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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退溪의 《梅花詩帖》 賞析

        洪瑀欽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1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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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李滉(1501-1570)은 16世紀朝鮮文壇에서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理學者였다. 그는 자신의 천성과 학술적인 의취에 의해 특별히 매화를 좋아하여 상당히 많은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 니라 또한 64題91首의 자작 매화시를 자필로 초사하여 한 권의 《梅花詩帖》을 간행하기까지 하였다. 때문에 이《梅花詩帖》은 후대에 매우 깊고 넓은 影響을 끼치게 되었다. 1983年, 필자가 〈李退溪梅花詩帖硏究〉이란 논문을 써서, 《梅 花詩帖》을 소개한 뒤에 여러 학자들이 계속 退溪의 梅花詩를 연구하여 적지 아니한 학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까 지의 연구 성과는 퇴계이전 한중 역대 문단에서 전해온 매화문 학의 배경과 퇴계가 힘을 다해 추구했던 理氣心性과 결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주목할 만한 견해를 제기하지 아니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퇴계의 매화시를 연구해도 그 것이 지니고 있는 미적인 진면목에 접근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 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 퇴계 이전 한중 문단에서 전해온 매화를 주제로 한 시문학을 소개함과 아울러 퇴계가 일관되게 주장한 「사단은 이에서 발현한 것으로 착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四端, 發於理而無不善.)란 철학적인 논리를 매화시와 결부시킴으로써 퇴계의 매화시에 내포된 철학적인 특 수 함의와 미학적 가치를 탐색해 보았다.

      • 退溪 漢詩 硏究의 現況과 課題

        김영숙 영남퇴계학연구원 2007 퇴계학논집 Vol.1 No.-

        Toegye(退溪) Lee Hwang(李滉: 1501~1570) left 2,230 Sino-Korean poetries. These are relatively a lot in Sino-Korean literature history. Therefore, there are 130 works of researches on Toegye's Sino-Korean poetries. Basic research including original copies work, unearthing work, index work, assorting works by date were also conducted. Studies for poetry of maehwa, general Sino-Korean poetry, poetics, relations to literature have been conducted in relation to natural beauty. However, existing researches should be reviewed, and new and various research method should be used to totally reinterpret Toegye's Sino-Korean poetries. Toegye's poetry should be translated and 'Dictionary for Toegye's poetry words' should be published for younger students to read and study Toegye's poetry easily. 'Hwadap(Responding) Poetry' and 'Seol-ri (Intelligential) Poetry' should be researched a lot. Academy journal should be more published and other studies related to Toegye poetry should be adopted to extend literature. Especially, study to find philosophy shown in poetries should be conducted. Until now, it has been too much emphasized that Toegye is oriental philosopher and it is relatively neglected that Toegye is poet. From now on, study on poetry will find that Toegye is a poet and philosopher. Literature and philosophy should be complementary each other through the study on Toegye's poetry. 퇴계 이황(1501~1570)가 남긴 한시는 2230여 수이다. 한문학사상 매우 많은 작품을 남긴 편이다. 퇴계의 한시 연구도 130여편으로 많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본 작업, 작품발굴 작업, 색인 작업, 연월일별 작품재정리 등 기초연구도 이루어졌다. 작품연구에서도 자연미와의 관련, 매화시, 한시일반, 시학, 문학론과의 관련 등 분야별 연구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연구방법과 다양한 연구로 퇴계한시를 총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퇴계시 번역을 계속해야 하고, 『퇴계시어사전』을 발간해서 후학들이 쉽게 퇴계시를 읽고 연구할 수 있게 해야한다. 앞으로는 ‘화답시’와 ‘설리시’를 많이 연구하여야 한다. 연구학술지도 많이 발간해야 하고, 퇴계시와 관련된 다른 연구도 수용하여 문학적인 모습이 더 확산되게 해야 한다. 특히 시에 나타난 철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연구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작가 퇴계가 철학자라는 점이 너무 강조되고 시인이라는 점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앞으로는 시연구를 통해 퇴계는 시인이면서 철학자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퇴계의 시연구를 통하여 문학과 철학의 상보적이고 발전적인 연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 KCI등재

