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동아시아학술원 20년 철학방면 연구성과 ― 유학과 경학 방면 연구를 중심으로

          李昤昊 ( Lee Young-ho ),金渡鎰 ( Kim Doil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20 大東文化硏究 Vol.0 No.112

          동아시아학술원의 대표적 연구공간은 대동문화연구원, 유교문화연구소, 학술원 산하 인문한국연구소 등이다. 이 세 단위 연구기관에서 이루어진 철학 방면 연구는 주로 저술(저역서, 영인출판)을 통해 수행되었으며, 학술대회와 자료구축을 통해서도 그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유교문화연구소에서는 학술원 개원 이래 ‘유교문화번역총서’와 ‘유교문화연구총서’를 통해 유학의 현대화 문제에 천착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이루어진 학술대회에서도 ‘경학(유학)’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연구소에서는 한국유학(경학)을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고전철학의 모색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활동을 하였는데, 최근에 이르러서야 동아시아적 연대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대동문화연구원에서는 영인총서를 통하여 조선유학(경학)의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였는데, 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학술적 자산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한편 자료구축의 측면에서는 유교문화연구소의 ‘유경정본화사업’, 인문한국연구소의 ‘한국경학자료시스템’, ‘한국주자학용어시스템’을 거론할 수 있다. 이 세 사이트에서는 한국 유학, 특히 한국 경학에 관한 자료 구축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향후 한국고전철학연구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학술원은 지난 20년 동안 이룩한 고전철학 방면의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연구의식의 심화와 자료구축의 확장을 도모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진행된 동아시아 고전철학연구에 대하여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혹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생의 학술담론은 이러한 관점과 의식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Three representative research institutes of 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are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nstitute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s, and Humanities Korea Project Institute. Their philosophy research was mainly conducted through writing (publication of books, translated works, and photocopy editions) by these three and has been expanded its scope through academic conferences and establishing database. Since its opening of the Academy, the Institute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s has published Confucian Culture Translation Series and Confucian Culture Research Series to address the issue of the modernization of Confucianism. Also, academic conferences held since the 2000s focused on the modernization of the Confucian studies (Confucian Classics). In contrast, the research by the Humanities Korea Project Institute has been focused on East Asian classical philosophy based on Korean Confucianism, and only recently has the foundation of East Asian solidarity been established. In addition, the publication of Classic Photocopy Series by the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laid the foundation for the study of Joseon Confucian classic, which has become a very important academic asset, both at home and abroad. On the other hand, in terms of database establishment, the Institute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s 유경정본화사업 Project, the HK's Korean Confucian Classics Data System, and the Terminology Data System of Zhu Xi's Learning can be discussed. These three sites are good examples of the establishing database on Korean Confucianism, especially Korean Confucian Classics. This is indispensable database for future research on Korean classical philosophy. The Academy aims to deepen research awareness and expand its database archiving based on the achievements in classical philosophy over the past two decades. In this process, we will maintain a critical view of East Asian classical philosophy research so far and endeavor to identify problems. Based on this, we will ultimately seek out a self-sustaining academic discourse that is recognized in East Asia of globally.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식민지의 ‘문화’주의, 變容과 事後

          유선영 ( Sun Young Yoo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大東文化硏究 Vol.0 No.86

