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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윤리학과 논술:도덕적 근거 제시의 중요성

        윤혜진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09 No.-

        What is the argumentative writing? What is the argumentation in ethics? In this paper we will examine the notions of argumentative writing and the implications that seem to follow from it. And then we will examine the relation of ethics and argumentative writing. To clarify the relation is important for analyzing and evaluating ethical arguments. This paper is trying to give consistent and systematic ways of argumentation about ethical subjects. After this we will explore the outlines of argumentative writing in ethics, which holds to the validity of moral principles in ethical arguments. By doing these works, we can learn the ways teaching argumentive writing in ethics.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윤리학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신념 형성에 직접 결부되어 있다. 한 개인의 도덕적 신념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간다. 이런 차원에서, 수많은 윤리적 쟁점에 대한 자기 해답은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신의 도덕적 신념이 실린 도덕적 삶의 방식은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로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윤리 논술은 간과될 수 없는 중대한 학문적 방법이다. 윤리 논술의 핵은 윤리적 논증이다. 윤리적 논증 구성은 윤리적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맞는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로 끝맺음된다. 따라서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과 그에 대한 교육의 핵심 목표 역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윤리적 논증, 즉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적합한 윤리적 근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윤리학에서의 논술과 논술 교육이 윤리적 논증 형성이라는 핵심 목표, 특히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대한 도덕적 근거 제시를 얼마나 정당하게 표현해내느냐에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효율적 방안 등을 검토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요컨대, 본 논문은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해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논증적 글쓰기로서의 논술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마련하면서, 논술과 윤리적 주제와의 상관관계 역시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 KCI등재

        김지하 생명사상에 있어 인간의 지위

        박영신 대한철학회 2011 哲學硏究 Vol.119 No.-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consider the status of human beings in the life thought of Kim, Ji-Ha. For this purpose, firstly, I would like to consider the world view of life after separated by the essence of life, time and space of life, secondly, look at the logic of life perception, thirdly, discuss the natural and human relationships, Spirituality and ethical responsibilities, and the status of human. For Kim, Ji-Ha, life is a creation, not a reality and things with vibration, rotation, expansion are all life without replication ability. In other words, animals and plants, organic, inorganic, and culture as well as human beings can be included in the scope of life. All life is connected to one, the relationship between each other is the servant. Life is the revealed material order in the phenomenon of life and spirituality is the order of the hidden heart. Human beings do not have any special status as a cyclical life net in the perspective of life. But, human beings have their special status in the perspective of spirituality as a last flower of evolution process. And, having the special status means having a sense of ethical responsibility for all life, not means the supremacy of human life. 생태위기의 중심에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가능성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면, 기존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점검과 이를 대체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념은 자연과 인간은 대립적이거나 공존적 관계이거나 인간은 모든 존재를 총괄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입장이 있다. 이들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우위, 자연과 인간이 분리된 채로 공존, 자연의 우위만을 강조하기에 자연과 인간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인식론적 특수성이 동시에 확보되지 않는다. 김지하에 따르면 생명은 실체가 아니라 생성이므로 명확히 고정시켜 정의할 수 없지만 복제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진동, 순환, 팽창, 생성하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범위에는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유기물, 무기물, 질병, 문화 등이 모두 포함된다. 생명을 인식하는 ‘아니다 그렇다’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리는 생명현상을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질서인 영성과 드러난 물질적 질서인 생명으로 구분한다. 영성적 측면에서 우주 만물은 모두 인식적 능력인 영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간이 가장 높은 인식능력을 가진다. 즉 인간의 인식론적 특수성이 확보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정복이나 착취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한편 생명적 측면에서 인간은 순환적 생명그물의 일부이기에 인간의 지위 자체를 거론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 특수한 지위를 확보하면서도 확보하지 못하는데, 이는 생명현상이 가진 불연기연의 역설적 논리 때문이다. 따라서 김지하에 있어 인간의 지위는 자연과의 불가분적 관계가 전제되어 있으며, 자연과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인간의 인식론적 우위를 동시에 확보한다. 즉 자연 만물의 유기적·공동체적 연결성이 확보되는 사상적 기반 위에 자연 만물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인식이 확보되고, 이를 통해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에 대한 모심과 공경을 실천함으로써 생태위기 상황을 극복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 KCI등재

