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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의 ‘한국철학관’과 내셔널리즘

          김미영(Kim Miyeong)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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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철학계에서는 다카하시의 철학관을 두 측면에서 평가한다. 한편으로는 식민사관으로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의미의 전통철학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한다. 이 양대 평가는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에 걸쳐 나타나는 그의 한국철학관의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그의 한국철학관 형성과정과 국가사상 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1910년대에는 한국이 중국사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향모색의 과정에서 조선의 고유문자나 조선의 고유문학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의 일본어로의 대체를 강조하며, 한국철학사에서 조선어에 의한 창작활동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유학사 연구의 시발점을 1910년대에는 신라시대로부터 시작하나, 1920년대에는 철학으로서의 유학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성리학 구명에 중점을 두며 고려말부터 시작하고 있다. 또한 1920년대에는 유학을 철학적 측면으로 다루며 조선성리학에 집중하고, 한국인의 일본에의 동화를 위한 종교정책의 일환으로 불교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1930년대에 접어들면 조선유학의 특징을 종교성에 두며, 한국인에게 종교적 교화라는 측면에서 불교보다 유학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그는 더 이상 불교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한국유교의 종교성을 구명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그는 중국이 근세 쇠퇴한 원인이나 조선이 멸망한 원인을 유교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부정하면서, 조선이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철학관의 변화는 그의 전통철학 연구대상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철학사와 국가사상간의 관계를 읽어볼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철학사상이 국가사상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의 문제는 20세기 전개된 철학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Takahas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is evaluated from two aspects by Korean philosophers. One is criticized by Colonialism, and the other is evaluated from the standpoint that he was the scholar studying Korean traditional philosophy by modern systems of study. These two aspects are related with the course of colonial regime of Japanese imperialism. So, I stud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evelopment process of 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and the nationalism, laying stress on the change of his viewpoint on it in 1910's, 1920's, and 1930's. In 1910's, he didn't exclude the possibility of Korean traditional character or literature as a way out of Korean Chinese Thought in this time. But in 1920's, he as an assimilationist, stressing the substitution of Japanese for Korean, tried to exclude the possibility of studying Korean philosophy in Korean in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Accordingly, in 1910's, he put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confucian history in Shilla, but in 1920's, in the end of Koryo. Also, in 1920's, he focused on Chu Zi's learning of Chosun, emphasizing the confucianism as a philosophical idea, and on Korean Buddhism as a part of a religion policy for the Korean assimilation to Japan. But, in 1930's, he emphasized Chosun confucianism as a religion, not studying the Korean Buddhism any more, but Korean confucianism, from the viewpoint that the confucianism as a religion was more suitable for Korean. This change of his viewpoint on Korean philosophy led to the transition of object of his study and show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and the nationalism. Therefore, in order for philosophy to overcome nationalism, I think we have to have critical review on his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developed in the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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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현대불교의 태동과 擎雲 元奇

