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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공자학회의 회고와 전망

          이희재 한국공자학회 2010 孔子學 Vol.18 No.-

          한국공자학회는 1980년 6월 정 종, 이을호(1910-1998), 유정동(1921-1984) 삼인의 만남을 통해 학회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발기인으로 성락서,이을호, 송지영, 유정동, 윤사순, 박세영, 배종호, 이남영 그리고 정종 등 9명이 참여하였으며 초대 회장은 성균관장을 역임한 성낙서 박사가 추대되고 1980년 11월 22일 창립되었다. 공자학회는 선진유학(先秦儒學)적 근본유학적 또는 수사학(洙泗學) 입장 일탈을 견제한 유학의 근본정신에로의 귀향을 추구함으로써 진로를 수정하고, 방향을 제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동양철학의 총체적인 발전에 꾸준히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시했다. 공자학회가 이룬 성과와 가치는 지대한 것이며 후학들을 위한 동양철학연구 방법이나 연구주제에 관련하여 풍성한 토대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다섯 가지의 성과 곧, 공자학과 현대의 문제, 공자학과 신실학의 창조, 공자학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탐구, 공자사상연구방법론의 새로운 개발 그리고 현대한국에서의 동양철학을 개척한 선학에 대한 재조명 등은 차후의 과제이기도 하다. The Korean Society of Confucian Studies was established on the 22nd of November, 1981. In June 1981, Cheong Jong, Lee Eul-ho(1910~1993) and Yu Jeongdong(1921~1984) made a rough outline for the society and added promoters Sung Racsea, Song Jiyeong, Yoon Sasoon, Park Saeyeong, Bae Jongho and Lee Namyeong. The goal of the society was to seek out the original elements of Confucianism to provide a stable foundation upon which to build methodologies to address societal issues for future generations, and to suggest ways to promote Oriental philosophy in general. This society’s important areas of focus are as follows:First, researching issues in Confucian studies and modern societal problems. Second, surveying the history of Confucianism and its historical significance. Third, developing methodologies in Confucian thought. Last, sheds new light on the scholars to study Confucianism  in modern Korea.

        • KCI등재
        • KCI등재후보

          이을호의 한사상 -현대 한국철학사의 한 풍경-

          이향준 한국공자학회 2010 孔子學 Vol.18 No.-

          이 글은 이을호(李乙浩)의 한사상이 현대 한국철학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개관이다. 한사상은 일반적으로, 역사, 종교, 철학, 과학이라는 네 분야에 대한 특정한 견해들을 통해 표명되고 있는데, 이을호의 한사상은 철학적 한사상의 측면을 주로 구성하고 있다. 이을호는 한사상이란 개념을 통해 다산학에서 개신유학을 거쳐 한국철학사 일반으로 확장되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단군신화에 대한 윤리적 해석에 기초한 상징적 통일성으로서 ‘한’이라는 개념적 이해는 정약용에게까지 이어지면서 내적 논리의 일관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탐구가 학술적으로 완성된 객관적 구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미완의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을호의 한사상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기존의 것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와 함께 미래적인 전망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하는 한국철학의 원형적 이미지에 대한 희망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형적 이미지는 어떤 뒤틀림 속에 놓여있는데, 이 뒤틀림이란 한사상에 대한 논의가 ‘한국학의 자생성’이라는 논제를 배경으로 하지만 동시에 자생성을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려는 철학적 편견에 근접시키는 데서 기인한다.

