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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중일전쟁 발발 이후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

        송현강(Song Hyeon-Kang)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27 No.-

        이 글은 1938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의 전반적인 모습을 세 가지 작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일제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지역교회들의 조직 개편 상황을 다룬 다음, 이어서 지역교회에 총동원기구의 하부 조직인 ‘연맹’과 ‘애국반’이 설치ㆍ운영되는 과정과 지역교회들의 다양한 ‘애국’활동을 잇달아 조망하였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지역교회들은 일제의 요구에 의하여 교구제로 지역조직을 개편하였다. 감리교는 1941년, 장로교는 1943년에 각각 ‘충청교구’를 출범시켰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각 교파를 통합한 후에 일본교회와 기구적 통합을 위한 일제의 예비적 조치였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야소교장로회연맹’이 결성되자 충청도 장로교회의 노회들은 ‘노회지맹’을, 교회들은 ‘애국반’을 조직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이 ‘국민총력연맹’으로 개편ㆍ강화되자 충청도 장로교의 노회들은 그에 맞추어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각각 신도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또 충청도 감리교회들의 ‘애국반’ 조직은 1940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의 결성과 병행해서 각 교회에 애국반이 조직되었던 것이다. 충청도 성결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이 ‘국민정신총동원 성결교회연맹’의 이사로 참석하는 한편 교구 순회목사들이 연맹의 지부장으로 가담한 것과 각 교회의 ‘애국반’ 결성을 통해 드러난다. 충청도의 장로교회들은 신사참배 수용 결의를 통해 ‘애국’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 노회들은 감리교와 마찬가지로 충청도 장로교의 지도급 인사들은 지역 대표자로 총회에 참석하여 전국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였다. 개교회들은 이미 1937년 중일전쟁 직후부터 ‘무운장구기도회’와 ‘국방헌금’ 모금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충청도의 감리교회 역시 총회를 포함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의 모든 집회에는 신사참배 등의 국가의례와 시국강연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또 그 교회들은 애국헌금과 황군위문대를 모아 납부하였다. 개교회 ‘애국’활동의 또다른 형태로는 징병감사회와 국방기관 음악회의 개최를 들 수 있다. 일제 말기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물론 일제의 외압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과 같이 충청도 지역교회 내부에는 그 외압을 빌미로 일제에 협력하는 지도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앙의 교단 상층부와 지방의 신도들을 연결하는 중간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교단의 협력 방침을 실제로 충실하게 집행하고 확산시켰다. The mainstream denomination of protestant churches during the Japanese Rule over Korea were Methodists, Presbyterian and the Holyness Church. There were estimated over 230 churches and over 16,000 Christians in Choongchung Region all together in the second half of the 1930s. The Japanese Empire aggressively promulgated the Shrine Worship policy and Religion Control policy around 1937, the year of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The aftereffect of the promulgation reached out to the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through the supportive activities of the centers of each religious denomination. This paper examines such cooperative activities by each religious body of the protestant circles in Choongchung region from 1937 through August 1945.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by Methodists and Presbyterians and the Holyness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started with sending representatives from each of the denominations to the General Assembly. Whenever there was a meeting under the name of the church, including General Assembly, there were national ceremonies such as shrine worshiping and lectures about state affairs without exception. In addition,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organized 'patriotic' groups and collected 'patriotic contributions' and comfort kits for the Japanese army.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were initiated undoubtedly by the external pressure of the Japanese Empire. However, as described above, there were leaders who were deliberately cooperating to Japan within the Choongchung Christianity blaming such pressure. They played key roles connecting the upper class of the denominations' central and regional believers, and executed and disseminated the pro-Japanese decisions of the denomination in every deed. The cooperative activities to Japan by Christianity at the end of the rule over Korea had features of dual layers like this as it progressed, and in order to reveal the whole picture, it is priority to understand the details of the regional leaders' cooperative activities.

