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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 한국동서철학회 35주년 연구사를 중심으로 -
이종성 한국동서철학회 2019 동서철학연구 Vol.0 No.91
This writing is designed to examine the Current Situation and Prospect of Eastern Philosophy Studies focusing on the study history of the 35th year of the Korean Society for Philosophy East-West. The objects under examination in this writing are the research papers of eastern philosophy contained in the complete 90 volumes from the first issue of the Korean Society for Philosophy East-West that was published on June 25, 1984 to the 90th issue published on December 31, 2018. This writing classified the research performance of the eastern philosophy part into eastern philosophy and Korean philosophy, based on the research classification table o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and then classified this into detailed parts; examined in aspect of large, medium, and small classifications. As a result, I verified that the volume of research of eastern philosophy was relatively more than that of Korean philosophy, and the research of Chinese philosophy and Korean Confucianism philosophy was greatest. In particular, the highest research objects revealed through the research analysis of writers since 2000 have been verified to be Lao-tzu and Chuang-tzu in the case of Chinese philosophy, and Yulgok in the case of Korean philosophy. This current research situation reflects the overall research tendency of Korean eastern philosophy as well as their major fields of study and the field of activities of those who submit papers. In addition, in terms of this current situation, participants' locality becomes the main advantage of the academic journal, and that, at the same time, can be an element to be pointed out as a limit. This is why the globalism of the academic journal is required. If the Korean Society for Philosophy East-West is to produce more developed philosophical discussion in the future, a variety of efforts for improvement such as the expansion of research participants' locality, that of the research scope of topics, etc. is required. In addition, that which drives the field of more realistic philosophical discussion which can satisfy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is seen to be needed. Through this, the research direction of eastern philosophy needs to contribute to producing more realistic and future-oriented ideas. 이 글은 1983년 3월 19일 창립한 한국동서학회 35주년 연구사를 중심으로 동양철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 글의 검토대상은 한국동서철학회가 1984년 6월 25일 발행한 『동서철학연구』 창간호부터 2018년 12월 31일 발행한 제90호까지 총 90권에 수록된 동양철학 연구논문들이다.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분류표를 기준으로 동양철학분야의 연구 성과를 동양철학과 한국철학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분야별 세부영역으로 분류함으로써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의 측면에서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 동양철학 연구가 한국철학 연구보다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확인하였고, 그 가운데 중국철학 연구와 한국유가철학 연구가 주도적이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인물별 연구 분석을 통해 드러난 상위 연구대상은 중국철학의 경우 노자와 장자, 한국철학의 경우 율곡 이이였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연구 현황은 논문 게재자의 전공분야 및 활동지역을 비롯한 한국동양철학계의 전반적인 연구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현황을 통해 볼 때 연구 참여자들의 로컬리티가 학술지의 주요 강점으로 자리매김 되는데, 그것은 동시에 학술지의 한계로 지적될 요소이기도 하다. 학술지의 글로컬리즘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한국동서철학회가 향후 보다 발전적인 철학담론의 생산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연구 참여자의 지역적 확장 및 주제별 연구범위의 확대 등 다양한 개선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철학담론의 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통해 동양철학 연구의 방향성이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념 창출을 위해 이바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근대와 만난 한국의 도교 -이능화 『조선도교사』의 기본입장을 중심으로-