        • 일본에 있어서 공자학

          오상현 한국공자학회 2009 孔子學 Vol.17 No.-

          이 논문에서는 일본 역사 속의 공자를 인식하기 위한 예비적 고찰로서 일본의 유교 전래 및 공자와 논어에 대해서 탐조해보고, 공자의 經世性을 바탕으로 현대의 공자의 가르침을 경영철학에 접맥시킨 요소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특히 공자의 후손인 孔健의 활동에 의한 공자에 대한 최근의 관심 현황과 渋沢栄一의 공자 인식을 살펴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 불변하는 학습내용으로 소개되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왕인 박사에 의해서 논어와 천자문이 전래되었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일본의 역사적 정설이다. 일본에서도 공자는 대체적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양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 질서를 형성하는 보편적 사고의 형태로 인식되어 있으며 공자에 대한 인식방식은 다양하다. 최근에 이르러서 공자의 직계손인 孔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자의 삶의 방식과 유사한 일맥락의 요소가 엿보이기 때문에 관심이 끌린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전형적인 중국인 학자는 아니라고 하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서 공자적 이미지를 추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추론적 관점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본 근대화의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 불리는 渋沢栄一는 가장 바람직한 공자주의 실천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에게서 Post- Confuism을 확인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는 기업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그는 저서 『論語と算盤』에서 ‘정당한 富의 축적을 부끄럽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도덕과 경제’의 합일사상을 역설했던 실천적인 공자주의자다. 일본인들은 앞으로도 영속적으로 공자를 회고하고 논어를 연구하면서 실생활 속에 현세적 방법으로 적용할 것이고, 일본인들의 공자 인식과 논어 음미는 단순한 삶의 길잡이가 아닐 것이다. 미래의 공자 연구는 현세에의 응용적용과 다기적인 논어해석 및 융합방식에 의한 학문탐구의 성과를 발휘하여 孔子性의 존재방식을 헤아리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논어에 대한 원리 이해를 위한 Confuciology*의다양한 연구망이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공자(孔子)의 `위인유기(爲仁由己)`를 통(通)한 도덕적(道德的) 부안감(不安感) 연구(硏究) -철학치료의 불안 해소를 중심으로-

