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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易學史에서 圖象學的 象數學의 受容과 批判 ─ 朱子의 圖書易學과 邵康節의 先天易學을 중심으로 ─

        정병석 한국유교학회 2014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

        In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the meaning-pattern Yi-ology perspective played a leading role, however, image-numerology gradually emerged in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While meaning-pattern Yi-ology was the mainstream, image-numerology gradually showed a leading aspect in the Joseon Dynasty. Actually, there are slightly different reasons of such a transition. At early stages, the innate essence and generalities of Gua-yao's symbols were paid attention, as numerology or cosmology was adopted as a methodological means to consolidate the realization of moral virtue, which is the directing point of meaning-pattern Yi-ology. However, in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image-numerology seemed to expand its scope to the domain of preception on universe and nature. And then, image-numerology faced with another change through skepticism on Zhuxi's view of the world. The mainstream of image-numerology introduced in the Joseon Dynasty was not the one in the Han Dynasty, but it was clearly overwhelming those days, if it is viewed from the iconographic image-numerology's influence aspect, centered on iconography including Hetu and luoshu and the diagram of the pre-natal eight trigrams. Here, it was Zhuxi's iconographic image-numerology, centered on Yixueqimeng, that played a critical role. This paper aims to examine how iconographic image-numerology, which was combined with Yixueqimeng, centered on Hetu and luoshu, and Shaoyong's pre-natal image-numerology, focused on the diagram of the sequence of the eight trigrams, was accepted, interpreted and criticized in the Joseon Dynasty through Toegye Yi Hwang, Jang Hyeon-gwang, Seo Myeong-eung, Yi Ik and Dasan Jeong Yak-yong. The author expects that an opportunity to discuss the iconographic characteristics of Yi-ology of Korea is provided through this study. 조선 전기에는 의리역학적인 관점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상수역학이 점차적으로 부각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조선에서 의리역학이 주류를 이루다가 점차 상수역학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이유 역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초기에는 의리역학의 지향점인 도덕적 선의 실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 방법적 수단으로 수리론 또는 우주론을 채용하면서 괘효의 상징들이 지니는 내재적인 본질과 그 법칙성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상수역학은 우주와 자연 인식이라는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주자 세계관에 대한 회의를 통하여 상수역학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조에 도입된 상수역학의 주류는 한대(漢代)의 상수역학이 아니라, 하도낙서와 선천팔괘도 등의 도상을 중심으로 하는 도상학적 상수역학이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히 압도적이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역학계몽』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의 도서 상수역학이다. 본 논문은 하도낙서를 중심으로 하는 『역학계몽』과 팔괘차서도 등을 중심으로 하는 소강절의 선천 상수역학이 결합된 도상학적 상수역학이 조선조에서 어떻게 수용되어 해석되고, 비판받았는가 하는 문제를 이퇴계, 장현광, 서명응, 이익과 정다산 등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이런 분석을 통하여 한국역학이 가진 도상학적 특징들 역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KCI등재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의 도서역학적 의의