        사도 바울의 권력론에 대한 리쾨르의 해석

        김선하(Kim, Sun-ha) 대한철학회 2017 哲學硏究 Vol.143 No.-

        리쾨르는 사도 바울의 권력론을 해석하면서 제도를 통한 구속이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정치적 권력에 대한 이해를 소유의 경제적 영역과 가치의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을 넘어서 인간 형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전개하는 그의 논리의 근거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에 있다.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한 사도 바울은 모든 권세들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되고 세워진다’는 것과, 따라서 권위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권력자는 너의 선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권력자 개인에 대한 인격적 복종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존중이다.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권력을 가진 개인들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국가제도는 선하다는 주장이 사도 바울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배경은 그리스 교부 이레니우스적 창조관과 ‘하나님 형상’에 대한 해석이다. 리쾨르는 정치 권력자에 대한 논의를 경제와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전개하면서, 제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This paper is an attempt to explain the interpretation of P. Ricoeur on the theory of power of Saint Paul. P. Ricoeur tried to reinterpret Saint Paul’s thoughts on the power of a nation, the purpose being to link this theory to salvation through the social system. Ricoeur expands this interpretation of political power to the economy and culture. The basis of these ideas is the ‘imago Dei’ namely the image of God. I would like to consider the image of God as the key to salvation through social system,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 KCI등재

        제바달다 5法의 성립배경 고찰

        염중섭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12 No.-

        Devadatta's cakrabheda was not originated from the emotional aspects by the competition for wedding as asserted by some Buddhist traditions but from the viewpoint difference in the training way of 5 methods as shown in the vinaya pitaka and other scriptures. Therefore, the consideration on the 5 methods, which were the core of the cakrabheda, can acquire an important validity in understanding the cakrabheda. There have been controversies on the specific items of 5 methods among the related documents, but in 「the Consideration I and II of Devadatta's 5 Methods」 the author has presented that the 5 methods must be as follows: clothing-humble patched clothes(pāṃsu-kūla); food-begging; prohibited food-dairy product, fish and meat; residence-sitting on the road and under the trees. Upon the itemized arrangemen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origin of the 5 methods and their implication. Then, the differences of Devadatta and Buddha in their viewpoint on the 5 methods are diagnosed. The 5 methods were a disciplinary way which was presented as an alternative for the contemporary Buddhist sect by Devadatta who tried to be a new Buddha. Therefore, through the correct recognition of the meaning in the 5 methods, we can secure the mor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n the situation of saṃgha at that time. Through the fact that Buddha acknowledged some of and negated the other of 5 methods at the same time, it is possible to comprehend the character of Buddha's middle way viewpoint and the difference of 5 methods. It rightly explains why Devadatta could not become the successor of Buddha and had to proceed to the cakrabheda. Devadatta's saṃgha-bheda is a very problematic event in the Buddhist viewpoint. But, as it is a undeniable event in the Buddhist history, it is necessary to arrange it clearly. For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saṃgha-bheda. it is in turn necessary to comprehend the 5 methods rightly. Furthermore, the academic approach to the 5 methods is significant in that it gives us the more realistic recognition on Buddha in his later days. 提婆達多의 破法輪僧은 佛傳들에서 주장되는 것처럼 捔術爭婚에 의한 감정적인 측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律藏 類의 전적들에서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5法과 관련된 수행방법론적인 관점 차이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의 핵심이 되는 5법에 대한 내용적 고찰은 파법륜승의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타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5법의 구체적인 항목에 대해서는 관련전적들에 따른 편차가 크지만, 필자는 이에 관하여 「제바달다의 5法 고찰Ⅰ·Ⅱ」를 통해 5법이 ‘衣:糞掃衣, 食의 방법:乞食, 食의 금지:乳酪·肉魚, 住:樹下露坐’가 되어야 함을 고찰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항목적인 정리를 바탕으로 5법의 성립 來源과 내포의미를 검토한 이후, 제바달다와 붓다의 5법에 대한 관점차이 문제를 개진해 보고자 한 것이다. 5법은 新佛이 되고자 한 제바달다의 당시 불교교단에 대한 대안제시의 성격을 가지는 수행방법적인 측면이다. 그러므로 5법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 승단의 상황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확보해 볼 수가 있게 된다. 또한 5법이 붓다에게 있어서도 일면 긍정되는 동시에 부정된다는 것을 통해서 붓다의 중도주의적인 관점의 특성과 5법의 차이를 파악해 보는 것이 가능해 진다. 이는 제바달다가 붓다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동시에 제바달다가 파법륜승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측면에 대한 이해를 도출케 해준다. 제바달다의 파승가는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문제가 많은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실재했던 교단사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는 필연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파법륜승에 대한 보다 정확한 내용 이해를 위해서라도 5법에 대한 올바른 파악은 반드시 요청된다고 하겠다. 또한 5법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붓다 만년에 관한 보다 사실에 근접한 인식을 확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본 연구의 의의는 존재한다고 하겠다.