        인성함양의 관점에서 고찰한 퇴계의 리발설과 율곡의 기질변화론

        강보승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2

        Previous studies which relate education for humanity to philosophy of Toegye and Yulgok have a common problem that connection between theory and practice are loose. To solve this problem, this study firstly tried to show the relation between Toegye's self-expression of principle and education for humanity as well as practices based on that relation. Secondly, this study strives to examine Yulgok's transforming the temperament and self cultivation methods. Thirdly, this study listed the current messages from two great philosophers to modern education for humanity. Toegye, by the theory of self-expression of principle, asserted that good human nature is the driving force of morality and ethical behavior. He also said that establishment of morality should be based on the principle of human nature. When it comes to the practice of education for humanity, however, he focused on the issue of temperament. And he suggested reserving Reverence(居 敬) based on his own theory. Yulgok tried to cultivate himself by transforming the temperament. He argued that in his theory of behavior, temperament expresses itself and the principle follows. The result is emotion, and it leads to the will and behavior in sequence. He focused on the junction between emotion and will, trying to making the will sincere. Although there seems to be a contradiction between the theory of Toegye and that of Yulgok, they have common belief that education for humanity should be pursued in the perspective of temperament in practice. Reserving Reverence(居敬) and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both seek to transform the temperament in good way. In conclusion, to these philosophers, the ground of education for humanity is concerned with principle whereas methodology of that education is in relation with temperament. 퇴계․율곡의 철학과 인성교육을 접목한 기존의 연구는 대개 이론이나 구체적 방법론 탐구의 한 측면에 치중함으로써 이론과 실제의 연결 고리 가 느슨하다는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퇴계 ‘理發說’의 함의와 인성함양의 관 계를 밝히고 이를 토대로 퇴계가 제시한 인성함양의 방법과 실제를 살펴 보았다. 다음으로 율곡의 ‘기질변화론’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인성함양 방법을 살피고 퇴계․율곡의 철학이 현대 인성함양에 있어 어떤 점에서 유의미한지 고찰하였다. 퇴계는 리발설을 통해 순선한 본성이 우리에게 내재해 있고 그 본성 이 心의 핵심이자 도덕적 의식과 행동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임을 제시한 다. 그러면서 도덕 주체 확립을 인성함양의 토대로 삼고 ‘리’와 ‘사단’에 기반을 둔 도덕 행위의 완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성 함양의 실제에 있 어서 퇴계는 기질의 문제에 집중한다. 이에 따라 퇴계는 인성함양의 체 계를 ‘거경’을 중심으로 제시하면서 動時와 靜時를 포괄하는 인성함양 방법을 수립하였다. 또한 거경에 입각한 구체적 인성함양의 실천 방법으 로 ‘灑掃應對’와 ‘靜坐’를 제시하고 있다. 율곡은 본성 회복의 역할을 氣에 부여하고 기질의 변화를 통해 인성 을 함양하고자 하였다. 율곡은 도덕 행위 발출 機制를 ‘氣發理乘→情→ 意→행위’의 단일 경로로 제시하는 한 편, 기질변화에 있어 情에서 意로 이어지는 부분에 집중하여 意의 참됨을 추구하였다. 이에 따라 인성함양 의 핵심을 ‘리의 지각과 誠意’에 두고 理를 근거로 변화된 순선한 心意 를 도덕 행위의 동기로 삼고자 하였으며, 이에 따라 인성 함양의 실제에 있어 立志와 讀書를 강조하였다. 리발설을 중심으로 하는 퇴계의 인성함양론과 기질변화론을 중심으로 하는 율곡의 인성함양론은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쉬우나 양자 모두 인성함양의 실제를 氣상에서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퇴계의 거경과 율곡의 誠意모두 체화된 자기 주재력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기’ 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 退溪 文學批評 硏究의 現況과 課題