        양순자(Soon-ja Yang) 한국동양철학회 2013 동양철학 Vol.0 No.40

        『역학계몽요해』는 조선 최초의 『역학계몽』 주석서이다. 최항은 한계희(韓繼禧)와 함께 세조의 명을 받아 많은 동료 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역학계몽』에 대한 문답형식의 『역학계몽요해』를 간행한다. 이 논문에서는 『역학계몽요해』를 통해서 조선 도서역의 초기 모습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우선 세조가 『역학계몽』에 주목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하며, 『역학계몽요해』의 구성과 주요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조선 도서역의 단초를 규명하고자 하고, 더 나아가 조선 역학의 성리학적 정초과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고려 말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정이의 『역전』을 수용하였고, 이런 경향은 조선 초기에 이어졌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은 정이의 유가적인 도덕적 원리와 의리역학적 해석방법론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역학 이론을 성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조의 『역학계몽요해』는 상수를 토대로 의리를 종합하는 주희의 역철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역학계몽요해』는 의리역학이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던 조선 전기 역학사에 주희의 상수와 의리를 종합한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전기 도서역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의가 있다. 하지만 『역학계몽』을 통한 주자학적 또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정립은 『역학계몽요해』에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요인은 세조 전 기간 동안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아직 미성숙했고, 불교가 유학보다 더 우대받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학계몽요해』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역학계몽』을 이해하기보다는 기존의 중국학자들의 주석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인다. Yeokhakgemongyohae is the first commentary of Yeokhyakgemong in the Joseon Dynasty. Along with Han Gyehee and other colleagues, Choi Hang published the Yeokhakgemongyohae by the order of King Sejo. This article attempts to analyze early Joseon studies of Diagram- Picture study of the Yijing. I examined why King Sejo had interest in the Yeokhyakgemong and discussed the structure and major feature of the work. In the process, I examined a start of the Joseon Diagram- Picture study of the Yijing and furthermore revealed how the Joseon Confucianism made the foundation. Confucianists accepted Cheng Yi's Yeokjeon in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and Joseon Confucianists succeeded the tradition. The early Joseon Confucianists established their own theories of the Yijing on the basis of Cheng Yi's Confucian moral principle and ethical interpretation of the Yijing in some parts. The Yeokhakgemongyohae provided a trigger for interest in Zhu Xi's theory of the Yijing, which synthesized Image- Number study of the Yijing with morality. In other words, the Yeokhakgemongyohae has a considerable significance in that it introduced Zhu Xi's theory to the early Joseon academy whose main study was focused on the ethical interpretation of the Yijing. However, the Yeokhakgemongyohae could not establish its original Confucian world through the Yeokhakgemong. The biggest reason for it is that Confuciansits did not have a though understanding of Confucianism in the period of King Sejo. In addition, Buddhisim was more popular than Confucianism. The Yeokhakgemongyohae has also a limitation of relying on Chinese scholars' s interpretation in order to understand the Yeokhakgemong.

      • KCI등재

        소강절의 선천역학에 대한 청대 역학자들의 비판 고찰

        김진근 범한철학회 2008 汎韓哲學 Vol.51 No.4

        이 논문은 소강절의 선천역학을 비판하는 청대 역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소강절의 선천역학이나 이에 대해 비판하였던 청대역학이나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조(思潮)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 후자가 전자를 비판하는 관점을 잡아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청대학자들과 관련하여서는 주백곤의 견해를 원용하여 소강절의 선천역학을 비판하였던 청대역학자들로 한정하였다. 논의의 순서로는 먼저 가일배법과 「선천도」를 소강절 역학의 정수(精粹)로 규정하고, 그 소강절 선천역학의 유래와 관련한 비판, 가일배법에 대한 비판, 「선천도」에 대한 비판을 차례로 고찰하였다. 그래서 청대 역학자들이 소강절의 「선천도」가 도교의 양생술에서 유래하였다고 함을 거론하였다. 따라서 ‘먼저 사람이 된 뒤 사회 활동을 하라’는 유가의 종지(宗旨)와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은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함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일배법에 대한 청대 역학자들의 비판은 ‘20→21→22→23→24→25→26’와 같이 ‘2n’으로 표기할 수 있는 과정이 객관 세계나 『주역』 경전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황종희․종염 형제, 모기령, 호위 등의 가일배법 비판론을 고찰하여 보았다. 「선천도」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는 먼저 왕선산의 비판 종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황종희, 호위, 황종염, 혜동 등의 비판을 고찰하여 보았다.

      • KCI등재

        소강절역학(邵康節易學)과 왕부지역학(王夫之易學)의 비교분석 ― 괘(卦) 생성구조(生成構造) 비교와 동이점(同異點) 모색을 중심으로

        조희녕 ( Cho Hie-young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8 大東文化硏究 Vol.103 No.-

