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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現代韓中儒學的硏究

          권용옥 ( Yong Ok Kwon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1 儒學硏究 Vol.25 No.-

          韓中兩國接壤, 文化交流源遠流長。儒學作爲中韓兩國傳統社會的主流文化, 沿存于兩千余年。這樣以來, 儒學在韓國得以展開和發展, 中國儒學發展的幾個階段都有一定的影響和表現。儒學, 到了現代社會, 由于西方强勢文化的沖擊及社會政治的變遷而退居邊緣。因此現代儒學地位與社會轉型的問題, 已討論了20幾年, 論者各執異見。其實, 這也是個隨時間推移· 社會發展而在不斷變化的問題。諸問題中本篇探討的是兩個重点。首先討論的是儒學思想的本質問題。其內容注重于"仁之道"·"民本思想"·"禮思想"。其二是中韓儒學的現代轉型問題。內容包含着現代韓中兩國儒學發展之異同和타的地位變遷如何· 兩國社會轉型與儒學轉型的相應關系等幾個問題。 Being connected by land, China and Korea maintain historically long cultural exchange. Confucianism is the mainstream culture of both nations` traditional society, and is already preserved for about two thousand years。Confucianism in Korea has been affected correspondingly along with its developing stage in China, and developed with the expression of the times. Confucianism in modern society was pushed out to the edge of the public interest due to the powerful impact from western culture and the social and political changes. Due to these factors even many scholars have been discussed for about last 20 years on the position of present-day Confucianism and the social transition problem, every panelist put out a different opinion。Such a divergence in opinion is a current trend of the times and changes constantly with social development。This paper is focused the following two subjects among those many.The first subject discussed is the essence of Confucianism thought whose core contents is reason of perfect virtue, democracy thought, and etiquette thought。The second one is the matter of social transition of Confucianism in both China and Korea. The contents in second one are the same point and the different point of Confucianism development in present-day China and Korea, matter concerning on the status change of Confucianism in nations, and interrelation between social transition and Confucianism transition in both countries.

        • KCI등재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 장경(蔣慶) 유교헌정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

          정종모 ( Jung Jong-mo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7 儒學硏究 Vol.39 No.-

          주지하듯이 21세기 들어 대륙신유가 진영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유교헌정론을 주장하는 장경(蔣慶)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그는 정치유학, 제도유학의 차원에서 기존 홍콩대만신유가의 심성유학, 생명유학 전통을 비판한다. 그리고 중국 나름의 헌정질서체계를 의회삼원제(議會三院制)란 이름으로 구상한 뒤, 서구민주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 중국고유의 유교헌정론을 제시한다. 한편, 모종삼(牟宗三), 서복관(徐復觀), 당군의(唐君毅) 등을 주축으로 한 홍콩대만신유가 노선을 계승하는 대만학자 이명휘(李明輝)는 장경의 유교헌정론 구상을 비판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사이의 논쟁은 대륙신유가와 홍콩대만신유가 간의 이론적 논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이명휘의 관점의 연원으로서 모종삼의 입장을 소개한다. 모종삼은 유학이 비록 서구민주주의에 상응하는 제도를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유학의 이념이 서구민주주의와 배치되지 않으며, 도덕주체에 대한 강조를 지성주체로 일부 전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수용과 토착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양지자아감함설). 이처럼 이명휘는 모종삼의 이른바 `개출설(종자설)`을 받아들여,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연속성을 긍정하고, 내성에 입각한 정치유학 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내면화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고수하면서, 장경의 입장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이상의 논쟁을 일별하고, 그 연원과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본 논문은 21세기 현대신유학의 현황의 일단을 살피고자 한다. The growth of Contemporary Neo-Confucianism in China this century is amazing. Especially, Jiang Qing(蔣慶) became a very important Confucian thinker in Chinese philosophical world. In view of the `political Confucianism(政治儒學)` and `Confucian constitutionalism(儒敎憲政論)`, he criticized the stream of `moral Confucianism(心性儒學)` in HongKong and Taiwan. In the middle part of the 20th century, Mou Zongsan(牟宗三), Xu Fuguan(徐復觀) and Tang Junyi(唐君毅) devoted themselves faithfully to creative interpretations of Confucianism, and established contemporary Neo-Confucianism in HongKong and Taiwan. Li Minghui(李明輝) is in succession to this school of thought, and insists that `moral Confucianism` is not at odds with the democracies of the modern West. On the other hand, Jiang says that China`s political future and political system have to be based on Chinese heritage and Confucian tradition. For example, in a Western democracy, political legitimacy is based on the sovereignty of the people. But in Jjiang`s system, there are three kinds of legitimacy. They come from way of heaven(天道), way of earth(地道) and way of human(人道). In this paper, we can see the main issue and context of the debate between Jiang and Li.

