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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子와 退溪의 性理思想 比較 : 張伯行의 『續近思錄』과 星湖 李瀷 『李子粹語』를 중심으로

        임종진 慶北大學校 退溪硏究所 2007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1 No.-

        朱子와 退漢 李滉의 性理思想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측면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해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나타 나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는 종래의 비교 연구와는 조금 다른 방식인 間接的 比較라는 방식으로 양 인물의 성리사상을 비교해 보았다. 간접적 비교 방식은 제3의 인물들이 저술한 주자와 퇴계에 관한 저술을 분석자가 다시 대조해서 비교하는 방식이다. 이 경 우에 우리가 주목한 문헌은 중국 淸代의 인물인 張伯行의 『續近思錄』과 朝蘇의 인물인 星湖 李灌의 『李子합語』 이다, 그런데 간접적 비교 방식은 편집자의 관점의 문제, 비교 문헌의 적합성 문제 등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 연구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 나 18세기 초 한 ? 중 양국의 성리학자들의 시각에서 선택된 주자와 퇴계사상의 要課을 비교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오히려 어떤 맥락에서는 그 의미를 더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방법을 주자와 퇴계의 ‘異端批判’과 관련된 부분에 실험적으로 적용 한 결과당연히’ 먼저 양자 사이의 이론적 동일성을 확인하였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양자 간의 의미 있는 미묘한 차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본 논문에서 행한 작업의 주요한 목표는 이단과 관련된 부분에서 주자와 퇴계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그렇게 만족할 만한 정도는 되 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으로 이러한 실험적 비교 방식을 성리학의 또 다른 이 론과 실천 분야에 적용해 본다면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It has been judged that basically the Neo-Confucian Thoughts of Chu Tzu and Toegye had many similar aspects. Even then, if we take a deeper approach, we can see some different aspects from them. In this research paper, I have examined the Neo-Confucian Thoughts of both thinkers with an indirect comparative method which is slight different from hitherto way of comparative study. The indirect comparative method is that the analyst compare and contrast those works on Chu Tzu and Toegye studied by third persons. In this case, the works that we have observed are a Ching Dynasty scholar, Chang Po-hsing's Hsu¨chin-ssu lu and a Choson Dynasty scholar, Sungho Yi-Ik's Yija-sueo. Then, in this kind of indirect comparative method, there could not but be some limits of comparative research. They are the problem of editor's perspective, the suitability of compared books etc. However, in the sense that this method takes its object of comparison from the essential summaries of the thoughts of Chu Tzu and Toegye, it can have rather more bountiful meaning in some context. Thus as a result of the experimental application of this method to the part of Chu Tzu and Toegye's heterodoxy criticism, we could 'by right' make sure the theoretical identity of both, and in the midst could find out some meaningful and delicate differences between them. One of the major objects of this study is to figure out the difference between Chu Tzu and Toegye in regard to heterodoxy, but the research result seems not to be so satisfying. We just expect further meaningful fruit if we apply this kind of experimental comparative method to other theories and practical ficlds of Neo-Confucianism.