        이정화 영남퇴계학연구원 2007 퇴계학논집 Vol.1 No.-

        This thesis is based upon a study about Toegye's literature criticism, especially in connection with the current state and the tasks ahead. In retrospect, Toegye's literature criticism, which took its root in the morality and knowledge, by bringing on the theoretical criticism and the value of work. Toegye's was a accomplished scholar as Korean Neo-Confucianism. According to him, Korean Neo-Confucianist's consciousness is not a far cry from lifetime. Learning a poem, he was determined the right way in his life. At this point in time the most important tasks confronting us are to conduct an examination of the current state of studying Toegye's literature criticism and to make an assessment of what still needs to be done in the future. In order to accomplish this, the paper proved in-depth presentations on the study of Toegye's literature criticism to field. 퇴계 문학비평 연구의 두 축은 대체로 載道論的 관점과 學問意思가 투영된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문학이 ‘詞華’와 같이 공교로움이나 科擧 及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 퇴계의 입장에 주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이 어떠한 방식으로 心性의 바른 이치를 표현해야 하며, 심성을 바르게 도야하는데 공헌을 하는 문학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한 것에 초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학계의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학비평 연구의 성과는 儒家의 전통적인 문학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君子라야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퇴계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증명해 보임으로써 우리 고전비평사에 道學者 문학의 품격을 높인 비평가로써 퇴계의 위상을 높인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 있다. 둘째, 퇴계가 도학자라는 인식만을 토대로 한 연구논저와, 철학 연구의 일환으로 퇴계 문학을 조망한 것들 가운데에는, 퇴계가 理善氣惡이라는 인식으로 理法만 주장하여 情感조차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현실을 도외시하고 理想만을 쫓는 고루한 사람이라는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논의한 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퇴계 역시 다른 도학자들의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작품 자체의 個性을 살핀 논문들에서는 문학을 바라보는 퇴계의 진면목에 한결 근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논문들이 이룩한 연구성과에 의해 현재 퇴계 문학비평에의 연구는 載道論的 관점을 지닌 퇴계의 글에서도 法古와 新奇의 조화를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비평도 社會史와 연계되어 있음을 밝힐 수 있었으며, 杜甫처럼 民生의 어려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퇴계의 글을 추적하여 그가 지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정감의 문학을 이끌 수 있는 근간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퇴계는 당시 江西詩派와 같은 騷壇의 흐름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그만이 누릴 수 있는 시세계를 구축한 점은 理學으로 숭앙된 도학자로만 퇴계를 주목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요망하는 것이 된다. 그의 학문이 爛熟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제작한 시편 가운데서 정감이 무르녹은 작품들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정감 깊은 도학자인 퇴계 문학에 진입하는 관건이 되리라 사료된다. 퇴계의 개성이 이룩한 문학의 본질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가능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즉 정감을 아끼지 않은 퇴계의 人間美와, 載道論에 바탕을 둔 그의 확고한 논리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퇴계 문학의 개성을 구현하는지에 대해 모색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사람됨을 가르친 퇴계의 자녀교육