        • KCI등재후보

          悳泉 成璣運 思想 一考

          리기용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08 儒學硏究 Vol.17 No.-

          이 연구는 덕천悳泉 성기운成璣運(1877-1956)의 사상을 고찰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격변기 속에서 덕천은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정점으로 하는 기호학파의 도통을 계승한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제자로 마지막 유학자라 할 수 있다. 덕천사상의 의의는 한마디로 ‘계개지공繼開之功’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덕천은 혼란 속에서 율곡이후 기호유학의 정통성을 묵묵히 계승하며 지켜왔다. 기호유학의 적확한 이해위에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정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덕천은 율곡의 이기정론을 심성론에도 유비적으로 해석하여 “발지자 심야, 소이발자 성야. 發之者 心也, 所以發者 性也.”라고 해석하였다. 둘째 이분화시켜 이해하기 쉬운 다양한 이기심성론의 논의들을 나누어 말할 때[分說時]와 합하여 말할 때[合說時]로 구분하여 그 논의가 지향하는 관점에 따라서 보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셋째 리에 대한 서술어인 형形의 유무에 관한 개념을 사思의 유무로, 그리고 그 관계의 기능적 주기主器의 역할을 지각론적 체용體用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기호유학의 정체성을 계승하였다. 특히 이기심성의 본체론적이고 생성론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를 모두 기 상에 나아가 이치를 밝 힌 것[氣上明理]으로 정리해 줌으로써 지각론적 지평에서 앎과 실천[知行]의 병진竝進과 합일合一을 지향하였다. 덕천의 사상은 현실참여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기호유학의 마지막 스승 간재의 성리학을 계승하며 덕천 고유의 문제들로 정리해 주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서 덕천사상을 통해서 기호유학의 전통이 최근까지 계승되어왔던 면목과 위상을 엿볼 수 있는 한편 한국유학사 연구의 공백기라 할 수 있는 일제하 및 해방전후 유학자들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Deokchon Seong Ki Woon(悳泉 成璣運, 1877-1956) succeeds to the scholastic orthodoxy of Giho School‘s as well as the main descent of Ganjae Jeon Wu(艮齋 田愚, 1841-1922)' neo-confucianism. He plows a lonely furrow to succeed the point of Giho school's neo-confucianism in the transition period of modern Korea. His philosophical standing point goes way back to not only the Yulgok's but Ganjae's neo-confucianism. We can make or draw an analogy between Yulgok's and Deokchon's as below: Yulgok’s fundamental position on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at which manifests is material force; that whereby is manifested is principle. [發者 氣也; 所以發者 理也.] Deokchon’s revised position on mind and nature: That which manifests is mind; that whereby is manifested is nature. [發之者 心也; 所以發者 性也.] There is some organizational similarities between the two. Deokchon makes the further conversion of the metaphysical argument to practical philosophy based on the neo-confucian epistemology as Yulgok did. He asserts that one must distinguish the synthetic saying from the analytic saying about principle-material force and mind-nature. Through this study, we will see the theory of Deokchon's philosophy and an aspect of modern Korean Giho neo-confucianism.