이종성 한국동서철학회 2010 동서철학연구 Vol.58 No.-
이 논문은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 나타난 기본입장을 검토해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이능화는 역사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자신의 책무를 국학연구의 의의에서 확인받고자 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것이 문제가 되어 아직까지 친일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국학관련 저술들은 이능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를 제기하기에 전연 부족함이 없다. 이능화의 『조선도교사』는 한국도교의 역사를 통사적 관점에서 그 특징과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저서이다. 그것은 한국도교사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 성과에 해당한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를 통해 한국도교 기원설을 주장하는데, 무엇보다도 그 기원을 단군신화에서 찾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단군신화를 역사적 기원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민족의 기원을 단군으로부터 확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의의는 매우 크다. 그것은 일제의 조선사에 대한 식민사관을 부정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능화는 한국도교 기원설을 통해 주체의식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재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조선도교사』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게 한 충분조건이었다. 이능화는 소격서 철폐의 사건을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비판한다. 그는 소격서 철폐사건이 유교적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민족적 자긍심의 포기의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고 비판한다. 본래 천손의 자손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이 도교의 몰락과 함께 주체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이 이능화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능화는 도교가 근대 지향적 사유의 형성에 이바지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중국 또는 중화를 조선과 동열에서 대비하고 `지나’라고 표현할 뿐만 아니라, 유교적 도덕주의를 `악한 도덕’이라고 비판하면서 근대 지향적 도덕으로서의 `선한 도덕’을 제창한다. 빈부·귀천·강약·남녀의 차별을 혁파하는 것이야말로 `선한 도덕’이라고 본 이능화는 근대 지향성과 도덕 지향성을 양립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다. 本論文是以李能和的《朝鮮道敎史》爲中心,探討其基本思想爲主旨而設計的。李能和是日帝强占期,立足于歷史的挫折和絶望,把國學硏究的意義爲己任的代表學者。他因曾贊加過朝鮮史編修會而自今未能擺脫親日的嫌疑。但是他所留下的相關國學著述,有充分的證据能구再次評价李能和。李能和的《朝鮮道敎史》是一部把韓國道敎的歷史以通史的角度具?闡述其特征和展開過程的著作,算是對韓國道敎史硏究的先驅成果。李能和通過《朝鮮道敎史》主張韓國道敎的起源說,特別是把起源的根据在檀君神話中尋?。把檀君神話當做歷史的起源是意味着把檀君視爲民族的起源之故,其意義甚深。這還意味着否定日本帝國主義對朝鮮的殖民歷史觀。李能和想通過韓國道敎的起源說來尋?主?意識,以此來再次尋?國家和民族。因此,《朝鮮道敎史》具有民族主義性向。李能和從民族主義的側面上批判撤銷昭格署的事件。他遣責說撤銷昭格署的事件就是儒敎事大主義者們放?民族自豪感的宣言。李能和認爲原本的天帝子孫的民族自豪感伴隨着道敎的沒落而被消?,但是道敎却在近代志向性思維的形成做出了貢獻。所以,他把中國或中華看成是同朝鮮相等的位置,故稱其爲‘支那’,幷批判儒敎的道德主義是‘惡的道德’,進而提倡作爲近代志向性道德的‘善的道德’。李能和認爲消除貧富貴賤强·弱·男女等差別才是‘善的道德’,幷主張同時建立近代志向性和道德志向性。
윤천근 한국동서철학회 2010 동서철학연구 Vol.58 No.-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하늘은 지배적 신격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자연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민족의 종교적 의식이 유령관에서 유신관으로 발전하면서,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만들어 갖는 방식의 문화적 변모과정을 걸어 나간 것이 아니라. 전자 속에 후자의 성격을 가미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신성관념이 기본적으로 범신론적인 바탕을 갖는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우리민족의 사유구조 속에서 하늘은 태양, 달, 별, 비, 구름 바람 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천신, 상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전자는 유령관에서 유신관으로 진화하는 단계 속에 놓여지는 하늘의 자연신적 모습이고, 후자는 유령관에서 유신관으로 진화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인격적 주재천의 모습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단군신화의 환웅신이 갖고 있는 ‘인간360여 가지 일을 다 주관’하는 모습에서 지배적인 주재천으로서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이 인격적 주재천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동일한 능력을 산신에게서도 보고, 수신에게서도 보고, 여러 다른 신격들에게서도 본다. 다양한 자연물 속에 산재하는 다양한 신성들이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는 것이다. 신성들이 행사하는 권능이 사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나타나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어떤 신성과 보다 긴밀한 사적 관계가 맺어지느냐에 따라, 어떤 신성이 그 사람의 운명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런 여러 신성들의 어떤 작용과 개입에 의해 운명은 만들어지며, 인간은 그런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식을 갖는다. 