      • KCI등재

        윤리학과 논술

        윤혜진(Yoon, Hey-jin) 대한철학회 2009 哲學硏究 Vol.109 No.-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윤리학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신념 형성에 직접 결부되어 있다. 한 개인의 도덕적 신념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간다. 이런 차원에서, 수많은 윤리적 쟁점에 대한 자기 해답은 자기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신의 도덕적 신념이 실린 도덕적 삶의 방식은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로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윤리논술은 간과될 수 없는 중대한 학문적 방법이다. 윤리 논술의 핵은 윤리적 논증이다. 윤리적 논증 구성은 윤리적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맞는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로 끝맺음된다. 따라서 윤리적 주제에 대한 논술과 그에 대한 교육의 핵심 목표 역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윤리적 논증, 즉 윤리적 결론과 함께 그에 적합한 윤리적 근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윤리학에서의 논술과 논술 교육이 윤리적 논증 형성이라는 핵심 목표, 특히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대한 도덕적 근거 제시를 얼마나 정당하게 표현해내느냐에 있다고 보고, 그에 대한 효율적 방안 등을 검토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요컨대, 본 논문은 윤리적 쟁점을 발굴하고 그에 대해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일, 그리고 그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논증적 글쓰기로서의 논술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마련하면서, 논술과 윤리적 주제와의 상관관계 역시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What is the argumentative writing? What is the argumentation in ethics? In this paper we will examine the notions of argumentative writing and the implications that seem to follow from it. And then we will examine the relation of ethics and argumentative writing. To clarify the relation is important for analyzing and evaluating ethical arguments. This paper is trying to give consistent and systematic ways of argumentation about ethical subjects. After this we will explore the outlines of argumentative writing in ethics, which holds to the validity of moral principles in ethical arguments. By doing these works, we can learn the ways teaching argumentive writing in ethics.