        • KCI등재

          연구논문 : 21세기 중국 "정치유학"의 이념과 쟁점

          송인재 ( In Jae Song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5 儒學硏究 Vol.33 No.-

          오늘날 중국 유학계에서는 유학의 정치적 전변을 통해 유학의 현실 개입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다. ‘정치유학’으로 지칭되는 이 경향은 단순한 학술의 혁신을 넘어 ‘중국 굴기’ 시대에 중국식 정치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을 발산하고 있다. 정치유학을 주창하는 장칭, 야오중추, 간춘쑹은 기존의 현대 신유학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이를 ‘심성유학’, ‘박물관화/철학사’, ‘관념사’ 등으로 규정한다. 그 대안으로 ‘정치유학’, ‘인민유학’, ‘제도유학’ 등을 제시한다. 이들은 ‘정치유학’을 서양 근대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홍콩/대만의 현대 신유학과 구별 정립되는 이념으로 위치 지운다. 2015년에는 현대 신유학의 계승자인 리밍후이가 정치유학을 비판하면서 정치유학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현대 신유학에 대한 양자의 인식 차이와 양자가 처한 정치사회적 환경의 차이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서양의 근대 정치이론과 그것의 영향력 하에 진행된 신문화운동, 그 이후 중국근대사에 대한 인식에까지 연루된다. 여기서 대륙의 유학자들은 리밍후이의 비판이 대륙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비판하고, 대륙의 신유학이 중국의 현실에 대응한 산물임을 강변한다. 정치유학의 등장과 논쟁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유학이 현실 개입성 강화를 꾀하면서 자기발전을 수행한 결과물이다. 현실개입이라는 목적의식 하에 정치유학은 향후 중국의 행보를 논하는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In the times of ‘The rise of China’, ‘Political Confucianism’ has raised as the new Ideal type for reinforcing the influence of Confucian values. Through persisting Political Confucianism, Chinese Neo-confucianists intend to construct the unique political model of China, beyond the scientific innovation. Jiang Qing(蔣慶), Yao Zhongqiu(姚中秋), Gan Chunsong(干春松), the representative exponents of Political Confucianism, criticize that Neo-confucianism, producted by Taiwan Neo-confucianists, do not concern the reality of China, just concentrates on the academic research, so call them ‘Mind Confucianism’, ‘the exhibit of museum’, ‘the history of philosophy’, ‘Ideal history’. Their alternative type to existing Confucianism, proposed by them, is so called ‘Political Confucianism’, ‘People’s Confucianism’, ‘Institutional Confucianism’. Their argument is connected to the idea of searching for Chinese model in the times of ‘The rise of China’. Neo-Confucianists in Chinese continent orient their Confucianism as the idea to overcome Western modernity and have difference to the Neo-Confucianism in Hong Kong and Taiwan. In January of 2015 Li Minghuei(李明輝), the successor of Neo-Confucianism in Taiwan, criticized the argument of Political Confucianism. His criticism cause the debate between the Confucianists of Chinese continent and Taiwan. Their debate revealed the difference of the view on the Neo-Confucianism and social context of both sides. Furthermore it is relevant to the view on modern Western political theories, Chinese modern history since New Culture Movement, based on pursuing Western modernity. The main point in criticizing Li Minghuei is that Li cannot understand the situation of China, insist that their Confucianism is the result of dealing with the Chinese situation. The hole process of argument and debates on Political Confucianism reveal that Chinese Confucianism have continued to develop, through searching for reinforcing its influence on Chinese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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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儒學의 人性論 : 社會心理學的 考察