      • KCI등재후보

        충청 지역 정치의 최근 변화와 충청 지역주의

        김욱 ( Wook Kim ),유재일 ( Jae Il Yoo ),유병선 ( Byung Sun Yu ) 비교민주주의연구센터(비교민주주의학회) 2015 비교민주주의연구 Vol.11 No.2

        충청 지역은 비록 유권자의 비중이나 의석 수에서는 전체의 10%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충청 지역이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은 그보다 훨씬 컸었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는 소위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서의 역할을 자주 수행해 왔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체적인 정당 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다가오는 20대 총선에서도 충청 지역은 전반적인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전체 선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그런데 충청 지역 정치가 최근 중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자유선진당이라는 지역정당의 몰락과 그에 따른충청 지역 내 양당구도의 형성이다. 이와 함께 세종시 건설, 과학비지니스벨트 등 지역의 이해관계가 걸린 대형 이슈가 사라짐으로써, 충청 지역주의가 가지고 있던 특징 중의 하나였던 실리적 속성도 잘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일부에서는 충청 지역의 고유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충청 유권자가 점점 더 수도권 유권자와 유사한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이러한 일부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있다. 충청 지역 정치와 충청 지역주의가 최근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충청 지역주의의 고유의 특성은 상당 부분 지속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의 선거에서 충청 지역이 가지는 중요성 또한 여전하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이 글의 목적은 최근 충청 지역정치의 변화와 성격을 고찰하고 이러한 변화가 충청 지역주의에 미치는 영향과 그 정치적 의미를 논의하는 데에 있다. Although Chungchung region occupies only 10% of the whole electorate, the region’s political weight in the post-democratization Korean elections has been far greater than that. Especially in Presidential elections, the region has often performed the role of a casting voter, while playing a decisive role in determining the overall results in National Assembly elections. In the upcoming National Assembly election in 2016, the Chungchung region is also likely to be a barometer for the overall election results. The regional politics in Chungchung is experiencing some significant changes in recent years. Most importantly, the regional party(Liberty Forward Party) has disappeared, thus creating a two party(instead of a three party) competition in the region. Also, in the absence of major issues regarding the region’s vital interests such as Sejong City and Science Business Belt, the utilitarian nature of Chungchung regionalism has not been manifested in the recent elections. Some even suggest that Chungchung voters are becoming more and more like voters in Seoul Metropolitan areas. This paper is based on the premise that such an argument has no empirical basis. There is no denying that Chungchung regional politics and Chungchung regionalism are going through politically significant changes. It is the main perspective of this paper, however, that despite those changes major characteristics of Chungchung regionalism are still preserved, and that the importance of the region in Korean elections is little affected. With this perspective, this paper examines recent changes in the regional politics and then discusses the effects of those changes on Chungchung regionalism as well as their political meanings.

      • KCI등재

        중일전쟁 발발 이후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

        송현강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07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27 No.-

        The mainstream denomination of protestant churches during the Japanese Rule over Korea were Methodists, Presbyterian and the Holyness Church. There were estimated over 230 churches and over 16,000 Christians in Choongchung Region all together in the second half of the 1930s. The Japanese Empire aggressively promulgated the Shrine Worship policy and Religion Control policy around 1937, the year of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The aftereffect of the promulgation reached out to the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through the supportive activities of the centers of each religious denomination. This paper examines such cooperative activities by each religious body of the protestant circles in Choongchung region from 1937 through August 1945.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by Methodists and Presbyterians and the Holyness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started with sending representatives from each of the denominations to the General Assembly. Whenever there was a meeting under the name of the church, including General Assembly, there were national ceremonies such as shrine worshiping and lectures about state affairs without exception. In addition,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organized 'patriotic' groups and collected 'patriotic contributions' and comfort kits for the Japanese army.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were initiated undoubtedly by the external pressure of the Japanese Empire. However, as described above, there were leaders who were deliberately cooperating to Japan within the Choongchung Christianity blaming such pressure. They played key roles connecting the upper class of the denominations' central and regional believers, and executed and disseminated the pro-Japanese decisions of the denomination in every deed. The cooperative activities to Japan by Christianity at the end of the rule over Korea had features of dual layers like this as it progressed, and in order to reveal the whole picture, it is priority to understand the details of the regional leaders' cooperative activities. 이 글은 1938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의 전반적인 모습을 세 가지 작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일제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지역교회들의 조직 개편 상황을 다룬 다음, 이어서 지역교회에 총동원기구의 하부 조직인 ‘연맹’과 ‘애국반’이 설치ㆍ운영되는 과정과 지역교회들의 다양한 ‘애국’활동을 잇달아 조망하였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지역교회들은 일제의 요구에 의하여 교구제로 지역조직을 개편하였다. 감리교는 1941년, 장로교는 1943년에 각각 ‘충청교구’를 출범시켰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각 교파를 통합한 후에 일본교회와 기구적 통합을 위한 일제의 예비적 조치였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야소교장로회연맹’이 결성되자 충청도 장로교회의 노회들은 ‘노회지맹’을, 교회들은 ‘애국반’을 조직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이 ‘국민총력연맹’으로 개편ㆍ강화되자 충청도 장로교의 노회들은 그에 맞추어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각각 신도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또 충청도 감리교회들의 ‘애국반’ 조직은 1940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의 결성과 병행해서 각 교회에 애국반이 조직되었던 것이다. 충청도 성결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이 ‘국민정신총동원 성결교회연맹’의 이사로 참석하는 한편 교구 순회목사들이 연맹의 지부장으로 가담한 것과 각 교회의 ‘애국반’ 결성을 통해 드러난다. 충청도의 장로교회들은 신사참배 수용 결의를 통해 ‘애국’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 노회들은 감리교와 마찬가지로 충청도 장로교의 지도급 인사들은 지역 대표자로 총회에 참석하여 전국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였다. 개교회들은 이미 1937년 중일전쟁 직후부터 ‘무운장구기도회’와 ‘국방헌금’ 모금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충청도의 감리교회 역시 총회를 포함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의 모든 집회에는 신사참배 등의 국가의례와 시국강연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또 그 교회들은 애국헌금과 황군위문대를 모아 납부하였다. 개교회 ‘애국’활동의 또 다른 형태로는 징병감사회와 국방기관 음악회의 개최를 들 수 있다. 일제 말기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물론 일제의 외압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과 같이 충청도 지역교회 내부에는 그 외압을 빌미로 일제에 협력하는 지도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앙의 교단 상층부와 지방의 신도들을 연결하는 중간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교단의 협력 방침을 실제로 충실하게 집행하고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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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의 자연과 민요문화권