그렇게 인간의 운명을 만들어내는 모든 신성들의 작용력을 한국인은 ‘하늘이 주관하는 운명’으로 대표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만들어진 운명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국인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운명론자라고 하겠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어떤 운명을 만들어 놓았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지성으로 하늘을 모시면 운명을 주관하는 하늘을 감동시켜 좋은 운명을 갖추어 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은 그 운명보다는 인간의 정성에 더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또한 사적 관계를 ‘나의 하늘’로 그 의식 속에 놓여지게 되는 하늘이 자신에 대해서 ‘나쁜 운명을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감도 전제되어 있는 문제라고 하겠다. 人間生於他的存在環境中, 這就是一定的自然環境. 自然自體置了客觀的領域, 而且無關我的實際生命活動. 自我必然地隨行他自身的生命活動, 故自我向這種存在環境, 表出一定關心, 生産一定關係, 這叫是‘自我的他者化之過程’. 通過這種他者化的過程, 一面自我受用他者變化一定他者化的自我, 一面他者變化分有自我性的他者, 結果形成了自我干涉他者的新種存在環境, 這是自我的世界觀. 自我的世界觀中的自然, 不是其自體的自然, 是自我的自然. 自我的自然, 因爲分有自我性, 終局看做了一定的具有人格性卽靈性的存在物, 而且登場自然神格的觀念. 韓國民族通過這種過程, 形成汎神論的世界觀. 韓國民族之長久的歷史過程中漸進形成的此種汎神論的世界, 具有一面水平的諸神觀, 又一面垂直的天神支配之相對優越的一神觀. 自然中的天保持一種比較優越的地位, 汎神論的體系中的天保持一種比較優越的權能, 當然兩者置於相互連繫的構造下. 觀於韓國民族之‘汎神論的構造上的優越一神觀’天是保有靈性的自然神格, 而且天是支配一切的主宰神格. 後者的側面, 看於檀君神話中的桓雄之支配力, 主官人間三百六十餘事, 這是保有絶對神格的 特徵, 但是沒有唯一神的性格. 前者的側面, 顯於朱蒙神話的構造, 柳花感化太陽光線而孕朱蒙, 這是保有自然中之天的屬性, 太陽代表天界的特徵, 這是顯示天神始端於自然的天而且蓄漸變化而形成一個絶對的神格之痕迹. 韓國人之天觀念, 爲形狀化從出這種兩側面之相互融和或綜合. 這種韓國人之天, 主管人間運命, 而且韓國人承認天神附與之自己運命. 這種運命論的前提下, 韓國人引出其精誠與不斷努力之情狀, 沒有墮落或降伏於巨大天的專橫與狂暴. 這是由何原因而可能麻? 我想, 因爲韓國人的天觀念造形於私的而且主觀的關係下, 於韓國人心性內面必然有了一定浪漫的期待感, 卽他保有‘我的天爲不與於我此種極端苛酷的運命’之內心, 故可能‘盡人事待天命’的處身.
박치완 ( Park¸ Tchi-wan ) 한국동서철학회 2020 동서철학연구 Vol.0 No.98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배운지 어언 100여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을 철학화하는(philosophizing Korea)’ 일에 대한민국의 철학계는 게을리하고 있다. <서구유럽철학 = 철학>이라는 편견이 한국철학의 정체성마저 근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세계철학의 지형도 내에서 한국철학의 위상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런 날이 언제쯤이면 올 수 있을까?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세계철학 내에서 한국철학의 위상을 (재)점검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서구유럽철학은 서구유럽철학이다”라는 소절을 통해 서구유럽철학만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내재화된 편견 또는 착각을 바로 잡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서구유럽과 ‘다른 곳’에는 “서구유럽과 다른 역사-문화-문명-철학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지역-로컬 철학(즉 ‘한국철학’)의 창달만이 현재의 서구유럽 중심의 왜곡된 세계철학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펴볼까 한다. 그리고 결론에서 세계철학의 지평에서 한국철학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며 이 글을 맺게 될 것이다. It has been over 100 years since started to teach and learn philosophy in University. However, the Korean Academy of philosophy is still neglecting to perform “philosophizing Korea”. The prejudice of < Western European Philosophy = Philosophy > eradicated the identity of Korean philosophy. In this situation, is it possible to find the status of Korean philosophy within the topographical map of world philosophy? When can such a day come?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have an opportunity to (re)check the status of Korean philosophy within world philosophy within this critical consciousness. In Chapter 2, I will try to correct the internalized prejudice or misconception that only Western European philosophy seeks ‘universal truth’ through the proposition that “Western European philosophy is Western European philosophy.” In Chapter 3, I will discuss the development of regional-local philosophy (that is, ‘Korean philosophy’) under the premise that “there is a history-culture-civilizationphilosophy different from Western Europe” in ‘different places’ from Western Europe. I would like to argue that it can change the topography of the distorted world philosophy at the center. And in conclusion, in order to make Korean philosophy possible on the horizon of world philosophy, we will conclude this article with some suggestions on what to do and how to do it.
