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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지식인의 "근대성" 인식 1 -문병,인종,민족담론을 중심으로

        박정심 ( Jeoung Sim Park ) 東洋哲學硏究會 2007 東洋哲學硏究 Vol.52 No.-

        근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유럽근대문명은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과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인종주의적 세계인식과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유럽근대문명은 세계적 보편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근대 지식인은 근대성을 이루고 있는 문명·인종·민족담론을 중심으로 다음 세 가지 문제를 고민하였다. 첫째, 세계적 문명성을 수용하는 문제이다. 둘째, 백인우월주의적 허위의식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서구적 근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민족적 근대주체를 정립하는 것이다. 유길준과 윤치호는 서구문명과 접촉하면서 서구근대 문명성을 수용하고자 노력한 대표적인 근대지식인이다. 그들이 서구문명을 至善과 當爲로 받아들이는 순간 전근대적 삶의 양식은 야만이 되고, 우리는 문명화를 실현하기 위해 서구를 이식해야만 했다. 서구근대문명을 보편으로 받아들이는 한 지금 야만적 상태로는 서양과 대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음은 자명하며, 우리 목표가 문명화를 통한 부국강병 실현에 있음 또한 자연스럽다. 유길준은 ``문명``을 본격적으로 사유하고 체계화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인류가 개화정도에 따라 야만→미개→반개→문명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발전적 문명관을 제시하였다. 유길준은 한국은 아직은 반개 상태라고 파악하였다. 그가 조선을 반개의 단계로 상정한 것은 우리가 그들처럼 문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결핍된 야만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의식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명성이 결핍된 반개에 해당한다면 우리보다 앞선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문명국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윤치호는 기독교 개종과 미국유학을 통해 서구문명을 내면화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던 윤치호는 타자에 대한동일화를 시도했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분열적인 자기 확인은 힘의 논리로 귀착하고 만다. 문명적 시선은 주체와 타자를 선명하게 구분하는 선이었지, 그들과 하나되는 지점을 확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치호는 기독교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적 사회진화론을 준거로 하여 근대를 인식하였다. 그에게 사회진화론은 한편으로 인종적 민족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화의 절박성을 깨닫게 해주는 양날의 칼이었다. 일본을 한국문명화의 전범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가 일본을 예찬하고 친일협력을 정당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The modern age is the point to start the genuine world history. European modern civilizations are organized as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lso a Caucasian superiority and racism. And these European modern civilizations have the position of the world universalism. It is the problem how Korean modern intelligentsia accepted and recognized these Western modern civilizations. Then the problems that modern Korea confronted with are classified as three problems. First the most important was the problem how to accept these world universal civilizations. Second it is to reconstruct the logic to criticize a Caucasian superiority and racism. And finally it is to make theses of modern national entities. Yoo Gil-Jun(兪吉濬) and Yun Chi-Ho(尹致昊) were representative modern intellectuals to tried to accept that civilization by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By accepting Western culture as the highest goodness(至善) and what one should do(當爲), our premodern way of thinking and living changed as the uncivilized manners, and so to realize the modernization we had to accept and transplant Western culture. If we accepted Western modern culture as the universality, it is self-evident that we couldn`t enjoy the right as equal to Western culture. And so it is natural that our goal is the wealth and military power of nation by modern civil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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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기획 : 동아시아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와 성찰 ; 자강기신구학체용론(自强期新舊學體用論)의 문명론(文明論)과 주체인식에 관한 연구