        서영숙(Young-sook, Suh) 어문연구학회 2012 어문연구 Vol.72 No.-

        이 글에서는 충청 지역의 민요 중 〈모심는 소리〉가 지역별로 어떻게 달리 불리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이에 따라 민요문화권을 설정하고, 각 권역별 특징이 그 지역의 자연 지리적 환경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충청지역의 민요문화권은 〈모심는 소리〉의 전승양상에 따라 동북부내륙권(아라리소리권), 동남부내륙권(정자소리권), 중북부내륙권(하나소리권), 중남부내륙권(상사소리권), 서부해안권(방아소리 외 기타소리권)으로 나눌 수 있다. 중남부내륙권이 충청의 중심부라고 할 때 충청 지역에서는 〈모심는 소리〉로 호남 지역과 함께 〈상사소리〉를 주로 부르면서, 강원도와 인접한 동북부내륙권에서는 〈아라리소리〉를, 영남과 인접한 동남부내륙권에서는 〈정자소리〉를, 경기와 인접한 중북부내륙권에서는 〈하나소리〉가 집중적으로 전승된다. 그러나 충청 지역의 〈모심는 소리〉는 인접 지역의 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충청 지역의 모심는 작업 환경과 지역민의 취향에 맞게 창조적으로 변형해 부른다. 또한 〈모심는 소리〉의 사설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농사에 대한 자부심이나 긍지, 충효의 교훈적 이념을 주로 표현함으로써 충청 지역의 고유한 특질을 형성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paper investigated how features of Rice-seedlings planting song were related with the nature in Chungcheong District by establishing the cultural regions according to folk song tradition. I divided the cultural regions according to folk song tradition – especially focused on Rice-seedlings planting song in Chungcheong District. As the result of it, I could establish the 5 cultural regions. i.e. the north-east region(Arari-sori region), the south-east region(Jeongja-sori region), the middle north region(Hana-sori region), the middle south region(Sangsa-sori region), the west coast region(Banga-sori region). I found that Rice-seedlings planting songs have been transmitted in the influence of the bordered district, for exemple, Sangsa-sori have been sung in the middle south region as the center of Chungcheong District bordered on Honam District. Moreover, I investigated that Arari-sori have been sung in the north-east region bordered on Gangwon District, Jeongja-sori in the north-east region bordered on Youngnam District, Hana-sori in the middle north region bordered on Geonggi District. However, they are not as same as songs of the bordered district. They have been created and transmitted adjusting to their preference by the people of Cheongcheong District. And the words of Rice-seedlings planting song show the pride and self-conceit about farming, the instruction of loyalty and filial piety about our nation. These features are the inherent characteristics which have been formed by the people of Chungcheong District.