강지연 ( Ji Iyeon Kang ) 한국동서철학회 2011 동서철학연구 Vol.61 No.-
이제까지 한국학계에서 공손룡 철학연구는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 「명실론(名實論)」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외 그의 저작인 「견백론(堅白論)」, 「지물론(指物論)」에 관한 극소수의 논문이 존재하나, 특히 「통변론(通變論)」와 「적부(跡府)」에 관한 연구 논문은 부재했다. 이 논문은 그동안 한국학계에서 연구되지 않은 「통변론(通變論)」에 관한 최초의 연구논문이다. 「통변론(通變論)」는 두 세상, 감각의 세계와 관념의 세계를 연결시켜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이비일(二非一)과 이무일(二無一) 논제를 전문적으로 논술하는 글이다. 이 글은 특별히 전면적인 사례, 즉 정거(正擧)와 비정상적인 사례. 즉 광거(狂擧)를 통해서 이비일(二非一)과 이무일(二無一) 논제에 대해서 논증했다. 이 「통변론(通變論)」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 1 부분에는 ``이(二)``와 ``일(一)``이나 ``이(二)``와 ``좌(左)``, ``우(右)``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비일(二非一)과 이무일(二無一) 논제를 이들 관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제 2 부분에서는 ``황(黃)``, ``마(馬)``, ``벽(碧)``, ``계(鷄)`` 관념으로서 해설하는 내용이다. 그는 구체적 대상과 그것을 가리키는 언어를 동일시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버클리식의 철저한 관념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공손룡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즉 감각되는 것을 지칭하는 말(언어)까지 존재론적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존재를 언어로 환원시켜 언어까지 존재론적으로 실재한다는 존재론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통변론(通變論)」 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런 연구 진행은 공손룡자 사상 이해에 일조하리라 본다.
동아시아에서 ‘물리(Physics)’라는 근대 어휘의 번역과 정착
김성근 ( Kim Sung-khun ) 한국동서철학회 2018 동서철학연구 Vol.0 No.89
본고는 동아시아의 근대화시기 ‘물리(物理)’라는 어휘의 개념적 변용 과정을 당시 일본과 조선의 문헌 자료를 통해 살펴본 것이다. 애당초 고대 중국 문헌에 그 기원을 갖는 ‘物理’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폭넓게 사용된 어휘였다. 특히 동아시아의 유학자들은 ‘物理’를 형이상의 불가시세계(invisible world)와 형이하의 가시세계(visible world)의 원리를 포괄하는 넓은 뜻으로 사용했다. ‘物理’가 가시적인 현상세계, 즉 자연계의 법칙을 의미하는 명칭으로, 그 개념이 한정된 것은 대략 19세기 전후 일본에서였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은 서양의 물리학을 라틴어 Physica, 네덜란드어 Natuurkunde, 프랑스어 Physique, 영어 Physics 또는 Natural Philosophy라는 어휘를 통해 접했고, 그것을 ‘窮理’, ‘格物’, ‘格致’, ‘理科’, ‘理學’, ‘窮物理學’, ‘窮物理之學’ 등 다양한 어휘로 번역했다. 메이지 유신(1868) 이후에도 물리학은 다양한 어휘로 번역되었다. 니시 아마네는 그것을 ‘格物學’이라고 불렀고, 후쿠자와는 ‘窮理’ 혹은 ‘窮理學’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의 교육 제도화는 ‘物理學’이 종래의 경쟁적 어휘들을 누르고, Physics의 주요한 어휘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物理’, ‘物理學’이라는 어휘는 1870년대 초 과거의 주자학적 개념을 탈피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한 분야, 혹은 자연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방법을 일컫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착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물리학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에서 물리학을 근대과학의 한 분야로 소개했지만, 정작 그는 그것을 ‘격물학’이라고 불렀다. 1895년 한성사범학교 관제에서 ‘물리’는 자연과학의 한 과목으로 소개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물리 교과서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자연과학적 의미의 ‘물리’, ‘물리학’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1910년대를 전후하여 ‘물리’, ‘물리학’은 신소설이나 잡지류를 통해 조선 사회에 대중적인 어휘로 정착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In this article, I examined how the concept of the word ‘mulri(物理, physics)’ was changed during the modernization period of East Asia through the data of Japan and Korea. ‘Mulri’, which originated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 was widely used in East Asia until the 19th century. In particular, Confucian scholars in East Asia used ‘mulri’ as a broad meaning to cover the principles of the visible and invisible world. It was in Japan around the 19th century that ‘butsuri(物理)’ began to be understood as the concept for the law of nature. In the Edo period, Japanese came to see Western physics through the expressions of Latin ‘Physica’, Dutch ‘Natuurkunde’, French ‘Physique’, English ‘Physics’, or ‘Natural