        박정심 ( Jeoung Sim Park ) 동양철학연구회 2013 東洋哲學硏究 Vol.73 No.-

        본 논문은 자강기 新舊學體用論의 문명인식이 주체 및 타자 인식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었음을 분석한 글이다. 주로 대한자강회와 대동학회 계열에서 주창했던 신구학체용론은 신학수용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新舊學體用論은 舊學[儒學]을 도덕적 本體로, 新學[서구 근대학문]을 이용후생을 실현할 근대적 用殊로 구분하여 ‘구학-本體/신학-用殊’란 이론체계를 정립하였다. 신학용수론이 담고 있던 문명화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기반한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과 궤를 같이 하였다. 유럽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新學및 서구적 근대성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일본중심주의와 제국주의침략을 ‘문명적 전범’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학용수론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 동양의 열강 일본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었다. 自强期문명담론은 유럽중심주의와 東洋主義라는 근대적 중심주의에 포획당해 있었는데, 그 중심개념은 普遍과 進步였다. 문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그 보편적 중심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 주변 혹은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을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유럽중심주의를 재생산한 동양주의는 同文同種論과 東洋平和를 내세웠지만, 日本盟主論의 異名에 지나지 않았다. 新學用殊論은 서구적 문명화를 통한 자강을 최우선과제로 설정함으로써 서구중심적인 단선적 진보사관에 입각하여 세계를 인식하였다. 단선적 진보사관에 의거한다면 약자인 한국이 강한 문명국인 일본보다 앞서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문명화를 최선결과제로 삼는다면 일본의 문명지도는 당연하였다. 이러한 문명화담론은 친일로 귀결되었다. 대한자강회 계열과 대동학회가 문명화를 통한 자강이 유학적 본지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근대적 중심주의에 포획당함으로써 유학의 근대적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말았다. 오히려 맹목적 문명화는 문명성이 ‘부재’한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 인식을 발견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주체 생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하였다. 我韓은 서구 및 일본과 같은 문명을 갖지 못했다는 결핍의식은 자신을 ‘병든 자’로 규정하게 하였다. 결핍과 부재로 규정된 자기 인식은 주체적으로 근대사회를 기획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근대적 정체성[自國精神]은 문명의 단선적 궤도에 대한 회의와 보편타자와 마주선 자기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는 생성될 수 없었으며,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을 이탈하지 않는다면 문명자강의 근원이라고 여겼던 애국정신 또한 기를 수 없었다.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Modern strenuous effort(近代自强期新舊學體用論) shows the theoretical differences between premodern era and modern era and the dramatical meeting between Confucianism and the western modern science.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uses the Old as main ethical body and the New as the tools the New to fulfill the public welfare. It aims to make the structure to introduce the new modern science.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Modern strenuous effort(近代自强期新舊學體用論) makes the theoretical structure of old science as moral body and of new science as modern useful body(用殊). But A Study of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strenuous effort exposure the theoretical limits that Confucianism couldn`t criticize Imperialism by elimination of the social era in the ethical main stream. So though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Old establish the role of the Confucianism in the modern era, we can`t evaluate the Old have logical compatibility and vali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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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현대 문명의 생태학적 전환 -생태와 문명의 교차점: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의 회통-