          오경후 한국동양철학회 2018 동양철학 Vol.0 No.50

          The Emergence in the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m in Korea and KYUNGUN-WONGI(擎雲 元奇) KYUNGUN-WONGI is a person who has lived the tradition and modernity of Korean history. During this period, Korean Buddhism was also in a great turning point. KYUNGUN is a person who inherited the tradition of Study of Zen and Non-zen Buddhism, Chantingf Buddhism, Vinaya Pitaka of the Korean Buddhism which has been blurred since the 19th century. Because of this, even the Japanese have regarded the Buddhist identity of the Korean Buddhism as a person who has maintained the identity. Although the order of Korean Buddhism was confused by the influx of Japanese Buddh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disciples said that they were afraid of their hearts as if they were listening to the commandments themselves. KYUNGUN has also systematized the collapse of Sun-am Temple(仙巖寺). In the future, Choi Nam-seon(崔南善) said that KYUNGUN was a virtuous practice to keep the Vinaya, not to stick to and keep it. He formed Baekryeon-gyeolsa(白蓮結社), even the people who did not know Buddhism had a deep influence on Buddhism. He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e direction of Korean Buddhism as well as establishing Buddhism’s Order(Samgha) at the time. At that time, Buddhist denomination's efforts to nurture the post-Buddhist education of the Korean Buddhism and to improve the Propagation were the only reason for the tide to go outside the prose. The disciples of Tongun were outstanding. Han-Young Park( 朴漢永)·Jin Jin Eung(陳震應)·Geumbong byeong-yeon(錦峰 秉演) The disciples followed the tide of Buddhism at that time, and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education of Buddhism and to the stability and development of Buddhism in Korea. 경운 원기는 한국 역사의 전통과 근대를 살다 간 인물이다. 이 시기 한국불교 역시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경운은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부흥했지만, 19세기부 터 그 명맥이 희미해진 한국불교의 선교학과 염불, 그리고 계율의 전통을 선암사의 스승들로부터 온전히 계승한 인물이다. 때문에 일본인조차도 결연하게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보호 유지해온 인물로 평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불교의 유입으로 승가 의 질서가 혼란스러웠지만, 제자들은 경운을 보는 자체로 계율을 듣는 것처럼 마음 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였다. 경운은 선암사의 무너진 계율을 체계화시키기도 하 였다. 훗날 최남선은 경운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얽매여서 지키는 것이 아닌 좋아서 하는 고결한 실천이었다고 하였다. 그가 결성한 백련결사 역시 불교를 모르는 사람 들조차도 불교에 입문할 정도로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당시 불교계의 교단 설립 과 함께 한국불교의 방향설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당시 불교교단의 한국불 교의 후학 양성과 포교 향상을 위한 노력은 경운이 유일하게 산문 밖을 나가는 이유 였다. 경운의 제자들은 걸출했다. 영호 정호·진응 혜찬·금봉 병연은 경운에게 선 교학을 수학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불교정신을 따르고자 하였다. 제자들은 당시 불 교계에서 경운의 뒤를 이어 후학양성과 한국불교 안정과 발전에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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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신학 방법론

          임찬순(Chansoon Lim) 한국동양철학회 2008 동양철학 Vol.0 No.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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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적인 방법론에 대한 성찰은 매우 중요한데, 신학적인 방법은 방법 자체를 넘어서 신학의 내용까지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이정용의 양면긍정의 신학 방법론을 고찰하는데, 이 양면긍정의 사유는 그의 실존적 신학적 난제를 해결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는 재미신학자로서 동양적 세계관에 근거한 동양적 신학내지는 한국적 신학을 창조하는 구성신학적 작업을 하였다. 그는 서구 신학의 난제들을 발견하면서, 그 난제들을 동양적 사유방식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도전하였는데, 그의 작업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동서의 지평융합을 지향해야 하는 신학자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포스트모더니티는 도전인 동시에 기회인데, 비서구적인 전통과 문화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데, 기독교는 이제 서구의 종교가 아닌 명실공히 세계종교의 자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비서구 전통들이 기독교 속에 융합내지는 제소리를 내지 않으면 세계기독교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타자를 포용하고 담아내는 내적인 외적인 스트러글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난제이다. 서구신학이 문화적 상대성과 대화에 주목하게 된 것을 넘어서서, 다른 문화들 이 제목소리를 내면서도 기독교적 정신이 자리할 수 있어야 한다. 유비적 사고는 서구 신학적 전통에서 신과 인간, 신과 세계의 차이를 보충하고 매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고였다. 이정용은 관계와 신앙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간극을 초극하려고 했던 칼 바르트의 유비에서 출발해서, 동양 적 음양론으로 그의 신학적 사유를 넓혀나갔으며, 동양적 삼위일체적 사유를 말하는 자리까지 전진했다. 이런 과정에서, 동양적 전통의 언어가 철학적 해석을 통해 신학적 언어로 기능을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차원을 발견하게 되 었다. 그의 신학적 구성은 동양의 종교적 전통의 일종의 서구화로 읽힐 수 있으나, 기독교의 토착화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그런 작업자체가 양자택일의 길이 아닌 양면긍정의 길이다. 동서는 이제는 더 이상 고정된 틀이 아니다. 이 정용의 신학적 테제에 따르면, 기독교의 본질은 배타성에 있지 않고, 포용성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세계 기독교의 형성을 위해서 기여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신학적 방법론을 발전시키라는 소명일 수 있다. A reflection on theological method is very important, for a theological method even regulates the content of theology. This study is focused on Jung Young Lee's theological method, both/and way of thinking, which is the background to show his existential and theological conundrums. He was a Korean American constructive theologian who had tried to construct an Asian or Korean theology based on East Asian worldview. Acknowledging conundrums in the W estern theology, he attempted to resolve them through East Asian way of thinking, which is very meaningful for contemporary theologians in the postmoderm age. Postmodernity challenges and gives us opportunities that non-Western traditions and cultures raise their own voices and contribute to constructing Christian culture and theology for the sake of forming a World Christianity. On the other hand, these kinds of theological works could not be accepted universally without serious struggles of embracing others in their own lives and cultures. Analogical thinking was required in the W estern theological tradition in order to complement and mediate the difference between God and human beings. Jung Young Lee's theological journey was started from Barthian analogy based on relation and faith as a neo-orthodoxian. On the other hand, his analogical thinking was expanded to East Asian way of thinking as Yin/Yang and even East Asian trinitarian way of thinking. In this process, his theological construction had been enriched and deepened through embracing East Asian traditions. His theological construction is not only a kind of Westernization of East Asian religious traditions but also a kind of indigenization of Christianity, which seems to go beyond this kind of category. East and W est is not a fixed category any longer. According to his theological These, the essence of Christianity is not exclusivity but inclusiveness, which is a calling for Korean Christian theologians to develop our own theological method and theological creativity for the sake of forming W orld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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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하우로서의 倫理 :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인지과학과 동양철학 연구