        邵康節의 先天易學(이하 ‘邵易’)과 王夫之易學(이하 ‘王易’)은 역학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왕역이 소역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필자는 두 이론에서 같은 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卦의 생성구조’와 두 역학의 ‘同異點 모색’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여 다음의 결과를 얻었다. 邵易은 괘의 기원을 「河圖」로 보고 있다. 소강절은 「하도」의 數에서 易이 나왔다고 말하지만 「하도」나 그 數에서 바로 易卦를 추출하지는 않는다. 邵易이 역괘 생성의 근거로 보는 것은 계사 상 11장의 ‘易有太極’장으로 ‘태극[1]-양의[2]-사상[4]-팔괘[8]’의 단계이다. 이 과정은 2를 배수한 ‘加一倍法’이다. 王易의 역괘 생성구조도 「하도」에 기초한다. 특이한 것은 「하도」 층위의 수에서 8괘를 직접 추출한다는 데 있다. 이 점이 邵易과 다르다. 왕역은 64괘가 몇 가지 경로로 나온다고 한다. 하나는 四象論과 重卦法을 결합한 것이고, 또 하나는 ‘錯綜說’과 ‘消長說’에 의한 것이다. 다 乾坤竝建說을 기본으로 한 64괘 구조론이다. 건곤병건이 그의 역학의 존재원리라면 착종은 구체적 실현모형이라 할 수 있다. 邵易과 王易의 가장 큰 차이는 四象論과 건곤병건설이다. 邵易의 四象은 8괘 생성 이전인 2획의 단계로 易卦가 아니다. 또 64괘는 가일배법으로 일시에 나온다고 한다. 王易에서 사상은 8괘를 음양별로 4가지로 구분한 역괘라 하고 또 건곤이 병건하여 64괘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 두 이론에서 같은 점이 있다. 역의 기원을 伏羲에 두고 괘는 「하도」에서 나왔다고 보는 점이 같다. 역의 전승관계를 소역은 복희-문왕-주공-공자의 네 성인의 계통으로 여기며 이를 ‘四聖一心’이라 한다. 왕역도 같은 전승관계를 인정하면서 ‘四聖同揆’라 한다. 두 이론은 이처럼 뿌리는 같으나 가지가 다르고 할 수 있다. 이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역학관이 일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 다 易文에 없는 易外別傳的 요소도 있다. 본 연구를 기회로 두 역학은 대립적인 이론이라는 종전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둘 사이의 同異點을 좀 더 심층 분석하면 역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It is known that the point of view of Shao Yong'I-ching(邵易) and Wang Fuchih'I-ching is different. I think that there will be the same thing in both theories. I focused on the structure of trigrams(卦) and analyzed it and got the following results. Shao Yong'I-ching sees the origins of the trigrams as 'He tu(河圖)'. This position came from the Han Dynasty Gong-angug(孔安國), Yuheum(劉歆). In particular, Shao Yong say that the trigrams came from the number of He tu. It is the eleven chapel gyesa sang(繫辭上 11장) that Shao Yong'I-ching sees as the basis for the creation of the trigrams. The contents are the stage of the eight trigrams(8卦), 'Taegeuk[1]-Yang ui[2]-Sasang[4]-eight trigrams[8]' and 64 ruling is '1-2-4-8-16-32-64'. This process is the key to Shao Yong'I-ching double method, which is a multiple of two(加一倍法). The structure of the generation of the Wang Fuchih'I-ching(王易) of trigrams is also based on the number of He tu. The unusual thing is to extract eight trigrams directly from the number of He tu level. This point is different from Shao Yong'I-ching. Production of 64 trigrams occurs in several ways. One is a theory of 64 trigrams structer that combines Sasanglon and Junggwaebeob(四象論과 重卦法), and the other is Chagjongseol(錯綜說) and Sojangseol(消長說). Although all of them are based on Geongonbyeong-geonseol(乾坤竝建說). The greatest difference between Shao Yong'Iching and Wang Fuchih'I-ching can be attributed to the Sasanglon and Geongonbyeonggeonseol. There is a similarity between the two theories. The same point in both theories is that one recognizes the tradition of the Four Saints with the origin of the I-ching in Fuxi(伏羲), and the other is that it is derived from He tu. Like this, This is the same as the origin of production of trigrams, but the path is different. Most of the researchers focused on the difference between Shao Yong'I-ching and Wang Fuchih'I-ching, but they did not pay attention to the same point, but found that they share some points of view. Therefore, in-depth comparison of the two theories will be able to take an opportunity for I-ching's development.