Philosophy’. They translated them into various terms such as ‘Kyuri(窮理)’, ‘Kakubutsu(格物)’, ‘Kakuchi(格致)’, ‘Rika(理科)’, ‘Rigaku(理學)’, ‘Kyubutsurigaku(窮物理學)’, ‘kyubutsuri-jigaku(窮物理之學)’, and so on. Even after the Meiji Restoration in 1868, ‘butsuri’, ‘butsurigaku(物理學)’ were translated into various terms. Nishi-Amane called it 'kakubutsugaku(格物學)', and Fukuzawa translated it as 'kyuri(窮理)' or 'kyurigaku(窮理學)'. However, the educational institutionalization of the Meiji government became a decisive moment for 'butsuri' to defeat other competitive terms and to spread as a major translation of ‘physics’. In Japan, the term 'butsuri' and 'butsurigaku' began to spread out in the early 1870s as a concept which referred to the concept of scientific inquiry into a field of modern natural science or natural science, breaking away from the Confucian meaning. ‘Mulri’, ‘mulrihak’ in Korea began to be understood as a field of modern science through Yu Giljun’s book, Seoyu-gyeonmoon(西遊見聞) in 1895, but he called physics ‘geokmulhak(격물학)’. ‘Mulri’, ‘mulrihak’ began to be used as a subject of natural science in the Hansung Normal School in 1895, and appeared in the independent newspaper(독립신문) in the late 19th century. By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Japanese textbooks were translated into Korean, and ‘mulri’ and ‘mulrihak’ were widely introduced in Korea. After that, it seems that 'mulri' and 'mulrihak' spread around the 1910s as popular terms in Korean society through new novels and magazines.
인성교육에서 전통적 가치의 현대적 확장 연구 -성실과 정직의 연관관계를 중심으로-
김창경 한국동서철학회 2023 동서철학연구 Vol.- No.110
In the aim of exploring the interrelation between sincerity and honesty in modern moral education in South Korea, this paper puts an in-depth study on the traditional Confucian concepts and significance of sincerity and honesty by investigating the correlation between these two virtues to explore their modern value expansion. In Confucianism, sincerity(誠) is the genuine principle inherent in human nature, characterized by unwavering truthfulness and the concept of signifying that without sincerity, there is nothing substantial(不誠無物). Sincerity, as a virtue, involves firmly embracing and satisfying benevolence (善) as a rightful path, coupled with a mind that harbors neither self-reproach(無自慊) nor self-deception(毋自欺), embodying fairness and selflessness. Honesty is emphasized in moral education as a principle that should be cultivated through inner cultivation. Rectitude(直) is the inherent physiological principle bestowed upon all things and humans, embodying virtue, and is the essence of the mind(心). Honesty involves manifesting the inherent principle of rectitude in the real world through filial piety, loyalty, and brotherly love (孝忠悌), becoming the standard of impartiality(至公無私) in life and death. It is a virtue and attitude characterized by upright and straightforward conduct(無私曲), a practice of humanity(人道) that should rightly be displayed and demonstrated in all human affairs. The mutual correlation between these two virtues lies in the fact that sincerity and rectitude, represented respectively by nothing substantial(不誠無物) and the celestial principle of revealing the righteousness by speaking frankly, share a common underlying principle. It is also shared in the sense of possessing a heart committed to impartiality. Furthermore, in facing the practical realities of human affairs(萬事), both virtues entail not deceiving oneself and finding satisfaction, thereby appropriately embodying virtues that should be realized to avoid succumbing to selfish desires. In this regard, these virtues have a mutually synonymous significance. The virtues