          유권종(Yoo, Kwon-Jong)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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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적 구성주의의 학문 연구를 주도했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란시스코 바렐라(1946~2001)의 강연집 『윤리적 노하우』는 동양의 전통적 가르침이 정립했던 것을 윤리적 노하우라는 관점으로 조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저서는 동양철학 전공자에게 연구의 중요한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본 연구는 바렐라의 견해를 분석하고, 그의 관점과 연구 내용을 동양철학 연구 특히 유교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방향을 탐구하였다. 본 연구의 순서는 인지과학의 흐름과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학문, 『윤리적 노하우』의 체계와 주요 관점, 윤리에 관한 지식의 본질, 윤리를 노하우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동양철학 연구의 새로운 관점의 논의로 구성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동양철학연구에 적용가능한 『윤리적 노하우』의 특징적 구도를 네 가지로 파악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현대인의 윤리적 실천의 현실에 관한 그의 문제의식, 둘째 서구철학적 사고 내지는 초기 인지과학의 계산주의적 모델의 극복과 구성주의 모델의 확립, 셋째 존재론적 이원론의 구도를 넘어서는 생명론적 일원론의 구도로의 전환, 넷째 숙련에 의한 자기창조의 원리 등이다. One of leading members of radical constructivism on the basis of cognitive science, Francisco J. Varela's Ethical Know-how, which is a collective publication of his speeches, newly explains the Asian traditional teachings as a very useful and meaningful wisdom depending on a new conception of ethical know-how he developed. It is sure that his work gives a moment to specialists of Asian traditional thoughts. This article is for the analysis of his ideas about the ethical know-how and at the same time for a search for possible way to apply his ideas and methodology to the studies of Asian traditional thoughts. This study is going on with the order as follows; current stream of cognitive science and Varela's researches, the principle of Ethical Know-how and main viewpoints, the essence of knowledge of ethics, the explanary structure of Ethical Know-how, and new viewpoint of Asian philosophical studies. According to this study, his ideas and theoretical points that can be applied to the studies of Asian traditional thoughts are summarized as follow; his strong and consistent willingness to improve the low level practice of ethics in contemporary societies up to a higher level practice, changing the thinking model for the improvement leaving from the Western philosophical tradition or the computational style of the early cognitive science settling to radical constructivist model, establishment of the monistic principle on the basis of the life itself with rejection of the ontological dualism, and construction of autopoiesis(self-organization) by means of mastery of the know-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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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중국의 사상 흐름에 대한 한국 철학계의 연구 동향 - ‘문화열’과 ‘중국학열’에 대한 연구 동향을 중심으로