        전홍석 ( Hong Seok Jeon ) 한국동서철학회 2011 동서철학연구 Vol.61 No.-

        본 연구는 현대 문명담론을 생태학적 세계화 차원에서 체계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아울러 단 · 복수론의 궁극적 지평의 융합으로서 메타 이론적 학문 토대를 기초함은 물론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자연, 중심과 주변, 서구와 비서구 등의 이분화적 갈등 구도를 파기하고 생태학적 관계성 희복을 전제하는 생태문명학의 정립을 그 목표로 한다. 현 재 인류가 직면한 여러 생태학적 위기는 단순한 물리적인 환경의 파괴를 넘어 더 많은 함의를 지닌다. 금세기 생태학적 진단은 계몽주의와 산업 혁명에 연원한 현대 문명의 여러 폐단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수렴하는 것이다. 생태 문명의 건설은 생태 회복과 관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문화 양식의 혁신과 관련된다. 또한 여기에는 세계화를 촉발시킨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근대성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서양과 동양이라는 제 존재의 관계망들을 파편화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진원지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자와의 관계성을 배제하는 이원적 근대성은 단수적 문명의 진보 신념으로 이어진다. 서구의 문명 개념에 내포된 ``진보 대 야만``의 구획 의식은 단선적 진보사관에 연원한 서구보편주의의 세계적 동질화 과정의 근저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구 문명의 패권을 강제하는 강권주의 논리가 함의되어 있다. 현재의 서구문명강권주의가 근대성의 닫힘과 두절의 이항 대립 의식에 근거한다면 무엇보다도 상호 주체적 연결 고리를 인정하는 생태 지향적 근대성으로서의 열림과 소통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복수적 근대성에 기초한 범 인류 중심의 생태학적 관계망을 담보하는 ``세계주의 시각``의 전일적 문명관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새로운 문명관은 인권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일체의 강권에 대한 저항과 해체에 있다. 아울러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세계인이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는 상호 주체적 평등 관계를 기초로 한 세계주의적 ``생태문명``, 즉 세계 문명 중심의 다문명적 공존주의 문명관의 각성과 구축에 있다. 이처럼 생태학적 문명관은 문명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한 어떤 규범적 패러다임을 설정 하는 토대가 된다. 강조컨대 현대 문명의 내핵인 근대주의가 공존 이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생공영의 이념을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중심주의적 근대주의 문화를 비판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객 이분법을 타파하고 주체와 객체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이른바 대자연이 최고의 주제라는 자연중심주의로 회귀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의 주체성을 소유하며 때문에 삼라만상이 존재의 가치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연 중심의 다주체적 공생주의 자연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연관을 문명론으로 치환해볼 때 ``세계 문명 중심의 다문명적 공존주의 문명관`` 건설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다. 생태와 문명의 교차 점에는 세계 문명의 소통으로서의 ``생태문명학``이 자리한다. 자연 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전회는 특정한 패권 문명 중심에서 세계 문명 중심으로의 인식 전환과 함께 그 동안 주 제와 중심의 그늘에 가려져 억눌리고 소외당했던 객체와 주변의 복권을 의미한다. 특히 서구의 이분법적 차별 구도는 근대성과 접맥된 세계화 이론에 깊이 착근되어 있다. 현재의 세계 문명은 ``세계성 대 지역성`` 내지는 ``근대성 대 전통성``이 대립하면서 서로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단수적 보편 문명의 세계적 일체화와 복수적 개별 문명의 자기정체성 강화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세계화와 관련된 현대 문명담론의 최대 관건은 단 · 복수적 문명론의 역사순기능적인 면을 동시에 구현시킬 수 있는 보편문명론과 문명다원주의의 화해와 회통에 있다. 즉 현재와 미래의 세계는 단일의 보편 문명과 고유한 특징을 지닌 복수의 개별 문명들이 중층적으로 공존한다고 보고 ``문명다원주의를 그 전제로 한 보편 문명에의 지향``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또한 ``보편 문명``이 태생적으로 서구제국주의와 접맥된다는 점에서 다원성과 타자성을 감내하는 생명관적 자애로운 보편주의가 확보되어야 한다. 본 논고에서는 이 명제들의 충족 논거로서 생태문명학의 핵심 규범과 운용 요칙 들을 각각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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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철학 : 근대 문명(文明)과 세계 인식의 전환에 관한 연구

        박정심 ( Jeoung Sim Park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2 한국 철학논집 Vol.0 No.34