      • KCI등재

        『正易』의 입장에서 본 王龍溪의 易學思想

        임병학(Lim, Byeong-hak) 한국양명학회 2013 陽明學 Vol.0 No.36

        본 논문은 韓國易學인『正易』의 입장에서 陽明學에서『周易』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대표적 학자인 王龍溪의 易學思想을 고찰하였다. 龍溪의 역학사상은 기본적으로 그의 스승인 王陽明의 易學觀을 계승하여, 易學의 두 견해인 象數易學과 義理易學을 자신의 心學的입장에서 하나로 통일하고 있다. 그는『周易』의 十翼가운데 특히 ‘大象辭’에서 밝힌 君子의 의리를 중시하여 『大象義述』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先天後天解義』·『河圖洛書解義』· 『易與天地準一章大旨』· 『圖書先后天跋語』· 『太極亭記』등을 저술하여, 宋代 圖書象數易學의 핵심적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正易』이 밝히고 있는 역학의 3대 근본 문제 즉, 첫째 易學은 聖人之學이라는 것이고, 둘째 干支度數와 河圖洛書를 통해 표상하는 易道가 曆數原理이며, 셋째 易學의 先後天論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먼저 제2장 良知와 易에서는 良知와 易을 동일시하면서 良知를 깨우친 자가 聖人이라 하여, 易學이 聖人之學임을 고찰하였으며, 제3장 良知와 先後天論에서는『先天後天解義』를 중심으로 『正易』의 先後天論과 龍溪의 先後天論을 비교?고찰하였다. 용계는 先天은 本體로, 後天은 作用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體用一源의 논리에 바탕하여 일체적인 관계로 설명하는 독창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4장 良知와 河圖洛書論에서는『河圖洛書解義』을 중심으로 용계가 언급한 河圖洛書論의 『正易』的의미를 고찰하였다. 용계는 河圖와 洛書를 順逆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周易』 說卦제3장에 근거한 것이다. 易學에서 河圖洛書原理의 구체적인 내용은 『正易』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正易』의 내용과 용계의 河圖洛書論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 KCI등재후보

        邵雍의 先天易學에 대한 王夫之의 비판

        조우진 한국공자학회 2014 공자학 Vol.27 No.-

        본 논문의 목적은 소옹의 선천역학(先天易學)을 바탕으로 한 송대(宋代) 상수역(象數易)의 흐름을 살펴보고 왕부지의 비판적 입장을 고찰하는데 있다. 필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상수역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 왕부지는 자신의 역학체계를 바탕으로 선천과 후천의 개념, 선천의 전수과정, 선천도(先天圖)의 체계, 선천역학의 원리, 괘(卦)의 형성의 과정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비판 논리는 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왕부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옹의 선천역학과 관련된 이론이나 내용은 경전에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도가(道家)의 술수가들에 의해 전수된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왕부지는 소옹의 선천역학을 비판하는 근거를 여러 가지로 제시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점(占)과 관련된다. 선천역학의 핵심원리인 가일배법(加一倍法)은 아래로부터 위로 쌓아서 괘(卦)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점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왕부지는 소옹의 선천역학을 술수학일 뿐만 아니라 점역(占易)에 치우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점학일리(占學一理)’를 주장한다. The object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rrent of Xiangshuyi(象數易) in Song dynasty(宋代) based on Shao-Yong(邵雍)’s Sunchenyeokhak(先天易學) and consider Wang-Fuzhi(王夫之)’s critical position. By this critical examination, we can ascertain the true features of Xiangshuyi. Wang-Fuzhi severely criticised the concept of Sunchen(先天) and Huchen(後天), the transmission process of Sunchen, the system of Sunchentu(先天圖), and the principle of Sunchenyeokhak, and the formation process of Gua(卦) through his Yeokhak(易學) system. His criticism is especially based on positivistic thinking on the contents of Jingzhuan(經傳). For Wang-Fuzhii, the content and theory concerning Shao-Yong’s Sunchenyeokhak aren’t found in Jingzhuan(經傳) and are nothing but brought by Zhushujia(術數家) in Daojia(道家). Wang-Fuzhi presents the several evidences of criticising Shao-Yong’s Xiangshuyi. Among them, the most decisive evidence is related to Zhan(占). Jiayibeifa(加一倍法) as the key principle of Sunchenyeokhak is a process of making Gua by stacking one on top of another and this process is the same as that of Zhan. In conclusion, Wang-Fuzhi maintains Zhanxueyili(占學一理) criticizing that Shao-Yong’s Sunchenyeokhak is only Zhushuxue and is biased toward Zhanyi.