          이 연구는 1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이성중심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서 구 문명을 인류 보편의 문명으로 간주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사상적 대안으로 부상한 문화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 지를 분석하고 있다. 문화주 의는 독일에서 구성된 문화(kultur) 개념을 근간으로 하며 계몽주의적 문명화를 가 리키는 문화(culture) 개념과 대척해 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문화주의는 문 명화론이었으며 그것이 가진 진보성, 반식민주의적 저항성, 문화적 및 민족적 특수 성에 대한 지향을 상실하면서 무력화되었다. 문화적 민족주의는 무력화한 문화주의 의 한 樣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는 문화주의의 변용과 식민지적 전유에 개입한 5가지 요인을 구분하는데 일본문화주의 영향하에 인격주의적 개조주의가 주 도하는 식민지적 맥락, 강대국에 의존한 민족주의-서구중심주의, 구한말 이래 근대 주의와 쌍을 이루어 正典化한 문명화론, 문화를 사회의 하위영역으로 주변화한 사 회주의, 그리고 문화를 假想의 영역으로 무력화한 문화정치의 문화주의가 그것이다. 이 요인들에 의한 문화주의의 변용에서 문제적인 것은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의 視 點이 흐릿해 진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쿠르트르 문화주의가 해체의 대상으로 설정했던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주의, 물질문명주의의 과잉, 기계적 과학주 의, 도시주의 같은 생활방식과 가치체제를 20세기 초에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포함된다. This study inquires into how the Culturalism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had been re-arranged in colonial Korea ever since it was introduced after the March First Movement. Culturalism was based on the concept of kultur which was invented as an alternative to the Western Enlightenment thoughts and French cultural hegemony over the West and the rest of the world. In German perspective, the Western civilization is doomed to be failed by its logo-centric rationalism, materialism, anti-naturalism, imperialism driven by destructive competition over the colonies and the West-centered universalization which tries to assimilate non-western cultures of colonies into the westernized civilization and culture. In this terms, kulturalism could be accepted as an alternative and liberal thought to the Western civilization and imperialism since after the end of the World War First. In colonial Korea, culture means civilization and then culturalism was understood and appropriated as a self-reconstruction-ism in a direction to get civilized. Addition to this, dependent nationalism on the West powers, Socialism, and cultural-politics of Governor-in-General in 1920s contributed together to blur the anti-colonial implications of kulturalism and to make cultural practices and activities as powerless ``fiction``. I argue that culturalism in colonial Korea lost its anti-colonial perspective by desiring for civilization`s universality instead of pursuing for cultural distinctions and particularities which express intellectual, aesthetic, moral and spiritual qualities of a society, nation, ethnic and group. In conclusion, I suggest kulturalism would have been a rare chance for us to reflect on the West-centeredness which has possessed Koreans ever since the late 19th century. I mean re-arranged civilizational culturalism in 1920s has weakened the de-colonial and post-colonial potentiality of the kulturalism itself.

        • KCI등재

          친선과 연대의 정치성― 韓中文化와 중국발 모더니티의 수용을 중심으로

          최진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9 大東文化硏究 Vol.0 No.106

          본 논문은 해방기 잡지 韓中文化 를 중심으로 한국의 중국 모더니티 수용 양상을 다루었다. 해방된 한국 사회는 당면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과 연대를 고민한 바 있다. 국공의 분열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중국’은 자신의 ‘운명’을 ‘신민주주의’ 속에서 탐색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치적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통해 새로운 지적・문화적 가능성을 찾고자 한 배경이다. ‘韓中文化協會’와 韓中文化 역시 이런 지적 자장의 일부분을 구성했다. 그러나 냉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신민주주의’ 관련 담론들은 공론장에서 사라진다. 해방기 한국 사회에서 장제스와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두 모더니티가 충돌했고,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모더니티는 은폐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친목과 연대를 말하는 한중문화 는 이 충돌과 은폐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韓中文化 는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중국’의 변화를 사고하지 못했다. ‘문화와 전통’을 공유한 집단의 연대와 교류만을 상정하고, ‘적’으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중국’애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데 이로 인해 당대 중국을 이해할 전망을 상실한다. 혁명의 역동성으로 상징되는 ‘중국문제’의 정치성이 제거되자 현재의 중국이 아니라 ‘과거의 전통 중국’만이 남게 된다. 결국 해방기 ‘중국’을 다룬 종합잡지였던 한중문화 는 현실의 중국을 사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역동적 중국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 ‘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중문화’의 상호 교류가 불가능하게 된 이유를 돌아본 순간, 한국인들의 통념화 된 중국이해와 대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韓中文化 의 중국의 모더니티의 수용은 친선과 연대로 표명되는 한중교류의 한계와 가능성을 드러낸다. In this research, I analyzed the Chinese related books produced and distributed in the Liberation Period, and the Korean-Chinese Culture issuing process by the culural association of Korea-China and the discourse contained in it. It is work to materialize the historical context of understanding to China at this time. At that time, Korean society thaught about cooperation and solidarity with China in order to resolve the contradiction of Korean society. Despite the differences between left and right political positions, Korean society looked for new intellectual and cultural possibilities in China. These facts are the background of the Korea-China Cultural Association and the Korea-China culture that interested in Chinese Modernity. Under the influence of the Cold War, Chinese socialists' interest in Korean society had disappeared from the surface. Korean-Chinese Culture 's attitude of solidarity with Korean-Chinese Culture shows this kind of aspect well. Korean-Chinese culture did not think about the actual driving force of China despite talking about goodwill and solidarity with China. By abandoning the understanding of the enemy, it abandoned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modern China. The political nature of the "Chinese issue" symbolized by the driving force of the revolution has disappeared. As a result, in China's intellectual discourse, real China has disappeared and only past China has remained. However, paradoxically, at the moment of thinking about conditions that China and Korea can not interact, someone were able to dismantle Korean's understanding of China's popularized China. In conclusion, China's modernity acceptance of Korean-Chinese Culture shows another possibility from the limit of Korean-Chinese exchange consisting of goodwill and solidarity names.