        文明civilization은 유럽의 민족주의적 보편주의를 담고 있는 역사적 개념으로, 근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를 망라하는 사회적 체제를 반영한 삶의 총체이기도 하였다. 동아시아의 경우, 文明은 civilizatio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으며, 근대문명의 패러다임도 이식되었다. 일차적으로 문명은 국가적 차원에서 수용하였으며, 국가주의와 결합하였다. 즉 ``文明``은 세계와 동양, 그리고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보편적 정체성과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 사이에서 근대적 정체성을 생성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문명은 서양과 동양 사이에 존재했던 근대 ``한국``이 민족적 정체성과 세계를 인식하는 근간이 되었다. 중화문명의 해체와 유럽중심주의 및 일본중심적 동양주의에 직면한 한국은 민족적 정체성을 정립함으로써 문명적 세계의 일원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구근대문명 및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문명화의 전범으로 상정하는 순간 야만인 조선은 문명화해야할 결핍된 타자로 전락하였다.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문명의 시혜로 인식하는 한계를 노정하였다. 근대 유럽중심주의적 보편문명은 문명의 문명다움을 담지한 문명이었던가? 유럽중심주의적 근대문명은 서구열강의 민족적 보편성과 과학기술이란 단일한 잣대를 유일한 전범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문명이었다. 근대적 폭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없이 문명다운 문명을 창조하기란 불가능해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근대문명의 중심성과 폭력성을 성찰해야할 이유이다. Civilization is a historical concept which contains nationalistic universalism of Europe. In Eastern Asia, civilization precipitated while attempting to melt European civilization into their socio-cultural structure, and during that process, modern paradigm was planted within. Primarily, civilization was handled with much of governmental care, and eventually merged with nationalism. "civilization" amalgamated with the world, eastern hemisphere, and nationalism in order to function as a mechanism which created modernized identity from uniformed characteristics and self recognition as deficient ``others`` Civilization helped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integrity and formation of perspective to scope the world. Since dismantlement of Chinese cultural heritage which caused by European/Japense Orientalism, Korea had to found national identity in order to coexist with civilized world. However, accepting western modernism and ideologies created by Restauration Meiji as epitome of civilization, barbaric Chosun became a lagging nation which had to modernize in already established and formalized way. Weak national identity made Koreans to acknowledge Japanese colonial rule as a timely rain which could re-navigate them to become more civi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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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용과 모색: 19세기 말 중국 근대 독본류 교과서로 본 문명 리터러시 — 上海 南洋公學의 《新訂蒙學課本》을 중심으로

        정유선 한국중국소설학회 2023 中國小說論叢 Vol.71 No.-

        yond the thick framework of traditional Chinese civilization. This can be said to be the sample that can most grasp the understanding of modern Western civilization at the time and the intellectual process of internalizing it in Chinese. In addition, the modern textbook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can be seen as a basic text that can grasp the modern civilization literacy of the period based on reading. In this paper, we would like to investigate the civilization literacy of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rough the Newly revised elementary school textbooks(《新訂蒙學課本》) of modern elementary schools compiled by Namyang Public school in Shanghai. In response, based on the Newly revised elementary school textbooks, this paper first examined the scope, composition, and system of what and how to civilize useful talents who will achieve a rich and prosperous country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then considered educational delivery on how to internalize and utilize it to novice Chinese students. 청말 아편전쟁 패배 이후 급격히 쇠락의 국면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시대적 요구로 인해 官民 공동으로 근대식 학교가 활발하게 설립되었고 근대식 교과서가 편찬되기 시작했다. 특히 ‘읽기’에 중점을 둔 청말 근대 독본류 교과서는 전통적인 중국 문명의 두터운 틀을 벗어나 근대 서양 문명으로 편입되어 가는 과도기에 지식 계몽을 위한 독서물로서, 당시 근대 서구 문명에 대한 이해도와 그것을 중국적으로 내재화하는 지적 과정을 가장 파악할 수 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청말 근대 독본류 교과서는 읽기를 기반으로 해당 시기 근대 문명 리터러시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본 고에서는 상해 남양공학에서 편찬했던 근대 초등 소학교 독본류 교과서인 《신정몽학과본》을 통해 청말 문명 리터러시를 규명해 보았다. 이 책은 청 정부가 반포했던 최초의 근대 학제인 임인학제와 계묘학제 이전에 상해에서 관민 공동으로 설립한 남양공학에서 중국인이 최초로 편찬한 근대 어문 교과서이다. 이 책은 상해라는 근대적 공간과 청말 정부의 근대교육의 자장 편입 이전이라는 시간적 환경 속에서 서구 근대 문명 학습에 첫발을 내딛는 학습자를 대상으로 당시에 요구하는 근대 문명 지식과 소양에 대한 교육 양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신정몽학과본》를 바탕으로 청말 부강한 국가를 이룰 유용한 인재에게 무엇을 어떻게 문명 교육을 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성과 체제 및 내용을 살펴본 다음, 이를 초보 새내기 중국 학생들에게 어떻게 내재화시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적 전달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 한국에서의 동양사상 연구의 새로운 방향과 문제점

        이동희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2011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8 No.-