      • KCI등재

        茶山의 道家易學비판

        방인(Bang In) 대한철학회 2008 哲學硏究 Vol.108 No.-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조선(朝蘇) 후기(後期)의 실학사상가(實學思想家)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도가역학(道家易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왕필(王弼)은 도가역(道家易) 계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로서, 한대고문경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대상수학의 방법론을 부정한 사상가이다. 왕필역학은 진(晉)의 한강백(韓康伯)에게로 계승되고 있으며, 당(唐)의 공영달(孔潁達)은 왕필(王弼)과 한강백(韓康伯)의 주(注)에 자신의 소(疏)를 덧붙여 『주역정의(周易正義)』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왕필의 역학은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양파육종(兩派六宗)의 한 갈래로 설정할 만큼 역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산은 왕필역학에 대한 비판적 지양(止揚)을 통해서 자신의 역학이론을 형성한 만큼, 다산과 왕필은 방법론적 측면에서나 혹은 철학적 관점에 있어서나 서로 대척점(對蹠點)에 서있다.   필자는 다산의 도가역학에 대한 비판을 분석하기 위해서 『역학서언(易學總言)』을 주로 활용할 것이다. 『역학서언(易學緖言)』은 역학사의 중요사상가들에 대해 다산이 비평적 관점에서 논평한 것을 모아놓은 것으로서, 이 가운데에는 왕필(王弼)과 한강백(韓康伯) 등의 도가역(道家易) 계열의 역학자들에 대한 다산의 비판이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역학서언(易學緖言)』중에서 「왕보사역주론(王輔嗣易注論)」은 다산의 왕필비평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이므로,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아울러, 왕필역학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진(晋)의 한강백(韓康伯)에 대한 다산의 비판인 「한강백현담고(韓康伯玄談考)」에 대해서도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왕보사역주론(王輔嗣易注論)」과 「한강백현담고(韓康伯玄談考)」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도가역에 대한 다산의 비판적 관점의 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밖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는 「공소백일평(孔疏百一評)」, 「한위유의론(漢魏遺義論)」, 「정강성역주론(鄭康成易注論)」등이 있다. 「공소백일평(孔疏百-評)」은 공영달에 대한 다산의 비평을 담고 있는 글로서, 당(唐)의 공영달(孔潁達)은 왕필과 한강백의 주에 자신의 소(疏)를 덧붙여 『주역 정의(周易正義)』를 편찬한 인물이기 때문에 역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 다음으로 「한위유의론(漢魏遺義論)」은 한(漢)·위(魏) 제가(諸家)의 학설에 대한 다산의 비평이며, 「정강성역주론(鄭康成易注論)」은 정현의 역론에 대한 다산의 비평이다. 아울러, 다산의 역학관련 주저인 『주역사전』 중에서 왕필에 관해 언급된 부분들도 보충적 자료로서 활용할 것이다.   이러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서, 다산은 왕필을 위시한 도가계열의 사상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 관점으로 맞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왕필은 본래 유가의 경전인 주역을 이념적으로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한대(漢代)역학의 상수역적 방법론을 역학에서 제거해 버렸다. 왕필의 역학은 한강백에게로 계승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도가적 이념에 바탕을 둔 역학해석이 일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역의 상수역적 방법론 가운데에는 술수로 치우쳤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으나, 거기에는 동시에 고대역학의 정통적 방법론을 원형 그대로 전수해 내려온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산은 역학의 정통적 맥이 왕필에 의해 단절되었음을 개탄하면서, 역의 정통성을 회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유가의 경전인 주역을 도가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후세에 혼융주의적 해석을 크게 유행시켜, 삼교일치론(三敎-致論)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산은 이러한 혼융주의적 해석의 근원에 왕필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왕필비판을 통해서 이단적 해석의 뿌리를 제거하고, 수사학(洙泗學)의 본원(本源)으로 복귀(復歸)하고자 한 것이다.   In this paper, I dealt with Dasan(茶山) Jeong Yag-yong(丁若鏞)"s criticism on the Taoistic interpretation of the Yijing(易經). Although there were several other scholars who made a Taoistic interpretation of the Yijing, Wang Bi(王弼) is particularly important because he is the person who, for the first rime, made the Taoistic interpretation on the Book of Change. In almost every aspect regarding Yijing, Dasan"s standpoint is diametrically opposed to Wang Bi"s viewpoint. Dasan who was outspokenly critical of Wang Bi"s philosophy, thought that Wang Bi deviated too far from the right path of the orthodox Confucianism. He maintained that Wang Bi had ignored the significance of xiang(象: the image) although it was an indispensible element for deciphering the meanings of the hexagram statement. It is particularly regrettable that Wang Bi"s disregard of xiang lead to the abandonment of the various interpretive skills which belonged to the Xiangshu School of the Han period, such as huti(互?), guaqi(卦氣), guabian(卦變), najia(納甲) theory. Instead, he replaced them with the theory of Xuanxue(玄學, Dark Learning School). However, from Dasan"s point of view, such removal of Xiangshu interpretive methods did nothing but the harm to the history of the Yijing. He considered Han"s Xiangshu methods to be the precious legacies handed down from the earliest period related to the Yijing. In addition, Dasan reproached Xuanxue(玄學)"s ontological view that the nonexistence should be regarded as the source of every existence. Evidently, it is none other than Wang Bi who initiated such Taoistic interpretation. Afterwards, Han Kang-bo(韓康伯), who had much admired Wang Bi, finally completed the annotation of the Ten Wings(十翼, Shi Yi) unfinished by Wang Bi. Although Kong Ying-da(孔潁達) attached much importance to Wang Bi and Han Kang-bo compiling the Zhouyi Zhengyi(周易正義, The Rectifications of Meanings of Zhouyi), Dasan severely reproached Kong Ying-da for giving consent to their authority. But if one goes back to the origin of this syncretic ideology, it is sure that Wang Bi should be more blamed for initiating such a tendency. As a natural consequence, Dasan, who was firmly determined to remain faithful to the orthodox Confucianism, attempted to revert to the pristine message of the Yijing by criticizing Wang Bi and his successors.