      • KCI등재후보

        충청 지역 여성독립운동의 성격과 공적

        이명화 백석대학교 유관순연구소 2023 유관순 연구 Vol.28 No.2

        한국 여성 독립운동사는 나라의 독립을 찾고자 했던 항일 독립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내부의 봉건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한 인간해방운동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라를 빼앗긴 독립운동의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성평등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한국 근대사 전개 과정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적 및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그 연구성과가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충청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오랫동안 봉건성이 지속되어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교육이 필요 없는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가부장적 사고와 함께 도덕체계로 구축된 유교의 오랜 전통과 보수의 벽이 다른 지역보다도 두터웠다. 그렇기에 충청 여성의 개화와 근대화 과정은 그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고통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사회로 들어섰음에도 전 근대 봉건시대에 머물렀던 충청 여성들에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각성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기독교 교육을 받은 전도부인들의 활약은 선교사들의 복음전파력 보다도 우세했기에 충청지역의 기독교 복음과 함께 여성해방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남감리교 여선교사들과 전도부인들의 복음전도로 충청여성들은 한글을 깨우치고 성경공부를 함으로써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세계관을 확대할 수 있었고 의식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기독교 신교육과 여성들의 굳건한 믿음의 신앙은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주었고 여성의 사회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로 무장한 근대 개화 여성들은 안으로는 봉건사회를 개혁하고 밖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세력에 맞서야 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갔다. 물론 모든 여성이 기독교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기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 체제에서 여성들은 자기 자신의 해방보다도 민족 해방의 가치를 우선으로 투쟁하였으며 민족 해방 없이는 결코 여성 해방도 이룰 수 없다는 각오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충청의 여성들은 충청지역에 머물기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또는 국외로 나가 활발한 독립운동의 자취를 남겼다. 일제와의 항전기에 충청지역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만한 생태계가 조성되지 못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당시만 해도 타 지역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국채보상의연 단체들을 만들어 운동에 참여했으나 충청지역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1927년 당시 여성의 유일통일협동전선 조직으로 출범한 근우회가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해 나갔음에도 충남지역에서는 그 어떤 지회도 설립되지 않은 사실이 그 현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또한 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 3.1운동과 학생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지역에서 충청여성들이 헌신과 희생으로 3.1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여성들의 자의식과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써 성차별 없는 독립된 국민국가의 건설의 비전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 KCI등재

        지역화 교육을 위한 충청도 음악문화의 교육적 접근

        김민하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2015 국악교육연구 Vol.9 No.1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educational approaches to the musical culture ofChungcheongdo by examining it from the music textbooks of the elementary andsecondary schools. From the analysis, this paper revealed the music and teaching-learningcontents of Chungcheongdo were insufficient in the books although various music genressuch as pansori, folk song, festival music, musicians, cultural asset have been developedin Chungcheongdo. Thus, this study presents the teaching-learning contents and methodsof this local music divided by ‘traditional children songs based on the play and linguisticculture, Chungcheongdo folk songs by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and seasons customs,the local music festival of Chungcheongdo, the stories of junggoje pansori and mastersingers by the Revised Music Curriculum of 2009. The followings are the educational approaches to instructing Chungcheongdo musicalculture in school music education. Firstly, the representative music of Chungcheongdoshould be chosen according to the levels of the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s, anddevelop the educational approaches. Secondly, as social studies employed local textbooksfor local education, local music textbooks such as the teaching-learning contents andencouraging materials need to be developed for activating this local music education. Thirdly, the musical culture of Chungcheongdo should be more included in musictextbooks, and the teaching-learning contents of the music be developed by the levels ofstudents. Fourthly, the teachers’ training courses should be presented for activating theeducation of Chungcheongdo music, and need to induce teachers to change the perceptionof the music. It is important for learners belong to Chungcheongdo as well as them of other regionsto learn the music culture of Chungcheongdo in view of local culture’s variety anduniversality. This paper discussed the approaches to instructing Chungcheongdo music,and it would be expected the following studies for activating local musical cultureeducation. 본고는 초․중등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충청도 음악문화에 관한 내용을 검토해보고, 충청도의 음악문화를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음악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충청도는 판소리, 민요, 축제음악, 음악인, 문화재 등 각 분야별로 풍부한음악적 바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제재곡 및 교수․학습 내용은 다른지역에 비해 미흡했다. 이에 2009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충청도의 놀이문화와언어문화가 반영된 전래 동요, 지리적 특성과 세시풍속에 따른 충청도의 민요, 충청도 음악문화와 관련된 축제, 중고제 판소리와 명창 이야기, 충청도의 음악문화와 관련된 문화재’의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교육적 활용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학교 교육에서 충청도 음악문화 교육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몇 가지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충청도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악곡을 선정하고, 학교급에 따라 수준을적절히 안배하여 그에 관한 교수․학습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과에서 지역 교과서를 활용하여 지역화 교육을 실현해 나가듯이 음악과에서도 교수․학습 자료 또는 장학자료의 형태로 지역 교과서를 개발한다면, 충청도의 음악문화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셋째, 충청도 음악문화를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과 동시에 학습자 수준에알맞은 콘텐츠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넷째, 충청도 음악문화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교사들에게 관련 연수를 제공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역 음악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야할 것이다. 충청도 지역에 속한 학습자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학습자들에게 충청도의 음악문화를 지도하고, 이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은 지역문화의 다양성과 보편적 특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충청도 음악문화에 주목하여 논의하였지만, 앞으로 지역 음악문화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각 지역별로 관련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KCI등재