        퇴계,사람됨,수기修己,위기지학,자녀교육,가서家書 영남퇴계학연구원 2012 퇴계학논집 Vol.- 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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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는 생애 3,154통의 편지를 남겼다. 수신인은 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아들과 손자 등 혈족들에게도 1,300여 통의 편지를 썼다. 그 가운데 장남 이준(李寯, 1523∼1583)에게 516통을 보냈으며, 손자 이안 도(李安道, 1541∼1584)에게는 125통의 편지를 남겼다. 퇴계가 아들과 손자에게 보낸 편지는 일상적 가르침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차지한다. 즉, 이들 편지에서 퇴계는 학문적 거대 담론이나 이론적 가르침을 전수 하는 유학자로서가 아니라 때로는 자상하고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와 할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퇴계의 가서에 나타난 사람됨의 교육내용은 뜻(목표)을 세워 학문에 임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사람으로서 도리 를 지켜나가는 등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뜻을 세운다 곧 입지(立志)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현(聖賢)이 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즉 퇴계는 ‘입지란 세속적인 차원을 벗어나 보다 높은 경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학문에 임할 것을 독려했다. 몸가짐의 교육에서는 ‘나의 수양[修己]’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을 구현한다는 목적 아래 스스로를 가다 듬는 수신(修身)과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처신(處身)의 차원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는 당시 유학자들의 보편적인 처세관이기도 했다. 또 퇴계는 향촌의 사족으로서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나가기 위해 이른바 ‘공도(公道)’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래서 자녀교육에서도 법의 두려움 을 가르쳤는데, 궁극적으로는 선비로서 마땅히 지녀야할 의리(義理)정신 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일깨어 주었 다. 특히 퇴계는 도리란 인위적으로 연마하고 가다듬어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적 속성 곧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춰야할 것으로 인식 하고 있었다. 퇴계가 실시한 자녀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솔선수범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들과 손자에게 가르친 네 가지 교육덕목을 자신의 삶 에서도 철저히 실천했던 것이다. 물론 퇴계의 이런 실천적 삶은 스스로 를 단속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녀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솔선수범은 극히 평범한 듯하면서도 또 쉽게 실천할 수 없는 것이기도

      • KCI등재

        퇴계 한시작품 저작연보 작성과 작품이해의 문제

        정석태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8

        If we read the poems of Twegae one by one in the chronological order contained in Poetry Volumes 1-4 compiled based on his Sigo (詩藁), in the Twegaejip [Collection of Writings of Twegae], we can get the clear image of old scholar Twegae rather than his various images when he wrote each of different Chinese poems in different times and places. Focusing on this point, this study examined the problems of compiling Chinese poems chronologically, and of understanding Twegae's works in each Poetry Volume of wood-block printed Twegaejip, focusing on 12 poems of 'Gwagilseonsengryeo (過吉先生閭)', 'Baekamdonghwontakyeongkimgongmun (白巖東軒濯纓金公韻)', and 'Jochunhangeochajosagyeonggu Geongseo Kimsumgeo Gwongyeongsusangchangsuwoon Sipsasu (早春閒居次趙士敬具景瑞金舜擧權景受相唱酬韻十四首)' and two kinds of manuscripts, and 'Dosanjapyeong Byeonggi (陶山雜詠 幷記)'. The analysis proved that it is difficult to compile Twegae's poems in the Poetry Volumes 1-4 in the wood-block printed Twegaejip with the single criterion of 'chronicle', because those poems had been continuously revised by Twegae himself through his life, assuming that they would be contained in his posthumous collection of his works. It is not the only problem of Twegaejip. Probably, most of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which were arranged with clear chronological orders must have such problems. Considering that, in the old days, when the compiler arranged a scholar's life-long works, if a specific literary work originally written in the scholar's younger age was revised in his later life, the compiler would choose the latter one, it is very dangerous to arrange someone's life-long works only in the chronological order. 『<退溪集><詩卷>, 그중에서도 퇴계 자신의 <詩藁>를 대본으로 한 내집 권1-4 시권의 수록작품을 그 편차를 따라 순서대로 읽어보면, 작품이 저작된 그해 그때 그 장소에서의 퇴계의 모습이 아닌 시간과 장소를 달리한 노년의 대학자 퇴계의 모습, ‘年代’를 기준으로 작성한 퇴계 한시작품 저작연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노년의 대학자 퇴계의 모습이 또렷하게 부각된다. 이에 초점을 맞추어 본고에서는 「過吉先生閭」와 「白巖東軒濯纓金公韻」, 「早春閒居次趙士敬具景瑞金舜擧權景受相唱酬韻十四首」 제12수와 그 원고 2종, 「陶山雜詠[幷記]」를 중심으로 ‘연대’를 기준으로 한 한시작품 저작연보의 작성과 그에 따른 문제, 그리고 목판본 퇴계집 각 시권 등에 수록된 퇴계 한시작품의 이해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퇴계 자신의 시고를 대본으로 하였던, 다시 말하면 퇴계 자신이 후일 문집에 수록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일생 동안 수정을 가한 자신의 시고를 대본으로 한 목판본 퇴계집 내집 시권 권1-4에 수록된 작품들은 일률적으로 ‘연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해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퇴계집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퇴계집처럼 수록한 작품의 저작편차가 정연한 문집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특히 전통시대 문집을 편찬할 때, 傳後文字로써 문집에 수록하는 작품은, 만약 초년과 만년이 그 내용이나 주지가 달라졌을 경우에는 초년의 것을 버리고 만년의 것을 정론으로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대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통시대 문집에서 ‘연대’ 하나를 기준으로 작품을 정리해서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퇴계의 비지문 연구현황과 과제

