군대로의 전환대비에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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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신화’에 나타난 美意識 연구

          황지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3 민족문화논총 Vol.0 No.55

          Dangun-myth is precious data which reads out the original form of collective unconscious that Han-ethnos has, and at the same time, it can act on indicator which draws effective communication and fusion with different nationality and culture by securing standard of universal value which can apply to multicultural modern societ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search potential aesthetic consciousness from Dangun-myth and to examine how such aesthetic consciousness is molten in inherent sentiment of our nationality, and furthermore, it can be expanded into esthetic value which can be accepted generally to multicultural modern society. To analyze aesthetic consciousness expressed in Dangun-myth, we need to access to two courses. First, we can look for esthetic consciousness which content itself of Dangun-myth presents; second, we should examine what is aesthetic consciousness at which our ancestors aim through understanding of the world view and human which forms the foundation of mythology. Consequentially, we can organize that typical esthetic sense which Dangun-myth itself shows is sublimity, and we can find out harmonious aesthetics and unitive it in world view and view on human of tradition of our nation on which Dangu-myth bases. The Hongik-Ingan(弘益人間: the extension of human welfare and harmony) philosophy, Jaese-Ihwa(在世理化: the going well beings by reasoning in the world) should be not only limited to our nation but also universal values which is applied to whole mankind in common. To achieve this, it does not limit “nation” to blood ties, it need to extend to whole culture. Even though it is not establish blood, if it has relations, our affectivity, culture, and a common denominator throughout living, catholicity which can subsume under ‘our’ category need. It is not one-sided unity through conflict and struggle, but to realize unitive aesthetics which is based on harmony, it is to be the way that conveys essential meaning which is inherent in Dangun-myth. 단군신화는 한민족韓民族이 지니고 있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읽어내는 소중한 자료이며, 동시에 현대 다문화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확보함으로써 다른 민족, 다른 문화와의 효과적인 소통과 융합을 이끌어내는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단군신화를 분석하여 그 속에 잠재된 미의식을 찾아내고, 그러한 미의식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에 어떻게 녹아 있으며, 나아가 현대 다문화사회에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심미적 가치로 확대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미의식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단군신화의 내용 자체가 드러내는 미의식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신화의 근저에 깔려 있는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지향하고 있는 미의식이 무엇인지를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단군신화 자체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미감은 ‘숭고미’로 정리할 수 있고, 단군신화가 토대로 하고 있는 우리 민족 전통의 세계관과 인간관에서는 ‘조화미’와 ‘일체미’를 발견할 수 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은 우리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혈연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문화 전반에 대한 것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비록 혈연적 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생활 전반에 걸쳐 동일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대립과 투쟁을 통한 한 방향의 통일성이 아니라 조화에 바탕한 일체미를 실현하는 것이며, 단군신화에 내재된 본질적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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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베트남 문화교류의 흐름에서 본 양국 전통음악 교류의 현황과 특성