        • KCI등재

          쏘련을 향하여 배우라 ― 1945~1948년 조소문화협회(朝蘇文化協會)의 조직과 활동

          유기현 ( Ryu Kee-hyun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7 大東文化硏究 Vol.0 No.98

          본고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조소문화협회의 조직 과정과 활동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문화 건설`의 측면에서 북한의 국가 건설 과정을 분석한다. 1945년 11월에 창립된 조소문화협회는 초기에는 지식인 중심의 `문화운동 전위단체`를 지향했다. 그러나 1946년 말~1947년 초, 냉전이 공식화되고 분단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 지도부는 건국을 위한 `사상개혁` 운동을 한층 강화했다. 북한은 `건국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며, 소련의 `선진 문화`와 국가 건설 경험을 대중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그러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 인식했다. 이에 따라 북한 지도부는 1947년 초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통해 노동자·농민 등 광범한 대중을 회원으로 포괄하는 `군중단체`로 협회의 면모를 새롭게 했다. 소련 `선진 문화`에 대한 학습이 전 인민적 실천운동의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조소문화협회는 단기간 안에 농민·노동자 속에서 다수의 회원을 확보하고 중앙본부에서 조소반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조직체계를 완비했다. 조소문화협회는 북한이 국가 건설 과정에서 소련 문화를 매개로 인민들의 사상·의식을 환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북한 정권은 협회를 통해 수입한 소련 문화를 통해 자칫 모호해 질 수 있는 건국의 노선·방략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전국적으로 구축된 조소문화협회의 조직을 통해 보급된 소련의 문화적 양식은 북한 문화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This paper analyzes North Korea`s state-building process in the viewpoint of `cultural construction`, by studying Korea-Soviet Cutural Association(KSCA)`s organization and activities from 1945 to 1948. Soviet Union`s culture had an important impact on the making of North Korea`s culture during the `state-building period`, and KSCA functioned as North Korea`s key channel to accept and study Soviet`s culture. This research examines KSCA`s overall organization and activities, analyzing the reason why North Korean regime tried to propagate Soviet`s culture and their experiences in socialistic nation building. KSCA started as a friendship organization between Soviet armed forces and Korean leaders right after Soviet`s occupation of north of the 38<sup>th</sup> parallel. KSCA changed its identity as a cultural exchange organization after `trusteeship crisis` of early 1946, setting up branch offices in North Korea`s major cities, publishing magazines, and establishing relationship with Soviet`s All-Union Society for Cultural Relations with Foreign Countries (VOKS). At this time, KSCA aimed to be an intelligentsia-oriented group professionally researching and popularizing Soviet`s culture. However, KSCA`s character fundamentally changed due to North Korea`s political changes around late 1946 to early 1947. North Korean regime initiated `ovement for Mobilizing Nation-Founding Ideology (Kunguk Sasang Chongdongwon Woondong)` to promote the people`s reformation of thoughts. North Korean people`s active participation was a key to succeed in these nation-building works, and propagating Soviet`s `advanced culture` and their historical experiences would be a great impetus for the regime to motivate the people. As a result, North Korean regime transformed KSCA from intelligentsia-centered group to mass organization embracing hundred thousands of peasants and laborers as members. In conclusion, KSCA played a key role in ideology education of North Koreans by using Soviet culture. Most of socialist countries also had similar kinds of friendship associations with the Soviet Union, but their functions were limited in the field of cultural exchanges. On the other hand, KSCA actively collaborated with North Korea`s national tasks of liquidating colonial inheritance and constructing new culture, showing clear differences over the other socialist countries` friendship associations.