          황정희 ( Hwang Jeong-hee ),유성선 ( Yu Sung-seon ) 한국공자학회 2016 孔子學 Vol.31 No.-

          현대인이 도덕적 불안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현대인은 沒인간적인 과학문명과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속에서 인간과 물질의 가치가 전도되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인간 고유의 도덕성과 도덕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각을 하지 못하고 도덕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게 되면 좁게는 개인이 도덕적 불안에 직면하고 넓게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도덕적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논자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도덕적 불안이 마음의 병으로 철학치료의 대상이며 본성의 자각, 도덕자아 주체성 회복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공자는 “仁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하고자 하면 인은 이르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도덕심, 즉 仁을 행하는 주체가 `나(己)`임을 말하며 모든 사람이 도덕주체로의 의지를 가지면 내재되어 있던 도덕심은 저절로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仁은 도덕심인 동시에 도덕적 행위의 덕목으로 나로 말미암아 나의 본질적인 도덕심을 회복하게 하는 主宰性을 가진다. 공자가 말하는 安·不安의 의미는 도덕적인 것이다. 安·不安이 인간 주체에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 중심, 즉 도덕심이 흔들리면 일체 모든 것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간이 가치의 혼란을 느끼고 사욕에 이끌려 자신의 생활을 주재할 수 없을 때 마음의 불안과 갈등이 생기고 이로 인해 도덕적 불안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내재된 본성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도덕적인 불안으로부터 편안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 본성은 仁이다. 공자에게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爲仁由己`일 것이다. 위인유기는 克己復禮를 포함하여 일체 심리를 안정시키는 방법이 된다. 欲仁이 내적인 마음 수양이라면 극기복례는 외적인 실천 수양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시·예·악은 의지와 질서 그리고 조화로움으로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희노애락의 감정에 휩싸여 본성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되 본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인의 도덕적 불안에 대한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從心所欲不踰矩하였다고 한 나이는 70세에 이르러서이다.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공자조차도 이러한 것을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도덕적 불안을 치유하는 방법은 본성이 나에게 내재해있음을 자각하고 그 본성에 맞게 행동하는 `爲仁由己`를 통해 끊임없이 공부와 실천 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What is the reason of modern people`s moral anxiety, and what`s the solution? Modern people are experiencing confusion in values where the value between human and material is reversed in lack(沒) of humane scientific culture and capitalism based on materialism, losing the morality and moral identity of original humankind. When they lose the consciousness as the moral individuals and cannot determine and behave along with the sense of morality, an individual faces moral anxiety in a narrow way, and the whole social members are seized with moral anxiety in a wide way. Confucius said, “Is benevolence(仁) is far away? If I only intend to be benevolent, it is coming to me”, which means that the subject that conducts benevolence(仁), the sense of morality, is `me (己)`, viewing that the sense of morality hidden inside will be naturally revealed when everyone gets a will as the subject of morality. Benevolence(仁) is the sense of morality, which has Jujaeseong(主宰性) to recover my essential morality, as the virtue of moral behavior. The meaning of Confucius` stability(安)·anxiety(不安) is ethical. Since stability(安)·anxiety(不安) are related to human being, accordingly, everything is essentially influenced when mental core, i.e. sense of morality is weakened. When a human being cannot manage one`s life due to one`s greed feeling confusion in value, anxiety and conflict occurs in mind getting moral anxiety. Therefore, easement can be derived from moral anxiety only through recovery of human nature. Confucius` human nature is benevolence(仁). For Confucius, resolving anxiety is, in short, `Wiyinyugi(爲仁由己)`. Wiyinyugi becomes a method to stabilize whole psychology including Geukgibokrye(克己復禮). If benevolence (仁) is inner mental cultivation, Geukgibokrye is outer practical cultivation. Also, poem·etiquette`·music express human emotion of joy, anger, sorrow, and pleasure with their will, order, and harmony, helping them not to lose their nature being seized with the emotion of joy, anger, sorrow, and pleasure. This way, expressing one`s emotion without losing human nature can be a treatment for modern people`s moral anxiety. When Confucius said Jongsimsoyokgulyugu(從心所欲不踰矩), his age was 70. Even Confucius, who reached the stage of saint, was like this, the method for us today to be free from moral anxiety is hidden in ourselves, based on such realization that such good nature is within us and `Wiyinyugi(爲仁由己)` which is to act according to the nature, constant study and practice will enable the way.

        • 공자학의 미래

          정세근 한국공자학회 2009 孔子學 Vol.17 No.-

          이 글은 공자에 대한 시각변화를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30년간의 추이를 통해 일화별로 그려냈다. 먼저, 국가차원에서의 공자학을 말하면서 오늘날도 유지되고 있는 석전대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공자의 77대손에 대한 대만의 정치적 배려와 2006년에 태어난 80대손을 과연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다. 다음으로, 공자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주자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논어』의 번역문제와 누구에게도 가치 있는 공자의 말을 강조했다. 세 번째로는, 우리에게 유교가 공식적으로 종교가 된 까닭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로마 교황청은 제사문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네 번째로는, 공자에 대한 비난과 옹호, 그리고 그 전환의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공자는 역사적으로 통치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마르크스에서 공자에로의 전환은 공자당(CCP: Chinese Confucian Party)의 탄생을 예견하게 한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중국정부가 공자학을 전세계적인 가치로 내세우는 까닭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대세계에서는 민주가 민족보다 중요함에도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중국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미래 공자학의 대상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 이데올로그가 아닌 학자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공자이다. 공자학은 한 방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공자학의 탄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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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의 다산사상 이해에 적용된 시각문제