      • KCI등재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이해

        이선경(Yi Suhn-gyohng) 한국양명학회 2011 陽明學 Vol.0 No.28

        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은 조선의 상수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문헌이다. 이 논문은 조선의 『역학계몽』 관련 연구들 가운데,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이해를 살펴본 것이다.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는 조선의 『역학계몽』 관련 저작 가운데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저작은 특히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본고에서는 이황이 『계몽전의』를 저술한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계몽전의』에서 다룬 주요 쟁점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것이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밝힌다. 그리하여 퇴계학파 『역학계몽』 이해의 종합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학계몽』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도모하였던 이황의 태도는 후세의 연구자들에게도 일관된 모습으로 드러나며, 주석들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하는 연구방식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계몽전의』를 묵수하거나 옹호하는데 있지 않으며, 『계몽전의』를 통하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다시 쟁점화하고, 그에 대한 조선의 선배학자들의 견해를 검토하며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이렇게 『계몽전의』를 중심으로 연구사의 축적을 통해 『역학계몽』 이해의 완전성을 추구해가는 모습은 다른 학파와 구별되는 퇴계학파 『역학계몽』 연구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계몽전의』에 나타난 태극논의는 이황이 상수학(象數學)을 통하여서도 리(理)의 필연성과 주재력을 확보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주며, 이는 『계몽전의』 가상수학 저술이지만 그 안에 이학적(理學的) 관심이 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다만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서는 이학적 관심이 뚜렷한 경우와, 이학적 관심과는 별도로 도수적(度數的) 연구에 치중한 경우로 나뉨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9세기 저작들에서 뚜렷이 드러나며 이는 퇴계학파 안에 내재하던 하나의 흐름이 19세기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으로 생각된다. Zhu Xi’s Yi Xue Qi Meng(『易學啓蒙』) is the core text in understanding the Image-Number(象數) Theory of Chosun Dynasty. Among the literature on Yi Xue Qi Meng during Chosun period, this article focuses on the work of the school of Toegye (退溪). Yi Hwang’s Qi Meng Zhuan Yi (『啓蒙傳疑』) is known as the first full-scale research work of Yi Xue Qi Meng written in Chosun period. It also had tremendous influence upon the subsequent research of Yi Xue Qi Meng in Chosun. This article has three aims: it (ⅰ) examines Yi Hwang’s motivation of writing Qi Meng Zhuan Yi, (ⅱ) spells out the main issues appearing in Qi Meng Zhuan Yi, and (ⅲ) investigates how it affects the subsequent study of Yi Xue Qi Meng performed by the followers of Toegye. As a result, this article will reveal principal characteristics of Yi Xue Qi Meng research performed by the school of Toegye. Just as Yi Hwang, his followers sought perfect understanding of Yi Xue Qi Meng while resolving the inconsistencies among the annotations of the text. In doing so, they did not merely keep to Qi Meng Zhuan Yi. Rather, they raised questions on the unresolved issues in the text, examined the predecessors’ views on them, and developed their own solutions. Their work is distinct in that they pursued the perfection in understanding Yi Xue Qi Meng by means of accumulating research on Qi Meng Zhuan Yi. The discussion of Tai-Ji (太極) in Qi Meng Zhuan Yi reveals that Yi Hwang intended to establish the necessity and predominance of Li (理) even in his theory of Image and Number (象數學), which suggests that Qi Meng Zhuan Yi embraces the subjects of Neo-Confucianism, though it is primarily a work of image-number theory. Later the analyses of Yi Xue Qi Meng diverged among the followers of Toegye: some took an interest in the theory of Li while others concentrated on the study of nature. In particular, the theoretical traits of the latter are conspicuous in their work in the 19th century, which suggests that one stream of Toegye School bore fruit in the 19th century.