        이종호 영남퇴계학연구원 2007 퇴계학논집 Vol.1 No.-

        Toegye Lee Hwang did not write any big epitaph letters. Because he thought that the Big letters may lay heavy burden on his working of Sungli-studies. So he enjoyed writing of small epitaph letters, what is called Gal-mun. He appreciated a form and style of classic writings, Go-mun. In part of contents, he emphasized real record on main character. And in part of writing rhetorics, he also emphasized simple and clear description, following strict classic principles. In future, we will have to make a comparative study of Toegye's epitaph letters. For example, we can make clear the difference between Juja's writing style of epitaph letters and Toegye's. Another comparative study is to make clear the difference between Toegye's writing style of epitaph letters and his followers's. 일세를 대표하는 대학자의 명망을 얻었던 퇴계는 70 평생에 46편의 비지문자를 남겼다. 매양 비지 청탁을 끝내 사양하여 찬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퇴계는 비문부작론자였다. 퇴계는 「유계」에서 “비석을 쓰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퇴계가 말한 비석과 비문은 신도비와 신도비명에 한정된 표현이다. 퇴계는 비문과 갈문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썼다. 비문이 갈문보다 규모가 크고 내용이 상세해야 하므로 비문찬술은 노년의 처지에서 위기지학을 지향했던 그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을 터이다. 퇴계는 갈문을 주로 찬술했는데 일정한 찬술원칙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고문의 격례(상격과 정법)를 존중하고 내용구성에 있어 허사를 버리고 실록(實錄)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퇴계가 갈문수사에서 중시한 대목은 ‘국촉’(局促)함이 제거된 ‘간엄’(簡嚴)함의 추구였다. 비문보다 규모가 작기에 각자의 수효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갈문의 한계이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해가는 길이 바로 ‘간결’함의 추구였는바, 이 역시 ‘엄격한 법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퇴계는 갈문을 써서 석면에 새겨 넣을 때, 갈석의 공간처리에도 일정한 미학적 배려가 요구된다고 보았다. 즉 ‘균제미(均齊美)’를 추구했던 것이다. 퇴계의 비지문 찬술태도는 한유와 구양수의 비지서사 방식에 기초해 있으면서 훗날 비지문의 전범을 보여준 농암 김창협에 의해 거듭 강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후기 고문가들에게 하나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향후 연구에서는 퇴계의 인간이해 태도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퇴계의 비지문에서 어떠한 문학성을 운위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을 배제하면서 차분히 중세시대의 고문수사론의 범위 안에서 치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퇴계관