      • KCI등재

        루이 라벨의 ‘악의 현존과 고통’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 그리고 그 한계

        이명곤(Lee, Myoung-gon) 대한철학회 2018 哲學硏究 Vol.145 No.-

        루이라벨의 사상에서는 현대철학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주제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사유에서 악의 개념은 ‘악이란 존재의 부족’이라는 스콜라철학의 소극적인 규정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세계에 현존하는 악이란 ‘삶과 가치’를 파괴하는 의지적인 힘으로, 즉 도덕적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악의 현존(la présence du mal)’을 ‘세계의 스캔들(le scandale du monde)’로서 규정하는 그의 사유에는 모든 인간이 의지의 태도로서의 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와 인간사회에서의 악의 현존은 필연적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반면 악의 결과가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서 나타나기에, 고통을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태도’는 이러한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도덕적인 의지를 유발하게 한다. 악의 현존 앞에서 가지게 되는 ‘내적인 고통’인 ‘도덕적인 고뇌’는 그 자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는 의식을 가지게 하고 여기서 자기만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도덕적인 존재가 됨에 대한 자기만족과 행복감은 인간이 악의 현존에 맞서 이를 초극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이자 동기이다. 즉 라벨의 선과 악에 대한 사유는 ‘도덕 심리주의’에 기초해 있으며, 고통에 대한 거부와 도덕적 고뇌에 있어서의 ‘심리적 지평과 윤리적 지평의 일치’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악을 극복하고 선을 산출하도록 한다는 ‘윤리적 낙관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는 분명 스콜라 철학의 발전된 현대적인 적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또한 ‘악을 유발하는 의지의 태도에 대한 구체적 양태의 분석’, ‘사회 속에 현존하는 악의 구체적인 양태들’ 그리고 이러한 악을 초극할 수 있는 ‘의지적인 노력의 다양한 양상’ 등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구체성의 부족은 선과 악에 관한 라벨의 사유가 여전히 소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n the philosophy of Louis Labelle, the subject of “good and evil”, which is rarely discussed in modern philosophy, emerges as a very important concept. In his reasoning, the notion of evil starts from a passive stipulation of the Scholastic philosophy of “the lack of being”, but he defined the evil, which actually exists in the world with more positive sense as a willing force destroying “life and values”. In his reasoning that defines “the presence of evil” as “le scandale du monde”, all humans have the possibility of evil as an attitude of will, and the presence of evil in the world and in human society is inevitable. On the other hand, because the outcome of evil appears as physical and mental “pain”, the human’s attitude toward pain, which attempts to deny suffering, induces a moral will to overcome this evil. The moral anguish, which is the “internal suffering” that we have in front of the presence of evil, makes us conscious of becoming a “moral being”, and people become self-satisfied here. Although painful, self-satisfaction and happiness about becoming a moral being is the only occasion and motive for man to overcome this by opposing the presence of evil. In other words, Lavelle’s thoughts for good and evil are based on “moral psychologism”, and the “coherence of psychological horizons and ethical horizons” between rejection of suffering and moral agony enables “ethical optimism” that man constantly overcomes evil and produces good. This is clearly an advanced modern application of scholasticism on the concept of evil.