          이철승(李哲承) 한국동양철학회 2006 동양철학 Vol.0 No.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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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제11기 3중전회’를 기점으로 중국의 사상계는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관점 아래, 중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을 주장하며, 신‘백화제방’ㆍ‘백가쟁명’의 시대를 열었다. 경직된 사회 구조에서 벗어난 중국의 지식인들은 1980년대에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직면한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론을 펼쳤다. ‘문화열’이란 학계의 이러한 동향을 지칭한 말이다.<BR>  중국의 사상계는 또한 1989년의 이른바 ‘6ㆍ4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후, 이 사건의 사상적 배경을 ‘문화열’ 때 확산된 서구의 부르주아 자유주의 사조의 만연으로 여기고, 중국의 정체성 회복과 새롭게 펼쳐지는 국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사상적 대안을 강구하는 과정에 ‘신중화사상’을 토대로 하는 ‘중국학열’을 조성시켰다.<BR>  오랫동안 중국의 현대 사상에 대한 연구보다 전통 사상에 대한 연구에 치중했던 한국의 철학계는 1990년대 초부터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체계의 확립을 철학의 중요한 역할로 여기는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중국 현대 철학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BR>  그들은 그동안 한국의 철학계가 중국 사상을 연구하면서 비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 인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 한계를 노정시킨 것으로 평가하고, 현대 중국의 사상을 심층적으로 탐구하여 중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합리적인 한중 관계의 정립에 이론적인 기여를 하고자 하였다.<BR>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문화열’과 ‘중국학열’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현대 사상의 연구 경향에 대한 한국철학계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여, 균등하면서도 평화로운 한중 관계의 지속에 필요한 사상적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 행복에 관한 동양철학적 성찰

          이기동 한국동양철학회 2016 한국동양철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6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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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밀려오는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고통을 극복하면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감의 양은 고통의 양과 같다. 고통을 극복하면 고통의 양만큼 행복해진다. 밥 한 끼를 먹었을 때의 행복감은 밥 한 끼를 굶었을 때의 고통과 같은 양이다. 고통에는 여러 층이 있다. 작은 고통도 있고 큰 고통도 있다. 작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는 그것이 가장 큰 고통처럼 느껴지지만, 더 큰 고통을 당하면 작은 고통은 고통 축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밥 한 끼를 굶을 때의 고통은 실연의 고통에 비하면 고통 축에 들어가지 않는다. 밥을 굶으면 난동을 부리던 사람도 실연의 고통을 당하면 밥을 주어도 먹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 나가면큰 고통을 느끼지만, 팔이 잘려 나간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고통 축에 들어가지 않는다. 팔이 잘려 나갔을 때의 고통은 큰 고통이지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의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고통 축에 들어가지 않는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고통을 해결했을 때의 행복은 큰 고통을 해결했을 때의 행복감에 비하면 행복 축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은 고통을 해결하느라 평생을 소모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큰 고통을 해결하여 큰 행복을 얻어야 지혜롭다. 그렇다고 큰 행복만을 추구하다가 당장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바람직한 것은 당장의 고통을 어느 정도 해결하기만 하면 거기에 머물지 말고 바로 큰 행복을 얻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철학이다. 동양철학의 큰 범주에는 유학과 불교, 노장사상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원초 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는 철학체계는 노장철학이다. 노장철학은 혼돈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철학이다. 따라서 노장철학은 혼돈에 머물러 있는 한 있는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 노장철학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이 그것이다. 혼돈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감각기관을 작동은 하되, ‘나’라는 허상을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허상을 만들어내지 않기만 하면 일체의 고통이 없다. 노장철학에서는 가상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유한한 ‘나’를 부정하는 불교와 유사하다. 또 가상현실에서의 고통에서 철학이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유학과 불교가 유사하다. 유학과 불교가 추구하는 종착역 역시 혼돈이라는 점에 서도 유사하다. 오늘날 학자들은 서구 근세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양철 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도 많이 나타난다. 동양철학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서구의 방식으로 정리만 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근본 고통을 해결한다고 하는 동양 철학 본래의 목적이 많이 희석되었다. 이 때문에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 중에는 학문을 통해서 행복해졌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공자의 인에 대한 논문을 썼어도 어질지 않고, 석가모니의 자비에 대한 논문을 썼어도 자비롭지 않은 학자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깊이 한번 반성해볼 때가 되었다.