        권순철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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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aims to look at Takahashi Toru's Viewpoint on Toegye, focusing on his lecture note of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Takahashi's lecture notes are generally consistent with his academic quest for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under the premise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regionalism.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akahashi's interest in Toegye was absolute. Takahashi Toru's understanding Toegye ha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ly, he exposes that there was the change from induction to deduction, the change in learning and performance(學修法) by Toegye. And he emphasizes the orthodox completion of Joseon Confucianism by Toegye as a framework of Pasa(破邪) and Hyunjeong(顯正). In other words, the building of Toegye’s study as the orthodoxy of Joseon Neo-confucianism was the first task in Takahashi's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and as a result the descriptions of scholars before and after Toegye were collected in the process of building orthodox Neo-confucianism by Toegye. Secondly, the explanation, which forms Yeungnam School follows Hoeje Lee Eon-jeok, constitutes the regional development of the study of Neo-confucianism along with the Hwadam's Kaeseong School(事功派), whil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School of SaGong, the School of Taoist Teacher(道學先生), the School of Kyeongje(經濟派) based on the academic characteristics are presented. Soon, it develops into the school of Zuri(主理派), and the the school of Zuki(主氣派), and ultimately the school of Compromise. Such an academic development of Joseon Confucianism history was first established by Takahashi. Thirdly, it is an evaluation of Toegye's study that faithfully conveys the theory of Chu Hsi and thus succeeded in purifying(醇化) it. This is sometimes cited as an example of proving Joseon's dependence on China, and is also noted as a characteristic of Joseon Confucianism. The quest for the subject matters of the theory of Chu Hsi, which are launched by Toegye, is continued by a later scholar, and this is also an axis of Takahashi's description of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이 논문은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 강의록』을 중심으로, 그의 퇴계관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카하시의 강의록은 전체적으로 대일본제국의 식민지라는 시대성 및 지역성을 전제로 한 조선유학사에 대한 학술적 탐구에 일관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보이는 퇴계에 대한 다카하시의 관심은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하시 도오루의 퇴계 이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퇴계에 의하여 귀납법에서 연역법에로의 학수법(學修法. 학문과 수행) 변화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 점과, 파사(破邪. 삿됨을 타파함)와 현정(顯正. 올바름을 드러냄)이란 설명틀로 퇴계에 의한 조선 주자학의 정통 완성을 강조한다. 즉 퇴계 학문을 조선주자학의 정통으로 구축함이 다카하시의 조선유학사의 첫째 과제였으며, 퇴계 이전 및 동시대 학자에 대한 서술은 결과적으로 퇴계에 의한 정통주자학 구축과정에 수렴된다. 둘째로, 회재 이언적을 이어 영남학파를 형성한다는 설명은 화담의 개성학파와 함께 주자학 연구의 지역적 전개를 구성하며, 다른 한편, 학문의 성격에 입각한 사공파(事功派.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요 관심사로 삼는 학파), 도학선생(道學先生. 도학의 이론만 중시하여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자 학자)파 및 경제파(經濟派.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학파)의 구분도 제시되고, 이윽고 학리적 특성에 의한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 그리고 절충파에로 심화 발전된다. 이렇게 조선유학사의 학파적 전개는 다카하시에 의해 처음 그 뜰이 마련되었다. 셋째로, 주자 학설에 충실하여 이를 순화(醇化)시켰다는 퇴계의 학문에 대한 평가이다. 이는 중국에 대한 종속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하는 한편, 조선적 특징으로 주목하기도 한다. 퇴계에 의해 본격화되는 주자 학설의 제문제 탐구는 후대 학자에 의해 계속되며, 이 역시 다카하시의 조선유학사 서술의 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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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두 번의 만남