          윤사순 한국공자학회 2010 孔子學 Vol.19 No.-

          Lee Eul-ho’s first paper on Cheong Yak-yong wrote on 「Cheong Dasan’s principle of the Change of book」 in 1958, but his academic debut paper was a 「Cheong Dasan was seen by exchange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Hie research on Dasan Thought linked to the tudy of culture and heritage of country by the pioneers of nationalism in 1930 period. He wrote 16 research papers on Dasan Thought, four books on Dasan Thought, five translation on Dasan’s original books and over 25 interpretation books and essays. Lee Eul-ho’s research focused on the theory of Cheong Yakyong’s Confucian classics. The research on part of practical learning is only one named 「The image of modern government officer mirrored by ideal governor」, that based on 『Mokminsimseo(牧民心書)』. Lee Eul-ho’s studies ended to the Practical learning that he mentioned it independent start by Koreans. These remarks is reflected his belief of national sovereignty. 현대 한국유학계의 거목 가운데 하나였던 현암 이을호는 평생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학계의 불모지였던 다산경학사상을 오로지 홀로 매진하여 한국유학사상의 일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의 정약용에 대한 첫 논문은 1958년에 쓴 「정다산의 역리(易理)에 관하여」이나, 그의 학게 데뷔작에 해당한 논문은 「유불상교(儒佛相交)의 면에서 본 정다산(丁茶山)」이다. 이 논문은 유학 연구가 본원유학의 연구로부터 이제 ‘한국유학’에 대한 연구로, 그의 한국유학에서도 ‘다산사상’의 연구로 진행된 것이다. 이을호의 다산사상에 관한 연구는 일찍이 1930년대 민족주의적 선각자들의 국학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겠다. 이을호의 다산 정약용과 다산사상에 대한 연구성과는 연구논문 16편, 정약용의 사상에 관한 단독저서 4책, 정약용 저술의 번역서 5책을 위시해서 이와 관련된 해설서 및 교양차원의 글 등이 25건이 넘는 분량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가 아닌 만년필로 매일 매일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집필한 느린 수작업에 의한 것이다. 이을호는 다산사상의 전체를 공자가 제시한 ‘수기(修己)’․‘안인(安人)’ 형식으로도 대별하고, 그 분류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경설(經說) 또는 기본적 형이상학설’과 ‘수기설(修己說)’ 및 ‘안인설(安人說: 治人說)’로 삼분하여 연구에 매진하였다. 특히 ‘안인(安人)’부분의 연구는 『목민심서』를 바탕으로 한 논문 「목자상(牧者像)에 비춘 현대공직자상」과 『목민심서』의 해설 및 번역이 으뜸을 이룬다. 이을호는 ‘정약용의 경설’에 기초하여 ‘개신유학’이라는 용어를 ‘실학’ 용어와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종국에는 한국실학의 자생론을 주장하였다. 때문에 그의 사상적 귀결은 정약용 연구를 통한 실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가 한국의 실학에 대해 ‘한국인에 의한 자주적 발생’이라고 내린 규정은 그의 민족 주체적 신념의 투영이기도 했다.