        한국의 사회학자 그룹에서 동양사상에 대해서 새롭게 현대적 재해석을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현대신유학 연구와 취지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 목적이 다르다. 한국의 사회학자의 연구는 근대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탈근대를 이념으로 하고 있으나, 중국의 현대신유학 연구는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동양사상 연구는 유불도 모두 대상으로 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를 근대문명의 대안으로 삼으려 한다. 중국의 경우는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연구 목표가 중국에 제한되어 있다. 한국 학자의 연구는 탈근대의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통일체적 세계관, 유기체적 우주론, 리기론, 음양론, 리일분수론 둥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동양사상의 형이상학 또는 종교 이론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 명제들이 형이상학적 기호체계, 혹은 상징은유 형식이므로 패러다임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구체적 사회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전근대를 극복하고 근대의 합리성을 더 추구하면서 근대문명의 폐해를 구제하는 탈근대의 과제도 수행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 중국의 유학부홍론. 전반서화론, 서체중용론, 중체서용론 사이의 활발한 논의를 참고하면서 사회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내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韓國學界正在對東方思想進行참新的現代式再解釋。這與中國的現代新儒學硏究與其宗旨幷行, 但硏究目的是不同的。韓國社會學者的硏究指出了近代文明弊害, 爲了克服這個弊害, 以脫近代作爲理念。但中國的現代新儒學是把建設中國式社會主義作爲硏究目標。韓國的東方思想硏究是把儒彿道全部部作爲對象硏究, 幷把結果作爲硏究近代文明的基石。中國的情況是把儒家思想作爲中心, 硏究目的僅限於中國。韓國學者的硏究重視統一體的世界觀、有機體的宇宙倫、理氣論、陰陽論、理一分殊論等파脫近代的新的文明理論。這種理論광架是從東方的形而上學或者宗敎理論引用, 其命題是形而上學的記號體系, 或者是象徵隱喩形式的理論, 因此可以引用。但즘樣在現實社會中適用是個重要問題。韓國需要克服近代, 追求近代的合理性, 幷救濟近代文明的弊害, 遂行擺脫近代的課題。韓國要參考中國的儒學부興論, 全盤西化論、西體中用論、中體西用論之間的活躍的爭論, 조出解決社會問題的具體方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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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의 시와 속도의 정치학

        여태천 ( Yeo Tae-chon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7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5 No.1

        이 글은 김수영이 근대기술문명과 속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시와 속도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근대기술문명과 속도를 이해하고 과잉속도의 위험성을 제어하려고 했던 김수영의 태도를 여러 시편을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한때 김수영은 근대기술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근대기술문명의 과잉속도가 정치권력과 연결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관리한다는 사실을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속도의 질주성은 권력과 만나 소음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의 많은 시에서 속도주의가 지닌 위험성은 충분히 확인된다. 또 한편으로는 근대기술문명의 속도와 질주성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수영은 근대기술문명의 속도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정지의 미”와 “중지”의 연습, “마음을 쉬”는 휴식을 강조했다. 김수영이 생각한 속도는 가속화를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지와 함께 이해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자연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다. 김수영은 근대기술문명의 과잉속도에 대응하는 시간의 속도를 자연의 움직임에서 찾아냈으며, 더 나아가 자연의 움직임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있다. 김수영은 근대기술문명의 속도에 놀랐고, 거기에 분명 매료되었으며, 낙후된 현실에 낙담했다. 서구적 근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그에게 없지 않았으나, 근대기술문명과 속도주의가 지닌 위험성과 질주의 폭력성을 분명히 간파하고 있었다. “정지의 미”와 “중지”의 연습, “마음을 쉬”는 휴식으로 발견한 움직임과 사랑이 이를 증명한다. 이를 통해서 김수영은 근대기술문명의 지나친 속도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what Kim Su-young had thought about modern technology civilization and speed. Also this article takes a close look at how Kim`s poetry is related to speed. In addition, his article has confirmed Kim`s attitude of understanding the modern technology civilization and speed and to control the danger through various poems. Kim Su-young once tried to catch up with the pace of modern technology. But he criticized the fact that the excess speed of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is linked to political power, and that it dominates and manages our daily lives. In this process, the accelerating of speed was met with power and exposed in the form of noise. In many of his poems, the dangers of accelerating of speed are fully identified. On the other hand, the possibility of control of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s speed and acceleration can be found in his poems. In order to resist the accelerating of speed of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Kim Su-young emphasized “cessation beauty” and “halting” practice, and resting “relaxed mind”. The speed that Kim Su-young thinks is not a concept of accelerating, but a concept understood with cessation. It is very similar to the movement of nature. Kim Su-young has found the speed of time corresponding to the excess speed of modern technology civilization in the movement of nature, and furthermore finds love in the movement of nature. Kim Su-young was surprised at the speed of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was definitely fascinated by it, and disappointed in the backward reality. He did not have the nervousness of catching up with Western modernity, but clearly understood the danger of excess speed and the violence of acceleration which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has. The movement and love discovered by “cessation beauty” and “halting” practice, and resting “relaxed mind” proves this. Through this, Kim Su-young tried to overcome the excess speed of modern technological civilization.