      • KCI등재

        만구 이종기의 성리사상

        임종진 대한철학회 2004 哲學硏究 Vol.89 No.-

        This article aims at understanding Mangu Lee Jong-Gi(1837-1902’s Neo- Confucian thought. Lee Jong-Gi was a scholar of the school of Toegye in Youngnam area in the 19th century. Lee Jong-Gi’s Neo-Confucian thought is a system of his interpretations of Chu Hsi’s and especially Toegye Lee Hwang’s Neo-Confucian thought. His thought can be divided into the theory of li-ch’i and, the theory of human mind and nature. It is expressed well in his letters addressed to Lee Jin-Sang(1818-1886), and Kwak Jong-Suk(1847-1916), and in his miscellaneous writings.Toegye’s advocacy of the mutual movement of li and ch’i refers to no other than the manifestation of li and movement of ch’i. In contrast, Yulgok Lee I’s view of li and ch’i is different widely from that of Toegye. Yulgok’s view of li and ch’i bases itself on the view that only ch’i moves by its own energy being governed by li. Lee Jong-Gi agrees with Toegye’s viewpoints and could not but criticize Yulgok’s theory by way of clarifying Chu Hsi’s and Toegye’s theory of li-ch’i.And Lee Jong-Gi criticizes Lee Jin-Sang, a prominent Neo-Confucian scholar of the his period. Lee Jin-Sang asserts that mind is li. This had been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issues in the academic circle of Neo-Confucianism in Youngnam area in the 19th century.Lee Jong-Gi emphasizes the orthodox views of the school of Toegye through the criticism of two prominent Neo-Confucian scholars of the Chosun period, Lee I and Lee Jin-Sang. 만구 이종기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19세기 말 영남의 퇴계학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학문적 업적은 생각 이상으로 높이 평가될 여지가 많다. 이종기의 학문 세계는 이기론과 심성론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황의 성리학을 충실하게 계승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황의 주리론적 입장을 따르고 있지만 지나치게 리와 기만을 중요시한 ‘主理’, ‘主氣’ 양쪽의 이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물론 주기론에 대한 비판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차츰 리만을 중요시 하여 리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퇴계학파 내의 주리론적 경화 현상에 대한 주리론 내부의 자기반성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대표적인 영남의 유학자들과 긴밀한 학술적 교류가 있었으며, 특히 한주학파와의 논변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껏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면 퇴계학파 내의 유력한 분파에 직접 속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복추ㆍ이진상ㆍ김흥락 등 기라성 같은 한말 퇴계학파 후예들과 곽종석ㆍ이승희 등 그 다음 세대에 가려진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지리적으로 볼 때 현재의 고령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이진상의 한주학파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퇴계사상의 본래적 입장에 충실하면서 이진상 및 그의 문인들과 치열한 성리학적 논변을 전개하였다. 이종기와 이진상 및 그의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그 당시 퇴계학파 내에서 한주학파와 비한주학파 사이의 성리학적 이해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주로 이종기 자신의 성리학적 관점이 간결하게 담겨있는 그의 글을 통해서 그의 성리사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종기는 대산 이상정 이전의 보수적인 퇴계사상의 수용을 기본으로 해서 율곡학파(기호학파)의 주기론적 경향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퇴계학파 내에서도 지나치게 리 중심의 경향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는 이진상 계열의 성리학적 견해를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서 이종기는 주자학-퇴계학 계열로 이어지는 이른바 ‘性理學的 正脈’의 본 모습을 다시 한번 환기시킴으로써, ‘퇴계학의 보수적 계승자’의 위치에서 당시 한말 영남 유학계의 사상적 중심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KCI등재
      • KCI등재후보

        퇴계 이황의 『송계원명이학통록』에 대한 기초적 분석

        임종진 영남퇴계학연구원 2015 퇴계학논집 Vol.- No.17

        퇴계 이황의 성리학 관련 저술 활동에서 주목할 것은 『주자서절요』와 『송계원명이학통록』(『이학통록』)이다. 『주자서절요』는 10년 이상 이루어 진 퇴계의 『주자대전』에 대한 연구의 최종 결과물인 셈이다. 그리고 ?주 자서절요?의 편찬을 완료하고 나서 3년 후에 퇴계는 『이학통록』의 편찬 에 착수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나의 연속되는 과정으로 본다면, 『주자서 절요』는 주자의 편지글을 중심으로 성리학을 일차원적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물이며, 『이학통록』은 성리학의 계보까지도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다차원적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학통록』이 미완성의 상태로 전해지게 되었 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는 특히 퇴계의 ?이학통록서?와 그의 제자 월천 조목의 ?이학 통록발?을 주요한 기본 자료로 삼아서 논의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퇴계 는 『이학통록』을 편찬한 목적을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주자의 문인들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道學의 요체를 밝 히기 위해서이다. 셋째는 주자가 僞學으로 탄압받는 상황에서도 배움을 청하여 주자의 가르침이 드러나도록 한 공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월천은 ?이학통록발?을 통해서 『이학통록』의 기본적인 구성 상태와 간행 동기, 초기 간행 경위 그리고 수정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였다. 아울러 『이학 통록』의 내용과 관련해서 몇 가지 보충설명을 덧붙였는데, 이것은 미완 성의 상태로 남겨진 것에 대한 아쉬움, 달리 말하면 『이학통록』의 한계 점을 지적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학통록』은 퇴계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조선조의 여러 대표적인 유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조선조의 학 술사에서 『이학통록』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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