        • KCI등재

          투고논문 : 일제하 이병헌(李炳憲)의 공자교운동의 성과와 좌절

          이희재 ( Hee Jae Lee ) 한국공자학회 2011 孔子學 Vol.20 No.-

          공자교 운동은 서세동점(西勢東漸) 하에서 느낀 서양문명에 경악한 유교 지식인의 위기의식이며 동도서기적(東道西器的) 대응방식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하 유교지식인인 이병헌은 자신의 사상적 바탕은 유교였으나, 새로운 서구문화를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또한 중국의 사상가이자 공자교 운동의 선구자인 강유위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1919년에 발간된 그의 저술 『유교복원론(儒敎復原論)』 등을 통해 그는 공자교의 기본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병헌은 그 자신의 학문의 출발이 소위 향교적 유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고, 또 일제에 저항했던 위정척사파와 같은 보수적 유생의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들을 보수적인 유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저술에서 나타나는 ``구파``니 ``향교식 유교``라는 말 자체가 기존의 주자학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유교의 성격을 정의하면서 "유교는 공자의 교"이며 또한 공자는 "오로지 하나이며 둘일 수 없는 소위 ``독일무이지교주(獨一無二之敎主)``"로서 섬기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래의 유교는 공자이전의 요순 이래로부터의 성인은 물론이려니와 공자의 제자들이 모두 제례를 드리는 대상인데 비해 이병헌은 ``오로지 공자``만이 공자교의 존숭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병헌의 공자교에 있어서 대동사상은 종래의 군주 중심의 사유를 벗어나 공자에 의한 대동(大同)의 의리와 맹자에 의한 민본의 정신 그리고 춘추의 태평세를 이상으로 하는 세계를 지향해야할 이상세계로 보았다. 춘추에서 말하는 소강시대와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승평세가 가정과 국가 간이 서로 대립되는 시대라면, 미래의 사회는 대동시대이며 태평시대인데 그것은 공자교에 의하여 구현되는 인류의 평화시대이다. 그의 공자교운동은 기존의 보수적 주자학자들의 비호응, 그리고 민중적 기본을 확대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지만. 공자교 운동의 과정속에서 그가 치열하게 연구한 성과가 『공경대의고(孔經大義考)』, 『시경삼가설고(詩經三家說考)』, 『서경금문고(書經今文考)』, 『예경금문설고(禮經今文說考)』 등과 같은 고전연구의 성과로 나타났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전거들은 금문경학으로 기본의 고문경학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금문경학의 설이란 공자의 문하생들이 구전해온 설이며, 반대로 향교식 유학은 수구적인 고문경학인데 이는 유흠(劉歆)에게 의거하는 날조된 것이라고 했다. The Confucian culture supported society since long time, but this old society caused big chaos because of the arrive of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occupied by Japan. The collapse of Chosun dynasty lead to abolish the Confucian shrine and it`s school role. This abolition means official dissolution of Cofucian rites that have been supported by dynasty. The typical scholars who focus on moral fidelity resisted and fought against the Japanese rule, but Korean was colonized by Japan. Japanese ruler had double standard to Confucianism. They hoped to reform traditional custom, on the other hand, they need to keep traditional Confucian morals in Korea. Therefore, Confucian shrine could worship to Confuzu during Japanese imperial period. Lee Byunghean(1870-1940) was shocked by Western civilization and Japanese, he realized on human right, democratic idea and accept the universalism. He thinks that traditional Confucianism needs reflection about the premodern way. The ideas also could find to his teacher Gwak Chongseak. But his idea was influenced by Kang Youwei`s Confucian church, Great equality and original Classics conclusively. His suggested that Confucian church must faith to Confuzu like Jesus and Buddha. He asks that break the old Confucianism served monarch and realize the Great equality for the human beings in the global. This idea originated from real Classics, he studied hard on the Classics for his important mission. Lee`s Confucian church movement failed to integrate to peoples. Nevertheless, it is very fresh and meaningful idea to reform on old Confucianism in his time. He did introspection why Confucianism was criticized as a premodern thinking way. He pointed out that old Confucianism pander to monarch and did not communicate with other civilizations. Even though Lee`s ideas originated from Kang Youwei in China, but in Korea he needed more effort for persuasion due to the background of deep rooted Chuzu learning country. Therefore, he studied hard on the original classics. The founder of Confucian church Kang Youwei gave unstinted praise to Lee`s books. But, Lee`s effort was failed because of peoples did not accept the deify of Confuzu. Peoples in his time, did not accept the great equality and individual human right. His movement of Confucian church was a new interpretation base on the new classics studies(今文經學). These ideas were very fresh break the premodern thinking way, but he could not success as a reformer of Confucian church.