      • KCI등재

        김기림의 시론과 ‘근대정신’의 복원

        오문석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8 인문학연구 Vol.0 No.55

        Kim Ki-rim often shows contradictory attitudes in his poetic theory. On the one hand, he is a champion of modernism, while on the other hand, he is being critical of the fact that modernism is becoming a technologist. In emphasizing the reflection of the zeitgeist, he denies 19th century literature and espouses modernism as the 20th century literature. When he emphasizes the criticism of civilization, he becomes critical of modernism focused only on reflecting civilization with its technique. Kim Ki-rim's ambivalent attitude toward modernism is a reflection of his dual attitude toward civilization. Because he simultaneously demands acceptance of civilization and criticism of civilization. Therefore, he criticizes modernism emphasizing only the acceptance of civilization, and also the romanticism and realism that focuses only on criticism of civilization. He proposes coexistence of the two and calls it the 'total poetry'. The total poetry seeks to integrate the contradictory attitudes of acceptance of civilization with criticism of civilization. Kim Ki-rim regards it as a modern spirit. He insists the total poetry, which combines contradictory attitudes toward civilization, is the realization of a modern spirit. Modern spirit originated from the Renaissance, when the two contradictory emotions of humanity and intelligence were coexistence. Contradictory emotions are subsequently reconfirmed as romanticism and classicism, following Hume's suggestions. Kim Ki-rim believes Hume's proposal to restore classicism, excluding romanticism, is falling short of the modern spirit. In contrast, he seeks to compensate for the modernism of Classicism and to restore the modern spirit by recovering romanticism. The modern spirit of working through the coexistence of conflicting emotions has disappeared since the Renaissance, when Kim Ki-rim hoped to recover it throughout the total poetry. But the romanticism that Kim Ki-rim seeks to restore is not the past romanticism but the future romanticism that exceeds the acceptance of the civilization. Therefore, Kim Ki-rim meets up with the revolutionary Romanticism of Im Hwa in that the romantic spirit that Kim Ki-rim introduces in modernism includes active criticism of capitalist civilizations. Eventually, the total poetry of Kim Ki-rim, the synthesis of modernism and realism, was meant to restore the modern spirit of synthesis through contradiction. 김기림은 그의 시론에서 모순된 태도를 자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옹호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이 기교주의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시대정신의 반영을 강조할 때 그는 19세기의 문학을 부정하고 20세기의 문학으로 모더니즘을 옹호한다. 문명비판을 강조할 때 그는 모더니즘이 기교를 내세워 문명을 반영하는 데만 치중한다고 비판적 반응을 보인다. 모더니즘에 대한 김기림의 양면적 태도는 문명에 대한 이중적 태도의 반영이다. 그는 문명에 대한 감수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감수만 강조하는 모더니즘, 문명비판에만 치중하는 낭만주의와 리얼리즘의 일면성을 비판하고, 양측의 공존을 제안하고 그것을 ‘전체시’로 명명한다. 전체시는 문명감수와 문명비판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태도의 종합을 지향하며, 김기림은 그것을 ‘근대정신’으로 이해한다. 그는 문명비판의 경향파와 문명감수의 모더니즘을 종합하는 전체시가 근대정신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정신은 인간성과 지성이라는 두 가지 모순된 정서의 공존을 보여준 르네상스에서 발원한 것이다. 이후 모순된 정서는 흄의 제안을 따라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로 재확인된다. 김기림은 낭만주의를 배제하고 고전주의를 복원하는 흄의 제안이 근대정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맞서 그는 낭만주의를 복원함으로써 고전주의 편향의 모더니즘을 보완하고, 근대정신을 회복하고자 한다. 서로 상반된 정신의 공존을 통해 작동하는 근대정신은 르네상스 이후로 사라졌었는데, 김기림은 그것을 전체시를 통해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전략은 고전주의 편향의 모더니즘에 낭만주의를 끌어들여 고전주의(모더니즘)와 낭만주의의 모순적 공생 관계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문명감수의 정신에 낭만주의의 문명비판의 정신을 추가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나 김기림이 복원하려는 낭만주의는 문명감수조차 거부하는 과거의 낭만주의가 아니라 문명감수의 정신을 초과하는 미래의 낭만주의이다. 따라서 김기림이 모더니즘에 도입하는 낭만주의 정신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능동적 비판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임화의 혁명적 낭만주의와 만난다. 결국 김기림의 전체시, 즉 모더니즘과 경향파의 종합은 모순을 통한 종합이라는 근대정신의 회복을 모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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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强期 新舊學體用論의 文明論과 주체인식에 관한 연구