        지역발전과 국회의원 선거 슬로건의 변화: 충청지역 제7~21대 총선을 중심으로

        이재현 국립부경대학교 지방분권발전연구소 2023 지역과 정치 Vol.6 No.2

        이 연구는 슬로건의 정치학 차원에서 지역발전에 대한 정치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검토한다. 이를 위해 충청지역 역대 국회의원 선거(제7~21대)에서 나타난 슬로건과 키워드를 중심으로 유형별, 시기별 분석과 키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하였다. 유형별 시기별 분석을 종합해 보면, 첫째, 국가근대화를 위한 시기에는 국가(나라)에 대한 표현과 메시지가 충청지역 유권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둘째, 충청지역 유권자들은 당시 정부를 심판해 달라는 정부권력의 견제 역할 메시지에 상대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셋째, 충청지역 역대 총선 슬로건에서 보여진 커뮤니케이션의 화법은 민주화 이후 단어강조형으로 나타나 치열한 선거경쟁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통하려는 행태를 짐작케 한다. 다음으로 키워드를 시각화한 워드 클라우드 분석을 정리하면, 민주화 이전에 ‘나라’, ‘발전’이라는 국가중심적인 메시지에서 민주화 이후 지방분권과 지역발전, 그리고 선진정치문화를 바라는 추세가 다양하게 반영되어 ‘일꾼’, ‘깨끗’, ‘정치’, ‘힘’ 등의 표현이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충청지역 기반정당 존재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였다. 즉 충청지역에 충청을 대표하는 정당이 있을 경우 지역 유권자들에 ‘충청’이라는 지역을 내세우고 지역발전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충청지역 역대 선거에서 슬로건은 충청지역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으로 특정한 패턴과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 충청도 ‘지역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현수진(Hyun, Soojin)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20 충청학과 충청문화 Vol.29 No.1

        본 연구는 충청도에서 지역명+학(學) 의 형태로 수행된 지역학 연구성과를 검토함으로써 각 연구에서 ‘지역학’의 개념과 목적, 연구 분야와 내용, 연구 · 활용 주체와 방법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충청도 지역학 연구의 한계와 전망을 제시하였다. 충청도의 ‘지역학’ 연구는 각 지역의 지역정체성을 찾고, 미래 지향적인 지역발전의 학문적인 토대를 제공하며, 지역민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지역정체성을 발굴하고 지역 문화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충청도 ‘지역학’ 연구는 첫째, 지역학의 학문적 측면에서 각 지역의 지역학’을 정립하려는 시도가 부족하여 지역 간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둘째, 지역학 연구가 역사 문화에만 집중되어 현재 지역민의 삶과 생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셋째, 지방자치단체 및 연구자를 주축으로 한 소수가 해당지역에 알맞은 지역정체성을 도출하고 이를 하향시킴으로써 지역민 중심의 지역학이 되지 못한다는 점, 넷째 지역학 활용 방식이 지역학 교재 및 강좌 운영,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획일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충청도 지역학 연구는 정작 그것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충청도 지역민에게서 유리되는 측면이 있었다. 지역학이 그 본래 적대로 지역정체성을 도출하고 충청도 지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는 지역과 지역민에 관한 기초자료를 수집 · 조사 · 연구하고, 지역민은 지역학의 연구 주제와 활용 방식을 고안하고, 지자체는 그러한 방식을 지원 · 실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 충청 전라지역 출토 철정(鐵鋌)에 대하여