          李東仁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1 儒學硏究 Vol.25 No.-

          人性論은 儒學의 영원한 주제이다. 先秦儒學에서 유교 인성론의 실체가 확립된 이래 많은 유학자들이 그에 대한 논설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것은 朝鮮性理學의 핵심주제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인성론은 또한 현대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기도하다. 이 논문은 유학의 인성론과 현대 사회심리학의 인성론을 연결짓고, 전자를 후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중심으로 해서 선진유학의 인성론을 검토하고, 그것을 현대 사회심리학의 공격이론과 돕는 행위(이타적 행위) 이론과 결부시킴으로써 유학의 인성론의 사회심리학적 含意를 살펴보았다.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상황의 힘이 막강함으로. 인성의 본질을 구명하려는 시도가 어떤 면에서는 그 의미가 褪色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의 행동이 그렇게 많이 상황에 의해 좌우(결정)되는 것이라면 인간성의 본질을 究明하는 일의 중요성이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중점적으로 검토하면, 사회심리학의 자료들은 性惡보다 性善을 더 지지하는 듯하다. 이는 우리의 상식적 견해와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언어학자가 말하는 ‘선천적 보편문법’이 기존 언어의 문법 틀에 묶여서 잘 발현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 본유의 품성이 탐욕과 경쟁을 앞세우는 이 세상 풍조 앞에서 가려지고 굴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Theories of human nature have always gathered scholarly interest in Confucianism. It is also very important theoretical resources of modern social psychology. In this research I reconsidered the Confucian theories of human nature in the light of modern psychology. I compared the Confucian theory of human nature with psychological theories of aggression and altruism. As recent psychological theories emphasize the great influence of situation in forming human behavior, discussion on human nature may have lost some of its significance. For all these facts, psychological research seems to support the theory of innate goodness of human nature rather than that of innate badness. We might say that as the innate ‘universal grammar’ is hardly remain intact under the influence of he existing language, so the innate human nature is hardly developed intact in this world of greed and competition.

        • KCI등재

          신유학의『대학』텍스트와 유종주의 대학관

          신현승 ( Hyun Seung Shin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3 儒學硏究 Vol.28 No.-

          이 논고에서는 「신유학의 대학 텍스트와 유종주劉宗周의 대학관」이라는 주제 하에 중국송명대(宋明代)에 신유학으로 등장하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핵심 문제를 사서(四書)와 『대학』해석의 차이에서 인식하고, 명대 말기 대표적 유학자인 劉宗周(1578-1645)의 대학관(大學觀)의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즉 송명대의 주요한 사상적 담론에 대해『大學』해석을 둘러싼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석의 중심에 놓인 것이 무엇이며 중국 명대(明代)말기주자학과 양명학의 양 진영을 사상적으로 넘나든 劉宗周의『大學』觀과 이념이 어떠했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劉宗周의 경우『大學』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의식은 「?大學」이라는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는 주희와 왕수인의 견해를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성의(誠意)``를 전면에 내세우고 신활(愼猾)이라는 키워드로『大學』이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즉 이「?大學」은 劉宗周 만년의 ``誠意``와 ``愼猾``에 대한 최종적 정설(定說)이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맥을 같이하여 그는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大學』개정에도 힘을 쏟아 대학고문삼의(『大學古文參疑』)라는 텍스트를 저술했는데, 전체의 구성은 일방(壹坊)의 『위석경대학』을 표준으로 삼았고 경(經)-팔조목의 전(傳)이라는 형식을 취하였다. 또 52세 때의 저작인 대학고기약의(大學古記約義)에서도 ``愼猾``의 개념은 변함없이 『大學』의 중심 요지가 되고 있다. This discussion, under the theme of「DaXue Text of Neo-Confucianism and Liu-Zhongzhou`s Viewof DaXue」, is aimed at looking into how was the aspect of the View of DaXue held by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 in the late Ming Dyunasty-Liu-Zongzhou(1578-1645) with the perception of the key issue between Zhuzi-Studies emerging as Neo-Confucianism during the Song & Ming age and Yang-ming Studies as the difference in the interpretation of Sishu and DaXue. In other words, this study perceived the major ideological discourse during the Song & Ming age as the issue over the interpretation of DaXue, and intended to consider how were the view of DaXue and ideology held by Liu-Zongzhou whe ideologically haunted berween the both camps, i.e. Zhuzi-Studies and Yang-ming Studies. In case of Liu-Zongzhou, his critical mind about how to read the text of DaXue is well revealed in the writing of 「Du-DaXue」. In this writing, Liu-Zongzhou sets Cheng-Yi at the head while looking on both Zhu-Xi and Wang-Shouren`s view unfavorably, and he is suggesting his own unique thinking system while understanding the text of 『DaXue』eith the keyword of Shen-Du. Accorhingly, it may be safely said that this「Du-DaXue」was his final established theory on Dheng-Yi and Shen-Du in his later years In the same vein, Liu-Zongzhou also wrote text titled 『Daxueguwencanyi』 by doing his best for the revision of DaXue, which was spread like a growing trend at that time, and its overall composition made Feng-fang`s 『Weishijingdaxue』as a standard and took the form of Gyeong-Jeon of The-Three Main Principlcs, In addition, even in his 『Daxueguwencanyi』 written when he was 52, the concept of Shen-Du has become the central essentials of DaXue as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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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과 이슬람의 만남: 도덕적 종교 -김천주(金天柱)의 『청진석의(淸眞釋義)』를 중심으로-