        박정심 동양철학연구회 2013 東洋哲學硏究 Vol.73 No.-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Modern strenuous effort(近代 自强期 新舊學體用論) shows the theoretical differences between premodern era and modern era and the dramatical meeting between Confucianism and the western modern science.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uses the Old as main ethical body and the New as the tools the New to fulfill the public welfare. It aims to make the structure to introduce the new modern science.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Modern strenuous effort(近代 自强期 新舊學體用論) makes the theoretical structure of old science as moral body and of new science as modern useful body(用殊). But A Study of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strenuous effort exposure the theoretical limits that Confucianism couldn't criticize Imperialism by elimination of the social era in the ethical main stream. So though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Old establish the role of the Confucianism in the modern era, we can't evaluate the Old have logical compatibility and validity. 본 논문은 자강기 新舊學體用論의 문명인식이 주체 및 타자 인식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었음을 분석한 글이다. 주로 대한자강회와 대동학회 계열에서 주창했던 신구학체용론은 신학수용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新舊學體用論은 舊學[儒學]을 도덕적 本體로, 新學[서구 근대학문]을 이용후생을 실현할 근대적 用殊로 구분하여 ‘구학-本體/신학-用殊’란 이론체계를 정립하였다. 신학용수론이 담고 있던 문명화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기반한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과 궤를 같이 하였다. 유럽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新學 및 서구적 근대성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일본중심주의와 제국주의침략을 ‘문명적 전범’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학용수론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 동양의 열강 일본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었다. 自强期 문명담론은 유럽중심주의와 東洋主義라는 근대적 중심주의에 포획당해 있었는데, 그 중심개념은 普遍과 進步였다. 문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그 보편적 중심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 주변 혹은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을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유럽중심주의를 재생산한 동양주의는 同文同種論과 東洋平和를 내세웠지만, 日本盟主論의 異名에 지나지 않았다. 新學用殊論은 서구적 문명화를 통한 자강을 최우선과제로 설정함으로써 서구중심적인 단선적 진보사관에 입각하여 세계를 인식하였다. 단선적 진보사관에 의거한다면 약자인 한국이 강한 문명국인 일본보다 앞서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문명화를 최선결과제로 삼는다면 일본의 문명지도는 당연하였다. 이러한 문명화담론은 친일로 귀결되었다. 대한자강회 계열과 대동학회가 문명화를 통한 자강이 유학적 본지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근대적 중심주의에 포획당함으로써 유학의 근대적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말았다. 오히려 맹목적 문명화는 문명성이 ‘부재’한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을 발견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주체 생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하였다. 我韓은 서구 및 일본과 같은 문명을 갖지 못했다는 결핍의식은 자신을 ‘병든 자’로 규정하게 하였다. 결핍과 부재로 규정된 자기인식은 주체적으로 근대사회를 기획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근대적 정체성[自國精神]은 문명의 단선적 궤도에 대한 회의와 보편타자와 마주선 자기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는 생성될 수 없었으며,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을 이탈하지 않는다면 문명자강의 근원이라고 여겼던 애국정신 또한 기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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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일본의 근대지(近代知)