        • KCI등재

          특집 : 4-6세기(世紀) 동아시아에서의 문헌(文獻)의 유통(流通)과 확산(擴散)

          김경호 ( Kyung Ho Kim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大東文化硏究 Vol.0 No.88

          농업을 경제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이 근대국가로 진입하기 이전까지 중국의 군현 통치 외연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른바 ‘동아시아’지역의 문화적 통합이 秦漢시기 이래로 줄곧 강화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문화적 통합의 핵심적 요소는 중국의 한자, 율령, 유교.불교 및 도교이며 정치적 문화적 여러 요소들 역시 모두 한자를 매개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동아시아세계를 ‘漢字文化圈’이라 정의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와 관련한 종래의 문헌 관련 연구 내용은 주로 한자의 성립이나 전파 또는 각 지역에서의 그 사용 실태 등에 집중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종래 연구에 기초하여 종이의 사용 이후, 後漢末.魏晋時期 민간사회에서의 문헌 유통의 내용과 위진시기(4~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동아시아 세계로의 문헌유통과 그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고대 중국에서 제작.유통된 문헌이 주변 국가에서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중국 문화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변 국가는 중국 문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고대국가로 성장.발전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까닭에 주변 국가에 한자와 문헌이 유통.확산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朝貢秩序體制가 형성되었으며, 각 국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면 할수록 주변 국가의 한자 문화가 중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본문의 내용에서 검토한 이른바 “중국과 동일하다(同於中國)”이나 “중화의 법에 의존한다(依中華之法)” 등의 표현은 이러한 정황을 반영한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삼국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인 新羅 元聖王 4년(788)에 실시한 讀書三品科의 교재로서 五經과 史書 및 諸子書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중국 문헌에 대한 熟知의 정도가 관리 선발의 기준이었을 뿐만아니라 중국에서 유통된 문헌이 신라 사회 전반에 보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질서는 조공과 책봉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을지라도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자국의 독자적 문화와 중국문화를 융합하여 중국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新羅에서 吏讀의 사용을 통한 기록이나 한자를 기초로 만들어진 일본의 히라가나(平假名)와 가타카나(片假名)가 그 좋은 사례로서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문화가 유통되고 확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ast Asia that based on the agriculture economy was in the extension of Gun-Hyun government before the process of transition to the modern state. This fact means cultural integration in East Asian has been continually strengthened since Qin and Han Dynasties. Because Chinese character, law code, Confucianism·Buddhism·Taoism were the core components of cultural integration and all the political and cultural components were spread by Chinese character as well, East Asian world was also defined as "Chinese Characters-Using Area". The former studies about East Asian literature were mainly focusing the establishment, diffusion and reality of usage, etc in each area of Chinese character. Based on these former studies, this paper organized the distribution of literature in civilian society in the Late Han and Wei-Jin period after the usage of paper, and the distribution of literature in East Asia area and its meaning which began in earnest from Wei-Jin period(4th-6th century) as follows. The fact that literature made and distributed in ancient China spread into neighboring countries shows the advancement of Chinese culture, meanwhile it means neighboring countries had to accept the advanced culture and develop into ancient countries. The more actively Chinese character and literature spread in neighboring countries, the China-centered tribute system formed; the more developed into ancient country, the Chinese character culture in neighboring countries reached in a equal level with China. The expressions like "the same as China" or "based on the Chinese law" used in this paper reflect this situation. The Five Classics(五經), History book(史書) and All Classes of Others(諸子書) were chosen as textbooks of Employment of Officials in Three Ranks(Dokseosampumgwa, 讀書三品科) which carried out in King Wonseong(元聖王) 4(788) in Silla, the latest country of accepting the Chinese civilization among three countries. This tells us that the degree of understanding about Chinese literature had become the standard of selecting the government officials, and the literatures distributed in China had been diffused in the whole Silla society.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친선과 연대의 정치성 : ― 『韓中文化』와 중국발 모더니티의 수용을 중심으로