          권상우 ( Sang-woo Kwon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6 儒學硏究 Vol.34 No.-

          논문에서는 유교와 이슬람이 만날 수 있는지에 관해서 金天柱의 「請眞釋義」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김천주는 漢族 유학자들이 이슬람을 탄압하고 비난하는 시기에 살았다. 그는 그들의 탄압과 의혹의 원인을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민족적 편견에 있음을 알고서 그들의 의혹을 해소하면서 이슬람의 진의를 알리고자 하였다. 그는 유학과 이슬람의 풍습을 비교하면서 양자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는 그 유사성을 통해 양자가 소통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확보하고, 그 차이성을 통해 이슬람의 우수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유교와 이슬람을 융합하면서도 이슬람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유학의 인륜과 이슬람의 알라를 결합하고자 한다. 중국무슬림이 중국사회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학의 강상윤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알라를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의 알라를 수용해 유학의 강상윤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유학의 강상윤리를 알라의 계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았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유학과 이슬람이 결합된 형태의 종교를 ‘도덕적 종교’로 칭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address the problem of whether Confucianism and Islamism can converge, based on ‘Chengjinshii’ written by Jin-Chenzhu. Jin-Chenzhu lived during a time when Islamism was being suppressed and criticized by Chinese Confucians. He, an Islamic scholar, took a view that their suppression and suspicions were caused by ignorance about Islamism and ethnic prejudice against it. He had made many efforts to eliminate suspicions and to promulgate the real intention of Islamism. He interpreted Islamism from the Confucian viewpoint in order to eliminate Chinese’s suspicions. He thought that Confucianism and Islamism had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s well in terms of custom and human morality. With their similarities, he attempted to lay a theoretical foundation for mutual communication, and with their differences he tried to demonstrate the superiority of Islamism. He believed that such methods would enable Islamism to fuse with Confucianism and at the same time to maintain its identity. In addition, he tried to fuse the moral principles of Confucianism with the Islamic god, Allah. Chinese Muslims had to accept Confucian ethics so as to root down into Chinese society, but nevertheless, they could not deny their god, Allah. Such being the case, they took a view that Confucianism could justify its moral principles by accepting the Islamic god, Allah, and Islamism could fulfill Allah’s revelation by means of the moral principles of Confucianism. Hereat, in this study, a debate was conducted on the appellation of ‘Moral Religion’, a Religion in which Confucianism and Islamism converge.

        • KCI등재

          연구논문 : 명재 윤증의 유학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이홍군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2 儒學硏究 Vol.26 No.-