          서인화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민족문화논총 Vol.0 No.46

          While exchange of traditional music between Korea and Vietnam was indirect during Joseon dynasty(1392-1910), it became not only direct but also very active and varied since 20th century, especially sinc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ties between two countries in 1992. Korean wave which began in the late 1990s and the effort made by Korean cultural center in Hanoi influences on the exchange of traditional music between Korea and Vietnam. More people learn Vietnamese, more Vietnamese culture appear in Korean mass media and more books on Vietnam are published in Korea. This phenomenon is different from Korean wave in Vietnam. But, it clearly shows Vietnamese image to Korean people as a business partner and one ethnic group living with Korean in a multi ethnic age. Performance of Vietnamese traditional music was increased in Korea with the growing number of international festivals. The policy of Korean government to solve the problem of Korean wave such as ‘Cultural Partnership Initiative’ (CPI) project since 2005 gave a chance for many Vietnamese artists to associate with Korea. Meanwhile, the establishment of Korean-ASEAN traditional music orchestra which was born in 2009 along with the rising position of ASEAN in Korea the poses a new question about Asian musical identity. Until now more folk music was performed than court and aristocratic music except rare performance of Nha Nhac and Aak both in Korea and Vietnam shows for each others. Even one can say that the audience didn’t leave the traditional music performance place only when they were performed in the same stage as popular music. However, considering the fruit of CPI project and the interest in Nha Nhac and Aak of both countries, the exchange of traditional music between the two nations will be broadened from folk music into Nha Nhac and Aak,Also, Vietnamese view over economic success of Korea and the pride of Vietnamese people about victory in Vietnamese war which lie in the background of Korean wave in Vietnam, and Vietnamese interest in Korean culture regardless of their age and gender would help the exchange of music between Korea and Vietnam become more diverse including Nha Nhac and Aak, Also, Korean people’s concern over Asian culture and realization of multi ethnic age. 조선시대에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던 한국과 베트남의 전통음악 교류는 20세기에 들어서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92년 한・베트남 수교가 이루어진 이래 양국간의 전통음악 교류가 빈번해졌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베트남 내 한국문화와 한류의 특성, 그리고 문화교류를 위한 베트남한국문화원의 노력은 전통음악 교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베트남어 학습, 베트남을 다루는 대중매체, 그리고 도서 발간의 증가 현상은 베트남에서의 한류와는 다르지만, 경제교류의 파트너로서 베트남, 그리고 다문화시대의 더 큰 우리로서의 베트남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베트남 전통음악 공연 역시 국제 축제가 늘어나면서 증가하게 되었다. 더욱이 2005년부터 추진되어 온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동반자사업은 많은 베트남 전문연주자들이 한국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국내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아세안의 위치가 중요하게 부상하면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에서 창단한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는 한국과 베트남 음악을 포함한 아시아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베트남 전통음악 교류 양상을 보면, 드문 냐냑(Nha Nhac) 공연을 제외하고는 주로 민속음악을 위주로 공연되어 왔다. 게다가 양국의 전통음악은 2009년 한-베 우정페스티벌에서처럼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의 힘을 입어서 공연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화동반자사업 등 사업의 성과, 그리고 아악과 냐냑에 대한 양국의 관심을 고려할 때 앞으로 두 나라에서 소개되는 전통음악은 양국의 민속음악에서 아악(냐냑)에 이르기까지 점차 폭넓고 깊이 있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베트남인들이 가지는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베트남인의 전쟁 승리를 동일시하는 자부심과 동질감이라는 베트남 한류의 이면, 그리고 남녀노소의 구분 없는 베트남인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한국인들의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다문화시대에 대한 각성은 한국과 베트남 전통음악 공연의 다양화와 심화를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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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문화로의 회귀-檀君神話, 風流道, 巫俗의 세속화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권상우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3 민족문화논총 Vol.0 No.55

          한국사는 외래문화의 수용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주체성을 지니고 외래문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사에서 보면 외래문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단군신화의 심리체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단군신화에서의 민족성이 주체적으로 외래사상을 수용한 사례를 풍류도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풍류도의 원류는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에 근거한 것이다. 풍류문화에는 주체적으로 외래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 주체성과 포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풍류문화가 왜곡되면서 노예의 문화로 전락하게 된 원인을 무속적 문화심리와 관련해 논의하였다. 무속신앙의 어떠한 문화체계가 외래문화를 수용하지 못하게 하였는지 살펴보고, 그런 후에 한국문화가 주체적으로 외래사상을 수용하기 위해 단군의 문화체계로 회귀해야 함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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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西文化會通與傳統文化復興 —一種反思性考察

          부영군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0 민족문화논총 Vol.0 No.46

          今天, 在中國, 談到傳統文化復興, 離不開的語境是現代性, 擺脫不了的言說框架是 “中國—西方”, 而支配分析語境和言說框架的基本觀念就是近代以來所形成的文化會通的 “中心—邊陲”模式。它們構成了分析中國傳統文化復興的隱性前提。對這些隱性前提的分析表明, 無論是中國的現代性語境, 還是 “中國-西方”兩元言說框架以及 “中心—邊陲”文化會通模式或多或少都包含著中斷中國文化傳統的無奈和致力創造一種中國化的西式新文化的強烈衝動, 結果導致中國文化迷失了自我本位和主體性。因此, 必須拋棄陳舊的 “中國-西方”二元言說框架, 解構 “中心-邊陲”文化會通模式, 將其重構為體現互主體性原則的 “中心與中心”模式。這種解構與建構是全球化時代, 人類不同文明或者文化之間交流與對話所需要的基本前提。基於這種識見, 凝練共識, 尊重差異, 構造一種多元交疊的共存型文化生態, 充分保持地方性文化的原生態, 已經由共識、宣言變成實踐、行動。而堅持一種 “閾限意識”, 即清醒地意識到, 任何一種文化傳統的不完滿性和有限性, 則是完成這一神聖行動所必須遵守的首要原則。任何一個民族, 只要持守這個原則, 在文化上就既不會自卑自棄, 走向文化虛無主義, 也不會自狂自癲, 任文化原教旨主義肆虐。而理性、平等、寬容的精神就會自然而然地在這個民族文化根身處生根發芽, 成為任何其優先選擇的文化建構與發展的戰略與策略, 而一個多元交疊並存的文化生態共同體的形成也因之就具備了堅實的理性基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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