        • 蔡家和敎授의 「憨山大師三敎合一的天人論述」에 대한 토론문

          김기주 한국동양철학회 2016 한국동양철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6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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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구봉 송익필의 리기묘합적 사유 : 한국유가철학 방법론 모색

          김동희(Kim, Dong Hee) 한국동양철학회 2021 동양철학 Vol.- No.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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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유가철학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방법론적 문제인데, 이는 어떻게 한국유가의 철학적 사유를 탐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조선유가의 철학적 사유에 관한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다카하시 도오루의 퇴계와 율곡을 중심으로 한 主理·主氣라는 배타적인 이원적 사유나 중국 신유학(주자학)의 발생론적인 태극(리) 일원적 사유의 틀을 암묵적으로 의존해 왔다. 물론 다카하시 연구가 학파와 당쟁을 연계시키는 정치적 당파성에 입각한 연구라는 점과 그 연구가 근대서양철학의 실체론적 사고라는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한계점에 대해서는 해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다카하시 연구의 학문적 경향이나 태도를 비판 한 것이지, 조선유가철학의 철학적 사유나 그 연구 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구봉 송익필의 理氣妙合的 思惟와 그 구조 및 전개를 탐구한다. 탐구과정에서 구봉은 퇴계와 율곡과 마찬가지로 중국 주자학의 태극 일원론적 사유 방식을 지양하는 리기묘합적 사유를 공유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구봉은 퇴율과 다르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리기묘합적 사유를 전개하는데 그 학파와 당파에 있어서 율곡의 기호학파에 가깝지만, 퇴계의 리기묘합적 사유에 나타나는 리의 수사학적 능동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사유와 부합하고 있음을 논구한다. 구봉의 리기묘합적 시유와 그 구조 및 전개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봉은 리기묘합적 사유의 존재론적 차원과 우주론적 차원을 ‘理在氣中’의 구조 아래 각각 ‘太極含動靜’과 ‘太極有動靜’으로 전개하고, ‘理在氣中’에 정합한 심성론의 ‘性在心中’ 구조에서 四端七情을 논한다. One of the biggest problems in the study of Korean-Confucian philosophy is on the methodology, how to explore its thought. The previous researches on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Korean-Confucianism have implicitly relied on the exclusive and dualistic framework that Takahashi Toru(高橋亨) is classified in terms of Ju-Li(主理) and Ju-Gi(主氣), and on the Chinese Neo-Confucianim’s generative thought of Taegeuk(太極)-Monism. Of course, the limitations that Takahashi’s research is based on the political section linking school and faction and that it has an ideological background with modern Western philosophy’s substantial thought, are explained. However, these studies criticized Takahashi’ academic trends or attitudes, not the philosophical thought and research method of Korean-Confucian philosophy. On this problematic this paper explores Gubong s thought of Li-Gi-Myohap(理氣妙合), its structure and development. In the process of exploration it shows Gubong as like Toegye and Yulgok shares the thought of Li-Gi-Myohap for avoiding the Chinese thought of Taegeuk-Monism; and, that unlike Toegye and Yulgok, he develops his own original thought of Li-Gi-Myohap, which is closely related to Yulgok’s school and faction but conformed to Toegye’s philosophical thought that puts an emphasis on Li s activity in rhetoric. The summary of Gubong s thought of Li-Gi-Myohap, its structure, and the process of its development are as follows. Gubong develops the ontological and cosmological dimensions of the Li-Gi-Myohap thought into Taegeuk-Ham-Dong·Jeong(太極含動靜) and Taegeuk-Yu-Dong·Jeong(太極有動靜) respectively in the structure of Li-jae-Gijung(理在氣中) , and delivers a discourse on the theory of Sadan-Chiljeong(四端·七情) in the structure of Seung-jae-Simjung(性在心中).

        • 은유로서의 몸과 소통의 상징성

          김세서 한국동양철학회 2014 한국동양철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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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憨山大師三敎合一的天人論述

          蔡家和 한국동양철학회 2016 한국동양철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6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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