          崔珍豪 ( Choi Jin-ho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9 大東文化硏究 Vol.0 No.106

          본 논문은 해방기 잡지 『韓中文化』를 중심으로 한국의 중국 모더니티 수용 양상을 다루었다. 해방된 한국 사회는 당면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과 연대를 고민한 바 있다. 국공의 분열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중국’은 자신의 ‘운명’을 ‘신민주주의’ 속에서 탐색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치적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통해 새로운 지적·문화적 가능성을 찾고자 한 배경이다. ‘韓中文化協會’와 『韓中文化』 역시 이런 지적 자장의 일부분을 구성했다. 그러나 냉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신민주주의’ 관련 담론들은 공론장에서 사라진다. 해방기 한국 사회에서 장제스와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두 모더니티가 충돌했고,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모더니티는 은폐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친목과 연대를 말하는 『한중문화』는 이 충돌과 은폐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韓中文化』는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중국’의 변화를 사고하지 못했다. ‘문화와 전통’을 공유한 집단의 연대와 교류만을 상정하고, ‘적’으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중국’애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데 이로 인해 당대 중국을 이해할 전망을 상실한다. 혁명의 역동성으로 상징되는 ‘중국문제’의 정치성이 제거되자 현재의 중국이 아니라 ‘과거의 전통 중국’만이 남게 된다. 결국 해방기 ‘중국’을 다룬 종합잡지였던 『한중문화』는 현실의 중국을 사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역동적 중국 이해를 포기하는 순간‘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중문화’의 상호 교류가 불가능하게 된 이유를 돌아본 순간, 한국인들의 통념화 된 중국이해와 대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韓中文化』의 중국의 모더니티의 수용은 친선과 연대로 표명되는 한중교류의 한계와 가능성을 드러낸다. In this research, I analyzed the Chinese related books produced and distributed in the Liberation Period, and the 『Korean-Chinese Culture』 issuing process by the culural association of Korea-China and the discourse contained in it. It is work to materialize the historical context of understanding to China at this time. At that time, Korean society thaught about cooperation and solidarity with China in order to resolve the contradiction of Korean society. Despite the differences between left and right political positions, Korean society looked for new intellectual and cultural possibilities in China. These facts are the background of the Korea-China Cultural Association and the Korea-China culture that interested in Chinese Modernity. Under the influence of the Cold War, Chinese socialists' interest in Korean society had disappeared from the surface. 『Korean-Chinese Culture』's attitude of solidarity with 『Korean-Chinese Culture』 shows this kind of aspect well. 『Korean-Chinese culture』 did not think about the actual driving force of China despite talking about goodwill and solidarity with China. By abandoning the understanding of the enemy, it abandoned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modern China. The political nature of the "Chinese issue" symbolized by the driving force of the revolution has disappeared. As a result, in China's intellectual discourse, real China has disappeared and only past China has remained. However, paradoxically, at the moment of thinking about conditions that China and Korea can not interact, someone were able to dismantle Korean's understanding of China's popularized China. In conclusion, China's modernity acceptance of 『Korean-Chinese Culture』 shows another possibility from the limit of Korean-Chinese exchange consisting of goodwill and solidarity names.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