      • KCI등재

        믿는다는 것은 동의를 가지고 사유하는 것인가?: ‘credere est cum assensione cogitare’에 대한 토마스의 해석

        이정 대한철학회 2021 哲學硏究 Vol.159 No.-

        This study begins with the question, ‘how can faith in God be understood?’ In modern times, it was thought that although the light of faith was enough for ancient society, it was useless for the new era. The modern culture recognizes only things that can be scientifically created and measured as truth. Today,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remember more than ever before that truth is connected to faith, because of the crisis of truth we have experienced. In this regard, the faith can provide new light, since it is essentially combined with truth. In this study, the researcher thus aims to consider Thomas's thought about faith. Thomas dealt with faith strictly within its relationship with intelligence. According to him, believing in something is an act of intelligence. The order of study on it is as follows: it initially considers how intelligence agrees with things and then, deals with how intelligence can be involved in thinking with such established agreement. As Augustine remarked, believing something is to give grant for what is still thought. Thomas's interpretation on this is that although ‘cogitare’ has cognitive imperfection, a positive aspect can be found in it. The imperfection means going toward somewhere, indicating that humans with imperfect nature are beings ordered to participate in perfect divine life. Hence, the imperfection of ‘cogitare’ can be a starting point for divine intuition. Thought always exists together with agreement. The robustness of agreement thus allows a believer's intelligence to further deepens his understanding of what he believes, and satisfies his desire to grasp the essential significance of things given by God. 본 연구는 ‘신에 대한 믿음을 이성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근대에 와서 신앙의 빛은 고대 사회를 위해서는 충분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맹신은 현대 사회 안에서 여러 부작용들을 초래하고 있으며, 그러한 곳에서는 신앙이 요청될 수 있다. 그것은 이성이 지닌 제한적 능력을 초월하여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본 연구를 통해 신앙에 대한 토마스의 사유를 고찰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신앙을 철저히 지성과의 관계 안에서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믿는다는 것은 지성의 행위이다. 이에 대한 연구의 순서에 있어서는, 지성이 사물에 어떻게 동의하는지를 먼저 고찰하고, 이어서 지성이 그렇게 확정된 동의를 가지고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믿는다는 것은 여전히 사유하고 있는 바에 대하여 동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토마스의 해석에서는 비록 ‘cogitare’가 인식적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본성에 있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신적인 삶에 참여하도록 질서지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cogitare’가 지닌 불완전함은 신적 직관을 향한 시작이 될 수 있다. 사유는 언제나 동의와 더불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동의의 그 확고함은, 믿는 이의 지성으로 하여금 믿는 바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들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려는 탐구를 충족시킨다.