of sincerity and honesty are considered the most demanded and influential aspects of moral education in the field of character development. Moreover, it is acknowledged that these virtues are crucial for education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In light of this, the current state of the existing South Korean character education laws and ethical education curriculum reveals limitations and issues. Consequently, this study suggests a clear and novel understanding and learning of the expanded concepts and significance of sincerity and honesty, as well as the modern values related to the synonymous correlation of these two virtues. These should be recognized and incorporated as explicit learning content within the curriculum of character education, including ethical and moral education, reflecting the demands of the modern era. 현대 한국 인성교육에서의 성실과 정직의 상호 연관성과 그 현대적 가치 확장을 모색하고자 하고자, 성실과 정직에 대한 전통적 유학에서의 개념과 의의 및 두 가지 덕목에 대한 연관성을 고찰하였다. 유학에서의 성(誠)은 천도로서 진실무망하며 불성무물(不誠無物)의 이치로서 인간의 본성으로 품수된 참된 원리이다. 성실은 인도로서 마땅히 선(善)을 굳게 잡고 만족하는 무자겸(無自慊)과, 무자기(毋自欺)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마음이다. 성실은 내면적 수양으로서 함양해야 할 원리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인성교육 덕목이 된다. 직(直)은 천리가 존재 사물과 인간에게 덕성으로 부여된 부직즉도불현(不直則道不見)의 생리(生理)이자 심(心)의 본체이고, 정직은 품수된 천리를 현실세계에 효충제(孝忠悌)의 인륜과 삶과 죽음의 벼리가 되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바른 무사곡(無私曲)한 덕과 태도로써 인간 만사에 마땅히 드러내 펼쳐야 하는 인도(人道)의 실천덕목이 된다. 이 두 가지 덕목의 상호 연관성은, 성과 직은 각각 ‘불성무물’이요, ‘부직즉도불현’의 천리로서 동일한 원리인 점에서, 천리가 인간에게 품수된 본성의 덕성으로 주어진 점에서, 지공무사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당면한 현실의 인간 만사(萬事)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고 만족하여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않도록 마땅히 구현(具顯)되어야 하는 덕성이라는 점에서 상호 동일한 의미의 덕목이다. 이와 같은 성실과 정직의 인성덕목은 인성교육 현장에서 가장 요구되고 영향력 있는 덕목이며, 나아가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에서 필요한 덕목으로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현행 한국인성교육법과 도덕교육과정에서의 학습내용이 그 한계와 문제점을 시사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 살펴 본 성실과 정직에 대한 확장된 개념 및 의의와, 두 가지 덕목의 동일한 의미의 연관성과 관련한 현대적 가치를, 인성교육(도덕윤리교육 포함)과정 속의 학습내용으로서, 명확하고 새롭게 인식하고 학습되어져야 한다고 제언하는 바이다.
여말(麗末)선초(鮮初)완풍대군(完豊大君)이원계(李元桂)의 생애와 사상
이현중 한국동서철학회 2000 동서철학연구 Vol.20 No.1
고려 말 조선의 건국 시기를 살다간 完豊大君 李元桂는 고려 조정과 明나라의 조정에서 文科에 급제한 文臣이면서 홍건적과 왜구를 토벌하여 두 차례나 二等功臣에 오른 武將이다. 그는 위화도 회군 이후 동생인 李太祖가 조선을 개국하려는 움직임이 대세가 되자 네 아들에게는 조선의 개국에 적극 참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독을 마시고 自盡하였다. 完豊大君 자신은 고려의 忠臣일 뿐만 아니라 아들인 安昭公 李良祐와 襄度公 李天祐는 개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功臣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개국 이후 개국의 주체 세력들에 의하여 개국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인물로 여겨지면서 그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모두 歪曲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完豊大君의 生涯와 思想의 고찰을 통하여 삶의 意義를 밝히고자 한다. 完豊大君의 삶은 高麗와 朝鮮, 忠臣과 逆臣이라는 二分法的 論理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完豊大君의 삶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麗末鮮初가 갖는 時意性과 그의 삶의 정신을 비교함으로서 가능하다. 韓國 易學의 易道를 응용한 易學的 史觀에 의하면 麗末鮮初는 한국 철학의 生長期와 長成期가 終始하는 때이다. 따라서 정치사적으로는 고려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여야 할 때이며 사상적 측면에서는 佛敎를 이어서 儒學을 통하여 한국 사상을 장성시켜야 할 때이다. 따라서 麗末鮮初에 태어난 完豊大君에게는 麗鮮과 佛儒의 終始 繼代的 使命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完豊大君은 고려를 위하여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데 盡力하였고 위화도 회군에도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회군 이후에는 조선의 개국이 대세가 되자 아들에게는 개국에 참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진하였다. 이러한 完豊大君의 삶을 과정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분명히 자각하고 時義性을 따라서 그것을 실천 구현하며 살아간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大東奇聞』에서 完豊大君을 고려의 수절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설화로 전하여진 『東稗洛誦』에서 完豊大君과 李太祖의 관계를 역사적 사명을 중심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보면 그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9세기 한국 儒學者들의 학문방법론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과 일부一夫 김항金恒을 중심으로-