        최영성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This article is about the “encounter of two personalities”, Toegye Yi Hwang and Yulgok Yi I. It focused on the “interaction between these two personalities” rather than academic issues. Toegye and Yulgok met twice in their lifetime. The number of meetings is not proportional to the depth of acquaintance. The year 1558, the year of the historic encounter between Toegye and Yulgok, was also the year of the first encounter between Toegye and Gobong (高峯) Ki Dae-seung (奇大升). From Toegye's point of view, “the year 1558” would be a memorable year. During his life, Toegye has appreciated and honored Yulgok as a scholar of the future generation, and Yulgok has respected Toegye and has honored Toegye’s achievements until he passed away. He considered Toegye as one of the two masters (兩大宗匠) of Confucianism in the East, along with Jeongam (靜庵) Jo Gwang-jo (趙光祖: 1482-11519). Yulgok's comment about Toegye saying that "the aspect of Confucian scholar took shape with Toegye", represents Yulgok's opinion about Toegye. With the exception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ir doctrine, Toegye and Yulgok have not much to confront each other. The basic difference between Toegye and Yulgok is a difference in the way they describe the theory. Approaching the school of Toegye and the school of Yulgok only from a conflictual perspective is problematic. When looking at the history of Neo- Confucianism, at the end of Joseon, we can see that dialogue and communication were not ignored. There were trials to make encounter Toegye and Yulgok by some of the future scholars who were willing, and they were partially achieved. It is meaningful to read Toegye's doctrine and Yulgok's doctrine through the topics of time, “dialogue and communication”. 이 글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인간적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학술 차원의 문제보다 ‘인간적 교류’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퇴계와 율곡은 일생토록 두 차례 만났다. 만남의 횟수가 사귐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퇴계와 율곡의 역사적 만남이 있었던 1558년은 퇴계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퇴계의 입장에서 ‘1558년’은 기념할 만한 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퇴계는 일생토록 율곡을 아끼는 후학으로 예우하였고, 율곡 역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퇴계를 존숭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함께 동방유학의 양대 종장(兩大宗匠)으로 받들었다. 율곡이 퇴계에 대해 “퇴계에 이르러 유자(儒者)의 모양이 갖추어졌다”고 한 논평은 퇴계를 보는 율곡의 관점을 대변한다. 퇴계와 율곡은 학설상으로도 차이가 나는 것을 빼놓고는 대립할 만한 소지가 크지 않다.. 퇴계⋅율곡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이론 설명의 방식에 있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대립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조선후기 성리학사는 대화와 소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퇴계와 율곡의 만남은 일부 뜻 있는 후학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대화와 소통’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통해 퇴계학과 율곡학을 읽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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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集』의 編刊 經緯와 그 體裁

        鄭錫胎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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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集』은 退溪가 서거한 한 해 뒤인 辛未年(1571년)에 遺文을 輯錄하기 시작하여 庚子年(1600년)에 처음 간행되기까지 무려 30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輯錄本인 初本 『退陶先生集』에서 문집 草 稿本인 中本 『退溪先生集』 원 텍스트, 中本 『退溪先生集』 원 텍스 트에서 中本 『退溪先生集』 重校本, 中本 『退溪先生集』 重校本에서 문집 中草本, 문집 中草本에서 문집 定稿本, 곧 定本 『退溪先生文 集』이 만들어지는 참으로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쳐 간행되었다. 詩에 있어서는 退溪가 직접 刪節까지해둔 手錄本이 존재했기 때문 에, 그것에 의거해서 문집을 內集·別集·外集으로 나누어 저작 순서 대로 편집하는 방침이 그 편찬 초기부터 이미 정해졌다. 그리고 문집의 체재와 편차는 『朱子大全』의 것을 준용하되, 書簡만은 『朱 子大全』의 內容中心의 분류 편집 방식을 따르지 않고, 그것에서 한발 진전된 人物中心의 분류 편집 방식, 다시 말하면 書簡의 與 答人物을 그 內容도 함께 고려해서 時(時賢)·知(知舊)·門(門人)·家 (家人)의 네 부류로 나누어 편집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편 집 방식은 重校작업을 주관한 鶴峯金誠一과 西厓柳成龍이 처음 적용하였고, 최종 편집자였던 月川趙穆도 그대로 따랐다. 그 점이 『退溪集』이 『朱子大全』과 가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고, 『退溪集』 간행 이후 그 체재와 편차를 따른 우리나라 고문집의 주요한 특징 이기도 하다. 이처럼 書簡에서 진전된 편집 방식을 마련하고서도, 『退溪集』은 정작 西厓柳成龍이 草本을 가지고 판각했다고 비판할 만큼 그 초간본인 庚子本은 편집상 많은 문제를 안고 간행되었다. 전란을 겪은 뒤라서 출간을 서둘렀다면, 수정 보각 과정에 의당 바로잡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여 추후의 改刊과정 에도 여전히 수정되지 못했고, 기존의 체재와 편차를 고수하려는 강한 관성 때문에 그대로 남겨진 채 계속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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