      • KCI등재

        「당서괘기론」에 담긴 정약용의 중국역학 비판 연구

        이난숙 ( Nan-sook Lee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6 儒學硏究 Vol.34 No.-

        「당서괘기론(唐書卦氣論)」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역학서언(易學緖言)』에 수록된 역학평론이다. 다산은 「당서괘기론」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역법 『대연력(大衍曆)』에 포함된 한역(漢易)의 괘기설(卦氣說)을 집중적으로 비판하였다. 괘기설은 1년, 4계절, 12개월, 24절기, 72후(候), 윤달, 365일 등 우주의 운행과 순환변화를 관측한 역상수(曆常數)와 『주역』 64괘의 괘효를 연결하여 우주 자연과 인간세계를 합일적으로 해석한 학설이며, 중국의 천문학 및 역법(曆法)과 관련이 깊다. 한대 괘기설에는 상수역학의 해석방법이 담겨 있다. 다산 역학(易學)의 특징은 상(象)과 수(數)와 리(理)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탐구하여 역리(易理)를 토대로 한 역학이론을 정립한 데 있다. 특히 「당서괘기론」에서는 다산이 한대(漢代) 역학자들의 괘기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그 원류와 해석을 검토하여 역리에 맞는지를 검증하였다. 이 논문은 다산이 「당서괘기론」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한 한대 역학자들의 괘기설 내용과 해석방법론의 특징을 살펴보고 다산의 비판적인 역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산이 고증적으로 탐구한 다양한 역학문헌과 괘기설의 원류 및 경방의 괘기역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동시에 역법과 관련된 역학이론에 중심을 두어 논하였다. 2장에서는 중국역법 역사적 전개와 다산의 역법관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다산의 괘기설 비판을, 4장에서는 분괘직일법(分卦直一法)과 육일칠분법(六日七分法)에 대한 다산의 비판을, 5장에서는 『대연력』과 ‘대연수(大衍數)’에 대한 해석을 분석하였다. 연구과정을 통해 『대연력』에 수록된 세부적인 역학이론의 내용과 다산의 비판 근거 및 이유를 정리하였다. 연구결과 다산은 「당서괘기론」에서 경방(京房, B.C.77~B.C.37)의 괘기설이 맹희(孟喜)와 초연수(焦延壽)의 이론과 차이점이 있음을 밝혔고, 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경방이 중국역학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서한(西漢)의 상수학자이지만, 분괘직일법과 육일칠분법 등은 임의적으로 확대 해석한 이론으로 역도(易道)에 어긋난 오류이며, 술수역학이라고 평가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다산이 이와 같이 경방ㆍ맹희ㆍ초연수의 역학이론을 비판한 근거는 추이법(推移法)이 『주역』의 작괘(作卦)원리라고 확신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논문을 통하여 천문역법에는 엄밀하게 실험 관측한 수리적 데이터로 정립된 이론 이외에도 점변(占變)의 요소가 함께 포괄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당서괘기론」은 2천년 중국역학사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역학을 재정립하려는 다산의 학문적 업적의 연속성 상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This paper attempts to examine 『Yixuexuyan(易學緖言)』 Tangshuguaqilun(唐書卦氣 論) . Tangshuguaqilun is one of among the Jeong Yagyong’s twenty one Collections of Critical Essays on the Chinese yixue(易學). In Tangshuguaqilun , Jeong Yagyong criticized the different theories of Gguqi(卦氣說) related to Chinese astronomy in the China``s representative oriental calender called 『dayanli(大衍曆)』. The Theory of Gguqi is a scholarly relation analysis of 『Zhouyi(周易)』``s 64 kinds of the gua(卦) yao(爻) and the lishu(曆數: which observed cyclic change and space etc, of 1 year, 12 months, 24 divisions of the year and 72 seasons of the year, leap month etc.) Especially Tangshuguaqilun argued about the Han(漢)-Dynasty’s xiangshuxue-theory(象數學說) associated with Calender system. Because of this, it has significance in terms of the chinese scholars and Jeong Yagyong’s comparative analysis-methods on 『Zhouyi』. Jeong Yagyong studied literately on image, number, principle of 『Zhouyi』 and as a result he considered the principle of 『Zhouyi』 as basis and a new yixue theory has been established. In this paper, I research primary sources of yixue[in order to criticize Hanyeok(漢易)’s Theory of Gguqi ascertained by Jeong Yagyong, and his scholarly analysis and Theory of Gguqi. It provides the specific details of the study. In the second chapter, it dealt with Chinese Calender System scrutinizing its historical development and Jeong Yagyong’s viewpoint of Chinese Calendar system. The third chapter deals with Jeong Yagyong’s criticism of Theory of Gguqi. The fourth chapter explains the critiques on Fenguazhiyifa(分卦直日法) and liuriqifenfa(六日七分法). The final chapter presents the analytical problems of 『Dayanli』 and dayan-numbers. In the process of carrying out this research specific contents of theories of yixue criticized by Jeong Yagyong and their basis and reasons were analysed. The study concludes that Jeong Yagyong centrally criticized Jingfang(京房)’s Theory of Gguqi which were different from the theories of Mengxi(孟喜) and Jiao Yanshou(焦延壽). Jingfang is a great scholar which radiated immense impact in the history of Chinese Yixue. But Jeong Yagyong criticized Jingfang’s theory which gets pointed out in its calender especially in fenguazhiyifa and liuriqifenfa. Furthermore, it has importance critical meaning that Tangshuguaqilun has divided scientific data of astronomy and application theory of Yixue.