        • KCI등재

          후반기 학술대회 논문 및 현암 이을호 연문논문 연보 : 현암의 다산사상 이해에 적용된 시각문제

          윤사순 ( Sa Soon Yoon ) 한국공자학회 2010 孔子學 Vol.19 No.-

          현대 한국유학계의 거목 가운데 하나였던 현암 이을호는 평생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학계의 불모지였던 다산경학사상을 오로지 홀로 매진하여 한국유학사상의 일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의 정약용에 대한 첫 논문은 1958년에 쓴 「정다산의 역리(易理)에 관하여」이나, 그의 학게 데뷔작에 해당한 논문은 「유불상교(儒佛相交)의 면에서 본 정다산(丁茶山)」이다. 이 논문은 유학 연구가 본원유학의 연구로부터 이제 ``한국유학``에 대한 연구로, 그의 한국유학에서도 ``다산사상``의 연구로 진행된 것이다. 이을호의 다산사상에 관한 연구는 일찍이 1930년대 민족주의적 선각자들의 국학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겠다. 이을호의 다산 정약용과 다산사상에 대한 연구성과는 연구논문 16편, 정약용의 사상에 관한 단독저서 4책, 정약용 저술의 번역서 5책을 위시해서 이와 관련된 해설서 및 교양차원의 글 등이 25건이 넘는 분량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가 아닌 만년필로 매일 매일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 집필한 느린 수작업에 의한 것이다. 이을호는 다산사상의 전체를 공자가 제시한 ``수기(修己)``·``안인(安人)`` 형식으로도 대별하고, 그 분류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경설(經說) 또는 기본적 형이상학설``과 ``수기설(修己說)`` 및 ``안인설(安人說: 治人說)``로 삼분하여 연구에 매진하였다. 특히 ``안인(安人)``부분의 연구는 『목민심서』를 바탕으로 한 논문 「목자상(牧者像)에 비춘 현대공직자상」과 『목민심서』의 해설 및 번역이 으뜸을 이룬다. 이을호는 ``정약용의 경설``에 기초하여 ``개신유학``이라는 용어를 ``실학`` 용어와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종국에는 한국실학의 자생론을 주장하였다. 때문에 그의 사상적 귀결은 정약용 연구를 통한 실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가 한국의 실학에 대해 ``한국인에 의한 자주적 발생``이라고 내린 규정은 그의 민족 주체적 신념의 투영이기도 했다. Lee Eul-ho`s first paper on Cheong Yak-yong wrote on 「Cheong Dasan`s principle of the Change of book」 in 1958, but his academic debut paper was a 「Cheong Dasan was seen by exchange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Hie research on Dasan Thought linked to the tudy of culture and heritage of country by the pioneers of nationalism in 1930 period. He wrote 16 researchpapers on Dasan Thought, four books on Dasan Thought, five translation on Dasan`s original books and over 25 interpretation books and essays. Lee Eul-ho`s research focused on the theory of Cheong Yakyong`s Confucian classics. The research on part of practical learning is only one named 「The image of modern government officer mirrored by ideal governor」, that based on 『Mokminsimseo(牧民心書)』. Lee Eul-ho`s studies ended to the Practical learning that he mentioned it independent start by Koreans. These remarks is reflected his belief of national sovereignty.