이현중 한국동서철학회 2020 동서철학연구 Vol.0 No.95
This paper examines the academic methodology of Hanju Yi Jinsang and Ilbu Kimhang in the nineteenth century. Unlike Hanju, who wished to strengthen independence based on Neo-Confucianist academic systems, Ilbu aimed to renew the world through inverted and reverse generation(Doyeoksaengsung倒逆生成) from the perspective of Tao(道) before it was separated into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Yoobuldo儒佛道). Hanju pursued unity with Tae Geuk(太極), RI(理), which are the source of the three functions(Sam-jae 三才) of heaven, earth, and man (Cheonjiin天地人) through the academic direction of the three viewpoints(Sam-kan三看): the horizontal (Su-kan竪看), vertical (Do-kan倒看), and cross viewpoints (Hoeng-kan橫看) based on the worldview of Neo-Confucianism, and the academic methodology of Sun-chu(順推) and Yeok-chu(逆推). He differentiated between the orthodox and heretical, focusing on yin-yang using the academic methodologies of Sam-kan(三看) and the two chus(兩推), and he emphasized this distinction by strictly differentiating between his argument and the arguments of others, and between Neo-Confucianism and other disciplines. Ilbu(一夫) proposed the Doyeoksaengsung of time and the unity of Sun-yeok in the space that objectifies the Doyeoksangsung and explains that the Samjae of Cheonjiin is achieved and reached through humans represented as the true descendants. He presented Taohak(道學), where the principles of human nature of the descendants are revealed through the methods of suppressing yin while respecting yang(Eokeumjonyang抑陰尊陽) from the ancestors, and revealed that the everyday life is when Sudo(修道), which believes and places its faith that every moment in life is created through teachers(Bango盤古) and parents (Hwaong化翁), and the system that views creation become one. Differentiating between sun(順) and yeok(逆), the Neo-Confucianist academic direction and methodology that pursue unity with Tae Geuk(太極), RI(理), in the reverse direction cannot reveal the aspect of practice which occurs in the forward direction or be integrated with Western academics. Through Doyeoksaeungsung, Taohak shows that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and even Western learning are all self-unfolding of Tao itself. 본고에서는 19세기의 유학자인 寒州 李震相과 一夫 金恒의 학문방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한주가 성리학적 학문체계를 바탕으로 주체성을 강화하려는 것과 달리 일부는 儒佛道로 구분되기 이전의 道 자체의 관점에서 倒逆의 생성을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한주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竪看과 倒看 그리고 橫看의 三看의 학문방향과 順推와 逆推의 학문방법을 통하여 天地人 三才의 근원인 太極, 理와의 合一을 추구한다. 그는 삼간과 양추의 학문방법을 통하여 태극을 중심으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고, 자신의 주장과 다른 사람의 주장, 성리학과 다른 학문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일부는 시간성의 倒逆生成과 그것을 대상화한 공간의 順逆合一을 제시하고, 震巽으로 표상되는 인간을 통하여 천지인의 삼재가 成道하여 合德됨을 밝히고 있다. 그는 후천의 性理 가 선천의 抑陰尊陽의 心法으로 드러나는 한국사상적 道學을 제시하여 삶의 모든 순간이 盤古, 化翁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믿고 맡기는 修道와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생성을 지켜보는 濟度가 하나가 된 것이 일상의 삶임을 밝히고 있다. 순과 역을 구분하여 역방향에서 理, 太極과의 合一을 추구하는 성리학적 학문방향과 방법은 순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의 측면을 드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西學과의 합일이 어렵다. 韓國 易學的 道學은 도역의 생성을 통하여 儒學과 道佛, 더 나아가서 西學이 모두 道 자체의 자기 전개임을 나타낸다