          명재 윤증(1629-1714)선생이 처한 17-18세기 조선사회는 내우외환의 시달림에 국가발전과 민족부흥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기였다. 병자·정묘호란으로 인한 민족적 자존심 상실과 주체성의 흔들림, 당쟁으로 인한 형평성의 상실, 부친 윤선거의 江都之事로 인한 심적 갈등 등은 충분히 명재로 하여금 덕성을 상실케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명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충신양민으로, 학문적으로는 실천유학자로, 가정적으로는 효자로 평생을 재야에서 깨끗하게 살아온 순유였다. 본 논문은 명재의 유학사상을 리기론, 심성론, 수양론 3개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현대적 의미를 전개하였다. 리기론에서 명재는 자신의 특징적인 관점이나 이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理氣二元의 존재관을 기본으로 하면서 리와 기의 관계를 주자와 율곡의 입장을 견지하여 ‘理氣不相離不相雜’의 리와 기의 묘합을 주장한다. 리와 기의 발용에 있어서, 기의 발용만을 주장하여 율곡의 ‘氣發理乘’의 논리를 계승한다. 또한 사물의 변화 과정에 있어서, 리는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기는 천차만별하여 차별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국한된다고 하여, 율곡의 ‘理通氣局’의 논리를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명재의 리기론은 율곡 리기론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성론에서는 명재는 인심도심에 대한 논의를 가장 심도 있게 전개한다. 이는 명재가 심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심을 중시한다고 하여 심학인 것은 아니다. 명재는 도심, 인심, 인욕은 모두 일심의 발현이며, 본연의 마음이 과불급으로 인해 가려져 인심이 된다고 하였다. 인심은 성인도 없을 수 없으며, 인심은 불선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땅히 욕구할 것을 욕구하는 것은 상지의 인심이고, 마땅히 욕구해서는 안 될 것을 욕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인욕이라는 것이다. 본심이 과불급이 없이 바르게 작용한 것이 도심이고, 과불급하여 잘 못 작용한 것이 인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심을 도심, 인심, 인욕 삼층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는 명재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명재의 수양론은 內實과 內修에 힘써 實心을 함양하고 발휘하는 실천적 修養學이라 하겠다. 명재는 독서 궁리의 학문방법을 제시하고, 입지를 수기의 기반으로 한다. 입지가 서면 실심이 서고, 실심이 서면 실공에 힘쓸 수 있고, 실덕에 이를 수 있다는 무실적 수양론이다. 명재의 이와 같은 유학사상은 현대사회의 민족모순, 종교전쟁, 인성위기, 교육위기 등 현대적 병폐를 해결함에 지혜와 방법을 제시한다. 명재의 일심, 본심에 대한 강조는 본원에서 인간의 마음은 성인과 보통 사람에 차이가 없으며, 보통 사람도 후천적 수양을 통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명재의 인간 평등사상의 기초적인 논리라고 하겠다. 또한 학문함에 있어서 명재는 지행합일의 전인적 교육을 주장한다. 이는 인간의 평등은 인류사회의 최종목표이며, 인간이 인간다워야 함은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다. 이에 명재의 유학사상은 현대사회 더욱이는 그 어느 시대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평등이념이며 교육이념이다. 明齋尹拯(1629-1714)所處的17-18世紀的朝鮮社會是在內憂外患的雙重壓力下苦思國家發展和民族複興的抉擇期。丙子·丁卯胡亂帶來的民族自尊心的喪失和主體性的動搖、黨派之爭帶來的社會公德的喪失、父親尹宣擧的江都之事帶來的心的矛盾,這三者任何一個都是讓明齋失去德性的契機。但是明齋一生在民間毫不動搖地度過了在國家層面上是忠臣良民、在學問上是實踐儒學家、在家庭中是當孝子的純儒生活。本論文從理氣論、心性論、修養論等三個方面考察了明齋的儒學思想幷展開了其現代意義。在理氣論上明齋沒有提出自己特定觀點和理論。在理氣的關系上明齋繼承朱子和栗穀的立場,主張理氣二元的本體論,堅持‘理氣不相離不相雜’的理氣之妙合。在理氣的‘動靜’上只承認氣的動靜,繼承栗穀的‘氣發理乘’的邏輯。明齋認爲在事物的變化過程中理具有普遍性的特點,所以不局限於時間和空間,但氣是千差萬別具有差別性,所以局限於時間和空間,堅持了栗穀的‘理通氣局’思想。如此,明齋的理氣論忠實地繼承著栗穀理氣論的立場。在心性論上明齋著重闡述‘人心道心論’,這是明齋重視‘心’的表現。但是重視心不一定是‘心學’。明齋認爲道心、人心、人欲都是一心之發,因本然之心被氣所蔽過不及而變成人心。聖人也不能沒有人心,人心有善有惡,不是本不善。欲當欲是上智的人心,欲當不欲是普通人的人欲。本然之心無過不及的是道心,有過不及的是人心。在這裏明齋以道心、人心、人欲三層說來解釋‘心’呈現了自己的特色。明齋修養論是致力於內實和內修的涵養和發揮實心作用的實踐修養學。他提出讀書窮理的學問方法,把立志作爲修己的基礎。認爲立志而後立實心,立實心才能勤於實踐達到實德的務實的修養論。現代社會面臨著民族矛盾、宗敎戰爭、人性危機和敎育危機等社會問題,對這些問題的解決明齋的上述儒學思想提供智慧和方法。明齋對一心、本心的特別重視,這是因爲他認爲在本原上人心沒有聖人和凡人的差異,凡人也通過後天的修養可以成爲聖人。這就給人類提供了平等的前提,是明齋人類平等思想的思維前提。在敎育上明齋主張‘知行合一’的全能敎育。他認爲單單掌握理論不可以,必須把理論付諸於實踐才能成爲眞正地知識,才能實德。人類的平等是人類社會的最終目標,人之爲人是最基本的學問。爲此,明齋的儒學思想是現代社會以至任何時代都要堅持的平等理念和敎育理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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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me Features of The "Vietnamization" of Confucianism in The History of Vietnam