      • KCI등재

        니체의 쇼펜하우어비판에 대한 고찰 - 도덕비판을 중심으로 -

        이서규 대한철학회 2016 哲學硏究 Vol.137 No.-

        The present study examines Nietzsche's critique of Schopenhauer with regard to the problem of morality and the basis thereof. Schopenhauer's philosophy that each written life as objectification of the will, had an important impact on the early development of Nietzsche's philosophy. But nevertheless Nietzsche criticized Schopenhauer because he denies life in the value of earthly life. Schopenhauer asserts that life is a painful matter because the blind govern all life, and pushes. But unlike Nietzsche, Schopenhauer buoyed the meaning of life, which increases again with the will to power and carry out. Of course there is some resemblance between Schopenhauer and Nietzsche, namely equiprimordiality as both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traditional philosophy that characterizes the man as a rational being and understands. They both destruct the idea of philosophy as a science, and try together to build another philosophical horizon. But in terms of interpretations of life and morals, they have taken different paths. According to Schopenhauer, our life is ultimately sad and agonizing. To overcome this situation, we must deny the will to live and renounce it absolutely. He believes that the moral can eliminate the displacement of the blind will to live and overcome. But in comparison, Nietzsche claims that morality or any moral act is always driven out of resentment. But this resentment is nothing more than a revenge or retribution, which was invented by the weakness. But according to Nietzsche, the feeling of resentment clear will to live. The present paper examines whether Nietzsche's moral critique of Schopenhauer is possible and if so, such a moral critique of Nietzsche can be performed. 삶을 의지현상으로 해석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니체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에서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비판한다.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가 가져오는 고통 때문에 궁극적으로 삶에의 의지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쇼펜하우어의 입장을 니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니체는 모든 존재를 이끌어가는 것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을 의미하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이기 때문이다. 물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은 이성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세계를 묘사하려는 전통철학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긴밀한 철학적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삶의 가치에 대한 해석은 이들을 각자의 길로 걷게 만든다. 특히 니체는 도덕의 문제와 관련하여 쇼펜하우어의 입장을 비판한다. 계보학적 사유를 통해서 도덕의 기원과 인간의 도덕감정을 분석하는 니체는 동정심(Mitleid)을 도덕의 토대로 설정하는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원한감정(Ressentiment)을 도덕의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니체는 나약한 노예계급이 강자에 대한 원한감정 속에서 강자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과 악의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여기에서 도덕의 가치는 허구적인 기원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니체의 이러한 해석은 도덕의 가치를 해체하며, 이러한 형태의 도덕가치는 결코 삶의 의미들을 구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러한 도덕의 이상이 금욕적 이상과 연결될 때 그 위험성을 증가한다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니체는 이러한 금욕적 이상의 대표자로 쇼펜하우어의 도덕을 언급하는데, 이러한 금욕적 이상은 도덕의 가치가 어떤 식으로든 삶의 긍정을 의미해야 한다고 보는 니체의 입장에서는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도덕개념을 중심으로 쇼펜하우어철학에 니체의 비판이 지닌 특징들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고찰하도록 한다.

      • KCI등재

        니체에게서 ‘퓌지스physis의 변형’의 의미와 함의-「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

        김주휘(Kim, Joo-whee) 대한철학회 2021 哲學硏究 Vol.160 No.-

        이 글에서 우리는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 니체 초기의 ‘퓌지스의 변형’으로서의 문화라는 관념을 검토한다. 우리는 이것이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유의 계승과 변형의 관계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편으로는 니체의 ‘퓌지스의 변형’에 대한 요구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에 상응하는 지위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의지의 부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예적으로 욕망하는 삶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퓌지스의 변형’이라는 니체 초기의 관념은 니체가 한편으로는 쇼펜하우어 사유의 반시대성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쇼펜하우어와 다른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준다. ‘퓌지스의 변형’이 갖는 이러한 지위와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교육자」에서 ‘퓌지스의 변형’과 ‘구원적 인간’에 대한 사유가 후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선보일 위버멘쉬 사유의 맹아이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천재와 ‘구원적 인간’은 위버멘쉬의 전신에 해당하며, 이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이해는 위버멘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우리는 쇼펜하우어에게서 의지의 긍정과 부정, 예속성과 자유의 대당이 니체에게서는 세련된 동물과 ‘구원적 인간’의 대당을 거쳐, 즉 ‘퓌지스의 변형’에 대한 요구를 거쳐, 서로 다른 퓌지스들 간의 대당, 곧 서로 다른 방향과 성격의 의지들 간의 대당으로 전환된다고 생각한다. 즉 니체 초기의 ‘퓌지스의 변형’에 대한 사유는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계승하면서 그것과 대결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유한 개념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단계로 이해될 수 있다. We examine the notion of culture as ‘the transfiguration of physis’ in Nietzsche’s “Schopenhauer as an educator,” the third essay of his Untimely Meditations. We think it is a very interesting notion because it shows how Nietzsche succeeds and transforms Schopenhauer’s thought about how to lead a life on this earth. The upshot of the idea is as follows. On the one hand, the demand for ‘the transfiguration of physis’ corresponds to ‘the negation of will’ in Schopenhauer’s ethical thought, and succeeds the untimeliness of his philosophy, that is, his critical stance towards the hedonistic and materialistic modern life. On the other hand, it shows that Nietzsche pursues an alternative way other than ‘the negation of will’ towards a life liberated from the chains of slavish desiring will. We think it is very important to appreciate this double status of ‘the transfiguration of physis’ because this very notion is the predecessor of Übermensch in Thus Spoke Zarathustra. We hope this work will contribute to understanding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philosophers, and correct some misunderstandings about Nietzsche’s promotion of culture and Übermen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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