        김정완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0 고고학지 Vol.11 No.-

        철정은 주로 4-5세기대의 신라 가야고분에서 출토되었으며 그 기능에 대해서는 철기중간소재설, 화폐설, 그리고 철기중간소재인 동시에 화폐로도 쓰였던 것으로 보는 입장 등이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은 원삼국시대의 판상철부가 기능상 변화를 일으키면서 철정으로 변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철정은 지금까지의 출토 예를 본다면 경주와 부산, 김해를 비롯한 낙동강하류역 그리고 창원 등이며 이외에 영산강하류역의 옹관고분에서 몇몇 출토 예가 있다. 그러나 최근 충청지역에서 유적조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철정의 출토예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영남지역과 같은 판상철부는 출토되지 않는 등 약간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충청·전라지역에서 출토된 철정을 소개하고 그것을 영남지역에서 출토된 절정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충청지역과 전라지역 출토 철정은 동일 계보에 속하는 것이나 영남지역 출토품과는 구분되었다. 또한 충청·전라지역에서 철정이 출토된 분묘 유구는 마한으로 보이는 토광묘와 옹관묘에 국한되었다. 한반도 내 전역에서 판상철부➝ 판상철부형철정➝ 철정으로의 변화가 확인되었으며 진행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른 데 충청·전라지역이 영남지역에 비해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 KCI등재

        충청북도 지역특산물의 시기별 변화와 지역적 분포 특성

        최보미(Choi, Bo-mi),강창숙(Kang, Chang-Sook) 한국지역지리학회 2015 한국지역지리학회지 Vol.21 No.1

        지역특산물은 고 지리지의 주요 항목으로 구성되어 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지리학적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2013년 충청북도 12개 시·군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역특산물과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지리지에 수록된 토산물을 대상으로, 충청북도 지역특산물의 시 기별 변화와 지역적 분포 특성을 분석하였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의 지역특산물은 크게 농작물, 임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 4개 유형의 특산물과 가공식품, 공예품, 화장품 등 3개 유형의 특산품으로 구분되었다. 선 정된 지역특산물 중에서 농작물이 모든 지역에서 가장 다양하게 분포하고 가공식품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조선 전기와 후기의 지리지에 수록된 토산물의 유형은 농작물, 수산물, 임산물, 축산물, 공예품, 광산 물의 6개 유형이고, 대추, 인삼, 꿀의 3개 품목이 널리 재배되었다. 셋째, 일제강점기의 지리지에 수록된 각 지역의 토 산물은 수산물을 제외한 5개 유형이다. 조선시대에 비해 수록된 품목의 수가 전체적으로 감소했지만, 공예품의 품목 수는 단양과 괴산군을 중심으로 매우 증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충청북도 지역특산물 중에서 역사지리적 전통성을 지닌 지역특산물은 18개 품목인 것으로 나타났다. Regional specialty products should be representative of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for a long time, this was not done for geographical research. This study examines current the regional specialty products on 12 web-site of the cities?counties in 2013 and the products registered on the Tosan(土産) category from old Jiriji(古地理誌) in Chungcheongbuk-do. Futhermore, the study analyzed periodical change and regional distribution characteristics of regional specialty products.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current the regional specialty products types are 4 products(crops, marine products, forest products, livestock products) and 3 manufactures (processed food, handicraft, cosmetic products). Among the regional specialty products, various crops and processed food were distributed in all the regions. Second, the traditional products types are 5 products(crops, marine products, forest products, livestock products, mineral products) and 1 manufactures(handicraft) that registered on the old Jiriji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The jujube, ginseng and honey were cultivated in the most regions. Third, the traditional products types are 4 products except for marine products and 1 manufactures(handicraft) that registered on the old Jiriji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Its total item numbers of the regional specialty products are greatly decreased, but items of handicraft relatively increased in the Danyang and Goesan regions. Finally, regional analyzing of current local items shows that there are only a few regional specialty products(18 items) that have historical tradi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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