          ( Nguyen Tai Dong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5 儒學硏究 Vol.33 No.-

          본 논문에서는 베트남유학에 담겨 있는 특별한 요소들을 살펴본다. 유학은 본래 베트남고유의 사상체계는 아니다. 그러나 유학은 2000년 동안 베트남의 민족사상 체계 속에 점진적으로 뿌리를 내렸으며 베트남의 발전과 함께 하였다. 이로써 유학은 마침내 베트남문화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어 베트남 유교가 되었다. 유학의 베트남화 과정은 오랜 시간동안 계속 전개되었다. 베트남 학자들 역시 중국유학의 개념들을 사용하였는 바, 대체로 송나라 유학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학자들은 중국유학의 몇 가지 특수한 개념들만을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핵심으로 가져와 중국유학의 개념체계와는 다른 유학체계를 만들었다. 또한 베트남 유학과 중국 유학을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유학의 개념들에 대해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유학의 베트남화 과정에 있어서의 주요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외래 사상과 문화는 베트남의 실제적 상황 아래 베트남 민족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다. (2) 베트남 사람들은 외래문화를 수입하였지만 여전히 베트남문화의 본질을 지켰다. (3) 인문주의와 인간존중이 발휘되는 바탕 위에서 ‘베트남화’가 실현될 수 있다. (4) 베트남화 과정은 실용주의적인 성격을 지닌다. 어떠한 이론이든 간에 실천을 함께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5) 베트남화 과정은 개방성과 문화적 다원성과 사상의 독선을 거부하는 경향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6) 외래 사상과 문화를 수용할 때 베트남 사람들은 극단적이지 않고 비판적 정신을 견지한다. In this paper, the author considers some distinguished features of Vietnamese Confucianism. Confucianism was originally not an indigenous theoretical system in Vietnam, but in about 2000 years of introducing and developing in this country, it has gradually taken root into Vietnamese theoretical tradition and made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its florescence. The process of ‘Vietnamization of the Confucianism’ took place during that long time. Vietnamese scholars also used original Confucian concepts and ideas, mainly the Neo-Confucian ones, but they chose only some of those concepts, considering them key concepts, and based on them they established a system more or less different from Chinese Confucianism. Furthermore, in explaining those concepts’ connotations, Vietnamese Confucianism was not similar to Chinese Confucianism. Some distinctive features of the Vietnamization of Confucianism are as follows: (1) Foreign theories and cultural factors could exist and develop if and only if they were based on Vietnamese reality and used in order to answer problems emerged from it. (2) Foreign culture was accepted, but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digenous culture were well preserved. (3) “Vietnamization” was based on the confirmation of humanism. (4) The process of Vietnamization was realistic, every theory tended to the close connection with the reality. (5) “Vietnamization” was based on the open-minded and multiculturalist spirit and inclined to avoid monopoly of thought. (6) The Vietnamese are not fanatic: they show their critical spirit when acquiring foreign thoughts and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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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沙也可の儒學思想用例