        • KCI등재

          『論語』 ‘季路問事鬼神’章에 관한 연구

          유흔우 한국공자학회 2016 孔子學 Vol.31 No.-

          This article studies the Chapter 12 ‘Jih-lu and celestial and eternity spirits’ in the Analets and focuses on the ideas of ‘life and deaths’ in Confucianism. Briefly summarizing, Chapter 12 contains the answers of Confucius for the questions by Jih-Lu: Jih-Lu asked back to Confucius "Before you have learned to serve human beings, how can you serve earthly spirits": And Confucius answers it as "When you do not know Life yet, how can you know about death?. This apology of Confucius (and Confucianism) gave us an impression that Confucianism barely discusses the matter of Death, but focuses only on the matters of Life. However, in fact in Analects, the matters of Death are mentioned more than double Life is mentioned. Some scholars argue that Confucius has been agreed with the existence of the celestial spirits, and this can be taken to be the statements as Confucius recognizes the existence of the after world. If this is true, the death is not the endpoint of Life: Instead, it is a course for the next. It is possible to interpret Confucius’answer towards Death in multiple ways. However, if we take his statements such as "These things the Master did not speak of: anomalies, prodigies, disorder and spirits" seriously, we can realize that Confucius doesn’t agree or disagree for the existence of the celestial spirits. Henceforth, his answer cannot be taken as the denial of the celestial spirits. Wang-Fuzhi said that the scholars misinterpret the life and death view of Confucius and he state that Life states the course of Life before Death, and Death is the end of Life. Zhao-You then interprets Jih-Lu’s question as his inquiries for the rightful death. I will take these two views seriously, and will interpret the Chapter 12 as follows: For Confucianism, Death means "To cease permanently to be alive". Henceforth Confucius’s answer to Jih-lu’s questions emphatizes the ending of Life. In other words, what is intended in Confucius’s answer is to point out the meaning of Death. Here Death connotates the unavoidable death, uncertainty of the life and death. Such uncertainties inspires fear and vanity. However Confucius provides views of life and death here as the recognizing the ending can be a motivation to makes us to put efforts on the matters of Life. From this Confucius can take Death as comfort or rest. Such view on death is in line with the arguments of physicalism, which argues that Death means the end of bodies and spirits. I took such view and wrote this article, and crucially argue that the course of finding well-dying from well-being is important. This can be summarized as "Well-ending", and it is reasonable and agreeable view on the matters of Life. 이 논문은 『論語』 「先進」 ‘季路問事鬼神’章(「11‧12」)에 대한 역대 주석서들의 분석을 통하여 孔子의 자각적인 생사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11‧12」는 季路(子路)가 鬼神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孔子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反問하고, 또 계로가 죽음(死)에 대해 묻자 “삶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反問한 것이다. 孔子의 이러한 변명(apology)은 이후 孔子 및 儒家가 鬼神存在와 死後를 회의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에 生을 주로 담론하고 死에 대해서는 보류하고 논하지 않는다(存而不論)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는 生보다 死를 두 배나 더 말하고 있다.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긍정했다는 주장은 공자가 사후 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사후 세계를 인정하는 경우 죽음은 삶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과정이나 단계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孔子가 子路에게 反問으로 대답한 眞意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귀신존재 문제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회의론·불가지론·부정론·긍정론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공자는 괴이함과 용력과 반란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7‧21」)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귀신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았다는 말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회의론이나 불가지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王夫之는 기존의 주석가들이 모두 生死 개념을 잘못 파악하였다고 말하면서, ‘生’은 ‘죽기 이전을 통 털어 말하는 것’(未死以前統謂之生)이고, ‘死’는 ‘삶의 끝’(生之終)이라고 한다. 趙佑는 자로가 ‘죽음에 처하는 마땅함’(處死之當)에 대해 물은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王夫之와 趙佑의 生死 해석이 孔子의 진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孔子 및 儒家에서 ‘죽음’은 삶의 영원한 정지를 의미한다. 孔子가 子路에게 반문한 것은 인생에서 ‘끝(終)’이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는 공자가 죽음을 사실 차원의 문제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의미 차원에서 사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 등등은 죽음의 內包性이다. 이러한 죽음의 내포로 인해 불안과 공포, 그리고 허무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지만 儒家는 인생에 ‘끝’이 있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 오히려 인생에 대한 강렬한 使命과 노력의 충실성을 적극적으로 촉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孔子의 自覺的 生死觀에서 촉발된 것이다. 유가는 이로부터 ‘죽음’을 ‘편안함(安)’ 또는 ‘休息’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죽음관은 죽음이 ‘끝’, 즉 육체와 정신 모두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는 물리주의의 죽음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관은 善生(well-being)을 통해서 善死(well-dying)를 확보하고, 善死는 또 다른 新生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바로 善終(well-ending)을 의미한다는 생사관이라 할 수 있고,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그렇다고 동의할 수 있는 合意的인 관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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