      • KCI등재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이해

        한국양명학회 2011 陽明學 Vol.0 No.28

        <P>주희(朱熹)의 『역학계몽(易學啓蒙)』은 조선의 상수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문헌이다. 이 논문은 조선의 『역학계몽』 관련 연구들 가운데,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이해를 살펴본 것이다.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는 조선의 『역학계몽』 관련 저작 가운데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저작은 특히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본고에서는 이황이 『계몽전의』를 저술한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계몽전의』에서 다룬 주요 쟁점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것이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밝힌다. 그리하여 퇴계학파 『역학계몽』 이해의 종합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P><P> 『역학계몽』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도모하였던 이황의 태도는 후세의 연구자들에게도 일관된 모습으로 드러나며, 주석들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하는 연구방식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계몽전의』를 묵수하거나 옹호하는데 있지 않으며, 『계몽전의』를 통하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다시 쟁점화하고, 그에 대한 조선의 선배학자들의 견해를 검토하며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이렇게 『계몽전의』를 중심으로 연구사의 축적을 통해 『역학계몽』 이해의 완전성을 추구해가는 모습은 다른 학파와 구별되는 퇴계학파 『역학계몽』 연구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P><P> 『계몽전의』에 나타난 태극논의는 이황이 상수학(象數學)을 통하여서도 리(理)의 필연성과 주재력을 확보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주며, 이는 『계몽전의』 가상수학 저술이지만 그 안에 이학적(理學的) 관심이 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다만 후대 퇴계학파의 『역학계몽』 연구에서는 이학적 관심이 뚜렷한 경우와, 이학적 관심과는 별도로 도수적(度數的) 연구에 치중한 경우로 나뉨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9세기 저작들에서 뚜렷이 드러나며 이는 퇴계학파 안에 내재하던 하나의 흐름이 19세기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으로 생각된다.</P>

      • KCI등재후보

        吳澄의 易學과 邵雍

        이범학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9 한국학논총 Vol.31 No.-

        邵雍은 宋代의 유명한 象數易學者이다. 이 글에서는 吳澄의 易學에 그의 사상이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에 주목했다. 먼저 邵雍의 象數易學은 程伊川의 義理易學과 구분된다. 程伊川의 義理易學의 理學과 易學을 일체화시키고, 易學을 도덕주의와 理學的 經世主義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에 있었다. 반면 邵雍의 象數易學은 ‘先天象數學’이라고도 불리는데, ‘數’를 최고의 범주이자 우주만물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로 보아서, ‘數’를 ‘理’의 근본으로 보고 ‘理’는 ‘數’의 법칙성과 객관성을 설명하기 위한 ‘條理’, ‘物理’ 등 원리 일반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邵雍의 易學을 先天象數學이라고 불렀는데 그 핵심은 ‘數’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先天之學은 心法”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天地自然은 존재의의와 그 활동의 근본원리가 바로 ‘心’이다. 邵雍의 ‘心’은 自然哲學 내지는 自然科學의 성격을 띠고 있어 ‘心法卽數法’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었고, “以我觀物”해서는 안되고 “以物觀物”해야 한다는 의 사고는 程ㆍ朱의 도덕주의 실천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吳澄의 易學은 邵雍의 象數易學이 지닌 자연철학과 ‘易學卽心法’의 명제를 中核으로 하여 程伊川의 義理易學이 지닌 도덕주의와 인문주의를 흡수하여 이를 보완시키는 특징을 지녔다. 따라서 吳澄의 ‘易學卽心學’이라는 말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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