        조명제 ( Myung Je Cho ) 한국사상사학회 2014 韓國思想史學 Vol.0 No.46

        한용운은 1970년대에 민족문학론과 관련하여 『창작과비평』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문학사적 평가에 따라 8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의 시각에서 많은 연구 성과가 제시되었다. 또한 90년대 이후에는 근대불교사를 비롯한 인문학 전반으로 연구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용운 연구는 민족 담론에 입각한 ‘신화화된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된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연구도 대부분 한용운의 근대불교, 민족불교에의 지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결론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러한 한용운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글은 사상 연쇄라는 관점에서 메이지 일본의 근대지가 량치차오라는 필터를 거쳐 한용운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문명론과 근대철학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지가 『조선불교유신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첫째, 한용운은 서구 근대 문명론의 시각에서 당시 불교계의 반문명적인 현상, 즉 미개하고 야만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그의 문명론에는 문명개화론적 문명관과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론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문명론은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을 통해 수용하였지만, 그것은 후쿠자와 유키치, 가토 히로유키 등으로 대표되는 메이지 일본의 문명론이 번역과 번안을 통해 옮겨진 언설이었다. 둘째, 한용운은 불교의 철학적 성질에 대해 서양 철학이 불교와 합치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칸트철학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과 내용은 표면적으로 량치차오의 언설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메이지 일본의 근대철학의 흐름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것은 이노우에 엔료가 불교의 근대화를 지향하여 서양의 근대철학을 수용하고, 불교를 재해석하였던 관점과 진화론, 동서철학까지 포괄하던 지적 작업의 영향과 관련된다. 또한 메이지 일본에서 칸트철학이 유행하게 된 것은 일본의 근대국가 건설이 독일을 모델로 삼으면서 독일학이 학계, 지식계에서 전반적으로 수용되었던 흐름과 관련된다. 셋째, 한용운의 불교 개혁안은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제기한 독자적인 방안도 있지만, 개혁의 방향 설정이나 그에 따른 입론 자체가 일본의 근대지에서 폭넓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지는 근대철학의 수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서양철학의 계기적 발전이나 맥락을 고려하지 않거나 국가별로 존재하는 철학 경향의 특성을 무시하는 등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또한 량치차오가 수용하고 이해한 메이지 일본의 근대지는 결국 의사(擬似) 근대 체험의 한계를 가졌다. 더욱이 한용운은 량치차오라는 또 하나의 필터를 거쳤기에 더욱 착종된 형태의 근대지를 받아들였다. 『유신론』에서 서구 문명론이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전통불교의 자산을 대부분 미개한 것으로 비판한 언설은 그러한 한계와 관련된다. After Sinyubakhae(辛酉迫害, persecution of Catholics in 1801), the previous tolerant trends of thought was threatened, but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popular readings such as novels and folk tales were rather thriving. This thesis is a study about the continuous yet broken stream of thought between the late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y. The secularization of Joseon society had accelerated since the 18th century. Such a change originated from a new cultural fashion in Seoul. The secularization, in spite of continuous restriction of government, gradually changed the society which had been controlled by the Confucian norms. As a result, there appeared new intellectual groups, who were free of the consciousness of Bungdang(朋黨) or social status. The reaction against this trend began in the early 19th century. Especially, new studies about Seohak(西學) were considerably repressed. After 1806, however, it is ironically the government that lost its power of command. Governmental policies about these new thoughts were so high-handed that intellectuals restored their vigor pretty soon. Communication among intellectuals and accumulation of knowledge were very active enough even to call ``the birth of knowledge world``. But, unavoidably, the process was a refracted one, so most of their works could not exceed the progressiveness of the late 18th century, though with some rare exce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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