          藤原隆夫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1 儒學硏究 Vol.24 No.-

          壬辰倭亂 당시 사야가(沙也可)는 1592년 4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 하에 히고노쿠니(肥後國)의 태수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군 휘하의 선봉장으로 부산에 상륙하였다. 얼마 후에 사야가는 삼천 명의 부하를 이끌고 조선군·명나라군의 진영으로 투항하였다. 항왜(降倭)를 할 때 그는 「曉諭書」를 조선 백성들에게 계시하였고, 明朝軍 측에는 「講和書」을 제출하여 "중하(中夏)의 나라의 풍물을 동경하여 귀화를 원한다"고 하여 스스로 사야가라고 칭하며 항복하였다. 그는 일본 출국 이전부터 유학에 대한 소양이 있었으며 유교풍의 나라(儒敎風之國)를 이상향으로 여겨 투항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항왜장으로 의령, 울산 전투에서 싸웠으며, 더불어 조총(鐵砲)·화약의 제조 방법(製法)과 사용 방법(操法)을 전수하여 明朝兩軍의 전투를 우위로 끝나게 한 공적을 올렸다. 그 후에도 10년간의 만주국경 警衛, 갑자 이괄의 난(甲子之亂), 병자호란(丙子之亂) 등 국가적 위기의 전투에서 활약하여 ``삼란공신(三亂功臣)``으로 추앙 받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정으로부터 金忠善이란 성씨와와 正憲大夫의 직위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사야가는 인근에 있는 白鹿洞書院의 禹成范座主一門 아래에서 유학을 공부하여 많은 유학적인 서간문과 시문을 남겼다. 이러한 것은 사야가의 6대손 金漢祚에 의해 『慕夏堂文集』으로 편집·간행되었다. 이것은 그 후 1842년에 다시 李家淳에 의해 개정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 편집자, 개정자의 유학적 문장을 사야가의 유학용례로부터 제거하고 남은 용례에서 사야가의 유학적 사색을 파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When the Chosen kingdom in the chosen peninsula was invaded by the Japanese army, Sayaka was commissioned as a commander(leader, general) with the initial brigades dispatched. His rank was called Samurai commander of the feudal lord`s knight. Daimyo, Kiyomasa Kato on April in 1592, was under order to attack by the tyrant`s, Hideyoshi Toyotomi, forces landing at Pusan. Before long, the joint forces of Mynn (chinese) and Chosen troops forced the surrender of Sayaka`s force of 3000 samurai. Subsequant to his surrender, Sayaka presented his "Gyoyu-sho" or surrending rational, to the residents of Chosen. Sayaka also accepted the joint forces "Kowa-sho", or terms of surrender. The outcome of the surrender meant that the Confucian governmental system would be introduced and naturalized on the pennisula. Two or three years later Sayaka learning more of Confucian governance, capitulated its effecteness. As "Kanwa- sho" or commander of converted foreign troops and deemed it Utopian. Sayaka fought in Uyryon and Urusan. He trained his troops in the production and utilization of guns and gunpowder. This preparation was instrumental to the success of later Mynn and Chosen campaigns. Following this guarding of the border was performed by Sayaka for ten years, "Kassi-no-hen" (=rise in volt of "Ri-caru"), "Pyon-ja- no-hen"(=Rise in volt of Kozoku <Manju-clan →Shin Dynasty>) which were come to a crises in a country were faught to put down by Sayaka. Therefore he was praised as "Sankou -no - shin " (=the retainer distinguished himself in the three battles) For his successes he was awarded the titles of, "Kim-Tyun-sun" and "Seiken-tai-fu"(=a high court rank) from the court of Chosen Dynasty. Since Sayaka studied of Confucianism at "The Pen-nokton shoin"(=the private school of Confucianism) under the guidance of its president and scholars, "U-Son-han". Many of his Confucian writings and poems survive his death. They were edited as "The Mohadan Bunshu"(=Anthology) by ``Kim Kanso`` who was Sayaka`s sixth generation direct descendant. Later they were printed in 1798, revised by Ri - Kasun(Confucian scholar) in 1842. In this paper the Confucian decoration by the editor and the reviser can be credibly, so Sayaka`s Confucion refections may be approximately reconstituded and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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